최근 수정 시각 : 2026-10-29 06:34:52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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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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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왕조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
이스라엘 왕국 제2대 국왕
다윗
דָּוִד | David
파일:다윗.jpg
하프를 연주하는 다윗 왕. 헤라드 반 혼토르스트. 1622년 작(作)
<colbgcolor=#0038B8,#0038B8><colcolor=#fff> 본명 דוד בן ישי (다위드 벤 이샤이)[1]
출생 기원전 1040년
이스라엘 왕국 가나안 베들레헴
(現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사망 기원전 970년 (향년 70세)
이스라엘 왕국 예루살렘
묘소 예루살렘 다윗성
국적 이스라엘 왕국
재위 기간 제2대 이스라엘 국왕
기원전 1010년 ~ 기원전 970년 (40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038B8,#0038B8><colcolor=#fff> 지파 유다 지파
부모 아버지 이새
형제자매 형 7명[2][3]
배우자 미갈[4], 아히노암, 아비가일, 마아가, 학깃, 밧세바 등
자녀 아들 암논, 길르압, 압살롬, 아도니야, 솔로몬 등, 딸 다말 }}}}}}}}}

1. 개요2. 생애3. 평가4. 대중문화에서5. 가족관계6. 기타
6.1. 예술적 조예6.2. 외모6.3. 이름 표기6.4. 실존 여부6.5. 일화들
7. 둘러보기

1. 개요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누워 놀게 하시고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지쳤던 이 몸에 생기가 넘친다. 그 이름 목자이시니 인도하시는 길, 언제나 곧은 길이요, 나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내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어라. 막대기와 지팡이로 인도하시니 걱정할 것 없어라. 원수들 보라는 듯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 부어 내 머리에 발라주시니, 내 잔이 넘치옵니다.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이 몸,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시편 23편 1~6절 (공동번역 성서)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국왕.

2. 생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다윗/생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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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3. 평가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사울을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서 파면시켰다고 해서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만 하고 있을 셈이냐?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길을 떠나거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라는 사람에게로 보낸다. 그의 아들 가운데서 내가 왕으로 세울 사람을 하나 보아두었다." (중략)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데려온 그는 볼이 붉고 눈이 반짝이는 잘생긴 아이였다. 야훼께서 말씀을 내리셨다. "바로 이 아이다. 어서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전략) 그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5]이요, 내 뜻을 다 이루어줄 사람이다.

이스라엘 왕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자, 신앙심이 매우 깊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다윗은 여러모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남겼다. 예루살렘을 건설하여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치열하게 싸울 성지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그다. 이스라엘은 사울 때 처음 왕정을 도입하나, 다윗 아래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나라 꼴을 갖추고 복잡한 근동 정세에서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사울과 다윗이 부상하던 BC 11~10세기는 근동의 양대 문명권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모두 대외 팽창을 멈춘 혼란기였기에, 이스라엘은 이 공백기를 틈타 레반트의 강국이 된 것으로 보인다.[6]

사후에는 굴욕을 많이 당했다. 하스몬 왕조의 요한 히르카노스 1세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7세가 쳐들어오자 그와 협상을 하기 위해 다윗 왕의 능을 털어 은 3,000 달란트를 마련해 뇌물로 주고 포위를 풀 수 있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예루살렘이 그간 수많은 침공과 점령, 파괴를 겪었는데 '다윗 왕의 능에서 은 3,000 달란트라는 거금이 있었겠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 시대로부터 불과 100년 이후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기록했으니 신빙성이 없다고 하기도 힘들다.[7][8]

현재 예루살렘에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했다는 마르코의 다락방 기념 교회 밑 지하에 다윗 왕의 무덤이 있다. 물론 진짜 다윗 왕의 무덤은 아니고 십자군 시대에 예루살렘 왕국에서 마르코의 다락방 기념 교회 밑에 다윗 왕을 기념하는 무덤을 세운 것. 십자군이 만든 이 가묘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또한 이슬람의 성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두 신자가 함께 예배를 올리는 몇 안 되는 곳이다.

다윗의 즉위 이후 행적을 생각해 보면 나라가 안 망한 게 신기할 정도로 그의 치세 때 국가 막장 테크가 연속으로 터졌다.
  • 왕은 되었지만 왕 되자마자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이스보셋)[9]
  • 이를 어찌어찌 합쳐놨더니 옆나라가 2번이나 쳐들어오고
  • 이를 또 무찔렀더니 이번에는 먼 이웃나라가 시비를 걸어서 쳐들어가 박살을 내놓고
  • 그 와중에 밧세바를 범하는 짓을 저질러서 밧세바의 할아버지인 유능한 신하[10]가 사표를 내고
  • 이제 좀 조용해지나 싶었더니 방목해서 키운 큰아들(암논)이 배다른 여동생을 강간하고 그 배다른 여동생의 오빠가 빡쳐서 그 큰아들을 살해했으며
  • 그 동생내미를 용서했더니 더 삐딱선을 타서 반란 일으켜 내전으로 번지고[11]
  • 이 반란을 어찌어찌 막았더니, 어떤 양아치 하나(세바)가 반란 또 일으키고
  • 또 정리하고 나니 역병 돌아 사람들 떼죽음 당하고(인구조사 사건)
  • 말년에는 부하들한테 전쟁터에서 짐짝 취급 받았으며
  • 후계자를 정해놓기만 하고 공표하지 않는 바람에 또 다른 욕심쟁이 아들내미(아도니야)가 왕위 계승을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는 등.[12]

다윗은 예루살렘 성전을 지으려 했으나 전쟁으로 피를 많이 흘려 건축자로 허락되지 않아 대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맡게 된다. 시키지도 않은 성전 건축을 바라는 다윗의 신실함을 기특하게 여겨 역으로 다윗의 집을 세워주고 영원히 이어지게 할 거라는 신의 약속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다윗 언약이다.[13]

거의 평생을 전쟁 속에서 살았는데, 이 때문인지 군부와 각 지파의 입김이 상당히 셌던 모양.[14] 그러나 전쟁 영웅이었던 다윗의 지속적인 왕권 강화 덕분에 후계자인 솔로몬의 치세 동안 각 지파의 수장과 선지자들이 솔로몬에게 감히 대들지 못했다.[15]

성경상 다윗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밧세바와의 불륜이다. 그 일 때문에 다윗의 집안에서 칼이 떠나지 않았다. 여자 하나 잘못 건드려서 그 대가로 자식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는 것을 보고, 본인도 몇 번이고 목숨의 위험을 겪는다.(그것도 자식에게) 이걸 보면 다윗의 간통에 야훼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또한 구약성경의 사무엘하 3장에서는 "사울 왕실과 다윗 왕실 사이의 싸움은 오래 계속되었다. 다윗은 갈수록 강해졌고 사울 왕실은 갈수록 약해졌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사울의 장군인 아브넬이 죽은 사울의 후궁인 리스바를 겁탈하자, 이를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문제 삼았는데 오히려 아브넬은 화를 내며 나라를 다윗에게 넘기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문장에서 드러나는 점은 다윗이 사울 왕가로부터 평화적으로 권력을 넘겨받은 것이 아니라, 치열한 세력 다툼을 벌인 끝에 승리해 왕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음악가로서의 그의 위상은 매우 뛰어나다. 최고의 시집으로 평가받는 시편의 상당 부분을 다윗 혼자서 집필했고[16], 시를 집필할 때 꼭 악기를 연주하며 그 멜로디에 걸맞은 시를 썼는데, 어찌나 연주를 잘 하는지 10대 때 왕실 정식 연주가로 채용되기도 했다.

4. 대중문화에서

다윗의 이미지와 에피소드는 이후 아서 왕이나 카롤루스 대제 등 중세 기사도 문학에 등장하는 위대한 왕의 이미지와 에피소드에 차용되기도 하는 등, 문화적으로도 만만치 않은 영향을 미쳤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아도니야와 요압을 처리하는 것을 명시한 부분은 마리오 푸조의 영화 대부에서 그대로 패러디된다. 성경을 좀 읽어봤다면 재미가 느껴지는 장면.

르네상스 시대에 미켈란젤로가 만든 유명한 누드 조각상, 다비드상의 주인공이다. 당연하겠지만 물론 르네상스 시대가 인간에 대한 탐구 때문에 누드로 표현한 것이지 실제의 다윗은 사람들 앞에서 누드로 다니진 않았다.[17]

셜록 홈즈 시리즈 중 꼽추 사내 에피소드에서는 다윗의 이름이 사건의 전말을 암시한다. 부부 싸움 중 다윗의 영어 이름 'David'가 언급되고 이후 남편이 의문사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아내가 그 이름을 꺼낸 이유는 남편이 다윗처럼 동료 군인의 여자(아내 본인)를 빼앗는 짓을 해 결혼 생활 내내 자신을 속였다는 배신감 때문이었다. 셜록 홈즈는 자신이 정말 뛰어난 탐정이라면 부부 싸움 중 튀어나온 이름 '데이비드'만으로 사건을 꿰뚫어봤어야 한다고 언급한다.[18]

1980년대 KBS에서 방영된 영화판에서는 금발의 다윗이 나온다. 저예산을 자랑하는 열악한 수준이지만 의외로 성경에 충실하고 자잘한 이야기들, 이를테면 다윗을 숨겨주었다고 성직자들을 도륙하는 사울의 모습이나 용병 생활을 하는 다윗도 묘사한다. 문제가 있다면 성우 이정구가 소년 다윗도 더빙했다는 것 정도.

1985년 리처드 기어가 나온 영화 'King David'는 압살롬과 다말 스토리까지 그렸는데 당대 기준으로 고고학적인 고증이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래에 언급된 코딱지만한 흙벽돌 왕궁이라든지…[19] 영화 자체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고증의 정확함 덕분에 지금도 유튜브에 king david richard gere라고 치면 이 영화의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파일:external/www.ivid.it/king_david_richard_gere_bruce_beresford_006_jpg_dzzz.jpg
미갈과 결혼하는 다윗(리차드 기어).
파일:external/media.baselineresearch.com/296750_full.jpg
다윗과 밧세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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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김청기 감독이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바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영화 벤허의 포스터와 판박이다.

다윗의 막장은 CCM 그룹 '다윗의 장막'을 패러디한 그룹명이다.

Fate 시리즈에는 서번트로 등장.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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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이충영 감독이 더 킹: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제목으로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었다. 그림체나 연출 스타일에서 드림웍스의 이집트 왕자나 디즈니 작품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덕분에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인 줄도 몰랐던 사람이 은근히 많다. 작화와 노래는 수준급이나 선교라는 주제에만 치우친 나머지 짙은 종교 색채나 원작의 임팩트 있는 시퀀스들을 충분히 다루지 못하고, 겉핥기식 급전개로 진행하는 등 밋밋한 각색 때문에 비종교인들에게 어필하진 못하여 흥행에 실패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목사 및 교인들의 무단 대량복제 유포 때문에 회사가 파산되었다. 현재는 유튜브에 저화질 풀버전이 남아 있다.

2025년 12월 19일 미국에서 개봉한 동명의 미국과 남아프리카공화국 합작 애니메이션 영화가 있다. 한국에서는 2026년 7월 10일 개봉했다. 박보검이 다윗 역으로 한국어 더빙을 맡았다.

5. 가족관계

<rowcolor=#683235> 지위 성명 가족 비고
원비
(元妃)
미갈 부친 사울
자녀 없음
사울의 차녀
다윗과 초혼[20]
원비
(元妃)
아히노암 부모 미상
자녀 1남
암논의 모후
비
(妃)
아비가일 부모 미상
자녀 1남
나발의 아내
다윗과 재혼
길르압의 모후
비
(妃)
마아가 부친 달매[21]
자녀 1남 1녀
압살롬과 다말의 모후
비
(妃)
학깃 부친 미상
자녀 1남
아도니야의 모후
비
(妃)
아비달 부친 미상
자녀 1남
스바댜의 모후
비
(妃)
에글라 부친 미상
자녀 1남
이드르암의 모후
대비
(大妃)
밧세바 조부 아히도벨
부친 엘리암
자녀 5남
우리야의 아내
다윗과 재혼
솔로몬의 모후

6. 기타

6.1. 예술적 조예

솔로몬과 함께 시편의 주요 저자로서 유명한데, 현대에는 다윗이 직접 지은 것 외에 다윗에게 바치는 노래 같은 것까지 전부 '다윗의 노래'로 뭉뚱그려 묶었다는 의견이 많다. 그가 살았던 삶이 참 굴곡이 심하고 고달팠던지라, 시편에는 그의 절절한 사연이 많이 묻어나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자신을 도와달라며 간구하는 모습들이 서양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 문화권에 큰 영향을 주었고, 시편의 유명한 여러 구절들은 서양은 물론 전 세계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사랑받으며 기억되고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등장하는 잭슨 이병은 적을 저격하기 전에 성경 구절을 읊으며 마음을 가다듬는데, 그 읊는 구절이 바로 다윗의 시편이다.

현대에는 다윗이 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게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조증 특유의 과장된 자신과 돌출 행동을 보이다가도 "눈물로 밥을 해 먹는다"[22]라는 등, 우울증 증세에 해당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다재다능한 행적 이면에 예민한 감정선으로 고생한 것은 확실하다.

집안에서도 그리 대우와 기대를 받지 못한 끄트머리 아들이었고, 사무엘이 찾아왔을 때처럼 들에서 양을 보면서 노래와 악기로 찬양하며 혼자 있던 일이 많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목동 일은 천시받고 고된 일이었는데 심지어 자신이 돌보는 양들을 잡아먹으려는 사자와 곰을 해치웠다는 이야기는 결국 다윗이 사자와 곰을 직접 상대할 만큼 험하게 컸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게다가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에게 기름 붓기 위해 방문했을 때도 따로 언급하기 전까지 다윗을 부를 생각조차 없었으며, 다윗이 부친의 명으로 군에 입대한 형들에게 식량을 주러 갔을 때 형은 동생인 다윗에게 폭언을 내뱉기까지 했다.

즉 사람으로부터 소외되고 하느님과 진실로 깊은 교제를 나눌 기회가 많았음이 그를 “주의 마음에 합한 자”로 빚어준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체면조차 벗어던지고 춤추는 다윗의 묘사는 모든 계명 중의 으뜸인 “모든 것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의 한 예로 자주 언급된다. 그와 별개로 이런 성장 배경이 그를 일종의 애정결핍적인, 갈구하는 면을 만들었고, 밧세바와의 간음도 근본적으로는 영적인 나태함으로 가드가 풀린 것이 원인이지만 이런 성격 또한 한몫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 있다.

다윗은 감수성이 상당히 풍부했다. 예술적으로도 조예가 있었는지, 수금을 매우 잘 다루고 다윗의 시편은 종교적 가치를 떠나서 문학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녔다 평가받는다. 군사적 자질은 말할 것도 없고 상당히 다재다능했던 인물. 거리낄 것이 없어진 왕들이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은 흔한 일이고(아들인 솔로몬은 엄청난 단위의 여자를 두었다), 그런 이유로 밧세바에 집착했다기엔 나단을 통해 책망받을 때에도 언급되듯이 다윗이 고를 수 있는 여자는 얼마든지 있었다. 굳이 자신의 충신의 아내를 범해야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결국 다윗의 죄는 변명할 여지가 없었고 설령 성격적 배경이 타당한 이유라고 해도 그것이 그의 소행을 정당화시켜 줄 수도 없었다. 그래도 다윗은 나단에게 책망받았을 때에서나마 사울처럼 변명하거나 회피하는 대신 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리에 들어선다. 물론 회개한다고 처벌받지 않는 건 아니라서 본인의 가정과 나라가 개박살이 나버렸다.

6.2. 외모

다윗의 외모에 대해서는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다"라는 묘사가 있다. 여기에서 '붉다', '아름답다'는 말이 보통 여자의 외모를 칭찬할 때 쓰는 말인 걸 생각하면, 현대 기준으로 미소년에 가까운 외모였을 듯싶다. 그리고 요새야 미소년이란 명칭이 자랑일지 몰라도 저 시대에는 우락부락한 마초가 남성미의 표본이었기에, 남자가 예쁘다는 것은 곧 놀림거리였다.[23] 이 묘사는 골리앗이 다윗을 보고 업신여길 때도 나오는데 현대식으로 바꾸면 "계집애처럼 생긴 녀석이 맞짱 뜨자고 하다니 가소로운 것" 정도가 된다. 드웨인 존슨이나 제이슨 모모아 같이 생긴 골리앗 앞에 보이그룹 아이돌 같이 생긴 소년이 맞짱을 뜨자고 나타난 것 같은 상황.

6.3. 이름 표기

서양권 남성 인명 중 다비드, 다비트, 데이비드 등이 이 사람으로부터 유래된 이름이다.

아랍어 및 이슬람권에서도 다우드(دَاوُد / Dāwud)라는 이름으로 쓰인다. 모하마드 다우드 칸, 술탄 다우드, 다우드 킴 등이 있다.

한자로는 달미득(達味得)이라고 음역되었다.

6.4. 실존 여부

현재 다윗의 실존은 역사적 사실로서 사학계의 주류 합의가 된 사안으로, 유물이 발견된 시점인 90년대 이전조차 최소 역사적 핵심을 지닌 실존인물로 보는 시각이 다수였다. 80년대부터 등장한 코펜하겐 학파는 히브리 사료 외에 다윗의 생애를 기록한 문헌이 없다며 실존을 부정했고, 이스라엘 왕정사 전체가 히브리인들이 꾸며낸 신화이며, 다윗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아서왕처럼 후대 저자들이 정통성을 위해 과장해서 기록한 전설상의 인물로 보는 신화설을 급진적으로 밀었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당대의 금석문 기록들이 등장하며 신화설은 학계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텔단에서 발굴된 해당 비문은 다윗 사후 겨우 100여 년 뒤의 기록인데다, 하자엘이 건립한 텔 단 비문에 유다 왕 아하시야의 죽음에 대해 언급하며 그를 "다윗 집에 속한 자"라고 부르는 등 문헌과도 교차검증되는 사건을 다루고 있었기에 초기 유다왕국 및 왕국의 시조가 되는 다윗을 입증하는 첫 유물이 되었다. 이후 발굴된 메샤 석비 역시 기원전 9세기에 제작된 비문으로, 다윗 왕조를 언급하는 것으로 분석되며, 이집트학자 케네스 키친에 의하면, 이집트의 카르낙 신전 부조의 글자 역시 논쟁적이지만 다윗의 이름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다.#

2005년 다윗왕의 궁궐이라는 곳이 발견되었다.[24] 예루살렘 성의 동쪽에서 발굴이 된, 기원전 10세기 중반의 건축물로 추정되는 궁궐은 일명 고고학자들 사이에서 Large Stone Structure 라고 불리는 논쟁적인 건축물이다. 이 구조물을 발굴한 고고학자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에 의하면 현재까지 발굴된 이 건물의 벽의 한 변은 약 2.5~3m 두께로 동서로 30m에 이른다. 마자르에 의하면 그 건물과 연결이 되었다고 추정되는 높이 18m 정도의 Stepped Stone Structure와 같은 거대한 석조 건축물도 있지만 일부만 발굴되어 정확한 전체 규모는 알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후 회의주의적 패러다임은 조정되어 '실존했되 그 영향력이 과장되었다'는 방향으로 자리잡게 된다. 새 패러다임에 따르면 다윗은 왕이었더라도 부족장 수준이었고, 각각 별개의 부족이던 이스라엘 12지파가 이스라엘 오므리 왕조에 이르러서야 하나로 통일되어 이스라엘로 묶이게 되었으며 그 중 유다의 족장 여호사밧 시대에 결혼동맹을 통해 유다가 종속국이 되며 '이스라엘'이라는 연방체제에 편입되었다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의 이스라엘 정복 이후 정치적인 혼란 속에서 유다 왕국의 요시야 왕이 아시리아가 물러간 옛 이스라엘 땅을 잠시 차지하면서 '다윗이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 왕이었고 그 후손이 다시 이스라엘을 통일한다'고 선전하며 '통일 왕국'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는 것이다.참고 이러한 가설은 북부 이스라엘이 먼저 발굴의 수혜를 입은 덕도 있다. 사마리아에서는 성서의 이스라엘 왕국 묘사처럼 레바논 삼나무와 상아로 장식된 화려한 궁궐 유적이 나왔으며, 주변 국가의 기록에서도 오므리, 아합, 예후 등 이스라엘 북왕국 국왕들은 실존이 확인되는 등 일치되는 기록이 나오는 데 반해 유다지역은 후술할 여러 난점으로 인해 발굴성과가 뒤쳐졌기 때문.

그러나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은 이와도 다른 결론을 내게 했는데, 성서고고학자 요세프 가르핑켈과 학자 겸 조사관인 가노르가 키르벳 케이야파(Khirbet Qeiyafa)를 발굴한 결과, [25] 발굴이 된 유적과 그 곳에서 발견이 된 유물이 해석되며 기원전 10세기 경 유다 지역에 대규모 건축을 가능케하는 중앙권력 및 문자가 존재했고, 북부보다 먼저 중앙집권화된 정치체제를 갖추고 있었다는 주장이 가능해진다. 고고학자 아미하이 마자르(Amihai Mazar)의 의하면 다윗의 예루살렘은 그 시기 예외적인 크기의 망대를 지닌 약 4㏊(4만㎡)의 도시로 정의될 수 있으며, 그러한 도시와 망대는 강력한 통치자의 세력 기반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이로 인해 후대의 역사를 끌어다 과거에 소급적용 시켰다는 가설[26]의 대전제, 즉 유다 지역에 조직화된 정치체가 없었다는 가정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고[27] 나아만 등 기존 회의주의적인 학자들도 입장을 수정하거나 일부는 기존의 고전적 입장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고학자 애런 버크(Aaron A. Burke)는 유물 발굴 이후에도 다윗왕조의 실존을 약화시키려는 주장에 대해 다윗을 억지로 축소시키려 한다고 비판하며 고고학은 다윗과 그의 왕조 모두를 증명한다고 논박했다.[* "...Finkelstein’s analysis, both textual and archaeological, cannot be reconciled with a founding Biblical figure, whose existence is already corroborated by extra-Biblical inscriptional data, that is, the Tel Dan inscription.b This inscription evidences not only David’s existence but also the dynasty he established." (핀켈스타인의 문헌적, 고고학적 분석 모두 성경 속의 건국자(다윗)의 존재와 양립 불가합니다. 다윗의 존재는 이미 성경 외 문헌, 즉 텔단 비문에 의해 입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비문은 다윗의 존재뿐만 아니라 그가 세운 왕조의 존재까지 증명합니다.)#]

현재 사학계는 부족연맹국가와 어느정도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이분법으로 대비시키기 보다는, 고대국가들 대다수가 두 특성을 모두 띄는, 어느 정도 복합적인 형태인 것으로 보고 있다. 유목민은 체제가 후진적이고 거대 시스템을 운영하지 못할 것이란 오래된 선입견이 여러 발굴성과를 통해 논파되며 최근 연구일 수록 유연한 국가형태를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르면 고대 이스라엘은 근간이 부족연맹체이면서도 카리스마적 통치자를 중심으로 중앙집중적 정치체를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예루살렘(및 이스라엘 지역)이 이 잡듯 다 뒤져서 사실상 발굴할 거리는 끝났다는 루머가 있지만 이는 틀린 인식으로, 예루살렘 고고학 발굴은 현재진행형이다. 여러 전란으로 수천년간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어 고대 유적층이 겹겹이 쌓인 도시라 특정구역 발굴만으로 조사가 완료되지 않는 구조고, 현재 도심과 그 주변에 수많은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성지 순례객을 위한 인프라가 덮여 있기에 현대도시를 허물고 바닥을 다 뒤집을 수 없어 탐사에 난점이 있기에 진척이 더딘 것으로 봐야한다.[28] 또한 이슬람과 유대교 양쪽의 성지인 예루살렘 성전산(Temple Mount)은 그 종교적 민감성 탓에 손도 못대고 있는 실정이고, 다윗성이 위치한 동예루살렘 역시 분쟁지역인 동시에 민간 거주지라 발굴이 매우 제한된다. 만약 이곳을 본격적으로 발굴하려 한다면 국제적인 종교 전쟁이나 외교적 파국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성전산 내부 플랫폼은 고고학적 발굴 자체가 아예 전면 금지되어 있다. 고고학자들은 성전산 외곽 벽이나 주변 터널을 우회하여 파 들어가는 간접적 방식으로 조사를 한다고. [29]

6.5. 일화들

  • 잠입이나 은신에 재능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일화가 몇 개 있는데, 사울에게 쫓기고 있을 때 그가 잠든 진영으로 잠입해서 망토를 조금 자르고 창과 물병을 가져가 자신은 왕위를 노릴 의도가 없음을 보여준 일화[30]와, 후술할 탈무드에서 나오는 일화 등이 있다.
  • 탈무드에서는 다윗이 거미, 모기, 미친 사람을 쓸모 없다고 여겼지만 전쟁에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일을 겪으면서 모든 만물에는 신께서 지으신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일화가 있다.
    • 어느 전쟁에서 적군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다윗은 급한 김에 근처의 작은 동굴 속에 숨었는데, 하필 거미가 나타나 입구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다. 다윗은 거미를 없애고 싶었지만 적군에게 들킬까 봐 나갈 수도 없어 죽을 맛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적군들이 동굴 앞까지 다다랐다. 그런데, 동굴 입구에 쳐진 거미줄을 본 적군들이 거미 싫어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다윗이 여기 있다면 분명히 거미줄이 망가져 있었을 것이라며 가 버렸고, 다윗은 처음으로 거미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 또 다른 전쟁에서는 적장의 검을 몰래 훔쳐 적장을 죽일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퍼포먼스로 적장을 감동시켜 항복하게 만들어 싸우지 않고 이기자는 계획을 짰는데, 적장의 막사에 잠입해 보니 적장이 다리 밑에 검을 깔고 자고 있었다. 다리를 치울 수가 없어 다윗이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모기 한 마리가 적장의 다리를 물었고, 순간 적장이 가려워 몸을 뒤척이면서 검에서 다리를 치우게 되고, 다윗은 검을 손에 넣게 되었다.
    • 또 다른 전쟁에서는 아예 홀로 적군에게 잡혀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때 다윗은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며 미친 사람 행세를 하기 시작했고, 적군들은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고 하고 가 버린다.[31]
  • 구약성서라는 배경을 공유하는 코란에서도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다우드라는 이름[32]으로 불리며,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인류 최초로 철갑을 벼려낸 대장장이로 나온다. 성경에 기록된 것과 마찬가지로 골리앗을 이기고 왕이 되었다는 등 막강한 피지컬 및 실전 능력에 카리스마가 뛰어난 인물[33]로 묘사된다.
  • 권모술수의 천재이다. 이미 유부녀인 밧세바를 얻기 위해서 그 남편이자 자신의 휘하 장수인 히타이트 출신 우리야를 숙청하는 방법이 참으로 경파하다. 다윗은 전쟁에서 우리야가 전사할 때까지 계속 우리야를 출진시켜 기어이 전사시키고 밧세바를 아내로 얻었다. 또한 다윗은 사울이 자고 있는, 즉 그를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도 '파문 당했을지언정 그래도 왕이기 때문에' 사울을 살려두는 대신 옷자락만 조금 자르고 도망갔다. 이를 본인의 인망을 신경쓴 것으로 보기도 한다.
  • 다윗이란 이름이 본명이 아닐 거란 추측도 있다. 지휘관을 의미하는 아카드어 "다위둠"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사울 휘하의 장군으로서, 또는 사울에 대항하는 반란군 대장으로서 받은 별명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사랑과 관련된 어근 ד-ו-ד(dwd)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인 데다, 기원전 22세기의 아카드 왕 두두(𒁺𒁺, du-du), 기원전 14세기 아마르나 서신에 기록된 이집트 관료 두우두(𒁺𒌑𒁺, du-u₂-du)등 실재했던 인명과 같은 계통의 이름으로 보는 입장이 많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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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새(가톨릭에서의 표기는 이사이)의 아들 다윗'이라는 의미.[2] 자매들도 몇 명 있었다.[3] 누나인지 여동생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역대상 계보 참고.[4] 사울의 차녀로 절친 요나단의 여동생이다.[5] 새한글성경에는 '내 마음과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고 쓰여있다. 성경 전체에서 이렇게 불린 사람은 오직 다윗뿐이다.[6] 다윗이 아람을 제압해 아시리아의 성장에 기여했다는 오해도 있으나 아람과 아시리아의 팽창은 모두 1~2세기 후에야 일어나므로 이는 오류이다.[7] 히르카노스가 턴 무덤이 다윗 왕의 무덤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무덤 도굴로 자금을 마련한 것은 틀림 없어 보인다.[8] Antiquities 13:240[9] 사실 엄연히 따지면 이 당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유다의 왕이다. 게다가 정통성으로 따지면 오히려 전 왕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유리하니 다윗의 왕 등극은 내란죄에 해당된다. 하지만 결국 이스보셋의 2인자이자 사울의 삼촌인 아브넬이 다윗에게 귀순하며 다윗에게 대권이 주어진다.[10] 그것도 당대 이스라엘 최고의 지략가이자 책사 아히도벨. 삼국지의 제갈량을 아히도벨에, 다윗을 유비에 놓아보면 이해가 쉽다. 제갈량이 유비에게 반기를 든 그림과 같다.[11] 여기에 책사 아히도벨이 합류해서 진짜 나라가 멸망 직전까지 갈 뻔했다.[12] 열왕기상 초반 참조[13]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는데 썼던 재원과 시간을 보면, 다윗 시기에 성전을 건축하는 건 나라기둥을 뽑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14] 사실 유목제국의 특성 중 하나가 각 분파와 파벌의 힘이 상당히 강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몽골 제국도 황제권이 상당히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유목민족인 여진족이나 투르크인이 세운 청나라나 오스만 제국은 어느 정도 영토와 군사력이 확보된 이후 유목민을 농민으로 전환하고 행정력을 보강하여 정주 제국으로 전환한 사례이다.[15] 사실 후대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 건국 초기 수많은 개업 군주들이 많이 하는 게 바로 대규모의 숙청작업이지만 정작 다윗은 정치적 숙청을 아들 솔로몬에게 많이 떠넘긴 케이스다. 구약시대 인물 중에는 자기 형제 69명을 싹 다 죽여버린 사람도 있고 먼 훗날 지구 반대편에는 신하 한명 잡겠다고 그 사람의 일가친척과 친구, 제자는 물론 동네 사람들까지 죄다 죽여버린 영락제 같은 사례도 등장하는데 반해 다윗은 동족끼리는 피를 안 묻히려는 감이 있다.[16] 150편의 시편 중 4분의 3 정도를 다윗이 집필했다. 나머지는 아들인 솔로몬, 이집트를 탈출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모세, 다윗 왕 시대에 활동했던 레위 지파의 찬양대 악장인 아삽, 그리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여러 사람 등이 집필했다.[17] 유일하게 타인 앞에서 누드가 됐던 때가 야훼의 언약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오자 기뻐서 춤추다가 옷이 벗겨졌던 일이다.[18] 마치 누군가에게 "이런 유다같은 녀석"이라고 말하면, 그가 뒤통수를 치거나 배반을 저질렀음을 짐작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19] 신학적 고증은 배제했는지 다윗이 죽는 결말부에서는 다윗이 솔로몬에게 "신의 뜻이 아니라 네 뜻을 따라라"라고 유언하는 성경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장면이 있다. 산지자 나단도 다윗과 시종일관 다투는 대립역이다.[20] 아버지 사울에 의해 강제로 이혼당하고 다른 사람과 재혼했다. 이후 다윗의 부탁을 받은 당숙 아브넬이 그녀를 데려가면서 다윗과 재결합했다.[21] 그술 왕[22] 시편 80:5. 시편에는 다윗의 울적한 감정선이 잘 드러난다.[23] 굳이 저 시대까지 갈 필요도 없이, 현대에도 5~60대 이상의 남자 앞에서 예쁘다고 말하는 것은 모욕으로 오해당할 소지가 크다.[24] 참조.[25] 성서의 사아라임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분명치 않다. 2017년에 두 번째 관문이 발견되었다.[26] 이른바 저연대설[27] 저명한 고고학자 윌리엄 데버(William G. Dever)는 저연대설은 폐기된 가설이라고 말하며 다수의 주류학자들은 시대를 바꿔치기했다는 급진적인 가설보다 고전적인 연대기를 더 선호한다는 학계 상황을 언급했다.[28] 그래서 도로 정비 공사, 파이프 교체, 건물 재건축 과정에서 유적이 우연히 드러나는 '구제 발굴' 형태로 조사가 힘들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29] 성경에 따르면 예루살렘 성전이 성전산 위에 있었다. 정작 가장 중요한 발굴지가 성역이 되어있는 상황.[30] 이때 사울 옆에서 같이 자던 사울의 사촌 아브넬에게 넌 장수 자격도 없다고 디스한 건 덤.[31] 비슷한 일이 성경에도 있다.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블레셋으로 도망갔을 때 블레셋의 아기스 왕이 네가 적인데 왜 여길 기어들어오느냐고, 널 죽여버리겠다고 하자 미친 사람인 척하면서 헬렐레 하다가 결국에는 추방되는 것으로 마무리된 일이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블레셋과 이스라엘이 전투를 벌이기 전 다윗은 아기스 왕을 또다시 만났는데, 그때에는 양국이 전쟁 중이어서 다윗은 하마터면 블레셋 편에서 동족상잔을 벌일 수도 있는 상황에 휘말릴 뻔했지만 휘하의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좋아하지 않는 데다 잘못하다간 저놈들이 우리를 치겠다고 우려하자, 아기스가 다윗에게 새벽에 몰래 빠져나가라고 지시했고, 결국 다윗과 휘하 부대들은 시글락으로 향하여 잘못하다간 블레셋의 양면전쟁, 아니면 이스라엘의 동족상잔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을 피했다. 비록 다윗과 조금(?) 친분이 있는 아기스였지만, 그의 입장에서도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다윗을 보고 빠져나가라고 하게 해준 듯. 얼마 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사울과 요나단, 그리고 휘하 부하와 병사 여럿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전사하게 된다.[32] 코란은 성경 인물 상당수를 아랍식 이름으로 부른다.[33] 대장장이는 직업 특성상 힘이 세지만 금속 중독에 노출되기 쉬워서 전장을 누비기는 의외로 힘들다. 단신에 추남이 되는 것은 보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