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3 04:55:38

요나

1. 구약 시대의 예언자, 또는 그의 이야기를 기록한 문서
1.1. 내용
1.1.1. 1장1.1.2. 2장1.1.3. 3장1.1.4. 4장
1.2. 해석 여부1.3. 신약 성경에서의 취급1.4. 기타
2. 이름
2.1. 실존인물2.2. 가상인물

1. 구약 시대의 예언자, 또는 그의 이야기를 기록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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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파일:external/www.koinoniaorthodoxias.org/ionas_kitos.jpg
언어별 명칭 히브리어 יונה (Yona)
그리스어 Ιωνάς (‎Ionás)
라틴어 Ionas
영어 Jonah
아랍어 يونس (Yūnus)
기본 정보 저자 요나
기록 연대 기원전 760년경
분량 4장
주요 인물 요나, 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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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댜 미가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었다.
요나 3장 10절(공동번역성서)
구약성경 중의 한 권으로 아미때(아밋대/아미타이)의 아들, 예언자 요나의 이야기를 다룬 이다. 다만 이 예언자라는 사람이 하느님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끝까지 객기를 부리는 것이 이 책의 키포인트. 가로드 란?

성경답지 않게 굉장히 웃기다. 그래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경학교 교재의 단골 레퍼토리로 사용되기도 한다. 전체 4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길이도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는 이유이다. 사실 구약의 소예언서들이 분량은 적지만 시대상이 암울하고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경고의 내용으로 가득하다보니 은근히 읽기가 부담되는데, 요나는 주제도 이해하기 쉽고 분위기도 덜 무겁다보니 읽기에 편하다.

1.1. 내용

1.1.1. 1장

파일:external/www.mikeszone.com/jonah_ioverboard.jpg

북왕국의 예로보암 2세때 활동하던[1] 예언자 요나는, 어느날 하느님으로부터 니네베로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2]을 받게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으니, 니네베는 조국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아시리아의 수도라는 점. 개역한글에서는 니네베는 니느웨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애국심이 강했던 요나는 하느님의 명령에 불만을 품고 니네베와는 정반대 방향인 타르시스(오늘날의 스페인 지역)로 를 타고 도망치려 한다.[3] 그리고는 그 배 안의 가장 구석진 곳에 숨고는 '여기 숨으면 하느님께서도 날 못 찾으시겠지' 하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하느님 손바닥

그러자 하느님폭풍을 일으켜 배가 가라앉을 위기를 만들고, 이에 배에 탄 사람들은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며 선실에서 자고 있던 요나에게도 어서 당신 신에게 기도하라고 갈군다. '신 하나쯤은 걸리겠지'라는 마인드 그 후 누구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 따져보자면서 제비뽑기를 하는데 결국 요나가 걸리고 만다(…) 자기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까지 물귀신으로 만들 수 없다는 생각에선지 죽었으면 죽었지, 적국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구원의 기회를 줄 수 없다는 생각에선지 결국 요나는 "제가 하느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 하느님이 재앙을 내린 것입니다. 저를 바다에 던지면 폭풍이 멈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훈훈하게도(...) 어떻게든 요나를 던지지 않고 폭풍에서 벗어나 보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결국 "무고한 사람을 죽인 피가 우리들에게 오지 말게 해 주십시오!!"라고 빌면서 요나를 바다로 던진다. 이후 거짓말같이 폭풍우가 멎자 뱃사람들은 모두 공포에 질려 당장 선상제사를 드리고 하느님을 믿게 된다.

1.1.2. 2장

파일:external/buildingontheword.org/Jonah-and-whale.jpg

한편 요나는 하느님이 미리 준비한 큰 물고기[4]가 요나를 집어삼키게 된다. 요나는 3일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으면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
3이렇게 아뢰었다.

"제가 곤궁 속에서 주님을 불렀더니
주님께서 저에게 응답해 주셨습니다.
저승의 배 속에서 제가 부르짖었더니
당신께서 저의 소리를 들어주셨습니다.
4당신께서 바다 속 깊은 곳에 저를 던지시니
큰 물이 저를 에워싸고
당신의 그 모든 파도와 물결이
제 위를 지나갔습니다.
5그래서 제가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당신의 눈앞에서 쫓겨난 이 몸
이제 제가 어찌 당신의 거룩한 성전을
다시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6물이 저의 목까지 차오르고
심연이 저를 에워쌌으며
바닷말이 제 머리를 휘감았습니다.
7저는 산의 뿌리까지 내려가고
땅은 빗장을 내려 저를 영원히 가두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구렁에서 제 생명을 건져올리셨습니다.
8제 얼이 아득해질 때
저는 주님을 기억하였습니다.
저의 기도가 당신께,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 다다랐습니다.
9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신의를 저버립니다.
10그러나 저는 감사 기도와 함께
당신께 희생 제물을 바치고
제가 서원한 것을 지키렵니다.
구원은 주님의 것입니다."
11주님께서는 그 물고기에게 분부하시어 요나를 육지에 뱉어내게 하셨다.
요나서 2장 3절~11절

이후 물고기는 요나를 뱉어낸다.[5] 여담으로 이 물고기를 고래로 추측하기도 하는데 터키 등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와 같은 이유로 고래를 먹지 않는다.[6]

1.1.3. 3장

파일:external/bloggerpriest.files.wordpress.com/dore_jonah1.jpg

결국 요나는 하느님의 지시대로 니네베로 간다. 그 고생을 하고도 니네베가 망하길 바라는 마음을 접지 못한 요나는 성을 하루만에 도는 태업을 저지르며[7] "죄를 뉘우치지 않으면 40일 뒤에 니네베가 잿더미 됨"이라고 선언하는데[8], 놀랍게도 모든 니네베 사람이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하느님에게 눈물로 용서를 간청했고 왕은 한 술 더 떠 온 국민은 물론 가축에게까지 굵은 베옷을 입히고 금식기도를 하게 했다. 그래서 니네베는 모세의 말을 끝까지 뻐기던 이집트와는 달리 재앙을 피하게 된다.

실현방해적 예언(self-defeating prophecy, 즉 자기 실현적 예언의 반대)의 고전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1.4. 4장

그때까지도 요나가 보고 싶었던 건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는 게 아니라, 니네베 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스펙터클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트롤링이 무색하게 도시 전체가 회개하면서 별 일 없었고, 실망한 요나는 "이럴 줄 알고 타르시스로 튀려 한 건데 하느님이 관대해서 결국 재앙을 거두네. 에잉 내가 이거 보려고 살았나 자괴감이 드니 그냥 죽여주셈"이라면서 니네베가 불에 타나 어쩌나를 지켜보겠다는 구실로 성 밖에 움막을 짓고 1인 시위에 들어간다.

이때 하느님이 요나를 위해서 움막 옆에 큰 박넝쿨을 자라게 해 움막을 덮어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었다…가 밤새 다시 벌레를 보내 박넝쿨을 모두 갉아먹게 해 죽여 버렸고, 뜨거운 열풍까지 요나 쪽으로 불게 했다. 더워 미칠 지경&약이 오른 요나는 "아 죽는 게 낫지, 왜 날 이 무더위에 개고생하게 만드는 거에요?" 라고 짜증을 낸다. 뭔 놈의 예언자가 끝까지 말을 안 듣는다 그러자 하느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며 이야기가 끝난다.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워하느냐?[9] 이 니네베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12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10] 말 안 듣다가 영혼까지 털린 이집트만 안습
요나 4장 10~11절공동번역성서
폭발 엔딩 대신 열린 결말로 마무리한 이유에 대해선 기록자인 요나가 성경을 읽는 후손들에게도 이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1.2. 해석 여부

요나는 잔뜩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야훼께 기도했다. "야훼님, 제가 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르싯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애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으시어, 악을 보고 벌하려 하시다가도 금방 뉘우치시는 분인 줄 어찌 몰랐겠습니까? 그러니 야훼님, 당장 이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요나 4장 1~3절(공동번역성서)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주인공인 요나가 순수 유대인 혈통의 예언자면서도 하느님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말을 안 들은 것 뿐이지, 하느님의 능력은 믿었다는 점. 그래서 더더욱 니네베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나의 심정은 '나는 니네베가 불바다가 되는 것을 보고 싶지만, 하느님은 그럴 분이 아니시고 그들을 회개시키실 것을 믿기 때문에, 차라리 도망가 버리겠다!' 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일이 벌어지자 '이제 하느님의 자비로움을 알았으니 차라리 날 죽여주십시오' 라고 한 걸 보면 능력을 오히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태도를 보인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와 대조적으로 요나와 함께 타르시스행 배를 탔던 외국인들이나 니네베 사람들이 더 하느님을 숭배하는 모습들과 비교해 보면 그야말로 아이러니. 특히 그 외국인들이 요나에게 "너는 왜 네가 믿는 하느님께 기도하지 않느냐?"라고 따진 것의 경우, 비단 유대교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를 믿는 모든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한 번 이상 꼭 겪는 패러독스 중의 하나다.

열린 결말 역시 이 책의 특징. 맨 마지막의 저 한 마디만 던져 놓고 아무런 마무리도 없이 그냥 모든 이야기가 끝나 버리는 결말인데, 이런 결말은 성경 전체에서 서사 구조를 지닌 책 중에서는 이 책이 유일하다.[11] 즉, 책의 주인공에게 뭔가 명예 회복을 시켜 주거나 하는 게 전혀 없다는 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예언자 요나가 북이스라엘 예로보암 2세 때 활동한 실존 인물로 보인다는 걸 감안해 보면 상당히 특이한 경우.[12]

사실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은 역사적,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문학적인 스토리에 가깝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학자들은 외국인이나 다른 민족들에게 배타적으로 향하던 후기 유대교의 흐름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교훈설화'의 형태로 요나를 썼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애초에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가 갈라져 나온 이유 중의 하나로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성을 향한 반발도 있었다.

아시리아가 망하기 직전에 유대교를 받아들였다거나 야훼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순전히 지어낸 이야기로 치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로 요나의 활동시기는 아시리아가 망하는 시기보다 한참 앞 시기이며, 요나 활동기 무렵에 아시리아가 일시적으로 각종 전염병과 개기일식[13] 등으로 인해 세력이 약화된 것으로 보이는 자료들이 나오기도 하는 등 완전히 없는 이야기로 치부할 수만도 없는 듯. 그리고 여기에 더해 아시리아는 종교의 권위와 권력이 상당히 강한 편이었다.[14]

또한 요나서의 기록 내용을 보았을 때, 아시리아가 유대교를 정식으로 받아들였다기보다는 그냥 재앙이 닥치니 일단 피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회개한 것일 수도 있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인정된 자가 아닌 경우, 살기 위해서 하느님의 능력과 존재를 인정하고 스스로의 죄악을 반성하는 정도로 회개하기만 해도 일시적으로 재앙이 지나가는 형태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니네베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서 몸을 낮춘 것일 수도 있다. 성경의 다른 곳에는 이와 비슷한 아합 왕과 같은 사례도 있다.[15]

역사적 맥락이 아닌 신학적으로 볼 때에, 요나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유대 민족의 신이었던 하느님다른 민족의 신이 될 수 있다는 암시를 던지기 때문이다.[16] 다른 신을 믿던 뱃사람들이[17] 폭풍우가 그치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여 개종하는 것, 아시리아인들이 회개하여 용서를 받은 장면은 다른 민족 역시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1.3. 신약 성경에서의 취급

예수가 요나를 직접 언급한다. 대략 자신을 적대하는 세력인 서기관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기적 좀 보여주세요!!!" 하고 말하자 "요나의 기적 밖에는 보여 줄 기적이 없다고 적절하게 무시한 것.[18]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어 무덤에 묻혔다가 3일 만에 부활하여 정말로 요나의 기적을 보여 준다. 그래서 요나서는 예수부활을 미리 맛보기로 보여 주는 책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주류이다.

또 요한의 아들인 베드로에게 예수가 '바르요나 시몬아'라는 언급을 한 구절이 있는데 이 '바르요나'라는 것은 '요나의 아들'이란 의미이다.(앞서 언급했듯이 베드로의 부친은 '요한'이다.) 혹자는 이것을 두고 요나가 이후 회개했고 그 마음을 베드로가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알아챈 예수가 '바르요나 시몬아'라고 부른 것이라고 한다.

1.4. 기타

  • 이슬람 국가(IS)가 2014년요나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곳을 폭파했다. 참고로, 요나는 쿠란에도 '유누스'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지들 종교인 이슬람에서도 알라의 예언자로 인정하고 있다. 이슬람권 이름 중에 "Yunus(Yunis)" 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이 사람이 기원이다. 하긴, 메카의 카바 신전을 파괴하겠다고 하는 놈들인데 그깟 선지자 따위가 대수랴. 니네베 대신에 본인이 폭발 엔딩을 당했다. 그리고 이들은 2015년 니네베 성도 폭발시켜 버리면서 요나의 길동무로 보내주었다. 네 소원대로 해 주마?
  • 우리나라에는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해수욕장에 요나 성당이 있다. 천주교 대전교구 관할 성당이다.
  • 인간의 모태귀소본능에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이 '요나 컴플렉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 구약성경의 나훔은, 요나와는 반대로, 앗시리아가 망했어요가 된 이야기이다.
  • 고래에게 '잡아먹혔다가'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현대판 요나'라는 별명이 붙는다. 아예 묘비명으로 남겨진 사례도 있을 정도. #

2. 이름

남녀 공용 이름에 가깝지만 원 유래가 된 인물은 남자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남자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데, 어감이 여성스러워서 그런지 동양권 서브컬처에서는 여자 이름이나 별명에 많이 쓰인다.

2.1. 실존인물

2.2. 가상인물



[1] 구약성서 열왕기에 예로보암 2세에 당대에 있었던 중흥을 예언했다는 예언자로 요나의 이름이 나온다.[2] 죄가 많아서 죽기 싫으면 빨리 회개해야 한다는 내용.[3] 혹은 니네베 사람들이 자신에게 해코지를 할까봐 두려워서였다는 해석도 있다. 허나 이후의 하느님에게 항의한 내용들을 보면 애국심으로 인한 니네베에 대한 혐오감 쪽이 더 해석이 자연스러운 편이다. 아니면 양쪽 다였을지도 모른다.[4] 개신교 계열인 국민일보기사에서는 이 물고기가 백상아리라고 가정한 바 있다. 백상아리의 서식지가 요나의 지리적 배경과 비교적 일치하고, 백상아리가 사람을 삼킬 정도로 크며, 거북이와 같이 소화가 잘 안 되는 먹이를 삼켰을 때는 위에 그대로 저장하고 있다가 뱉어내는 습성이 있다는 이유이다. 소화 안 되는 요나 반면 가톨릭에서는 바닷속 동물이 요나를 삼킬 수 있을 만큼 커야 했기에 '큰 물고기'라는 표현을 썼을 뿐 어떤 특정한 동물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라고 본다.[5] 요나서에는 이 물고기가 하느님의 명령을 받아 요나를 뱉어냈다고 한다.[6] 터키의 경우 지중해와 흑해를 양쪽으로 끼고 있어서 해산물을 식재료로 하는 요리가 많다. 터키 요리 참조.[7] 성을 하루 동안 돌았다는 구절 바로 앞에 니네베는 사흘을 걸어야 완주할 정도로 큰 성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일 대충 했다는 확실한 증거다. 신 앞에서 업무태만을 시전하는 요나의 패기[8] 이건 번역에 따라 다른데, 공동번역에는 돌면서 외쳤다고 하며, 가톨릭 번역에선 돌고 나서 외쳤다고 한다.[9] 사실 요나는 더워서 화를 낸 것이지만, 박넝쿨이 불쌍해서 화를 낸다는 식으로 변명하였다.[10] 한마디로 '이건 네가 농사지어서 난 박넝쿨도 아닌데 네가 그걸 그렇게 아꼈지 않느냐? 하물며 여기에는 내 백성들이 어린애만 12만 명이 넘게 살고 있는데 내가 얘들을 아끼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라는 말씀.[11] 역사 기록에 중점을 둔 책들이나 각종 을 다루고 있는 책 등을 제외한 것.[12] 근데 성경에 따르면 예로보암 2세는 북이스라엘 역대 왕 중 가장 사악한 왕으로 예언자들이 많이 배출된 시기다. 어쩌면 요나는 자기 나라와 민족은 타락의 정점을 찍고 있는데 적대 세력인 앗수르가 회개한 게 아니꼬웠을지도 모른다.[13] 기원전 763년 6월 15일 경에 있었다고 한다. 당대인들은 일식이 자아내는 칠흑 같은 어둠을 상서롭지 못한 자연적 경고로 여겨 매우 두려워했다.[14] 예를 들어 왕이 신관 앞에 머리를 조아리면 신관은 신을 대신하여 왕에게 (형식적으로) 모욕을 가하며 왕은 신의 대리인일 뿐임을 인지시킨 후 왕관과 왕홀 같은 왕의 상징물을 돌려 주는 의식을 정기적으로 거행할 정도였다. 물론 고대 절대 군주의 입장에서 보면 파격적인 이벤트(?)지만, 이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면 왕권신수설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신의 대리인인 왕을 함부로 능멸하거나 왕권에 도전하는 사람은 천벌을 받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경고가 되는 셈이었다.[15] 아합의 경우 백성의 재산을 갈취하기 위해 누명을 씌우고 사법 살인을 했지만 예언자의 꾸지람과 왕가가 망하리라는 예언에 "정말 잘못했는데 이건 사실 내 뜻이 아니고 내 마누라가 했어요"하는 식으로 싹싹 빌고 데꿀멍해서 하느님이 내린 왕가가 비참하게 몰락하리라는 징벌을 아들 대까지 유예받았다고 한다.[16] 다만, 이는 요나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하느님이 스스로 가난한 자들의 신을 칭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부터 민족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으로 보는 것. 애초에 히브리인이라는 단어가 어원적으로 떠돌이를 뜻하지 딱히 특정 민족을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었다.[17] '각자 자신들의 신을 향해 기도했다'라는 문구를 통해 뱃사람들은 각자 믿고 있던 신들이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뱃사람이 요나를 갈군 것도 어느 신이라도 좋으니 좀 살려달라 청해라는 뜻이었고. 어찌보면 그런 태도였기 때문에 간단히 개종한 것일수도 있다.[18] 광야에서 악마가 돌을 빵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켜보라고 요구할때 그리스도는 이 요구를 거절했다. 즉 기적을 일으킬지 말지에 대해서는 기준이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