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9 13:16:39

느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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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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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ehemiah1.jpg
언어별 명칭 히브리어 נחמיה (Nəḥemyāh)
그리스어 Νεεμίας (Neemías)
라틴어 Nehemias
영어 Nehemiah
기본 정보 저자 느헤미야
기록 연대 B.C 400년경
분량 13장
주요 인물 느헤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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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라 에스더(개)
토빗기(천)
역대기(유)
1. 개요2. 내용

1. 개요

엘룰월 이십오일, 오십이일 간에 걸친 성 수축 공사가 끝났다. 이 소식은 우리의 모든 원수들의 귀에 들어갔고, 우리 주위에 살던 뭇 민족들은 이 일을 눈으로 보고 매우 놀랐다. 그들은 그제야 이 일을 이룩하신 이가 다름 아닌 우리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느헤미야 6장 15~16절(공동번역성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1]의 술 관원[2]이었던 유대인이다. 하갈랴(하가랴/하칼야)의 아들로 기록되어있다. 느헤미야(נחמיה)라는 이름은 "주님께 위로받는다."는 의미이다. 나훔이라는 이름과도 관련이 있다. 느헤미야 1장에 '나'라는 1인칭 주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느헤미야 본인이 기록했다고 전해진다.

2. 내용

페르시아 왕중왕 앞에서 술 담당 관리로 있던 중 형제에게 고국 예루살렘의 처참한 광경을 전해들은 느헤미야는 근심하다가 왕에게 은혜를 입게 해달라고 기도를 한 후에 왕에게 갔으나 왕 앞에서 암울한 표정을 지어보인다.[3] 이에 왕이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느헤미야는 자신의 조국의 수도가 처한 곤경을 얘기하며 자신이 가서 성을 재건하게 해달라고 한다. 다행히 일이 잘 풀려 왕은 그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하고 장교들과 기병부대를 붙여주기까지 한다.

이어서 느헤미야의 정적들이 등장하고 누가누가 성벽을 복구했는지 구간마다 나온다.[4] 성벽 복구 과정에서, 예전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해 생겨난, 이민족과의 유대인들 사이의 혼혈족인 사마리아인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합류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이지만 느헤미야는 거절한다.

이러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에 대해 "유대민족 순혈주의"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5] 이는 다분히 현대의 사고로만 바라보는, 대단히 편향적인 관점이다.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주로 종교, 정치 엘리트들로서 예후드 지역[6]에 머무르면서 에스라를 통해 종교개혁을 진행했다. 그러면서 느혜미야 시대에 성벽을 재건하고 있었는데, 사마리아 족속은 혼혈이기에 이스라엘 민족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는데다 그들이 갖고있던 북이스라엘 왕국의 전통도 유수에 합류한 엘리트들에 비하면 별볼일 없었고, 결정적으로 먼저 멸망했기 때문에 "저주받은 동족"이란 모멸 속에 그냥 버려진 것이다.

느헤미야는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상당한 현실주의자였다. 느헤미야의 전임자라고 할 수 있는 에즈라는 이방민족과 통혼한 유대인 가정들을 강제로 이혼시키고, 그 사이에서 나온 혼혈아들을 강제로 부친들과 생이별시켜서 그 당대에도 가정 파괴범으로 유대인들에게조차 욕을 먹고 있었다.[7]

느헤미야는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이미 혼인한 가정의 현 상태는 인정하고 그 사이에서 나온 아이들은 반드시 히브리어 교육을 시킬 것을 권장하는 선에서 끝낸다. 물론 일종의 인민 재판 비슷한 것을 열어 지도층들을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두들겨 팬 장면은 지금 기준으로 봐도 센세이셔널하긴 하지만(...), 비록 자기 울분을 못 이기고 폭발하긴 했어도 실제로 이혼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오히려 이 대목에서 '유대인'이 혈통적인 범위가 아니라 매우 종교적인 범위가 될 단초가 보인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에즈라 때까지만 해도 혈통을 매우 중시했지만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다.[8] 이 경향이 굳어지는 것은 훗날의 마카베오 시대. 유일신교로 국민을 단결시키는 이 아이디어는 얄궂게도 기독교를 통해 로마에서 실천된다.

그런데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과 아라비아의 부족장 게셈, 암몬 사람 도비야가 "성을 쌓는 것은 황제에 대한 반역행위"라며 성벽 재건을 방해한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우리는 고레스 황제의 명령에 따라 정당하게 공사를 하는 중이니 당신들이 참견할 바가 아니다"라며 맞장을 뜨고, 산발랏 일동은 그 후에도 끈질기게 느헤미야를 방해하려 한다. 편지를 보내 끌어들여 몰래 죽이려 드는가 하면, "성을 쌓는 건 왕이 되려는 속셈 아니냐? 황제한테 알려지면 난리날 테니 나랑 만나서 상의하자"는 등의 매도도 하고, 심지어는 느헤미야의 심복에게 뇌물을 주어 느헤미야를 범죄하게 해 명예를 훼손시키려는 시도도 한다.

거기다 외부적으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 성벽 공사를 하는 인부들이 관리들에게 저당을 잡히거나 자식들을 빼앗기거나 하는 등의 착취 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분노한 느헤미야는 공습경보에 해당하는 나팔을 불어 관리들을 소집한 뒤 "난 백성들한테 부담주지 않으려고 월급도 안 받고 일하고 있는데, 너희들은 70년 만에 돌아온 동포들을 등쳐먹냐?"며 호통을 쳤고, 겁먹은 관리들은 빚, 저당잡은 밭, 집 등등을 모두 반환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한다.

결국 공사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백성들이 에스라와 느헤미야를 필두로 둘로 갈라져 행진식을 거행하고, 후에 성전 안팎에서 아직도 발생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비리들을 모조리 척결하는 것으로 느헤미야서는 끝난다.


[1] 살라미스 해전에서 대패하고, 반역자가 된 영웅 테미스토클레스의 망명을 환영한 그 왕이다.[2] 술 관원은 왕이나 황제에게 진상하는 술을 관리하는 최측근 인사이다. 따라서 술 관원은 왕이나 황제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 중 하나라는 의미가 있다.[3]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이게 사형에 처해질 만한 행동이었다고 한다. 당시 술 관원은 왕의 얼굴을 내관보다도 가까이에서 마주 대하며 모시는 동경의 대상이요, 명예로운 직책이었는데 그런 자가 왕에게 구린(...) 표정을 보이는 것은 일종의 불경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고.[4] 참고로 이때 성벽을 복구하면서 언제 적들이 훼방을 놓을지 몰라 일꾼들은 제각기 무장하고 교대로 공사에 임한다.[5] 이러한 시각에서 보는 입장은 사마리아인 항목 참조.[6]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남쪽 헤브론까지의 도시들의 집합 지역이다. 본래 남유다 왕국이 있던 지역.[7] 물론 끝까지 에스라를 따르지 않았던 대상 관리들 중 일부에 한해서였지만. 오히려 그게 이방인들을 끌어들인 죄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에스라를 욕하는 사람들이 적반하장인 셈. 에스라 항목 참조.[8] 본래는 종교적인 범위가 맞는다고 하는데, 적어도 이 시기엔 그렇지 않았다. 모세오경에 외국인이 유대교로 개종한 경우 유대인으로 취급했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었으며, 개종해도 자손 몇 대까진 온전한 국민 취급을 받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방인과의 결혼을 금지한 것은 이방인이 자기 종교를 유지한 상태에서 혼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보는데 이 관점도 오류다. 느헤미야는 치사하게 외국인 처나 며느리에게 개종을 강요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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