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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바다괴물에게 먹히게 된 네덜란드 백작의 딸 올림피아를 구하기 위해 닻을 들고 싸우는 롤랑. 귀스타브 도레 작 |
【언어별 명칭】 | |
고대 프랑크어 | Hrōþiland (흐로딜란드) |
<colbgcolor=#ccc>라틴어 | Rotholandus (로톨란두스) |
프랑스어 | Roland (롤랑) |
1. 개요
중세 및 르네상스기의 유럽 문학작품에서 샤를마뉴의 12기사 중 수좌로 등장하는 인물. 프랑스에서는 롤랑이라고 불리지만 영어로는 롤런드, 이탈리아에서는 오를란도(Orlando)라고 불린다. 명검 뒤랑달[2]의 주인으로도 이름 높다.이탈리아의 작품 《광란의 오를란도(Orlando Furioso)》나 프랑스 최고(最古)의 서사시 《롤랑의 노래》 및 여러 가지 문학 작품의 주인공 또는 주요 인물로서 등장하는 등, 중세 유럽에서 인기 높은 전설의 인물이다.
2. 일대기
롤랑의 아버지인 밀론(Milon)은 샤를마뉴의 먼 일가친척이었지만 샤를마뉴의 누이인 베르테(Berte)와 비밀결혼으로 교회로부터 파문당하고 프랑스에서 추방되었다. 롤랑은 샤를마뉴와 같은 가문에 속해있었고 그 혈통의 기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트로이의 영웅 헥토르까지 이어진다. 헥토르의 아들인 아스티아낙스가 먼 훗날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메시나 왕국을 건설했고 그후에 이탈리아의 레기오 왕족이 탄생된다.빈털터리로 추방된 밀론과 베르테는 이탈리아로 갔다. 그곳에서 롤랑을 낳았다. 롤랑은 힘이 매우 세고 기품이 넘쳐흘러 주위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성 요한의 말을 인용하면 "고대의 삼손처럼 힘과 용기를 부여받은 존재가 될 운명"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올리비에와 만나 몇번의 주먹 다짐으로 우정을 쌓았다. 롤랑이 자라 12살때 샤를마뉴가 롬바르드를 정복하고 로마에 방문하였는데[3] 그때 롤랑은 굶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샤를마뉴 일행의 음식을 훔쳐 달아났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인연이 되어 샤를마뉴에게 발탁된다.
2.1. 거인 페라구스와의 싸움
롤랑의 이름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거인 페라구스와의 싸움이다. 페라구스는 몸이 단단하여 어떤 무기로도 상처를 줄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롤랑은 뒤랑달 조차 없었고 페라구스 역시 롤랑의 기량이 대단해서 전투가 지루하게 지속되었고 결국 둘다 지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페라구스가 먼저 휴전을 제안했고 롤랑도 이에 동의해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둘은 모두 상대를 믿고 편안히 잠에 빠져들었다.[4] 서로가 동의해서 아무런 방비를 하지 않는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기사도의 율법에서 철저히 금지되어있다. 롤랑도 페라구스도 엄격히 이를 따랐다. 롤랑이 베개가 없어 불편한 자세로 자고 있는 거인을 위해 거대한 돌을 집어 페라구스의 머리밑에 받쳐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페라구스는 이를 감사히 여겨 자신의 약점인 가슴 한가운데의 한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페라구스는 아킬레우스나 지크프리트처럼 불완전한 불사신이었던 것이다. 거인은 약점을 정확히 가르쳐주었고, 곧이은 싸움에서 처절한 접전을 벌여서 롤랑은 약점을 정확히 공격하여 페라구스를 쓰러뜨린다.2.2. 올리비에와의 인연
게렝 드 몽그리브(Garin de Monglane)는 샤를마뉴 황제의 속국인 비엔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황제와 언쟁을 벌이는 바람에 샤를마뉴로부터 도시를 포위 공격당하고 약탈을 감수해야 했다. 늙은 무사였던 게렝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당대의 가장 용감한 기사인 네 아들 에르노(Hernaut), 지라르(Girart), 르니에(Renier), 밀론(Milon)과 두 손자에게 의지했다.포위 공격이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샤를마뉴는, 스페인의 마실리우스 왕이 프랑스를 침공하여 아무 저항을 받지 않음을 알아채고 신속히 남부 지방까지 진격해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에 샤를마뉴는 12용사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 게렝과의 문제는 신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각 진영의 기사를 한 명씩 뽑아 결투로 끝내자는데 동의했다. 게렝과 그의 아들들 역시 이것을 수락했다. 네 아들과 게렝 자신, 그리고 제비뽑기에 참가하겠다고 주장한 두 손자들은 각자의 이름을 투구 속에 집어놓고 뽑기를 했다. 그런데 가장 나이가 어린 르니에의 아들 올리비에가 결투의 영광과 위험을 떠맡게 되었다. 샤를마뉴 측에서는 롤랑이 결투자로 뽑혔다. 하지만 양쪽 모두 누가 자신의 결투자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로네 섬에서 대치했다. 양쪽 해안에는 결투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두 사람이 처음 충돌할 때 창이 흔들렸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말을 타고 있는 자세에 아무런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말에서 내려 칼을 뽑았다. 그리고 결투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실력이 너무도 비슷하여 구경꾼들은 싸움이 어떻게 될지 의견을 모을 수 없었다. 5일이 넘도록 두 기사는 아무런 피로의 기색을 보이지 않으면서 치고, 피하고, 찌르고, 막으며 어떤 불시의 기습도 허용하지 않았다.
마침내 롤랑이 올리비에의 방패를 내려치다가 실수로 뒤랑달이 칼 끝이 땅 속에 묻힐 정도로 깊숙이 박히고 말았다. 동시에 올리비에 역시 롤랑의 가슴받이를 세차게 찌르다가 칼의 손잡이 부분이 부러지고 말았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무기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쉴 틈도 없이 그들은 서로에게 돌진하여 상대를 넘어뜨리려고 했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그들은 서로의 투구를 붙잡고 벗기려고 했다. 두 사람의 투구가 모두 벗겨지자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잠시 서 있었다. 롤랑은 올리비에를 알아보았고, 올리비에도 롤랑을 알아보았다. 그들은 잠시 조용히 있다 두 팔을 들고 달려가 서로를 얼싸안았다. "내가 정복당했네." 롤랑이 말했다. "아니야, 내가 항복했어." 올리비에가 대답했다. 해안에 모인 사람들은 이 일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고 서 있는 것을 보니 결투가 끝난 것은 분명했다. 기사들은 그들 주위로 모여들어 이구동성으로 두 사람이 영광스러운 무승부라고 외쳤다.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오기에르가 "두 사람 모두 명예가 요구하는 모든 일을 행했기 때문에 무승부"라고 선포하자 입을 다물었다. 이 5일간의 싸움 이후 두고두고 유명한 속담이 생겨났다. To give a Roland for an Oliver라는 서양속담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뜻을 따지면 사자성어 용호상박(龍虎相搏)에 가깝다.
2.3. 안젤리카
앞서 성 요한이 롤랑을 삼손에 비유한 바가 있다. 삼손에게 데릴라가 있었듯 롤랑 역시 그의 운명을 지배했던 여인이 존재했다. 안젤리카라는 여인은 중국 왕의 후손인 갈라프론의 딸로 그녀의 오빠인 아르갈리아와 함께 프랑크 왕국을 정탐하기위해 파견한 일종의 간첩이다. 심지어 샤를마뉴가 팔라딘들을 소집했을 때 롤랑은 안젤리카를 쫓는데 정신이 팔려서 그 명령을 거부할 정도였다. 하지만 안젤리카는 훗날 사라센의 병사인 메도르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이에 충격먹은 롤랑은 미치광이가 되어버린다. 벌거숭이가 되어 정신을 놓고 목적지도 없이 돌아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죽여버리는데, 검과 갑옷이 없다 해도 사람을 맨손으로 찢어버리는 괴력과 검에 맞아도 다치지 않는 피부를 지닌 롤랑의 방랑은 자연재해 수준이다. 롤랑은 3개월 동안 광인이 되어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동료 팔라딘들에 의해서 정신을 찾을수가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광란의 오를란도 참조.
2.4. 최후
롤랑을 시기한 의부 가늘롱의 계략에 의해 사라센과의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다고 나오지만 실제는 바스크인 군대와 싸우다 전멸당한 것이고 프랑스인 시각에서 사라센 군대인 것으로 착각으로 인한 왜곡 기록인 것으로 알려져있다.[5] 그 최후는 무훈시의 최고봉인 <롤랑의 노래>(la Chanson de Roland)에 묘사되어 있다.
3. 롤랑의 모델
무훈시 속의 롤랑의 원 모델이 된 인물은, 사료에서 778년 샤를마뉴가 스페인 원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치렀던 롱스보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브르타뉴 변경백 흐로들란드(Hrōþiland)이라고 여겨진다.https://en.m.wikipedia.org/wiki/Roland또, 무훈시 속에서 롤랑은 샤를마뉴의 조카라고 되어있지만, 그 같은 사실은 사료 속에 기록되어있지 않다.
4. 여담
- (이탈리아판 기준으로)샤를마뉴의 12 기사들 중에서는 상당히 연배가 있는 편인 것으로 나온다. 노장인 나모나 튀르팽 정도는 아니지만, 중장년층으로 추정. 르노(리날도)가 어렸을 때 이미 이름을 날린 장군이었고 며느리도 있다. 올리비에에게 '사촌형'으로 불리고 있으며 아스톨포, 리날도에 비해 젊다는 묘사도 없다.
- 프랑스 남부의 로카마두르에 있는 성당인 노트르담 드 로카마두르 성당 입구의 절벽엔 롤랑의 검 뒤랑달이라 전해지는 검 한 자루가 바위 틈에 박혀 있다. 롤랑이 죽기 전 세례를 받은 자신의 검이 적의 손에 들어가는걸 원치않아, 있는 힘껏 검을 집어던졌는데 그 검이 날아와 세례를 받은 로카마두르로 돌아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 신곡에서도 등장하는데 천국 제5영역 화성천에 자신의 주군인 카롤루스 대제와 함께 머물고 있다.
- 플레잉 카드 속 J◇의 모티브로 알려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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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프랑크어와 라틴어는 8세기 당대에 쓰인 언어, 프랑스어는 후대의 기사도 문학에서의 언어다.[2] 영어식 표기인 듀란달로 유명하다.[3] 실제 역사에서 이 사건은 774년 7월에 일어났다.[4] 당시 기사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짐작할 수 있다.[5] 애초에 론세스바예스(롱스보) 지역은 바스크인 거주지역의 지도상 정 중앙에 위치해 있다. 즉 롤랑은 후퇴 과정에서 바스크 영내로 침입하고 말았고 영역 중심 깊숙히까지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게 바스크 군대의 어그로를 제대로 끌어 결국 출동해 추격해온 바스크군의 공격에 전사한 것.실제 역사와의 비교 다만 저자는 말미에 오리엔탈리즘과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