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8-25 00:01:43

아스티아낙스

트로이 왕가 (프리아모스 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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Ἀστυάναξ / Astyanax

1. 개요2. 일대기3. 생존 전승
3.1. 샤를마뉴 전설3.2. 그 외 작품
4. 대중 매체에서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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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로이왕세손. 헥토르안드로마케의 아들이다.

아버지 헥토르가 지은 본명은 스카만드리오스(Σκαμάνδριος / Skamandrios)지만, 트로이의 시민들은 홀로 트로이를 지키는 그들의 왕자이자 수호자인 헥토르를 칭송하기 위해, 헥토르의 장남을 도시의 왕이라는 뜻의 아스티아낙스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2. 일대기

트로이 전쟁의 시점에서는 갓난 아기로 전쟁에 나가는 아버지의 투구가 무서워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의 일기토에서 전사하기 전에, 아스티아낙스가 자신보다 위대해지기를 신들에게 빌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운명을 가졌었지만...

트로이가 함락되고 난 후에, 안드로마케는 아스티아낙스를 헥토르의 무덤에 숨겼지만, 결국은 그리스 군에게 발견된다. 그리스 군은 아스티아낙스의 운명에 대해 토론했다. 아스티아낙스를 죽이는 것을 주장한 장군은 오디세우스였고, 이에 반대한 장군은 메넬라오스였다. 하지만 아스티아낙스가 성장해서 트로이를 재건하고 그리스의 왕들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결국에는 아스티아낙스를 죽이는 것으로 결정됐다.

아스티아낙스를 누가 죽였나는 기록마다 다른데, 소(小) 일리아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기록에서는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 일리오스 낙성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는 오디세우스가 죽인 것으로 나온다. 일단 정설은 네오프톨레모스가 죽인 것인데, 여기서도 전승이 갈린다. 성벽에서 떨어뜨려 죽였다는 것과 프리아모스를 죽이는데, 아스티아낙스를 곤봉으로 썼다는 잔인한 전승도 있다.
파일:neoptolemus_pyrrhus_Louvre_F222.jpg
▲ 아스티아낙스를 곤봉 삼아 프리아모스 왕을 때려죽이는 네오프톨레모스

3. 생존 전승

3.1. 샤를마뉴 전설

샤를마뉴 전설에선 그리스 신화와 달리 살아남았다는 전승이 전해지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인물이 샤를마뉴 전설과 무슨 연관이 있겠냐 싶겠지만 이는 중세까지의 헥토르트로이의 위상과 연관이 깊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대 로마 시대부터 기사도느낌의 고결했던 영웅 헥토르가 재평가됨에 따라 그 위상이 높아지고 로마 제국은 아이네이스에서 보이듯 스스로를 트로이의 후손으로 지칭했다.[1] 자신이 역사/신화 속 인물의 후손이었다고 지어내는 것은 고대중세 유럽에서 흔한 일이기도 했기에 이러한 로마 제국의 시대를 영광으로 여기던 중세의 유럽에선 프랑스독일, 이탈리아, 심지어 영국까지도 자신들이 로마와 마찬가지로 트로이의 후손이라는 슬로건을 걸면서 어떻게든 로마와 엮이려 했으며, 존경받는 위인의 아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을 부정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결국 이러한 배경에서 아스티아낙스가 생존했단 전승이 만들어진것이다. 따라서 생존설은 많이 후대에 창작된 것으로 원래 전승들과는 많이 다르다. 원전승은 어떤 방식으로든 확실히 사망.

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전승은 사랑에 빠진 오를란도광란의 오를란도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아스티아낙스는 안드로마케가 다른 아기와 바꿔치기 해서 살아남았고, 장성한 아스티아낙스는 이탈리아 반도의 시칠리아섬 메시나에 정착하여 왕국을 세우고 거인 왕 아그라노르를 죽이고 시라쿠사의 여왕과 결혼했다.[2]

그리고 아스티아낙스의 아들 중 한명인 폴리도로스[3]는 그의 뒤를 이어 왕국을 잇는 대신 이탈리아 반도를 떠나 프랑크족의 족장 프랑키오의 사위가 되어 프랑쿠스로 개명하고 폴리도로스의 후손은 메로빈지언 및 샤를마뉴 왕족이 되었다.[4]

다행히도 남은 아들이 가계를 이음에 따라 레기오 왕족이 되어 왕국을 이었고, 로마가 건국되자 스스로 병합되었음에도 귀족으로서 대우를 받으며 로마 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메시나 영지를 지켜왔으며 레기오 왕족의 형제 중 동생이 독립하여 프랑크 왕국의 가신이 되었는데 그 가문이 클레르몽 가문이라는 것이다.

3.2. 그 외 작품

  • 장 라신의 《앙드로마케》 - 어머니 안드로마케와 함께 필로스의 포로가 되어 끌려온다. 이때 필로스가 안드로마케에게 자신을 새남편으로 섬기지 않으면 아스티아낙스의 목숨을 보장할수 없다고 말하는데, 안드로마케는 하나뿐인 아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필로스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 영화 《트로이》 - 트로이가 그리스 군에게 함락당할 때, 어머니 안드로마케와 숙부인 파리스 숙모인 헬레네 그리고 고모인 브리세이스와 함께 아버지 헥토르가 죽기 전에 어머니에게 가르쳐줬던 비밀 통로를 통해 그리스군에게 붙잡히지 않고 무사히 탈출에 성공한다. 이후 트로이가 멸망한 후, 어머니의 품에 안긴 채 숙부와 숙모, 고모 그리고 그밖의 트로이 유민들과 함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이동하는 것으로 끝난다.
  • 소설 《안드로마케》 - 네오프톨레모스가 아스티아낙스를 죽이지 않고 프티아에 데려왔으며, 작품 마지막에 어머니 안드로마케가 네오프톨레모스와 재혼하여 프티아의 왕비가 되자 네오프톨레모스의 양자가 되어 페르가모스가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다.

4. 대중 매체에서

5. 관련 문서


[1] 아이네이아스는 헥토르의 6촌 형제이자 매제이다. 헥토르의 여동생 크레우사가 아이네이아스의 아내였다.[2] 마침 근처에 정착한 아이네이아스를 도와 우호적 관계를 맺었고, 안드로마케와도 재회했단 전승도 있다.[3] 카드모스의 아들 폴리도로스, 프리아모스의 막내아들인 폴리도로스와는 동명이인이다.[4] 이 부분은 아리오스토가 프랑크 왕국의 건국 전설을 참조한 것으로 보인다. 원래의 건국전설에서 결혼하고 개명하는것은 아스티아낙스이며 그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 폴리도로스다.[5] 그런데 부모인 헥토르와 안드로마케는 벽안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