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1 03:52:28

신윤호

신윤호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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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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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KBO 리그 다승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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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KBO 리그 승률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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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KBO 리그 구원왕

LG 트윈스 등번호 26번
김동재(1989~1993) 신윤호(1994~1996) 장문석(1997~2005)
LG 트윈스 등번호 87번
결번 신윤호(1997~1998) 송구홍(2010~2013)
LG 트윈스 등번호 16번
앤더슨(1998) 신윤호(1999~2007) 이재영(2008~2010)
SK 와이번스 등번호 32번
장재중(2007) 신윤호(2008) 박윤(2010)
SK 와이번스 등번호 30번
신정익(2011~2013) 신윤호(2014) 오수호(2015~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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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SK 와이번스로 이적 직후에 찍은 사진.[1] 유니폼만 보면 채병용인데
이름 신윤호(申潤浩 / Yoon-ho Sin)
생년월일 1975년 5월 15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서울청구초 - 충암중 - 충암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고졸연고자유계약(LG 트윈스)
소속팀 LG 트윈스(1994 ~ 2008)
SK 와이번스(2008, 2014)

1. 소개2. 선수 경력 1기3. 은퇴4. 선수 경력 2기5. 은퇴 이후6. 연도별 성적7. 여담

1. 소개

LG 트윈스, SK 와이번스 소속의 야구 선수.

2. 선수 경력 1기

충암고 시절[2] 주형광과 함께 고교 야구계의 좌우 쌍두마차라고 불리며 "제 2의 선동열" 이라고 불릴 정도의 엄청난 기대를 받던 역대급 유망주였다. 이후 연고 팀 LG 트윈스에 입단, 고졸 신인으로써는 사상 최초로 총액 1억 원대(계약금 8,800만 원+연봉 1,200만 원)의 몸값을 받았던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나 정작 데뷔 후에는 구리 2군 숙소에서 틈만 나면 이탈하기 일쑤였으며 무단 이탈해서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고 심지어 축구 팀 버스와 승용차를 두들겨 부수고 다니는 등의 기행[3]과 불성실한 연습 태도로 인해 고교 때의 명성에는 한참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 신윤호의 실패로 인해 LG는 고졸투수들의 무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인식을 얻기도 했다.

1996년현역으로 입대하여 철원군에서 복무했지만, 얼마 안 가서 허리를 다쳐 의병 제대했다. 이 당시 해외 진출을 선언한 이상훈이 미국 보스턴으로 출국하자[4] 신윤호를 같이 딸려서 보내 보스턴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 연수까지 보내주었을 정도.

2001년이광은 감독이 경질되고 김성근 수석코치가 1군 감독 대행[5]으로 선임된 이후 집중적인 조련을 받고 기량이 급상승하여, 1군 70경기(2위)(선발은 4경기) 144⅓이닝 15승 6패 18세이브(4위) 32세이브포인트, 평균자책점 3.12(2위)라는 엄청난 활약을 했다.[6] 이 활약으로 신윤호는 손민한과 함께 공동 다승왕에 올랐으며 다승, 구원, 승률 1위를 하여 3관왕에 올랐고 MVP투표 1차에서는 이승엽을 우세했다. 하지만 2차투표에서 이승엽,신윤호를 투표하지않은 기자들이 이승엽에게 투표하면서 MVP는 수상하지못했다신윤호 인지도가 이승엽에비하면 넘사벽이라 그렇다고 한다투수 골든 글러브까지 받았다.[7] 하지만 규정 이닝을 넘어 불펜 투수로서는 이례적으로 144이닝이라는 무지막지한 수의 이닝을 먹은 탓에 혹사 논란이 지금까지도 끊이지 않으며, 김성근 감독의 대표적인 혹사 사례로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 신윤호 본인은 이에 대해 인터뷰에서 이후의 몸 관리가 문제였음을 밝히고 있고, 오히려 김성근 감독 덕분에 잠시나마 돈도 많이 벌어 봤고 선수 생명을 더 이어갈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는 뜻을 비추고 있다.크보 공인 멘탈레기를 그나마 사람이라도 만들었으니 그거라도 다행이지

더불어 LG 트윈스 최후의 한국시리즈 선발 투수다.[8]

이후로는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하고 부상으로 신음했다. 게다가 노는거 좋아하는 성격 역시 재활에 도움이 되지 못했을 정도.[9][10]2008년에 웨이버 공시되어 김성근 감독이 재직 중이던 SK 와이번스로 이적하나, SK에서도 마땅한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팔꿈치 부상으로 은퇴하였다.

3. 은퇴

은퇴 이후에는 인쇄업 등 개인 사업을 했다. 2009 시즌에는 LG 트윈스상품을 공급하기도 했다. 한편 야구 레슨을 하며 사회인 야구 팀에서 투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당시 사회인야구에서는 활발하게 활동했고, 야구레슨을 하면서 4000개 가량의 공을 던지면서 단련이 되었다고 한다.

4. 선수 경력 2기

불혹을 앞두고 2013년 9월 9일 현역 복귀를 선언했다. 사회인 야구 팀에서 활동하면서 꾸준히 몸을 만들어 왔다고.

2013년 10월 27일 SK 와이번스의 입단 테스트에 합격하여 복귀에 성공했다. 당시 구속이 147~148km 정도가 나왔다고 한다.

2014년 2월, 그동안 몸 상태에 대한 사람들의 불안한 시선이 있었지만, 6일 스프링캠프 자체 홍백전에 출장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 어느 정도 게임을 뛸수 있는 몸 상태는 되어 있는 듯했다.

그러나 정작 시즌이 시작된 후 퓨처스리그에서 6월 17일까지 기준으로 2군 14경기 26이닝 1승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5.19로 부진했다. 그러다 8월 31일 자로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고, 바로 당일에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16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하지만 2이닝만 던지고 내려왔으며, 2실점(2자책)을 기록했다. 그래도 본인은 감격스러웠다고 한다. 팀은 4:3으로 이겼다. 이후 2014년 9월 10일 사직 롯데전에 4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 4피안타 1실점(1자책)을 기록했다. 2014 시즌에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9.00만 기록했다. 그걸로 그의 1군 복귀전은 끝났다.

시즌 종료 후 선수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연봉은 안 받아도 되니 현역으로 계속 뛰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그걸로 끝.

여담으로 이 신윤호의 복귀건이 야구에서 프로와 아마간 격차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현역 복귀를 타진하게 된 이유가 사회인 야구 1부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찍어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인데, 2군에서도 탈탈 털렸다...

5. 은퇴 이후

이후 사회인 야구를 했었을 때 알게 된 사람의 회사에 취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회사 사정이 어려워져서 나온 뒤에는 LG 시절 동료인 이정준[11], 이정선 형제가 운영하는 주류 유통업체에서 상무이사로 일하고 있다 그리고 부업으로 고양 원흥지구 근처의 도내동에서 서승화와 함께 야구 레슨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신윤호가 일하는 회사의 대표이사인 이정선이 거래하던 식당에서 거래를 끊자 식당을 찾아가 영업주를 협박하고 행패를 부리고, 미성년자를 식당에 들여보내 술을 마시게 한 후 경찰에 신고를 하여 식당이 영업 정지를 받게 만드는 등의 방법으로 식당의 영업을 방해한 혐의로 입건되었고, 결국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기사에는 마치 신윤호도 범행에 가담한 것 처럼 언급되었지만, 신윤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한다. 현재도 그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지는 불명.

현재는 성수동으로 자리를 옮겨서 야구레슨을 한다. 이름은 여전히 '신윤호의 야구왕국'이다.

6.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세이브 홀드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1995 LG 2 5 0 0 0 0 1.80 7 0 2 1 4 1.80
1996 2 4 0 0 0 0 11.25 7 0 6 2 1 3.25
1997 군복무(현역, 의병 제대)
1998 34 64 2 1 0 0 4.64 53 6 37 6 43 1.41
1999 10 32⅔ 0 0 0 0 5.79 39 2 15 1 23 1.65
2000 5 4⅔ 0 1 0 0 13.50 10 1 3 0 4 2.79
2001 70
(2위)
144⅓ 15
(1위)
6 18
(4위)
0 3.12
(2위)
129 8 79 12 99 1.44
2002 37 60 4 3 1 2 6.45 76 9 23 10 44 1.65
2003 4 2 0 1 0 0 13.50 5 2 1 0 1 3.00
2004 54 69⅔ 6 3 0 3 5.43 77 12 34 6 36 1.59
2005 29 31⅔ 1 4 9 1 6.25 44 3 15 1 15 1.86
2006 14 22⅔ 0 0 0 0 6.35 27 1 7 1 13 1.50
2007 10 14 0 1 0 0 4.50 20 0 8 1 11 2.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세이브 홀드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2008 SK 2 0 0 0 0 27.00 3 0 3 0 1 9.00
2014 2 3 0 0 0 0 9.00 8 1 2 0 1 3.33
KBO 통산
(14시즌)
275 458⅓ 28 20 28 6 5.01 505 45 235 41 296 1.62

7. 여담

  • 송진우 하면 떠오르는 이색 커리어인 투수 끝내기 안타의 희생양이 신윤호다. 그것도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던 2001년(6월 3일)에 맞은 것. 그런데 송진우 본인이 네이버 라디오볼 2015년 8월 21일 방송에서 LG 덕아웃의 싸인을 훔쳐서 쳤다는 발언을 했다....
  • 그야말로 짧고 굵게 간다는 것이 뭔지 보여준 선수이다. 프로 통산 14년 총합 war이 5.54인데 (스탯티즈 기준) 2001년 한 해동안 기록한 성적( war 4.52) 이 전체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2001년을 제외하고는 딱히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적도 없고.
  • 아들 신효수는 휘문고에서 포수로 뛰고 있다. 2019년 현재 3학년.


[1] 해당 사진을 2014년에 찍은 사진으로 아는 사람들도 있는데, 모자에 있는 우승 앰블럼을 보면 2008시즌에 찍은 사진임을 알 수 있다.[2] 박명환과는 초ㆍ중ㆍ고 모두 동일하다. 초등학생 때 박명환에게 네거리 캔디(일명 신호등 사탕)을 사오게 시키고 안 사오면 안 때렸다고 한다(...).[3] 이 때 같은 LG그룹 산하의 축구팀최용수와 맞짱을 뜨려 했는데, 최용수가 신윤호를 보고 쫄아서 도망쳤다는 카더라가 있다. 다만 당사자인 신윤호 본인은 이를 부정했다. 참고로 최용수는 축구계에서 한 주먹 하는 걸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버스 부시고 다닌 건 사실이라고 인정했다.[4] 그러나 이 당시 포스팅 제도 등으로 인해 당초에 예상했던 거보다 이적료가 낮아지자 MLB 진출은 실패했고, 대신 LG 구단과 자매 결연을 맺었던 일본 주니치로 임대되어 이상훈은 우여곡절 끝에 해외로 진출하게 된다.[5] 2군 감독 - 수석코치 - 투수전권위임 - 감독대행 순서로 감독직에 올랐다.[6] 참고로 신윤호의 통산 승수는 28승이다(…).[7] 하지만 신윤호의 투수 골든 글러브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한다. 2012년까지 각 항목에 투수 골든 글러브가 누락되어 있었던 선수는 신윤호가 유일하다.[8] 가장 마지막 투수는 알다시피 최원호.....[9] 2001년 이후 가장 평균자책점이 좋았던 해는 2007년으로, 그나마도 고작 14이닝만을 던지고 4.50을 기록했다.[10] 후일 박명환의 인터넷 방송에서 한 이야기를 보면, 1일을 훈련하면 몸이 안좋아져서 이틀을 쉬고 다시 훈련을 했을 정도로 몸 상태가 그리 좋지는 못했다.[11] 1996~1997년에 LG 트윈스에서 53번을 달고 활동했었던 내야수. 1996년 드래프트를 끝으로 2차지명의 인원제한이 생기면서 그 해에는 모든 구단이 많이 선수를 뽑았는데 이정선은 무려 18라운드씩이나 되어서 지명을 받았다. 참고로 그 해는 쌍방울이 무려 27라운드까지 지명권을 행사했었다. 흠좀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