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7 00:00:36

케빈 미첼

케빈 미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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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86worldserieschampionamazingmets.gif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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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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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페 알루 게리 라벨 짐 바 조니 레마스터 윌리 메이스
로드 벡 제프리 레너드 바이다 블루 커트 맨워링 윌리 맥코비
바비 볼린 후안 마리샬 제프 브랜틀리 잭 클락 마이크 맥코믹
밥 브렌리 존 버켓 스튜 밀러 바비 본즈 올랜도 세페다
랜디 모핏 그렉 민튼 케빈 미첼 윌 클락 마이크 크루코
짐 데이븐포트 존 몬테푸스코 칠리 데이비스 맷 윌리엄스 롭 넨
딕 디츠 게일로드 페리 대럴 에반스 짐 레이 하트 릭 러셸
J.T. 스노우 티토 푸엔테스 커크 리터 스캇 가렐츠 로비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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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에스테스 마빈 베나드 제이슨 슈미트 배리 본즈 맷 케인
브라이언 윌슨 라이언 보겔송 피터 맥고완 밥 루리 헌터 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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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커크 깁슨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케빈 미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8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커크 깁슨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대럴 스트로베리
(뉴욕 메츠)
케빈 미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에릭 데이비스
(신시내티 레즈)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바비 보니야
(피츠버그 파이리츠)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대럴 스트로베리
(뉴욕 메츠)

뉴욕 메츠 등번호 32번
케빈 미첼
(1984)
뉴욕 메츠 등번호 35번
케빈 미첼
(1986)
뉴욕 메츠 등번호 7번
케빈 미첼
(1986)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등번호 7번
케빈 미첼
(198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9번
케빈 미첼
(1987~1988)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번호 7번
케빈 미첼
(1988~1991)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7번
케빈 미첼
(1992)
신시내티 레즈 등번호 7번
케빈 미첼
(1993~1994)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24번
케빈 미첼
(1996)
신시내티 레즈 등번호 7번
케빈 미첼
(199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번호 44번
케빈 미첼
(1997)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31번
케빈 미첼
(1998)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등번호 7번
케빈 미첼
(1998)

}}} ||
파일:Kevin Mitchell.jpg
케빈 다넬 미첼
Kevin Darnell Mitchell
출생 1962년 1월 13일 ([age(1962-01-13)]세)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포지션 좌익수, 3루수[1]
투타 우투우타
소속팀 뉴욕 메츠 (1984, 1986)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8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87~1991)
시애틀 매리너스 (1992)
신시내티 레즈 (1993~1994)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95)
보스턴 레드삭스 (1996)
신시내티 레즈 (1996)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7)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8)

1. 개요2. 선수 경력3. 사건사고4. 기타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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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리그와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한 전 야구선수. 뛰어난 실력에도 불구하고 개판인 인격으로 인해 험난한 인생사로 유명한 인물이다.

2. 선수 경력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빈민가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성인도 되기 전에 총상을 3번이나 당했을 정도로 거친 환경에서 성장했다. 이대로 두면 범죄자밖에 안 되겠다고 생각한 그의 할머니 손에 이끌려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할머니에 대한 정이 깊었는지 할머니의 말을 잘 따라 성실하게 운동에 임했고, 미식축구, 복싱 등 여러 운동에서 두각을 드러냈으나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역시 그의 할머니가 가장 좋아한 야구였다.

이후 트라이아웃을 통해 드래프트 번외로 뉴욕 메츠에 입단하였고, 준수한 백업 외야수로서 메츠의 1986년 월드 시리즈 우승에 일익을 담당했다. 이후 트레이드로 파드레스,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는데, 자이언츠에서 전성기를 맞아 1989년에는 타율 .291 47홈런 125타점으로 타점왕과 홈런왕 2관왕을 차지하며 리그 MLB MVP를 차지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90시즌에도 타율 .290에 35홈런 93타점으로 뛰어난 활약을 이어갔다. 91년 당한 손목 부상으로 약간 주춤했고 하술할 사건사고가 겹치며 매리너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여기서도 부진하며 또 범죄에 연루되어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고 레즈에서는 과거 메츠 시절 은사인 데이비 존슨 감독의 신뢰 하에 폼을 회복하며 93년 타율 .341에 19홈런, 94년 타율 .326 30홈런 77타점 OPS 1.110을 기록하며 다시한번 특급 타자로 부활했다.

1994년 이렇게 부활에 성공하였으나 MLB 파업 사태로 잔여시즌이 전부 취소되는 사태를 맞이했고, 이에 1995년에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택하게 된다. 당장 전년도 OPS 10할에 30홈런을 친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가 일본프로야구에서 뛰겠다는 선언을 하자 일본은 난리가 났고, 경합 끝에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가 1년 4억 8천만엔이라는 초특급 연봉으로 미첼을 모셔가게 된다.

일본에서도 개막전에서의 데뷔 타석부터 만루홈런을 치며 역대 최초 개막전 데뷔 타석 만루홈런이란 기록과 함께 강렬하게 시즌을 시작했으나, 이후 무릎 부상 악화와 계속되는 잔병치레 등으로 결장이 늘어났고, 5월 중순 무릎 부상을 치료한다는 명목 하에 무단으로 귀국하여 7월 말에야 복귀하는 사고를 쳤다. 특급 메이저리거답게 타구들이 하나같이 엄청난 비거리를 보여주며 경기에 나올 때마다 메이저리거다운 활약을 보여주긴 했으나(타율 .300/OPS .920 8홈런 28타점), 부상 등을 핑계로 잦은 결장을 일삼고 무단귀국까지 벌인 탓에 구단과 계속해서 마찰을 일으켰고, 결국 8월 중순에 또 다시 부상 치료를 명목삼아 2번째로 무단 귀국을 저지르면서 더 이상 참지 못한 다이에 구단에 의해 그대로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해고되었다.

이후로는 미국으로 돌아갔으나 부상 여파로 폼이 많이 하락해 있었고 변변찮은 성적으로 저니맨 생활을 한 끝에 1998년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3. 사건사고

장기계약을 줘도 될 법한 뛰어난 선수임에도 저니맨 인생을 살았는데, 너무나도 잦은 사건사고가 그 원인이었다.

메츠 시절 메이저에 데뷔하기 전 고향의 형이 총격으로 사망했고, 그 충격으로 야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것을 동료들의 설득으로 간신히 붙잡은 것으로 시작, 태만한 훈련 태도와 거친 폭력성으로 인해 온갖 사건 사고를 다 일으키고 다녔는데, 빈민가에서 폭력과 범죄에 둘러싸여 자라난 그의 성장 환경을 그 이유로 꼽는 사람이 많다.

자이언츠 시절 MVP를 수상했음에도 지각으로 비행기를 놓쳐서 포스트시즌에 출장하지 못한 사건부터 시작해 벤치 클리어링에서 주먹다짐으로 상대 투수를 피떡으로 만들어 벌금을 물기도 했으며, 전 애인에게 미투를 당하고, 친구가 경찰을 살해하고 미첼의 집에 숨어있다가 들켜서 살인사건의 참고인으로 불려나가는 등 경기장 안팎을 안가리고 초대형 사고만 골라 치고 다니는 바람에 MVP까지 수상한 선수임에도 한 팀에 오래 엉덩이 붙이고 있지를 못하고 선수생활 내내 트레이드로 쫓겨나기를 반복해야 했다. 사고뭉치에다 훈련 태도까지 태만하여 지각과 무단이탈이 일쑤였던 선수인데 또 야구는 잘해서 감독과 프런트 입장에서는 정말 애증 그 자체였던 선수.

한편 가족사 또한 불행했는데, 마약중독자인 그의 아버지는 마약을 사기 위해 그의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팔아버렸을 정도로 답없는 인간이었고, 돈 때문에 미첼이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를 폭행하여 결국 폭발한 미첼이 아버지를 두들겨패고 폭행 혐의로 입건될 정도의 콩가루 집안이었다. 형은 마이너리그 시절 총격을 당해 죽었으며, 친동생과 딸마저도 미첼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는 기구한 가정사의 연속이었다.

이후로도 폭력성을 버리지 못하고 은퇴 이후에도 독립리그에서 감독으로 지내며 상대편 감독과 자기네 팀 코치 등 꾸준히 사람을 때렸고, 야구 은퇴 이후에도 사건사고만은 은퇴하지 못하며 경찰서와 형무소를 들락날락하는 불우한 인생을 살았다.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과 교육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의 산증인.

4. 기타

  • 60세 노인이 된 현재는 고향에서 어린이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 사촌동생 토니 미첼프로야구 선수로 뛰었다. 메이저리그 MVP까지 수상한 사촌형과 달리 이쪽은 메이저 경력 없이 독립리그를 전전했고, 2001년엔 사촌형이 먹튀짓을 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서 뛰기도 했다.[2] 당시 사촌형제 사이란 것이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입단한 것이라 후에 본인의 언급으로 이 사실을 안 구단 측에서 발칵 뒤집히기도 했는데, 형과는 달리 구단과 마찰을 일으키진 않았으나 타율 .193, 10홈런 20타점의 부진한 타격 성적을 찍으며 시즌 종료 후 해고되었다. 대신 거액의 연봉을 받고도 먹튀가 된 형과 달리 이쪽은 구단과의 마찰도 없었고 1500만엔이란 싼 가격에 영입한 거라 최소한 돈값 정도만큼의 활약을 하긴 했으나, 성질머리는 사촌끼리 똑같았는지(...) 1, 2군에서 한 차례씩 벤치 클리어링을 일으켰다. 덤으로 벤클 때 흰색 이너캡을 쓴 모습이 포착된 것을 수영모자로 오인받아 수영모의 악마라는 괴이한 별명이 생기기도(...)

5. 관련 문서



[1] 1988년까지[2] 이 당시 미첼의 에이전트를 맡았던 사람이 일본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최초의 타격 3관왕을 수상한 부머 웰즈였다. 부머는 은퇴 시즌인 1992년에 다이에에서 뛰면서 타점왕을 수상하기도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