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09:11:33

빈스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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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 Ca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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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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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žen Petrović)
제이슨 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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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 Carter)
존 윌리엄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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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멜키오니
(Bill Melchion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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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ius Erving)
벅 윌리엄스
(Buck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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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랩터스 등번호 15번
팀 창단 빈스 카터
(1998~2004)
호르헤 가르바호사
(2006~2008)
뉴저지 네츠 등번호 15번
크리스 개틀링
(1997~1999)
빈스 카터
(2004~2009)
도널드 슬로언
(2015~2016)
올랜도 매직 등번호 15번
히도 터콜루
(2004~2009)
빈스 카터
(2009~2010)
히도 터콜루
(2010~2014)
피닉스 선즈 등번호 25번
제이크 차칼리디스
(2000~2003)
빈스 카터
(2010~2011)
디온테 크리스마스
(2013~2014)
댈러스 매버릭스 등번호 25번
에릭 댐피어
(2004~2010)
빈스 카터
(2011~2014)
챈들러 파슨스
(2014~2016)
멤피스 그리즐리스 등번호 15번
하메드 하다디
(2008~2013)
빈스 카터
(2014~2017)
브랜던 클라크
(2019~)
새크라멘토 킹스 등번호 15번
드마커스 커즌스
(2010~2017)
빈스 카터
(2017~2018)
데이미언 존스
(2021~2022)
애틀랜타 호크스 등번호 15번
알 호포드
(2007~2016)
빈스 카터
(2018~2020)
클린트 카펠라
(2020~)
토론토 랩터스 등번호 15번
에릭 모어랜드
(2019)
빈스 카터 영구 결번
브루클린 네츠 등번호 15번
앨런 윌리엄스
(2018~2019)
빈스 카터 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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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일:빈스 카터.jpg
<colbgcolor=#bd1b21><colcolor=#fff> 토론토 랩터스 No. 15
브루클린 네츠 No. 15
빈스 카터
Vince Carter
본명 빈센트 라마 카터 주니어
Vincent Lamer Carter Jr.
출생 1977년 1월 26일 ([age(1977-01-26)]세)
플로리다 주 데이토나 비치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신장 198cm (6' 6")[1]
체중 100kg (220 lbs)[2]
윙스팬 211cm (6' 11")
후원사 나이키
포지션 슈팅 가드 / 스몰 포워드
드래프트 1998 NBA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지명
[3]
소속 구단 토론토 랩터스 (1998~2004)
뉴저지 네츠 (2004~2009)
올랜도 매직 (2009~2010)
피닉스 선즈 (2010~2011)
댈러스 매버릭스 (2011~2014)
멤피스 그리즐리스 (2014~2017)
새크라멘토 킹스 (2017~2018)
애틀랜타 호크스 (2018~2020)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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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번 - 토론토 / 뉴저지 / 올랜도 / 멤피스 / 새크라멘토 / 애틀랜타
25번 - 피닉스 / 댈러스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3. 플레이 스타일4. 수상 내역5. 농구화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NBA의 농구 선수. NBA 역사상 최고의 덩커로 꼽히며 전성기 시절 덩크 슛의 달인으로 공중에서 예술을 했던 사나이.

별명은 토론토 시절에 '에어 캐나다' 그 외에는 'Vinsanity', 'Half-Man/Half-Amazing'[4] 등이 있다. 2019-2020 시즌 NBA 역사상 처음으로 22번째 시즌을 맞았다. 2020년 1월 5일 경기에 출전하면서 NBA 역사상 처음으로 10년대를 4번(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 맞이한 선수가 됐다.

2. 선수 경력

2.1.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1995년, 맥도날드 올 아메리칸에 선정되는 등 고교시절에도 촉망받는 유망주였던 빈스 카터는 많은 대학에 러브콜을 받았다. 그중 카터는 마이클 조던이 다녔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같이 입학한 선수로는 안장로앤트완 재미슨도 있었다.

대학시절 견실한 활약과 또한 그때도 주체할수 없었던 엄청난 운동능력과 점프력으로 뽑아내는 덩크는 일품이었다. 그리고 프로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수비력도 대학에서 어느정도 인정 받았었다. 다만 동료였던 앤트완 재미슨이 대학시절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쓴 전미 최고의 대학선수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는 저평가 받았었다.

주전으로 2시즌 활약하면서 2년 연속 파이널 4를 경험한 빈스 카터는 앤트완 재미슨과 함께 1998년 NBA 드래프트 참가신청을 했고 전체 5순위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지명된다. 하지만 바로 앞에 앤트완 재미슨을 4순위로 지명한 토론토 랩터스와 워리어스가 트레이드를 성사시키면서 카터는 토론토에 입단하게 된다[5].

2.2. 토론토 랩터스

대학시절에는 앤트완 재미슨에게 가려졌지만 프로 첫 시즌만큼은 달랐다. 비록 단축시즌이었지만 공중을 날아다니면서 팬들을 매료시켰다. 토론토 팬들은 경기장을 찾기 시작했고, 카터 덕분에 관중석은 언제나 매진이었다. 방송사가 예정에도 없던 토론토 랩터스의 경기를 추가 편성했을 정도였다. 당시 사정이 좋지 않았더 토론토 랩터스를 쇼타임 덩크쇼로 끌어올렸다.

토론토 팬들은 카터에게 애정과 환호를 보내주었고, 그에게 에어 캐나다라는 멋진 별명을 붙여주었다.[6] 언론도 '포스트 조던'으로 지목하며 열심히 설레발쳤다. 1998-99시즌 올해의 신인상은 덤.

1999-2000 시즌. 풀타임 시즌을 소화하 첫 시즌에 카터는 대부분의 기록에서 상승세를 기록했다. 3점슛을 장착하며 내외곽에서 막을수 없는 선수가 되었다.



카터는 2년차 시즌만에 올스타전에 동부팀 주전으로 선발되었고 그해 슬램덩크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올스타전만 하더라도 쟁쟁한 선수들을 모두 제치고 최다득표로 선발되었다. 무엇보다도 슬램덩크 콘테스트를 부활시켰다. 더 이상의 새로운 덩크는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몇몇 이들의 전망에도 불구하고 카터는 부활한 슬램덩크 콘테스트에서 지금도 회자되는 전대미문의 덩크를 연이어 선보이며 우승했다.

이때 슬램덩크는 88년 조던vs윌킨스, 2016년 에런 고든 vs 잭 라빈과 더불어 역대 최고의 콘테스트로 유명하다.스티브 프랜시스와 티맥도 다른 콘테스트였다면 우승할 정도로 훌륭한 덩크를 선보였으나, 카터의 덩크는 압도적이었고 2020년대 지금 봐도 굉장히 멋있다는 평가가 압도적으로 많은 편이다.

나오자마자 360도 역회전 윈드밀을 했는데, 해설 겸 심판이었던[7] 케니 스미스는 10점 만점을 주며 "집에 갑시다! 집에 가자구요! 신사 숙녀 여러분!(Let's go home! Let's go home ladies and gentlemen!)"을 연이어 외쳤다. 당연히 첫 덩크는 무려 50점 만점을 받았다. 두번째 덩크로는 베이스라인 밖에서 뛰어 들어오다 윈드밀을 성공시켰는데 이것도 무려 49점이 나왔다. 스미스가 "엄청난 덩크였지만 첫 덩크만큼은 뛰어나진 않았다"면서 9점을 준 것. 이후 결승진출을 확정지은 상황에서 카터는 예선 세번째 덩크를 하기 전에 스미스에게 "더 이상 낮은 점수 주지 마요(No more low scores)"라고 장난스럽게 당부한 뒤 역대급 덩크를 했다. 트레이시 맥그레이디가 공을 튕겨서 앨리웁 패스를 준 걸 공중에서 받아 다리사이로 돌린 다음 덩크를 꽃았다. 경기장은 뒤집어졌고, 9점을 줬던 케니 스미스 이 덩크를 보자마자 "다 끝났네요! 다 끝났어요!(It's over! It's over!)"라는 멘트와 함께 10점을 준 건 덤. 이후 결승에서 허니딥(덩크하면서 팔꿈치까지 림 안에 넣는 것), 자유투라인 반발짝 앞에서 투핸드 덩크를 선보이며 우승을 확정지었다. 관중들이 아예 카터에게 주목하며 카터 원맨쇼가 되었다.[8]

난이도만 보면 카터의 덩크를 재현할 선수들이 제법 있으나, 카터는 당시 상상도 못할 수준의 덩크를 선보였었고, 점점 허접해지던 덩콘에 익숙해진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조던의 유연함, 윌킨스의 순수 파워와 달리, 카터의 덩크는 긴팔을 이용한 윈드밀 궤적, 덩크찍는 순간의 임팩트, 공중동작 등등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본인만의 멋이 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 역대 덩커 4인방으로 꼽히는 조던, 윌킨스, 줄리어스 어빙, 카터 중에서 카터가 다른 이들보다 더 높게 평가받고, 조던이나 닥터J 등 클래식한 덩크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카터는 인정하는 편.

토론토는 빈스 카터의 활약을 앞세워 1999-00시즌에 팀 창단 처음으로 플레이오프에 발을 들였다. 물론 3게임만에 광탈.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비록 기존의 드림팀에 비해 2000년도의 드림팀4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으나,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카터는 팀내 최다득점을 올리며 활약했다.

파일:external/i.makeagif.com/MIxX4V.gif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프랑스팀의 센터 프레드릭 와이즈(키 218cm)를 뛰어넘느 슬램덩크를 작렬해 전 세계 농구팬들을 경악시켰다. 공태성 그때 같이 뛰었던 제이슨 키드는 "내가 본 플레이중 가장 최고." 라며 극찬했고, 프랑스 언론은 이를 두고 le dunk de la mort 죽음의 덩크 라고 표현했다. 세러모니를 하다가 뒤에 있던 케빈 가넷의 얼굴을 갈길 뻔 한 건 덤

후에 대한민국을 방문했을때 인터뷰 중 이 일을 언급했는데, 어떻게 저런 덩크를 했냐는 질문에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당시에는 너무 정신이 없었다. 정말 어쩌다가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나중에 195cm 정도 되는 선수를 세워놓고 다시 시도해봤는데 실패했다. 나중에 다시 하라고 하면 아마 못할것." 이라고 밝혔다.

2000-2001 시즌에는 팀을 컨퍼런스 세미파이널까지 올리면서 더욱더 인기가 치솟았다. 이 성적은 토론토가 2015-2016시즌 컨퍼런스 파이널에 진출하기 전까지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성적 중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7차전까지간 대접전의 상대는 앨런 아이버슨의 동부최강 필라델피아.

7차전을 앞두고 병크를 터트렸다. 이날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졸업식에 가고싶다고 전용기를 타고 갔다온 뒤 경기를 뛰었다. 이 시리즈에서 30.4점, 야투율 47.4%에 3점슛 성공률 42.2%를 기록하며 경기당 3개에 가까운 3점슛을 성공시켰는데 이 경기에선 20점 야투율 33.3%, 3점슛은 3개 던져 다 놓치는 부진에 시달렸다. 아이버슨이 같이 슈팅부진에 시달리지 않았다면 경기가 접전으로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오후 1시에 필라델피아 공항 도착ㅎ 4시간 반 뒤 5시 30분 경기에 출전했는데 영향이 없을 순 없다. 제롬 윌리엄스는 "어떤 전용기가 제공되었는지는 상관없어요. 그러면 루틴이 깨집니다(I don't chare what type of private jet was supplied, it breaks your routine)"라고 했고, 당시 "그의 선택을 지지한다"라고 했던 찰스 오클리 역시 훗날엔 "졸업식에 안 갔다면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2001-02 시즌부터 부상으로 고생했다. 60게임만에 시즌아웃 하면서 기록도 대폭 하락했다. 그 다음시즌은 아예 시즌의 절반가량을 날려먹으면서 또 개점휴업해야만 했다. 이때쯤부터 조금씩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구단과 갈등의 조짐도 보였다.

2004-05 시즌에는 최악의 최악을 보였다. 그동안 많이 부상당했다고는 하나 이 정도까지 부진할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랩터스 구단과의 갈등으로 인해 카터가 태업을 하는게 아니냐는 의심도 받았다. 결국 랩터스도 카터를 포기하기로 마음먹고 마침 슈퍼스타의 영입이 필요했던 뉴저지 네츠와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뉴저지는 두개의 1라운드 지명권과 알론조 모닝, 아론 윌리엄스, 에릭 윌리엄스를 내주는 조건으로 카터를 받아왔다[9]. 카터는 트레이드 된 후의 인터뷰에서 "열심히 하지 않았다." 라고 발언하면서 랩터스 구단과 팬들의 혈압을 올렸다. 이렇게 에어 캐나다와 토론토의 인연은 좋지 않게 끝났다.

2.2.1. 영웅에서 역적, 다시 영웅으로

한때 랩터스의 모든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캐나다 농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카터지만 트래이드 전후의 행동과 언행으로 토론토 팬들의 온갖 어그로를 끌어 한 때 공공의 적 수준이 되기도 했다. 프랜차이즈와 카터의 사이가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여름 전후로, 당시 랩터스의 지지부진한 성적에 염증을 느낀 카터는 랩터스의 이른바 "슈퍼팬"이자 자신의 친한 친구였던 나브 바티아(Nav Bhatia)의 입을 빌려 트래이드가 가능하다는 말을 언론에 흘렸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랩터스는 프런트 구성할 때 카터의 의지를 반영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정작 카터가 적극 추천했던 NBA 레전드 줄리어스 어빙이 아닌 스카우트 출신인 롭 밥콕을 고용하며 카터를 실망시켰고, 이에 카터는 공식적으로 트래이드를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당시는 오프시즌 후반이었기에 트래이드를 하긴 시간이 부족했고, 결국 카터가 공개적으로 팀에 불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개막을 맞이하는 최악의 상황이 펼쳐진다.

2004-05시즌 카터의 모습은 여러모로 최악이었다. 첫 19경기동안 그는 16.4점 3.5리바운드 3.2어시스트 야투율 41.5%를 기록하며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고, 무엇보다 별다른 부상이 없었음에도 플레이가 눈에 띄게 소극적으로 변했다. 심지어 인터뷰 도중 왜 예전처럼 덩크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자 실실 웃으며 "난 더 이상 덩크하고 싶지 않아요. 덩크는 과대평가되었어요(Dunking is overrated)"란 귀를 의심할 만한 망언을 남기기도 했다. 심지어 시애틀 슈퍼소닉스와의 경기 막판에는 상대팀을 향해 작전을 얘기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타임아웃 직후 "(스크린 작전) 플레어야! 플레어!(It's a flare! flare)"라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런 상황이니 카터가 태업을 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었고, 실제로 트래이드 이후 존 톰슨과의 인터뷰에서 "랩터스를 위해 최선을 다했냐"는 질문에 "최근 몇년간이라면 아니에요.(In the years past, no)"라고 대답했다. 뒤이어 카터는 "전 운 좋게 재능이 있었는데,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면 스스로 버릇이 나빠지죠. 열심히 안 해도 되니까요. 지금은 부상을 많이 당하니 더 열심히 해야 돼요. 좀 더 배가 고프죠. 새로운 시작을 하니 림어택을 더 하고 싶어졌어요.(Getting a fresh start has made me want to attack the basket.")"라고 답했다.

훗날 카터는 이 발언이 원래 의도와 다르게 편집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이 인터뷰가 방송된 이후 레이퍼 알스톤 등 그의 전 랩터스 동료들은 실망감을 표했다. 알스톤은 "상처를 받았다(It hurts)"라고 했고, 모리스 피터슨은 충격받았다면서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게 보였죠.(You could tell he wasn't playing his best)"라고 말했다.

심지어 카터는 본인의 20번째 경기(랩터스의 21번째 경기) 도중에 부상을 또 당하게 된다. 원래 대놓고 트래이드를 요구하는 스타는 시장에서 제 값을 받기 어렵기 마련인데[10] 거기에 부상까지 당해버렸으니 위에 언급된 대로 완전히 헐값에 뉴져지로 넘어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뉴져지에서 새 둥지를 튼 카터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부상당한 경기까지 해서 평균 15.9점을 넣던 카터는 트래이드 직후부터 올스타 주간 전까지 무려 26.2점 5.8리바운드 5어시스트 야투율 45.4%를 넣는 맹활약을 했다. 트래이드 전후만 보더라도 (부상 경기를 빼면) 트래이드 직전 5경기에서 17.2점 2.6리바운드 3어시스트 41.3%, 트래이드 직후 5경기에서 24점 6.2리바운드 3.6어시스트 야투율 45.6%로 수직상승했다.[11]

곱게 이적했다고 해도 팀의 슈퍼스타가 7년도 채 못 채우고 떠났다면 서운함이 있을텐데 이런 깽판을 치고 갔으니 랩터스 팬들이 악감정을 갖는 것은 당연지사였다.[12] 그전까지 전국구 스타가 없던 캐나다에 리그에서 가장 핫한 스타가 온만큼 애정도 컸고, 이 스타가 몇년간 부상 때문에 못 뛰다가 결국 이적하고, 심지어 이적 직후 뉴져지에서 그야말로 맹활약을 해대며 저런 어그로까지 끄니 빈정이 상한 것. 카터의 이적 후 첫 토론토 원정이던 4월 15일 경기에서 랩터스는 아무런 헌정 행사를 보이지 않고 그냥 원정 선수 소개하듯 소개했으며, 카터를 조롱하는 온갖 소품으로[13] 무장한 팬들은 그가 소개될 때 엄청난 야유를 퍼부었으나 정작 경기는 39점을 넣은 카터의 활약 덕에 뉴져지가 손쉽게 승리한다.

카터는 쏟아지는 야유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거나 "아름답다(It's beautiful)"라고 비꼬았으며, 2006-07시즌 당시 맹활약하던 크리스 보시를 향해 토론토 팬들이 "MVP!"를 연호하자 "MVP라고? 진심?"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물론 본인은 장난이라고 주장했다. 카터가 토론토를 떠난 후 한참 동안이나 랩터스 팬들의 야유는 계속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여론도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악감정이 조금씩 사그라지고, 카터가 리더십이 훌륭한 베테랑 선수로서 모범적인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것을 본 랩터스 팬들 사이에선 "이제 카터를 용서할 때가 된 것이 아닌가"하는 여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드마 드로잔카일 라우리를 중심으로 랩터스가 연속으로 애틀랜틱 디비전 우승을 차지하는 등 탄탄한 전력의 팀이 된 것도 한 몫을 했으며, 10여년이 지나 카터의 만행을 잘 기억 못하는 어린~젊은 팬들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게 된 것도 영향이 컸다.

2014-15시즌 초반에 카터가 뛰고 있던 멤피스 그리즐리스가 원정을 오자 랩터스는 모험수를 두는데, 처음으로 경기 전에 그의 헌정 영상을 상영한 것이다. 이 영상이 상영되자 처음에 야유를 보내던 랩터스 팬들은 곧 자리에서 일어나 카터를 기립박수로 맞았고 카터는 이에 연신 흐르는 눈물을 운동복으로 닦아내며 팬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장장 10여년간 이어진 토론토와 카터 간의 악감정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랩터스 팬들은 대체적으로 카터를 "과거 프랜차이즈의 레전드"로 호의적으로 대하는 분위기이고, 가끔 카터가 벤치로 물러날 때 기립박수를 보내고 카터는 이에 손을 흔들며 화답하는 관계가 되었다.

2.3. 뉴저지 네츠

뉴저지 네츠는 지난 2년간 파이널에 진출했던 그 전력이 아니었다. 캐년 마틴의 이적. 리차드 제퍼슨이 잘 나가다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거의 제이슨 키드가 혼자서 팀을 이끌어야 할 판이었다. 네츠 구단도 키드가 불만을 터트리기 전에 잽싸게 카터를 영입했고 이는 좋은 선택이었다. 카터는 제이슨 키드라는 리그 최고의 포인트 가드의 지원을 등에 업고 다시 활약했다. 네츠 유니폼을 입고 처음 몇경기는 적응단계였다가 경기를 진행할수록 전성기에 못지않은 대활약을 펼쳤다. 57경기동안 27.5점을 기록하면서 뉴저지가 플레이오프 막차를 타는데 공언했다. 하지만 마이애미 히트에게 4전전패로 1라운드에서 광속탈락하고 말았다.

카터와 키드 그리고 제퍼슨 이 삼인방은 2005-06시즌부터 제대로 된 호흡을 맞추었다. 좋은 활약상을 보여주긴 했으나 팀 성적이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컨퍼런스 세미 파이널에 2년연속 오르는 등 그런대로 동부강호로써의 면모는 보여주는 정도였다. 그러나 2007-08시즌 제이슨 키드가 댈러스로 트레이드 되면서 이 뉴저지의 빅3는 해체되었다. 그리고 시즌 종료후 리차드 제퍼슨도 밀워키 벅스에 트레이드 되면서 네츠에는 카터 혼자만 남게 되었다.

카터는 네츠의 리더로써 팀을 이끌어갔으나, 이미 과거의 폭발력은 많이 감소한 상태였다. 그리고 돌파보다는 점프슛만 쏴대고, 경기에 져도 싱글벙글 하는 등 맨탈적인 부분이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뉴저지 네츠 역시 브룩 로페즈와 데빈 해리스 위주로 팀을 재편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카터에게 더 이상의 미련이 없었다. 2008-09시즌이 끝나고 우승전력을 위해 올랜도가 트레이드를 제안하면서 카터는 올랜도로 트레이드 되었다.

2.4. 올랜도 매직

카터는 플로리다 데이토나 해변에서 태어났다. 올랜도 매직은 고향인 플로리다 주에 연고를 두는 팀이었다. 카터 역시 기쁨을 나타내면서 올랜도의 우승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많은 팬들은 카터와 하워드의 결합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2008-09시즌 파이널에서 레이커스에게 패한 올랜도는 목표가 우승으로 높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경험많은 베테랑 카터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다. 카터는 제 몫은 했지만 확실히 기량은 많이 하락한 상태였다. 48득점을 하기도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올랜도는 컨퍼런스 파이널에 올랐지만, 보스턴 셀틱스에게 패하면서 우승에 실패했다.

2.5. 피닉스 선즈

2010-11시즌에는 거의 조용하다 싶을 정도로 시즌을 치르고 있다가 올랜도가 공격력 강화를 위해 그를 피닉스 선즈로 트레이드 해 버렸다. 고향팀에서 경력을 마무리하고 싶었던 카터의 꿈은 무산되었다. 피닉스 선즈로 팀을 옮겼지만 카터는 이제 거의 옛날의 모습을 찾기 힘들어보였다. 젼혀 내쉬효과를 누리지 못했다. 피닉스는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카터 역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시즌을 마감했다.

2.6. 댈러스 매버릭스

피닉스 선즈에서 방출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댈러스 매버릭스와 3년계약을 맺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비록 예전과 같은 기량은 더 보여주지 못하지만 아직까지는 평균정도는 할수 있는 기량은 있기 때문에 댈러스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택. 짬밥이 많이 쌓였다보니 경기운영이나 수비력도 좋은 수준에 도달해 괜찮은 베터랑 식스맨으로 자리잡았다. 단 프랜차이즈 스타인 디르크 노비츠키가 늙고 우승팀급 전력에는 미치지 못하는 팀 사정상 댈러스에서 반지를 얻고 은퇴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14년 샌안토니오 스퍼스하고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3차전에서 기적같은 3점 버저 비터로 팀의 역전승을 만들어냈다. 토론토 시절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필라델피아전에서 실패했을 때와 거의 비슷한 구도였는데 이번에는 성공.

2.7. 멤피스 그리즐리스

2014년 오프시즌에 멤피스 그리즐리스와 3년 124억원 가량의 계약을 맺었다고 보도되었다. 어느덧 리그 최고참급이 되어 벤치멤버로 커리어를 마무리하는 중. 통산 24,000 득점을 돌파한 24번째 선수가 되었고 불혹의 나이가 된 2016년에도 20득점을 두 차례 기록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멤프스에서 벤치 멤버의 요원으로 솔솔히 확약하고 특히 2016-2017에 선발인 토니 앨런이 부상당하자 스타터로 뛰기도 하였다.

2016-17 플레이오프에서 스퍼스와 접전을 했는데 요소요소에 중요한 활약을 펼치며 2-2 까지 만들었지만 더 전력이 강했던 스퍼스에 결국 2-4로 패했다. 스퍼스와의 경기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는데, 스퍼스는 현 NBA 팀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팀이라 카터 vs 지노빌리의 노장 투혼을 관람할 수 있는 경기이도 했다. 두 노장이 공 하나 뺏겠다고 코트에 뒹구는 훈훈하면서(...) 나이든 투혼을 보여주기도 했다.

같은 드래프트 동기인 피어스가 PO 이후 은퇴를 선언함에 따라 FA가 된 카터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렸는데 아직은 은퇴할 생각없이 2년 정도 더 뛰고 싶다고 하더라.[14] 이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링 체이스"[15] 걸 하지 않냐고 제안이 들어왔지만 반지보다는 플레이타임 보장이나 팀 기여에 더 관심을 두고 있으며, 그 말대로 리빌딩 팀인 새크라멘토 킹스와 계약을 했다.

2.8. 새크라멘토 킹스

휴스턴과의 홈 개막전에 출전했고 3점슛 3개 중 2개 성공시켰다. 이 경기에서 2017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 디애런 팍스가 인상적인 킹스 데뷔전을 가졌는데, 그 디애런 팍스가 태어난 해가 1997년 12월 20일이고 카터의 데뷔가 직장폐쇄로 50경기 단축시즌인 1998/99시즌.. 즉 팍스가 생후 12개월 정도 지났을 때 카터는 NBA에 데뷔하여 엄청난 덩크와 앨리웁을 보였다.

한국 시간 12월 28일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전에서는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24득점 FG 10/12로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

아무래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전성기에 비해선 크게 모자라지만, 수비와 3점으로 쏠쏠하게 제 몫을 하고 있다. 특히 영건들의 멘토이자 라커룸 리더로서의 역할을 차고 넘치게 수행해 주고 있다. 올 시즌이 끝난 이후에도 커리어 연장 의사가 있다고.

2.9. 애틀랜타 호크스

한국 시간 2018년 7월 26일, 애틀랜타 호크스와 1년 240만 달러 계약을 맺으며 NBA 최고령 선수 기록을 이어나가며, NBA에서의 21번째 시즌을 맞았다. 이로서 카터는 역대 가장 오랜시즌을 뛴 선수 공동 1위가 되었다. 현역 중에서는 디르크 노비츠키와 단 둘 뿐인 1990년대를 경험한 선수로 남아있었으나 노비츠키도 18~19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면서 유일하게 90년대를 경험 선수가 되었다. 시즌 76경기, 평균 17.6분을 뛰며 평균 7.6점을 넣는 노장으로서 쏠쏠한 역할을 해주었다. 통산 25,000점을 다른 팀도 아닌 토론토 랩터스를 상대로, 그것도 덩크로, 그다운 모습으로 성취하였다. 시즌 종료 후, 애틀란타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년에도 뛰겠다고 커리어 연장 의사를 밝혔다!

한국시간 2019년 8월 6일, 애틀랜타 호크스와 1년 재계약했다. 자세한 계약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 시즌과 비슷한 최저연봉일 것으로 예상된다. 2019-20시즌이 그의 22번째 시즌이 될 예정이다. 디르크 노비츠키, 케빈 가넷, 케빈 윌리스, 로버트 패리시를 제치고 NBA 최다 시즌 출전 기록을 세운다. 그가 2020년에도 뛰게 되면서 NBA 역사상 최초로 네 번의 십년대(decades, 1990, 2000, 2010, 2020년대)를 뛴 선수가 되었다.

ESPN에 나와서 19~20 시즌 이후 은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근데 이 양반은 작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겠다고 했다가 뛰고 있는지라..

당연히 풀타임을 소화하지는 못하지만, 경기에 꾸준히 나와주시고 계신다. 팀이 10경기를 하면 9경기에 나오는 수준이며, 그것도 가비지 타임이 아니라 후반 승부처에 나와서 득점을 올려주며 팀을 승리로 이끌고 있다! 최저연봉임을 감안하면 밥값을 충분히 해주고 있는 셈. 성적 지표도 팀이 최하위임을 고려하면 작년과 비교해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작년과는 달리 시즌 중반에 접어들어서까지 GS가 0이고 현재 애틀랜타가 탱킹 시즌이어서 경기 출전이 가능하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2020년 3월 12일 루디 고베어도노반 미첼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을 받으면서, NBA 시즌 전체가 중단되었다. 상황이 빠르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같은 날 진행된 뉴욕 닉스와의 경기가 그의 커리어 마지막 경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아무도 그 경기가 은퇴 경기가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은퇴 관련 행사도 진행하지 않았는데 감독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승부가 결정된 후 마지막 공격에 투입되어 3점슛을 넣고 경기를 끝내기는 했다. 이런 식으로 커리어를 끝내기를 원치 않은 많은 팬들은 그에게 한 시즌만 더 뛰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트위터에서의 감사 인사 등으로 미루어보아 더 이상 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구단주 총회에서 플옵 가능성만 있는 팀들끼리 올랜도 한 곳에서만 무관중으로 시합을 재개하기로 합의하면서[16] 플옵과는 거리가 먼 애틀란타는 이대로 시즌을 끝내게 되었으며, 빈스 카터는 공식적으로 현역을 은퇴했다.

19~20시즌을 끝으로 빈스 카터가 은퇴하면서 그는 NBA 역사에 길이 남을 몇 가지 기록들을 남겨 놓게 되었다.
몇 가지를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역대 통산 출장 기록 3위(1541경기, 1위 로버트 패리시, 2위 카림 압둘자바, 4위 디르크 노비츠키)
2. 역대 통산 출전 시간 15위(46367분, 1위 카림 압둘자바 57446분, 16위 레이 앨런 46344분)
3. 역대 통산 필드골 순위 21위(9293개, 1위 카림 압둘자바 15837개, 23위 제리 웨스트 9016개)
4. 역대 통산 3점슛 순위 6위(2290개, 1위 스테픈 커리 3034개, 7위 제이슨 테리 2282개)
5. 역대 유일의 통산 1000 덩크 & 2000 3점슛 필드골 기록 동시 보유
6. 역대 최고령 단일 경기 20득점 기록 선수(만 42세, 종전기록 카림 압둘자바의 만 41세)
7. 역대 최고령 단일 경기 3점슛 7개 성공 선수.(만 42세)
8. 역대 유일 4번의 10년대(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2020년대)를 소화한 NBA 선수
9. 역대 NBA 선수들 중 가장 많은 동료들과 경기를 뛴 선수(총 248명)

3. 플레이 스타일

역대급 운동능력을 가진 선수 중 하나로 다양한 방식으로 림어택이 가능했다. 드리블이 준수한 편이라 동시대의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앨런 아이버슨 급은 아니지만 그 바로 아래의 돌파력을 가지고 있었다. 힘도 좋고 포스트업 기술도 있어 포스트 플레이도 자주 보여줬다.

덩커로서의 이미지가 워낙 좋은지라 종종 묻히는 사실인데, 전방위 슈팅 능력도 뛰어났다. 3점 라인 근처에서 드리블해 들어오다가 던지는 미들레인지 점퍼도 준수했고, 커리어 평균 성공개수 1.5개, 성공률 37.1%를 자랑할 정도로 3점 능력도 출중하다. [17] 자유투 역시 전성기 시절에는 통산 79.8%로 준수한 성공률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슈팅 능력을 가지고 있던 덕분에 운동능력이 많이 떨어진 커리어 후반부에는 3&D 플레이어로의 전환도 무리없이 해낼 수 있었다.

시야는 준수한 편이었지만 동시대 6성 슈가의 일원들인 앨런 아이버슨,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코비 브라이언트처럼 보조 리딩 혹은 메인 볼핸들러로서 활약하기에는 아쉬운 수준이었다. 팀원들을 살려주는 것 보다는 자신이 직접 마무리하는 플레이를 선호했다. 뉴저지 네츠 시절의 제이슨 키드처럼 리딩을 전담할 선수가 있는 것도 한 몫 했다.

종합적으로 보자면 최고 수준의 운동능력을 이용한 앨리웁 받아먹기와 페이스업 돌파와 포스트업, 준수한 슈팅력을 이용한 미드레인지 점퍼와 3점슛 등 다재다능했던 스윙맨. 다만, 모든 능력이 A급이었지만 당대 최고 수준에서는 한 끝 모자란 점이 약간 아쉬웠던 선수로 볼 수 있다.

4. 수상 내역

수상 내역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세컨드 팀 (2001)
파일:NBA 로고.svg 올-NBA 서드 팀 (2000)

파일:NBA-Allstar2021.png NBA 올스타 8회 (2000-2007)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신인상 (1999)
파일:NBA 로고.svg NBA 올-루키 퍼스트 팀 (1999)
파일:NBA 로고.svg NBA 슬램덩크 콘테스트 챔피언 (2000)
파일:NBA 로고.svg NBA 올해의 팀메이트상 (2016)
파일:NBA 로고.svg NBA 스포츠맨십 어워드 (2020)
파일:오륜기(여백X).svg 2000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5. 농구화

  • 루키 시즌에는 푸마나 And1의 신발도 신었다. 슬램덩크 컴피티션에서 신었던 신발이 바로 And1의 타이치. 그러나 곧 나이키와 계약을 맺어, 당시 나이키가 크게 집중하고 밀어주던 Shox 쿠셔닝 농구화의 간판 모델이 되었다.
  • 시그니처 시리즈는 아니지만 Shox BB4 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했다. Shox 쿠셔닝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농구화로, 앞축에는 줌에어를, 뒷축에는 4개의 Shox 기둥을 깔아놔 '전줌후샥'의 공식을 만들어낸 농구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선수단에 지급되어서 카터도 PE를 신었고, 이후 선수생활 말년에도 리트로된 Shox BB4를 꾸준히 신었다. 오히려 선수 생활 말년에는 시그니처였던 VC 시리즈는 하나도 신지 않았던 것과 대조적.
  • 시그니처로는 나이키 Shox VC 시리즈가 나왔다. VC1은 당시 Shox 쿠셔닝을 앞축에까지 넣은 최초의 농구화.
  • VC2는 디자인을 더 다듬고, 아예 Shox 쿠셔닝을 아웃솔 전장에 깔아버렸다. 특히 카터가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 7차전까지 가는 아이버슨과의 쇼다운을 펼치던 그 시즌에 신었던 신발이어서 인기도 대단했다.
  • VC3는 더욱 대담하게 아예 미드솔을 생략하고 전장 Shox 쿠셔닝을 도입했다. 다만 이게 안정성의 문제가 있었는지, 카터가 부상을 입어 출전을 많이 못한데다가 토론토 랩터스에서의 태업이 겹쳐서 판매량은 부진했다.
  • 전장 Shox의 안정성에 대해 카터가 만족을 못했는지, VC4에서는 Shox BB4와 같이 앞축에는 줌에어를 깔고 뒷축에는 6개의 Shox 쿠셔닝을 깔았다. 이 당시 후문으로는 나이키의 Shox Lethal이 원래 카터의 시그니처가 될 예정이었는데, 카터가 전줌후샥을 요구해 보급형 Shox 농구화로 기획중이던 디자인이 VC4가 되고 이후 전장 줌에어로 디자인 되고 있던 게 Shox Lethal이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인지 VC4는 시그니처로서 특징이 거의 없는 평범한, 어찌보면 다소 심심한 디자인. 다만 이미 검증된 전줌후샥 답게 성능으로는 VC5와 함께 시리즈 최고의 성능을 자랑한다. 전장 줌에어가 제법 두껍게 깔려있어서 풍부한 쿠셔닝으로는 시리즈 최고이며, 피팅도 메시 소재를 활용하여 쾌적함과 함께 더 포근하게 발을 잡아준다. 올스타전에서 원맨 앨리웁을 보여줬을 때 신던 신발이 바로 VC4.
  • VC5는 부랴부랴 시그니처로 변경된 VC4를 더욱 시그니처 운동화답게 다듬은 디자인. 성능으로는 VC4와 함께 최고. VC4에 비해 전줌후샥 쿠셔닝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장 줌에어를 더 얇게 깔아서 코트필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좋고, 발등에는 밴드를 더해 핏팅감을 더 타이트하다. 전반적으로 VC4를 카터의 취향에 맞게 완성시킨 신발이라는 느낌.

6. 여담

  • 포스트 조던[18]으로 언급되었던 사람들 중에 코비 브라이언트와 제리 스택하우스[19] 못지않게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선수였다. 그리고 첫 3시즌 동안은 정말 거의 조던의 뒤를 이을 슈퍼스타 포스였다. 실제로 운동능력 하나만큼은 조던 이상 이라는 평가까지 받았을 정도. 하지만 부상을 이기지 못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카터는 인기라는 측면에서는 올스타 투표 1위를 무려 4회나 했을 정도로 슈퍼스타였고 올스타 이력도 8번이나 되지만, 기량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MVP 레벨은 아니었으며 수상 이력도 All-NBA Team 세컨드팀 1회 서드팀 1회에 그쳤고 파이널 진출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현대로 비유하자면 특유의 화려함으로 인기와 인지도는 NBA에서 최상위권에 들어가지만 실력이 퍼스트팀 급은 못되는 카이리 어빙이 비슷한 사례. 한마디로 뛰어난 선수인 건 맞는데 인기가 실력을 넘어서는 선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와 정확히 반대되는게 바로 동시대의 팀 던컨.
  • 갖추고 있던 재능 자체는 다른 포스트 조던 경쟁자들에 비해 결코 꿀리지 않았으나(코트비전, 운동능력, 정확한 3점 등) 이 재능들을 받쳐주는 기본기들이 조금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평가가 지배적. 그래도 운동능력으로 먹고 살았다는 이미지하고는 달리 연습을 통해 슛을 장착해 나이를 먹고 나서도 도태되지 않고 리그에서 오래 살아남는데는 성공했다. 3점은 이미 2000-01시즌 40%를 넘길 정도로 좋았다. 즉 덩커 이미지가 매우 강해서 나머지 부분들이 가려진 것 이다. 스탯은 폴 피어스와 비슷했다.[20] 평균 25점 내외, 6리바운드, 3어시스트. 또한 전성기 때는 부상이 잦은 편이었으나 말년에는 포스트조던 중에서 가장 훌륭한 몸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선수이다.[21]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그의 덩크 실력. 만 40세가 넘긴 2017-18시즌까지 역 360도나 윈드밀 정도는 연습중에 쉽게 하며 (물론 전성기 때 높이는 아니다) 경기 중에도 종종 호쾌한 덩크를 한다. 이 때문에 리그 내외 전문가들과 팬들이 덩크 콘테스트 참가를 종용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참가 루머가 돌기도 했으나 이뤄지진 않았다.
  • 트레이시 맥그레이디와 먼 친척 사이이다. 카터가 슬램덩크 콘테스트 우승할 때 맥그레이디는 카터와 경쟁하는 한편 카터의 덩크를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도 해줬다. 국내에서는 cousin=사촌이라고 번역하기 때문에 사촌이라고 알려졌는데 정확히 말하면 먼 친척이다. 카터의 할머니(친가인지 외가인지는 불명)의 시아버지가 맥그레이디네 할머니의 남자형제라고 한다. 촌수로 따지면 카터 할머니 시아버지라면 카터에겐 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3촌 사이인 증조부가 되고, 증조부의 여자형제(카터 입장에선 5촌 증대고모)인 분의 손자가 티맥이기 때문에 카터와 티맥은 촌수로 따지면 7촌, 카터 입장에서 티맥은 항렬이 하나 높은 내재종숙(외가라면 외재종숙), 즉 7촌 숙부님(...)이 된다. 물론 재미로 한국처럼 촌수 따지면 그렇게 된다는 거고 미국에선 당연히 그냥 먼 친척이고 그냥 친구처럼 지낸다.
    원래 티맥과 카터는 알고지내던 사이로 카터의 대학시절이자 티맥은 드래프트 준비하던 97년 여름 당시 서로 픽업농구도 같이 하는 지인 정도였다고 한다.[22] 그런데 하루는 티맥이 친척 행사에 참석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카터의 할머니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학교 다녔니? 우리 손주도 거기서 대학 다니는데, 빈스 카터라고"하면서 둘이 친척이란 걸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할머니가 카터에게 전화를 해줘서 티맥이 "What up cuz![23] 나 티맥이야!"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둘이 서로 자주 전화통화도 하고 친한 사이가 됐다고 하며 트래이드로 랩터스에 카터가 합류했을 때 티맥이 흥분해 "내가 얘기했잖아 cuz! 걔들(팀 프런트)한테 너 데려오라고 했다고"라고 했다고. 팀 동료 디 브라운은 둘에 대해 "친척이라곤 하지만 샴쌍둥이 같던데요"라고 할 정도로 둘은 친했다. 티맥이 올랜도로 떠날 때 잠깐 둘 사이 갈등이 있었지만 금방 화해했다고 한다.[24]
  • 플레이오프에 50득점 이상을 한 선수중 한명이며[25], 3점 슛 성공수도 역대 10위 안에 들어간다.
  • 그의 모습을 본뜬 레고 미니피겨가 레고 스포츠 시리즈 3562 제품으로 출시된 적이 있었다.
  • 2010년 봄에는 자신의 고향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슬슬 은퇴 후를 준비하는 듯 보인다.
  • 개인 홈페이지가 있다. 카터에 대한 소식이 궁금하면 바로 가보도록 하자. 주소는 여기
  • 은퇴를 1년 앞뒀던 2018-19시즌 애틀랜타 호크스 소속으로 통산 25,000득점을 완성하였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한국나이 기준으로 무려 43살이었다. 동갑내기 NBA 선수들 중 명예의 전당 티켓을 예약한 선수를 꼽아보자면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슈퍼 레전드인 마누 지노빌리가 있는데 지노빌리는 당시 이미 은퇴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25,000득점을 완성시킨 플레이는 다름 아닌 투핸드 덩크. 그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덩커라는 걸 스스로 증명한 셈.
  • 2019-20시즌 기준으로 NBA 최고령 선수이며, 한 살 어린 노비츠키의 은퇴로 현재 NBA에서 현역으로 뛰는 유일한 70년대생 선수가 되었다. (덤으로 유일한 40대) 얼마나 나이가 많냐면 77년 1월생이라 2020년 3월 기준 43세인데, 팀 동료 트레이 영아버지가 77년 11월생이라 아직 생일이 안 지나 42세로 카터보다 어리다. 즉, 문자 그대로 아들뻘과 뛰는 셈. 참고로 카터가 98년 드래프티인데 영은 98년 9월생, 즉, NBA에 입성하고 나서 영이 태어났다.
  • 1998년에 데뷔한 그는 19-20시즌까지 뛰면서 90-00-10-20년대까지 사상최초로 네번의 10년대를 뛴 NBA선수라는 엄청난 타이틀을 얻게 되었다.
  • 넷플릭스에 빈스 카터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인 '더 카터 이펙트(The Carter Effect)'가 올라와 있다. 말 그대로 빈스 카터가 토론토라는 도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가가 주된 내용. 관심이 있다면 한번 쯤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 22년 가까이 뛰었던 레전드 선수였지만 정작 저니맨 생활이 길어서[28] 영구결번을 줄 팀은 토론토 랩터스와 브루클린(뉴저지) 네츠 정도뿐. 토론토 랩터스에서 주어야한다는 말은 많았지만 카터의 랩터스 후반기의 태업은 정말 작정하고 팀을 떠나려고 하며 팬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행동이었기 때문에 "팀의 첫 영구결번을 태업한 선수에게 줘야 하냐?" 라면서 반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다만 태업 사건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르기도 했고, 카터가 계속해서 거만한 슈퍼스타의 모습을 보였다면 몰랐어도 태업 사건 이후엔 상당히 모범적인 선수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미지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29][30] 그리고 마침내 2024년 11월 2일에 토론토 랩터스에서, 2025년 1월 26일에 브루클린 네츠에서 각각 15번을 영구 결번할 예정이다.[31][32]

7. 관련 문서



[1] 2019년 측정. 맨발 기준 198cm (6' 6") / 착화 신장 201cm (6' 7")[2] 선수시절에 측정된 체중이고, 선수 은퇴를 한 현재는 더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3] 드래프트 당일 4순위로 지명된 앤트완 제이미슨과 트레이드 되어 토론토 랩터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한다.[4] 케니 스미스가 지어준 별명이다. 2000년 올스타 주간 당시 슬램덩크 대회 전에 진행된 TNT의 pre game show의 일환으로 크렉 세이거가 카터를 인터뷰하는데, 여기서 세이거가 "케니 스미스가 지어준 별명 half man/half amazing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는다.[5] 왜 먼저 지명권이 있었던 토론토가 굳히 다른 선수를 지명한 후 트레이드로 대려왔는지 궁금할수도 있는데, 이는 워리어스가 어떻게든 꼭 앤트완 재미슨을 뽑는것을 원해서 당시 토론토행의 루머가 있었던 재미슨을 안전빵으로 대려오길 위해서였다. 사실 당시 토론토는 처음부터 카터를 원했고 실제로는 재미슨에 그리 큰 관심이 없었는데도 재미슨 루머가 돌자 재미슨에 러브콜을 하는 블러핑을 하고, 이에 조급해진 워리어스에게 접근하여 돈을 추가로 삥뜯고 랩터스의 재미슨 지명 후 워리어스가 카터를 뽑고 트레이드를 하는것으로 합의 하였다.[6] 마침 에어 캐나다가 랩터스의 홈구반 구장명명권을 가지고 있었다.[7] 여담으로 이때 스미스와 동료였고 같이 해설을 맡은 찰스 바클리가 열심히 극딜을 했는데, 케빈 할런이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로 이뤄진 심판진이군요"라고 하자 굳이 "전부는 아니에요"라고 하고 조지 거빈 등이 하나하나 거론될때마다 일일이 "명예의 전당 헌액자고요"라고 하고 아직 헌액이 되지 않았던 루디 톰자노비치(2021년 헌액)가 언급되자 "저 분은 명예의 전당에 올라야하는 분이에요"라고 했지만 마지막 스미스의 소개에 "헌액자 아닌 사람이에요(And the NOT Hall-of-famer)"이라고 신나서 얘기했다. 이 말을 들은 스미스는 "아직 자네도 안 들어갔잖아. 여기저기 연락 돌린다?"고 응수.[8] 여담이지만 결승에서 선보인 덩크들은 그가 즉흥적으로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허니딥을 하기 직전에 카터는 공을 들고 골대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오는데, 퍼포먼스처럼 보였지만 훗날 그는 인터뷰에서 "그때까지 무슨 덩크를 해야할지 생각이 안 났다"고 했다. 허니딥의 경우 이제는 제법 덩콘에서 흔한 덩크가 됐지만 이를 처음 선보인 것은 카터였다. 마지막 투핸드 덩크는 아이디어가 고갈된 게 티나 만점은 못 받았다.[9] 정작 트레이드의 핵심이였던 알론조 모닝은 토론토에서 뛰는걸 거부하는 바람에 랩터스는 얼마 못가 어쩔수 없이 바이아웃을 진행하여 그를 방출하였다.[10] 원 소속팀이 급하게 처분하고자 하는 거니 당연히 매물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시장에서 급매물이 비교적 헐값을 받는 것과 같은 원리.[11] 카터는 이 시즌 뉴져지에서 27.5점 야투율 46.2%란 전성기 수준의 기록을 남겼으며, 이때 알론조 모닝과 몸통박치기를 해서 밀쳐내고 그의 머리 위에 찍은 덩크는 카터 커리어 최고의 덩크 중 하나로 꼽힌다. 이토록 엄청난 덩크지만 사실 이건 랩터스 팬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환장할 만한 그림인데, 덩크하는 놈은 대놓고 태업하다가 나갔고, 막는 놈은 아파서 못 뛰겠다고 해놓고 랩터스가 바이아웃 해주자마자 곧장 딴 팀 가서 계약했다.[12] 사실 국내엔 랩터스 팬층이 적기 때문에 큰 반향이 없었지만 2005년, 06년 당시 토론토 현지 팬들의 반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이들은 카터를 quitter라고 부르며 매우 싫어했다.[13] 카터의 이름이 커다란 X로 지워진 져지, 조롱하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 등.[14] 인터넷 댓글들도 아직까지는 더 뛸 수 있겠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15] 우승 반지를 쫓는[16] 다만 포틀랜드만은 합의를 하지 않았다.[17] 2020년 3월 14일 현재 통산 3점슛 성공 5위에 올라있다.[18] 앤퍼니 하더웨이, 그랜트 힐도 초창기 포스트 조던 선수였다. 당시 젊고 조던과 비슷한 신장 혹은 유형의 선수는 거의 다 그 후보군에 올랐다. 그 만큼 조던의 빈 자리를 우려했다는 증거[19] 스택하우스는 1시즌만에 포스트 조던 자리에서 내려왔다. 전체득점선두를 할 정도로 득점력은 있었으나 야투율이 지나치게 낮았고 무엇보다 스타성이 부족했다. 사실 스택하우스가 포스트조던 소리를 듣던 건 커리어 초창기 뿐이었다. 조던과 똑같은 6피트6인치 신장, 노스캐롤라이나 출신, 드래프트 3순위, 폭발적인 운동능력과 득점력 때문에 조던에 비교되었으나 못하는게 없었던 조던과 달리 득점력을 제외하면 별로 내세울 게 없었다.[20] 다만 두 선수 모두 은퇴를 한 이후 현재 평가는 피어스 쪽이 훨씬 압도적이다. 일단 All-NBA Team에서는 카터가 세컨드팀 1회, 서드팀 1회에 그친 반면에 피어스는 세컨드팀 1회, 서드팀 3회로 우위에 있고, 올스타 선정 횟수에서도 카터는 8회, 피어스는 10회로 우위에 있다. 무엇보다 카터는 커리어 내내 파이널 진출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한 반면에 피어스는 파이널 진출 2회에 우승 1회, 파이널 MVP 1회를 수상하면서 두 선수의 커리어는 엄청난 차이가 생겨버렸다.[21] 아이러니하게 동년배 라이벌들 중에 전성기 때는 롱런하지 못할 거란 예측이 (단신이고 돌파형인) 앨런 아이버슨 다음으로 가장 많았던 게 카터이다. 당시 그는 3점슛도 뛰어났지만 폭발적인 운동능력에 의존하는 정도가 높았으며 부상도 은근 잦았기 때문이다. 동갑인 폴 피어스처럼 운동능력 떨어져도 몸빵과 스킬로 먹고사는 선수도 아니고, 코비처럼 심할 정도의 독종도, 레이 앨런만큼 수도사처럼 금욕하며 철저하게 몸관리와 연습을 하는 선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쇠락하여 은퇴한 이후에도 혼자 현역으로 뛰고 있다. 언뜻 부각되지 않는 몸관리와 노력이 얼마나 뛰어난 지 알 수 있는 부분.[22] 카터가 77년생 티맥은 79년생으로 카터가 두 살이 많고, 당시 카터는 대학 2학년 시즌이 끝났고 티맥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NBA드래프트 직행을 선언한 상태였다.[23] cousin의 줄임말로 실제 친척에게 쓰기도 하지만 친한 사람들끼리 쓰기도 한다. 애초에 미국에선 혈연이 없어도 한국식으로 하면 이웃사촌처럼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을 counsi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24] 2001년 기사에 따르면 당시 중재자 역할을 한 것은 베테랑 찰스 오클리였다고 한다. 둘은 트래이드 이후 카터가 티맥의 전화를 씹는 등 대화가 끊긴 상태였지만 티맥과 통화를 하고 있던 오클리가 갑자기 카터에게 수화기를 건넨 이후 다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고. 이후 예전처럼 대화를 자주하는 사이가 됐고 올스타 위켄드에서 같이 뭐할까 계획을 짜기도 하는 사이가 됐다고 한다. http://static.espn.go.com/nba/columns/stein/1034855.html.[25] 이게 대단한 게 지금까지 플레이오프에서 50점을 넘긴 선수는 23명으로 총 36번 일어났다. 카터의 경우 정확히 50점으로 2001년에 달성했다. 여담이지만 가장 많이 50점을 넘긴 선수는 마이클 조던으로 8차례, 그 다음은 윌트 체임벌린으로 4차례, 앨런 아이버슨으로 3차례, 제리 웨스트로 2번이다. 그 외엔 전부 1번씩으로 가장 최근에는 르브론 제임스가 2018년 파이널에서 달성했다(51점). 60점을 넘긴 선수는 조던과 엘진 베일러 뿐이다.[26] 전직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며, 키가 193cm에 달하는 거구 중 하나다. 좋은 신체조건에 비해 프로레슬링 경기력이 좋지 않아 한국팬들한테 욕을 먹는 선수다. 절친한 친구가 바로 데이브 바티스타[27] 타이터스 오닐이 조직한 스테이블로 아폴로 크루즈, 토자와 아키라 등 신인 선수들을 키워주는 역할을 한다. 사실 이 스테이블은 타이터스 오닐이 프로레슬링 실력이 되지 않다 보니 앞에 언급한 실력이 좋은 신인들과 같이 다님으로써 선수 활용을 하려고 만든 거라고 보면 된다.[28] 2009년부터 2020년까지 6팀을 떠돌아 다녔고 그 팀들 중에서 파이널까지 진출한 팀은 없다. 올랜도 매직(08-09준우승)과 댈러스 매버릭스(10-11우승)의 경우에는 파이널 진출 다음 시즌에 입단했다.[29] 토론토는 다른 클럽 연고지들에 비해 농구 팬도 적고, 워낙 떠나는 스타들도 많기 때문에 프랜차이즈 스타가 되기 위한 관문이 다른 클럽에 비해 높지 않다. 심지어 카와이 레너드가 우승 직후 했던 이적도 예견된 수순이었을 정도로 토론토는 농구 프랜차이즈로선 빈약한 곳인데 실제로 2020년 기준 우승 1회에 디비전 우승횟수가 7번이고 모든 디비전 우승이 2007년 이후, 그나마도 두번째부터는 2014년 이후인 것도 크다.[30] 만약 NBA 내에서도 레이커스나 셀틱스 같은 최고 전통 명문팀, 혹은 NHL토론토 메이플리프스같은 하키 명문 클럽에서 태업하다 떠났다면 영구결번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카터로서는 당시 랩터스가 스몰마켓이었던게 영구결번되는데에 있어서 오히려 천만다행이었다.[31] 원클럽맨은 아니지만 토론토에서 스타로 거듭났으며 첫번째 우승의 주역이자 사실상 프랜차이즈 스타라고 봐야 하는 카일 라우리가 은퇴할 가능성도 높았으나 빈스가 먼저 이뤄졌다.[32] 태업하던 시절을 기억하는 팬들의 비판에 대해서 빈스 카터는 이해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33] 실제로 theScore에서도 NBA 75주년 팀에 선정되지 못한 가장 아쉬운 선수로 카터가 1위로 꼽히기도 하였다.#[34] 다만 카멜로와 릴라드와 비교하면 여러 수상 커리어에서 큰 차이가 있기는 하다. All-NBA Team 같은 경우 카멜로는 세컨드팀 2회, 서드팀 4회로 총 6회, 릴라드도 퍼스트팀 1회, 세컨드팀 4회, 서드팀 2회로 총 7회로 세컨드팀 1회, 서드팀 1회로 총 2회에 그친 카터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올스타 선정 횟수도 카멜로는 10회로 이미 카터의 8회를 넘었고, 릴라드는 8회로 카터와 동일한 횟수지만 아직 34세에 현역으로 노쇠화로 인한 부진이 빨리 찾아오지 않는다면 올스타에 더 뽑힐 가능성도 있어 카터의 올스타 횟수를 넘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또한 카터가 1999년 신인왕을 수상했듯이 릴라드도 2013년에 신인왕을 수상했다. 그래서 다른 선수들은 몰라도 이 둘이 빠지고 카터를 넣는거는 애매하지 않냐는 의견도 많은 편이다. 단지 75주년 팀에 카멜로와 릴라드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75주년 팀에 선정된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이 우승을 최소 1회 이상 하거나 혹은 정규시즌 MVP 혹은 파이널 MVP를 최소 1회 이상 수상했지만 이 둘은 우승도 하지 못하고 시즌 MVP, 파이널 MVP 수상은 커녕 카터와 마찬가지로 파이널 진출도 아예 단 한 번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적 스탯만으로도 카터가 들어가기에 충분하지 않냐는 의견도 굉장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