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6 14:49:00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FC 프로 베르첼리 1892
F.C. Pro Vercelli 1892
파일:Gila11.png
이름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Alberto Gilardino, Ufficiale OMRI
[1]
생년월일 1982년 7월 9일 ([age(1982-07-09)]세) /
이탈리아 피에몬테 주 비엘라
국적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신체조건 184cm / 79kg
직업 축구선수(스트라이커 / 은퇴)
소속 선수 USD 코사토 (1991~1996 / 유스)
ASD 라 비엘레세 (1996~1997 / 유스)
브레시아 칼초 (1997~1999 / 유스)
피아첸차 칼초 (1999~2000)
엘라스 베로나 FC (2000~2002)
파르마 FC (2002~2005)
AC 밀란 (2005~2008)
ACF 피오렌티나 (2008~2012)

제노아 CFC (2012~2014)
볼로냐 FC (임대) (2012~2013)
광저우 헝다 타오바오 (2014~2015)
ACF 피오렌티나 (임대) (2015)
US 팔레르모 (2015~2016)
엠폴리 FC (2016~2017)
델피노 페스카라 (2017)
스페치아 칼초 (2017~2018)
감독 프로 베르첼리 (2019~ )
국가대표 57경기 19골(이탈리아 / 2004~2013)
2005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FIFA 월드컵 우승 멤버

그라운드의 음유시인.
연계 플레이의 대가.

1. 클럽 경력2. 국가 대표3. 감독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기타

1. 클럽 경력

피아첸차에서 축구를 시작하였다. 2000년 1월 6일에 17세의 나이에 1군팀 선수로 데뷔하였다. 2000년 3월 25일, AC 베네치아 전에서 프로 첫 골을 기록하였다.

2000년 7월 1일 피아첸차와 공동소유의 조건으로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하였다. 2002-2003 시즌에는 파르마 FC로 이적하였다. 처음에는 출장기회가 적었지만 2002-2003 시즌 종료 후 아드리아누, 아드리안 무투의 이적으로, 출전 기회가 좀더 늘게 되었다. 2003-04 시즌에는 주전자리를 확보하고 리그에서 23골을 기록하며, 안드리 셰브첸코에 이어 득점 2위 (이탈리아 선수 중에서는 1위)라는 결과로 끝내고 그 지명도가 단번에 높아지기 시작하더니 2004-05 시즌에도 똑같이 리그에서 23골을 기록하며, 득점 2위를 차지했다.콩라인? 그 결과 2005년 7월 17일, AC 밀란으로 이적하였다. 이적 초기에는 선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침체와 호나우두의 영입, 필리포 인자기의 부활, 알렉산드르 파투의 대두로 인해 점차 출전 기회가 줄어들게 되었고 이탈리아 대표팀과도 점점 멀어지게 된다.

2008년 5월 28일에 출전 기회를 모색하기 위하여 파르마 시대의 은사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이 지휘하는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을 결정하였다.이적 후 첫 시즌이 된 2008-2009 시즌에서는 리그 19골과 팀을 견인하고 CL 출전권 획득에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이 활약과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으로 마르첼로 리피가 다시 취임 한 것도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탈리아 대표에 복귀하였다.

2008년 10월 18일에 열린 세리에 A 7라운드 레지나 칼치오 전에 2골을 넣으며 세리에 A 통산 100골을 달성하였다.2012년 1월 3일, 제노아 CFC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14경기에서 4골에 그쳤다. 팀도 마지막까지 잔류 싸움에 휘말리며 17위에 그쳤다. 2012년 8월 31일, 마르코 보리엘로의 영입에 따라 마르코 디 바이오의 후임으로 볼로냐 FC에 임대 이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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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시즌 제노아로 복귀하여 주전으로 꾸준히 출장해 24라운드 종료기준 12골로 루카 토니, 안토니오 카사노, 로드리고 팔라시오등과 함께 세리에의 30대 스트라이커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 정작 늙은이들로 유명한 AC 밀란은 망했다.

2014년 7월 11일 광저우 헝다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5m 유로, 계약 기간은 2년 6개월이며 연봉은 5m 유로이다. 2015년 1월 28일 ACF 피오렌티나로 6개월 임대되었다. 그리고 마리오 고메즈를 밀어내버렸다! 피오렌티나에서도 콩 고메즈.

2015년 8월 28일 US 팔레르모 이적이 확정되었다. 2016년 7월 7일 엠폴리 FC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2년간으로 알려졌다. 2017년 1월 9일 델피노 페스카라 1936 이적이 확정되었다. 2017년 10월 3일 자유계약으로 스페치아 칼치오 이적이 확정되었다.

2. 국가 대표

2004년의 UEFA U-21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다니엘레 데 로시 등과 함께 출전해 우승하며 대회 최우수 선수에 올랐다. 2004년 8월 30일에는 이탈리아 대표팀에 첫 선출되어 9월 4일 의 노르웨이 전에서 대표 데뷔를 장식하였다. 같은 해 10월 13일, 벨라루스 전에서 A 매치 첫 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4골을 넣으며 U-23 이탈리아 대표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하였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2차전 미국전에서 득점을 기록하였고, 4강에서 독일을 상대로는 델피에로의 결승진출 확정 골을 어시스트 하여,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성적도 꾸준하지만 그가 특히 국가대표에 잘 뽑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前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프란델리의 영향이다. 파르마 시절 그를 발굴하고 세리에 A 정상급 공격수로 조련하고 밀란시절 카카 시다[2]봐주다 기량이 하략하면서 이적한 피오렌티나에서 재회해 다시금 부활하게 해준 감독이라 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를 가장 아끼는 감독이기도 하기 때문.

3. 감독 경력

2019년 7월 11일 FC 프로 베르첼리 1892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4. 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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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번이 질라르디노

파르마 FC입단 후 대성하여 아드리아누아드리안 무투가 떠난 파르마에서 홀로 팀의 득점을 다 책임지는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친 공격수. 개인능력에 의존하는 정통 스트라이커는 아닌 포스트플레이, 연계에 굉장히 능한 지능적인 타겟터이며, 제공권도 훌륭해서 미드필더진의 지원을 받으면 받을수록 엄청난 득점력을 뽐냈던 선수다. 이것이 여실히 드러나는게 04-05 시즌 파르마의 세리에A 성적. 상대팀 신경 안 쓰고 대놓고 팍팍 지원했을뿐인데, 질라르디노가 리그 23골이나 넣은 덕분에 리그 17위였음에도 잔류했었다.

전성기 시절엔 특히 순간적인 침투와 슛 타이밍도 굉장히 빨라서 리버풀로 이적하기 전이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 페르난도 토레스와 비교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때 까지만 하더라도 질라르디노가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2007년부터 둘의 행보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골 결정력이 일품이며 헤딩도 워낙 뛰어나 마이클 오웬처럼 헤딩 골을 굉장히 잘 넣는 편. 그래서 한국팬들 사이에선 황금대가리로 불렸었다(...)

그러나 06시즌 이후의 밀란에서의 생활 때처럼 최전방 공격중심인 자신이 아닌 주위의 다른선수카카로 팀의 전술과 지원이 집중됐을 경우 활약빈도가 극도로 적어지는버로우 경우가 많았다.[3] 이를 두고 한때 국내 세리에 커뮤니티에선 질라르디노의 이런 딜레마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이야기와 토론이 오고 가기도 했다. 이 딜레마의 토론은 피오렌티나 시절에도 말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그럼에도 피오렌티나 시절에는 질라르디노가 부진할 때에도 밀란 시절에 비해서 옹호하는 의견이 많은 편이었는데, 질라르디노가 영입된 뒤 피오렌티나는 주전에서 완전히 밀려 출전시간에 불만을 품게 된 파찌니오스발도를 어쩔 수 없이 처분할 수 밖에 없었고, 문제는 밀란 시절에는 질라르디노가 부상 혹은 부진이나 체력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해도 필리포 인자기호나우두 등 나이는 많지만 클래스는 여전했던 베테랑들이 충분히 질라르디노의 공백을 잊을 수 있는 활약을 해주는 등 백업 선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 (심지어 밀란에서의 마지막 시즌에는 질라르디노가 부진한 틈을 타 당시 최고의 초신성이었던 알렉산드르 파투까지 좋은 활약으로 자신을 알리며 질라르디노는 잊혀지게 되었을 정도였다.) 피오렌티나에서는 그런걸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피오렌티나가 저 둘을 이적시킨 이후 질라르디노의 백업 공격수를 보강하기 위해 수년간 보나쫄리, 카스티요, 케이리손, 마우로 실바 등을 영입해보기도 하고(케이리손의 경우에는 그래도 당시에는 저들 중에서는 어린 선수였기에 그런지 영입한 공격수들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피차일반이었다.), 당시 피렌체 유스의 특급 유망주였던 쿠마 바바카르를 성인팀으로 승격시켜보기도 했지만 모두 질라르디노의 활약의 절반만도 못한 기대 이하의 모습만을 보이며 실패해버렸고(그나마 마우로 실바를 영입했던 시기에는 주전인 질라르디노도 부진한 시기였기는 했고 바바카르의 경우에는 저 시도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기는 했다.), 백업 공격수들의 실패로 인해 밀란에서보다 더욱 부담이 커진 질라르디노마저 이후 부진을 거듭하며 제노아로 이적해버리고 만다. 이후에는 어떻게든 공격수를 매우기 위해 아마우리까지 영입해보는 시도까지 했으나 당시 피렌체의 기대주들이었던 스테판 요베티치아뎀 랴이치가 소년가장급 모습을 보이고 친정팀으로 복귀한 루카 토니도 로테이션 멤버로서 활약하며 그나마 숨통은 트이게 된 상황이었다.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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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골 세리머니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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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에서 뛰던시절 말년의 활약상이 영 좋지 않은 관계로 키배의 대상이 되었는데[4] 이시기 이탈리아 축구 팬사이트 세리에매니아에서 질라르디노 관련 글만올라오면 무조껀 100플(..)[5]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세리에매니아에서 질라르디노의 이름자체가 떡밥왕의 의미로 통하기도 한다.(...) 밀란을 떠난지도 한참이 지난 2014년에도 게시판이 불타오를 만한 관련주제가 올라오면 질라르디노 등판하나요? 라는 댓글들을 심심찮게 볼수있다.

아드리아누와 비슷한 시기에 주목을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편.[6] 이 때문에 아드리아누에 비해 과소평가 받는 면이 강한데... 득점력에서 만큼은 대부분의 시즌동안 아드리아누는 질라르디노를 꺾은 적이 별로 없다.[7] 그 망했다는 밀란시절조차 아드리아누보다 득점 페이스만은 더 좋았다.[8]

[1] 이탈리아 공화국 4등급 공로 훈장.[2] 카카의 공간침투를 위한 미끼로 수비진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덕분에 03/04시즌 부터 이어진 시즌 두자리 골 기록이 06/07 시즌을 마지막으로 끊기기도 하였다.[3] 팀의 전술과 안 맞았다고 해도 못한 건 어쩔 수 없다... 오죽하면 당시 시즌 도중에 건강상으로 불확실하던 호나우두을 영입했을까.[4] ex: 질라르디노 못하네요-> 미들진 지원이 시망이라 못하는거임 -> 잘하는선수들은 지원 없어도 잘하던데??-> 패스자체가 안오는데 어떻게 활약함?-> 못하니까 신뢰가 안가서 패스 안주는거 아님? -> 그러니까 지원 못받아서 못함! 의 무한루프(..)[5] 어그로성 글도 아니고 말 그대로 질라르디노 부진에 관련한 순수 토론 플러스키배 글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토론이 끝나질 않았다.(...) 단순 어그로성 글이면 무시하거나 운영진에서 처리해버리면 그만이지만 말 그대로 토론글들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의견을 무시할수 없었다.[6] 파르마 FC 소속 동기였던 아드리아누가 2004년 인테르 이적 후 코파 이탈리아 2시즌 연속 우승과 브라질 국대에서 2004 코파 아메리카 3관왕, 2005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3관왕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써버린 탓에 본인의 뛰어난 기록에도 불구하고 소속팀의 차이와 우승컵의 유무로 상대적으로 너무 덜 주목받은 편.. 참고로 질라르디노의 당시 개인 수상 기록만 봐도 2004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 최우수 선수, 2004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2004 세리에 A 올해의 영플레이어 상, 2005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 2005 이탈리아 올해의 축구선수 등 개인상을 휩쓸었다.[7] 파르마 FC 소속으로 03-04 시즌 26골, 04-05 시즌 25골이나 기록했으며 2005 이탈리아 올해의 선수상까지 받았다.[8] 첫 시즌인 05-06 시즌에만 17골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