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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00000,#191919><colcolor=#0073b5,#e5e5e5> 이름 |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Alberto Gilardino | |
| 출생 | 1982년 7월 9일 ([age(1982-07-09)]세) | |
| 이탈리아 비엘라 | ||
| 국적 | | |
| 신체 | 키 184cm / 체중 79kg | |
| 직업 |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 |
| 소속 | <colbgcolor=#000000,#191919><colcolor=#0073b5,#e5e5e5> 유스 | USD 코사토 (1991~1996) ASD 라 비엘레세 (1996~1997) 브레시아 칼초 (1997~1999) |
| 선수 | 피아첸차 칼초 (1999~2000) 엘라스 베로나 FC (2000~2002) 파르마 FC (2002~2005) AC 밀란 (2005~2008) ACF 피오렌티나 (2008~2012) 제노아 CFC (2012~2014) → 볼로냐 FC (2012~2013 / 임대) 광저우 에버그란데 (2014~2015) → ACF 피오렌티나 (2015 / 임대) US 팔레르모 (2015~2016) 엠폴리 FC (2016~2017) 델피노 페스카라 1936 (2017) 스페치아 칼초 (2017~2018) | |
| 감독 | 레차토 (2019) FC 프로 베르첼리 1892 (2019~2020) ACN 시에나 (2020~2021) ACN 시에나 (2021) 제노아 프리마베라 (2022) 제노아 CFC (2022~2023 / 감독 대행) 제노아 CFC (2023~2024)[1] 피사 SC (2025~ ) | |
| 국가대표 | 57경기 19골 (이탈리아 / 2004~2013) | |
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커리어 초기
피아첸차에서 축구를 시작해 2000년 1월 6일에 17세의 나이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2000년 3월 25일, AC 베네치아전에서 프로 첫 골을 기록하였다. 피아첸차는 그해 세리에 B로 강등되었지만 질라르디노는 17경기 3골로 나름 존재감을 보였다.2000년 7월 1일 피아첸차와 공동소유의 조건으로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하였다. 베로나에서 보낸 두 시즌에서 질라르디노는 39경기 5골을 기록했다. 2001년 여름 베로나는 질라르디노에 대한 완전 소유권을 얻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르마와 공동소유를 갖게 되었다.
한편 2001년 4월 28일 교통사고를 당하는 아찔한 일을 겪었다.
2.1.2. 파르마
2002-03 시즌에는 파르마로 이적하였다. 파르마가 베로나와의 공동소유권 나머지 50퍼센트를 모두 사들인 것. 이때 루마니아 공격수 아드리안 무투가 영입되어 팀을 떠난 마르코 디 바이오의 자리를 메웠고, 2002-03 시즌에는 아드리아누와 무투에 밀려 출장기회가 적었다. 파르마에서의 첫 시즌 질라르디노는 주로 벤치에 머무르며 24경기 4골을 기록했다.2002-03 시즌 종료 후 아드리아누, 아드리안 무투의 이적으로 파르마의 공격진은 약체화 되었다는 평을 받았으나, 2003-04 시즌에 질라르디노가 유망주 딱지를 벗고 완전히 포텐을 터트리면서 그 공백을 메웠다. 질라르디노는 03-04 시즌 리그에서 23골을 기록하며, 안드리 셰브첸코에 이어 득점 2위 (이탈리아 선수 중에서는 1위)로 맹활약하며 그 지명도가 단번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3골 중 무려 17골이 후반에 기록한 득점이라 순도도 높았다.
2004-05 시즌에는 소속팀 파르마가 모기업의 파산으로 재정난에 시달리며 강등권에 머물렀으나 질라르디노는 팀의 부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년과 똑같이 리그에서 23골을 기록하며, 득점 2위를 차지했고 질라르디노 본인은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시즌 중 질라르디노의 활약은 놀라웠는데, 유독 결승골이 많아 시즌내내 파르마의 다이렉트 강등을 막아내는데 크게 기여한데다 34라운드 리보르노와의 경기에서는 크리스티아노 루카렐리와 4골을 주고받으면서 6-4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2] 레체와의 최종전에서 2-3으로 패색이 짙어지며 다이렉트 강등이 예상되던 상황에서 3-3 동점을 만들어내며 파르마를 다이렉트 강등에서 타이브레이커로 끌고간 것도 질라르디노였다. 볼로냐와의 강등 타이브레이커에서는 1차전에서 경고누적 징계로 결장했고, 팀도 질라르디노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끼며 홈에서 0-1로 패배하였으나, 파르마는 2차전 원정경기에서 전반 종료 직전 잔류를 확정짓는 득점을 성공시킨 질라르디노의 활약에 힘입어 2차전을 2-0으로 승리하며 1차전에서의 패배를 뒤집고 잔류에 성공했다. 04-05 시즌의 활약으로 인해 질라르디노의 주가는 크게 올랐고 내로라하는 빅클럽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2.1.3. AC 밀란
파르마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2005년 7월 17일, 2,500만 유로의 큰 이적료와 함께 AC 밀란으로 이적하였다.이적 초기에는 선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2005-06 시즌 세리에 A에서는 34경기 17골을 득점했다. 그러나 커리어 첫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12경기 무득점에 그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2006년 11월 6일 안데를레흐트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커리어 첫 챔피언스리그 득점에 성공했다. 그러나 챔스 울렁증은 여전했는데 챔피언스리그에서 안데를레흐트전을 포함해 겨우 2골에 그쳤다. 그런데 그 나머지 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준결승 2차전에서 나온 득점으로 밀란은 1차전 2-3 패배를 뒤집고 2차전에서 3-0 대승을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밀란은 리버풀을 2-1로 꺾고 2년 전의 굴욕을 설욕해 커리어 첫 빅이어를 획득했지만 질라르디노는 경기 막판 필리포 인자기의 교체선수로 나와 겨우 2분만 소화해 존재감은 없었다. 리그에서는 12골로 밀란에서 유일한 두 자릿수 득점자였다. 시즌 후 질라르디노는 챔스 우승에 이적을 고민했지만 코칭스태프와의 면담 끝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2007-08 시즌 질라르디노는 기나긴 침묵 끝에 2007년 10월 7일 라치오 원정에서 2골을 넣으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0월 24일 샤흐타르 도네츠크 원정에서 2골을 넣으며 챔스 울렁증을 떨쳐내는듯했다. 그러나 자신의 침체와 슈퍼유망주 알렉산드르 파투의 대두로 인해 인자기-파투에 이은 3옵션으로 점차 출전 기회가 줄어들게 되었고 이탈리아 대표팀과도 점점 멀어지게 된다. 2007-08 시즌 세리에 A에서의 성적은 30경기 7골, 전체 경기에서도 40경기 9골의 초라한 기록이었다. 질라르디노는 이후 밀란에서의 마지막 시기를 커리어 최악의 시기라고 회고했다.
2.1.4. ACF 피오렌티나
2008년 5월 28일에 출전 기회를 모색하기 위하여 파르마 시대의 은사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이 지휘하는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을 결정하였다. 이적료는 1,500만 유로에 5년 계약이었다. 그리고 파르마 시절 동료 아드리안 무투, 세바스티앵 프레이, 마르코 도나델과 재회했다.이적 후 첫 시즌이 된 2008-09 시즌에서는 리그 19골을 넣어 팀을 견인하고 UCL 출전권 획득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6골을 넣어 유럽대항전 울렁증에서 벗어났다. 또한 이 활약과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으로 마르첼로 리피가 다시 취임 한 것도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탈리아 대표에 복귀하였다.
2008년 10월 18일에 열린 세리에 A 7라운드 레지나 칼치오 전에 2골을 넣으며 세리에 A 통산 100골을 달성하였다.
2009-10 시즌 스포르팅 CP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 원정경기에서 경기 막판 2-2를 만드는 동점골을 넣어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본선에서는 데브레체니를 상대로 득점했고 안필드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는 경기종료 직전 결승골을 득점하면서 조 1위를 확정지었다. 피오렌티나에서는 밀란에서의 챔피언스리그 울렁증은 온데간데 없는 모습이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피오렌티나 소속으로 10골을 득점하면서 클럽 레전드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어깨를 나란히했다. 질라르디노는 세리에 A에서 15골,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골을 득점했다. 그러나 피오렌티나는 무투의 약물파동 징계로 인해 순위가 급전직하했고 은사인 프란델리 감독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떠났다.
2011년 2월 27일 AS 바리를 상대로 커리어 200번째 득점에 성공했다.[3] 하지만 이때 극심한 부진을 겪으며 강등당하는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돌던 팀과 함께 질라르디노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2011-12 시즌 전반기에 12경기 2골로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워낙 심한 부진이었기에 커리어가 내리막을 걷는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고, 겨울 이적시장에서 제노아로 이적하며 피오렌티나를 떠났다.
2.1.5. 제노아 CFC
2012년 1월 3일, 제노아 CFC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14경기에서 4골에 그쳤다. 팀도 마지막까지 잔류 싸움에 휘말리며 17위에 그쳤다.2012년 8월 31일, 제노아에서 새로운 주전 공격수로 낙점했던 마르코 보리엘로의 영입에 따라 마르코 디 바이오의 후임으로 볼로냐에 임대 이적하였다. 볼로냐에서는 36경기 13골로 반등에 성공했고 볼로냐의 중위권 성적을 이끌어냈고 국가대표에도 복귀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직전 시즌 볼로냐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인해 2013-14 시즌 제노아로 복귀했고, 13-14 시즌에도 좋은 폼을 보여주면서 주전으로 꾸준히 출장해 24라운드 종료기준 12골로 루카 토니, 안토니오 카사노, 로드리고 팔라시오등과 함께 세리에의 30대 스트라이커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
2.1.6. 커리어 말기
반등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중 2014년 7월 11일 광저우 헝다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5m 유로, 계약 기간은 2년 6개월이며 연봉은 5m 유로이다.중국 리그에서는 14경기 5골로 기대에 못 미치던 모습을 보여주던 중 2015년 1월 28일 ACF 피오렌티나로 6개월 임대되었다. 그리고 큰 기대를 받았으나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마리오 고메스를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차지했다. 4월 26일에는 칼리아리를 상대로 세리에 A 통산 175번째 득점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또 5월 18일에는 강등이 확정된 친정팀 파르마를 상대로 2골을 만들어내며 피오렌티나에서의 반 시즌 동안 14경기 4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피오렌티나와 완전이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5년 8월 28일 US 팔레르모 이적이 확정되며 중국 생활을 완전히 마무리했다. 10월 4일 AS 로마를 상대로 팔레르모에서의 첫 득점에 성공했다. 2016년 1월 30일 카르피 전에서 세리에 A 통산 184호 득점으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동률을 만들어내며 세리에 A 역대 11번째 최다득점자가 되었다. 또한 세리에 38개 팀을 상대로 득점 기록도 만들어냈다.[4] 5월 15일 엘라스 베로나와의 경기에서 득점해 3-2 승리를 이끌어내며 팔레르모의 잔류를 이끌었다. 세리에 통산 188번째 골로 주세페 시뇨리,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함께 공동 9위가 되었다. 팔레르모에서 질라르디노는 33경기 10골을 기록하며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노익장을 과시했다.
2016년 7월 7일 엠폴리 FC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2년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6-17 시즌 개막 후 세리에 A에서 14경기 0골, 총 16경기 1골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2017년 1월 9일 강등권 탈출을 노리던 델피노 페스카라 1936 이적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페스카라에서는 단 3경기 출장에 그쳤고 시즌 후 방출되었다.
2017년 10월 3일 자유계약으로 세리에 B 스페치아 칼초 이적이 확정되며 커리어 처음으로 세리에 B에서 뛰게 되었다. 세리에 B에서는 16경기 6골을 넣으며 준수한 활약상을 보였고 시즌 후 팀을 떠났다.
이후 약 1년간 소속팀을 구하지 못해 사실상 은퇴 상태로 있던 중 2018년 9월 20일 은퇴를 발표하며 축구화를 벗었다.
2.2. 국가대표 경력
2004년의 UEFA U-21 챔피언십에서 다니엘레 데 로시 등과 함께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최우수 선수에 올랐다. 2004년 8월 30일에는 이탈리아 대표팀에 첫 발탁되어 9월 4일 의 노르웨이전에서 대표 데뷔를 장식하였다. 같은 해 10월 13일, 벨라루스 전에서 A매치 첫 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4골을 넣으며 이탈리아 U-23 대표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하였다.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2차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였고, 4강전에서 독일을 상대로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쐐기골을 어시스트 하여,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로베르토 도나도니 체제에서 2007년 10월 17일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친선경기에서 교체아웃된 다니엘레 데 로시로부터 주장완장을 넘겨받으며 첫 국가대표 주장완장을 달았다. 그러나 이때는 커리어 최악의 2007-08 시즌을 보내 자신감이 매우 떨어진 상황이었고 결국 UEFA 유로 2008 최종엔트리 승선에 실패했다.
피오렌티나 이적 후 부활에 성공하면서 마르첼로 리피 2기 시절에는 다시금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리피의 복귀전인 오스트리아와의 친선전에서 2골을 터뜨렸다. 2009년 여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선발되었고 최약체 뉴질랜드와의 첫 경기 졸전 끝에 4-3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2골을 넣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이후 2경기에서 무득점 패배하면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이는 1년 후 대참사의 전주곡이었다.
2009년 10월 10일 월드컵 예선 아일랜드 원정에서 2골을 넣어 2-2 무승부를 이끌어내면서 디펜딩챔피언 이탈리아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10월 14일에는 키프러스를 상대로 홈에서 0-2로 지고 있다가 경기 막판 국가대표 커리어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2 역전승을 거뒀다.[5]
2010년 6월에 남아공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 스트라이커로 낙점받았지만 빈첸초 이아퀸타와 함께 대표팀 부진의 주범으로 꼽히며 비판받았고 이탈리아는 슬로바키아와의 최종전에서 2-3으로 패배하며 2무 1패 최하위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마르첼로 리피는 결국 불명예 사퇴했고 은사인 체사레 프란델리가 감독이 되었다.
프란델리 체제에서 2010년 9월 7일 페로 제도와의 UEFA 유로 2012 예선에서 선제골을 넣어 5-0 대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소속팀에서 부진에 빠지며 대표팀에서 멀어지는듯 했는데 볼로냐 임대 후 폼을 끌어올리면서 2012년 10월 7일 1년 여만에 대표팀에 부름받았다. 2013년 2월 6일 네덜란드와의 친선경기에서 교체투입되어 마르코 베라티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2013년 5월 31일 산 마리노와의 친선전에서 득점했고 2013년 브라질에서 열리는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엔트리에 승선했다. 6월 16일 조별리그 첫 경기 멕시코전에서 후반 마리오 발로텔리 대신 교체출전하였다. 발로텔리가 부상당하면서 주전 공격수로 나섰다.
2013년 9월 6일 발로텔리와 오스발도가 징계로 결장하면서 불가리아전에 선발출전했고 결승골을 득점해 1-0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2014 FIFA 월드컵 최종엔트리에는 승선하지 못했고 이후로는 대표팀에 부름받지 못했다. 결국 대표팀 커리어는 57경기 19골로 마감했다.
성적도 꾸준하지만 그가 특히 국가대표팀에 잘 뽑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前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프란델리의 영향이다. 파르마 시절 그를 발굴하고 세리에 A 정상급 공격수로 조련하고 밀란 시절 카카의 따까리[6]를 해주다 기량이 하락하면서 이적한 피오렌티나에서 재회해 다시금 부활하게 해준 감독이라 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를 가장 아끼는 감독이기도 하기 때문.
3. 플레이 스타일
파르마 입단 후 대성하여 아드리아누와 아드리안 무투가 떠난 파르마에서 홀로 팀의 득점을 다 책임지는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친 공격수. 개인능력에 의존하는 정통 스트라이커는 아닌 포스트 플레이, 연계에 굉장히 능한 지능적인 타겟맨이며, 제공권도 훌륭해서 미드필더진의 지원을 받으면 받을수록 엄청난 득점력을 뽐냈던 선수다. 이것이 여실히 드러나는게 2004-05 시즌 파르마의 세리에A 성적. 상대팀 신경 안 쓰고 대놓고 팍팍 지원했을뿐인데, 질라르디노가 리그 23골이나 넣은 덕분에 리그 17위로 간신히 잔류했었다.
누가 이탈리안 스트라이커 아니랄까봐 테크닉도 훌륭하고, 퍼스트 터치도 좋은 편. 과거의 클래식한 스트라이커들처럼 최소한의 터치로 슈팅을 때리는 능력과 간결한 연계 능력을 모두 갖췄었다. 간결하고도 정확한 퍼스트 터치로 아주 좋은 위치에 공을 떨어뜨려 놓던 선수였다. 거기에 슈팅에 있어서도 매우 뛰어난 선수였는데 위력적인 강슛, 정확한 발리슛, 아웃프론트 킥이나 아웃사이드 칩슛 등 화려한 슈팅부터, 골키퍼를 바로 앞에 둔 상황에서 크로스나 스루패스를 방향과 높낮이만 바꾸어 가볍게 툭 밀어넣는 슈팅 능력에 천부적인 슈팅 타이밍을 모두 가졌으며, 거기에 화려한 발리 슈팅과 우아한 터닝 슈팅 능력도 모두 갖춘 선수였다. 거기에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헤더에 힘이 아주 세지 않지만 지능적인 몸싸움으로 상대 수비와의 경합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던 선수였다.
전성기 시절엔 특히 순간적인 침투와 슛 타이밍도 굉장히 빨라서 리버풀로 이적하기 전이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 페르난도 토레스와 비교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때 까지만 하더라도 질라르디노가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2006년 이후의 밀란에서의 생활 때처럼 최전방 공격중심인 자신이 아닌 주위의 다른선수
4. 지도자 경력
2019년 7월 11일 FC 프로 베르첼리 1892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2020년 9월 8일 ACN 시에나 감독에 선임되었다. 2021년 1월 12일 계약을 상호 해지하며 팀을 떠났으나, 한 달 만에 복귀한다.
2021년 10월 24일, 경질 소식이 발표되었고 팀을 떠났다.
2022년 7월 1일, 제노아 프리마베라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2년 12월 6일, 제노아 CFC가 알렉산더 블레신 감독을 경질한 후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 이후 2023년 1월 4일,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정식 감독 전환 이후에도 호성적을 이어가 중위권에 처져 있던 제노아를 2위까지 끌어올렸으며, 2023년 5월 6일 아스콜리 칼초를 2-1로 꺾고 세리에 A 승격을 확정지었다. 2024년 5월 20일, 제노아와 재계약을 하였다.
3-4-1-2와 3-5-2 전술을 즐겨 활용하는 감독으로 낮은 블록을 쌓고 견고한 조직력과 역습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감독이다. 최근 이탈리아에 등장한 젊은 감독들이 잔 피에로 가스페리니 감독의 영향을 받았고 이반 유리치와 라파엘레 팔라디노와 같이 이를 지향점으로 하는 감독들이 생겼지만, 질라르디노의 전술은 좀 더 고전적인 카테나치오에 가깝다.
질라르디노가 제노아 CFC를 최종 12승 13무 13패 승점 49점으로 11위로 안착시킨 것에도 이러한 전술에서 나오는 단단한 수비와 조직력, 순간적인 역습을 잘 활용한 것이 주요했다. 그 대신 축구가 정말 재미없다. 조직력과 선 수비 후 역습을 선호하며, 부분적인 역압박만 수행하는 탓에 경기가 지루하다는 평이 대다수다.
2024년 11월, 주포 마테오 레테기와 알베르트 그뷔드뮌손의 이적을 제대로 매꾸지 못하면서 팀은 리그 17등이라는 최악의 성적에 빠졌고 결국 경질당했다.
4.1. 피사 SC
#!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피사 SC/질라르디노 체제#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피사 SC/질라르디노 체제#|]] 부분을 참고하십시오.5. 기록
5.1. 대회 기록
- AC 밀란 (2005~2008)
- UEFA 챔피언스 리그: 2006-07
- UEFA 슈퍼컵: 2007
- FIFA 클럽 월드컵: 2007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 FIFA 월드컵: 2006
- 이탈리아 U-23 축구 국가대표팀
- 올림픽 동메달: 2004
- 이탈리아 U-21 축구 국가대표팀
- UEFA U-21 챔피언십: 2004
5.2. 개인 수상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004-05
- 세리에 A 올해의 영플레이어: 2003-04
-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 2004-05
- UEFA U-21 챔피언십 MVP: 2004
- UEFA U-21 챔피언십 득점왕: 2004
5.3. 수훈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5등급: 2004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2006
6. 기타
선수 시절 잘생긴 선수였다. 그러나 남자의 주적 탈모에 겪게되면서 폭삭 늙어버렸다.
바이올린 골 세리머니로 유명하다. 좋은 연계 플레이와 특유의 세리머니로 그라운드의 음유시인이라고 불렸다
밀란에서 뛰던시절 말년의 활약상이 좋지 않은 관계로 키배의 대상이 되었는데[8] 이시기 이탈리아 축구 팬사이트 세리에매니아에서 질라르디노 관련 글만 올라오면 무조건 100플[9]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세리에매니아에서 질라르디노의 이름 자체가 떡밥왕의 의미로 통하기도 한다. 밀란을 떠난지도 한참이 지난 2014년에도 게시판이 불타오를 만한 관련주제가 올라오면 질라르디노 등판하나요? 라는 댓글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아드리아누와 비슷한 시기에 주목을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편.[10] 이 때문에 아드리아누에 비해 과소평가 받는 면이 강한데 득점력에서 만큼은 대부분의 시즌 동안 아드리아누는 질라르디노를 꺾은 적이 별로 없다. 그 망했다는 밀란 시절조차 아드리아누보다 득점 페이스만은 더 좋았다.[11]
현재 토트넘 소속인 제드 스펜스가 제노아로 임대를 왔을 때 감독을 맡고 있었다. 당시 스펜스는 실력 미달과 워크에식 문제로 안토니오 콘테에게 저격 발언을 당하며 임대 뺑뺑이를 돌고 있었고, 임대를 마치고 돌아온 다음 시즌 주전이었던 데스티니 우도기의 부상으로 인해 포스텍 체제 하에서 계속해서 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본인의 폼이 급부상하고 워크에식까지 좋아져 방출 대상에서 주전 풀백으로 입지가 급상승하며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승선하는데 성공했고, 이에 많은 토트넘 팬들은 질라르디노를 '명의'라고 부르게 되었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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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4/25 시즌 도중 경질[2] 34라운드 이전까지 득점왕 경쟁은 AS 로마 빈첸초 몬텔라의 독주체제였으나 이 경기로 인해 득점왕 경쟁은 질라르디노와 루카렐리의 2파전으로 순식간에 양상이 바뀌게 되었고, 질라르디노는 최종전까지 이어진 치열한 득점왕 경쟁 끝에 루카렐리에게 1골차로 밀렸다. 이때 질라르디노는 1골차로 밀려있었으나 최종전에서 득점을 터트리며 루카렐리와 득점 동률을 만들었고, 두 팀의 경기도 끝나가고 있었기에 그대로 공동 득점왕 수상이 예상되었으나 루카렐리가 후반 39분에 24번째 골을 넣고 경기가 종료되면서 루카렐리가 단독 득점왕에 올랐다.[3] 세리에 A 138골, 코파이탈리아 8골, 챔피언스리그 13골, UEFA컵 5골, 국가대표팀 17골, U21 팀 15골, 올림픽대표 4골[4] 프란체스코 토티, 로베르토 바조와 동률이다.[5] 이때부터 이탈리아는 월드컵 대참사의 전주곡을 보이고 있었다.[6] 카카의 공간침투를 위한 미끼로 수비진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덕분에 2003-04 시즌 부터 이어진 시즌 두자릿수 골 기록이 2006-07 시즌을 마지막으로 끊기기도 하였다.[7] 11번이 질라르디노다.[8] ex: 질라르디노 못하네요→ 미들진 지원이 좋지않아 못하는거임 → 잘하는 선수들은 지원 없어도 잘하던데?→ 패스자체가 안오는데 어떻게 활약함?→ 못하니까 신뢰가 안가서 패스 안주는거 아님? → 그러니까 지원 못받아서 못함! 의 무한루프[9] 어그로성 글도 아니고 말 그대로 질라르디노 부진에 관련한 순수 토론 글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토론이 끝나질 않았다. 단순 어그로성 글이면 무시하거나 운영진에서 처리해버리면 그만이지만 말 그대로 토론글들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의견을 무시할수 없었다.[10] 파르마 소속 동기였던 아드리아누가 2004년 인테르 이적 후 코파 이탈리아 2연패와 브라질 국대에서 2004 코파 아메레카 MVP + 득점왕,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 MVP + 득점왕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써버린 탓에 본인의 뛰어난 기록에도 불구하고 소속팀의 차이와 우승컵의 유무로 상대적으로 너무 덜 주목받은 편. 참고로 질라르디노의 당시 개인 수상 기록만 봐도 2004 UEFA U-21 챔피언십 MVP + 득점왕, 2003-04 세리에 A 올해의 영플레이어, 2004-05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004-05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 등 개인상을 휩쓸었다.[11] 파르마 소속으로 2003-04 시즌 26골, 2004-05 시즌 25골을 기록했으며 밀란에서도 첫 시즌인 2005-06 시즌에 19골을 기록했다.
분류
- 1982년 출생
- 1999년 데뷔
- 2018년 은퇴
- 비엘라 출신 인물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선수
- 이탈리아의 남자 축구 감독
- 스트라이커
- 피아첸차 칼초/은퇴, 이적
- 엘라스 베로나 FC/은퇴, 이적
- 파르마 칼초 1913/은퇴, 이적
- AC 밀란/은퇴, 이적
- ACF 피오렌티나/은퇴, 이적
- 제노아 CFC/은퇴, 이적
- 볼로냐 FC 1909/은퇴, 이적
- 광저우 FC/은퇴, 이적
- 팔레르모 FC/은퇴, 이적
- 엠폴리 FC/은퇴, 이적
- 델피노 페스카라 1936/은퇴, 이적
- 스페치아 칼초/은퇴, 이적
- FC 프로 베르첼리 1892/역대 감독
- 시에나 FC/역대 감독
- 제노아 CFC/역대 감독
- 피사 SC/역대 감독
- 2006 FIFA 월드컵 독일 참가 선수
-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2009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참가 선수
-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 참가 선수
- 2004 아테네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2004 아테네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
- 이탈리아의 올림픽 축구 메달리스트
- 감독 대행/축구
- FIFA 월드컵 우승 선수
-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