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6:25:01

빈첸초 이아퀸타

빈첸초 이아퀸타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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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우승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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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첸초 이아퀸타 UOMRI
(Vincenzo Iaquinta UOMRI[1])
생년월일 1979년 11월 21일 ([age(1979-11-21)]세)
출신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주 쿠트로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포지션 스트라이커
등번호 9번
신체 191cm, 77kg
유스클럽 레지올로 칼초 (1989~1996)
프로클럽 레지올로 칼초 (1996~1997)
칼초 파도바 (1998)
ASD 카스텔 디 산그로 (1998~2000)
우디네세 칼초 (2000~2007)
유벤투스 FC (2007~2013)
AC 체세나 (2012 / 임대)
국가대표 40경기 6골 (이탈리아 / 2005~2010)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마피아 조직 연루설4. 우승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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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전 축구선수로, 조국의 네 번째 월드컵 우승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은퇴 후에 이탈리아 마피아와 연관되어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 이미지를 크게 깎아먹었다. 연루설 자체는 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되긴 하였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하부리그에서 성장하며 유망주로 주목받았고, 2000년 6월 우디네세로 이적한다. 02/03 시즌부터 주전 스트라이커로 기용되며 25경기 7골을 기록해 팀 내 득점왕에 오르면서, 단번에 팀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다음 해부터는 세리에 A 득점왕 싸움에도 가세해, 팀을 견인하는 존재로 성장하였다. 그는 라치오로 이적한 로베르트 무치의 공백을 느끼지 않게 하는 엄청난 활약을 하였다. 우디네세에서 두번의 UEFA컵과 한번의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끌었으며, 파나시나이코스와의 챔스 조별리그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세리에 수위급 스트라이커로 올라선 이후 지속적으로 이적설이 따라다녔지만, 2007년이 되어서야 유벤투스로 이적한다. 첫 시즌에는 델 피에로와 트레제게에 밀려 로테이션 멤버로 뛰어야했고, 이듬해에도 기존 투톱에 아마우리까지 영입되며 주전 경쟁은 불투명했으나 트레제게와 아마우리의 부상을 틈타 주전을 차지, 38경기 16골로 유벤투스에서의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다. 09/10 시즌에도 주전 스트라이커로 낙점받았으나 선수생활 내내 이어져온 유리몸 기질이 발동해 긴 공백기를 갖게되고, 복귀한 뒤에도 후보로 전락한다. 안토니오 콘테가 부임한 11/12 시즌에는 입지가 더욱 줄어들어 전반기 내내 단 한경기도 뛰지 못하다 겨울 이적시장에서 체세나로 단기 임대되나 또다시 부상에 발목 잡히며 7경기 1골에 그친다.

12/13 시즌 유벤투스로 복귀했으나 여전히 그의 자리는 없었고, 1년 내내 벤치에 머무르며 팀의 리그 2연패를 지켜본 뒤 2013년 7월 22일 현역 은퇴를 발표한다. 이후 코치로서 새롭게 축구계 경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2. 국가대표 경력

1 부폰 · 2 자카르도 · 3 그로소 · 4 데 로시 · 5 칸나바로 ⓒ · 6 바르잘리 · 7 델 피에로 · 8 가투소 · 9 토니
10 토티 · 11 질라르디노 · 12 페루치 · 13 네스타 · 14 아멜리아 · 15 이아퀸타 · 16 카모라네시 · 17 바로네
18 인자기 · 19 잠브로타 · 20 페로타 · 21 피를로 · 22 오도 · 23 마테라치


이아퀸타는 이탈리아 U-21 대표팀에도 소집되었지만 당시는 주전 선수가 아니고, 에밀리아노 보나졸리의 후보 선수였다. 하지만,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는 그의 실력을 알아본 마르첼로 리피가 그를 최종 선수 명단에 포함시켰다. 초반에는 이 선택에 대해 의문의 소리도 적지 않았지만, 가나전에서 자신의 국가대표 첫 골을 넣어, 우수한 실력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주로 교체 선수로 출전하여 이탈리아의 네 번째 월드컵 우승에 공헌했다.

다음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는 질라르디노와 투톱으로 나섰다.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출전했음에도 뉴질랜드와의 2차전에서 페널티킥으로 득점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형편없는 모습을 보였고, 이탈리아는 3차전 슬로바키아와의 경기에서 2:3으로 패배하며 2무 1패 조 최하위의 성적을 기록해 1974년 FIFA 월드컵 이후 36년 만에 조별리그에서 탈락에 일조하고 말았다. 이탈리아의 패퇴와 함께 이아퀸타도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한다.

3. 마피아 조직 연루설

그런데 2015년 12월에 난데없이 불법 권총 소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었다. 이탈리아 매체 ‘코리에레 델로 스포르트’는 22일(현지시간) "이아퀸타가 총기를 불법으로 소지한 사실이 경찰에게 발각돼 기소됐다. 이아퀸타가 마피아와 연계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이아퀸타가 받고 있는 혐의는 2정의 총기 등 불법 총기소지 및 마피아 조직인 은드란게타와 결탁한 혐의이다. 재판에 넘겨진 이아퀸타는 당국에 자신이 소지한 총기를 아버지의 집으로 운반한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실수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조사 결과 이아퀸타는 이미 은드랑게타의 멤버 중 한 명이었으며 고유한 코드네임까지 있다고 밝혔다.[2]

2018년 10월 31일, 이탈리아 법원은 빈첸초 이아퀸타는 마피아 조직 은드랑게타와 관계가 있다는 건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기각했지만 불법으로 총기를 소지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되어 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반면, 빈첸초 이아퀸타의 부친인 주세페 이아퀸타는 은드란게타와 결탁한 혐의가 명백히 입증된다고 하여 징역 19년 형을 선고했다. 이에 이아퀸타 부자는 판사를 향해 "말도 안 된다. 이것은 수치"라고 외치며 울분을 토했다고 한다. 법정에서 이아퀸타는 권총을 소지한 혐의에 대해 현역 은퇴 후 사격장을 다니는 취미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해명해왔으나 법원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이탈리아의 조폭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이탈리아 사회 내에 깊숙히 파고들었는지 재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이다.[3] 특히나 남부 지방이 심한데, 북부 지방에 비해 격차가 크게 날 정도로 가난하기 때문이다.

4. 우승 기록


[1] 2006년 FIFA 월드컵 수훈,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장교장 Ufficiale Ordine al Merito della Repubblica Italiana[2] 은드랑게타가 역사가 오래된 마피아 조직이니만큼 고유한 코드네임까지 있다는 것은 간부 또는 요직이라는 뜻이다.[3] 특히나 지역별로 범죄조직이 있는데, 카모라가 나폴리 기반이고, 마피아로 흔히 알려진 코사 노스트라가 시칠리아가 근거지라면, 은드랑게타는 이아퀸타의 고향인 칼라브리아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거기다 은드랑게타는 제노바 모란디 교량 붕괴 사고에도 공사 당시 저질 재료를 쓰고 차액을 챙겨 예견된 참사라는 외견의 보도가 쏟아지고 있으며, 1960년대부터 각종 건물 및 주택단지 건설업계에도 손을 뻗어온지라 어디서 붕괴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