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1 23:50:35

필리포 인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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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벤토 칼초
Benevento Calcio
파일:6915.jpg
이름 필리포 인차기
Filippo Inzaghi
[1]
출생 1973년 8월 9일 ([age(1973-08-09)]세) /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 피아첸차
국적 이탈리아 파일:이탈리아 국기.png
신체 키 181cm | 체중 74kg
직업 축구선수(공격수[2]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산니콜로 (1982~1985 / 유스)
피아첸차 칼초 (1985~1991 / 유스)
피아첸차 칼초 (1991~1995)
SC 레페 (임대) (1992~1993)
엘라스 베로나 (임대) (1993~1994)
파르마 FC (1995~1996)
아탈란타 BC (1996~1997)
유벤투스 FC (1997~2001)
AC 밀란(2001~2012)
감독 AC 밀란 유스 (2012~2014)
AC 밀란 (2014~2015)
베네치아 FC (2016~2018)
볼로냐 FC (2018~2019)
베네벤토 칼초 (2019~)
국가대표 57경기 25골(이탈리아 / 1997~2007)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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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수페르 피포(Super Pippo)
가족 동생 시모네 인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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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피아첸차 칼초2.1.2. 유벤투스 FC2.1.3. AC 밀란2.1.4. 유럽 대항전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감독 경력5. 여담6. 인자기에 대한 말,말,말7. 기록
7.1. 우승 기록7.2. 출전 기록7.3. 개인 수상

1. 소개

파일:attachment/필리포 인자기/Inzaghi.jpg


이탈리아축구 선수 출신 감독. 2019년 6월 22일 베네벤토 칼초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001년부터 AC 밀란으로 이적하여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다. 별명은 '수페르 피포'(위대한 골잡이).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피아첸차 칼초

파일:external/www.valderrama.it/inzaghino.jpg

인자기는 동료 축구 선수이자 친동생인 시모네 인자기와 함께 고향 클럽 피아첸차 칼초에서 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10대였던 1991년, 세리에 C1에 속해있던 UC 알비노레페로 임대 이적하며, 21경기에서 13골을 넣었다. 1993년, 세리에 B의 엘라스 베로나에서 뛰며 36경기에서 13골을 넣었다. 피아첸차로 돌아온 후, 37경기에 출전하여 15골을 넣으며 팀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2.1.2. 유벤투스 FC

파일:external/www.benents.it/Filippo%20inzaghi%20-%204.jpg
1995년 파르마로 이적하여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으나, 파르마에서 뛴 15경기 동안 단 2골만을 득점하였다. 다음 시즌 아탈란타로 이적하였고, 24골을 넣으며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이 때의 활약으로 유벤투스로 이적하였다. 그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지네딘 지단과 함께 환상적인 공격진을 구축하였다. 이들의 활약으로 유벤투스는 1997-98 시즌 스쿠데토를 차지하였으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1-0으로 패하였다.

유벤투스에서의 기록은 165경기 89골.

2.1.3. AC 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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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밀란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스트라이커[3]

유벤투스에서 122경기 동안 58골을 넣었음에도 2001-02 시즌, 새로 영입된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밀려 팀을 떠나게 된다. 2001-02시즌 마르첼로 리피의 개혁의 일환으로 내쳐진 유벤투스의 필리포 인자기를 밀란 구단주인 베를루스코니가 사재 7000만 유로를 풀어 AC 밀란으로 영입하나, 인자기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시즌의 절반 동안 뛰지 못하였다. 하지만 부상에서 복귀한 뒤 부터는 안드리 셰브첸코와 함께 밀란의 공격진을 이끌었고, 2002-03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 2003 코파 이탈리아 우승, 2003-04 시즌 스쿠데토를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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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패배를 깨끗이 갚다.

인자기는 2년 동안 그를 괴롭혔던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부터 회복하여 세리에 A 2005-06 시즌에 22경기에 출전하여 12골을 넣었고, 다섯 번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4골을 득점하였다. 2007년 5월 23일, 아테네에서 열린 2006-07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인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인자기는 2골을 득점하여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고, 2004-05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의 패배를 설욕하였다. 그는 또한 2007 UEFA 슈퍼컵 세비야 FC와의 경기에서 동점골을 뽑아내며 팀의 3-1 승리에 기여하였다. 또한 FIFA 클럽 월드컵에도 참가하여 보카 주니어스와의 결승전에서 2골을 뽑아내며 팀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2008년 2월 24일 인자기는 팔레르모와의 경기에서 득점하였는데, 이는 리그에서 1년 만에 기록한 것이다.
2009-10 시즌에는 노쇠화와 전술 변화로 인해[4] 거의 경기에 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에 따라 이적 루머가 간간히 나오기도 하는데 루머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현실. 맨체스터 시티에서 링크가 있다는 루머였다! 이에 인자기 본인은 밀란에서 은퇴한다고 못박았다.

2010-11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4차전 레알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2골을 몰아치며 역시 수페르 피포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특히 첫번째 골은 역시 인자기스러운 골이 터졌다. 게다가 두 번째 골은 혼자만 잔디색이 다른 곳에 앞서 있었던 '대놓고 오프사이드' 였는데 오심으로 득점 인정되었으나 레알 선수들에게조차 별로 항의를 안 받았다(...) 1분 52초부터 보면 된다.선수나 감독이나 항의를 안하는 분위기 카시야스 넌 로빙을 예상하고 점프하겠지만 난 땅볼로 간다 워낙 스타일이 오프사이드 라인과 함께 살아온 양반이라 현역 시절 오프사이드에 관해선 '인자기가 곧 오프사이드고 오프사이드가 곧 인자기다.', '인자기가 오프사이드 아니라 하면 아닌거다'라는 시쳇말들도 있었다(...). 그리고 기가막힌 온사이드 골로 위장하기 위해 세레모니를 더욱 열심히 했다

어쨌든 이후 주로 백업 멤버로 활약하였지만, 2010년 5월 21일 2011년 6월 30일까지의 1년 연장 계약을 하였지만 팔레르모전에서 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아웃. 그리고 결국 5월 11일 편지를 남겨 AC 밀란과의 재계약을 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다음은 그 편지.
지금 이 편지에서 여러분이 읽으시게 될 여러 내용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 여러분이 꼭 알아주셨으면 하는 내용은 단 하나입니다.
저는 "우리"를 위해 뛰었고, 또 뛰었다는 것. 감정을 공유하지 않은 채로 경기하고 승리를 거두는 데에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이루었습니다. 함께 소망하고, 고통받고, 기뻐했습니다.
우리는 한 마음으로 각종 우승 트로피며 스쿠데토를 여러 번 들어올렸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해 달렸고, 이 사실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밀라니스타 여러분, 기억하시겠지요. 제가 밀라노에 처음 도착했을 때, 여러분은 제 이적을 몰랐습니다.
저는 호텔방에 몸을 숨긴 채 되도록 밖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제 모습이 보이면 유벤투스와 밀란 간의 거래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적이 성사된 후 첫 몇 주, 첫 몇 달간 여러분은 저라는 사람에 대해 점차 알아나갔고, 우리는 함께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에 빠졌지요. 토리노전, 그 날 밤. 여러분들은 화가 나 있었습니다.
피치 위에서는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았고, 여러분들은 침묵에 잠겨 있었습니다. 저는 조끼를 벗고 몸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절 향해 보내주신 함성이 그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고, 챔피언스리그를 향한 길을 틔워 주었으며
결국 이는 맨체스터에서의 승리[5]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2004~5년간 부상 문제로 앤트워프에서 재활할 때 저에게 격려를 보내 준 모든 분들,
그리고 제 생일날이기도 했던 2006년 8월 9일, 레드스타 베오그라드를 상대로 챔피언스리그 본선 진출권을 땄던 그 날 우리 모두가 함께 겪었던 가슴 떨림.
이 모든 기억들은 제 마음속 한 구석에 늘 간직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테네, 축구가 저에게 준 최고의 선물.
이는 저와 여러분이, 즉 우리가 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우리를 막을 수 없는 건 단 하나도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우리가 꾸었던 가장 아름다운 꿈보다도 더 멋진 현실이었습니다.
리버풀을 상대로 이스탄불에서의 패배 후 단 2년만에 2골을 넣으면서 일곱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룬다는 것.
운명은 우리 자신이 감히 꿈꾸지도 못했던 것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오늘 저는 진심을 다해 베를루스코니 회장님과 갈리아니 단장님에게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들이 준 자극을 통해 저는 한계를 넘어서 더 강한 사람이 되기를 추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스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가 뛰었던 모든 팀의 모든 선수들에게도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저는 지금의 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밀란에게 감사합니다. 축구에게 감사합니다. 모두 내 사람들이고 내 것이라고 감히 불러봐도 될까요.
밀란이라는 팀. 보드진 직원들, 밀라넬로의 직원들, 의료팀, 스타디움, 라커룸,
이적이 발표되었던 일요일 유니폼을 흔드는 제 모습을 지켜보며 제가 넣을 골들을 생각하며 몸이 떨렸던 모든 서포터 여러분.

안첼로티 감독님, 안녕히. 그와 함께 저는 모든 대회를 우승했습니다.
저를 따라 전세계를 누볐던 저의 팬들께도, 안녕히. 과거와 현재에 저와 함께했던 제 멋진 동료들도 모두, 안녕히.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저의 가족에게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시모네와 조카 토마소. 가족이 없었더라면 여기까지 절대로 올 수 없었을 겁니다. 언제나 저의 힘인 사람들.
사랑하는 저의 팀 밀란을 떠납니다.
여러분도 아시듯, 인생이란 그런 것이니까. 이제 때가 왔으니까.

필리포 인자기

그리고 5월 13일(한국시간) 노바라와의 고별경기에서 후반 22분 교체 투입되어 15분만인 후반 37분에 오프사이드 트랩을 절묘하게 돌파하며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지극히 인자기스러운(...) 골로 장식하였다. # 3분 15초 경부터 등장 전설의 전설다운 마무리.
이 경기 관련 영상들을 찾아 보면 중계를 하던 일명 밀란 할아버지가 다른 선수들의 골에는 평범하게 반응하다가 인자기의 골이 터지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감격하다못해 오열하는 모습이 나온다. 밀란 팬들에게 인자기가 어떤 의미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다.


바로 이것. 1분3초부터 보면 된다.

2.1.4. 유럽 대항전

인자기는 챔피언스리그에서 해트트릭을 2번 기록[6]한 첫 선수이다. 첫 번째 해트트릭은 디나모 키예프와의 1997-98 챔피언스 리그 8강전에서였고, 두 번째 해트트릭은 2000년 9월 13일에 있었던 함부르크 SV와의 조별 리그 경기에서였다. 또한 밀란에 가서는 2003년 우승 당시 10골로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골닷컴 기사.

2007년 11월 6일에 벌어진 샤흐타르 도네츠크와의 경기에서 챔피언스리그 개인 통산 62호골, AC 밀란에서의 33호 골을 기록하였다. 2007년 12월 4일에 셀틱과의 경기에서 또 득점하여 63골을 기록하였다. 이 골로 바이에른 뮌헨의 전설적인 선수 게르트 뮐러를 제치고 유럽 대항전 통산 골 기록 선두에 올라섰다.

2010년 시점에서 유럽 클럽 대항전 통산 70골로 레알 마드리드출신의 레전드였던 라울 곤살레스와 유럽 클럽대항전(UEFA 챔피언스리그 + 유로파 + 기타등등) 최다 득점 기록을 두고 경쟁했었다.[7][8]

밀란 자체가 그런것도 있지만 인자기가 현역일 때 바이에른 뮌헨을 무척이나 잘 잡았다.(4경기 7득점)

2.2. 국가대표 경력

파일:external/www.gazzettaworld.com/Filippo-Inzaghi-Italy1.jpg

인자기는 1997년 6월 8일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그 후 그는 57경기 25골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중심 선수가 되었다. 1998년 FIFA 월드컵, 유로 2000, 2002년 FIFA 월드컵 등 큰 대회에 많이 소집되었다. 유로 2004에서도 이탈리아의 스트라이커로 주전이 확실하였지만, 부상으로 좌절되었다. 그의 지속적인 무릎 부상은 선수 생활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에서도 지속적으로 뛰기 힘들 것이라 전망하였으나,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2006년 6월 22일 체코전에 출전하여 득점하였다. 그 이후 독일 월드컵 명단에 들어서는데 성공하고, 조국의 월드컵 우승에 기여하였다.

인자기는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통산 득점 순위에서 25골로 아돌포 발론체리, 알레산드로 알토벨리와 함께 6위에 올랐다.

3. 플레이 스타일



인자기의 플레이 스타일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포처의 화신(化身)이다. 상당히 특이한 스타일의, 전 세계 축구사를 통틀어도 나오기 힘들고 나와도 대성하기 힘든 스타일의 선수로 유명한데, 신들린 위치선정과 정점의 골 결정력, 신묘한 축구지능, 순간 속도를 이용하여 득점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들어가는, 일명 골냄새를 맡는 능력을 가장 귀신같이 보여주는, 포처 바로 그 자체가 인자기이다.

타겟형 스트라이커치고는 몸싸움도 약한 편이고, 주력도 빠르지 않으며, 드리블도 화려한 편이 아니다. 오히려 수비수를 제치는 개인기는 프로선수로써의 함량미달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9]. 그러나 빈 틈으로 쇄도할 때의 순간 속도와, 볼의 경로를 예측하는 능력, 패스를 받을 수 있는 위치 선정, 오프사이드 트랩을 깨는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정확한 슛팅을 위해 강력한 슛을 배제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또한 몸싸움이 약한 편임에도 그를 상쇄하는 낙하 지점 선점 능력과, 높은 점프, 그로 인한 타점 좋은 헤더로 키가 별로 크지 않음에도 공중볼 다툼에도 일가견이 있는 선수이다. 실제 골 수를 봐도 헤더골의 비중이 굉장히 높다.

그의 골 장면을 보면 어째 존재감이 없다가, 어디선가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골을 넣고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이 많으며, 이에 따라 싫어하는 사람들은 '주워먹기의 달인', '줍자기'등으로 깐다. 경기 내적으로 봐도 툭하면 클로킹(...)되기도 일쑤여서 '닌자기'라고 까이기도 했지만, 89분 안보이다 상대 패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단 1분이라도 보이면 어떻게든 한골은 만들어내던 본능적인 킬러 그 자체였다. 이러한 본능적인 골잡이의 모습 때문에 게르트 뮐러의 이탈리아판이라고 하는 팬들도 많다.[10]

사실 이런 위치 선정과 라인 브레이킹이 인자기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월드클래스의 스트라이커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상의 위치선정 능력은 필수이고, 오늘날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2선 공격수이면서 천부적인 위치선정 능력을 자랑하는 선수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선수들조차도 위치선정 능력 외에도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인자기는 저런 능력들이 부족하면서도 오로지 위치선정 감각만으로 적지 않은 득점 기회를 잡고 그 기회를 골로 연결했다. 그만큼 인자기는 위치선정 능력에 많이 의존했고 그 능력도 탁월했다.

역사적으로도 이러한 위치선정 능력을 바탕으로 골 넣는 기계가 10여년에 한 명 즈음은 나온다. 1960년대의 피에트로 아나스타시. 1970년대의 게르트 뮐러, 1980년대의 파올로 로시, 1990~2000년대의 필리포 인자기가 대표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계보를 잇는 선수가 누구인지 사람들은 꽤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 축구에서는 나오기 힘든 스타일이다. 그리고 묘하게도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주로 나온다. 인자기와 비슷한 세대였던 미로슬라프 클로제 역시 독일 출신의 득점 기계인 것을 생각하면... 현재는 치차리토토마스 뮐러가 이러한 스타일의 계보를 잇는 중이다. 첼시 소속의 미키 바추아이도 하찮기 그지없는 퍼포먼스와 상반되게 귀신같이 득점을 쌓기 때문에 인자기와 비슷한 게 아니냐는 평을 듣기도 한다. 참고로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뤼트 판 니스텔로이도 비슷한 스타일의 선수로 평가한 바 있다.[11]

클로킹이 패시브라는 인식과는 다르게 사실 자세히 보면 인자기는 좋은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으며, 그에 따라 수비하기 까다로운 선수로도 알려져 있다. 경기 중 인자기만 보고 있으면 이걸 느낄 수가 있는데 공격진영으로 공이 넘어옴과 동시에 산만하다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전후좌우로 움직이면서 골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위해 움직인다. 이는 인자기가 스피드가 아주 빠르진 않더라도 상당한 체력과 기동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말도 된다. 사실 '위치 선정'에 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받아 먹는다'인데, 실력이 없는 공격수라면 이렇게 아주 운 좋은 상황에서 주워먹기식 득점으로만 연명하기는 힘들다. 한 두 경기에서야 그럴 수 있겠지만, 인자기는 거의 매 경기에서 그런 장면을 한 번 쯤은 만들어 냈다면 이것도 엄연한 실력인 것. 그만큼 상당한 기동력과 체력으로 골대 근처를 이리저리 비집고 다니며 루즈볼을 따내거나 동료 공격수나 미드필더들의 패스를 받아내기 위한 좋은 위치를 선점해 낸다는 것인데, 이는 한편으로는 볼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다는 말도 된다. 또한 수비수들의 실수를 노리며 끊임없이 전방 압박을 하는 모습도 보인다. 수비수들한텐 정말 성가신 공격수인 셈. 게다가 밀란에서는 카카피를로가 인자기의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키도록 든든하게 받쳐주었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드리블도 의외로 좋은 편으로 2006 월드컵체코와의 경기에서 체코골키퍼 페트르 체흐를 말 그대로 조교하면서 골을 넣었다(...).[12] 사실 90년대 후반부부터 해외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인자기의 골키퍼 제치기는 유명했다. 단, 이 유명한 게 수비는 못 제쳐도 골키퍼는 제친다는 의미인지라...

이렇듯 그는 '위치선정' 하면 생각나는 선수 중 하나다. 엉덩이로도 골을 넣은 적도 있고, 심지어는 안드레아 피를로의 프리킥 상황에서 골대 앞에서 쇄도하다 어깨 득점한 적도 있다[13]. 이런 말도 안되는 예능 골을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넣었다.[14] 단순히 위치선정이 개쩐다 하는 수준을 넘어 그냥 공이 인자기를 따라다닌다고 보면 된다.

그의 위치선정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쓰나미. 2004년에 인자기가 몰디브로 휴가를 갔을 때 쓰나미가 들이닥쳤고 인자기는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이 일 이후 쓰나미도 피해가는 위치선정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얻었다. 오죽하면 한국에서도 주워먹기 잘하는 사람을 XX계의 인자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좀 매니악해도 축구를 좀 알면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별명.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윤자기. 핵이 떨어져도 인자기 옆이면 살수있다카더라

다만,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 때문인지 원톱 스트라이커 롤을 소화해내는 데는 무리가 있었으며, 실제로 스트라이커 두 명을 둔 투톱 체제에서 많이 뛰었다. 원톱의 경우 피지컬은 물론, 동료 선수들과의 연계 플레이 능력이 받춰줘야 하는데, 인자기에게 이런 면모는 없었다.

요약하자면 떨어지는 피지컬과 매우 낮은 테크닉[15]을 최고의 골 결정력과 오프 더 볼 능력으로 커버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멋있게 넣든 쉽게 넣든 지저분하게 넣든 주워서 넣든 모두 골이므로 어찌보면 한 골이라도 더 많이 넣는 팀이 이긴다는 축구의 대원칙에 가장 충실했던 선수가 바로 인자기였다.

4. 감독 경력

파일:external/sport.ilgazzettino.it/1776066_inz.jpg
AC밀란에서 실패하나 싶었으나 하부리그에서 착실히 경력을 쌓아가며 반등을 노리고 있는 감독.[16]

AC 밀란과의 계약이 만료된 후 자유계약 상태였던 인자기는 2012년 7월 24일 현역 은퇴를 선언하고 AC 밀란의 유소년 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리고 2014년 6월 8일 클라렌스 세도르프의 후임으로 AC 밀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유스팀 조금 맡아본 게 전부인 초짜 감독답게 AC 밀란이라는 빅클럽을 이끌기에는 부족한 리더십으로 선수단 장악면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선수들과의 트러블 역시 많았고 전술 이해도 측면에서도 부족한 점을 많이 보였다. 물론 밀란의 노답인 스쿼드를 잘 알다보니 대부분의 팬들은 보드진을 깠지만, 인자기가 클럽 레전드가 아니었으면 최전방으로 까였을 거라는 의견도 많다. 그만큼 인자기도 잘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 여하튼 AC 밀란이 10위 권으로 추락하는 등 극심한 하락세를 보인 것에 책임을 물어 감독에서 해임되었으며, 과거 세리에 A 소속 칼초 카타니아, ACF 피오렌티나에서 지도자 생활을 했고, 2013년부터 UC 삼프도리아를 맡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소싯적 프리킥 만렙, 인간말종 만렙 (...) 시니샤 미하일로비치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

이후 2016년 6월 이탈리아 3부리그인 레가 프로의 팀인 베네치아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동생은 라치오에서 그나마 하는데...[17]

그런데 그가 맡은 베네치아는 승격한 뒤 세리에B로 올라왔고, 17-18 시즌을 5위로 마감하며 이번에는 세리에A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되었다. 승격팀을 이끌고 5위로 시즌을 마감한 것도 대단하지만 베네치아의 팀 규모나 전력을 감안했을 때 이는 더더욱 놀라운 순위인데, 베네치아는 파산과 재창단을 겪은지 3년밖에 되지 않은 구단이고, 베네치아 지리의 영향 탓에 홈구장도 열악한 시설로 악명 높기 때문이다.[18]

승격 플레이오프에서는 AC 페루자 칼초를 꺾고 4강전에서 팔레르모를 만났는데, 1차전 1-1 무승부를 거두었으나 2차전에서는 1:0으로 패배하며 세리에B에 잔류하게 되었고, 베네치아는 인자기와의 작별을 발표했다. 그래도 팀이 힘들 때 잘 이끌어줬기 때문에 서로 아름다운 이별이 된 듯 하다.인스타전문

6월 13일 볼로냐 FC 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런데 현재 1월 9일 현재 2승 7무 10패 승점 13점으로 강등권에 위치해있다. 과연 평소에도 강등권에서 간신히 잔류하는 볼로냐를 이번에도 잔류로 이끌수 있을지 주목된다.

결국 최하위 프로시노네 칼치오에게 4-0으로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경질되었고, 후임은 시니샤 미하일로비치가 부임된다 엥 이거 어디서 루트 아니냐??

5. 여담

  • 위와 같은 전적 덕분에 지금도 네티즌들은 위치가 절묘하다고 할 때 '인자기급 위치선정'이라는 말을 쓴다.
  • 현재 라치오 감독인 동생 시모네 인자기도 축구선수이며 SS 라치오에서 공격수로 활약하다 얼마 전 형보다 먼저 은퇴했다. 형제간의 우애는 굉장히 좋으며 아직 미혼인 인자기(형)가 조카 토마소 인자기를 굉장히 귀여워 한다고. 형제가 같이 이탈리아 A대표팀에 차출 된적 있다. 2000년 3월 29일 스페인전에서 둘이 함께는 아니지만 둘다 그라운드를 밟았고, 2001년 11월 잉글랜드와 루마니아와의 친선전에선 둘이 조금이지만 같이 뛰었다.
  • 세레모니를 굉장히 열정적으로 하기로 유명하다. 포효하면서 세리머니를 하는데 본인에게는 그 골이 페널티킥이건 관광게임의 쐐기골이건 역전 결승골이건 매 골이 마법같은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덕분에 아탈란타 시절, 관광게임에서 추가골을 넣고서 역전 결승골마냥 환호하다가 상대 팀 선수들이 단체로 달려든 적도 있다(...) 국가대표 동료였던 크리스티안 비에리는 자신은 의도치 않게 들어간 골은 절대 세리머니 하지 않았는데 내 아는 사람 중에 뒤통수 맞고 들어가도 결승골 넣은 것 처럼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며 농담으로 디스한 적도 있다.
  • 취미는 송로버섯 채취. 송로가 굉장히 귀한 버섯이기에 팬들은 여기서도 그의 위치 선정 능력이 발휘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파일:attachment/필리포 인자기/Pippo.jpg
  • 그림에 나와있다시피 별명은 Super Pippo. 수페르 피포라고 읽는다.
  • 젊었을 때는 알아주는 꽃미남이었다. 데이비드 베컴과 나란히 서있어도 전혀 꿀리지 않았을 정도. 이탈리아 A팀이 원체 조각들만 모아놓은 팀이라지만 딱 보기에도 갸냘픈 호리호리한 체형에 남자답다기 보다는 꽃미남 스타일에 가까웠던지라 한창 때에는 여성팬들을 하악거리게 만들었으며, 특히 같은 국가대표였던 크리스티안 비에리와 보기좋은 부녀자들 기준으로... 모습을 상당히 연출했다고 한다. 천상 라고 하더라... 팬픽도 있다고 카더라.
파일:external/www.soccerwallpaper.mackafe.com/Filippo_inzaghi_image.jpg
이 때문인지 수트빨이 굉장히 잘 받는다.
  • 문제는 한 동료가 자서전에서 밝힌 그의 습관 및 징크스. 인자기는 매 경기 10분 전부터 똥을 아주많이쌌으며 기겁하는 동료들에게 "이게 나한테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얘들아."(...)
  • 2004년 동남아 몰디브에서 휴가를 보내다가 난데없이 대지진이 발생하여 쓰나미가 몰려왔다. 이 쓰나미로 수많은 사상자와 실종자가 발생했지만 인자기는 당시 스쿠버다이빙 중이어서 쓰나미의 영향을 거의 안 받고 살아남아 가까스로 귀국행 비행기를 타고 돌아왔다. 쓰나미는 그 특성[19]상 바다 깊숙한 곳일 수록 피해가 적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축구팬들은 과연 쓰나미도 피해가는 인자기의 위치선정(...)이라 칭송하였다고...
  • 하지만 그 위치선정도 나이는 피해갈 수 없는 건지 지금은 눈가에 주름이 가득하다...그런데 대체 결혼은 언제하는 걸까? 인자기가 여성 편력이 화려하다는 얘기는 있지만 그 것보다 밤 10시면 무조건 잠들고 점심,저녁 메뉴도 항상 똑같은 것을 먹을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 결혼할 틈이 없는 듯 하다. 화려한 싱글 라이프를 즐기는 걸로도 유명하기에...
  • 나이가 들면서 점점 금보라를 닮아간다.(...)
  • 회계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다.
  • 어두운 색을 좋아한다고 한다.
  • 경기 전에 음악을 즐겨 듣고 그날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면 경기가 끝난 후에 같은 음악을 반복해서 듣는 습관이 있다.
  • 유벤투스 시절 마르첼로 리피 감독의 딸 스테파니아 리피와의 염문설을 퍼트리기도 했다.
  • 축구만화인 판타지스타에는 그를 모티브로 한 살바토레 "토토" 비앙키라는 선수가 출현한다. 골대 앞에만 머물면서 이기적으로 보인다 싶을 정도로 패스를 외치고 자기 존재감을 팀원과 수비에게 강요하는, 그러면서도 골을 확실히 넣어주는 모습은 인자기와 판박이.
  • 토라도라!에 나오는 잉꼬가 정말 뜬금없이 이 선수를 언급한 적이 있다.

6. 인자기에 대한 말,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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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국가대표에 소집되어 훈련장에 나타났을 때, 우린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껏 봐왔던 선수들 중 가장 형편없는 테크닉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득점을 했습니다.
- 파올로 말디니
인자기는 정말 단순한 선수다. 어떠한 스킬도 사용할 줄 모르며 골만 넣는다. 인자기는 축구를 전혀 할 줄 모른다. 항상 올바른 위치에 있을 뿐.
- 요한 크루이프[20]
그는 오프사이드 라인에서 태어난 선수다.[21]
- 알렉스 퍼거슨
내 선수 생활 역사상 가장 대단했던 건 호나우두지만, 가장 껄끄럽고 싫은 선수는 필리포 인자기였다.
-올리버 칸[22][23]
나로서는 그들이 10명의 스트라이커를 출전시켜도 문제 될것 없다, 단 인자기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가 출전하면 나로서는 머리 아픈 경기가 될 것이다.
- 주제 무리뉴

7. 기록

7.1. 우승 기록

7.2. 출전 기록

시즌클럽소속리그리그FA컵대륙대회
경기득점경기득점경기득점
1991/92 피아첸자 세리에 B 2 0 1 1 - -
1992/93 레페 세리에 C1 21 13 0 0 - -
1993/94 엘라스 베로나 세리에 B 36 13 1 1 - -
1994/95 피아첸자 세리에 B 37 15 4 2 - -
1995/96 파르마 세리에 A 15 2 1 0 6 2
1996/97 아탈란타 세리에 A 33 24 1 1 - -
1997/98 유벤투스 세리에 A 31 18 4 1 10 6
1998/99 유벤투스 세리에 A 30 14 1 0 10 6
1999/00 유벤투스 세리에 A 33 15 2 1 8 10
2000/01 유벤투스 세리에 A 28 11 0 0 6 5
2001/02 AC 밀란 세리에 A 20 10 1 2 7 4
2002/03 AC 밀란 세리에 A 30 17 3 1 16 12
2003/04 AC 밀란 세리에 A 14 3 3 2 9 2
2004/05 AC 밀란 세리에 A 11 0 2 0 2 1
2005/06 AC 밀란 세리에 A 23 12 2 1 6 4
2006/07 AC 밀란 세리에 A 20 2 5 3 12 6
2007/08 AC 밀란 세리에 A 21 11 0 0 6 5
2008/09 AC 밀란 세리에 A 26 13 0 0 6 3
2009/10 AC 밀란 세리에 A 24 2 2 1 7 2
2010/11 AC 밀란 세리에 A 6 2 0 0 3 2
2011/12 AC 밀란 세리에 A 7 1 2 0 0 0

7.3. 개인 수상

  • 세리에 A 득점왕: 1996/97
  • 세리에 A 올해의 신인 선수: 1997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 5등급: 2000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 훈장 4등급: 2006
  • AC 밀란 명예의 전당

[1] /fiˈlippo inˈtsaːɡi/[2] 중앙 공격수[3] 지금 현재도 은퇴한 밀란 선수의 레플리카 판매량이 파올로 말디니 다음으로 많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4] 2006년 독일 월드컵을 기점으로, 공격적인 축구를 유도하기 위해 오프사이드 규칙을 완화했다. 그런데 수비하는 입장에선 라인을 올려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는 이점이 사라졌기 때문에 라인을 깊숙히 뒤로 물리고 안전하게 지키는 형태가 대세가 되었고, 이는 고전적인 '득점 기계'들이 몰락하고 대신 제로톱이 대두하는 결과로 이어졌다.[5] 02-03 챔스 우승[6] 모두 유벤투스 소속이었을 때 세운 것이다.[7] 다만 불행하게도 인자기는 시즌 중반을 넘기기 전에 부상으로 시즌 아웃, 라울 곤살레스는 챔스에서 날아다니다 보니 현재는 라울에게 많이 추월당한 상태다. 인자기 70골, 라울 76골. 지금은 둘 다 유럽 대항전 무대에서는 빠져 있기 때문에, 한동안 저 기록이 계속될 것이다. 2017년 현재 유럽 클럽대항전 최다 득점자는 호날두와 메시가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다.[8] 하지만 챔피언스리그 득점만 치면 둘의 격차는 꽤 벌어지게 된다. 라울은 챔스로 한정해도 71골로 여전히 날두에 이어 3위에 랭크되어 있지만 인자기는 챔스 기록만 치면 46골로 10위까지 밀려나버린다.[9] 조금 과장이 섞인 부분인데, 동 시대의 다른 월드클래스 공격수들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쳤던 건 사실이지만, 당시 경기 영상이나 스페셜 영상을 보면 의외로 드리블 스킬이 그렇게 나쁜 선수도 아니었다. 영국 축구잡지 포포투의 기사에서는 인자기를 테크니션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다만 발기술이 좋다는 뜻인지 공간선점 능력이 좋다는 뜻인지는 불분명하다. 물론, 전성기의 카카마냥 현란한 개인기 돌파를 기대하긴 어려웠으나, 그렇다고 프로 레벨에서 못 써먹을 수준은 아니었다는 이야기.[10]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경우인데 게르트 뮐러의 경우 많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완성형 스트라이커로 분류된다.[11] 하지만 정작 두 선수의 스타일은 위치선정 능력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제외하면 판이하게 다르다. 판 니스텔로이는 부상 이후로 몸을 많이 사리게 되면서 스타일을 많이 바꾸긴 했지만, 신장 190cm에 육박하는 몸집에 맞지 않게 발기술도 매우 뛰어났으며(마르세유 턴 등과 같은 고난도 개인기도 종종 성공시키기도 했다), 하프라인에서부터 공을 몰고 달려와 수비수들을 모두 따돌리고 득점을 성공시킨 적이 있을 정도로 스피드도 좋은 편이었다. 레알 마드리드 이적 이후에는 스타일을 더 바꾸어 라울 곤살레스와의 연계 플레이를 중시하는 플레이를 했는데, 이런 플레이를 인자기는 보여준 적이 없었다.[12] 1 대 1 상황을 맞이하자 체흐는 인자기가 바로 슛을 때릴 줄 알고 슛을 막을 자세를 취하며 준비하고 있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드리블로 자신을 제치자 당황하다가 자세가 흐트러지고, 인자기가 골을 넣지 못하게 하려고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마치 인자기가 개를 끌고 산책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막지 못하고 골을 허용, 체흐 축구인생의 흑역사로 남았다. 지못미.[13] 오해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축구는 발이나 머리외의 신체 일부를 써서 득점을 하면 무효가 아니냐는 건데, 축구에서 득점이 무효가 될 때는 손으로 넣었을 때다. 맨체스터 시티 시절 발로텔리가 어깨로 득점한 적 있다.. 축구/규칙 참조. 다리와 머리 이외의 부위를 사용하면 안되는 것은 족구의 규칙이다.[14] 예능이라고만 하긴 그런게 당시 해설의 말에 따르면 이걸 피를로랑 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물론 진지하게 했다기보단 한 두번 맞춰본 정도겠지만...[15] 진짜 동네축구 수준을 의미한다기보다는 당대 세리에의 정상급 공격수(호나우두, 셰브첸코, 토티, 비에리, 델 피에로 등)들에 비해 한참 모자라는 수준. 그래도 나름 유벤투스, AC 밀란이라는 빅클럽에서 십수년을 주전으로 뛰었던 만큼, 어느정도의 기본기는 갖추고 있었다. 또한 상술했듯이 주워먹기도 상대의 오프사이드 라인을 깨기 위한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체력, 빈 공간을 제때 찾아들어가기 위한 축구지능, 그리고 한번에 찾아온 찬스를 골로 연결시키는 결정력까지 갖춰야되는 만큼 결코 쉬운게 아니다. 그리고 인자기는 이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의 기량을 갖춘 선수였다.[16] 사실 이건 밀란 쪽 문제다. 유소년 감독 맡은 것이 전부인 인자기로는 선수 장악능력을 기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그리고 이시기의 실패를 경험 삼아서 현재 하부리그인 베네치아에서는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17] 사실 라치오 입장도 상당히 골때리는게 마르셀로 비엘사가 도망쳐버려서 맡길 사람이 시모네 인자기밖에 없었기는 하지만 현재 상황은 일단 좀 더 지켜봐야되기는 하지만 시모네 인자기는 준비 기간이 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감독직을 맡게 된 형과는 달리 은퇴이후에 유소년팀에서 일하면서 경력이 쌓여서 그런지 처음에 우려한 것과는 다르게 라치오를 비교적 잘 이끌고 있다.[18] 17-18 세리에B의 순위는 상당한 혼돈으로 1위와 3위의 승점차가 3점차다.4위 바리와 공동 1위 팔레르모,프로시노네의 승점차가 5점차일 정도. 거기에 베네치아와 승점이 엇비슷한 카르피, 스페치아, 크레모네세, 파르마가 있다.[19] 쓰나미를 비롯한 파도는 기본적으로 바다와 공기의 경계면에서 전달되는 파동이다. 따라서 경계면 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니 영향을 크게 안받는다.[20] 항목을 참조하면 알 수 있지만 원래 독설가로서도 유명한 양반이다.[21] 원래 어감은 좀 더 부정적인 표현(That lad must have been born offside)이었다. 직역하면 "그 녀석은 아예 태어날 때부터 오프사이드 였을거야" 위의 크루이프의 말도 그 놈은 그거 밖에 할 줄 몰라! 하는 강한 어조였고, 원래 아약스-바르셀로나 찬양맨이라 풋볼러와 플레이어를 엄하게 구별하는 편이다. 퍼거슨 역시 '오프사이드나 계속 걸리는 놈' 식의 표현. 막상 인자기는 축구 잡지 포포투에서 위의 두 평가에 대해 나는 그걸로도 감사요ㅋ하는 반응을 보였다.[22] 아이러니하게도 인자기는 FC 바이에른 뮌헨만 만났다 하면 골 폭격을 퍼붓는 선수였다. 기록은 4경기 7골로 전력상 열세에 있다고 했던 2006-2007 챔피언스리그 8강전 1,2차전에서 골을 삽입하여 팀을 4강으로 인도하기도. 결국 그 대회 결승에서 리버풀을 상대로 2골을 넣으며 밀란의 우승에 일조했다.[23] 사실 이건 당시 뮌헨 수비진의 본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