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6 10:50:49

루이지 디 비아조

루이지 디 비아조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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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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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755a1> 이름 루이지 디 비아조
Luigi Di Biagio
출생 1971년 6월 3일 ([age(1971-06-03)]세)
이탈리아 로마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5cm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1]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0755a1> 선수 SS 라치오 (1988~1989)
칼초 몬차 (1989~1992)
포자 칼초 (1992~1995)
AS 로마 (1995~1999)
인테르나치오날레 (1999~2003)

브레시아 칼초 (2003~2006)
아스콜리 피키오 FC 1898 (2007~2008)
감독 이탈리아 U-20 대표팀 (2011~2013)
이탈리아 U-21 대표팀 (2013~2019)
이탈리아 대표팀 (2018 / 감독대행)
SPAL (2020)
FC 디나모 시티 (2023)
국가대표 31경기 2골 (이탈리아 / 1998~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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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축구선수 출신 감독.

2. 선수 시절

2.1. 클럽 경력

1988년SS 라치오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SS 몬차, 포자 칼초를 거쳐서 AS 로마로 이적했다. 그가 로마에 있었을 때 1997-98 시즌을 4위로 마감했고 1998-99 UEFA컵과 1997-98 코파 이탈리아에서 8강에 올랐다. 1999년에는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가게 되었다. 밀라노에서는 2001-02 UEFA 컵 4강, 2002-03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을 기록했다. 2003년브레시아 칼초로 이적하여 2006년까지 활동했고 아스콜리 피키오 FC 1988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팀 경력

2.2.1.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1998년에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체사레 말디니 감독의 부름을 받아 처음으로 아주리 군단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말디니 감독의 신임을 얻어 마침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었다. 당시 이탈리아는 칠레, 카메룬, 오스트리아와 함께 B조에 속했다. 교체로 출전한 칠레와의 1차전에서 이탈리아는 전반 11분,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으나 전반 종료 직전과 후반 3분에 마르셀로 살라스에게 잇달아 골을 내주며 1 : 2 역전패를 당할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후반 39분, 로베르토 바조페널티 킥 동점골 덕에 2 : 2로 간신히 비겼다.

뒤이어 2차전 카메룬과의 경기에서부터 선발로 출전한 디 비아조는 전반 7분에 로베르토 바조의 크로스를 헤딩으로 골을 넣으며 분위기를 한층 유리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후반전에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잇달아 2골을 터뜨리며 3 : 0 대승을 거두었다.
마지막 오스트리아와의 경기에서도 비아조는 크게 활약하며 오스트리아의 공격을 무력화시키는 역할을 했고 이탈리아는 2 : 1 승리를 거두었다.

16강에서는 노르웨이를 만났고 비아조는 비에리에게 한방에 찔러주는 쓰루패스 도움을 기록하며 1 : 0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8강에서 개최국 프랑스를 만난 이탈리아는 고전을 면치 못하며 0 : 0으로 비겼고 결국 승부차기를 치르게 되었다. 4번 키커까지 양팀 모두 1명씩 실축해 스코어는 3 : 3이었던 상황이었다. 선축이었던 프랑스의 5번 킥커는 로랑 블랑이었고 킥을 깔끔하게 성공시켜 먼저 1점 앞서 갔다. 이제 이탈리아는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하는 입장이 되었고 이탈리아의 5번 키커는 바로 디 비아조였다. 그러나 디 비아조의 킥은 골대 상단을 때리고 말았고 결국 프랑스가 승부차기 4 : 3으로 승리하며 이탈리아는 8강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2] 디 비아조의 첫 번째 월드컵도 여기서 막을 내렸다.

2.2.2. UEFA 유로 2000

비록 승부차기를 실축하긴 했어도 루이지 디 비아조는 여전히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귀중한 자원이었고 UEFA 유로 2000에도 출전했다. 이 때 이탈리아는 튀르키예, 벨기에, 스웨덴과 함께 B조에 속했다. 이탈리아는 1차전 상대 터키를 맞아 후반 7분, 안토니오 콘테[3]의 선제골로 앞서나갔으나 불과 10분 만에 터키의 오칸 부르크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다. 후반 25분, 필리포 인자기페널티 킥 결승골 덕에 2 : 1 신승을 거두며 진땀을 흘렸다. 하지만 벨기에와의 2차전에선 전반 6분 만에 프란체스코 토티의 선제골로 앞서나갔고 후반 21분, 스테파노 피오레가 쐐기골을 터뜨리며 2 : 0 완승을 거두었다.
1차전과 2차전 모두 결장한 비아조는 3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부터는 선발 출전했고[4] 전반 39분에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의 코너킥을 헤딩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터뜨려 월드컵에 이어 유로에서도 득점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후반 32분에 스웨덴의 헨릭 라르손이 동점골을 넣으며 추격했지만 후반 43분,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의 결승골로 스웨덴마저 2 : 1로 꺾고 이탈리아는 3전 전승으로 8강 진출에 성공했다.

8강전 상대는 동유럽의 강호 루마니아였다. 다소 고전이 예상되었으나 이탈리아는 전반 33분, 프란체스코 토티의 선제골과 전반 43분, 필리포 인자기의 쐐기골을 묶어 루마니아마저 2 : 0으로 제압하고 4강 진출에 성공했다. 비아조는 교체 출전했다.

4강 상대는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이 이끄는 네덜란드였다. 이경기부터 비아조는 선발로 출전했고 이탈리아는 네덜란드의 공격 축구에 시종일관 밀리며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이탈리아는 세계적으로 악명높은 카테나치오를 발동해 네덜란드의 맹공을 차단하며 버텨냈다. 결국 120분 동안 이탈리아는 네덜란드의 맹공을 막아내고 또 막아내며 0 : 0 무승부를 거두었고 승부는 승부차기로 가리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선축으로 시작된 승부차기에서 비아조는 1번 키커로 나서게 되었다. 2년 전 월드컵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5번 키커로 나섰다가 실축한 아픈 경험이 있는 비아조로선 더욱 부담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엔 웃었다. 이탈리아의 1번 킥커로 나선 비아조는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기선제압에 성공했다. 그리고 프란체스코 톨도 골키퍼가 네덜란드의 1번 키커 프랑크 더부르의 킥을 막아내며 한 층 더 경기는 유리해졌다. 뒤이어 이탈리아의 2번 키커 잔루카 페소토가 골을 성공시켰지만 네덜란드의 2번 키커 야프 스탐은 허공으로 난사하며 스코어는 2 : 0으로 벌어졌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3번 키커 프란체스코 토티가 대담한 파넨카 킥으로 에드빈 판데르사르 골키퍼를 농락하며 킥을 성공시켜 점수는 3 : 0으로 벌어졌고 이제 네덜란드의 3번 키커 파트릭 클라위버르트가 실축하면 이탈리아의 승리가 확정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클라위버르트는 킥을 성공시켰고 점수는 3 : 1로 좁혀졌다. 이탈리아의 4번 킥커는 주장 파올로 말디니였다. 말디니가 킥을 성공시키면 이제 승부는 끝이 나는데, 그만 말디니의 킥이 에드빈 판데르사르 골키퍼의 선방에 막히고 말았다. 이제 네덜란드의 4번 키커가 골을 성공시키면 이탈리아는 먼저 3점을 앞서가고도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 된다. 네덜란드의 4번 키커는 파울 보스펠트. 네덜란드로서는 보스펠트가 반드시 킥을 성공시켜야 했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톨도가 보스펠트의 킥을 막아내며 이탈리아의 3 : 1 승리로 끝이 났고 무려 32년 만에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이탈리아의 결승전 상대는 바로 2년전 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국 프랑스였다. 2년 전 승부차기로 석패하며 8강에서 주저앉아야 했던 이탈리아로서는 반드시 지난 날의 빚을 갚아야 했다.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의 홈구장 스타디온 페예노르트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비아조는 선발로 출전했고 이탈리아는 전반전을 0 : 0으로 마친 뒤 후반 10분, 마르코 델베키오의 선제골로 앞서나갔다. 그리고 카테나치오로 프랑스의 맹공을 막아내며 정규시간 90분이 다 지날 때까지 1 : 0 리드를 유지하고 있었고 추가시간도 거의 다 끝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이탈리아가 32년 만에 유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듯했다. 그러나 종료 직전 실뱅 윌토르에게 기습적인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막판 1분을 버티지 못해 연장전으로 승부가 이어졌고 연장 전반 13분,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기습적인 골든 골을 허용하며 허무하게 우승컵을 놓치고 말았다.

2.2.3.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UEFA 유로 2000이 끝난 후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이 부임했는데 루이지 디 비아조는 트라파토니 신임 대표팀 감독의 신임을 얻지 못한데다 본인의 기량도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대표팀 주전에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동안 대표팀에서 공헌한 바가 컸기에 다시 한 번 대표팀의 부름을 받아 그의 2번째 월드컵인 2002년 한일 월드컵에 출전하게 되었다. 이 때 이탈리아는 북중미의 강호 멕시코와 지난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던 크로아티아 그리고 남미의 처녀 출전국 에콰도르와 함께 G조에 속했다. 디 비아조는 에콰도르와의 1차전 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했고 전반 27분에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2번째 골을 어시스트하며 1도움을 기록해 팀의 2 : 0 승리를 이끌었다. 하지만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해 교체 되었고 결국 나머지 경기에서는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이탈리아는 크로아티아와의 2차전 경기에서 후반 10분,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선제골로 앞서 나갔으나 후반 28분에 이비차 올리치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불과 3분 후에 밀란 라파이치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1 : 2 역전패를 당했다. 그리고 멕시코와의 3차전에서는 전반 34분, 하레드 보르헤티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불리한 경기를 펼쳤고 0 : 1로 질질 끌려가는 상황이 지속되었으나 후반 40분에 터진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의 골로 간신히 1 : 1 무승부를 거두며 1승 1무 1패의 전적으로 조 2위를 차지해 16강에 진출했다. 그리고 16강에 간신히 올라와서 개최국인 대한민국과 만났고 크리스티안 비에리가 선제골을 넣었고, 잔루이지 부폰의 괴물같은 선방을 보여주었으나 후반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설기현에게 동점골을, 안정환에게 골든 골을 허용하며 1 : 2 역전패를 당하며 16강에서 무릎을 꿇었다. 디 비아조의 월드컵 역시 여기서 막을 내렸다.

3. 지도자 경력

비아조는 2011년 7월 25일에 이탈리아 U-20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며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이후 2013년 7월 2일에 데비스 마냐 감독의 후임으로 U-21 대표팀 감독으로 승진했다. 그가 이끄는 이탈리아 U-21 대표팀은 2015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 출전해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을 노렸다. 이 때 이탈리아는 포르투갈, 스웨덴, 잉글랜드와 함께 B조에 속했다. 1차전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전반 29분 도메니코 베라르디의 페널티 킥 골로 앞서나갔으나 후반 11분, 욘 알베르토 구이데티에게 동점골을 허용했고 후반 41분에 이삭 키세 텔린에게 페널티 킥 역전골을 허용하며 1 : 2 역전패를 당했다. 그리고 2차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0 : 0으로 비긴 뒤 3차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안드레아 벨로티의 선제골과 마르코 베나시의 멀티골에 힘입어 3 : 1 승리를 거두었으나 포르투갈과 스웨덴이 1 : 1 무승부를 거두는 바람에 스웨덴과 1승 1무 1패 동률을 이루고도 승자승 원칙에서 밀리며 조 3위로 탈락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탈리아는 2개 대회 연속으로 올림픽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다음 대회인 2017년 UEFA U-21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절치부심했는지 지난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한 독일과 역시 지난 대회 올림픽에 출전했던 덴마크 그리고 체코와 함께 죽음의 조인 C조에 속했는데 이 때 이탈리아는 1차전에서 덴마크를 2 : 0으로 격파하며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러나 2차전 체코와의 경기에서 1 : 3으로 패배하며 다시 위기에 몰렸다. 하지만 이탈리아 축구의 영원한 밥인 독일을 1 : 0으로 잡아내며 4강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4강에서 스페인에 1 : 3으로 패배해 우승에는 실패했다. 이제 다음 대회는 이탈리아와 산마리노에서 개최되고 이 대회에서 4강 안에 들면 2020 도쿄 올림픽 출전권을 얻게 된다. 과연 이탈리아가 개최국의 자존심을 살림과 동시에 2008 베이징 올림픽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출전에 성공할 수 있을지 기대된다.

그리고 2017년 11월 13일,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1958 FIFA 월드컵 스웨덴에서 예선 탈락한 후 무려 60년 만에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치욕을 맛보게 되었다. 이탈리아 축구협회는 이 사태의 총책임자인 잔 피에로 벤투라를 즉각 경질하였고 후임자가 선임되기 전까지 U-21 대표팀 감독인 디 비아조에게 감독 대행을 맡겼다. 이 때 비아조는 밀라노 쇼크의 책임을 지고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베테랑 수문장 잔루이지 부폰을 다시 대표팀에 소집시켰다. 이탈리아는 3월 평가전에서 아르헨티나, 잉글랜드와 맞붙었는데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이탈리아는 졸전 끝에 0 : 2로 패배했고 잉글랜드와도 1 : 1 무승부를 거두며 1승도 거두지 못했다. 그리고 5월에 로베르토 만치니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비아조는 다시 U-21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했다.

2020년 2월, 레오나르도 셈플리치가 물러난 최하위 SPAL의 새로운 감독으로 취임했으나 리그 15경기에서 1승밖에 거두지 못하고 결국 강등되고 말았다.


[1] 수비형 미드필더[2] 경기 후 좌절하고 있던 디 비아조에게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적이 있던 바조가 위로해줬다.[3] 우리가 아는 그감독 이 맞다[4] 이탈리아가 이미 2승을 기록하여 주전들의 체력 안배 차원에서 백업 선수들이 대거 선발로 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