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5 13:08:36

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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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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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FIFA 월드컵 이탈리아
Campionato Mondiale di Calcio
1934 FIFA World Cup Italy™
파일:1934 FIFA World Cup Italy Poster.png
대회기간 1934년 5월 27일 ~ 1934년 6월 10일
개최국 이탈리아 왕국
공인구 페데랄레 102(Federale 102)
참가팀 16개팀
대회 결과
우승 이탈리아 파일:Italy FIGC 1934 1938.png
준우승 체코슬로바키아 파일:Czech FACR 1934.png
3위 독일 파일:Germany DFB 1934.png
4위 오스트리아 파일:Austria ÖFB 1934.png
수상
골든볼 주세페 메아차 (이탈리아)
골든슈 올드리히 네예들리 (체코슬로바키아)
이전·이후 대회
1930년
우루과이
1934년
이탈리아
1938년
프랑스
1. 개요2. 개최지 선정3. 지역예선4. 대회 엠블럼·마스코트·공인구5. 경기장6. 군사 독재와 막장 진행7. 대회 진행
7.1. 1라운드7.2. 8강7.3. 4강
8. 출전선수명단9. 기록실10. 결과11. 수상12. 뒷이야기


1. 개요

1934년 이탈리아에서 개최된 2번째 FIFA 월드컵. 1934년 5월 27일부터 6월 10일까지 8개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사상 처음으로 반도국가에서 개최되었다.

이 월드컵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처음으로 지역 예선이 열렸다는 것이다. 지역예선에는 32개의 팀이 참가하여 16개의 팀이 본선에 진출하였고, 대회의 방식은 조별 리그 없이 녹아웃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렸다. 녹아웃 토너먼트제였기 때문에 같은 라운드의 경기는 모두 같은 시간에 열렸다. 처음으로 3, 4위전도 열렸으며 이탈리아결승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체코슬로바키아를 2대1로 제압하고 유럽 국가 중 첫 월드컵 챔피언이 되었다.

2. 개최지 선정

1932년에 이탈리아스웨덴과의 유치 경쟁에서 승리하여 제 2회 대회의 개최권을 따냈다. 원래 FIFA는 이탈리아가 월드컵을 개최하면 파시스트의 나팔을 불어제낄게 안 봐도 블루레이라서 별로 개최권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스웨덴대공황의 여파로 GG를 친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이탈리아에게 개최권을 넘겼다. 이탈리아는 결정이 떨어지자마자 급히 350만 리라예산을 편성하여 개최 준비를 했다. 존나좋군??

3. 지역예선

이 대회 지역예선의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그리고 이런 일들이 있었다.
  • 전 대회 챔피언우루과이가 불참했다. 우루과이의 불참 사유는 전 대회를 개최할 때 유럽팀들이 대거 불참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이것 때문에 이 대회는 전 대회 우승국이 출전하지 않은 유일한 대회로 남아 있다.
  •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 영국 홈네이션 팀들도 출전을 거부했다. 쪼렙들과 노는 것보다 FA컵이 더 수준이 높다는 것이 그들의 이유였다. 정작 잉글랜드 등은 우루과이 상대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1954년 월드컵에 출전한 잉글랜드는 8강에서 우루과이에게 떡실신 당했고 바로 최근인 2014년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우루과이를 만나 또 녹다운 당했다. 우루과이는 16강에 진출, 잉글랜드는 조 꼴찌로 집에 갔다.
  • 이탈리아는 개최국 프리미엄은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우리도 예선부터 뛰고 싶다고 FIFA를 졸랐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FIFA가 그 요청을 수락해서 개최국이 자동 출전권을 포기한 유일한 사례로 남아있다. 그러다 떨어지면 무솔리니한테 뭔 소리를 들으려고.. 결국 이탈리아는 밀라노에서 열린 지역예선에서 그리스를 4:0으로 완파했고 그리스가 2차전을 포기하면서 본선에 나갔다. 개최국이 지역예선을 치른 것은 이 사례와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의 사례 두 가지가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는 하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이 FIFA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예선을 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이탈리아와는 달리 나이지리아에게 덜미를 잡혀서 지역예선에서 탈락했다. 하지만 개최국 버프로 그냥 본선에 진출했는데 이탈리아가 지역예선에서 떨어졌어도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 지역예선 최종전을 앞두고 있던 미국멕시코는 일정이 많이 늦어진 관계로 아예 개최지인 이탈리아로 건너가 지역예선 최종전을 치렀다. 미국이 승리하여 본선에 나갔고 이 경기는 앞서 열린 이탈리아 vs 그리스전과 함께 월드컵 사상 개최국에서 열린 유이한 지역예선 경기가 되었다.

4. 대회 엠블럼·마스코트·공인구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50px-WorldCup1934poster.jpg
1934년 대회 포스터

포스터의 구성은 간단했다. 앞에 파란 옷을 입은 선수는 개최국인 이탈리아의 선수를 형상화한 것이고 뒤에는 출전국들의 국기가 쭉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마스코트와 공인구는 이번에도 없었다.

5. 경기장

월드컵이 열린 도시와 구장은 다음과 같다.
(수도 로마를 제외하면 가나다순)

6. 군사 독재와 막장 진행

이 대회는 정치와 파시즘으로 얼룩진 역사상 최악의 대회였다. 말 그대로 베니토 무솔리니컵이라 불릴 정도로 월드컵 역사상 막장성으로는 선두에 서는 대회이다. 가장 큰 원인은 2년 후의 베를린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베니토 무솔리니가 파시즘을 선전하고자 용을 쓴 대회로 악명이 높은 탓이다. 유럽 최초의 월드컵인데 이렇게..... 이와 비견될 정도로 막장성을 자랑했던 대회는 1978 FIFA 월드컵 아르헨티나 정도. 무솔리니가 심판들을 따로 만나서 매수하는 등 지금으로 치면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졌다.

이상하게도 이 대회 이후 월드컵은 올림픽과 함께 양대 세계적 스포츠대회이자 세계 최고의 단일종목 선수권대회로 위상이 굳건하다. 이 대회의 막장성만 두고 보면 월드컵 자체가 폐지되어도 할말 없는 수준의 대회였다. 특히 겨우 2번째 대회라서 더더욱.
  •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선수들이게 '우승못하면 사형'이라는 엄포를 놓는다.
  • 아르헨티나는 이탈리아에게 루이스 몬티, 엔리케 구아이타, 라이문도 오르시 등 당시 이탈리아에서 뛰던 선수들을 뭉텅이로 빼앗기고 말았다. 이런 식으로 이탈리아에게 주전급 선수들을 뺏긴 아르헨티나는 빈껍데기만 남은 팀으로 전락했고 결국 첫 경기에서 스웨덴에게 2:3으로 패배하며 일찌감치 광탈했다. 그리고 이탈리아가 우승하자 무솔리니는 저 3명의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특별히 귀하게 대우해줬는데 최고급 승용차와 저택을 하사하고 무솔리니가 죽을 때까지 매년 거액의 연금을 지급했다.
  • 무솔리니는 경기 전 심판들과 따로 만나서 로비 행각을 벌였다.
  •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이탈리아는 판정을 등에 업고 격투기 수준의 플레이를 일삼았고 스페인 주전 대다수가 부상을 입는다.[4] 그럼에도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고 결국 재경기 주심 렌 메르세[5]가 스페인의 완벽한 2골을 오프사이드로 취소시키는 등 온갖 편파 판정 끝에야 이탈리아는 간신히 1:0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후 렌 메르세는 스위스 축구협회로부터 정직 처분을 받는다.
  • 오스트리아와의 4강전에서는 이탈리아 수비수 루이스 몬티는 오스트리아의 에이스 마티아스 진델라에게 무수한 반칙을 저질렀지만 심판의 휘슬은 울리지 않았고 이 경기 역시 이탈리아의 1:0 신승으로 끝난다.
  • 체코슬로바키아와의 결승전에서는 무솔리니가 직접 관람하였다. 이 경기 역시 주심 이반 에클린드[6]에 의해 이탈리아의 PK성 반칙따윈 휙휙 넘어가는 등 도저히 체코슬로바키아가 이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결국 연장전에서 터진 안젤로 스키아비오의 결승골로 이탈리아가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 전 대회에서는 중계를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이번 대회에선 라디오 중계에 신경을 써서 9개국에 15개의 채널로 전파를 쏘았다. 물론 중간중간 착실하게 파시즘을 선전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 무솔리니는 국가 전체의 정신적 통합 및 파시즘 선전을 위해 1934년 월드컵을 철저히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배고픔에 굶주린 이탈리아 국민들의 불만과 광기를 축구장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무솔리니는 관중들로 하여금 '이탈리아를 위해 죽어라'라는 응원구호를 외치도록 만들었다. 여러모로 당시 이탈리아에 있어서 만악의 근원이 아닐 수 없다.
  • 독일은 애초에 이 월드컵을 이탈리아와 나눠먹기로 협의가 끝난 상황이었으나 4강전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 패하면서 3위에 머물고 말았다.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증명하기는커녕 하등한 슬라브족에게 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돌프 히틀러는 선수들을 감옥으로 보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4년 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땅 일부를 점령하고 영국과 프랑스에게 더이상 침략전쟁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리고 1년 뒤......
  • 그리고 이탈리아는 여기서 지은 죄를 84년 후에 스웨덴에게 그대로 돌려받게 된다.

7. 대회 진행

7.1. 1라운드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8강 진출국.
1라운드
이탈리아 미국
스페인 브라질
오스트리아 프랑스
헝가리 이집트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벨기에
스웨덴 아르헨티나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7.2. 8강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4강 진출국.
8강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스위스
독일 스웨덴

7.3. 4강

왼쪽에 있는 진하게 표시된 국가는 결승 진출국.
4강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독일

8강부터의 자세한 내용은 밑의 항목 참조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경기 대진표
A 1라운드 1경기
이탈리아 7:1 미국
I 8강전 1경기(5경기)[7]
이탈리아 1:1(1:0) 스페인
M 4강전 1경기
이탈리아 1:0 오스트리아
P 결승전
이탈리아 2:1 체코슬로바키아
B 1라운드 2경기
브라질 1:3 스페인
C 1라운드 3경기
오스트리아 3:2 프랑스
J 8강전 2경기
헝가리 1:2 오스트리아
D 1라운드 4경기
헝가리 4:2 이집트
-
E 1라운드 5경기
체코슬로바키아 2:1 루마니아
K 8강전 3경기
체코슬로바키아 3:2 스위스
N 4강전 2경기
체코슬로바키아 3:1 독일
F 1라운드 6경기
네덜란드 2:3 스위스
G 1라운드 7경기
독일 5:2 벨기에
L 8강전 4경기
스웨덴 1:2 독일
H 1라운드 8경기
아르헨티나 2:3 스웨덴
O 3/4위전
오스트리아 2:3 독일
1934 FIFA 월드컵 우승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Flag_of_Italy_%281861-1946%29.svg.png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000000 이탈리아}}}]]
첫 번째 우승

8. 출전선수명단

항목 참조

9. 기록실

17경기에 70골이 터지면서 경기당 평균 4.12골을 기록했다.

10. 결과

순위 국가 경기 득실 승점 비고
1 이탈리아 5 4 1 0 12 3 +9 9 우승
2 체코슬로바키아 4 3 0 1 9 6 +3 6 준우승
3 독일 4 3 0 1 11 8 +3 6 3위
4 오스트리아 4 2 0 2 7 7 0 4 4위
5 스페인 3 1 1 1 4 3 +1 3 8강
6 헝가리 2 1 0 1 5 4 +1 2 8강
7 스위스 2 1 0 1 5 5 0 2 8강
8 스웨덴 2 1 0 1 4 4 0 2 8강
9 아르헨티나 1 0 0 1 2 3 -1 0 1라운드
9 프랑스 1 0 0 1 2 3 -1 0 1라운드
9 네덜란드 1 0 0 1 2 3 -1 0 1라운드
12 루마니아 1 0 0 1 1 2 -1 0 1라운드
13 이집트 1 0 0 1 2 4 -2 0 1라운드
14 브라질 1 0 0 1 1 3 -2 0 1라운드
15 벨기에 1 0 0 1 2 5 -3 0 1라운드
16 미국 1 0 0 1 1 7 -6 0 1라운드

11. 수상

MVP
1위 - 주세페 메아차(이탈리아)[8]

파일:external/www.storiedicalcio.altervista.org/Meazza_inter_002_01.jpg
주세페 메아차

2위 - 리카르도 사모라(스페인)
3위 - 올드리히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

득점왕
1위(5골) - 올드리히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9]

파일:external/www.solofutbol.cl/nejedly1.jpg
올드리히 네예들리

2위(4골) - 에드문트 코넨(독일), 안젤로 스키아비오(이탈리아)
3위(3골) - 라이문도 오르시(이탈리아), 레오폴트 키엘홀츠(스위스)
1934 FIFA 월드컵 베스트 XI
FW
라이문도 오르시
FW
올드리히 네예들리
FW
엔리케 구아이타
FW
마티아스 진델라
FW
주세페 메아차
HB
레오나르도 실라우렌
HB
루이스 몬티
HB
아틸리오 페라리스
FB
에랄도 몬첼리오
FB
하신토 킨코세스
GK
리카르도 사모라

12. 뒷이야기

  • 베니토 무솔리니가 대회를 파시즘의 선전도구로 활용한 탓에 1934년 월드컵은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대회라는 평을 받는다.
  • 이탈리아의 또 다른 문제는 지역감정이었다.[10] 남북부간의 선수들끼리는 물론이고 같은 북부라도 유벤투스인터 밀란의 라이벌 의식이 심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대표팀주장이자 주전 골키퍼였던 잔피에로 콤비(유벤투스)와 최고 스타플레이어 주세페 메아차(인터 밀란)가 서로 내기[11]를 통해 친해진 관계로 두 팀간의 라이벌 의식은 끈끈한 팀플레이로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 메아차를 은근히 깔보던 콤비메아차를 인정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 미국에 패하여 본의 아니게 로마의 휴일을 찍게 된 멕시코. 하지만 이후 멕시코는 1980년까지 미국에게 단 한 차례도 승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전적은 24전 21승 3무. 이 정도면 공한증 뺨친다. 참고로 이 당시의 미국은 영국 선수들을 많이 수혈해서 당대 최강 급은 아니더라도 오늘날 네덜란드나 포르투갈 정도와 비슷한 축구강국이었으며 지난 대회에서도 끝없는 승승장구 끝에 4강에서 극강의 아르헨티나가 돌풍을 잠재운 나름 강팀이었다.
  • 브라질유럽에서 열린 1934년 대회와 1938년 대회에 모두 참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커피 무역선이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커피 수출을 위해 유럽으로 향하는 선박에 몸을 실은 뒤 현지에서 커피를 팔아 경비를 조달함으로써 근근이 대표팀을 꾸려나갔다. 이러한 1930년대 개근에 힘입어 브라질은 아직까지도 유일무이한 월드컵 개근국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12]
  • 이탈리아가 이 대회에서 5경기 동안 3골만을 허용하며 세운 최소 실점 우승 기록은 1998년 프랑스에 의해 깨지기 전까지 무려 64년간 이어졌다. 물론 떳떳한 기록은 아니었지만...
  • 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나라 전체에 분포된 8개의 구장을 쓰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것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이 대회를 우승한 이탈리아는 그래도 성이 안 찼는지 뜬금없이 축구의 종주국을 박살내러 간답시고 배에 몸을 싣고 런던으로 갔다. 슈퍼 월드컵 이에 잉글랜드는 무솔리니의 공갈에 못 이겨 평가전을 치러줬는데 이 경기는 '하이버리의 난투극'이라 불릴 정도로 그 90분의 경기시간 내내 몸싸움으로 도배된 경기였다. 그리고 루이스 몬티테드 드레이크와 충돌 후 오른발이 부러져 병원에 실려 갔고 경기 결과는 잉글랜드의 3대2의 승리로 끝났다. 공갈협박으로 한 월드컵 우승 따위 어딜 디밀어? 그리고 루이스 몬티의 전성기는 그걸로 끝!
  • 이후 이탈리아는 56년 뒤 다시 월드컵을 개최하게 됐다.


[1] Partito Nazionale Fascista의 약자. 국가 파시스트 당의 약자이다[2] 2차 대전 중에 폭격을 맞고 파괴되었다.[3]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산 시로가 맞다. 1926년 개장[4] 그중 한명이 이날 이탈리아의 무수한 슈팅을 막아내면서 무승부를 이끈 리카르도 사모라 골키퍼였다.[5] 16강 미국 vs 이탈리아 전의 주심도 맡았다.[6] 이탈리아 vs 오스트리아 전의 주심을 맡았다.[7] 5경기는 1경기의 재경기[8] 인터 밀란의 역대 최고 레전드이자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중 한 명. 골키퍼를 제끼는 트릭을 축구 역사상 최초로 선보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당시에도 이것은 큰 흥미거리였다고 한다. 봤지? 골키퍼는 제끼라고 있는거야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53경기 출전 33득점으로 아직도 역대 득점 순위 2위. 그리고 밀라노에 위치한 5성급 축구 경기장에 그의 이름이 헌정되어 있다. 주세페 메아차 스타디움이 바로 그의 이름이다.[9] 2006년 11월 이전까지의 기록에는 올드리히 네예들리(체코슬로바키아), 에드문트 코넨(독일), 안젤로 스키아비오(이탈리아). 이렇게 총 3명이 4득점으로 공동 1위에 올라 있었다. 그러나 FIFA 측의 자료 검토 결과 네예들리의 1득점이 누락된 것으로 판명, 네예들리의 단독 1위로 기록이 수정됐다.[10] 이탈리아 통일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때는 아직 이탈리아가 통일된지 고작 60여년밖에 안 된 시점이었다.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감정은 애들 장난 수준[11] 메아차가 자신의 전매특허 기술인 골키퍼 제끼기가 잔피에로 콤비에게도 통하는지 내기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12] 브라질은 대공황의 여파로 경제가 침체된 1930년 내내 국제대회 때마다 이랬다. 1932년 LA 올림픽 때도 커피를 잔뜩 싣고 와서 '이거 팔아서 참가비용 쓸께요'하다가 거부당해서 재정적 곤란을 겪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