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로 살라스의 역임 직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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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로 살라스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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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 ||||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칠레의 前 축구선수 | ||
이름 | 마르셀로 살라스 Marcelo Salas | |
본명 | <colbgcolor=#fff,#191919>호세 마르셀로 살라스 멜리나오 José Marcelo Salas Melinao | |
출생 | 1974년 12월 24일 ([age(1974-12-24)]세) | |
칠레 테무코 | ||
국적 | [[칠레| ]][[틀:국기| ]][[틀:국기| ]] | |
신체 | 키 173cm | |
직업 | 축구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191919><colcolor=#000,#e5e5e5> 유스 | 산토스 테무코 (1983~1991) 우니베르시다드 (1991~1993) |
선수 | 우니베르시다드 (1993~1996) CA 리버 플레이트 (1996~1998) SS 라치오 (1998~2001) 유벤투스 FC (2001~2006) → CA 리버 플레이트 (2003~2005 / 임대) → 우니베르시다드 (2005~2006 / 임대) 우니베르시다드 (2006~2008) | |
국가대표 | 70경기 37골[1] (칠레 / 1994~2007) |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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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클럽 경력
살라스는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의 유소년팀을 거쳐 1993년, 1군팀에 합류하였고 이때부터 프로 무대를 밟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해인 약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리그 25경기 27골을 포함하여 시즌 45경기동안 41골이라는 득점력을 선보이며 칠레 전역에 혜성같이 등장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후에도 팀의 주포로 활약한 살라스는 클럽대항전에서의 활약으로 남미 전역에까지 그의 활약상이 널리 알려지면서 내로라하는 남미의 명문팀들이 그에게 무수한 러브콜을 보낸다.살라스의 선택지는 CA 보카 주니어스와 더불어 아르헨티나의 손꼽히는 명문구단인 리베르 플레이트였다. 그의 활약은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도 계속된다. 2시즌동안 팀의 스트라이커로 맹활약하며 1996 후기리그, 1997시즌 전,후기리그 우승을 모두 휩쓰는데 일조했다. 이제 남미무대는 그에게 너무 좁은 무대였고 남미 무대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유럽리그로 진출한다. 그리고 다음 무대는 선배 이반 사모라노가 맹활약하고 있던 이탈리아의 세리에 A였다.
1998년 2월 1일, 살라스는 2,1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이적료에 세리에 A의 SS 라치오로 이적한다. 당시 그의 이적료는 2,100만 달러 (당시 한화로 320억원)는 아르헨티나 리그에 지출된 역대 최고 이적료였고[2] 그만큼 24살의 젊은 공격수에게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는 대목이다. 그리고 살라스는 자신의 진가를 이탈리아 무대에서도 보여주며 1998-99시즌 스쿠데토, 코파 이탈리아, UEFA 슈퍼컵등 많은 트로피를 거머쥐는데 큰 기여를 했고 동시에 라치오의 황금기의 주역이 된다. 또한 팬들은 같은 남미출신 호나우두가 당시에는 장기 부상 늪에 빠지며 허덕이던 반면에 살라스가 뛰어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남부럽지 않는 활약을 하자 그를 라치오의 아이돌로 섬기기에 이른다. 그렇게 칠레의 차세대 간판스타의 거침없는 질주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2001년, 살라스는 1,200만 달러(당시 한화로 약 145억원)의 이적료에 유고 출신 스트라이커 다르코 코바체비치를 묶어 교환하는 조건을 통해 유벤투스 FC에 입성한다. 당시 파벨 네드베드, 다비드 트레제게, 릴리앙 튀랑, 알레산드로 델피에로 등 슈퍼스타들이 즐비했던 팀에 한축이 되어줄 것으로 팬들과 보드진들은 기대했으나... 첫 시즌부터 10월에 당한 십자인대 파열로 인해 시즌 절반 이상을 날려먹었고 다음 시즌에도 부상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면서 2시즌간 26경기 4골이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두고 만다.
2시즌동안 처참했던 활약상에도 불구하고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AC 밀란, FC 바르셀로나, 첼시 FC, 아스날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당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스왑딜을 할 생각이었던 스포르팅 리스본[3] 까지 많은 유럽팀들이 그에게 제의를 했으나 모두 무산됐고 결과는 그의 친정팀이었던 리베르 플레이트로 임대를 떠나게 된다. 리베르 플레이트에서는 부상의 여파로 예전 전성기만큼은 아니었지만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2년간 활약한다. 이후에는 자신이 처음으로 프로데뷔를 했던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로 돌아와 4시즌간 노익장을 과시한 뒤 2008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다.
3. 국가대표 경력
칠레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였던 그는 1994년 5월 18일, 월드컵을 앞둔 아르헨티나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그는 디에고 마라도나가 보는 앞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데뷔골까지 만들어낸다. 이후 빠르게 대표팀 주전 스트라이커로 자리잡은 살라스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남미 지역예선동안 11골을 폭격하며 16년만에 조국의 월드컵 본선을 이끈다. 또한 22살의 어린 나이에 주장완장을 착용하며 그의 입지를 확인시켜주기도 했다.1998년 2월 11일, 6만 5천명의 관중이 밀집한 잉글랜드의 성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치러진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살라스는 전반 45분, 호세 루이스 시에라의 롱 패스를 박스 앞에서 데니스 베르캄프 뺨치는 완벽한 볼터치로 받아 침착하게 득점에 성공시켰고 후반 34분에는 솔 캠벨의 파울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가볍게 성공시키며 멀티골로 팀의 2:0 승리를 이끈 것과 동시에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6만 5천여명의 웸블리 관중들을 아닥시키는데 성공한다.
3.1.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이탈리아와의 1차전에 멀티골을 박으며 맹활약한 살라스[4] |
그리고 찾아온 1998 FIFA 월드컵 본선. 당시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던 살라스는 1차전 이탈리아전에서 전반 10분에 터진 비에리의 선제골로 0:1로 뒤지던 상황에서 전반 45분과 후반 4분에 연속골을 터트리며 역전을 성공시켰으나 팀은 후반 종료 5분을 남겨두고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에게 동점골을 헌납하며 경기는 2:2 무승부로 종료된다. 비록 아쉽게 무승부로 끝났지만 살라스는 자신의 역할을 100퍼센트 이상을 보여주며 전 세계팬들에게 자신의 클라스를 보여주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어진 오스트리아전에서 후반 25분에 선제골을 기록하며 대회 3번째 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후반 막판 이비차 바스티치에게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며 승리를 놓친다. 3차전 카메룬과의 3차전에서는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고 또 다시 무를 캤지만 오스트리아가 이탈리아에게 지는 바람에 3무를 거두고도 조별 리그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16강에서 만난 상대는 브라질이었다. 살라스는 지역예선 당시 브라질이 디펜딩 챔피언이었기 때문에 예선에서 만나지 않았다.[5] 그리고 살라스는 브라질을 상대로도 골을 기록했으나, 팀은 호나우두와 세자르 삼파이우에게 각각 2골을 빼앗기며 4:1로 완패하였다.
살라스의 월드컵은 아쉽게 16강에서 마무리했지만 4경기동안 4골을 기록하여 이번 월드컵을 통해 본인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보여준 셈이다.
3.2. 이후
1999 코파 아메리카 파라과이에 참가하여 4위를 거둔 이후 2001년부터 부상으로 국가대표 출전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대표팀도 2007년까지 암흑기를 맞이하며 다시 한번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지 못했지만[6] 2005년 6월 4일, 볼리비아와의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득점을 기록하며 사모라노의 대표팀 A매치 최다 득점을 경신하기도 했다.[7]2007년 11월 22일, 파라과이와의 월드컵 지역예선을 끝으로 대표팀 경력을 마감했다.
4. 은퇴 이후
이반 사모라노(오른쪽)와 사진찍은 살라스 |
5. 기록
5.1. 대회 기록
- 클루브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 (1993~1996, 2005~2008)
- 칠레 프리메라 디비시온: 1994, 1995
- CA 리버 플레이트 (1996~1998, 2003~2005)
- SS 라치오 (1998~2001)
- 세리에 A: 1999-2000
- 코파 이탈리아: 1999-2000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1998, 2000
- UEFA 컵위너스컵: 1998-99
- UEFA 슈퍼컵: 1999
- 유벤투스 FC (2001~2003)
- 세리에 A: 2001-02, 2002-03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2002
5.2. 개인 수상
- 코파 칠레 득점왕: 1994
- 남아메리카 올해의 축구 선수: 1997
- 아르헨티나 올해의 축구 선수[10]: 1997
- 올림피아 어워드: 1997
- 칠레 올해의 축구 선수: 1997, 1998
[1] 대표팀 역대 득점 3위.[2] 당시 세계 이적료 기록은 호나우두의 40억 페세타(약 2,400만 달러)였다.[3] 그로부터 16년이 지나서야 호날두는 유벤투스로 이적했다.[4] 옆의 선수는 당시 칠레의 주장이자 살라스의 국대 파트너였던 이반 사모라노[5]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까지는 디펜딩챔피언은 지역예선 과정없이 바로 본선으로 직행하였다.[6] 이후 알렉시스 산체스, 아르투로 비달 등 황금세대가 등장하며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본선에 진출에 성공하여 칠레는 12년만에 다시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된다.[7] 물론 이후에는 알렉시스 산체스와 에두아르도 바르가스가 그의 기록을 경신한다.[8] Apertura(아페르투라)[9] Clausura(클라우수라)[10]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최고의 활약한 자에게 주어지는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