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3 00:56:01

로랑 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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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블랑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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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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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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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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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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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 블랑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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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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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96 · 1997-98· 19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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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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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월드컵 우승 멤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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نادي الاتحاد العربي السعود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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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ef201><colcolor=#000000> 이름 로랑 블랑
Laurent Blanc
본명 로랑 로베르 블랑[1]
Laurent Robert Blanc
출생 1965년 11월 19일 ([age(1965-11-09)]세)
프랑스 알레스
국적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신체 193cm / 체중 90kg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2]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colbgcolor=#fef201><colcolor=#000000> 선수 몽펠리에 HSC (1981~1983 / 유스)
몽펠리에 HSC (1983~1991)
SSC 나폴리 (1991~1992)
님 올랭피크 (1992~1993)
AS 생테티엔 (1993~1995)
AJ 오세르 (1995~1996)
FC 바르셀로나 (1996~1997)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97~1999)
인테르나치오날레 (1999~200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2001~2003)
감독 FC 지롱댕 드 보르도 (2007~2010)
프랑스 대표팀 (2010~2012)
파리 생제르맹 FC (2013~2016)
알 라이얀 SC (2020~2022)
올랭피크 리옹 (2022~2023)
알 이티하드 FC (2024~ )
국가대표 97경기 16골[3] (프랑스 / 1989~2000)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2.2. 국가대표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5.2.2. 개인 수상
6. 여담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프랑스축구 선수 출신 감독. 별명은 'Le Président(대통령)'.

선수 시절에는 비셴테 리사라수, 마르셀 드사이, 릴리앙 튀랑과 더불어 일명 '철의 포백'이라는 수비진을 구축하여 레 블뢰1998 월드컵유로 2000 우승을 이끈 명수비수였다.

은퇴 후에는 보르도의 감독으로 리그앙 우승을 차지했고,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프랑스 대표팀의 감독을 맡았으나 인종 차별 스캔들과 성적 부진으로 경질 당한다. 이후 PSG 감독으로 부임해 리그앙 3연패를 달성하여 명예 회복에 성공했다. 이후 휴식기를 가졌고 알 라이얀과 리옹의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실패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파일:external/newsimg.bbc.co.uk/_40319887_blanc_getty270.jpg
현역 시절

커리어는 몽펠리에에서 시작하여 약 8년 동안 뛰었는데, 이 기간 동안 쌓은 스탯이 수비수치고는 경이롭다 못해 경악스러운 251경기 84골이다.[4] 블랑은 1983-84 시즌에 프랑스 2부 리그의 몽펠리에에서 데뷔했다. 그런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6-87 시즌 2부 리그에서 18골을 기록하며 소속 팀 몽펠리에를 1부 리그로 끌어올리면서부터였다.

그 후 1988-89 시즌부터 3시즌 연속 10골 이상(15골-12골-14골)을 기록하는 가공할 만한 득점력을 과시한 그는 1989-90 시즌엔 몽펠리에를 프랑스컵 우승으로 이끌었고, 1989년 2월부터 국가대표로 발탁되기 시작했다.

세트피스뿐 아니라 2:1 패스와 드리블 등의 여러 가지 스킬로 직접 침투하여 골을 넣는 것 또한 블랑의 전매특허였다. 다만 그 이후로는 한 팀에서 1~2년 정도밖에 머물지 못하고 저니맨마냥 이팀 저팀을 옮겨 다녀 몽펠리에 시절의 득점력을 다시는 보여주지 못했다.[5]

그후 1991-92 시즌에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나폴리로 이적했다. 세리에 A에서도 6골을 득점하며 '골 넣는 수비수'로서의 명성을 떨치기는 했지만, 그는 너무 자주 공격에 가담하고 스피드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용받지 못했고 한 시즌 만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 후 생테티엔과 옥세르를 거치며 기량을 회복한 그는 바르셀로나와 마르세유를 거쳐 1999-00 시즌에 인테르로 이적하며 이탈리아 무대에 재도전장을 냈다.

그가 인테르에 입단할 당시에는 34세라는 나이와 나폴리 시절 실패한 경험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그는 1999-00 시즌 인테르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거론될 정도로 수비진의 핵으로 자리 잡았다. 2000-01 시즌까지 그는 리그 1경기를 제외하고 전 경기에 출장할 정도로 체력에도 문제가 없음을 증명했다.

2001년 여름, 라치오로 이적한 야프 스탐의 대체자로 맨유에 입단하였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그를 1996년부터 지켜보고 있었는데 35세가 되어서야 영입할 수 있었다. 맨유에서 2시즌 동안 75경기 4골을 기록했고, 2002-03 시즌 PL 우승을 경험하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2.2. 국가대표

국가대표 경력도 화려하다. 통산 97경기 16골을 기록했으며, 프랑스 대표팀의 1998년 프랑스 월드컵UEFA 유로 2000 연속 우승에는 그의 활약이 컸다. 특히 1998년 월드컵 16강 파라과이전에서는 연장전에서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를 상대로 골든골[6]을 터뜨리며 팀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러나 결승전에는 뛰지 못했는데, 크로아티아와의 준결승전에서 상대 수비수 슬라벤 빌리치의 과장된 액션에 속은 주심에 의해 퇴장당했기 때문이다.[7] 물론 빌리치가 헐리웃 느낌의 액션을 하며 쓰러지긴 했지만, 빌리치의 턱을 손으로 밀친 블랑의 행위는 엄연히 퇴장감이였다. 결국 그의 공백은 뛰어난 수비 능력을 가졌음에도 벤치를 달굴수 밖에 없었던 프랑크 르뵈프가 대체하게 된다.

국내에서는 단순히 '철의 포백'의 리더 정도로 언급되고 넘어가는 감이 있지만, UEFA 유로 1992, UEFA 유로 1996, UEFA 유로 2000 3개 대회 연속으로 베스트 11에 선정된 유일한 선수이다. 1990년대 최고의 센터백을 논할 때 프랑코 바레시, 마티아스 자머, 로날드 쿠만, 마르셀 드사이, 야프 스탐과 함께 1티어로 언급되는 선수.[8]

3. 플레이 스타일



1990년대 최상위권 리베로답게 공수 모두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패스를 통한 빌드업이 아주 뛰어났고, 공격수의 압박을 가볍게 벗겨내는 간결한 볼 컨트롤과 숏패스 또한 돋보였다.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였기에 공격 상황에서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주었고, 여차하면 공격진 사이로 뛰어들어가 득점하곤 했다.

장점이 많은 선수였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였던 것은 역대 최고로 꼽히던 공중볼 경합 능력이다. 193cm의 큰 키와 완벽한 위치 선정 능력, 훌륭한 피지컬로 공중에서 상대를 찍어누르며 소유권을 가져왔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선 24회 공중볼 경합에서 23번 승리해 95.8%의 승률로 역대 단일 대회에서 15회 이상 공중볼 경합을 시도한 모든 선수 중 공중볼 경합 승률 1위를 기록했으며, 리그에서도 인테르 시절 잠깐 맞붙었던 AC 밀란의 올리버 비어호프 정도를 제외하면 공중볼 싸움에서 그와 대등하게 맞설 수 있는 타겟맨이 거의 없었다. 물론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그의 머리는 상대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였다. 이런 플레이를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경기가 바로 UEFA 유로 2000 결승전. 톨도가 골킥을 찰 때마다 블랑이 완벽하게 위치를 잡고 머리를 가볍게 갖다대는 통에 이탈리아의 공격수들이 단 한 차례도 공중볼을 따내지 못했다.

단점은 월드클래스 리베로 치고는 발이 느리다는 것. 바레시나 잠머 같은 경우에는 준수한 스피드까지 갖추었었는데, 블랑은 그렇지 못했다. 물론 다른 수비수들을 잘 지휘하여 그런 단점을 잘 커버했다.

거기에 대통령이라는 별명답게 리더십이 매우 뛰어났으며, 압도적인 라인 컨트롤 능력까지 갖췄던 선수였다. 위에도 언급했던 느린 발을 환상적인 라인 컨트롤로 커버했었고, 프랑스 철의 4백이던 비셴테 리사라수, 릴리앙 튀랑, 마르셀 드사이를 지휘하던 선수였다.

4. 지도자 경력

4.1. FC 지롱댕 드 보르도

선수 생활을 마친 후 2007년 프랑스의 보르도의 감독으로 부임, 3년 동안 수행하며 2009년 리그 우승으로 올랭피크 리옹의 독주를 막아 내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으며, 2006-07, 2008-09 시즌 리그컵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09-10 시즌에는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바이에른 뮌헨, 유벤투스과 한 조를 이루었음에도 뮌헨에 더블을 거두는 등 승승장구하며 조1위로 통과했고 16강에서 올림피아코스를 꺾고 8강까지 오르기도 했다.

4.2.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이후 레몽 도메네크 감독이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부끄러운 지도력을 보여준 뒤 경질되자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직을 맡았는데, 당연히 짧은 경력 등으로 인해 잡음이 일었으나 이후 상당히 안정적으로 감독직을 수행하며 역시 새롭게 감독이 바뀐 브라질을 카림 벤제마의 결승골로 무너뜨리는 등 선전했다. 사실 이미 호사가들 사이에선 프랑스의 새로운 젊은 피 중 한 명으로 유력했다. 그러나 후술한 인종차별 스캔들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총합이 와해되었고, UEFA 유로 2012에서 실패를 맛보면서 해임되었다. 후임으로 레 블뢰 시절부터 동료였던 디디에 데샹이 감독직을 물려받았다.

4.2.1. 인종 차별 스캔들

관련 사진

2011년 4월 28일, 프랑스 조사회 웹사이트 메디아파르는 프랑스 축구 협회가 비밀리에 인종-쿼터 시스템을 도입하여 국가대표팀 아카데미에 이중국적자 숫자를 제한하려 한다는 얘기를 보고하였다. FFF가 성인대표에 대해 자료를 짚으면서, 조직위원회는 12-13세 연령대의 비프랑스계 선수를 30%까지로 제한하려 한다고 언급하였다. 4월 29일, 보르도의 로텔 르 레장 (l'Hôtel Le Régent)에서 열린 개인 기자 회견에서 "그 프로젝트는 금시초문이다."라며 부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리포트에 명시된 블랑은 이 쿼터제를 이행하기로 합의를 보았다고 주장하였다. 그 다음날 메디아파르의 보도 이후, 2010년 11월에 오디오 기록 모임이 있을 것이라는 발표 후, 블랑은 FFF 공식 웹사이트에 모임에서 있을 모욕적인 말에 사죄한다는 의견을 표하였고, 그는 잘못 발언하였고, 인종차별주의자임을 "저는 제가 어제 한 말을 철회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모임에서 말한 몇가지 사항은 민감한 사항으로 모호하고, 화제 밖이며, 그리고 제 사태에 대해서, 저는 몇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고, 저는 사죄합니다. 그러나, 외국인 공포증이나 인종차별 혐의를 받았는데, 저는 모든 형태의 차별에 대해서 지지하지 않습니다." 라며 부인하였다.

릴리앙 튀랑 전 국가대표팀 선수는 이 혐의에 대해, "처음에 저는 이것이 농담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충격을 받아 무엇을 말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였고, 파트리크 비에이라는 블랑이 협회에서 범한 혐의에 대해 "심각하고 수치스럽다"라고 주장을 밝혔다. 블랑은 1998년 FIFA 월드컵 우승할 당시의 팀 동료인 크리스토프 뒤가리, 빅상트 리자라쥐, 디디에 데샹, 지네딘 지단, 마르셀 드사이, 그리고 에마뉘엘 프티와; 알루 디아라를 비롯한 현역 선수; 그리고 파테 디바 아프리카 장애인 지원 협회 (L’Association Soutien aux Handicapés Africains) 장의 변호를 받았다. 5월 9일, 블랑은 이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협회가 주관하는 청문회에 참석하였다. 5월 10일, 수사 결과가 나왔으며, 블랑은 프랑스 축구 협회의 범법 행위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4.3. 파리 생제르맹 FC

그리고 2013-14 시즌부터 PSG의 감독으로 새로 부임했다. 그리고 13-14 시즌 리그앙 우승에 리그컵 우승을 차지했고 다 이기다가 수비의 삽질로 첼시에 챔피언스리그 4강을 넘기긴 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 8강 진출이라는 그럭저럭 괜찮은 성과를 거둬들였다.

2014-15 시즌 중반까지 PSG 사상 최악의 문제점 1순위로 지목되었다. 무수히 많은 전문가들과 현지 팬들에게 전술적 역량 미달의 퍼포먼스를 선보인다고 까이고 있으며 실제로도 공격적 전방 압박 축구, 점유율 축구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단점들만 완벽하게 부각시키는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으며 현재 23라운드까지 리그에서 승점 동률로 공동 2위에 위치되어있지만 그야말로 선수들의 클래스빨로 위치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이해 못할 고집스런 선수 기용과 로테이션의 부재, 플랜B의 부재로 인해 주축 선수들의 체력 방전으로인한 경기력 저하가 심각한 수준이고 현재 리그앙의 거의 어지간한 클럽들은 전술적으로는 파리 생제르맹의 현 전술에 완벽한 카운터 전술들을 다들 짜서 붙는 형국이다. 마르코 베라티, 살바토레 시리구와 같은 몇몇 선수들의 고군분투가 없었다면 현 순위도 꿈도 못 꿀 수준의 경기력으로 당장 PSG 팬들은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에서 첼시에게 압살당하는게 아닌가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수준이다.

특히 가장 비판받는 선수 기용 부분에서는 현재 체력 방전으로 심각한 경기력 저하를 보이고 있는 티아구 모타블레즈 마튀이디를 거의 매 경기 풀타임 출장시키며 더더욱 나락으로 빠뜨리고 있는 실정으로 미들진이 폭망하는 상황인데도 곧 죽어도 요앙 카바예아드리앙 라비오같은 선수들을 잘 기용하지 않으며 따라서 현재 PSG 미들진은 베라티에게 공수에 관한 모든 것을 맡긴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 첼시가 마음먹고 베라티를 부상으로라도 보내버린다거나 혹은 베라티가 지나친 혹사로 경기력이 자체 저하될 경우 블랑의 전술 구사 능력, 대처 능력으로는 첼시 미들진에게 완벽하게 압살당할 것이 분명한 수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감독 역량에 대한 심각한 질타를 받고 있다.

이미 리그 경기에서 몇 차례 모습을 드러낸 구단주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국왕도 매우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광경이 TV에 종종 잡혔고 나세르 알 켈라이피 회장의 경우 그야말로 분노하는 표정이 자주 잡히는 것을 봐서 이번 시즌 끝나고 경질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있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예상과 달리 첼시를 누르고 8강에 진출했지만, 하필 만난 게 바르셀로나,[9] 챔스는 8강에 만족해야했다. 하지만 리그에서는 시즌 중반까지의 우려와 달리 리그, FA컵, 리그컵을 싹쓸이하면서 도메스틱 트레블을 달성했다.

15-16 시즌은 작년과 달리 초반부터 리그를 말 그대로 압도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 리그앙 역사상 최단기간 우승을 결정지었다.

그렇지만 챔피언스리그 8강전에서 1차전에서는 비겼지만, 2차전에서 답이 없는 전술을 보여주며 패배했다. 중원의 핵심 of 핵심인 블레즈 마튀이디, 마르코 베라티가 전부 없는 상태에서조차 맨체스터 시티 FC를 상대로 점유율적인 우위를 선보였다는 점은 고무적이었지만 블랑 특유의 애무 축구로 인해 그저 그 뿐이었다는 것. 물론 조 하트의 신들린 선방이 없었다면 맨시티가 위험할 경기였던 것은 사실이나 이 2차전은 끝내 블랑 본인의 PSG에서의 축구가 반쯤은 선수 빨이었다는 걸 입증하는 꼴에 가까웠다.

현재 파리 보드진은 블랑을 3년이나 봐줬으면 믿을 만큼 믿어준 셈이고 비록 리그와 리그 컵은 씹어먹는다지만 3년 내내 팬들한테 경기력으로 계속 욕을 먹고 있으며 계속된 챔스 8강 한계선은 마침내 보드진의 인내심을 바닥낸 것으로 보인다. 세비야 FC의 감독 우나이 에메리가 PSG 차기 감독으로 아주 유력한 상황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으며 블랑 감독의 PSG 지휘는 조만간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우나이 에메리의 차기 감독 부임이 확정되어서 정말 그렇게 되었다.

그러나 후임인 우나이 에메리 감독이 챔스 8강을 넘어서기는 커녕 역사적인 역관광을 당하며 16강에서 광탈하고 심지어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던 리그앙 우승마저 AS 모나코 FC에게 내주면서 일부 재평가도 나왔다. 그래도 에메리는 다음 시즌 리그 우승과 컵대회 우승 더블을 이룩했지만 또 챔피언스리그 16강 광탈로 결국 아스날로 떠나게 된다. 이어서 2019년 투헬도 16강에서 탈락했지만 2020년에 PSG를 결승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4.4. 공백기

2020년 여름, FC 바르셀로나와 1년 단기 계약으로 감독직 복귀를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로날드 쿠만이 선임되면서 무산되었다.

2020년 겨울, 이번에는 토론토 FC가 감독으로 블랑을 추진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만약 진짜 선임된다면 선수 시절 대표팀에서 함께 황금기를 보냈던 티에리 앙리가 현재 앵팍트 드 몽레알 감독으로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감독으로서 맞대결을 벌이게 될거라 기대를 모았다. 그렇지만 블랑이 알 라이안 SC의 감독직에 앉으며 무산됐다.

4.5. 알 라이안 SC

알 라이안 SC에 선임된 이후 준우승을 했던 팀을 하위권으로 내모는 등 부진에 시달리고 있었고, 결국 2022년 2월 13일자로 전격 경질되었다. 9월 19일에 48일만에 카를로스 코르베란 감독을 경질한 올림피아코스 FC와 9월들어 감독 취임설이 나오고 있다.

4.6. 올랭피크 리옹

2022년 10월 10일, 피터 보츠의 뒤를 이어 올랭피크 리옹 감독으로 부임했다. 2년 계약.#

2023년 5월 9일, 올랭피크 리옹 회장이 존 텍스터로 바뀐 후 감독직이 위태롭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회장이 기자 회견에서 이를 부인했다.#

2023-24 시즌이 시작 후 리그 4경기 동안 1무 3패를 기록하며 초반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후 전 첼시 FC 감독 그레이엄 포터와 전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감독 훌렌 로페테기 얘기가 나오고 있는 걸 보아 A매치 이후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경질이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2023년 9월 11일, 로마노는 리옹이 로랑 블랑의 경질을 결정했다고 알렸으며 심지어 이미 새로운 감독을 물색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몇 시간 뒤 리옹과 상호 계약을 해지한다는 공식 발표가 나오면서 리옹을 떠났다.#

4.7. 알 이티하드 FC

2024년 7월 13일, 알 이티하드 FC의 감독을 맡게 되었다.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1.2. 개인 수상

5.2. 감독

5.2.1. 대회 기록

5.2.2. 개인 수상

  • 리그 1 올해의 감독: 2008, 2015, 2016
  • 프랑스 올해의 감독: 2009, 2015

6. 여담

파일:external/pbs.twimg.com/BvWlcxMIQAA4JMq.jpg
  •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2018 러시아 월드컵 이 끝난 이후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 후보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축협에서 접촉을 시도했으나 미팅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선임 비용이나 기타 여러 상황 때문에 불발된 것으로 보인다.

파일:2019 french football all time best.jpg

7. 둘러보기

파일:UEFA 유로 2012 로고(가로형).svg
UEFA 유로 2012 참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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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대회의 참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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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마 · 2 캉델라 · 3 리사라수 · 4 비에라 · 5 L. 블랑 · 6 조르카에프 · 7 데샹 · 8 드사이 · 9 기바르쉬
10 지단 · 11 피레스 · 12 앙리 · 13 디오메드 · 14 보고시앙 · 15 튀랑 · 16 바르테즈 · 17 프티
18 르뵈프 · 19 카랑뵈 · 20 트레제게 · 21 뒤가리 · 22 샤르보니에
파일:프랑스 국기.svg 에메 자케

1 라마 · 2 캉델라 · 3 리사라수 · 4 비에라 · 5 블랑 · 6 조르카에프 · 7 데샹 · 8 드사이 · 9 아넬카
10 지단 · 11 피레스 · 12 앙리 · 13 윌토르 · 14 미쿠 · 15 튀랑 · 16 바르테즈 · 17 프티
18 르뵈프 · 19 카랑뵈 · 20 트레제게 · 21 뒤가리 · 22 라메
파일:프랑스 국기.svg 로저 르메르


[1] 프랑스어에서 어말에 오는 'c'는 /k/'크'로 발음되지만, 'n' 뒤에 올 때는 묵음이다.[2] 스위퍼. 스위퍼 전에는 공격형 미드필더였다.[3] 골 넣는 수비수로 유명하다. UEFA 유로 1996 1골,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1골, UEFA 유로 2000 1골로 수비수인데도 국가대표 메이저 대회 본선 무대에서 무려 3골이나 기록했다.[4] 참고로 역대 최강의 공격 가담 능력을 자랑했던 프란츠 베켄바워의 커리어 통산 스탯이 587경기 81골이다. 베켄바워와 마찬가지로 블랑은 '리베로'였다. 때문에 다른 수비수들보다 공격에 많이 관여했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블랑의 스탯은 놀라운 수준이다. 원래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커리어를 시작했지만 코치들의 조언에 따라 수비수로 포지션을 전향하였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전전했던 클럽들은 하나같이 빅 클럽들이었다.[6] 월드컵 역사상 1호 골든골이었다. 골든골 제도는 1998년 월드컵에 신설되었으나 2002 월드컵 이후 폐지되었다.[7] 여담으로, 이것이 현역 시절 유일한 퇴장이다.[8] 릴리앙 튀랑, 파올로 말디니는 전성기인 1990년대에는 좌우 풀백이나 3백의 일원으로 더 많이 뛰었다. 전형적인 센터백으로 중용된 것은 30대로 접어들면서 운동 능력이 다소 떨어진 이후.[9] MSN 라인의 미칠듯한 공격력을 앞세워서 결국 2014-15 시즌 트레블을 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