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3 22:47:13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알레산드로 루카렐리의 역임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르마 칼초 1913 주장
스테파노 모로네
(2009~2012)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2012~2018)
브루노 알베스
(2018~2021)
}}} ||
알레산드로 루카렐리의 기타 정보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르마 칼초 1913 영구결번
No. 6
}}} ||
파르마 칼초 1913 클럽 매니저
파일:alessandro-lucarelli-2022.jpg
<colbgcolor=#233588> 이름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Alessandro Lucarelli
출생 1977년 7월 22일 ([age(1977-07-22)]세)
이탈리아 리보르노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2cm
가족 크리스티아노 루카렐리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 / 은퇴)
소속 <colbgcolor=#233588> 선수 피아첸차 칼초 (1996~2002)
→ UC 알비노레페 (1997~1998 / 임대)
US 팔레르모 (2002~2003)
ACF 피오렌티나 (2003~2004)
AS 리보르노 칼초 (2004~2005)
레지나 1914 (2005~2007)
AC 시에나 (2007)
제노아 CFC (2007~2008)
파르마 칼초 (2008~2018)
스태프 파르마 칼초 (2018~ / 클럽 매니저[1])
국가대표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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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인. 현역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현역 시절에는 40세의 나이로 은퇴하기까지 약 20년간 세리에 무대에서 활약한 베테랑 수비수였다.

형인 크리스티아노 루카렐리와 마찬가지로 리보르노 칼초의 서포터이다.

2. 플레이 스타일

루카렐리는 182cm의 다부진 체격을 바탕으로 준수한 수비력을 발휘하는 왼발잡이 센터백이다. 그는 공중 볼 경합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세트피스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보였다.

3. 클럽 경력

3.1. 피아첸차 칼초

파일:11209.jpg

리보르노 태생으로 피아첸차 칼초의 유스 팀에 입단해 커리어를 시작했으며, 1995-96 시즌에 1군에 올라왔다. 1997년에는 세리에 C2 클럽인 UC 알비노레페로 임대되어 29경기에 출전했고, 1998년 여름 피아첸차로 복귀해 1998년 9월 13일 라치오와의 경기에서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그는 팀의 주축 센터백으로서 활약했고 2000년 피아젠차가 세리에 B로 강등되었을 때도 팀에 남아서 2000-01 시즌에 승격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피아첸차 소속 통산 기록은 100경기 1골.

3.2. US 팔레르모

2002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세리에 B 소속이던 US 팔레르모로 이적했다.

이적 후 부상 때문에 시즌 초반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가 2002년 11월 5일 코센차와의 경기에서 비로소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팔레르모에서 28경기에 출전했고, 팀은 승격 플레이오프 진출권에서 한 계단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3.3. ACF 피오렌티나

2003년 여름 브레시아 칼초로 이적했으나, 2003 UEFA 인터토토 컵 대회에서 2경기를 뛴 후 같은 해 8월에 팔레르모와 같이 세리에 B에 위치해 있던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했다. 그는 2003년 9월 23일 아탈란타와의 홈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팀은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는 피오렌티나에서 31경기에 출전했고, 피오렌티나는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페루자를 무찌르고 세리에 A 승격을 달성했다.

3.4. AS 리보르노 칼초

2004년 여름, 루카렐리는 AS 리보르노 칼초로 이적했다. 그는 2004년 9월 11일 AC 밀란과의 데뷔전을 치렀다. 그리고 2004년 9월 22일, 루카렐리는 레지나와의 경기에서 세리에 A 첫 번째 골을 기록했고 팀은 2:1 승리를 거두었다. 그는 리보르노에서 27경기에 출전해 4골을 기록했으며 팀은 세리에 A 9위를 기록했다.

3.5. 레지나 1914

2005년 여름, 루카렐리는 레지나 1914로 이적했다. 그는 2005년 9월 11일 삼프도리아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이후 그는 레지나에서 2시즌을 치르며 팀이 세리에 A 중위권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2006-07 시즌엔 레지나가 칼초폴리에 연루되어 승점 11점이 깎이는 중징계를 받았지만, 38경기에 출전해 든든한 센터백으로서 활약한 루카렐리의 활약 덕분에 세리에 A 잔류에 성공했다.

3.6. 제노아 CFC

2007년 7월에 ACN 시에나로 이적했지만, 데뷔전도 치르기 전인 8월 22일에 제노아로 재이적했다. 이적료는 190만 유로. 그해 8월 26일 AC 밀란 원정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2008년 3월 2일에 칼리아리 칼초 원정에서 데뷔 골을 기록했다. 2007-08 시즌 최종 성적은 29경기 1골로 마무리.

3.7. 파르마 칼초 1913

파일:1397732697714.JPG--alessandro_lucarelli.jpg

2008년 7월 25일, 세리에 B 소속이던 파르마 FC로 이적했다. 그의 형이자 리보르노와 이탈리아 축구 대표팀에서 공격수로서 명성을 떨친 크리스티아노 루카렐리도 이 시기에 파르마에서 활동했다. 8월 29일, 리미니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고, 이후 주전 센터백으로 39경기에 출전해 2골을 기록하며 팀의 세리에 A 승격에 일조했다.

형 크리스티아노는 리보르노로 이적했지만, 루카렐리는 계속 파르마에 남아 매 시즌 34~35경기에 출전해 든든한 센터백으로서 파르마가 세리에 A에서 경쟁력 있는 모습을 유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11년에는 부주장으로 임명되었고, 2012년에는 스테파노 마로네의 뒤를 이어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2013-14 시즌에는 파르마가 후반기에 인테르, AC 밀란 등 강팀들을 연이어 격파하며 17경기 연속 무패를 질주, 유로파 리그 진출권을 확보하는 성과를 이뤄냈다. 그런데 재정 문제로 인해 UEFA 라이선스를 확보하지 못해 유로파에 진출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토마소 기라르디 구단주는 사임을 발표하고 러시아의 부호인 잠피에로 마네티에게 판매했다.

그러나 새 구단주로 부임한 잠피에로 마네티는 사기꾼이었다. 그는 마약, 폭력 조직 후원 등으로 확보한 불법 자금을 돈 세탁을 할 목적으로 파르마를 인수했을 뿐 파르마를 견실하게 운영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결국 파르마 선수 및 스태프 전원은 2014년 7월부터 8개월간 급료를 받지 못했고, 훈련 시설에 전기가 끊겨 유소년 팀 선수들이 찬물로 샤워를 하며 훈련 때 먹을 물도 못 사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루카렐리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제는 유니폼 세탁을 해주지 않는다고 한다. 선수들은 각자 유니폼을 집으로 가져가 빨아 와야 한다."

하지만 그는 이 상황에서도 주장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구단의 재정 문제로 인해 홈 경기가 연기되고 버스마저 파는 지경에 처하자, 그는 이탈리아 라디오 매체인 '안키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뜻을 밝혔다.
"올 시즌 구단주만 4명을 모시면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지켜봤다. 경기하지 못했을 때 정말 기분이 나빴다. 오늘 우리는 제노아 원정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경기할 준비가 돼 있지만 보호받기도 원한다. 챔피언뿐 아니라 파르마에도 존경심을 갖춰줬으면 좋겠다. 7년간 이 셔츠는 내 것이라고 생각했고 구단이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늘 경기에 뛰었다. 구단에서 버스를 대주지 못한다면 우리 스스로 5~6대의 차를 준비해 타고 갈 생각이다. 원정 경기 비용도 우리 스스로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구단이 전혀 지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선수단이 제대로 된 경기력을 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고, 결국 파르마는 재정 문제로 인한 승점 삭감 징계까지 겹치며 일찌감치 세리에 A 최하위를 확정했다. 여기에 심화된 재정난으로 클럽은 파산 위기에 몰렸고, 이곳 저곳에서 새 구단주를 물색했지만 인수에 실패해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팀은 해체되며 기존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고, SSD 파르마 칼초 1913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창단되었지만 선수 전원은 FA로 풀렸다. 파르마는 아마추어로 강제 전환되며 세리에 D로 밀려났고, 이에 1군 소속이던 선수들은 모두 타 팀으로 이적했다. 루카렐리 본인도 나이는 좀 있었지만 세리에 A에서 아직 통하는 기량을 유지해온 만큼 여러 오퍼를 받았다. 그러나 루카렐리는 내 심장이 시키는 대로 파르마에 남는다며 이적을 하는 대신 파르마에 잔류, 세리에 D에서 뛰는 것을 선택했다.

파일:01. festa parma GettyImages-521893006.jpg

선수 경력 사상 최초로 아마추어 리그인 세리에 D에서 활동하게 된 루카렐리는 팀의 구심점으로서 선수단을 훌륭하게 통솔했고, 파르마는 재창단 첫 해에 세리에 D D조에서 28승 10무 무패로 세리에 C 승격에 성공했다. 2016-17 시즌에 파르마는 세리에 C B조에 소속되었고, 루카렐리는 종합 42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하며 팀의 승격을 위해 헌신했다. 그 결과 파르마는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피아첸차, 루체세, 포르데노네를 차례로 격파해 결승전에 진출했고, 결승전에서 알레산드리아를 상대로 2:0으로 승리하면서 재창단 후 2년 연속 승격에 성공, 세리에 B로 나아갔다.

그 후 중국의 디스포츠(Desports) 기업 회장 장리장(蔣立章)이 파르마의 지분 60%를 매입하면서 새 구단주로 부임했다. 이후 장리장이 노장 선수들을 모두 내보내고 이탈리아의 재능 있는 유망주들을 데려오려 한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파르마 지역지에 따르면 루카렐리 등 노장 선수들이 직접 구단주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들에게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고 장리장은 그들의 열정에 감동해 그대로 남기기로 했다고 한다.

루카렐리는 2017년 11월 4일 파르마에서 311번째 경기에 출전하면서 에르메스 폴리를 제치고 파르마 역사상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로 기록되었다. 이제 40줄에 다다른 나이로 인해 시즌 초반에는 벤치로 밀려났지만, 중반부터 선발 라인업에 돌아왔다. 팀의 리더로서 파르마를 상위권으로 이끌면서 순항하던 찰나, 2018년 4월 22일 카르피전에서 상대 선수와의 충돌로 내측 반월상 연골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고 이탈했다. 수술 후 예상 회복 기간은 한 달가량. 경기는 3:0으로 승리했지만, 승격이 눈앞이던 파르마 입장에서는 핵심 센터백이자 리더인 루카렐리의 이탈은 치명적이었다.

이때 루카렐리는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 선수단과 팬들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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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저에게 보내준 애정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해둘 게 있습니다. 반월판은 저를 멈추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아냐, 지금 당장은 아냐: 그건 옳지 못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아르치냐노[2]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후 3년이 지났지만 마치 한 세기가 지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모두는 매우 구체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목표를 보고 있고, 결국에는 아무도 우리에게 멈추라고 요구할 수 없으며, 아무도 우리가 그것을 끝까지 시도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습니다.
주장의 밴드는 모든 이들, 제 팀 동료들과 팬 여러분의 것입니다. 우리는 왼쪽 소매를 들어 올리고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며 함께 착용하고 자존심을 품고 등반을 계속합니다.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패배란 없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싸움입니다.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이야기에 살고 있으며 후회는 추호도 없을 것입니다.
그 마지막 단계에서, 비록 반월판이 없을지라도, 저는 목표를 달성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을 결판 내고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영광을 여러분께 드릴 것입니다.
시즌이 막바지에 치닫는 시점에서 당한 부상이라 사실상 시즌 아웃으로 여겨졌지만, 루카렐리는 강인한 의지로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했고 스페치아 칼초와의 리그 최종전에 선발로 출전했다. 당시 파르마는 2위 프로시노네 칼초에 승점 2점이 뒤진 3위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파르마가 프로시노네와의 상대 전적에서 1승 1패지만 상대 득실에서 앞서서 승점 동률만 되어도 프로시노네보다 앞서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파르마가 스페지아를 격파하고 프로시노네가 포지아에게 패하거나 무승부를 거두면 파르마가 2위로 올라서서 세리에 A 자동 승격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돌아온 루카렐리는 수비진을 단단히 지키며 팀의 2:0 승리를 만들어냈지만, 프로시노네가 경기 막판까지 포지아를 상대로 2:1로 앞서가고 있어서 자동 승격에 실패하고 플레이오프로 밀려나는 듯했다. 그런데…

정규 시간 종료 1분 전인 89분, 포지아가 동점골을 넣었다! 프로시노네가 급하게 맹공을 퍼부었지만 승부를 돌리지 못했고,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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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파르마는 리그 2위로 시즌을 마무리했고, 2015년 세리에 D로 강등된 이래 곧바로 세리에 A 복귀를 달성했다.[3] 세리에 역사상 최초로 있는 일이라고.

승격이 확정된 후 루카렐리는 스카이 스포츠 이탈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심경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약속했다. 나는 파르마를 세리에 A로 다시 데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불가능하다. 비록 나의 이루고 싶은 꿈이었지만, 아무도 이런 결말을 상상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축하를 해줬고, 우리는 스탠드에서 대단한 응원을 들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이 놀라운 팬들 앞에서 3년간 여정을 떠났다. 우리에게는 어려운 순간이 있었고 항상 우리의 발로 돌아왔다. 그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나는 그들의 주장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제 나는 그만둘 수 있다. 나는 아직 내 미래를 결정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지금 즐길 뿐이다.
2017-18 시즌 루카렐리는 만 40세의 나이에도 불구, 31경기에 출전해 베테랑으로서 노련한 활약을 선보였으며, 파르마가 세리에 B에서 최소 실점을 기록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킨 루카렐리는 2018년 5월 27일, 파르마에서의 10시즌간의 여정을 마치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10년간 루카렐리는 파르마에서 348경기 21골을 기록했고, 팀의 나락까지도 함께하며 헌신한 레전드를 위해 파르마는 루카렐리의 등번호 6번을 영구결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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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치아전은 축구선수로서의 제 인생의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보다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던 순간은 없었습니다.
저는 분명히 이 팀, 이 직장, 이 팬들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전히 파르마의 일부가 될 것이며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볼 것입니다.
저를 믿으십시오. 저는 엄청난 환희와 제 심장을 찌르는 심정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이야기의 일부분으로서 이 위대한 팀의 주장이었던 것, 그리고 이 아름다운 셔츠를 입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알레산드로 루카렐리로서 충실히 살아온 것에 만족합니다.
여러분들의 한 사람으로서,
알레산드로 루카렐리

4. 은퇴 후

파일:Alessandro-Lucarelli-club-manager-Parma.jpg

아직 현역 생활을 지속하던 2017년 6월, 루카렐리는 UEFA A 라이선스를 획득했다. 이를 바탕으로 은퇴 후 파르마의 코칭 스태프로 합류하지 않겠냐는 예상이 많았고, 은퇴 후 2018년 8월 2일에 클럽 매니저로 부임했다. 감독의 지시를 선수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스태프라고 한다.


[1] 감독의 지시를 선수들에게 전달하고 심판에게 교체 선수를 알려주는 역할을 맡는 스태프[2] Arzignano.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주에 있는 소도시다. 2015-16 시즌 파르마의 세리에 D 첫 경기가 이 도시를 연고로 하는 우니온 아르치냐노키암포(現 FC 아르치냐노 발키암포/FC Arzignano Valchiampo)와의 원정 경기였다.[3] 여담으로 3위로 밀려난 프로시노네도 승격 플레이오프를 뚫고 같이 세리에 A로 올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