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4 14:04:25

왕자의 난

1. 개요2. 목록
2.1. 당나라2.2. 명나라2.3. 신라2.4. 후백제2.5. 고려2.6. 조선2.7. 일본
3. 재벌가의 경영권 다툼을 비유하는 말
3.1. 현대그룹 (2000 ~ 2010)3.2. 삼성그룹 (1969 ~ 2014)3.3. 롯데그룹 (2015 ~ 진행중)3.4. 한진그룹 (2002 ~ 2016)

1. 개요

왕자가 일으킨 반란. 대부분 왕위쟁탈전에서 밀려난 왕자가 형제(주로 이복형제)를 죽이고 아버지인 임금은 폐위시키는 전개가 많고 당연히 막장 패륜적인 결말이 난다.

왕자의 반란으로 유명한 사례는 후백제신검이 이복동생 금강을 죽이고 아버지 견훤을 폐위시킨 신검의 난, 당태종이 형 이건성을 죽이고 아버지 당고조를 폐위시킨 이세민의 난 등이 있지만 한국에서 주로 왕자의 난이라고 하면 아래의 조선 초기의 반란을 지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2. 목록

2.1. 당나라

당나라 초에 발생한 이세민의 현무문의 변으로 형제들을 죽인 사건.

2.2. 명나라

2.3. 신라

  • 선덕왕 이후 100여년 내내 왕자의 난

2.4. 후백제

2.5. 고려

2.6. 조선

조선 초기에 이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 이방간이 일으킨 2차 왕자의 난을 아울러 가리키는 명칭이다. 사실 한국에서 '왕자의 난'이라고만 하면 보통 이 두 사건을 가리킨다.

2.6.1. 1차 왕자의 난 (1398)

1398년 발생. 문서 참조.

2.6.2. 2차 왕자의 난 (1400)

1400년 발생. 문서 참조.

2.7. 일본

  • 을사의 변
  • 덴무 덴노가 일으킨 진신의 난
  • 쿠스코의 변
  • 호겐의 난
  • 헤이지의 난
  • 로쿠하라 정변
  • 미나토가와 전쟁
  • 오닌의 난
  • 오사카 여름의 진
  • 안세이 대옥
  • 무진전쟁

3. 재벌가의 경영권 다툼을 비유하는 말

재벌 2세들이 아버지의 재산 상속이나 경영권 계승을 두고 갈등을 빚을 때 마치 왕자들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다투는 모습과도 같다 하여 이런 별칭이 붙기도 한다. 현대그룹과 삼성그룹의 왕자의 난은 이 드라마에서 다루려다가 외압으로 인해 삼성 편만 다루고 흐지부지되었다(...)

서양에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긴 마찬가지인데, 대표적인게 미국 비상장 기업중에 2번째로 큰 코크 산업의 경영권을 두고 형제 4명이 두 파벌로 갈라져서 경영권을 두고 다투었다. 그리고 패배한 두명이 이긴 두명에게 자신의 지분을 거의 헐값에 넘겨주는 수준으로 마무리된 적이 있었다. 참고로 이긴 두 형제가 바로 미국 공화당의 물주중 하나인 코크 형제다.

3.1. 현대그룹 (2000 ~ 2010)

현대그룹의 경영권 계승을 둘러싸고 정주영의 아들들이 벌인 싸움을 가리킨다. 정주영의 별명이 왕회장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재벌가의 왕자의 난을 언급한다면, 대개의 경우 현대그룹의 것을 뜻한다. 그만큼 가장 유명한 케이스. 한때 재계 1위에 등극한 굴지의 대기업이었지만 경영권을 둘러싸고 왕자들이 격돌하게 되었고 그 결과 거대한 제국이었던 현대가 해체되어 여러 개로 나눠진 것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인듯.

2000년, 정주영 명예회장의 차남[1]인 정몽구 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5남인 정몽헌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그룹의 패권을 놓고 다투게 된다. 정몽구 회장은 정몽헌 회장이 해외 출장을 간 사이 3월 14일 밤 기습적으로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고려산업개발로 전보시킨다. 이익치 회장은 정주영 명예회장의 가신그룹 일원이자 정몽헌 회장의 측근이었다.

당시 정몽구 회장은 현대그룹의 자동차 부문을, 정몽헌 회장은 건설·전자 부문을 가져갈 예정이었다. 그때 현대차의 위상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반면[2] 현대건설과 현대전자는 국내 최고 기업들[3]로 정주영 명예회장은 처음부터 경영 능력이 두드러졌던 정몽헌을 특히 아꼈다고 한다. 이에 자동차만으로는 향후 성장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던 정몽구 회장 측은 현대증권으로 대표되는 그룹의 금융 부문을 노리고 동생의 측근인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을 배제하려 했던 것이다.

3월 24일 귀국한 정몽헌 회장은 자신의 측근이자 아버지의 가신그룹인 이익치 회장,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 김재수 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등을 모아 이익치 회장의 인사 발령을 무효화하고 정몽구 회장의 그룹 공동회장직을 박탈한다. 정몽구 회장은 26일 아버지를 만나 회장직 복귀 명령을 받아내지만 몇 시간 뒤 정몽헌 회장과 가신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을 만나 다시 그 명령을 무효화시켰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고령으로 판단력이 흐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3월 27일 정주영 명예회장이 직접 현대경영자협의회에서 ‘정몽헌 단독 회장 체제’를 공식 승인하면서 왕자의 난은 정몽헌 회장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정몽구 회장은 9월 자동차 관련 계열사들을 가지고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분리를 실시해 현대차그룹을 만든다. 당시에는 누구나 정몽헌이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현대그룹의 모기업이자 상징인 현대건설이 2000년 10월 1차 부도를 맞고 휘청거리다 결국 2001년 8월 채권단으로 넘어간다. 현대전자도 외환위기 당시 LG반도체를 무리하게 인수했다 2000~2001년 반도체시장이 불황을 맞자 빚 10조 원을 지고 결국 채권단으로 넘어가 버렸다.[4] 심지어 정몽헌 회장 본인도 아버지의 숙원사업이었던 대북사업과 관련해 4억5000만 달러(약 5000억 원)를 북한에 은밀히 송금한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 2003년 8월 4일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사옥 12층 회장실에서 투신자살하고 만다.

반면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쾌속 순항을 계속하며 재계 서열 2위 지위를 굳힌다. 이 왕자의 난 등을 거치며 한국 최대 재벌이었던 현대그룹은 현재의 현대그룹(현정은-5남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대자동차그룹(차남 정몽구), 현대중공업(6남 정몽준), 현대백화점(정지선-3남 정몽근 회장의 장남), 현대해상화재보험(7남 정몽윤), 현대기술투자(8남 정몽일)[5] 등 몇 덩어리로 갈라져 버렸다.

이 쪼개진 그룹과 쪼개진 집안은 2010년까지 유지되다가 그해 발생한 현대건설[6] 인수전이라는 개판 집안싸움의 원인이 된다. 자금력에서 열세였던 현대그룹이 훨씬 높은 입찰가를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가 됐으나 언론과 정치권에서 자금 조달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등 다소 석연치 않은 과정을 거쳐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가 박탈된다. 결국 승자는 차남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이 되었다.[7][8]고우영 화백이 수레바퀴에서 살짝 패러디하기도 했다.

2018년 기준으로 현대자동차재계 2위, 현대중공업재계 10위, 현대백화점재계 21위, 현대그룹중견기업이다. 현대그룹이 해체되지 않았다면 자산총액으로 보았을 때 삼성그룹에는 역부족이지만 3위 이하와는 확실하게 격차를 벌릴 수 있었을 것이다.

3.2. 삼성그룹 (1969 ~ 2014)

1969년 말 삼성그룹 회장 이병철의 차남 이창희박정희 대통령에게 아버지를 회장 자리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투서를 날리면서 삼성가가 뒤집어졌던 사건.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패륜으로 여겨 받아들이지 않고, 이병철이 이 사실을 알고 이창희를 완전히 내쫓아버리면서 삼성가의 왕자의 난은 실패로 돌아갔다.

문제는 그 후폭풍인데, 장남인 이맹희가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진실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병철은 장남과 차남 두 아들을 사실상 호적에서 파버리고(...) 삼남인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하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이병철이 세상을 뜬 이후에도 이 사건은 이맹희와 이건희의 오랜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당연히 이건희의 삼성그룹과 이맹희의 CJ그룹 간의 대립 양상도 매우 강해졌다.

2012년 상속 관련 소송 과정에서 이맹희와 이건희 사이에 오간 발언 내용.
이맹희: 요즘 건희가 어린애 같은 말을 해서 몹시 당황했다. 건희는 항상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 한 푼도 안 주겠다는 탐욕이 이번 소송을 초래했다.

이건희: 이맹희씨는 감히 나보고 건희, 건희 할 상대가 아니다.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 하던 양반이다. 30년전에 나를 군대에 고소하고 아버지를 형무소에 넣겠다고 했다. 청와대 그 시절에 박정희 대통령한테 고발했던 양반이다. 우리집에서는 이미 퇴출당한 양반.

이 과정에서 이건희는 형제들의 집에 감시용 CCTV를 설치하고, 본인에게는 조카인 이맹희의 아들을 사람을 붙여 미행하는 등 그야말로 철전지 원수 사이가 되었다.

2014년 이맹희는 형제 간의 우애가 유산보다 중요하다며 상고를 포기했다. 이미 다 파탄난 마당에? 그러나 그 해 이건희가 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잃고, 이맹희마저 이듬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들은 끝내 화해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맹희 본인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소송 따위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현재는 이들의 후손들도 왕래가 없이 거의 남남으로 지내고 있다.

3.3. 롯데그룹 (2015 ~ 진행중)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前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사이의 경영권 다툼. 롯데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준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롯데그룹/경영권 분쟁 문서 참고.

3.4. 한진그룹 (2002 ~ 2016)

현대나 삼성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2000년대 초부터 상당히 심각했던 재벌가 분쟁이다. .

창업주 故 조중훈 (1920-2002) 회장은 네 아들을 두었는데, 조양호(1949-2019), 조남호(1951~) , 故조수호 (1954~2006) , 조정호(1958~) 중에서 조양호는 조수호와 사이가 좋은 반면, 나머지 두 동생과는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특히 기업 상속은 대한항공은 조양호, 한진중공업은 조남호, 한진해운은 조수호, 메리츠 금융은 조정호가 가져갔다.

조중훈 회장이 작고한 후 네 아들은 계열사를 분할 상속하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알짜기업을 가져간 조양호 회장측이 사이가 좋은 조수호씨에게 주력 업체의 하나였던 한진해운를 넘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때문에 나머지 두 동생과는 거의 원쑤급으로 사이가 나빠졌고, 나머지 두 형제는 자기가 가져간 회사에서 해외출장시에 대한항공 대신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하도록 할 정도 이에 발끈한 조양호의 대한항공은 조정호의 메리츠 금융에 든 보험도 모두 해지했다. 3남인 조수호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그 미망인인 최은영이 한진해운의 경영을 맡았는데... 한진해운은 결국 경영에 문외한인 여성이 맡았다가 알짜기업임에도 결국 그대로 망해버렸다.

조양호의 대한항공과 조남호의 한진중공업으로 대표되는 한진그룹의 상속분쟁은 현대그룹 왕자의 난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루비콘 강을 건너고 말았다. 삼성-CJ 간에도 그나마 삼성 라이온즈 공통지분이란 마지막 공통점이 하나 있고 현대그룹은 자기들끼리 회사 인수전이 지금도 활발하다(즉 우리가 현대그룹의 정통이다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것). 하지만 한진그룹 자손들은 동족혐오 수준의 인수전조차 안 하려 들며 정말 남남처럼 지낼 정도라서 삼성, 현대보다도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아예 선친인 조중훈 회장의 제사도 따로따로 지낼 정도라고 한다.

2남이 가져간 한진중공업은 회사 그 어디에서도 우리가 한진그룹의 정통계파임을 내세우는 것을 볼 수 없다. 한진중공업 입장에선 한진그룹과 그 어떤 이유로도 안 엮이고 싶어하며 한진그룹의 정통성마저 부정하고 있을 정도로 사이가 나쁘다.[9]

조양호 회장이 작고하자, 그 자식들 사이에서도 경영분쟁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돌고 있다. #


[1] 1982년 장남인 형 정몽필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이후 실질적으로 장남 취급을 받았다. 그리고 정몽필은 아들이 없었다.[2] 더군다나, 현대차는 1998년에 기아차를 인수했고, 1999년에 정몽구가 이어받았으니, 정몽구의 손에 들어온지 1년밖에 되지 않던 상황.[3] 특히나 현대건설은 전성기 때에 중동에서 많은 공사 수주를 맡았던 우량건설사이고, 현대전자도 LG 반도체를 통합해서 삼성전자를 맹추격했다.[4] 이후 현대전자는 쪼개졌고 이런 저런 사정을 거쳐 팔려 나가거나 망했다. 유명한 현대전자 계열사는 중국에 팔려나간 후 중국의 디스플레이 시장을 급성장 시켜버린 하이디스와,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더불어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SK하이닉스가 되는 하이닉스가 유명하다.[5] 다만 현대기술투자는 사실상 정몽준이 가지고 있었고, 정몽일은 경영만 맡았던 상황. 이후 2016년에 현대중공업이 지주회사 체제로 돌아서면서, 정몽일은 현대기술투자를 받아서 분가했다.[6] 현대그룹의 모체로서 현대그룹의 정식 계승자라는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는 이를 인수할 필요가 있었다.[7] "감개무량하다. 11년 만이다." 정몽구 회장이 2011년 4월 1일 계동 현대 사옥에 들어서면서 기자들에게 한 말.[8] 사실 현대그룹 계동사옥은 현대중공업이 5개층을, 현대자동차가 10개층을 나눠서 소유했지만, 막상 그룹의 정통성과도 같았던 현대건설 자체는 소유하지 않았던 데다가 본인도 껄끄러운 기억이 있어서 오지 않았다. 이후 정통성과도 같던 현대건설을 완전히 인수하면서, 십여년만에 계동사옥에 기분 좋게 들어선 것이다.[9] 이 나쁜 사이를 일조를 한 건 바로 그 잘난 장남의 . 하도 막장인 인성때문에 조카들 교육 똑바로 시키라고 동생들이 하소연하자 분노한 조양호랑 대판 싸웠다는 얘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