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7 01:27:15

을사의 변

[ 펼치기 · 접기 ]
파일:external/r-ijin.com/img_0-1.jpg

참수형 묘사 주의

에도시대에 그려진 그림. 나라현 사쿠라이시 탄잔신사(談山神社)에 소장되어 있다. 목이 날아가는 사람이 소가노 이루카이고, 칼을 들고 소가노 이루카의 목을 치는 사람이 나카노오에 황자, 옆에 활을 들고 있는 사람이 나카토미노 카마타리. 안쪽에 있는 여성은 당시의 천황고교쿠 덴노다.[1]
1. 개요2. 배경3. 과정4. 결과5. 의혹6. 인명과 칭호에 관하여7. 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ruby(乙巳, ruby=いっし)]の[ruby(變, ruby=へん)]
을사의 변
아스카 시대 고교쿠 덴노 재위기인 645년 6월에 나카노오에 황자외척으로 국정을 농단하던 권신 소가노 이루카를 처단해 소가씨를 몰락시킨 정변이다. 표문을 낭독하던 중 반전이 일어나 죽게 되는 과정이 로마 제국의 권신 세야누스의 처단과 유사하고 국정을 농단하던 권신을 처단한 점은 손침이나 우문호가 처단된 일과 비슷하며 외척을 처단해 전횡을 끝낸 점은 반정이라고 할 수 있다.

2. 배경

고교쿠 재위기 643년 겨울 10월에 권신 소가노 에미시가 병으로 조정에 나오지 못하자 그의 아들인 소가노 이루카척신으로 전횡했는데, 이루카는 당대에 명망 높았던 쇼토쿠 태자 계열의 세력을 몰아내고, 고교쿠 덴노의 백부 겸 부군(夫君)인 조메이 덴노의 장남이자 자신의 고종형인 후루히토노오에 황자([ruby(古,ruby=ふる)][ruby(人,ruby=ひと)][ruby(大,ruby=ノおほ)][ruby(兄,ruby=え)][ruby(皇子,ruby=ノみこ)])[2]를 천황으로 만들려는 음모를 꾸몄다. 그는 성덕태자의 아들인 야마시로노오오에노오오키미([ruby(山,ruby=やま)][ruby(背,ruby=しろ)][ruby(大,ruby=ノおほ)][ruby(兄,ruby=え)][ruby(王,ruby=ノおほきみ)])을 견제하기 위해 11월 1일에 습격했다. 야마시로노오오에노오오키미의 식구는 이루카의 습격을 받자 왕부(王府)에서 모두 자살했는데 , 일가의 죽음으로 쇼토쿠 태자의 직계 후손이 단절되었고, 살아남은 자손들은 방계였기에 황위 계승 자격을 잃게 된다.

이 일로 아버지 에미시는 앞으로 큰 반발을 살 것이라고 이루카를 질책했는데, 쇼토쿠 태자는 제17조 헌법 제정 등 정치적으로도 혁혁한 업적을 세워서 당시 사람들로부터 '성인(聖人)'으로 추앙받고 있었고 소가노 에미시의 동생인 소가노 토지코노이라츠메(蘇我 刀自古郞女)와 혼인하는 등(즉 소가노 이루카의 고모에 해당) 소가씨와도 인척 관계였기에 야마시로노오에 왕은 이루카에게는 사촌에 해당됐다.

방해자가 없어진 이루카는 그 위엄이 아버지보다 더욱 높았는데 도적도 그의 위세를 두려워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자 이에 불만을 품은 나카토미노 카마타리 등의 반대세력은 이루카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로 한다.

3. 과정

카마타리는 호코지(法興寺)[3]에서 벌어진 타국(打毱) 경기를 이용해 조메이 덴노고교쿠 덴노의 차남인 나카노오에 황자에게 접촉해 소가노 이루카를 암살하기 위한 계획을 함께 세우기로 한다. 나카노오에 황자는 협조자를 얻기 위해 이루카의 사촌이지만 반대파였던 소가노 쿠라야마다노 이시카와마로(蘇我倉山田石川麻呂)에게 접근해 함께 일을 벌이기로 했으며 그의 차녀인 소가노 오치노이라츠메(蘇我 遠智娘)와 결혼한다. 카마타리는 사에키노 무라지 코마로(佐伯連 子麻呂), 카츠라기노 와카이누카이노 무라지 아미타(葛城稚犬養連 網田) 등을 나카노오에 황자에게 천거했다. 6월 8일에 나카노오에 황자는 이시카와마로에게 "삼한(三韓, 삼국)의 사신이 물품을 보내는 날에 상표문을 읽게 할 것이고 그 사이에 이루카의 목을 베겠다"고 했으며, 이시카와마로는 이를 수락했다.

12일에 고교쿠 덴노가 대극전(大極殿)으로 나아가자 나카노오에 황자는 그 곁을 모셨으며, 카마타리는 이루카가 의심이 많아 늘 칼을 차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람을 시켜 그를 속여서 칼을 풀게 했다. 이루카가 웃으면서 칼을 풀어놓고 무장을 해제하며 좌석에 들자 이시카와마로가 상표문을 읽었으며, 나카노오에는 위문부 사람들에게 명해 12개의 문을 모두 폐쇄해 왕래할 수 없게 했다.

위문부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녹봉과 물품을 내리는 것처럼 하고, 나카노오에 황자는 긴 창을 들고 대극전에 숨어있었으며, 카마타리는 활, 화살을 들고 나카노오에 황자를 호위했다. 또한 암살 계획에 협력하기로 한 궁정의 호위관 아마노 이누카이노 무라지 카츠마로(海犬養連 勝麻呂)를 통해 상자 속의 두 자루의 칼을 코마로와 아미타에게 주면서 방심하지 말고 불시에 들어가 단칼에 베라고 명령했다.

코마로 등은 물을 마시며 밥을 삼켰지만 두려움에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아 토했으며, 이에 카마타리는 질책하면서 격려했다. 이시카와마로는 표문을 거의 읽음에도 코마로 등이 아니 나오자 두려워서 땀을 흘리며, 목소리와 손을 떨었는데, 이루카가 이를 의심스럽게 여겨 어째서 그렇게 떨고 있냐고 묻자 이시카와마로는 어전(御前)이라 황공해서 저절로 땀이 흐른다고 둘러댔다.
(원문) 中大兄 見子麻呂等 畏入鹿威 便旋不進 曰 “咄嗟!” 卽 共子麻呂等 出其不意 以劒傷割入鹿頭·肩. 入鹿驚起. 子麻呂 運手揮劒 傷其一脚. 入鹿轉就御座 叩頭 曰 “當居嗣位 天之子也. 臣不知罪 乞垂審察!”. 天皇大驚 詔中大兄 曰 “不知所作 有何事耶?”. 中大兄 伏地 奏曰 “鞍作盡滅天宗 將傾日位 豈以天孫代鞍作乎?”.,蘇我臣入鹿 更名鞍作.,天皇 卽起入於殿中. 佐伯連子麻呂·稚犬養連網田 斬入鹿臣. 是日 雨下潦水溢庭 以席障子 覆鞍作屍. 古人大兄 見走入私宮 謂於人 曰 “韓人殺鞍作臣!,謂因韓政而誅.,吾心痛矣!” 卽入臥內 杜門不出.

(일본어역) [ruby(中,ruby=なか)][ruby(大,ruby=ノおほ)][ruby(兄,ruby=え)]は [ruby(子,ruby=こ)][ruby(麻,ruby=ま)][ruby(呂,ruby=ろ)][ruby(等,ruby=ら)]が [ruby(入,ruby=いる)][ruby(鹿,ruby=か)]の [ruby(威,ruby=いきおひ)]を [ruby(畏,ruby=おそ)]れて [ruby(便旋,ruby=めぐら)]ひて [ruby(進,ruby=すす)]まざるを [ruby(見,ruby=み)]て “[ruby(咄嗟,ruby=やあ)]!”と [ruby(曰,ruby=のたま)]ひ [ruby(卽,ruby=すなは)]ち [ruby(子,ruby=こ)][ruby(麻,ruby=ま)][ruby(呂,ruby=ろ)][ruby(等,ruby=ら)]が [ruby(共,ruby=とも)]に [ruby(其,ruby=そ)]の [ruby(不意,ruby=ゆくりもなき)]に [ruby(出,ruby=い)]で [ruby(劒,ruby=たち)]を [ruby(以,ruby=もっ)]て [ruby(入,ruby=いる)][ruby(鹿,ruby=か)]の [ruby(頭,ruby=あたま)]·[ruby(肩,ruby=かた)]を [ruby(傷,ruby=やぶ)]り [ruby(割,ruby=さ)]く. [ruby(入,ruby=いる)][ruby(鹿,ruby=か)]は [ruby(驚,ruby=おどろ)]きて [ruby(起,ruby=た)]つ. [ruby(子,ruby=こ)][ruby(麻,ruby=ま)][ruby(呂,ruby=ろ)]が [ruby(手,ruby=て)]を [ruby(運,ruby=めぐら)]し [ruby(劒,ruby=たち)]を [ruby(揮,ruby=ふ)]きて [ruby(其,ruby=そ)]の [ruby(一,ruby=ひとつ)]の [ruby(脚,ruby=あし)]を [ruby(傷,ruby=きず)]つく. [ruby(入,ruby=いる)][ruby(鹿,ruby=か)]は [ruby(御座,ruby=おもと)]に [ruby(轉,ruby=まろ)]び [ruby(就,ruby=つ)]て [ruby(叩頭,ruby=のみ)]て [ruby(曰,ruby=いは)]く “[ruby(當,ruby=まさ)]に [ruby(嗣位,ruby=ひつぎノみくらゐ)]に [ruby(居,ruby=ま)]しますべきは [ruby(天,ruby=あめ)]の [ruby(子,ruby=みこ)]なり. [ruby(臣,ruby=やつこ)]は [ruby(罪,ruby=つみ)]を [ruby(知,ruby=し)]らず [ruby(乞,ruby=こ)]ふ [ruby(垂審察,ruby=あきらめたま)]へ!”. [ruby(天皇,ruby=すめらみこと)]は [ruby(大,ruby=おほ)]きに [ruby(驚,ruby=おどろ)]きたまひ [ruby(中,ruby=なか)][ruby(大,ruby=ノおほ)][ruby(兄,ruby=え)]に [ruby(詔,ruby=みことのり)]して [ruby(曰,ruby=のたまは)]く “[ruby(作,ruby=す)]る [ruby(所,ruby=ところ)]を [ruby(知,ruby=し)]らず [ruby(何,ruby=なに)]の [ruby(事,ruby=こと)]が [ruby(有,ruby=あ)]りつる[ruby(耶,ruby=や)]?”. [ruby(中,ruby=なか)][ruby(大,ruby=ノおほ)][ruby(兄,ruby=え)]は [ruby(地,ruby=つち)]に [ruby(伏,ruby=ふ)]して [ruby(奏,ruby=そう)]して [ruby(曰,ruby=のたまは)]く “[ruby(鞍,ruby=くら)][ruby(作,ruby=つくり)]が [ruby(天宗,ruby=きむたち)]を [ruby(盡,ruby=つ)]きに [ruby(滅,ruby=ほろぼ)]して [ruby(日位,ruby=ひつぎノくらゐ)]を [ruby(傾,ruby=かたむ)]けむとす. [ruby(豈,ruby=あに)] [ruby(天,ruby=あめ)][ruby(孫,ruby=みま)]を [ruby(以,ruby=もっ)]て [ruby(鞍,ruby=くら)][ruby(作,ruby=つくり)]を [ruby(代,ruby=か)]へむ[ruby(乎,ruby=や)]?”. ,[ruby(蘇,ruby=そ)][ruby(我,ruby=が)][ruby(臣,ruby=ノおみ)][ruby(入,ruby=いる)][ruby(鹿,ruby=か)]の [ruby(更名,ruby=あだな)]は [ruby(鞍,ruby=くら)][ruby(作,ruby=つくり)]なり., [ruby(天皇,ruby=すめらみこと)]は [ruby(卽,ruby=すなは)]ち [ruby(起,ruby=た)]ちて [ruby(殿中,ruby=みあらかノうち)]に [ruby(入,ruby=い)]りたまふ. [ruby(佐,ruby=さ)][ruby(伯,ruby=へき)][ruby(連,ruby=ノむらじ)] [ruby(子,ruby=こ)][ruby(麻,ruby=ま)][ruby(呂,ruby=ろ)]·[ruby(稚,ruby=わか)][ruby(犬,ruby=いぬ)][ruby(養,ruby=かひ)][ruby(連,ruby=ノむらじ)] [ruby(網,ruby=あみ)][ruby(田,ruby=た)]は [ruby(入,ruby=いる)][ruby(鹿,ruby=か)][ruby(臣,ruby=ノおみ)]を [ruby(斬,ruby=き)]る. [ruby(是,ruby=こ)]の [ruby(日,ruby=ひ)]に [ruby(雨,ruby=あめ)]が [ruby(下,ruby=ふ)]りて [ruby(潦水,ruby=いさらみづ)]が [ruby(庭,ruby=おほば)]に [ruby(溢,ruby=いは)]めり [ruby(席,ruby=むしろ)][ruby(障子,ruby=しとみ)]を [ruby(以,ruby=もっ)]て [ruby(鞍,ruby=くら)][ruby(作,ruby=つくり)]が [ruby(屍,ruby=かばね)]を [ruby(覆,ruby=おほ)]ふ. [ruby(古,ruby=ふる)][ruby(人,ruby=ひと)][ruby(大,ruby=ノおほ)][ruby(兄,ruby=え)]は [ruby(見,ruby=み)]て [ruby(私,ruby=わたくし)][ruby(宮,ruby=ノみや)]に [ruby(走,ruby=はし)]り [ruby(入,ruby=い)]りて [ruby(人,ruby=ひと)][ruby(於,ruby=に)] [ruby(謂,ruby=かた)]りて [ruby(曰,ruby=いは)]く “[ruby(韓,ruby=から)][ruby(人,ruby=ひと)]が [ruby(鞍,ruby=くら)][ruby(作,ruby=つくり)][ruby(臣,ruby=ノおみ)]を [ruby(殺,ruby=ころ)]しつ! ,[ruby(韓,ruby=から)][ruby(政,ruby=ノまつりごと)]に [ruby(因,ruby=よ)]りて [ruby(誅,ruby=つみ)]するを [ruby(謂,ruby=い)]ふ., [ruby(吾,ruby=わ)]が [ruby(心,ruby=こころ)][ruby(痛,ruby=いた)]し!” [ruby(卽,ruby=すなは)]ち [ruby(臥內,ruby=ねやノうち)]に [ruby(入,ruby=い)]りて [ruby(杜門不出,ruby=かどヲ さして いでず)].


(한국어역) 나카노오오에는 코마로 등이 이루카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머뭇거리며 못 나아감을 보고 “야아!”[4]하고는 곧 코마로 등과 함께 갑자기 칼로 이루카의 머리와 어깨를 베어 다치게 하니 이루카가 놀라 일어났다. 코마로가 손을 놀려 칼을 휘둘러 그의 한 쪽 다리를 다치게 했다. 이루카가 굴러서 어좌에 나아가 머리를 조아리며 “마땅히 대위(大位)[5]에 계셔야 할 분은 하늘아들딸이옵니다. 신은 허물을 모르나니 부디 살펴주소서!”[6]라고 주청하였다. 천황이 크게 놀라 나카노오오에에게 “모르는 바로니 무슨 일이 있느냐?”고 칙문하였다. 나카노오오에가 땅에 엎드려 “쿠라츠쿠리가 종실[7] 싹 없애고 바야흐로 신극(宸極)[8] 위태롭게 할 것입니다. 어찌 천손을 쿠라츠쿠리로 대신할 수 있나이까?”[9][10]라고 진언하였다. ,소가노오미 이루카의 다른 이름이 쿠라츠쿠리다. , 천황은 곧 일어나 금중(禁中)으로[11] 입어(入御)하였다.[12] 사에키노스쿠네 코마로와 와카이누카이노무라지 아미타가 이루카의 목을 베었다. 이날 비가 내려 괸물이 마당에 고이니[13] 으로[14] 쿠라츠쿠리의 송장을 덮었다. 후루히토노오오에는 이것을 보고 왕부(王府)[15]로 달려 들어가 사람들에게 “한인이 쿠라츠쿠리노오미를 죽였다! ,한인의 정치로 말미암아 살해되었음을 이른다. , 내 마음이 아프다!”고 이르고는 침실에 들어가 두문불출하였다.
일본서기 Vol. 24』, 「황극기(皇極紀)」, 을사년(645년), 6월 12일 무신(그레고리력 7월 13일) 출처 출처 출처

그런데 하필 사건이 벌어진 곳은 한반도에서 온 삼한의 사신을 영접하는 자리였기에, 삼한의 사신들은 다른 나라의 척신이 황자의 손에 죽어나가는 것을 본의 아니게 눈앞에서 목도(목격)한 꼴이 되었다. 여기서 후루히토노오에 황자가 뜬금없이 한인이 이루카를 죽였다고 말한 대목에 대해서는 해석이 몇 가지 있다.
  1. 나카노오에 황자가 사실은 한인이었다(!). 직역하면 이렇게 해석될 수 있지만 차라리 소가씨 일족이 한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니 당연히 말이 안 되므로 별로 지지받지는 못한다.
  2. 이루카는 한인의 정치를 행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즉 신라에서 외래문물인 불교를 도입하다가 기성귀족들의 등쌀에 이차돈이 살해당했던 것처럼 이루카가 도래인 세력과 친하게 지내며 외래문물을 도입하려 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는 해석.
  3. 삼한의 사신들을 영접하는 자리만 아니었다면 이루카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이 해석을 따르는 걸로 보인다.
  4. 삼한의 사신들은 모두 가짜였고, 사실은 한인들이 나카노오에 황자에게 협조해 이루카를 죽이기 위해 위장했던 것이다. 즉 나카노오에 황자와 한인들이 모략을 꾸며서 이루카가 죽은 것이다.
  5. 최근 일본 사학계에서 제기되는 가설로, 나카노오에 황자를 도운 나카토미노 카마타리가 한인, 즉 도래인이라는 해석.[16]

나카노오에 황자는 자신의 궁으로 돌아가 이루카를 죽인 것을 알렸으며, 이루카의 시신을 에미시에게 보냈다. 에미시는 아야노 아타이(漢直)[17] 등의 휘하 사람들을 소집해 갑옷, 무기 등을 갖추고 진을 치도록 했다. 나카노오에 황자는 장군 코세노 토코타(巨勢 德多)를 파견해 자신들이 거사한 이유를 알렸다.

이에 타카무코노 오미 쿠니오시(高向臣 國押)가 이루카 때문에 자신들도 주살될 것이라면서 쓸데없이 싸워서 처형될 필요는 없다고 하자 모두 칼, 활을 던지고 떠났으며, 13일에 에미시는 저택에 있는 종실과 조정의 보물 및 문헌을 남김없이 불태우고 자살했다.[18] 후네노후히토 에사카(船史 惠尺)가 재빨리 불에 탄 기록을 집어내 나카노오에 황자에게 바쳤으며, 나카노오에 황자는 에미시와 이루카를 장사지내는 것을 허락했다.[19]

4. 결과

이 정변으로 소가씨는 일순간에 몰락했고 고교쿠 덴노는 갑작스러운 정변에 화가 나 생전 퇴위하여 황위는 나카노오에 황자에게 돌아가게 되었으나 카마타리의 조언에 따라 고교쿠 덴노의 동생인 카루 황자(輕 皇子)에게 양위하여 그가 고토쿠 덴노(孝徳天皇)가 되었다. 그는 조카인 나카노오에 황자를 황태자로 세웠으며, 나카노오에 황자는 실권을 잡아 아베노 우치마로(阿倍 內麻呂)를 좌대신(左大臣), 이시카와마로를 우대신(右大臣), 카마타리를 내신(內臣)에 임명하고, 그 유명한 다이카 개신을 단행하게 된다.

정변 후 조메이 덴노의 장남이었던 후루히토노오에 황자에게도 순번상 황위에 오를 기회가 있었으나 거절하고 은거하였다. 당연한 게 그는 소가씨 쪽 파벌이자 유력한 황족이었기 때문에 정변이 성공한 순간 황위는커녕 목숨을 보전하기도 힘든 처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에 키비노카사노오미 시다루(吉備笠臣 垂)가 그가 모반을 꾀하고 있다고 밀고하였고, 나카노오에 황자의 공격을 받아 살해당한다. 물론 그가 정말로 모반을 꾀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고 역사상 흔히들 하는 계승 유력자 처단일 가능성이 더 높다.

5. 의혹

일본서기 연구 결과 일본서기는 중국인 혹은 중국식 한문에 박식한 자가 작성한 순한문체로 되어있는 부분과, 일본인의 언어습관이 강하게 남아있는 부분(왜습)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이 을사의 변과 다이카 개신 부분은 후자의 왜습이 가미된 어체로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래서 이와 더불어 나카노오에 황자가 실은 고교쿠 덴노의 아들이 아니라 먼 친척이거나 아예 남이었지만 후대에 가필되면서 아들로 둔갑한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고토쿠 덴노 시절 나카노오에 황자가 그렇게 권력을 휘둘렀음에도 고토쿠 덴노 사후에 자기가 황위에 오르지 않고 굳이 고교쿠 덴노를 사이메이 덴노로 다시 즉위시켜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후에 실권을 휘둘렀고, 사이메이 덴노가 죽은 이후에야 즉위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즉위하기 전 실권을 잡고 있었을 때나 즉위하여 덴지 덴노가 된 이후에도 백제 부흥군을 열심히 지원하는 등 사이메이 덴노 및 소가노 이루카의 정책과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그가 과연 이루카와 적대하던 인물이 맞는가라는 의문도 존재한다.[20]

여기서 오아마 황자(덴무 덴노)의 행적도 의문이 많다. 친동생이라지만 이 일에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덴지 덴노 시절 태자가 되었고, 술자리에서 태자가 대왕에게 창을 던졌다는 기록이 있는 등 이 둘의 사이는 최악이었다고 한다. 고교쿠 덴노조메이 덴노와 혼인하기 전 다카무쿠 왕 사이에서 아야 황자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다카무쿠 왕이 소가씨 출신이고, 아야 황자와 오아마 황자가 동일 인물이라는 가설이 있다. 오아마 황자의 정체가 아야 황자라면 왜 이복형인 후루히토노오에 황자처럼 안 죽인 건지도 의문이다.

6. 인명과 칭호에 관하여

일본이라는 국호나 천황라는 칭호는 나라 시대에 생겨났기 때문에 엄밀한 고증을 반영하자면 아직 아스카 시대인 이때는 국호는 야마토(大和/大倭), 군주의 칭호는 오키미(大王/女王), 왕후/황후의 칭호는 키사키(后/妃), 남자 왕족/황족의 칭호는 미코(御子), 여자 왕족/황족의 칭호는 히메미코(姫御子)가 된다. 그러나 백제의 왕을 가리키던 건길지 같은 칭호를 지금 와서 사용하면 아무도 못 알아듣는 것처럼 현지인인 일본인들에게도 이런 고대의 칭호는 너무 길고 어렵고 복잡하다. 그래서 현대인이 알아보기 편한 후대에 추숭된 칭호로 표기하였다.

고대 일본인의 인명, 그것도 상류계층의 이름이라 매우 복잡하다. 현대 일본의 인명과 다른 면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현대 일본인이라도 따로 배우거나 알아보지 않은 이상 이름의 구조를 알기가 힘들다. 또한 언어가 표준화된 현대와는 달리 고대인들의 지식이나 체계는 그렇게 엄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일한 이름이라도 표기가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명도 원문을 따르되 인지도나 표준적인 표기를 기초로 성씨는 성씨끼리, 이름은 이름끼리 붙여서 표기하였다.

먼저 고대 일본인의 성씨는 우지(氏)카바네(姓)로 구분된다. 이중 우지 부분이 현대의 성씨에 가까운 씨족명이었고, 카바네는 직책이나 가문의 등급 등을 나타내던 표지로서 표기시에는 포함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했으며 우지 뒤에 붙기도 하고, 이름 뒤에 붙기도 하였다. 우지도 곧이곧대로 성씨로 이어진 건 아니고, 세대가 거듭되며 촌수가 멀어짐에 따라 씨족 내의 구분을 위해 우지의 세부 구분을 표시하기도 했는데 주로 거주지의 지명이나 자택명, 직업, 조상의 별명 등을 붙여서 구분했다. 이런 경우는 우지의 세부 구분이 현대의 성씨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표기들은 보통 조사 '노'를 통해 구분된다.
  • 야마시로노오에 왕(山背大兄 王): 오에(大兄)는 장남에게 주어지던 칭호로서 황위 계승 자격을 나타냈다. 쇼토쿠 태자의 장남이다.
  • 후루히토노오에 황자(古人大兄 皇子): 조메이 덴노의 장남으로 나카노오에 황자의 이복형에 해당한다.
  • 나카토미노 카마타리(中臣 鎌足): 원문에는 나카토미노 카마코노 무라지(中臣 鎌子連)로 표기되어 있으나 나카토미노 카마타리라는 이름으로 제일 유명하다. 여기서 나카토미(中臣)가 우지, 무라지(連)가 카바네, 카마타리(鎌足)/카마코(鎌子)가 이름이다. 현대 일본식 이름으로는 '나카토미 카마타리(中臣 鎌足)' 혹은 '나카토미 카마코(中臣 鎌子)'가 된다.
  • 나카노오에 황자(中大兄 皇子): 나카노오에(中大兄)는 주로 차남에게 주어지던 칭호에 해당한다. 즉 나카노오에는 본명은 아니고 칭호이지만 워낙 유명하다 보니 거의 이 사람의 대명사로 쓰인다. 이름은 카즈라키/카츠라기(葛城)이다. 조메이 덴노의 차남이며 고교쿠 덴노의 아들이다. 후에 덴지 덴노(天智 天皇)로 즉위한다.
  • 소가노 쿠라야마다노 이시카와마로(蘇我倉山田 石川麻呂): 소가(蘇我)가 우지, 쿠라야마다(倉山田)가 우지의 세부 구분, 이시카와마로(石川麻呂)가 이름이다. 별칭이 많아서 표기가 매우 다양하다. 현대 일본식 이름으로는 '쿠라야마다 이시카와마로(倉山田 石川麻呂)' 혹은 '소가 이시카와마로(蘇我 石川麻呂)'가 된다. 이름이 그냥 마로(麻呂)라는 설도 있는데 이를 기준으로 구분하면 소가노 쿠라야마다노 이시카와노 마로(蘇我倉山田石川 麻呂)가 된다. 소가씨 몰락 이후 이름의 일부인 '이시카와'로 성을 바꾸어서 그 후 정말로 그냥 '마로'가 이름이 되었다.
  • 사에키노 무라지 코마로(佐伯連 子麻呂): 사에키(佐伯)가 우지, 무라지(連)가 카바네, 코마로(子麻呂)가 이름이다. 현대 일본식 이름으로는 '사에키 코마로(佐伯 子麻呂)'가 된다.
  • 카츠라기노 와카이누카이노 무라지 아미타(葛城稚犬養連 網田): 카츠라기(葛城)가 우지의 세부 구분, 와카이누카이(稚犬養)가 우지, 무라지(連)가 카바네, 아미타(網田)가 이름이다. 현대 일본식 이름으로는 '카츠라기 아미타(葛城 網田)' 혹은 '와카이누카이 아미타(稚犬養 網田)'가 된다.
  • 아마노 이누카이노 무라지 카츠마로(海犬養連 勝麻呂): 아마(海)가 우지의 세부 구분, 이누카이(犬養)가 우지, 무라지(連)가 카바네, 카츠마로(勝麻呂)가 이름이다. 현대 일본식 이름으로는 '아마 카츠마로(海 勝麻呂)' 혹은 '이누카이 카츠마로(犬養 勝麻呂)'가 된다.
  • 아야노 아타이(漢直): 아야(漢)가 우지, 아타이(直)가 카바네이다. 아야(漢)씨는 도래인의 씨족으로서 야마토노 아야(東漢)씨와 카와치노 아야(西漢)씨의 두 종류가 있다. 야마토노 아야씨는 야마토노쿠니(大和國)에 기거하던 씨족이었고, 카와치노 아야씨는 카와치노쿠니(河內國)에 기반하던 씨족이었으므로 에미시의 휘하에 있던 인물은 야마토노 아야씨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야마토(東)와 카와치(西)가 우지의 세부 구분에 해당한다. 일본서기 620년 기록에 아타이를 '야마토노 아야 사카노우에노 아타이'로 기록하고 있어, 아타이는 야마토노 아야씨가 맞는 것 같다.
  • 타카무코노 오미 쿠니오시(高向臣 國押): 타카무코(高向)가 우지, 오미(臣)가 카바네, 쿠니오시(國押)가 이름이다. 현대 일본식 이름으로는 '타카무코 쿠니오시(高向 國押)'가 된다. 원문에는 타카무쿠라는 훈이 달려있으나 후대에 등장하는 같은 씨족의 인물들은 거의 타카무코라고 불리고 있다.
  • 후네노 후히토 에사카(船史 惠尺): 후네(船)가 우지, 후히토(史)가 카바네, 에사카(惠尺)가 이름이다. 현대 일본식 이름으로는 후네 에사카(船 惠尺)가 된다.
  • 아베노 우치마로(阿倍 內麻呂): 아베(阿倍)가 우지, 우치마로(内麻呂)가 이름이다. 아베씨의 카바네는 오미(臣)였기에 씨나 이름에 오미가 붙어서 표기된 경우가 많다. 표기의 바리에이션이 굉장히 다양하다. 현대 일본식 이름으로는 아베 우치마로(阿倍 内麻呂)가 된다.

참고 사이트 #1, #2, #3위키백과 일본어판

7. 매체에서의 등장

  • 일본도 아니고 국내 드라마에서 가장 먼저 영상화가 되었다. 바로 1992년 KBS에서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 삼국기이다. 이 드라마에서는 왜국백제제후국으로 설정한 까닭에 드라마의 갈등구조를 일본 독립파(소가노 이루카)와 친백제파(나카토미노 카마타리)로 설정했고, 소가노 에미시는 야심이 가득하면서도 상당히 노회한 정객으로, 소가노 이루카는 탐욕스럽고 급한 성정의 무장으로 설정했다. 거사 전날 수상한 무당들을 발견하는가 하면, 소가노 에미시가 꿈에 당시에 퍼졌다는 참요를 들으면서 자신의 운이 다했다는 것을 짐작한 것으로 나온다. 이외에는 실제 목이 날아가는 것 외에는 일본서기의 기록과 거의 동일한 전개로 연출한다.
  • NHK에서 방영한 드라마 다이카 개신(大化改新, 2005)에서 을사의 변이 꽤 고증에 충실하게(픽션도 가미되긴 했지만) 묘사되었다. 도중에 깨알같이 연개소문의 정변이 언급되는 건 덤. 연개소문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고 고교쿠 덴노가 소가노 이루카에게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고구려에서 권신에 의한 정변이 일어나 왕실이 망했다(이루카에 의해 우리도 그렇게 될까봐 두렵다)'는 식으로 지나가는 식으로 언급된다.
  • KBS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에서 이 사건이 묘사됐는데, '삼한의 사신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변이 일어났다'는 일본서기의 서술을 따 와서 김춘추가 고교쿠 여왕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 사건이 발생했다. 다만 김춘추가 일본서기 기록상 사신으로 간 건 647년으로 되어 있는데, 이 사건은 645년에 일어난 일이라 고증오류다. 이후 왜국의 정변 소식을 접한 선덕여왕이 이 사정에 대해 묻자 알천이 "왜국의 태자가 난신적자들을 숙청한 대의명분이 있는 정변이니 곧 소요가 가라앉을 것"이라고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 나카노오에 황자와 카마타리는 함께 작당하여 이루카를 죽였을 만큼 이루카와 적대적인 관계였지만 픽션에서는 이들이 서로 BL적인 관계로 묘사되는 경우가 있다. 당장에 상술된 NHK 드라마 다이카 개신에서는 BL까지는 아니지만 카마타리와 이루카가 소꿉친구로 나오며, 이루카가 죽은 후 카마타리가 이루카의 시신을 붙잡고 우는 묘사가 나온다.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야마토 캠페인 6번째 미션에서 해당 내용의 미션이 등장한다. 다만, 소가의 목을 베는 것이 아닌 소가의 국정 센터 파괴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1] 이 그림은 당시가 아닌 에도 시대에 그려진 그림이라 인물들의 복식이 헤이안 시대 풍으로 그려져 있는데, 사서에 따르면 해당 시대는 아스카 시대이다. 따라서 그림의 복식과는 전혀 다르다.[2] 조메이 덴노의 아들이긴 하지만 고교쿠 덴노의 아들은 아니다. 즉 나카노오에의 이복형.[3] 법흥사, 현재의 아스카데라(飛鳥寺).[4] 원문의 '돌차(咄嗟)'는 혀를 차며 애석히 여긴다나오지만 이 뜻은 문맥상 틀리고 '호통친다'는 뜻이 맞다.[5] '(임금의) 자리를 이어받음'을 뜻하는 '사위(嗣位)'라고 쓰고 일본어로는 '히츠기노 미쿠라위'로 읽는다. 뜻은 해(히)+이음(츠기)+의(노)+높임접두사(미-)+자리(쿠라위)[6] 해석: "저는 반역을 꾀한 적이 없으니 이는 누명임을 알아주십시오!"[7] 한자로 '하늘(天)의 겨레(宗)'라고 쓰고 일본어로 '긴다치'라고 읽는다. 단 후리가나도 '키무타치'라고 쓰고 '긴다치'라고 읽는다. '자네들' 또는 '님들'을 뜻하는 '키미타치'의 발음이 변한 것이다. 원래 뜻은 '종친'이나 나중에 일본 황실이 쇠락하면서 '높으신 분들자제'로도 쓰였다.[8] 한자는 '해의 자리'고 일본어는 앞의 '히츠기노 미쿠라위'에서 '미(み)-'만 빠졌다.[9] 해석: "쿠라츠쿠리가 반역을 꾀하고 있으니 숙청해야 합니다!"[10] 고사기대로라면 소가노 이루카고겐 덴노11대손이고 타케우치노 스쿠네의 운손자(雲孫子)니까 덴지 덴노의 말대로 쿠라츠쿠리가 천손을 대신한들 부계혈연이 같아서 역성혁명이라고 보기 어렵다. 다만 최근에는 소가씨가 고겐 덴노의 후손이라는 것 자체가 부정되기에 역성혁명이 맞긴 하다.[11] 일본어로는 '미아라카노나카'다. '노()'야 일본에서 흔히 쓰이는 관형격 조사이고 '나카'도 '가운데'로 역시 쉬운 일본어다. '미아라카'가 낯선 일본어인데 '미-+아리(있음)+-카'로 여기서 '-카'는 장소를 뜻하는 접미사다. '미아리카'가 아니라 '미아라카'인 까닭은 '리'가 '아' 사이에 끼이면서 발음하기 편하게 변한 것이다. '고쿄'도 훈독하면 '미아라카'다. 문맥상 삼한사절을 맞이하는 공적 공간과 대비되는 천황의 사적 공간이므로 궁에서 임금의 사적 공간을 뜻하는 '금중(禁中)'이 알맞다.[12]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이미 변이 벌어질 대로 벌어져 이루카를 죽이지 말라고 해봤자 무시하고 죽일 테니 그러면 칙명(勅命)이 묵살당한 셈이 되어 권위만 손상될 것이므로 말리기를 단념한 것이고, 둘은 어쨌든 어전(御前)에서 칼빵을 놓는 건 임금을 무시하는 짓이라서 불쾌감을 드러낸 바다. 아사노 나가노리아코 사건으로 할복하고 개역된 게 이래서다.[13] 후술할 날짜를 읽으면 알겠지만 장마철이다.[14] 원문은 '무시로시토미'라고 하는데 '무시로'는 '거적'이고 '시토미'는 '빈지'다. 비, 바람, 볕을 막으려고 짚, 띠, 부들 따위로 거적처럼 엮은 것인데 이것을 한국어로 '뜸'이라고 한다.[15] 원문은 '사사로운 궁궐'이라고 쓰고 '와타쿠시의 미야'라고 읽는다. '궁()'이란 쓰기에 얽매이면 안 된다. 일본어 '미야(みや)'는 집을 뜻하는 '야()'에 높임접두사가 붙은 파생어로 집을 높여 부르는 말이기에 딱히 '궁궐'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일본의 성씨에서 '미야(宮)'가 많은 게 그래서다. 문맥상 친왕이 사는 곳이고 임금이 사는 곳이 아니면 '궁'이라 할 수 없어서 친왕의 집은 '궁'보다 낮은 '부()'로 불렀기에 '왕부'로 옮기는 게 알맞다.[16] 한인이 정변에 직접 개입했다는 해석을 토대로 묘사한 작품이 '덴지와 덴무-신설 일본서기-(天智と天武-新説・日本書紀-)'라는 만화로, 이 만화에서는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이 나카토미노 카마타리와 동일인물로 묘사된다(여담으로 이 만화에서는 의자왕귀실복신, 태종 무열왕, 문무왕, 김유신도 등장한다).[17] 원문에는 그냥 아야노 아타이(漢直)라고만 나와있고 이름이 누락되어 있다.[18] 소가노 에미시가 국정농단을 하면서 국고와 사고(史庫)에 있어야 할 것들을 긴빠이쳤는데 그걸 다 태웠으니 역적이 따로 없다.[19] 아스카데라 맞은 편에 소가노 이루카의 머리 무덤이 남아있다. 관련 영상[20] 허나 정책이 문제가 아니라 외척이 전횡해서 그런 거니 정책이 같은 게 정변의 명분과는 무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