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4-14 21:28:12

김동기(야구)

파일:DDD.jpg
이름 김동기(金東基)
생년월일 1964년 3월 5일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인천신흥초등학교
동인천중학교
인천고등학교
인하대학교 (1982학번)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6년 1차 1순위(청보)
소속팀 청보 핀토스(1986~1987)
태평양 돌핀스 (1988~1995)
현대 유니콘스(1996)
지도자 안산초등학교 감독
인천신흥초등학교 감독
청보 핀토스 등번호 35번
박정후(1985) 김동기(1986~1987) 팀 해체
태평양 돌핀스 등번호 35번
팀 창단 김동기(1988~1995) 팀 해체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5번
팀 창단 김동기(1996) 조승현(1997~1999)

1. 소개2. 선수 경력3. 은퇴 이후4. 기타5.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전직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나 대학을 보면 알겠지만, 김경기와 더불어 인천에서만 선수 생활을 한 인천 야구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최근 짧은 활동연도 (11시즌)에도 역대 포수 누적 WAR 7위 (35.13) ,wRC+ 2위 (125.9) 에 빛나는 그의 가치가 최근 재조명되고 있다. [1] [2].통산 OPS도 .785

2. 선수 경력

청보 핀토스에 지명 후 포수로 활약하여 공격력이 허약했던 태평양에서 윤덕규, 김경기와 더불어 타선을 이끌었다. 또한 이당시 포수는 방망이가 약한선수들이 많았지만 김동기는 연간 10홈런 이상은 뽑아냈기 때문에 80년대 후반-90년대 초중반 공격형포수로써 명성을 떨쳤다. 특히 선동열에게 강했는데 선동열에게 만루홈런 두 개를 쳤다.

1988년 전기리그 종료 시점 때 타율이 0.379였고 후기리그 초반까지도 0.358의 타율에 10홈런으로 가공할 만한 타격감을 선보였으나 8월 12일 MBC 청룡과의 인천 홈 경기에서 기습번트를 하고 1루로 뛰다가 발목을 접질려 인대가 파열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전력에서 이탈했다. 그해 타격왕은 MBC 청룡의 김상훈이 0.354의 타율로 차지한다. 타율이 앞서 서술했듯이 부상으로 잔여 시즌에 결장하여 규정타석에 미치지 못함으로 타격왕을 아깝게도 놓칠 수밖에 없었다.

다음 해인 1989년 KBO 리그 최초로 한 시즌 전경기 선발 출전 포수로 등극하며 태평양의 돌풍을 이끌었다. 특히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는 연장 14회 끝내기 결승홈런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박정현 14회 완투..) [3]

1994년에는 이 다시금 상승세를 거두어 2위를 차지하였고, 선수 본인도 0.264의 타율에 15홈런을 쳐서 [4] 23개의 홈런을 쳤던 김경기, 3할타자 윤덕규와 클린업트리오를 이루어서 좋은 성적 내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나, LG 트윈스와의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네 경기를 내리 내주는 바람에 아쉽게도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었다. 콩라인 특히 1차전 8회초 1사 만루에서의 병살타가 뼈아팠다. 또한 그 해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투표에서 김동수에게 2표 차이로 뒤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한다. 1988년때도 그랬지만 여러모로 상복이 없는 선수시절이었다.(...) [5]

1996년 5월 31일 포수로는 두 번째로[6] 1천 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백업포수가 없었던 팀 사정으로 과부하가 걸렸고 고질적인 허리디스크로 오른다리가 마비되어 1996년 은퇴하였다.

타선이 빈약했던 팀에서 고군분투한 탓에 선수생활이 길지 않았고, 골든글러브는 한번도 못 받았고 (주로 김동수장채근이 번갈아 수상했다) 대기업에 인수되어 팀 전력이 상승하려는 시점에 은퇴해버려 오랜 팬들밖에 기억해주지 않는 비운의 선수. 그럼에도 기록을 보면 이만수의 시대가 가고 박경완의 시대가 오기까지의 사이에 김동수, 장채근과 함께 당대의 정상급 포수로서 당당히 경쟁했던 선수였음을 알 수 있다. 상복이 없었던 점이 아쉬울 뿐.

3. 은퇴 이후

보험, 건설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모교 인천신흥초등학교 감독으로 2008년부터 맡고 있었으나 현재는 형인 김상기와 천안에서 야구교실을 운영하며 사회인야구 저변 확대를 위해 일하고 있다.

4. 기타

선동열 킬러였다. 선동열에게서 정규시즌 2개의 홈런을 뽑아낸 4명 뿐인 선수 중 한 명[7][8]으로 1개는 선동열의 319.1이닝 1186타자 무피홈런을 깬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만루홈런[9]이다.[10]

선수 시절 야구 외의 재주로도 동료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다. 당구는 500을 쳤고[11] 맥주는 1만5000cc 이상은 우습게 마시는 정도였다고 한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6 청보 핀토스 87 230 .248 57 14 1 10 26 20 1 22 .448 .313
1987 105 350 .277 97 21
(4위)
0 9 48 47 3 55 .414 .374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8 태평양 돌핀스 62 212 .358 76 18 1 10 39 41 3 33 .594 .441
1989 120 399 .251 100 25
(1위)
1 11 59 61
(5위)
7 84 .401 .378
1990 114 336 .250 84 20 1 14 46 52 5 53 .440 .352
1991 98 286 .262 75 9 1 7 34 37 9 41 .374 .354
1992 107 333 .294 98 15 2 15 58 53 2 53 .486 .391
1993 93 315 .244 77 22 1 3 34 33 1 46 .349 .340
1994 119 368 .264 97 16 0 15 50 49 3 50 .429 .352
1995 66 173 .173 30 4 1 9 28 16 1 23 .364 .269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96 현대 유니콘스 48 99 .212 21 2 0 5 13 13 0 14 .384 .307
KBO 통산
(11시즌)
1019 3101 .262 812 166 9 108 435 422 35 474 .426 .359


[1] 스태티즈 기준, 김동기보다 위에 있는 6명은 순서대로 박경완, 이만수, 김동수, 홍성흔, 강민호, 진갑용이다. 바로 아래 순위가 양의지인데 별 일이 없다면 2018년 말이나 2019년 초즈음 역전될 예정. 그 아래로 현역 중 가장 높은 순위가 이재원인데, 더블스코어를 넘는 차이라서 당분간 순위가 더 내려갈 일은 없다.[2] 시각을 바꾸어서 연평균 WAR로 따지면, 10년 이상 활약한 포수 중 연평균 WAR 4위이다. 이만수 - 양의지 - 강민호 - 김동기 - 박경완 - 김동수 - 홍성흔 - 진갑용 순.[3] 야구팬이면 잘 알겠지만 포수라는 포지션은 경기내내 쭈그리고 앉아있어야 되고 투수의 140~150km 시속 패스트볼을 받아내야 되는 포지션이라서 다른 선수들에 비해 피로도가 굉장히 높은 포지션이다. 이 기록은 2006년 강민호, 2015년 김태군이 계승했다.[4] 홈에서는 .337 원정.190[5] 94년 포수부문과 1루수 부문은 우승 프리미엄이 적용된 대표적인 케이스. 김동기 VS 김동수, 김경기 VS 서용빈 . 자세한 사항은 스탯티즈 참조. 특히 포수부문 김동수 선수의 경우 규정타석 미달이었다....[6] 역대 19번째. 포수 최초는 갓동님 이만수였다.[7] 나머지 3명은 류중일, 전대영, 박승호이다.[8] KBO 포스트시즌까지 포함하면 김성래가 있다.(86한국시리즈 홈런, 93페넌트레이스 홈런)[9] 1993년에는 0-4로 뒤진 9회말 2사 만루서 0점대 방어율에 빛나는 선동열을 상대로 동점 만루홈런을 작렬했다. 김동기의 그 해 홈런수는 단 3개뿐이었다.[10] 선동열이 글러브 안에서 변화구하고 직구 그립 잡을 때 팔뚝 근육의 모양이 달라지는 쿠세를 읽었던 게 비결이라고 한다.[11] 다른 곳도 아니고 짜디짠 것으로 소문난 인천의 당구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