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3 00:06:42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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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사건의 발단3. 수법4. 왜 그랬는가5. 선수6. 반전(?)
6.1. 각 구단별 상황
7. KBO의 뒷처리8. 후폭풍

1. 개요

KBO 리그 역사상 최대 규모의 흑역사 사건 중 하나로 사법처리된 선수 51명,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없음 처분 되었으나 징병검사를 다시 받아야 했던 선수 19명이라는 대규모의 대형 사건. 워낙 사건의 규모가 큰 탓에 당시 최초 공개자료에 비해 시간이 지날수록 명단이 추가되었던 사건이었다.

사건 당시에는 프로야구 병풍이라 불렀으며 유래에 대해서는 해당 부분 참조.

당시에는 대한민국 축구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때 4강에 진출하며 인기를 끌었던 데다가,[1] 당시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스타였던 이승엽일본프로야구치바 롯데 마린즈로 이적하면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맨틀 바닥을 뚫고 뚫어 지구 반대편까지 뚫을 기세였다. 게다가 사건의 규모,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에 사건이 알려지자 야구계, 언론, 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프로야구 빠른 멸망이요!!"를 외쳤다.

당시 어떤 사람은 "프로야구 제9구단: 병역 비리스Byeongyeok Biris, 연고지: 교도소, 구단주: 법무부 장관" 이라는 개드립을 날리기도 했다. 더 무서운 건 실제로 이 정도 규모라면 정말로 야구팀 하나 만들 수 있는 수준으로 어마어마하게 여파가 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드립은 6년 후 스타크래프트판에서도 다시 그대로 나왔다.

2. 사건의 발단

시즌이 끝나갈 무렵이던 9월 4일 오전 서울경찰청이 "야구선수 50명이 브로커 2명과 짜고 병역비리를 저질렀다"라고 발표한다. 이 놀라운 소식에 모든 언론이 대폭발, 이때부터 한달 간 실시간으로 사건이 보도된다.

첫 타자는 LG 트윈스의 선수 4명이었으나 곧 8개구단 전체로 확산, 시합 중인 선수가 덕아웃에 있다가 경찰서 정모에 끌려가는 등 매우 아름다운 사태가 벌어진다.
당시 프로야구는 포스트 시즌을 앞두고 막판 치열한 순위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나,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순위싸움? 그딴 거 없어. 한국시리즈? 없어... 의 분위기가 되어버린다.. 그 결과는 2002년 시즌과 비슷한 230만명대의 관중수.[2] 그나마 2004년 한국시리즈가 9차전까지 가는 명승부가 나온지라 다행이지, 만약 이마저도 없었다면 2003년 한국시리즈 이후 2년 연속 흥행참패라는 최악의 사태가 나올 수 있었다.

어느 코치는 사건 직후 텅 빈 관중석을 보며, "차라리 남은 시즌 경기를 모두 취소하고 사회봉사를 하는 게 낫겠다."고 말하기도...

3. 수법

일단 개인병원에 약물를 섞은 소변을 제출하여 진단서를 끊고, 종합병원에서 검사 3시간 전부터 짙은 농도의 커피를 다량 섭취, 신장 이상(정확히는 사구체 신염)으로 판명 받았다. 참고로 약물로 사용한 것은 알부민이라는 단백질이다.
만약 병무청에서 다시 검사를 받게 되는 경우엔 병무청 화장실에서 남성기에 약물과 피를 직접 주입하기도 했다.

4. 왜 그랬는가

사실 문제의 싹은 예전부터 존재해 왔다. 이미 정민태서용빈같은 스타 플레이어들이 병역비리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었던 적도 있고, 홍원기, 박진만, 박철홍은 부모가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 준 혐의로 구속 수감되거나 불구속 기소된 적도 있었으며, 성영재의 경우 의병제대를 위해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 구속되는 등 이미 숱한 문제점이 발생했었음에도 불구, KBO는 이를 선수 개인의 문제로 치부했을 뿐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선수들이 야구와 군대 문제를 병행해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이 상무밖에 없었다는 점.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이 2005년 말 창단되어 군 팀이 하나 더 늘었다.
  •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나 2002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메달을 따긴 했지만, 2003년에 어떤 분삿포로에서 2004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을 말아 드셨고, 앞으로도 한국이 올림픽 같은데서 메달 딸 수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군대 문제가 시급한 젊은 선수들이 국대로 뽑힌다는 보장도 없었다는 점.
  • 사건에 연루된 대부분 선수들이 1970대 후반 출생인데, 바로 이전 세대인 1970년대 초반생까지는 방위나 면제 판정이 굉장히 쉽게 나왔기 때문에[3] 이후 세대들의 군 문제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했다는 점.
  • 프로야구 초창기 때 선수 수급을 쉽게 하기 위해서 프로야구 선수의 경우 방위병으로 복무하고 방위병 근무가 끝나는 저녁 6시 이후 홈 경기에 한해 출장할 수 있게끔 하는 제도가 있었는데[4], 이 제도가 1996년 이후로 폐지됨으로써 병역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군 팀이 아닌 이상 닥치고 현역이나 공익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병역비리의 유혹에 쉽게 말려들었다는 점. 방위 폐지 때 출장 정지에 걸렸던 선수가 강상수[5]장승질.
  • 야구계 전반의 인식이 군대 갔다오면 선수의 기량이 크게 쇠퇴한다 였다는 점.
  • 이런 상황임에도 각 구단이나 KBO"군대는 선수 개인의 문제정도"로 인식해 왔다는 점. 군대 전략적으로 잘 보내는게 우수한 프런트와 지도자의 미덕이 된 지금과 달리 병역을 팀차원에서 관리하지 않았다.
  • 마지막으로, 브로커 중 한명이었던 김도윤이 한때 한화 이글스에서 선수로 지냈던 야구 선수 출신이었다는 점.

위와 같은 이유로 젊은 선수들이 끝내 수라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5. 선수

5.1. 선수 명단

(아마추어 및 해외파 포함)
삼성 LG 현대 SK 롯데 KIA 한화 두산 기타
구속 김현수, 정현욱, 오상민, 박정환, 지승민, 현재윤 김광수, 김용우, 이경민, 김광희, 심수창, 양현석 박우호[6], 박장희, 김민우[7] 윤형국, 윤현식, 조진호 김장현, 서정호 유동훈 신민기 이재영 정성기(애틀랜타), 박종섭(한양대), 김형준(영남대)
불구속 윤성환, 이정호, 김형근 손기현, 이동현, 전승남 정성훈, 마일영, 신동민 이진영, 안용휘, 송재익 변인재, 김주찬, 허준혁 이현곤 마정길, 조규수, 한상훈, 고상천, 전경일, 조현수 이재우, 손시헌, 노경은, 채상병, 김재호 원정빈, 이윤호(이상 한양대), 곽동훈(대불대)
소환불응 박용진 채종범[8] 조성환

본격 한국프로야구 멸망할 기세.

대체로 구속 선수들은 "실형 + 군복무", 불구속 선수들은 "기소유예 + 재검"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실형을 받은 선수들의 경우 대부분 6개월이나 10개월 정도에 집행유예였는데, 이는 당시 병역법상 6개월 이상 1년 6개월 미만의 실형을 다이렉트로 받거나 1년 이상의 실형을 받고 집행유예를 받으면 현역이 면제되기 때문에 감방도 가고 군대도 가라는 뜻에서 이 정도 기간이 선고된 것이다. 애초에 검찰은 2년에서 2년 6개월 정도의 징역을 구형했다. 혼자만 병역을 면제받은 경우에는 짧게(6~8개월형) 동료들에게 브로커를 소개해줬으면 좀 더 긴 징역형(10개월 이상)을 선고받았기에 선수들마다 선고받은 징역 정도가 조금씩 다르다.

소환 불응 선수들 중 채종범은 당시 병원에 입원한 상태로 인한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퇴원 후 출두했으나 조성환, 박용진도주 잠적이었다. 현대 박장희 역시 도주로 인한 소환불응 상태였으나, 지인들의 설득으로 소환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였으므로 구속자 명단에 올려졌다고 한다.

이들 20명은 사법처리 대상은 아니지만, 병무청에 의해 재검 처분을 받았다. 그 결과 박명환, 손지환, 최기문, 최만호 4명은 면제 처분을 받았다. 김사율, 김영수, 송재익, 임경완, 정성훈(투수), 허일상은 현역 판정을 받아 현역으로 입대했다. 강혁, 구자운, 박정진, 윤재국, 이경필, 이상열, 이영우, 이호준, 임재철은 4급 판정을 받아 공익근무 복무가 결정되었다.
  • 기타
    • 전종화
      전종화는 LG 코치를 거쳐 2004년 당시 삼성의 배터리코치로 재직 중이었는데, 유망주들에게 병역브로커를 알선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위 명단에서 보듯, 삼성과 LG 선수들이 많았는데, 전종화의 역할이 컸다는 의혹이 있었다. 그러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당시 기사 2006~2008년 LG, 2012년 NC 다이노스, 2013~2015시즌 한화 이글스에서 배터리코치로 코치 생활을 이어간다.
    • 김충
      김충은 당시 나이 61세로 MBC, 삼성, 한화 코치를 거쳐 SK의 2군 감독을 역임 중이던 베테랑 코치였다. 사건이 발생하자 오스트레일리아로 출국해 귀국하지 않는다. 언론에 "S구단 김모 2군 감독"이라고만 발표된 탓에 이름이 비슷한 다른 분들이 오해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당시 기사[9]
      이후의 행보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지난 2008년 향년 64세로 별세.

이렇듯 코치까지 연루되었다는 게 밝혀지면서, 한때 경찰이 구단 차원에서 조직적인 비리가 행해진 게 아닌지 수사하기도 했다.

5.2. 선수 개별 설명

워낙 대형 흑역사였고 당사자들 본인이 단단히 함구하는데다가 다들 묻어두고 싶은 기억인 탓에 정확한 자료가 많지 않다.

또한, 타 구단뿐만 아니라 자신이 응원하는 구단 선수도 대거 연루되었으니 이 내용에 대해 과도하게 실드를 치거나 까는 것도 환영

마지막으로,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만을 적시하기 바람

5.2.1. 구속수감된 경우

5.2.1.1. 조성환
2003년에 타율 3할과 20도루를 기록하며 롯데의 주전 2루수로 자리잡았고, 사건이 벌어진 2004년에는 LG 트윈스의 박만채의 공에 맞아 일찌감치 시즌 아웃을 당한 상황이었다. 조성환은 2001년에 병역비리를 저질렀던 탓에 시효기간인 3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만 버티면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을 면할 수 있다고 판단, 6개월간 도주 잠적한다. 그러나 검찰이 시효 만료를 16일 앞두고(18일이라는 설도 있다) 그동안 모은 증거로 공소를 제기해 시효가 정지되어 도주의 의미가 없게 되자 자수, 결국 징역 6개월을 선고받고[10]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훗날 본인은 변호사의 잘못된 조언 탓이라 회고했는데, 이 때 경찰은 전담반을 구성해 검거에 총력을 다했다.

어쨌든 본인은 이 6개월 동안 생지옥을 맛봤을 것이다.아래 박스 기사 참조

그의 흑역사.
참고로 첫번째 답변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부분은 잘못된 내용이다. 두번째 답변자인 어느 롯팬의 절규에서 시대의 아픔이 느껴진다.

이후 재검을 받고 2년간 공익근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마친 뒤 소속팀 롯데에 복귀, 리그 정상급 2루수로 활약한다.

타팀 팬들은 해당 사건 당시 섬으로 도피했었던 이 일을 비꼬아 '조환', '섬전드'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5.2.1.2. 현재윤
2004년에 팀이 10연패의 수렁에 빠져 있을 때 진갑용지명타자로 밀어내고 포수로 깜짝활약을 보였으나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라운드를 떠나야 했다. 이후 실형을 살고 공익근무요원 복무 뒤 복귀한다.

사실 당대 최고의 스타 이승엽의 룸메이트였던 탓에 자연스레 스포츠 기자들과 접촉할 일이 많았던 선수라, 신인 시절부터 실력에 비해 유명세를 탔고 구단 행사에 참석하여 팬들 앞에서 멋진 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때 춘 춤이 하필이면 그 남자의 춤이었다. 이승엽의 룸메이트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구치소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는데, 이승엽이 일본 지바 롯데에서 뛰던 시절 시즌을 마치고 귀국한 뒤 구치소에 있던 현재윤을 면회 다녀온 얘기가 기사화된 적도 있다.
5.2.1.3. 조진호
역대 2호 한국인 메이저리거로, 국내에 복귀한 지 1년이 좀 지난 상태였는데 이미 기량도 하락세였던데다 조범현 감독과의 불화로 인해 2군에 머무르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구속된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는데, 이는 대한민국 복귀 이후 군 문제 해결을 위해 비교적 늦게 이 사건에 가담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조진호 또래의 선수들은 대체로 시효가 지나 무혐의 처리되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안습.

8개월 실형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된 그는 SK에서 방출당한 상태라 사실상 선수 생명은 끝났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입단 테스트를 받아 2008년 삼성에 입단해 선수 생명을 이어 갔다. 하지만 허리 부상으로 2009년에 방출당하면서 결국 은퇴, 대전고 야구부에서 코치를 하다가 2014년 삼성의 코치로 복귀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의 활약은 미미했지만, 전직 메이저리거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메이저 언론의 가장 큰 관심을 받아야 했다.
5.2.1.4. 지승민
팀 동료 윤성환에게 브로커를 소개해줘 애초에는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으나, 윤성환이 병역기피 시도를 하지 않아 8개월로 감형되었다. 재검 결과 4급을 받았고 징역살이 후 잠시 팀에 복귀하기도 했다. 공익근무 중 소집해제를 얼마 앞두고 교통사고로 어깨수술을 하는 바람에 삼성에서 방출되었다가 신고선수로 재입단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후 나름 성적을 올리기도 했고, 2009년 시즌 중 두산으로 트레이드 된 이후 2010시즌 이후 은퇴.
5.2.1.5. 실형 뒤 바로 복귀한 선수들
박정환, 오상민, 심수창

구속된 선수 중에선 특이한 케이스. 구치소에서 출소한 뒤 받은 재검에서 다른 부상을 인정받아 병역 면제를 받았다. 그러니까 이 짓 안했어도 면제였다. 때문에 출소 뒤 별도의 군 복무 없이 바로 다음 시즌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중 한 사람은 훗날 인생 두번째로 을 달게 되는데, 자세한 내용은 오상민 항목 참조.
5.2.1.6. 그 외
정현욱, 유동훈 등은 평범하게 감방 생활하고 평범하게 군대를 다녀온 케이스에 속한다.

당시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거였던 정성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2003년 미국으로 건너갔던 선수로, 병역 문제로 일시 귀국했다가 병역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이후 현역으로 군 복무를 마치고 애틀랜타로 복귀했다. 마이너리그에서 꾸준한 모습을 보이면서 메이저리그 승격이 기대되었으나 2009년 초 애틀랜타의 단장이 바뀌면서 팀 전력 구상에서 배제되었고 결국 퇴단하기에 이른다. 이후 국내 복귀를 노렸으나 해외파 복귀 유예에 걸렸고 이에 대해 소송을 준비했으나 포기했다. 모교인 효천고와 동의대에서 운동을 하다가 NC 다이노스의 선수 테스트에 응했고 합격했다. 그러나 1군 5경기 등판에 그친 채 2014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한양대 3학년이었던 박종섭은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중퇴한 뒤 지명을 받았던 두산에 입단했지만 이렇다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방출되었고 다시 기아로 옮겼으나 또 방출되었다. 이후 두산 프런트로 합류했다.

영남대 2학년이었던 김형준은 사건 이후 야구를 아예 그만 둔 것으로 보였으나 군 복무를 마치고 2008년 3학년으로 복학하면서 운동을 재개했다. 졸업 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으나[11] 1군에는 올라오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안타까운 것은 무명선수들의 경우. 프로로 성공하기 위해 병역비리까지 저질렀으나 구속 + 군복무 크리로 쓸쓸히 은퇴의 길을 걸었다.

5.2.2. 불구속된 선수

오해방지를 위해 다시 한번 설명하자면, 불구속된 선수들은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거나 1차 진단서까진 끊었는데, 막판에 이걸로 병역기피를 시도하지 않은 경우이다.

선수 개개인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겠으나, 대체로 시도했는데 실패한 경우, 본인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중도 포기한 경우, 면제된 건 맞는데 알고보니 다른 곳이 아파서 그것으로 면제된 경우, 면제를 시도하던 중 사건이 발각된 경우 등이다.

즉, 비리를 저지르긴 했는데 면제를 받지 못한 선수도 있다. 구속된 선수와 죄질은 똑같은데 운좋게 실형을 면한 선수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이때 불구속된 선수 대부분 기소유예가 결정된다. 이 사건에서 기소유예는 "법률상으론 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사항을 참작하여 검사가 패스"한 경우. 일단 기소유예만으론 유죄도 아니고 무죄도 아니다. 유무죄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은 법원뿐이다. 기소유예의 경우 혐의가 인정된다는 것은 법원이 아닌 검사의 판단이다. 자세한 내용은 바로 아래에서 설명.
5.2.2.1. 이진영
가장 논란의 여지가 있는 케이스.

이진영은 기소유예 + 재검처분을 받고, 재검을 통해 공익근무 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그 이후 학업을 이유로 입영을 연기한다. 야구팬이라면 다들 알겠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이 학업을 입영 연기 수단으로 삼는다. 이런 방식은 연예인들도 흔하게 써먹는 방식인데, MC몽 역시 당연히 같은 수법을 썼다. 분명 편법이긴 하지만, 이걸 문제 삼으면 전국의 대학생들 전부가 문제될 수 밖에 없으므로 아직까지는 병역 연기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는 중.

그런데 이 당시 병무청은 "병역비리까지 저질러 놓고 입대 연기는 불가능. 입대 연기를 거부한다" 라는 입장을 취한 탓에 이진영이 행정소송까지 가게 된 것. 바로 아래에서 그 상세한 내용을 설명한다.
이 소송은 이진영 뿐 아니라 그와 함께 병역비리에 연루된 이호준과 함께 제기한 소송이었는데 "우리는 죄 없으니 밝혀달라"는 소송이 아니라 "학업 이유로 입영연기 계속하게 해주세요."라는 취지의 소송이었다.

당시 병무청이 병역 연기를 거부한 까닭은,

1. 이진영은 병역비리로 기소유예 먹었음
2. 실제로 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학업을 이유로 연기할 수 없음

이었다. 원래 행정소송은 형사 사건에 대해 처분의 무효를 선언할 수는 없지만 제대로 한 것인지 판단만 하는 것은 가능하다. 병무청이 기소유예를 연기 거부 사유의 하나로 삼았고 이는 기소유예가 제대로 된 것인지만 심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행정법원에서 기소유예 부분을 판단할 수 있다.

일단 법원은 2번 항목의 학업 부분은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판단했고(이게 인정되지 않는다면 신인 선수는 전부 군대부터 가야 된다!), 1번 항목의 기소유예 부분 역시 무효라고 판단했다. 결국 병무청의 연기 거부는 이유 없는 것으로 되어 이진영이 WIN. 그리고 이호준은 원래 2번만 적용되므로 역시 WIN.

그리고 당시 병역비리 사건으로 인해 사건과 관계 없는 전병두, 이범호 등도 이 사건의 여파로 학업으로 인한 입영 연기가 거부를 먹은 상황이었는데, 비슷한 소송을 제기해서 WIN. 훗날 이 셋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병역 특례를 받는다.

즉, 입영 연기에 대한 행정 소송 중에 기소유예 받은 게 무효로 판정된 것이다. 절대 이진영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죄 인정해달라고 소송한 게 아니다. 이진영의 소송은 형사소송이 아니라 행정소송이다. 그러니까 일부 언론이나 팬들이 "이진영이 억울해서 소송걸었대요."라고 하거나 "이진영은 무죄판결받았다"고 하는 건 잘못된 얘기다.

그렇더라도 기소유예를 무효로 본 건 결국 법원이 이진영이 법적으로 무죄라고 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럼 이 무죄가 이진영이 사회통념상 결백하다는 뜻인지가 문제인데...

결론만 말하자면 모른다.

당시 인터뷰 이진영이 어느 단계에서 유혹을 거부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일이 진행되었던 것 은 거의 사실이다.

그런데 병역법 상으로 일을 중간까지 진행한 것만으론 죄가 되지 않는다. 병무청을 속여 넘겼어야 죄가 된다. 돈을 건넸건 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었건 어쨌든 최종적으로 비리를 안 저질렀다면 결국 무죄가 된다. 2005년 겨울에 대법원에서도 이런 식으로 최종 판결이 나왔다. "브로커에게 돈을 건네고 개인병원에서 진단서를 끊었으나, 이를 통해 병무청에 제출하지 않았다면, 병역법제 86조 위반이 아니다." 대법원2005.10.13. 선고 2005도2200 판결. 간단히 말해 "병무청 속여먹지 않았으면 무죄"라는 이야기. 덧붙여서 이 판결이 이진영, 이호준의 소송에 대한 판결인지는 불분명하다. 애초에 검찰에서 불구속 + 기소유예라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인 것도 법정 가봤자 무죄라는 거 알고 있었기 때문.

결국 이진영은 법적으로는 무죄가 맞다. 단, 이와는 별개적으로 선수 개인의 도덕성과 양심에 대해서는 논란이 되었다. 일단 이진영 본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양심상의 문제로 초반에 일찌감치 병역 면탈을 포기했으며 브로커 명단에 이름만 올랐다는 이유로 사건에 연루된 것일 뿐이라 주장하고 있으니 결국 본인만 아는 문제.

이후 이진영은 공익근무를 미루던 중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 병역특례를 받는다. 당시 병역비리에 연루된 선수가 병역특례를 받는 것에 대해 말이 많았으나, 위에서 설명했듯 이진영은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고 여론도 크게 나쁘지 않아[12][13] 병역 특례를 받게 된다. 그리고 군복무로 인한 공백기 없이 09년에 FA 대ㅋ박ㅋ. 소속구단인 SK의 적극적인 법적 대처가 선수 본인에게 좋은 결과를 낳은 케이스.

덧붙여서 2004년 당시 이진영은 타격왕에 도전 중이었는데, 이 사건에 연루된 탓에 남은 기간 출장 정지를 먹고 타격왕을 클리프 브룸바에게 빼앗기게 된다.
5.2.2.2. 정성훈
이진영, 이호준처럼 다른 불구속 선수들도 대부분 입대 연기 소송을 걸고 인정받는데, 특히 정성훈은 이진영과 완전히 같은 케이스. 정성훈이 이탈하면서 현대는 이로인해 브룸바를 한동안 3루수로 쓰게 된다.

정성훈도 소송으로 입대를 연기했고, 이후 이진영과 똑같은 코스를 밟아 WBC에서 병역특례를 받게 된다.[14] 이후에도 정성훈, 이진영 두 사람의 행보는 2009년에 FA로 대박을 터뜨린 것, 옮긴 팀도 LG였다는 것까지 똑같다.1980년생 동갑내기라는거도 똑같다
5.2.2.3. 이동현
이동현 역시 병무청의 입영 연기 거부에 대한 취소소송을 제기한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법원 판례 덕분에 승소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문의 결과.

이후 바로 공익근무를 시작, 복무 중에 의병소집해제한다.
5.2.2.4. 손시헌
기피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경우였다고 한다. 즉, 법적으로는 무죄지만 사회통념상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경우.

이후 재검으로 공익처분을 받았는데, 사건이 벌어진 이듬해인 2005년부터 리그 정상급 유격수로 거듭났고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대표팀 발탁 이야기도 나올 정도였으나 결국 국대 승선에는 실패. 그리고 두산 팬들은 손시헌의 대표 탈락에 대한 항의로 "why not 손시" 플래카드를 내걸게 된다.
이후 손시헌은 2007년 상무 야구단에 입대, 2009년 군 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해서 주전 유격수 자리를 다시 차지한다. 이후 국대에도 승선해서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획득.
5.2.2.5. 마일영, 조규수, 조현수, 곽동훈
이들은 생돈 4, 5천만원만 날리고 면제를 못 받은 점을 참작하여 불구속했다고 한다. 조규수와 마일영은 공익근무 후 소속팀에 복귀한 반면, 이들과 달리 무명이었던 조현수는 그대로 방출, 은퇴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곽동훈은 공익근무 후 대학 시절 지명한 팀인 삼성에 입단했다.
5.2.2.6. 이현곤
재검 + 공익크리를 밟던 중 갑작스러운 갑상선 질환으로 의병소집해제한다. 이후 2007년 타격왕도 차지하고 2013시즌 신생팀 NC 다이노스로 FA 이적.
5.2.2.7. 한상훈
재검 + 공익처분은 동일한데, 팀 사정상 2008년까지 4년이나 입영을 미루다가 뒤늦게 공익근무를 한다. 이 사건에서 가장 늦게 입영한 선수이다.
5.2.2.8. 윤성환
팀 선배 지승민에게서 브로커를 소개받았고, 병원에서 진단서를 떼기 직전에 사건이 터져 버렸다. 즉, 절묘한 타이밍에 걸린 것. 당시 홀드 공동 1위(17개)를 달리고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시즌 아웃되며 홀드왕은 롯데 자이언츠임경완에게 돌아갔다. 일단 결과적으로 병무청에 진단서를 제출한 것은 아니므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시도 자체를 했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찌 보면 손시헌과 비슷한 케이스. 시즌이 끝나고 공익근무 복무를 시작, 소집 해제 후 팀에 복귀했다.
5.2.2.9. 그 외 선수들
김주찬, 채상병 등은 사건이 터지자 곧바로 재검을 받고 이듬해부터 공익에 가는 평범한 모습을 보인다. 김재호 역시 2005년 시즌종료 직후 상무행.

특히, 삼성 선수들 대부분은 사건 즉시 바로 신검받고 군대로 고고씽했는데, 나중에 삼성구단은 이진영 등 대부분의 불구속 선수들이 소송을 통해 입대를 연기하는 걸 보고 뒤늦게 땅을 치며 후회했다.질투

구속된 무명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불구속되었던 무명선수들도 군복무 후 소속팀에 복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5.2.3. 공소권없음 처분한 선수들

공소시효가 지나 검찰이 공소권없음 처분한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 개개인이 어느 정도의 비리를 저질렀는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선수는 성기에 약을 넣는 단계까지 갔을 것이고, 어떤 선수는 브로커 명단에 이름만 올랐을 수도 있고... 뭐가 됐든 명확히 밝혀진 내용은 없다.

즉, 이 중에는 불구속 된 선수보다 죄질이 나쁜 선수도 있을 수 있다.

어쨌거나 이들 모두 병무청에 의해 신체검사를 다시 받는 신세가 되는데, 대체로 나이들이 많아서 서른 넘어 군대를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5.2.3.1. 이영우
가장 안습한 케이스. 사건에 연루된 선수 중 가장 성적이 좋았던 선수로, FA 대박을 코 앞에 두었던 터라...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과 다르다. 이전에 군 면제를 받는 과정에서 병역비리를 저질렀음이 밝혀져 무혐의 처리 + 재검 크리.

그리고 재검에서 공익 판정을 받는다.

결국 만 32세의 나이로 공익근무를 하게 되고, 2007시즌에 복귀했지만 이 때 이영우의 나이는 만 34세. 적지 않은 나이에 긴 공백기까지 더해졌으니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후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2할대 중후반대의 타격으로 그럭저럭 버티다가 어깨가 망가져 좌익수 수비 능력을 상실하면서 결국 2010년 은퇴.

아래 선수들을 보면 알겠지만, 그래도 이영우는 소집해제 뒤 나름대로 활약상을 보여준 편에 속한다.

어쨌든 죄질이 어느 정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약 단순히 브로커 명단에 오른 정도였다면 불쌍하다.
5.2.3.2. 강혁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획득한 상태였다. 그러나 사건에 연루되어 병역특례를 박탈당했다. 공익 근무 뒤 복귀했으나 별다른 실적을 내지 못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
5.2.3.3. 이경필, 윤재국
공익근무 뒤 복귀, 별다른 활약 없이 은퇴 코스를 밟았다.

이영우, 강혁, 이경필, 윤재국 모두 1970년대 초반생으로 30이 넘은 나이에 공백기를 가진 탓에 부활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윤재국서승화 때문에 큰 부상까지 입은 터라 더더욱 회복이 힘들었고, 이경필도 부상을 안고 있었다.
5.2.3.4. 최기문
최기문도 70년대 초반생이기 때문에 공익 판정을 받았다면 위 선수들과 같은 버스를 탈 뻔 했다. 그러나 재검만 3차례 받은 끝에 간이 안 좋은 것으로 판명, 병역을 면제 받는다.

후배들에게 병역 브로커를 소개한 혐의가 있었으나, 그 정도가 경미한 것으로 밝혀져 사회봉사 200시간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5.2.3.5. 임경완
재검 뒤 공익도 아니고 현역 판정. 그리고 전경으로 부산진경찰서에서 복무했다. 1975년생으로 사건 당시 나이가 만 29세였다. 여담이지만, 방위 제도의 소멸과 공익근무 제도의 신설 사이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1975년생이다. 1974년생까지는 방위[15], 1976년생부터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소집되는 징병검사 4급이 1975년생의 경우는 현역 입영 대상이다. 다만, 임경완이 정말로 4급 판정을 받았는데도 현역으로 복무했는지, 아니면 3급 이상의 판정을 받았는지 확실하지 않다.

그리고 이 악조건을 극복하고 제대 뒤 복귀해 롯데의 핵심 불펜으로 활약했고, 2011시즌 이후 FA를 맞아 3년 11억이라는 조건에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5.2.3.6. 임재철
76년생으로 위에서 언급된 선수들 바로 다음 세대였다. 무난하게 공익 근무 뒤 무난하게 복귀, 무난한 활약을 보이고 있다. 나이와 공익근무라는 점을 감안하면 위 선수들과는 달리 선수생활에 아주 큰 타격은 입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5.2.3.7. 이호준
임재철과 동일한 76년생으로[16], 재검 뒤 공익근무 판정을 받았다.
이진영 부분에서 언급됐지만, 입영 연기소송이 받아들여져서 05년에도 정상적으로 출장했다. 그러나 WBC에 대표로 뽑힐 가능성이 없다고 본 건지 결국 늦기 전에 06년 공익행. 하지만 무릎과 장딴지의 신경마비 증세로 1년 만에 의병소집해제하며 07년 1월에 팀에 복귀하였고, 그 해 팀의 첫 우승에 기여한 공로로 34억짜리 FA 대박까지 터뜨렸다. 다만 이후 그 통증이 계속 발목을 잡으면서 제대로 먹튀로 전락. 하지만 2012시즌 부활했고, 신생팀 NC 다이노스로 두 번째 FA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덧붙여서, 이호준은 본인의 병역비리 외에도 팀내 다른 선수들에게 브로커를 알선해준 혐의로 병역법위반방조죄로 처벌받았다.[17]. 두번이나 병역비리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법정에서는 전과가 없다는 이유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호적에 빨간 줄을 그었지만 감방살이는 면하게 되었다. 사실 이호준은 본인의 병역비리가 발각된 전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운좋게 처벌받지 않았을 뿐이다. 같은 브로커 소개 혐의를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굉장히 가벼운 처벌을 받은 최기문을 보면, 이호준의 활약상이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5.2.3.8. 박명환
일단 본인은 재검에서 갑상선 질환으로 병역이 완전히 면제된다. 사건 이전의 면제 사유가 비리를 통한 신장이상이었는지, 원래부터 갑상선 질환이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한 사항을 알고 계시는 분은 추가바람. 전자라면 죄를 저지르고도 운좋게 시간이 흐른 탓에 감방행도 면하고 군대도 안 간 셈이니...

그런데 박명환도 최기문, 이호준처럼 다른 선수(이재영)에게 브로커를 소개해 줘서 병역법 위반 방조죄 크리. 여기 참조 이후 법원에서 어떤 판결을 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 사건으로 인한 선수생활 공백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처벌 정도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5.2.3.9. 김사율
재검 뒤 강원도 화천 포병부대에서 현역으로 복무했다.
5.2.3.10. 그 외 선수들
김영수, 정성훈(투수)은 재검 후 현역으로 복무했다. 허일상은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운 좋게 상무에 입대해 보다 편하게 군 복무를 마쳤다. 김재호상무에 잘 다녀왔다. 송재익도 현역으로 입대했으나, 2006년에 제대하자마자 SK 와이번스에서 재계약 포기 통보를 받아 방출당하며 결국 쓸쓸히 은퇴했다.[18]

전승남은 군대가 확정되자, 복무를 마친 이후의 상황에 두려움을 느껴 공익근무요원 입대를 앞두고 LG 구단에 방출을 요구해 아예 팀을 떠났다. 소집해제 후 미국 진출을 위해 재도전했지만, 결국 실패하며 은퇴했다.

신철인도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다른 선수들보다 늦은 2006년 말에야 입대했다. 그러나 몸상태가 안 좋아 훈련소에서 귀가조치를 받았고, 2007년 결국 병역이 면제되었다.

구자운, 박정진, 이상열은 재검 후 공익근무로 병역을 마치고 소속 팀에 복귀했다.

손지환, 최만호는 재검으로 면제 판정을 받아, 그대로 소속 팀에 복귀했다.

6. 반전(?)

위의 아주 길고 긴 명단에서 볼 수 있듯,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선수들이 연루된 대형사건이었다. 또한, 몇몇 선수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 선배가 후배에게 브로커를 소개시켜주고, 심지어는 코치가 브로커를 소개해주는 프로야구판 전체의 도덕성이 어느 수준인지 보여주는, 그야말로 막장 of 막장이었다.

역사의 흔적

하지만 당시 모든 언론들이 프로야구 멸망급의 대사건이라는 식으로 언급하였으나 한 달도 못 돼 사회면에서 관련기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일반인들의 아웃 오브 안중이 된다. 그리고 10월이 되고 포스트 시즌이 시작되자, 언제 이런 일이 있었냐는 듯 한국시리즈 경기에 암표가 나도는 등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었다.당시 기사

결국 처음 예상보다는 사건이 좋게 좋게 끝난 셈인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 훗날에는 각 팀의 주전선수 내지 스타플레이어로 성장하지만, 당시에는 사법처리된 선수들 대부분이 듣보잡들이었다. 해당팀 팬들이나 이름을 알 정도였을 뿐, 일반인들은 누가 누군지도 몰랐던 상태. 시간이 지나자 관심이 적어질 수 밖에 없었다.
  • 그나마 이름을 알법한 선수들은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없음 처분된 탓에 언론에 노출이 되지 않았다. 시즌 종료 후 하나둘씩 재검받고 군대 끌려가는 것을 보고 "아 쟤도 비리였구나"라는 식으로 알려졌을 뿐.
  • 사건이 발생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초대형 실드가 등장했다. 송승헌, 장혁, 한재석 등 유명 배우들의 병역비리가 발각되면서 어그로가 한 방에ㅋ 좀 안습인 건 송승헌 등도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없음 처분된 상태였다는 점. 법적으론 무죄였지만 여론은 그렇지 않아! 덧붙여, 송승헌은 드라마 《슬픈연가》 촬영 문제로 입영 연기를 신청했지만 여론에 밀려 바로 군대에 끌려갔다. 이진영 케이스에서 설명했듯이 입영 연기해도 법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었다! 송승헌의 대타로는 남성의 주적이 나섰는데, 결국 드라마는 평균시청률 15%라는 기대 이하의 성적으로 종영되었다.

6.1. 각 구단별 상황

각 구단이나 각팀 팬들은 우리 팀이 제일 망했어요라며 징징거렸지만, 보다시피 8개 구단 모두 연루된 사건이었다.
  • 그래도 굳이 꼽자면 2004년 당시에 불펜진이 대거 이탈한 삼성 라이온즈제일 타격이 컸다고 볼 수 있다. 윤성환, 정현욱, 오상민, 지승민 등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렸으니... 덕분에 사실상의 루키시즌을 보내던 권오준권혁에 대한 과부하가 발생하고, 결국 반 게임차로 현대 유니콘스에게 1위를 내준다. 한국시리즈에서도 주전들의 이탈로 당시로는 신인 내지 유망주였던 조동찬,안지만,박석민 등을 땡겨썼고 부상으로 출장이 불투명한 박종호가 출전을 강행할 정도였다. 끝내 9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보여줬으나 우승에 실패한다. 사실 삼성은 사건이 터지자마자 연루된 선수 모두 죄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군대나 감방을 보내버렸기 때문에 전력 공백이 즉각적으로 나타난 편이었다. 그러나, 그 후에 그 전력들이 한꺼번에 복귀하면서 지옥의 불펜야구는 계속된다.
  • 두산 베어스 역시 타격이 큰 편이었다. 이 때문인지 이듬해 오프시즌 내내 언론에서 두징징이 흘러나왔는데, 이를 어여삐 여긴 두산 구단주이자 당시 크보 총재께서... 자세한 내용은 바로 아랫부분에서 서술.
  • LG 트윈스는 숫자상으로 타격이 큰 편이었으나 실질적인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선수는 유망주였던 심수창과 병풍 당시 이미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간 이동현 정도라서 다른 팀과 달리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4위 싸움을 하던 KIA와 SK가 병풍으로 각각 주전 마무리(유동훈)와 주전 외야수(이진영, 채종범) 등을 잃은 상황이라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을 정도. 하지만 박용택, 알 마틴, 박경수[19] 등 1군 멤버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부상으로 모조리 이탈하여 4위 경쟁에서 탈락, 6위로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 롯데 자이언츠 또한 제일 크게 타격을 입은 팀 중 하나. 삼성의 피해가 불펜 쪽에 집중되었다면 롯데는 내야(조성환), 외야(김주찬), 포수(최기문), 선발(김장현[20]), 불펜(임경완) 모든 포지션에서 아주 골고루 나가리가 되었다. 하지만 비밀번호 찍기 바쁜 시절이라 선수 몇 명 빠진다고 별 티가 안 났다. 그런데 오히려 이대호손민한의 분전으로 이듬해인 2005년에 5위를 기록하며 꼴데를 벗어난다...어? 한편 주전 포수인 최기문이 재검+부상 등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신인 포수인 강민호가 선발출장하며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 한화 이글스는 비리를 저지르건 말건 기자들이 관심이 없었다. 브로커가 한화 출신이었고 김충 전 코치가 연루되었기 때문에 구단 분위기는 최악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팀이다.
    사건에 연루되어 공익 판정받은 한상훈을 4년이나 잔류시키며 대인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더니, 급기야는 2010년에 입영연기제도에 대해 선수와 구단 아무도 신경쓰지 않은 탓에 송광민이 시즌 중에 훈련소로 끌려가기도 한다. 그런데 현역 생활을 할 수 없는 부상이 발견되어(왼쪽 발목인대 손상) 훈련소에서 조기 퇴소해 재검 후 2011년 3월에 충남교육청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2013년 6월 19일에야 소집해제되어 바로 1군에 합류.
  • SK 와이번스는 야구판에 들어온지 얼마 안 된 탓인지 매우 기민한 반응을 보여줬다. 사건에 연루된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매의 눈으로 타이밍을 엿보다가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을 거라는 점을 확신하고 행정소송을 제기, 주전 선수들을 일단 잔류[21]시키는 데 성공한다. 단, 그 이면에는 무명 선수들에겐 그런 거 없고 방출이라는 흑역사가 존재한다.[22]
  • KIA 타이거즈는 가장 큰 공백이었던 이현곤이 빠르게 복귀했으며, 그 전까지 김종국손지환(연루되었으나 면제 판정 받아 일찌감치 돌아왔다)이 돌아가며 땜빵을 맡아야 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야수진에서는 피해가 거의 없었다.
    문제는 투수진에서 터졌는데, 2004시즌에 120이닝을 던지고 평균자책점 2.98을 기록하며 불펜에서 고군분투한 유동훈이 구속당하면서 불펜진이 붕괴되었다.[23] 참고로 에이스 김진우의 2005시즌 성적이 6승 10패 평균자책점 3.91이었는데, 저 6승이 전부 완투승이었다.
    그래도 종합적으로 봤을 때 가장 전력 누수가 적었던 팀. 애초에 연루된 인원이 딱 2명이다. 이들은 딱히 연루될 인연이 있던 것도 아니라서.
  • 현대 유니콘스도 피해가 적었다. 연루된 인원은 평균에 가까웠으나 그 중 주전급은 2명(정성훈,마일영)뿐이었다. 다만 정성훈이 맡았던 3루수 자리는 꽤 타격이 있었는데, 정성훈이 전력에서 빠진 시즌 말에 3루수는 클리프 브룸바가 맡았고 한국시리즈에서도 브룸바가 3루수를 맡았다. 그나마 마이너에서 3루수로 뛴 경험이 있어 크게 공백은 못느꼈다.
  • 불구속이라는 이유만으로 연루된 선수들을 그대로 기용한 구단도 있었다. 무개념의 흔적들

7. KBO의 뒷처리

KBO는 사법처리된 선수 51명에 대해 남은 기간 출장정지를 내리고,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다. 그리고...

이듬해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냅다 출장정지를 풀어버린다. 당연히 여론의 비난을 받았지만, 여론? 크보가 언제 그딴 거 신경썼나? 이렇게 무리하게 징계를 풀었던 까닭은 각 구단이 "선수가 없어서 경기를 못해요 ㅠㅠ" 라며 하도 징징거린 탓에 울며 겨자먹기로 징계를 풀 수밖에 없었기 때문.

사실 출장정지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는데, 사법처리된 51명만 적용 대상이었다는 점.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공소권없음 처분된 19명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경기에 출장했다.

이 일로 경기할 선수들이 부족했던지 시즌 경기수를 133경기에서 126경기로 줄였으며, 2009년에서야 원상복귀했다. 또, 선수가 부족하다며 외국인 선수를 3명으로 늘리려는 계획까지 추진했다. 당연히 여론과 선수협의 반발로 무산. 이는 2014년에 NC 다이노스kt wiz의 창단으로 선수 수급에 어려움이 생길 것을 우려해 외국인 선수 쿼터가 3명으로 확대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그리고 당시 총재 박용오는 선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공익근무요원도 경기 출장하게 해달라"고 말했다가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임의 탈퇴 기간을 60일에서 1년으로 연장했다. 이는 삼성이 오상민이나 현재윤을 FA 보상선수에서 빼두고 싶어 구치소까지 찾아가 동의서에 사인을 받는 편법을 저질렀기 때문. 즉, 기간을 확 늘려버리면 함부로 사용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더 신나게 악용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현재는 사실상 방출이지만 연봉은 주기 싫을 때, 혹은 쫓아냈지만 다른 팀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것을 막아 반강제 은퇴시켜버릴 때 사용하는 제도로 악용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재발 방지 차원에서 야구 조약에 앞으로 병역비리 저지르면 무조건 제명이라는 규약을 삽입하였다. 그야말로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어쨌든 이걸로 크보가 "규약에 없으니까 봐주세요ㅜㅜ" 라는 개드립은 칠 수가 없게 되었다.

8. 후폭풍

  • 그 남자의 사건이 있었던 2년 만에 이런 대형사고가 터지자 대한민국 국회에서 병역법을 열심히 보완했으며 2004년 12월부터 2010년까지 무려 22번이나 손을 봤다.
  • 야구계에서는 더 이상 병역이 선수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덕분에 그 때까지 지지부진하였던 경찰 야구단이 이 사건 덕분에 2005년 말 창단되었다. 경찰 야구단최진행최형우, 김태완 등을 창단 멤버로 받아들였고 이들은 경찰청에서 복무를 마친 후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경찰청 홍보자료에 따르면 1999년에도 창단 검토가 있었으나 예산과 타 종목 형평성 등의 문제로 없던 일로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때부터 KBO는 공인구를 바꾸거나 리그 일정을 조정하는 등 국제 대회를 열심히 대비한다. 그리고 그 결과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박이 터지면서...[24]
  • 현재 각 구단은 이 사건의 교훈으로 신인 선수들의 병역 문제를 구단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성장이 지체된 모습을 보이는 유망주들은 병역을 먼저 해결하도록 지원해 주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몇몇 선수들이 상무나 경찰청을 다녀와서 한 단계 성숙한 모습으로 팀의 에이스가 되거나 없어서는 안 되는 경우가 보인 이후로는 신생 팀의 전력보강 선수 지명이나 2차 드래프트 관련 보호선수 명단 사항도 있어서 군대 가는 것을 권장하기도 한다. 육군이 1년 9개월로 단축된 이후에는 현역 입대도 증가하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가 양의지, 박희수, 박정권, 손승락, 민병헌, 우규민, 모창민, 최형우, 최진행같은 경우이다. 물론 안 그런 구단도 있지만. 그리고 군 팀 입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던 구단의 말을 안 들었다가 결국 몸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폭망한 어떤 선수의 사례까지 있어서, 군 팀들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선수들의 인식도 변했다. 더 이상 군대가 프로 선수의 무덤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특히 사건에 연루되어 공백기를 가졌던 선배들이 멋지게 부활하여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 대표적으로 손시헌, 조성환
  • 팬들 또한 변했다. 유망주가 기대한 만큼 터지지 않으면 예전과 달리 오히려 먼저 병역을 해결하는 게 좋겠다며 걱정해주기도 한다. 이를 잘 활용하는 팀이 화수분 야구로 유명한 두산 베어스. 여기는 일단 장기적으로 키울 자원이다 싶으면 무조건 병역부터 해결시킨다. 그 결과, 20대 군필 자원들이 매년 구단으로 돌아오며 기대에 부응하는 이들도 꽤 많다. 이 대표적인 예시로 양의지, 민병헌, 유희관, 허경민, 박건우 등이 있고 최근 들어 돌아온 유망주들은 이현호, 박세혁, 김인태, 이우성, 류지혁 등. 물론 몇몇 예외들은 존재한다.[25]
  •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2010년 들어 어느 정도 잊힌 사건이 되었다. WBC 이후 유입된 야구팬들은 이 사건에 대해 잘 모르고, 올드 팬들은 응원팀 선수가 대거 연루된 이 사건에 대해 언급 자체를 꺼린다. 가끔 롯까들이 네이버 댓글로 조성환의 흑역사를 들먹일 때만 빼고. 야구 팬들은 이 사건 이후 다시는 야구계에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했으나 2012년에는 이에 못지않은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흑역사를 갱신한데 이어, 2017년에는 최규순 게이트가 터졌다.
  • 2008년을 끝으로 야구가 올림픽 공식 종목에서 제외되었는데, 올림픽에서 야구가 복귀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데다가 아시안게임에서도 야구의 정식종목 존속여부가 불안정해짐에 따라[26] 군팀 입대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찰 야구단이 2016년부터 기존 만 30세였던 지원 상한 연령을 만 27세로 낮추기로 함에 따라 문이 더욱 좁아지게 되었다. 경찰 야구단은 2015년 이후 의경 제도의 존폐 문제와 관련해 경찰 측에서 의경 제도는 계속 유지된다고 밝혀 한시름 놓기는 했지만 결국 2018년에 선수 선발을 중단했다. 2023년까지 의무경찰이 단계적으로 인원 축소 후 폐지됨에 따라 자연히 해체될 예정이었지만 그 시기가 크게 앞당겨졌다.

[1] 다만 2004년에는 실제 관중 수는 238만 명으로 K리그(240만명)와 의외로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당시 K리그가 대구, 인천 등의 신생 시민구단이 창단된 것을 감안해야 한다.[2] 대략 프로야구 초기인 1983년 시즌과 비슷한 셈이다.[3] 1990년대 초반 병역 인력의 적체 현상이 심했던 탓에 신검에서 현역 1급 받고도 방위병으로 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4] 이종범, 이대진, 염종석 등이 마지막으로 이 혜택을 받았다.[5] 출장 정지라기보다는 선발로 나섰다가 갑자기 중간에 조기 강판당했다. 이유는 소속 부대의 부대장 지시.[6] 배우 박시후의 동생이다.[7] 김민우는 한양대 시절 저지른게 들통났다.[8] 당시 어깨 골절로 입원 중이었음.[9] 김충 감독도 아닐 수 있으니 정확히 아시는 분이 있다면 수정바람[10] 자세한 선고 내용은 불명.[11] 고교 졸업 때 지명을 받았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지명권이 풀린 상태였다.[12] 일본과의 예선 경기에서 엄청난 다이빙 캐치 등으로 '국민 우익수'라는 별명도 얻었다.[13] 그리고 이미 시드니 올림픽 당시 박진만의 선례가 있었다.[14] 이것도 1라운드에서 부상당해 중도 귀국한 김동주의 대체 선수로 뽑혀간 경우라 운빨이 좀 따랐다.[15] 방위 제도 소멸 후 장기 대기로 입대하지 못한 방위 소집 대상자는 추후 18개월 공익근무로 대체되었다. 재검을 받은 경우는 1976년생 이후와 복무기간이 동일.[16] 사실 빠른생일로 학번은 75년생과 같은 94학번이다.[17] 참고로 이건 유죄건 무죄건 군대 끌려가는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18] 그 전에는 제대를 앞두고 부친상을 당했다.[19] 2004 시즌 당시에는 상위타선에서 쏠쏠하게 활약하였다.[20] 이 당시 김장현은 롯데에서 상당히 밀어주던 선발 유망주였지만 복무 후 2009년에 웨이버 공시된다. 그가 구속된 후 대타로 나선 투수가 이명우.[21] 단 이호준은 죄질이 강하여 빨간줄이 그였다.[22] 그 외에 병역 브로커를 소개의 핵심인물인 이호준과 당시 소개를 받은 SK 선수들과의 사이가 약간 틀어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23] 이 때문에 몇몇 기아팬들은 저때 유동훈이 깜빵가서 쉬는 바람에 혹사도가 덜해 09년 우승이 가능했다는 말을 종종 하고는 한다. 물론 그의 몫은 신용운과 한기주가 다 뒤집어썼다.[24] 다만 1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WBC 병역 특례는 사라졌다.[25] 물론 이런 선수들은 데뷔시즌 때부터 어느 정도 이상 해 주며 주전이든 백업이든 1군에 붙어있던 선수들로, 오재원의 경우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 특례를 받았다. 2014 시즌 이후 이용찬이원석은 상무로 입대, 홍상삼은 경찰청으로 입대, 정수빈 역시 같은 시기 입대 예정이었으나 구단의 만류로 유예되어 2016 시즌 이후 입대 했다.[26] 일단 올림픽 정식종목이면 자동적으로 아시안게임 정식종목에 포함되기 때문에 야구의 올림픽 제외에 따라 아시안게임에서도 매 대회마다 야구가 정식종목에 추가되는지 불확실해졌다. 아시안게임 개최지의 사정에 따라 야구가 제외될 수도 있는데 인도네시아가 야구 인기국이 아닌지라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서 야구 포함여부에 귀추가 모아졌는데 일단 정식종목에 포함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일본 측에서 2020 도쿄 올림픽에 야구의 정식종목 복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지라 이쪽을 노리는게 안정적일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