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9 17:10:39

박용오

파일:나무위키+넘겨주기.png   관련 문서: 야구 관련 인물(KBO)

파일:external/www.doosan.com/cues_1.png

두산그룹 회장
3대
박용곤
4대
박용오
5대
박용성

{{{#!wiki style="margin:0px;margin-top:-10px;margin-bottom:-10px;padding:0px"<tablebordercolor=#FFF> 파일:5p4rcEr.png <tablealign=center> KBO
역대 총재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1대
서종철
2대
서종철
3대
이웅희
4대
이웅희
5대
이상훈
6대
오명
7대
권영해
8대
김기춘
9대
홍재형
10대
홍재형
11대
정대철박용오대행
12대
박용오
13대
박용오
14대
박용오
15대
신상우
16대
신상우
17대
유영구
18대
유영구이용일대행
19대
구본능
20대
구본능
21대
구본능
22대
정운찬
}}}

파일:external/www.newspost.kr/1257868755.jpg
이름 박용오(朴容旿)
출생 1937년 4월 29일, 경성부
사망 2009년 11월 4일, 서울특별시
본관 밀양 박씨
가족 슬하 2남 (박경원- 1964년생, 박중원- 1968년생)

1. 개요2. 생애3. 가계4. 사건·사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기업인, 스포츠행정가이다.

2. 생애

1937년 4월 29일, 경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연강 박두병두산그룹 회장의 2남으로 태어났다.[1] 이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2]하고 미국으로 유학가서 뉴욕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다.

1965년 두산산업에 입사하였다. 이후 두산산업 전무이사, 동양맥주 전무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1983년 OB 베어스 사장에 임명되었다. 큰 형인 박용곤이 은퇴하자, 1996년부터 2005년까지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하였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KBO 총재를 겸임하기도 했다.[3]

이후 두산산업개발 분리 문제를 두고, 큰형인 박용곤 명예회장을 위시로 한 형제들의 압력으로 동생인 박용성에게 자리를 내주고 물러났으며, 그 과정에서 비자금 문제를 폭로하기도 했다만, 본인 역시 그 혐의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이후 동생인 박용현, 박용만에게 경영권을 완전히 빼앗겼으며 형제들과는 완전히 의절하였다.

이후 남은 두산의 지분을 처분하고 2008년에 성지건설을 인수하여 경영했지만, 차남인 박중원 부회장의 횡령과 실적 부진으로 인해서 그마저도 반쯤 망했고, 2009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향년 72세.

3. 가계

  • 할아버지 박승직(1864 ~ 1950) / 할머니 정정숙
    • 아버지 박두병(1910 ~ 1973)두산회장(1950 ~ 1973) / 어머니 명계춘(1913 ~ 2008)
      • 박용곤(1932 ~ 2019) 두산회장(1973 ~ 1996)
        • 조카 박정원(1962 ~ ) 두산회장(2016 ~ 현재)
        • 조카 박지원(1965 ~ ) 두산중공업 회장
        • 조카 박혜원
      • 누나 박용언(1933 ~ )
      • 박용오(1937 ~ 2009) 두산회장(1996 ~ 2005)/ 아내 최금숙(1937 ~ 2004)
        • 장남 박경원(1964 ~ ) 전 성지건설 부회장
        • 차남 박중원(1968 ~ )[4]
      • 남동생 박용성(1940 ~ ) 두산회장(2005 ~ 2009)
        • 조카 박진원(1968 ~ )
        • 조카 박석원
      • 남동생 박용현(1943 ~ )[5] 두산회장(2009 ~ 2012)
        • 조카 박태원
        • 조카 박형원
        • 조카 박인원
      • 남동생 박용만(1955 ~ )[6] 두산회장(2012 ~ 2016)/ 며느리 강신애
        • 조카 박서원
        • 조카 박재원
      • 남동생 박용욱(1960 ~ )[7] 이생그룹 회장
    • 숙부 박우병(1915 ~ ?)
    • 숙부 박기병(1917 ~ ?)
    • 숙부 박규병(1919 ~ ?)

4. 사건·사고

한편 1998년 9월 비리로 구속된 정대철의 뒤를 이어 KBO 총재대행으로 임명되었다가 11월 사임하였다. 다음 달인 12월 KBO 리그 구단주들에 의해 제12대 KBO 총재로 선출되었고 2005년까지 3선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 당시 방송에 나와 "선수협이 생기면 우린 그날부터 (프로야구) 안 한다."고 극언을 퍼부어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2005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기소되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1] 형은 박용곤, 동생은 박용성, 박용현, 박용만, 박용욱, 박용언이 있다.[2] 52회 졸업생. 동기생으로 고건 전 국무총리, 이종찬 전 국정원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탤런트 신구,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이 있다.[3] 정치권 낙하산 정대철 총재가 구속되면서 OB 베어스 구단주였던 그가 총재대행이 되었다가, 정식 총재로 임명되었다. 구단주들끼리 돌아가면서 총재직을 맡을 계획이었지만, 막상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박용오 총재가 7년이나 집권했다.[4] 증권거래법 위반과 횡령으로 가문에서 제명되었다. 그래서 아버지 박용오가 자살할 때 유서에서 박중원을 가문에 다시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할 정도.[5] 외과의사, 전 서울대학교병원장[6] 큰형인 박용곤과 23살, 바로 윗 형인 박용현과의 나이차도 무려 12살이나 난다!! 서류상 어머니는 명계춘이지만 암암리에 다른 여자에게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알려져 있다.[7] 이쪽도 다른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