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5 08:01:40

구본능

{{{#!wiki style="margin:0px;margin-top:-10px;margin-bottom:-10px;padding:0px"<tablebordercolor=#FFF> 파일:5p4rcEr.png <tablealign=center> K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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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pds.joins.com/201512021143777021_565e5ae179858.jpg
이름구본능(具本綾)
출생1949년 3월 26일 ([age(1949-03-03)]세), 부산광역시
본관능성 구씨 도원수파
학력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가족강영혜(부인)[1], 차경숙(부인),
구광모(장남)[2], 구연서(장녀)
직업기업인

1. 개요
1.1. 사건사고와 논란
2. KBO 총재 활동
2.1. 업적
2.1.1. KBO 리그 브랜드 확대2.1.2. 아마추어 야구에 대한 투자2.1.3. 그 외
2.2. 비판
2.2.1. 도핑 정책 부실2.2.2. 각종 사건 사고 수수방관과 처벌 미흡2.2.3. 그 외 논란거리
2.3. 사퇴? 퇴임!2.4. KBO 총재 퇴임 이후
3. 이야깃거리4. 가계도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스포츠기관단체인이다. 전 KBO 총재이자 희성그룹의 회장이다. 능성 구씨(綾城 具氏) 도원수파(都元帥派)로 잘 알려져 있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차남이다. 형으로 故 구본무, 동생으로 구본준이 있다. 또 LG그룹 회장인 구광모의 친아버지이기도 하다.

1967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학과로 진학한 그는 1976년에 졸업하자마자 럭키금성상사[현]에 입사해 미국 시카고 지사장과 해외관리본부장을 지냈고 1987년에 그룹의 인사개편 때 금성사 이사직으로 올라섰다. 1988년에 희성금속 감사를 맡으며 희성이라는 브랜드에 발을 들인 후, 1990년엔 상농기업[4] 부사장, 1992년엔 희성금속 부회장직에 올랐다.

1996년, LG그룹 소유였던 희성금성, 국제전선, 한국엥겔하드, 상농기업, 진광전기 등 총 8개 계열사를 이끌고 분리 희성그룹을 만들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5][6]

그룹 오너로써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명을 듣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룹 총수로써는 대외적인 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 KBO 총재가 되기 전까지는 언론사에 찍힌 모습이 거의 없을 정도.

1.1. 사건사고와 논란

  • 2014년 10월에 딸 구연서가 서울아카데미국제학교로 전학하면서 해외 영주권이 없음에도 영주권 소유자 입학 자격인 내국인 전형으로 들어갔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신청되었으나 구본능 측은 싱가포르에서 싱가포르 경제에 공헌한 공로로 영주권을 취득했고 1년 후에 학교 측에다 영주권을 제출했다고 밝히며 증인신청이 철회되었다.
  • 2014년 12월 24일에 장남인 구광모에게 LG 지분 190만주(1.10%)를 증여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7]

2. KBO 총재 활동

파일:/listimglink/6/2013040518083130570_1.jpg
한국야구위원회와 10개 구단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 다가올 프로야구 천만 관객 시대를 내다보며 준비할 것이다. 야구시장을 확대해 대한민국을 아시아 야구의 리더로 도약하게 할 것이다.
ㅡ 2014년 12월 31일, KBO 신년사.

2009년 전임 유영구 총재가 비리혐의로 사의를 표명하자[8] KBO측에서는 전문 경영인을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야구를 좋아하는 구본능을 20대 KBO 총재로 추대했다. 이때 LG그룹 구씨 형제 중 한 쪽은 KBO 총재이고 한 쪽은 그 리그의 구단주였는데 아무래도 모양새가 좀 그렇다보니 동생 구본준 LG 트윈스 구단주가 사임했다.[9]

KBO 총재 취임 후 평가는 상당히 좋았다. 야빠가 야구계를 이끌어 나갈 때 어떤 시너지가 나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부를 정도. 그러나 취임 이후 각종 조작, 비리, 매수, 약물복용, 사건 사고가 터져도 남일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게 문제. 결국 2017년에 이러한 문제점들이 급속도로 터져나오면서 평가가 급격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2.1. 업적

2.1.1. KBO 리그 브랜드 확대

심판 판정 문제와 경기력 저하[10] 문제 등의 리그 내 질적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한국 야구계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확대시킨 총재. 그런 이유로 한국야구위원회 역사에서 손꼽히는 총재로 인정받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한국의 버드 셀릭으로 평하기도 한다.

KBO라는 브랜드를 확장한 것은 물론, 프로야구 9, 10구단 창단문제를 큰 잡음 없이 이끌어내며 프로야구리그 확장에 기여했고, KBO 리그에 참가하는 팀들의 수익을 대폭 늘렸으며[11]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의 관계도 역대 어느 총재 때보다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천 베어스 파크, 이천 LG 챔피언스 파크, 서산 야구장등 각 구단의 2군 구장의 건축, 재건축도 임기 내에 진행되었으며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도 구본능 총재 재임 기간 동안 이루어진 일이다. 그러나 총재가 1군 신구장 건설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 건 아니었다.

2.1.2. 아마추어 야구에 대한 투자

아마추어 야구가 살아나야 한다며 KBO 학원 야구부 창단 지원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2015년 현재 리틀야구 뿐 아니라 초중고 야구부가 역대 최대 규모를 연이어 갱신해 나가도록 만든 총재이기도 하다. 또한 취임 당시 100여개에 불과하던 야구장 개수를 지자체 설득과 지원 등을 통해 300개까지 확대했다.[12]

또한 야구계 발전을 위해 직접 사비를 털기도 했는데 야구 원로들을 초청해 영상으로 기록을 남겼을 때 제작비 1억 원을 사비로 지불했고, 2012년엔 대구광역시에 위치한 희성전자 공장부지에 사비 25억 원을 투자해 사회인 야구장을 건설했다.

2.1.3. 그 외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11월 17일에 열린 한국프로야구위원회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제 21대 총재로 재추대되어 2017년까지 총재직을 유지하게 되었다.## 2017년 12월 31일까지 총재직을 유지한다면 12~14대 故 박용오 총재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긴 재임기간을 가지게 된다.

남은 임기 동안 목표는 MLB.com을 본 딴 KBO.com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지만 일부 구단들의 반대로 결국 무산되고 기존의 홈페이지를 리모델링하는 수준에 그쳤다. 허구연이 한 강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모 구단의 반대가 있었는데 이유가 회원가입 시 얻는 개인정보를 놓칠 수 없기 때문에 반대했다고 한다. 또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처럼 독자적인 브랜드 메이커를 만들어서 각 구단 통합 브랜드를 만들려고 했으나 이 역시 "우리는 따로 파는 게 더 돈 된다."[13]라는 모 구단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허구연이 말한 모 구단과, 통합브랜드 반대한 모 구단은 같은 구단이다. 매번 KBO 정책에 발목 잡는 그 구단을 말하는 거다. 하지만 일부 구단을 제외하고 다수 구단으로 만들어 볼법도 한데 안하는걸 보면 그냥 핑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다른 일에도 워낙 수수방관형 보스다.

2.2. 비판

2.2.1. 도핑 정책 부실

도핑 방지에 대한 대책 미흡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14] 도핑 관련해서 횟수 증가와 전면 표적검사를 도입한다.[15] 2015년 한화 최진행의 경기력 향상을 위한 약물 복용이 적발되었는데도 고작 30경기 출전정지를 받아 KBO가 많은 비난을 받았다. 2016년부터 1차의 경우 정규리그의 50%를 출전정지 시키기로 하였다.

2.2.2. 각종 사건 사고 수수방관과 처벌 미흡

재임 기간 동안 승부조작이 2차례나 일어났으며,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안지만의 도박사이트 연루 파묻, 김상현의 성추문, 오정복의 음주운전, 장성우의 SNS 파문 등 역대 프로야구 총재 재임기간 중 가장 많은 사건 사고가 터졌음에도 재발방지가 미흡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총재 재임기간 동안 과거 총재들처럼 대외적으로 자기주장을 펼치지 않는 점도 비판점 중 하나. 이 때문에 KBO 총재직에서 물러나라는 의견도 팬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게다가 KBO가 유창식 사건을 은폐하려는 등 승부조작 사건을 막으려했던 것이 터지면서 신뢰를 잃었다. 구 총재는 이 상황에서 대책 마련은 안보이고 승부조작에 관련한 사과문만 발표한 후 묵묵부답이다. 2017년 심판 구단 돈거래 사건은 물론, 입찰 비리까지 나왔지만, 늘 그랬듯 전혀 나서지 않고 있다. 각종 사건이 터져도 처벌 강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2.2.3. 그 외 논란거리

2011년 말 SK의 박경완 다년계약 위반이 공개되었는데도 원칙대로 처리하지 않고 SK에게 끌려 다니는 등 유능한가에 대해서 의문이 있다. 프로경기장 신축은 지자체와 구단의 노력으로 이룬 거라 과연 총재의 공이라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른다.

2017년 5월 경의 KBO 미국 시찰이 사실 딸의 졸업식 참여를 위해 구단 사장들을 억지로 동원해 꾸려 진행되었다는 의혹이 엠스플 탐사보도를 통해 제기되었다. 공과 사를 엄격하게 구분한다는 평소 원칙과 정반대라 거센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2.3. 사퇴? 퇴임!

2017년 10월 23일, 충남대학교에서 열린 국회 교육문화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하여 질의응답을 받았으며 이 자리에서 사무총장 양해영과 동반 사퇴할 것을 약속했다. 관련 기사 그러나 원래 본인 임기가 2017년 말까지라서 이것은 사실 말장난이었다.

2.4. KBO 총재 퇴임 이후

2018년 7월에 희성그룹의 분리를 단행했다. 희성그룹은 1996년에 출범했는데 구본무 LG 회장의 동생들인 구본능 회장과 동생인 구본식 부회장이 공동으로 운영하던 상황.

희성전자가 사실상 지주회사격의 역할을 하고 희성금속과 희성정밀이 희성금속과 동등한 서열에 위치하는 구조였었는데, 희성전자의 자회사인 삼보이엔씨가 희성금속, 희정정밀, 희성소재를 지배하는 구조로, 그리고 희성전자가 희성화학, 희성폴리머, 희성촉매, 희성피엠택을 지배하는 구조로 개편되며 분리 수순에 들어갔다.

사실상 2세 승계를 위한 사전작업으로 볼 수 있다. 구본능 회장의 나이도 70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근거도 있다.

이후 2018년 9월 28일에 LG그룹의 지분을 지주사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탈세하여 불구속 기소되며 체면을 다시금 구겼다.

3. 이야깃거리

  • 구본능 총재는 경남중학교 때까지 야구부 출신이다. 아버지 구자경의 반대로 야구를 접었다고 한다. 그래서 야구광이며 야구 인프라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05년에는 사진으로 보는 한국야구사 100년 제작에 사비를 털기도 했고, 2007년에는 장충리틀야구장에 전광판을 사비로 털어 지원하기도 했다.
  • 한국야구위원회에서 주는 월급이 없다. 따로 기업인으로 일한다고 해도... 이 분에게 그까짓 월급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 목소리가 독특하다. 얇은데다 혀까지 짧아서 처음 들으면 뭐지? 할 정도.[16]
  • 2015년 카스포인트 시상식 때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나와 적지 않은 야구팬들이 빵 터지기도 했다.
  • 경남고 야구부 출신 선수들의 신문 기사에서 종종 언급된다. 한현희 심창민
  • 그 역시 투 머치 토커의 마수를 피할 수 없었다.

4. 가계도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범 LG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1996년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2] LG그룹 승계를 위해서 구본능 회장의 형인 2004년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양자로 입적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구광모 참조.[현] LG상사[4] 현 희성전자[5] 근데 그가 이끄는 회사들은 삼성 라이온즈 연고지에 몰려있다.[6] 희성그룹 외에도 LG 계열 업체들은 영남지역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사례가 많다. 애초에 LG가 영남에 연고를 둔 기업이기도 하고... LG전자나 LG디스플레이 공장이 경북 구미시에 있는 것이 그 증거다.[7] 구광모는 형인 구본무의 아들로 입적되어, LG그룹을 승계받을 예정이다. 아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구도라고 봐야할 듯.[8] KBO 쪽에서는 이미 김기춘등 정권 낙하산으로 내려온 이력이 있다보니, 또 MB정부에서 낙하산 총재를 임명할 것을 우려해서 급한대로 비리가 있는 것을 알면서 유영구를 앉혔다. KBO/역대 총재 문서 참조.[9] 따라서 LG 트윈스는 구씨 일가의 사람이 아닌 신용삼 씨가 구단주 대행을 맡고 있다.[10] 리그 질적 저하 문제는 사실 타이중 참사 + 9, 10구단 창단 반대 논리에 의해 과장된 측면이 많다. 덤으로 모 감독이 야인으로 있던 시절 "한국 야구 수준이 떨어졌다, FA선수들 몸값 거품이다"라고 주장하며 이 주장에 불을 지핀 경향도 있는데 정작 이 감독은 KBO리그 복귀 후 이런 말을 일체 하지 않고 있다.[11] 중계권료 50억 시대를 열었다.[12] 각 지자체에서 빈땅에 공원이랑 체육시설을 짓는 일명 전시행정에 축구장이 아닌 야구장이 들어간 효과가 컸다.[13] 통합 브랜드 메이커는 많이 팔든 적게 팔든 비슷하게 분배 받으니까[14] 단 도핑 검사 및 도핑과 관련된 제제 기준은 문화관광부 소관이다. 약쟁이에게 3번의 기회를 주는 것도 문화관광부에서 지정한 것. 그 외 세세한 기준들은 각 협회에서 조정할 수 있다. KBO가 처음 빨다 걸렸을 때, 출전 정지 경기수를 10경기→30경기로 바꾼 것처럼.[15] 2016년부터는 혈액검사도 실시한다.[16] 2014년 KBO 리그 미디어 데이 때 덕담을 건네자 어느 여성들이 빵 터진 소리가 회장 전체에 울리기도 했다. 눈치도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