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덕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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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002561> | KBO 퓨처스리그 남부리그 홈런왕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1991년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rowcolor=#373a3c,#dddddd> 문승훈 해태 / 6개 | 이종옥 롯데 / 6개 | 이민호 외 1명(A) 5개 | 이동수 삼성 / 5개 | 김재덕 해태 / 7개 | |
1996년 | 1997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
<rowcolor=#373a3c,#dddddd> 최희창 외 1명(B) 5개 | 최희창 해태 / 8개 | 김광현 삼성 / 9개 | 김무성 외 2명(C) 8개 | 조효상 외 1명(D) 11개 | |
2001년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
<rowcolor=#373a3c,#dddddd> 김상현 KIA / 13개 | 이재주 KIA / 9개 | 김승관 롯데 / 13개 | 곽용섭 삼성 / 13개 | 김승관 롯데 / 8개 | |
2006년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
<rowcolor=#373a3c,#dddddd> 권희석 KIA / 12개 | 김승관 롯데 / 12개 | 모상기 삼성 / 12개 | 오장훈 롯데 / 14개 | 김강 한화 / 14개 | |
2011년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
<rowcolor=#373a3c,#dddddd> 모상기 삼성 / 21개 | 나성범 NC / 16개 | 안태영 넥센 / 14개 | 박노민 외 1명(E) 11개 | 한동민 상무 / 21개 | |
2016년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
<rowcolor=#373a3c,#dddddd> 한동민 상무 / 22개 | 문상철 상무 / 36개 | 문상철 상무 / 22개 | 양석환 상무 / 13개 | 강민성 kt / 12개 | |
2021년 | 2022년 | 2023년 | 2024년 | 2025년 | |
<rowcolor=#373a3c,#dddddd> 이태훈 삼성 / 12개 | 오장한 NC / 17개 | 김석환 KIA / 18개 | |||
A: 이민호(해태), 김정수(쌍방울) B: 최희창(해태), 이지환(롯데) C: 김무성, 이동욱(롯데), 김승관(삼성) D: 조효상, 이상현(한화) E: 박노민(한화), 조평호(NC) |
{{{#fff [[해태 타이거즈|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49번}}} | ||||
강상진 (1986~1988) | → | 김재덕 (1991~1998) | → | 김자윤 (1999~2000) |
<colbgcolor=#000><colcolor=#fff>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 No.81 | |
김재덕 金在德 | Kim Jae-deok | |
출생 | 1973년 5월 1일 ([age(1973-05-01)]세) |
광주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광주상업고등학교[1] (졸업)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1991년 고졸 연고 구단 자유 계약 (해태) |
소속팀 | 해태 타이거즈 (1991~1998) |
지도자 |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3~2012)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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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해태 타이거즈에서 활동했던 야구 선수 출신 감독. 2013년부터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을 맡고 있다.2. 선수 경력
광주상고 시절 유명한 거포였고 1991년 고졸 우선 지명으로 데뷔하였다.1994 시즌이 돼서야 간간히 1군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는데 주로 2군에 머물었다. 1995 시즌, 2군에서 남부 리그 최다 홈런인 7개를 때려내면서
1996 시즌엔 70경기에 출장하여 1군 멤버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 주며 1996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다. 인상깊은(?) 장면으로 한국시리즈 4차전 9회말 2아웃 상황에 동봉철의 대타로 출전했으나 노히트 노런을 기록 중이던 정명원에게 낙차 큰 포크볼로 삼진 아웃을 당하며 경기가 끝났고 KBO 역사상 최초로 한국시리즈 노히트 노런을 당한 팀이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해태가 우승을 차지하였고 해태 구단 사상 여덟 번째 우승의 멤버가 되었다.
이후에는 별 활약을 하지 못한 데다 해태 구단은 모기업 해태그룹의 부도로 인해 선수단 규모를 축소하면서 1998 시즌이 끝난 후 방출되자 결국 은퇴를 택했다.
3. 지도자 경력
이른 나이에 은퇴를 선언하고 병역을 끝마친 후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오랜 기간 동안 윤여국 감독과 여러 감독 밑에서 모교인 광주동성고 코치를 맡았다. 당시 감독이었던 신동수가 KIA로 떠난 2011년 말부터는 잠시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끌다가 김종모가 감독으로 오자 다시 코치를 맡았다.[2] 김종모가 한화 수석 코치를 맡게 되며 팀을 떠난 후 2013년부터는 감독으로 내부 승격되었다.2018년에는 청룡기 우승을 차지하며 15년 만에 모교를 다시 청룡기 왕좌의 자리에 올려놓았다.[3] 우승 후 인터뷰에서 "솔직히 8강, 4강이 목표였는데 우승을 해서 기분이 매우 좋다. 결승전 이제원, 오승윤이 마운드에서 잘 버텨줘서 너무 고맙다. 2003년 첫 번째 청룡기 우승 때는 모교 코치였는데 그때 생각도 나고 너무 고맙다."는 소감을 밝혔다. 인터뷰
2020년 팀을 청룡기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2021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에 진출했으나 마산고에 패했다.
4. 여담
- 김기훈을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50이닝 이상 등판시키며 혹사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되자마자 관리를 해주며 적절히 등판시켰다. 특히 2학년 시절 압도적인 피칭으로 3학년이 되기 전부터 김기훈이 이미 KIA의 1차 지명으로 확정되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영향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등판간격을 더 관리했다. 그 결과, 201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김기훈이 1차 지명을 받게 되며 김기훈을 부상 없이 무사히 KIA로 보낼 수 있었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