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6 00:02:28

오쿠보 히로모토

오쿠보 히로모토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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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4번 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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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ffffff
<rowcolor=#f49c00>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파일:일본 국기.svg 나가사와 후지오
(永沢富士雄)
파일:일본 국기.svg 이토 켄타로
(伊藤健太郎)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지마 하루야스
(中島治康)
파일:일본 국기.svg 츠츠이 오사무
(筒井修)
파일:일본 국기.svg 마에카와 하치로
(前川八郎)
1936夏 1936夏-1943 1936夏-1948 1936秋 1937秋
<rowcolor=#f49c00>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파일:일본 국기.svg 미즈하라 시게루
(水原茂)
파일:일본 국기.svg 카와카미 테츠하루
(川上哲治)
파일:일본 국기.svg 아오타 노보루
(青田昇)
파일:일본 국기.svg 키구레 리쿠조
(木暮力三)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무라 마사미
(中村政美)
1937秋 1939-1958 1943-1952 1943 1943-1944
<rowcolor=#f49c00>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스다 히로시
(須田博)
파일:일본 국기.svg 콘도 사다오
(近藤貞雄)
파일:일본 국기.svg 카와바타 히로시
(川畑博)
파일:일본 국기.svg 쿠로사와 토시오
(黒沢俊夫)
파일:일본 국기.svg 코마츠바라 히로키
(小松原博喜)
1944 1944 1944 1946 1947
<rowcolor=#f49c00>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파일:일본 국기.svg 히라야마 키쿠지
(平山菊二)
파일:일본 국기.svg 우노 미츠오
(宇野光雄)
파일:일본 국기.svg 미나미무라 후카시
(南村不可止)
파일:일본 국기.svg 테즈카 아키하루
(手塚明治)
파일:미국 국기.svg 미야모토 토시오
(宮本敏雄)
1948 1951-1953 1951-1952 1953-1954 1955-1961
<rowcolor=#f49c00>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파일:일본 국기.svg 히가사 카즈오
(樋笠一夫)
파일:일본 국기.svg 후지오 시게루
(藤尾茂)
파일:일본 국기.svg 카시와에다 분지
(柏枝文治)
파일:일본 국기.svg 요나미네 카나메
(与那嶺要)
파일:일본 국기.svg 나가시마 시게오
(長嶋茂雄)
1955 1955-1961 1955 1958 1958-1974
<rowcolor=#f49c00> 제26대 제27대 제28대 제29대 제30대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자키 카즈히코
(坂崎一彦)
파일:일본 국기.svg 쿠니마츠 아키라
(国松彰)
파일:대만 국기.svg 오 사다하루
(王貞治)
파일:일본 국기.svg 이케자와 요시유키
(池沢義行)
파일:일본 국기.svg 모리 마사아키
(森昌彦)
1959-1962 1960-1968 1962-1980 1963 1964-1965
<rowcolor=#f49c00> 제31대 제32대 제33대 제34대 제35대
파일:일본 국기.svg 아이바 요시히로
(相羽欣厚)
파일:일본 국기.svg 요시다 카츠토요
(吉田勝豊)
파일:일본 국기.svg 타나카 쿠스오
(田中久寿男)
파일:일본 국기.svg 타카쿠라 테루유키
(高倉照幸)
파일:일본 국기.svg 모리나가 카츠야
(森永勝也)
1965 1965 1967 1967 1967
<rowcolor=#f49c00> 제36대 제37대 제38대 제39대 제40대
파일:일본 국기.svg 시바타 이사오
(柴田勲)
파일:일본 국기.svg 스에츠구 토시미츠
(末次利光)
파일:일본 국기.svg 야나기다 마사히로
(柳田真宏)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하리모토 이사오
(張本勲)
파일:일본 국기.svg 아와구치 켄지
(淡口憲治)
1969 1970-1975 1974 1976-1979 1976
<rowcolor=#f49c00> 제41대 제42대 제43대 제44대 제45대
파일:미국 국기.svg 데이비 존슨
(ジョンソン)
파일:미국 국기.svg 존 시핀
(シピン)
파일:일본 국기.svg 야마모토 코지 파일:미국 국기.svg 로이 화이트
(ホワイト)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하타 키요시
(中畑清)
1976 1978-1979 1979-1980 1980-1982 1981-1988
<rowcolor=#f49c00> 제46대 제47대 제48대 제49대 제50대
파일:미국 국기.svg 게리 토마슨
(トマソン)
파일:일본 국기.svg 마츠바라 마코토
(松原誠)
파일:일본 국기.svg 하라 타츠노리
(原辰徳)
파일:미국 국기.svg 레지 스미스
(スミス)
파일:미국 국기.svg 워렌 크로마티
(クロマティ)
1981 1981 1982-1995 1983-1984 1984-1990
<rowcolor=#f49c00> 제51대 제52대 제53대 제54대 제55대
파일:대만 국기.svg 루밍쑤
(呂明賜)
파일:일본 국기.svg 코마다 노리히로
(駒田徳広)
파일:일본 국기.svg 요시무라 사다아키
(吉村禎章)
파일:미국 국기.svg 마이크 브라운
(ブラウン)
파일:미국 국기.svg 필 브래들리
(ブラッドリー)
1988 1988-1992 1990-1998 1990 1991
<rowcolor=#f49c00> 제56대 제57대 제58대 제59대 제60대
파일:미국 국기.svg 로이드 모즈비
(モスビー)
파일:미국 국기.svg 제시 바필드
(バーフィールド)
파일:일본 국기.svg 오카자키 카오루
(岡崎郁)
파일:일본 국기.svg 오쿠보 히로모토
(大久保博元)
파일:일본 국기.svg 오치아이 히로미츠
(落合博満)
1992-1993 1993 1993 1993 1994-1996
<rowcolor=#f49c00> 제61대 제62대 제63대 제64대 제65대
파일:일본 국기.svg 히로사와 카츠미
(広沢克実)
파일:일본 국기.svg 마츠이 히데키
(松井秀喜)
파일:미국 국기.svg 셰인 맥
(マック)
파일:일본 국기.svg 키요하라 카즈히로
(清原和博)
파일:일본 국기.svg 이시이 히로오
(石井浩郎)
1995-1998 1995-2002 1996 1997-2005 1997-1999
<rowcolor=#f49c00> 제66대 제67대 제68대 제69대 제70대
파일:일본 국기.svg 타카하시 요시노부
(高橋由伸)
파일:도미니카 공화국 국기.svg 도밍고 마르티네스
(マルティネス)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로베르토 페타지니
(ペタジーニ)
파일:일본 국기.svg 코쿠보 히로키
(小久保裕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승엽
(李承燁)
1999-2014 1999 2003-2004 2004-2006 2006-2008
<rowcolor=#f49c00> 제71대 제72대 제73대 제74대 제75대
파일:일본 국기.svg 니오카 토모히로
(二岡智宏)
파일:일본 국기.svg 아베 신노스케
(阿部慎之助)
파일:일본 국기.svg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小笠原道大)
파일:일본 국기.svg 알렉스 라미레스
(ラミレス)
파일:일본 국기.svg 초노 히사요시
(長野久義)
2006 2007-2019 2007 2008-2011 2011-2016
<rowcolor=#f49c00> 제76대 제77대 제78대 제79대 제80대
파일:일본 국기.svg 무라타 슈이치
(村田修一)
파일:베네수엘라 국기.svg 호세 로페스
(ロペス)
파일:미국 국기.svg 존 보우커
(ボウカー)
파일:멕시코 국기.svg 레슬리 앤더슨
(アンダーソン)
파일:쿠바 국기.svg 프레데릭 세페다
(セペダ)
2012-2017 2013-2014 2013 2014-2015 2014
<rowcolor=#f49c00> 제81대 제82대 제83대 제84대 제85대
파일:일본 국기.svg 오오타 타이시
(大田泰示)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하야토
(坂本勇人)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이 다이스케
(中井大介)
파일:일본 국기.svg 카메이 요시유키
(亀井善行)
파일:미국 국기.svg 개럿 존스
(ジョーンズ)
2014-2015 2015~ 2015 2015 2016
<rowcolor=#f49c00> 제86대 제87대 제88대 제89대 제90대
파일:멕시코 국기.svg 루이스 크루즈
(クルーズ)
파일:미국 국기.svg 케이시 맥기
(マギー)
파일:아이티 국기.svg 알렉스 게레로
(ゲレーロ)
파일:일본 국기.svg 오카모토 카즈마
(岡本和真)
파일:일본 국기.svg 마루 요시히로
(丸佳浩)
2016 2017-2018 2018 2018~ 2020
<rowcolor=#f49c00> 제91대
파일:일본 국기.svg 나카타 쇼
(中田翔)
2022
1) 연도는 해당 선수가 4번 타자로 1경기 이상 출장한 해.
2) 볼드체일본야구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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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요미우리 자이언츠 엠블럼(1992~2005).svg
NPB 일본시리즈
우승반지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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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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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 현재
1대
타오 야스시
파일:일본 국기.svg
(2005)
2대
노무라 카츠야
파일:일본 국기.svg
(2006~2009)
3대
마티 브라운
파일:미국 국기.svg
(2010)
4대
호시노 센이치[1]
파일:일본 국기.svg
(2011~2014)
5대
오쿠보 히로모토
파일:일본 국기.svg
(2015)
6대
나시다 마사타카
파일:일본 국기.svg
(2016~2018)[A]
7대
히라이시 요스케
파일:일본 국기.svg
(2018~2019)[A]
8대
미키 하지메
파일:일본 국기.svg
(2020)
9대
이시이 카즈히사
파일:일본 국기.svg
(2021~2023)
10대
이마에 토시아키
파일:일본 국기.svg
(2024~)

[1] 2014년 5월 26일~7월 25일까지 건강문제로 휴양. 휴양기간 중엔 사토 요시노리(5월 26일~7월 1일)/오쿠보 히로모토(7월 2일~24일)가 각각 감독대행을 역임.[A] 2018년 시즌 도중인 6월 17일 성적부진으로 사퇴. 잔여시즌은 히라이시 요스케가 감독대행을 역임했으며 시즌 종료 후 정식 감독 취임.[A]
}}}}}}}}}}}}}}} ||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45번
테리 위트필드
(1981~1983)
오쿠보 히로모토
(1985~1992.5.11)
호세 톨렌티
(1993)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22번
나카오 타카요시
(1989~1992.5.11)
오쿠보 히로모토
(1992.5.11~1995)
스기야마 나오키
(1996~2000)
{{{#fff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등번호 96번}}}
미야모토 에이지
(1995~2006)
오쿠보 히로모토
(2008)
결번
결번 오쿠보 히로모토
(2010)
나카노 타츠야
(2012~2016)
{{{#ffffff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등번호 95번}}}
결번 오쿠보 히로모토
(2012~2015)
야오이타 타쿠마루
(2017)
요미우리 자이언츠 등번호 88번
김기태
(2022)
오쿠보 히로모토
(2023~)
결번
}}} ||
파일:/image/001/2015/02/28/PYH2015022800330064000_P2_99_20150228102204.jpg
오쿠보 히로모토
大久保博元 | Hiromoto Okubo
생년월일 1967년 2월 1일 ([age(1967-02-01)]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이바라키현 히가시이바라키 군 오아라이 정
학력 이바라키현립 미토 상업 고등학교
포지션 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4년 드래프트 1순위 (西武)
소속팀 세이부 라이온즈 (1985-1992)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2-1995)
지도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2008)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0)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군 타격코치 (2012)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군 감독 (2013~201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 (2015)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수석 타격코치 (2023)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소개2. 선수 시절3. 은퇴 후
3.1. 지도자 시절
4. 논란5. 기타

[clearfix]

1. 소개

일본의 전 야구선수이자 후지TV 야구 해설가, 연예인, 프로 골퍼, 야구 지도자, 사업가, 유튜버. 뭐가 이렇게 많아?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이자 前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연예인으로서의 예명은 데이브 오쿠보 (Dave Okubo, デーブ大久保)[1]

2. 선수 시절

미토상고[2]를 졸업하고 1984년 드래프트에 참가하여 1순위로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부터 장타력으로 주목받았으며, 입단 2년차인 1986년에는 미국 마이너리그 싱글A 팀 산호세 비즈(San Jose Bees)에서 연수를 받았다. 그러나 당시 세이부에는 획고한 주전 포수 이토 쓰토무가 건재했기에, 주로 이토의 백업 포수나 대타로 출장했다.

세이부 시절 시련이 찾아오게 되는데 그 계기는 모리 마사아키 감독과의 만남이었다. 전임 히로오카 타츠로 감독과 비슷하게 세밀한 야구 스타일을 중시하던 모리와는 맞지 않았다. 연습 때의 일화로 이시게 히로미치, 쿠도 키미야스, 와타나베 히사노부, 본인, 이토 쓰토무 순서로 일렬로 워밍중인데, 모리 감독이 나타나 한 명씩 이야기를 걸다가 오쿠보를 무시하고 바로 이토에게 말을 건넸다. 이런 모습에 아연실색했으며 이 팀은 주전한테만 감독이 말을 걸어주는가 생각했다. 저녁 식사 시간에도 음식량에 대해 언급하자 오쿠보는 오히려 '리필 부탁합니다!'라고 반항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2군에서 비록 실적을 내어 1군에 승격해도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대타 기용 시 한 타석에 결과를 내지못하면 바로 2군으로 돌아가는 식을 반복했다. 우승 축승회에서도 오너가 '오쿠보도 이번 우승 여행에 데리고 가는거지?'라고 감독에 묻는 것을 보고, 오쿠보는 본인이 모리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1992년 시즌 도중에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포수 나카오 타카요시(中尾孝義)[3]와 맞트레이드 되어 이적하게 되는데, 이게 오쿠보의 야구인생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요미우리에서 그는 후지타 모토시 감독의 총애를 받으며 주전 포수로 맹활약했고, 규정타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타율 0.277, 15홈런, 43타점으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며 야구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했다. 특히 그 해 오쿠보가 홈런을 때려낸 경기에서 요미우리는 무조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오쿠보가 치면 지지 않는다(大久保が打てば負けない)"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1992년 시즌이 끝난 이후 감독이었던 후지타 모토시가 물러나고 나가시마 시게오가 부임하였고 당시 기존의 주전포수 무라타 신이치가 부상 복귀 후 건재함을 과시하면서 오쿠보는 1군 백업[4]과 대타를 전전하다가[5] 1995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게 되었다.

통산 성적은 10시즌 303경기 696타석 635타수 158안타 41홈런 100타점 75득점 타율 .249.

3. 은퇴 후

1995년 시즌 후 발목과 인대 손상으로 인해 28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물러났다. 은퇴 후 그는 데이브 오쿠보 라는 예명으로 야구 해설가와 평론가로 활동했다. 또한 탤런트로 TV에 출연하고, 프로 골퍼로도 뛰었다.

3.1. 지도자 시절

그렇게 야구에서 멀어져 가는가 했는데, 2008년 친정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의 1군 타격코치로 야구계에 전격 복귀한다. 그 후 2010년에 세이부 2군 타격코치를 1시즌 맡다가, 2012년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타격코치로 선임되었다. 2013년에 2군 감독으로 보직이 변경되어 2014년까지 2군을 지휘했으며, 2015년 시즌을 앞두고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성적 악화와 지병을 이유로 물러나자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그러나 개막전부터 한번도 A클래스에 진입하지 못하며 오릭스와 꼴찌를 다투다가 8월 28일에 사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결국 라쿠텐은 2년 연속 최하위. 일본판 이종운. 이종운은 그래도 극초반엔 상위권 했고 게다가 최종전까진 뛰고 경질되었는데... 후임 감독은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마지막 감독이자 일본시리즈 준우승 2회이었던 나시다 마사타카.

선수시절란에 상술한 모리 감독과의 일화를 덧붙이면, 오쿠보 본인이 지도자가 된 뒤 모리의 참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실력도 없고, 반항적인 태도를 취하는 선수는 감독이 사용할 이유가 없다. 본인을 분발시키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선수는 감독이나 코치가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선수시절 모리와의 일화를 반면교사로 삼아 오쿠보 본인이 세이부 1군 타격코치로 재직할 때는 게임에서 뛰지 않는 선수들에게 말을 걸고 고민을 들어주었다. 말도 잘 들어주지만 구타도 해서 문제지

현재는 신바시역 근처에서 '니쿠조 데이브'라는 고깃집을 하고 있으며, 프로골퍼로서의 활동도 다시 시작했다. 고깃집을 하면서 선수시절때보더 훠얼씬 홀쭉해졌다. 그리고 본인의 고깃집에서 유튜버로 데뷔하면서 고깃집과 유튜버 투잡을 뛰고 있다가 하라보살의 부름을 받고 눕동님 후임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하지만, 1년만에 퇴단을 발표하였다.

코치 부임 이후에도 은근히 맛집 유튜버로서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데, 미야자키 캠프에서 30년 단골집을 소개하기도 한다. 라쿠텐 시절에는 아예 단골 술집 사장과 캠프기간 동안 계속 밤에 만났다고 한다(...).

4. 논란

나카무라 타케야의 각성에 기여[6]하는 등 타격코치로써의 지도능력은 상당한 수준으로써 야구계에서도 능력을 인정받는 인물이지만, 문란한 사생활과 강압적 지도방식, 선수들에 대한 폭행 논란 등 여러 구설수에 끓임없이 오르내렸으며 심지어 자신에게 대드는 외국인 선수인 이람 보카치카를 "밖으로 나와!" 하면서 폭행하려 했을 정도로 기질이 다혈질에 강압적인 스타일이다. 물론 당시 용병이었던 보카치카도 개차반같은 성깔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점이 많다는점도 있긴 하다.

2008년에는 내연녀와 혼외자녀까지 둔 사실이 드러나고 이 내연녀를 폭행해서 입건당하기도 했으며 2010년에도 선수들에게 강제 벌금을 먹이고 폭행까지 행사하는등 물의를 많이 일으켰다. 사실 알려진 정도가 이정도이지 오쿠보 히로모토가 선수들을 상습 폭행하고 욕설을 한다는 소문은 이전부터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논란 속에서도 야구계에서 일감이 끓이지 않고 결국 프로야구 감독자리까지 꿰찼다는건 그런 논란 속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기도 하고, 또 하나는 높으신 분들에게 처세술을 잘 발휘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논란중 하나라도 한국프로야구에서 벌어졌다면 해당 선수나 감독은 야구계에서 일감을 얻는게 불가능해지는 상황인데 끓임없는 구설수 속에서도 결국 지도자 복귀에 성공하는걸 보면 한국 야구계와 일본 야구계의 분위기 차이일수도 있다. 거 참 동갑인 옆나라의 누구씨를 닮은 듯 하다 그래도 이 사람은 살인은 안 했지만

오쿠보의 이러한 행보가 가능했던 데에는 1992년 요미우리에서의 활약이 크게 작용했다. 오쿠보가 요미우리로 트레이드될 당시 요미우리는 4~5위권을 헤매는 중이었다. 지금이나 그때나 우승만이 목표인 팀이 시즌 중반이 되도록 그 위치에서 헤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용납되지 않고 후지타 모토시 당시 감독의 시즌 도중 경질설이 나올 정도로 분위기가 안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자마자 오쿠보가 세이부에서 트레이드 되자마자 상술한 활약으로 팀을 상승세에 올려놓으면서 단숨에 우승 경쟁에 뛰어들게 했다. 비록 1위부터 최하위까지 9.5경기 차밖에 나지 않는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팀은 당시 노무라 카츠야가 이끌던 야쿠르트 스왈로즈에게 우승을 내주고 2위에 머물러야 했지만, 와타나베 츠네오 구단주가 친히 금일봉을 하사할 정도로 임팩트가 큰 활약을 했다. 사실 요미우리에서의 활약도 1992년 한 해 반짝이었는데 이 해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요미우리 OB회에서 조차 인정을 할 정도였고 타 팀 출신으로서는 그 어렵다는 5두품 인증[7](...)을 받는데 성공할 정도였다.[8] 그래서 연예계 활동 당시에도 자이언츠의 본사인 NTV가 든든한 뒷배경으로 작용해 주는 등 요미우리에 잠깐 적을 두었던 다른 타팀 출신과는 달리 방송에서의 대접은 다른 요미우리 OB에 준하는 수준이었다.

5. 기타

  • 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9] 운전면허 시험의 레전드라고 한다. 중형/대형/대형이륜 면허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 한류 드라마에서 한 노인이 한 말에 감명을 받아 수첩에 기재했다고 한다. '비단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의 말만큼 아름답지 않다. 반면에 뱀이 아무리 추하고도 인간의 말 정도로 추악하지 않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실크인지 뱀인지 알아야 인간이다.' 어째 본인의 행실은 저 말과 정반대인 듯 하지만
  • 모리 마사아키 전 세이부 감독과는 은퇴 후 화해(?)했다고 한다.

[1] 현역시절 뚱뚱한 체형 때문에 일본어로 뚱보를 뜻하는 데부(デブ)가 별명이었는데, 미국 연수 당시 통역이었던 와다 히로미 코치가 이 별명을 착안, 데부와 일본식 발음이 같은 데이브(デーブ, 데이브의 일본식 발음과 일치)를 영어이름으로 쓸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2] 학교 및 라이온즈의 대선배로 토요다 야스미츠가 있고, 후배로는 이가와 게이가 있다.[3] 1982년 주니치 드래곤즈의 주전 포수로 센트럴리그 MVP를 차지한 뒤 1989년 요미우리로 트레이드 되었다. 1989년 일본시리즈 역스윕 우승멤버이기도 하다. 정작 본인은 간사이출신답게 프로입문직전까지 한신빠돌이였다. 작년에 오쿠보 유튜브에 출연해서 트레이드 썰을 재밌게 풀었다.[4] 하지만 백업임에도 세이부에선 상상도 못해본 4번타자로 선발출장까지 해봤다. 이로써 단 두경기이지만 요미우리 제59대 4번타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5] 94년의 경우 대타와 두번째 포수로 팀에 공헌했고, 1994년 친정 세이부의 일본시리즈 4차전에서 동점 홈런을 치기도 했다.[6] 오카와리 군을 포함한 젊은 세이부 강타자들의 기량 향상에는 후임 타격코치인 도이 마사히로의 공도 있다.[7] 관련해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항목의 순혈주의 단락 참조[8] 그나마 가장 비슷한 케이스는 한큐출신으로 30-30클럽에 두번이나 가입한 미노다 고지. 뭔말인지는 여기를 참조.[9] 체중이 108k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