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12:29:51

히라이시 요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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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平石洋介2024.jpg
히라이시 요스케
平石洋介 | Yosuke Hiraishi
<colcolor=#000> 생년월일 1980년 4월 23일 ([age(1980-04-23)]세)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오이타현 키츠키시
학력 PL학원고등학교 - 도시샤대학
포지션 외야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4년 드래프트 7순위
소속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05~2011)
지도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육성코치 (2011~2012)[1]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군 외야수비·주루코치 (2012)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13)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군 타격코치 (2014)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군 타격·주루코치 (2014~2015)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군 감독 (2016~201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1군 수석·타격코치 (2018~2018.6.17)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대행 (2018.6.17~2018)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감독 (2019)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군 타격·야수종합코치 (2020~2021)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군 타격코치 (2022)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 (2023~2024)

1. 소개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이야기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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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일본프로야구의 전 야구선수, 현 지도자. 2005년부터 2019년까지 한 팀에서만 선수와 코치 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2018년 6월 17일부터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나시다 마사타카의 뒤를 이어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2. 선수 경력

오사카의 야구명문 고등학교인 PL학원 고등학교를 나와 이후 도시샤대학과 사회인 야구 토요타 자동차를 거쳐 늦깎이로 2004년 드래프트에서 신생팀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의 7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한 팀의 1번째 드래프트 지명 멤버이자 창단멤버이다.

다만 프로에 들어와서는 그다지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했고 프로입단 6년만인 2011년 시즌 후에 전력외 통보를 받아 은퇴를 선택했다. 통산 성적은 122경기 출장 172타수 37안타 2할1푼5리 1홈런 10타점.

3. 지도자 경력

이후 팀의 코치로 전임하여 2018년까지 코치로 재직, 2015년에 2군감독을 거쳐 2018년에는 1군 수석 겸 타격코치를 맡은 도중 상술한대로 나시다 마사타카 감독의 급작스런 사임으로 팀이 감독대행으로 임명,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팀의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본인과 같은 시기에 고교시절을 보낸 동세대 선수들 중에서 아직도 NPB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이 꽤 있다는 점에서 매우 파격적인 인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행 취임 이후 타순 고정을 천명했다. 때맞추어 주축 선수들이 극도의 부진에서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고, 신인 스위치히터 외야수 다나카 카즈키가 작년 세이부의 겐다 소스케의 뒤를 이어 오랜만에 2년 연속으로 야수로서 파리그 신인왕을 노릴만한 좋은 타격을 보여주는 경사가 겹치면서 예상보다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7얼에 언제나처럼 DTD하며 5위까지 떨어진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게임차도 8월 돌입 시점에서는 2게임까지 좁혀졌다. 그러나 그 이상의 성과는 보여주지 못하고 다시 후퇴하면서 오릭스와의 게임차가 벌어진 채로 시즌 막판까지 최하위 자리를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10월 5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패하면서 최하위가 확정되었다. 다만 승패마진의 대부분은 나시다 시절에 까먹은 것이고 본인이 감독대행에 취임한 후로는 승률 5할에 가까운 성적이라 최하위의 책임을 묻기는 힘든 상황.

그러한 팀 성적과는 별개로 구단은 2018년 10월 5일 히라이시를 정식 감독으로 승격시킨다고 발표하였다. 이로써 현직 NPB 감독 중에서 최연소 감독이 되었으며, NPB 최초의 80년대생 감독, 마쓰자카 세대 최초의 감독 등의 타이틀도 정식으로 보유하게 되었다.[2] 참고로 통산 37안타는 감독 경험자 중에선 한큐 브레이브스의 명장이었던 우에다 토시하루의 통산 56안타보다 적은 역대 최소 기록이다. 우에다가 선수 시절엔 별다른 활약은 못했지만, 이후 오랜 기간 코치로 활동하면서 경력과 경험을 쌓은 뒤 감독으로써 대성한 것을 생각하면 이 사람도 우에다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을 지도 감독대행 때의 호성적 등도 고려하여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게 2019시즌 71승 4무 68패를 거두며 파리그 3위로 페넌트레이스를 마무리,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했지만 소프트뱅크에게 1차전을 이기고도 2,3차전을 내리지면서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작년 최하위에서 3위까지 끌어올렸기에 연임 가능성이 높다고 보였으나 2019년 시즌을 끝으로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졌고 결국 물러나게 되었다.
이에 2군 감독이었던 미키 하지메가 1군 감독에 취임하였고 히라이시는 고향팀이나 다름없는 소프트뱅크 1군 타격코치에 부임하게 되었다.

작년 최하위였던 팀을 3위까지 이끌었음에도 감독직에서 물러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이시이 카즈히사 라쿠텐 GM은 "혁신"때문이라고 얘기했다. 확실히 라쿠텐은 아사무라,쟈바리 블래쉬등의 영입으로 타선의 무게감은 늘었지만 도루와 같은 세밀한 부분에서 아쉬움이 많아 1,2점차 등 근소한 점수차이에서 승리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3] 라쿠텐의 2019년 도루개수는 48개로 닛폰햄과 더불어 파리그 최하위[4]였고 2018년 역시 69개로 리그 최하위,2017년에는 42개로 5위를 기록하는등 기동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에 "중장기적으로 우승을 노리는 팀 만들기" 계획을 세워 선수를 보강하기 이전에 조직적인 팀의 체질개선을 위해 히라이시 감독이 물러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2019년 2군 감독이었던 미키 하지메가 감독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2018년 60개였던 2군 도루개수가 2019년 99개로 늘어나는 등 이시이 GM이 얘기하는 혁신에 있어 기동력적인 부분의 발전을 이끌 감독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아무튼 히라이시 前 감독이 명확한 한계를 보이기는 했어도 부임 첫해 A클래스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지도자 생활에 있어서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 소뱅의 포스트시즌 유일한 패전을 안긴 감독이기도 했기 때문에 라쿠텐에서 짤리고도 구도 기미야스의 부름을 받고 소뱅 1군타격코치로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가다가 본인을 불렀던 쿠도 감독이 사퇴하면서 본인도 고향팀이나 다름없는 소뱅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행선지는 세이부가 유력하다고 한다. 결국 세이부로 갔다. 실제로 세이부로 옮기기 전 고딩직속선배인 마쓰이 가즈오의 요청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시즌 시작하고 나니 작년에 부진했던 야마카와 호타카가 3경기연속 홈런을때려내고 팀타격도 옛날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야마카와를 살려낸 반면 팀타율이 5위이다.
심지어 타율은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번시즌보다 저번시즌 꼴찌를 했던 시즌이 더높다.
시즌 종료후 수석코치였던 마쓰이 가즈오가 감독직을 맡게됨으로서 수석코치직을 맡게되었다. 참고로 히라이시 본인이 라쿠텐 감독대행으로 있던 시절 직속선배인 마쓰이는 친정에서 선수생활 마지막을 보내는 중이었다. 2024시즌 종료후 팀성적침체겸 타격성적 침체의책임으로 수석코치를 소프트뱅크 출신 토리고에 유스케를 선임했고 선임과정에서 이번시즌 종료후 사임한다고 발표했다.#

4. 이야기거리

  •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1998년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의 마쓰자카 다이스케PL가쿠엔과의 연장 17회 완투 끝에 승리를 거둔 8강전에서 상대팀인 PL가쿠엔의 주장이었다. 다만 등번호는 13번으로 주전이 아니라 백업 외야수였다.[5]
  • 2018 시즌은 감독 대행의 신분이었지만 현지에서는 이른바 마쓰자카 세대[6] 최초의 감독으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또한 NPB 최초의 80년대생 감독이기도 하다. 그리고 2018시즌 마지막에 정식 감독으로 승격함으로써 이상의 타이틀을 그대로 가져가게 되었다.
  • 다만 이러한 상징성과는 별개로 라쿠텐 구단 프런트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팬들로부터는 KBO 리그이 사람으로 비유할 수 있는 바지감독으로 취급받고 있다. 감독에게 실권이 없어보인다는 점, 선수시절 철저한 무명이었다는 점, 유니폼 색깔과 디자인에서는 장정석과 굉장히 흡사하다. 심지어 이른바 황금세대라 불리는 스타플레이어 동기들[7]에 비해 무명 선수였지만 그들 중 가장 먼저 프로야구 감독이 된 점까지도. 다만 선수를 그만두고 현장보다는 주로 프런트 쪽의 일을 많이 한 장정석과는 달리 이 사람은 은퇴 후에도 줄곧 코치로서 현장에서 선수들을 지도해왔다는 점이 차이이다. 또한 이 사람을 감독 대행으로 앉힌 것을 놓고 감독 중심의 전통적인 일본프로야구의 팀 매니징을 중시하는 현장과, 세이버메트릭스나 데이터 분석에 기반을 둔 프런트 중심의 야구를 실험하고자 하는 프런트의 파워게임에서 프런트가 승리하고 라쿠텐 구단이 본격적으로 프런트 야구로 팀의 체제를 바꾸는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이 분이 살아계셨으면 절대 안 일어났을 일. 따라서 취임 당시에는 감독이 사퇴한 후 나머지 시즌을 수습하는 감독 대행 신분이었지만 시즌 중의 퍼포먼스에 따라 시즌 후 정식 감독으로 취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었다. 결국 나시다 사임 이후 그럭저럭 팀을 잘 수습한 점을 참작하여 시즌 끝나고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정식감독으로 승격한 이후 팀을 2년만에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시키고 그해 포스트시즌 10연승으로 일본시리즈 3연패까지 차지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유일한 포스트시즌 1패를 안기는 성과를 거뒀으나 이시이 가즈히사 GM이 팀 개혁을 명분으로 1년만에 역할도 불분명한 한직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팀을 나가게 만들었다. 취임 이후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도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감독을 그만두게 된 과정까지조차 장정석과 흡사하다. 한가지 차이점이라면 히라이시는 그래도 고향에 돌아와서 26-4를 만들어냈다.
  • 1980년대생 최초의 일본 감독이며 한국 프로스포츠사상 최초의 1980년대생 감독이 V리그에 등장했는데 고희진 삼성화재 감독 이다. 공교롭게도 고희진 감독의 나이도 히라이시 요스케와 동갑.


[1] 2011년 시즌 종료 후 은퇴와 동시에 육성코치에 취임했으나 2012년 시즌 개막 전에 2군 외야 수비주루 코치로 보직을 옮겨서 시즌 중 육성코치 직무를 수행한 적은 없다.[2] 당장 고딩직속선배인 후쿠도메 고스케가 여전히 현역이다.[3] 이길때는 큰 점수차로 이긴경기가 꽤 있으나 질때는 2점차 내로 패배한 경기가 팀패배의 절반 이상인 39경기로 타선이 막힐때 한 점 쥐어짜내는 야구가 안되면서 패배한 경우가 많았다. 이를 증명하듯 클라이맥스 시리즈 2,3차전 역시 1,2점차로 패배하며 탈락했다[4] 센트럴리그에서는 베이스타즈는 이보다 더 적은 40개!!를 기록하면서 라쿠텐과 똑같이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3위 한신에게 탈락했다[5] 고시엔 본선에서는 18명만 뛸 수 있으며 배번호는 1~18번만 사용가능하고 주전부터 1~9번을 쓴다. 다나카 마사히로가 2005년 고시엔 우승 당시 에이스 투수였음에도 2학년이었던지라 번호는 11번이었고 고3으로 승급한 2006년에는 1번을 달았다.[6] 1998년에 고교 3학년이었던 1980년 4월~1981년 3월생으로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던 세대. 이 세대는 세대를 대표하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비롯하여 스기우치 도시야, 와다 츠요시, 아라카키 나기사, 후지카와 큐지, 모리모토 히초리, 다테야마 쇼헤이, 무라타 슈이치, 소요기 에이신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로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했다. 심지어 감독취임당시 동기들 태반이 아직도 현역선수였다.[7] 히라이시는 상기한 마쓰자카 세대, 장정석은 92학번 세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