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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선수 경력/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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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의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강민호/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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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5년생 야구선수 강민호의 국가대표 경력을 담은 문서이다.

무릎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한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8시즌 부진 이후의 대회들인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2019 WBSC 프리미어 12 등을 제외하면 굵직한 대회는 거의 다 참가했다.

1.1.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커리어 첫 A대표팀 승선. 2006년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롯데의 주전 포수로 자리를 굳힌 강민호는 시즌 후 아시안 게임 대표팀의 부름을 받는 데 성공했다. 병역특례를 위해 미필 선수를 우선 선발한데다 기존의 국가대표 주전 포수였던 진갑용, 홍성흔 등이 모두 불참했기 때문에 엔트리에 승선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대표팀은 그 유명한 도하 참사로 대만과 일본에 밀려 동메달에 그치고 쓸쓸하게 귀국하면서 강민호의 첫 A대표팀 경력은 아쉽게 끝났다.

1.2. 2008 베이징 올림픽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6 3 22 6 2 0 0 4 3 .273 .304 .364 .668 0 10 1

소속팀에서는 47번이었지만, 선배인 권혁 역시 대표팀에 선발되어 37번을 사용한다.

강민호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커리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대회였다. 원래는 진갑용의 백업 포수 역할로 선발되었으나 진갑용이 햄스트링에 부상을 당하면서 여러 경기에서 뛰었다. 4강 한일전에서는 긴장했는지 처음에는 실수를 좀 하다가 경기가 계속 진행되면서 안정을 찾고 김광현을 잘 리드하여 김광현의 8이닝 선발승을 이끌어내고 본인 역시 약속의 8회에 쐐기 2루타로 1타점을 올렸다.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류현진을 잘 리드하며 활약을 했지만 9회말에 잇따른 볼 판정을 내리는 심판에게 "Low ball?" 이라는 질문 한 번 하다가 퇴장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다. 심판은 '낮았나?'라는 뜻의 Low ball이 아닌 '볼이 아니다'라는 심판의 판정을 강하게 부정하는 뜻의 No ball!로 오해해 퇴장시겼다. 이 당시 더그아웃에다 장비 던지기 신공을 보여줬다. 퇴장은 당했지만 결국 팀도 우승했고, 저 퇴장장면이 임팩트가 굉장했기 때문에 강민호는 인지도가 급상승했고 차세대 국가대표 안방마님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게다가 제주도 출신 최초 금메달리스트라는 업적도 달성했다.
파일:vo7ww33.jpg
분노의 장비 던지기
(a)타구가 페어인가 파울인가, 투구가 스트라이크인가 볼인가, 또는 주자가 아우트인가, 세이프인가 하는 재정뿐만 아니라 심판원의 판단에 따른 재정은 최종인 것이므로 선수, 감독, 코치 또는 교체선수가 그 재정에 대하여 이의를 주장할 수 없다. 원주 볼, 스트라이크의 판정에 대하여 이의를 말하려고 선수가 수비위치 또는 루를 이탈하거나 감독 또는 코치가 벤치 또는 코처스 박스를 떠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판정에 이의를 주장하기 위하여 본루 쪽으로 오면 경고를 하고 경고에도 불구하고 본루쪽으로 계속 오게되면 경기에서 퇴장시킨다.

라는 룰에 의거해서 룰 숙지를 못한 본인의 잘못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강민호는 수비 위치를 이탈한 적이 없으며(수비 위치가 본루니 당연한 거겠지만), 먼저 경고를 하고 이후에 계속 본루 쪽으로 오면 퇴장하는 것이 룰인데 경고 없이 단 한 마디 했다는 이유만으로 퇴장당했다. 엄연한 편파판정이다. 거기다가 이 공이 낮아서 볼이냐고 물었을 때 퇴장시켰다면 진정한 편파판정이다. 메이저리그 경기 같은 경우는 심판이 스트라이크를 잡으면 타자가 스트라이크존을 체크하려고 라인에 걸쳤는지, 공 몇개가 들어왔는지도 물어본다. 헛스윙을 한 후도 볼이었는지 스트라이크였는지 물어보고 심판은 열이면 열 다 흔쾌히 대답해준다. 다음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존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들면 뒤돌아서 "나 저번에 저거 볼이었잖아요"라고 살짝 항의하고 심판은 "ㅎㅎ"하고 쿨하게 넘어간다. 참고로 저 심판은 6회초 이용규가 몸에 공을 맞았을 때 아픈 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볼이라고 판정한 인간이다. 강민호는 나중에 인터뷰에서 "주심이 스페인어로 쿠바 선수들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딱 장난친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미트 던지기는 좀 의도적이었던 셈. 그런데 그렇게 미트 던져놓고 나가서는 (퇴장이기 때문에 덕아웃에 있을 수 없었다) 나중에 그 유명한 정대현-진갑용 배터리의 병살타로 우승이 확정되자 눈물을 흘리면서 진갑용에게 달려드는 장면이 사진에 찍히기도 했다. 후문이지만 이 때 생판 야구 모르는 사람도 강민호 팬이 되었다고 하며, 미국의 MLB닷컴에선 퇴장당할 당시에 그의 미트 던지기가 시속 99마일(159km/h)쯤 돼 보였다고 비유했다. 메달 수여식 이후 부산시민 존 갈과 뜨거운 포옹을 나누었다.

이후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피겨 스케이팅 점수 조작질에 대해 "심판이 장난치면 어쩔 도리가 없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1.3.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5 1 4 0 0 0 0 0 2 0 0.333 0 0.333 0 0 2
파일:20200510_205821.jpg
제2회 WBC에서는 베테랑을 좋아하는 김인식 감독의 특성 때문인지 박경완에게 완전히 밀렸다. 결승전 때 교체 포수로 출전했으나 임창용이 두들겨맞자 덩달아 임창용과 함께 욕먹었다. 하지만 김인식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때 모든 지시는 벤치에서 내려지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단지 지시를 보지 못해서 문제였지만. 후일담에 의하면 양상문 투수코치가 싸인을 무시했다고 한다. 당시 결국 누구 잘못이냐며 격한 논의가 일 정도로 이슈거리였는데, 감독, 코치, 투수 각자가 자기 잘못이라며 나서고 임창용은 장관의 위로편지까지 받는 등, 훈훈한 결말을 맞이하나 했지만... 강민호는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3년이나 지나서 슬그머니 "그때 그거 내 잘못이었어" 라며 자백했다

여담으로 베네수엘라전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카를로스 실바가 떡실신당하고 모자를 던졌을때 덕아웃에서 보고 웃었다는 후문이 있다.

1.4.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참고로 이때 다큐멘터리를 보면 박경완이 "민호야, 그건 진짜로 아냐"라거나, "넌 좀 맞아야 겠다"라든지 "니가 주전으로 뛴 지 몇 년째냐…."라며 갈구는 장면이 있다.(...)

1.5.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3 3 9 0 0 0 0 0 0 0.000 .100 .000 .100 0 5 1
파일:강민호/2013WBC.jpg
타이중 참사의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두드러지는 역적 중 하나로 평가를 받으며 팬들의 뒤통수를 쳐버렸다.

1차전 네덜란드전에서 어처구니 없는 1루 송구 실책으로 인한 1실점을 내주었고 1, 2차전 합계 7타수 무안타 4삼진에 마지막 대만전에서도 안타 하나 못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귀국했다.

애초에 선수 선발과 운용에 문제가 있었다. 타이중 참사 항목만 봐도 논란이 많았음을 알 수 있는데, 류중일진갑용이란 포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마무리에만 올랐다) 부상 때문에 상태도 좋지 못한 데다 슬럼프에 빠진 강민호를 계속해서 선발 라인업에 올리며 7~8이닝씩 굴리는 고집을 보였다. 이 당시 무리한 여파로 인해 누적된 피로로 결국 2년간 제대로 부진하게 되었다는게 중론.

1.6.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아시안 게임에서 소속팀에서의 부진을 이어가고 있는데, 대표팀 타자 중 결승전까지 나지완과 같이 안타를 쳐내지 못하면서 팬들의 조롱과 비아냥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태국, 홍콩전에서도 단 한 개의 안타도 기록하지 못하는 등 극심한 부진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허나 부진을 겪는 와중에도 희생타를 비롯해 대표팀에서 3타점을 기록하고 포수로서 수비에 나서서 이태양, 이재학, 홍성무 등 젊은 투수들을 잘 보좌해주는 등 최소한 선수 한 명 몫은 해주었다 보니 그래도 국대 포수하면 강민호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아예 예선에서 대타로 나와 3타수 무안타에 그치고 준결승/결승에는 코빼기도 모습을 보이지 않은 나지완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1.7. 2015 WBSC 프리미어 12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8 4 12 3 1 0 0 0 3 .250 .400 .333 .733 0 3 3 ##
파일:1642001132.jpg
제1회 프리미어 12 대회에 참가하는 김인식호에도 발탁되었다.

11월 8일 조별리그 개막전 일본 전에서는 선발출전하여 2타수 무안타를 기록하고, 양의지와 교체되었다. 경기는 5-0 패배.

11월 12일 조별리그 베네수엘라 전에서 선발출전하여 2루타를 기록하였다. 여담으로 이 날 루이스 히메네스가 강민호에게 '롯데로 돌아오고 싶다'고 말하자 강민호가 '우리 아두치 있다'고 깔끔하게 선을 그었다고 한다.

11월 14일 조별리그 멕시코 전에서는 스트라이크 존이 들쭉날쭉하여 양팀 투수들이 모두 고전하였다. 경기 후반부에는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감을 잡은 강민호가 오른쪽 아래를 집중적으로 노리도록 투수들에게 요구했고, 그것이 먹혀 들어가면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경기로 한국 대표팀의 8강 진출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강민호는 8회 도중에 허리를 삐끗해 교체되었고, 예방 차원에서 교체되었다고 했다.

11월 15일 조별리그 미국 전에서는 교체 출전하여 한국의 마지막 타자로서 아웃되면서 팀이 패배했다.

준결승 일본 전에서는 대수비로 출전하여 9회 2사 1루 상황에서 이현승의 투구가 바깥쪽으로 많이 치우친 바운드볼이 되어 하마터면 뒤로 빠질 뻔하였으나, 강민호가 이를 필사적으로 블로킹한 뒤, 더 필사적으로 달려가 공을 잡아채면서 1루 주자의 진루를 견제하여 투수에게 부담이 될만한 상황(득점권인 2루로 진루)을 막아내었다. 그리고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면서 4-3 역전승을 따냈다.

양의지와 번갈아가며 출전하면서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당초 출전하려고 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인해 최종적으로 불참했고, 삼성 이적 후에 개최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2019 WBSC 프리미어 12의 경우 성적이 한창 부진한 시절이었다 보니 대표팀 엔트리에 승선하지 못하고 양의지에게 국가대표 주전 포수 자리를 넘겨줘야 했다.

1.8. 2020 도쿄 올림픽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3 2 - - - - 0 - - 0.143 0.143 0.250 0.393 - - -
파일:도쿄간미노.jpg
2020년 이후 다시 회춘하는 모습을 보이며 2020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엔트리에 선발됐다. 삼성 이적 후로는 첫 국대 승선이며, 2015 프리미어 12 이후 무려 6년 만의 국가대표팀 복귀다. 참고로 오승환에 이은 팀내 2번째 연장자다. 지난 국가대표팀에서와 달리 이번 대회에서는 주전이 아닌 양의지의 백업 포수로 활약할 것이 예상됐다.

여담이지만 롯데 시절이던 2016년 8월 4일 야구가 도쿄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으로 재지정되었다는 소식에 대해 기회가 된다면 도쿄 올림픽에 출전해 보고 싶다는 인터뷰를 한 바 있는데, 최종 엔트리에 포함됨에 따라 실현되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오프닝 라운드 첫 경기인 이스라엘전에서 선발출전했다. 같은 소속팀인 원태인이 이날 선발 등판하면서 전담포수로서 기회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타석에서 4회말 2사에 안타로 출루하며 오지환의 투런홈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강민호는 6회에 황재균과 교체되었다. 팀은 6:5로 이스라엘을 이기고 첫 승을 기록했다.

이후 경기들에서는 양의지에 밀려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양의지가 타격과 수비에서 민폐를 끼치다보니 강민호를 기용하자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양의지가 준결승 일본전에서 고우석과 함께 한일전 패배의 주범이 되었는데, 공수 양면으로 최악의 활약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일본을 도와준 꼴이 된 것이다. 양의지 본인도 이미 멘탈이 무너진 것으로 보이는데, 이 상황에서는 김경문 감독의 기용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다가올 미국과의 리턴매치에서는 다시 강민호가 포수 마스크를 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미국과의 2차 준결승의 선발 라인업에 포함되었다. 5번타자 포수로 출전할 예정이다. 미국과의 준결승에서 1볼넷 3아웃을 기록했다. 강민호 앞에 밥상이 차려지지 않았고 직접 출루하면 다음 타자가 아웃되거나, 당겨친 타구가 살짝 먹혀서 워닝트랙 쪽에서 잡히는 등 크게 활약하지 못했다. 수비에선 그나마 블로킹과 포구, 리드에서 안정감이 있었고 이의리와 훌륭한 호흡을 자랑했다. 이변이 있지 않는 한 아마 이번이 강민호에겐 국대 포수로서의 마지막 경기일 가능성이 높다.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

본인도 국가대표로 나갈 대회도 다 나가봤고 올림픽 금메달, 프리미어 12 우승 등 국가대표로서 누려볼 수 있는건 웬만하면 다 해봤기 때문에 더는 미련이 없겠지만 그래도 한때 국가대표팀 주전 포수치고는 너무나도 아쉬운 퇴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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