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곤 Robert Chaegon Kim | 金采坤 | |
<colbgcolor=#002e48><colcolor=#fff> 본명 | 로버트 채곤 김(Robert Chaegon Kim, 金采坤) |
출생 | 1940년 1월 21일 ([age(1940-01-21)]세) |
경상남도 부산부 (現 부산광역시)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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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김해 김씨 |
학력 | 여수서초등학교 (졸업) 여수서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54회 / 졸업)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공업경영학 / 학사) 퍼듀 대학교 대학원 (산업공학 / 석사) |
가족 | 배우자 장명희, 자녀 김정연, 김종륜, 김재연 부친 김상영, 동생 김성곤[1] |
병역 | 대한민국 육군 만기전역 (학적보유병) |
1. 개요
미국의 전직 해군 정보국의 컴퓨터 분석관. 1996년 주미국 대한민국 대사관에 파견된 국방무관이었던 백동일 대령에게 1996년에 일어난 북한의 대남 도발인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미국 정보 당국이 파악하고 있던 북한 잠수함의 동향 등 군사기밀을 유출하여 FBI에게 체포된 후 9년간 복역했다.둘째 남동생 김성곤은 제15·17·18·19대 국회의원, 제31대 국회사무총장, 제10대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2. 생애
1940년 1월 21일 경상남도 부산부(현 부산광역시)에서 아버지 김상영의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전라남도 여수군 여수읍 봉산리 650번지로 이주하였다. 1954년 여수서초등학교와 여수서중학교를 졸업하고 1958년 경기고등학교(54회)[2]를 졸업한 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공업경영학과에 진학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육군에 학적보유병으로 입대하여 포병으로 복무한 뒤 만기전역하였다. 1965년 한양대학교를 졸업하였다.[3]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퍼듀 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1967년에는 배우자 장명희(張明姬)와 워싱턴에서 결혼하여 훗날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1968년 퍼듀 대학교 대학원에서 산업공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70년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입사하여 4년간 근무하였고, 1974년에는 MITRE Corp[4]에서 교통 업무를 하면서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이를 바탕으로 1978년부터 미국 해군 정보국에서 근무하기 시작하여 컴퓨터 정보 분석관으로 미군 컴퓨터 시스템인 JME(Joint Maritime Information Element)를 연구, 개발했다.[5] 미국 해군 정보국에서는 비밀 정보 사용 허가인 SCIF(Specialized Compartmented Information Facility)를 취득했다.
이렇게 미국 해군 정보국에서 19년간 컴퓨터 전문가로 복무하면서 워싱턴 한인교회 장로로서도 활동하였다. 1996년 9월 FBI에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면서 삶이 달라지게 되었다. KF-21과 관련하여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미국에서 처벌받은 한국계 미국인 박시몽과 유사한 점이 있는데 한국계 미국인으로 공학을 전공하였고 미국의 국방 관련 정보를 모국인 대한민국 정부에 유출하였다는 점 등이 공통점이다.
이와 비슷하게 2024년에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북 관련 업무를 했던 수미 테리가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한미관계는 혈맹이라고 불릴 정도로 가까운 사이지만 자국의 국익을 위해서는 한미 양국이 첨예한 경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로버트 김 간첩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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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4. 사건 이후
1997년 7월 미국 알렉산드리아 연방법원에서 이른바 '간첩음모죄' 혐의로 징역 9년과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아 펜실베이니아 알렌우드 연방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처음에는 치과 조수와 목공 공장 근로자로 일하였다. 2년 후에는 교도소 내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중국계, 히스패닉계 재소자에게 영어 수업을 해주었다고 한다. 출감 6개월 전에는 민영교도소로 옮겨서 주중에는 직접 운전하여 교도소 밖의 세탁소에서 일하면서 급료를 받았고 주말에는 집에도 다녀올 수 있었다고 한다.2004년 6월 1일 출소해 가택에 연금되었고, 2004년 7월 모범수로 인정받아 15% 감형이 이뤄졌다. 이후 전자발찌를 차고 보호관찰을 받으며 생활했으나 2004년 7월 27일 오후 2시부로 전자감응장치 해제 통보를 받아 완전 석방될 수 있었다. 본래 보호관찰 기간 또한 3년이었지만 나중에 1년으로 단축되어 2005년 10월 5일에 법원으로부터 보호관찰 집행정지 결정을 통보받아 보호관찰 또한 종료되었다.
2005년 11월 6일 한국을 방문하였고 김수환, 김대중, 조용기 등 한국의 저명 인사들을 방문하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호관찰이 끝난 후에도 한동안 FBI의 감시를 받아 왔는데 주지사에게 청원하여 2015년에야 복권되었다.
5. 저서
- 자서전 < 집으로 돌아오다 >
- 옥중서신집 < 로버트 김의 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