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03 03:04:30

조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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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현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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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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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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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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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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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조재현(曺在鉉)
출생 1965년 6월 30일([age(1965-06-30)]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파일:대한민국 국기.png
본관 창녕 조씨[1]
신체 170cm[2] , 65kg, A형
학력 연신초등학교
불광중학교
한성고등학교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 학사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공연영상학 석사
데뷔 1989년 KBS 13기 공채 탤런트
가족 배우자 김지숙, 아들 조수훈
조혜정, 형 조수현
종교 불교
소속 씨에스엑터스
취미 골프, 권투
특기 요리

1. 소개2. 경력
2.1. 데뷔 초기2.2. 김기덕을 만나다2.3. 연기파 배우로서의 길
3. 사건사고/논란
3.1. 감독 데뷔 논란3.2. 성범죄 사건
4. 기타5. 출연 작품
5.1. 영화5.2. 드라마5.3. 연극5.4. MV
6. 수상7. 관련 문서

1. 소개


대한민국의 전직 배우이자 성범죄자. 2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2. 경력

2.1. 데뷔 초기

1965년 6월 30일, 2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은평구 지역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나왔다. 어릴 적에는 산동네에서 살 정도로 가정 형편이 몹시 어려웠으나, 아버지의 연탄 사업이 연탄파동으로 성공하고 연이어 시작한 석유 및 시멘트 사업까지 대박을 치면서 자가용을 타고 등하교를 할 정도로 부유해졌다고 한다.

원래는 미술을 전공하려 했으나,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해야 하는 데생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정물을 같은 모습으로 그리는 게 싫었다고... 결국 미술을 업으로 하겠다는 길을 포기하고[3] 중학교 3학년 때 친누나의 권유로 보러 간 연극 '결혼'에서 한 배우가 철학적이고 멋진 말을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멋진 말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배우를 꿈꾸게 됐다고 한다.

결국 조재현은 경성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했지만 별다른 목적없이 방황하고 있다가 3학년 때 삭발을 하며 마음을 다잡고 워크샵으로 하는 2인 연극 아일랜드에 출연한다. 연극 아일랜드는 그에겐 여러모로 각별한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으로 연기에 자신감을 갖게 된 작품이자 지금의 아내와 만나게 해준 작품이기 때문이다. 연극 아일랜드를 기획한 사람이 바로 독립영화계에서 활동하는 전수일 감독.[4]그와는 한 학번 차이나는 학교 선후배 사이로 이후 두 사람은 16년 만에 다시 만나 다시 영화를 찍었다. 그리고 조재현이 모교의 영화학과 부교수로 임용되면서 마주하게 되었다.

이후 경성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서울로 돌아온 조재현은 1989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다. 이듬해 친구들과 극단 ‘종각’을 만들고 <세발 자전거>(1989),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1990), <우묵배미의 사랑>(1990) 등을 무대에 올렸다. 특히 1991년 <에쿠우스>의 알런 역으로 주목을 받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상을 받았다. 공채 탤런트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극단을 차린 이유는 많고 많은 연극단 단원 오디션에서 "넌 연기하지 마라."는 혹평을 듣고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작은 키 때문에 오디션에서 퇴짜를 맞은 적도 있어서, 키높이 깔창이 없던 시절에 직접 라면박스를 잘라서 신발 안에 넣어 키가 커보이게 하고 다녔다고 한다. 결국 일이 없어서 수입이 제로에 가까워지자, 아예 뜻이 맞는 친구들과 극단을 차리고 본인이 연극무대 주연으로 서게 된 것. 이 것은 본인이 부유한 집안이였기에 가능했다 말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다. 나중에 밝혔는데, 본인도 어렸을 적에는 매우 발연기였다고 한다. [5]
파일:attachment/jojaehun21.jpg
극단 '하늘창' 소속이던 21살의 조재현[6]

1992년 독립영화[7]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에서 알선업자에게 속아서 새우잡이배를 타는 주인공 '재호'로 출연하면서 어느 정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보여 준 처절하면서도 비굴한, 그리고 절박한 연기는 관계자들에게 조재현이라는 배우의 가치를 인식시켰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하였으나,(애초에 흥행은 기대하기 어려운 성격의 영화였다) 이 영화를 통해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95년 안성기와 함께 출연한 <영원한 제국>에서 첫 영화 주연을 맡았다.

2.2. 김기덕을 만나다

어쩌다보니 유유상종
그렇게 둘의 비극적 운명은 시작되었다.

이렇게 주연은 아니지만 꾸준히 영화와 연극에 출연하며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한 생활을 하고 있던 조재현은 1995년에 MBC 카메라맨이던 형의 사고사[8]이후 연기자 생활을 접고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갈지[9]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김기덕 감독의 첫 작품인 <악어>(1996) 시나리오를 접하고 신선함을 느껴 출연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김기덕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됨과 동시에 그의 연기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 후 몇 편의 드라마에 역시 조연으로 간간이 출연하면서 김기덕 감독의 <야생동물 보호구역>(1997), <섬>(2000), <수취인 불명>(2001)에 출연했다. 그러나 당시까지만 해도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그냥 "그 친구 연기 쩔던데… 누군지 모르겠네."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사이에 그가 주연으로 등장했던 2001년작 드라마 <피아노>가 대박을 치며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알리기 시작했고, 그 상태에서 김기덕의 문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나쁜남자>에서 측은한 면도 있지만, 도저히 용서가 안 될 '인간말종'인 '한기' 역할로 등장해서 충격과 공포 레벨의 임팩트를 사람들에게 주게 된다. 이로 인해 욕도 많이 들었다고는 하지만, 조재현이라는 이름만큼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었다.[10][11]

정작 김기덕하고는 그 이후로 영화를 찍지 않았다. 김기덕 감독이 몇 번 러브콜을 보내긴 했지만 출연료나 스케줄 문제 등으로 엇갈리면서 작품작업 쪽으로는 소원해졌다고 한다.[12] 그러다가 뫼비우스라는 영화로 다시 뭉치게 됐다.

조재현은 방송에서 김기덕에 대해 묘사할 때 "강한 내용의 영화를 찍기 때문에 성격이 폭력적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완전히 잘못 알고 있다. 누구보다 여리고 섬세한 사람이다. 나쁜남자 촬영 당시에 끔찍한 내용의 장면을 찍다가 중간에 김기덕 감독님이 더 이상 못 보고 스태프들에게 컷을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눈을 가리면서 고개를 돌려버렸으나, 내 촬영분량이 아니라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이를 말리면서 스태프들에게 계속 촬영을 하도록 신호한 적도 있을 정도다. 전혀 그런(폭력적인) 분이 아니고, 오히려 마음이 약할 때가 많은 인간적인 분이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인간 김기덕에게 인간적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3. 연기파 배우로서의 길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가진 뒤에 대중에게 연기력으로 크게 주목받은 건 드라마 해피투게더피아노에서의 건달 역할부터다. 약간 사나워 보이는 그의 인상에 잘 어울리는 역할인 건달연기를 하면서도 인간적인 부분을 잘 섞으면서 표현해 내어 그의 훌륭한 연기력을 인정받게 된다. 특히 피아노에서는 30대 후반의 나이로 50대가 넘는 나이의 아버지를 자연스럽게 연기하며, 의붓자식을 향한 처절한 부정을 훌륭하게 표현하여 큰 호평과 함께 드라마를 히트시켜 주목받았고, 그때부터 수많은 작품에서 주연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후로는 부드러운 감성의 남자(드라마 <눈사람>), 의리와 역할 사이에서 고민하는 무인(영화 <청풍명월>), 개그 캐릭터(영화 <맹부삼천지교>), 인술의 길을 걸으려는 의사(드라마 <뉴하트>)의 다양한 캐릭터를 맡고 있다. 그러나 취향 자체가 메이저와는 잘 맞지 않는지 연기력과 명성에 비해 흥행작이 많지 않은 배우에 들고 있다.

그 외에 연극 쪽에서도 활동 영역을 넓혀 배우로서뿐만이 아니라 연출, 기획에서도 활동하고 있다.[13] 이쪽 역시 안정적인 대중적 흥행작보다는 개성적인 작품이나 독립 영화스러운(?) 성격의 작품을 더 주목하고 있다.

MBC에서 계백으로 의자왕 연기를 맡아 저조한 시청률에도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줬으며, 역시 MBC 주말 드라마인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에서는 하명근 역할로 호평을 받았다.[14] 이 역으로 그리메상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

그 후 2014년 1월 KBS 대하드라마 정도전에서 정도전 역으로 캐스팅되었는데 미스 캐스팅 논란이 있기는 했다.[15] 하지만 회가 거듭될수록 전형적인 선비가 아닌 싸움개처럼 자유분방한 정도전[16]이 사상적으로나 처세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잘 그려내주면서 호평을 받았고, 드라마 자체의 고평가와 더불어 2014년 KBS 연기대상 최우수상과 3사 피디가 뽑은 연기자 상을 받았다. 지금와서는 그래도 조재현정도의 연기자여서 다행이였다는 평.

같은 해 12월부터는 SBS 드라마 펀치에서는 이태준을 열연하였다. 바로 전작의 정도전과는 정반대의 캐릭터인데 정작 디시 펀치갤에서는 의외의 귀여움(?!)을 어필하며 쁘띠총장으로 인기를 누렸다. 또한 매회 먹방, 특히 박정환 역의 김래원과 함께 한 자장면 먹방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설 특집으로 방영된 아빠를 부탁해에서는 딸과의 어색한 일상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가장 자연스러운 집안이면서도 먼저 관심을 표한 딸에게도 보답해주길 바라는 반응. 결국 2회에서는 함께 스티커 사진도 찍는 등 상당히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특히 시큰둥하게 시작한 할리갈리 게임에서 점점 승부욕을 불태우는 모습이 빵 터졌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 외 오디션도 보고 알바도 하는 딸의 성실함이 호감이라며 부녀가 함께 좋은 이미지를 얻었다.

'아빠를 부탁해'는 이제 '아빠를 구속해'로..

3. 사건사고/논란

3.1. 감독 데뷔 논란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맞이하여 "나홀로 휴가" 라는 영화로 감독으로서 첫 영화를 제작했는데 김기덕의 영향을 받았는지 불륜이 주제이면서 묘사라든가 표현의 수위가 굉장히 강하다. 특히 결혼계약의 날이라는 특이한 대사[17]로 남성 관객에게 적지 않은 공감을 얻었지만 여성 관객의 경우 조금 보기 애매했다는 의견이 있다. 불륜 여성을 잊지 못해 10년동안 스토킹하는 남성이라는 소재에 대해 불쾌함 혹은 공포까지 느꼈다는 후문도 있다. 연기자 선배라는 위치 때문인지 배우들의 연기 하나하나를 지도했으며, 초보자인 만큼 다른 감독들의 코멘트를 받으면서 영화를 준비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즉흥적인 컷을 많이 넣는다고 밝혔다.

영화의 논란에 대해 조재현은 이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 이 인터뷰는 SNS 등지에서 꽤 논란이 된 모양이다.

3.2. 성범죄 사건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조재현 성범죄 사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기타

  • 아들이 전 쇼트트랙 선수 조수훈이다. 어느 날 아들이 미국 쇼트트랙 대표선수가 대한민국으로 전지훈련을 와서 합동연습을 하게 됐는데 홈스테이를 할 곳이 필요하다고 해서 며칠 묵게 해줘도 되냐고 묻길래 흔쾌히 된다고 허락을 했다. 그런데 아들이 데려온 미국선수가 바로 이 인간. 2000년대 당시 오노는 전국민적으로 악명이 높았기에 홈스테이를 허락한 본인도 순간 황당했다고 한다.[18] 그리고 빙상계의 파벌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을 때 아들의 경험담을 칼럼으로 쓰기도 했는데, 조수훈 선수가 한 대회에서 1등을 했고 관계자들도 결과를 의심하지 않았으나 판정이 엎어진 적이 있다고 한다.
  • 김문수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 등 경기도에서 주관하는 영화 행사에 많이 관여해 왔고, 경기도 문화의 전당 이사장에도 임명되는 등 한나라당(現 새누리당) 소속의 김 지사와 각별한 관계가 아니냐는 오해가 있었다. 예전부터 김 지사와 친분이 있어서 직함을 맡게 된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다. 그러나 조재현은 위원장직은 담당 공무원의 추천을 계기로 맡게 되었고, 김문수 경기도지사와는 면식도 없던 사이였다고 밝혔다.[19]. 연극영화계가 대체로 진보 성향이 강하다 보니[20][21] 이런 모습이 튀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 조재현은 이같은 소문에 대해 몹시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 여러 차례 강력하게 부인한 바 있다. 자신이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게 되면서 관련 지자체인 경기도와 일을 하게 된 것일 뿐 새누리당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조재현은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는 원래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영화제"라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다루는 DMZ 영화제의 특성상 다른 일반 영화제보다 훨씬 진보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것. "DMZ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감독의 99%는 시대를 비판하는 진보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DMZ다큐멘터리 영화제가 추구하는 것은 '평화', '생명', '소통',이며, '소통'이란 상대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4대강 반대, 용산참사, 제주 강정마을, 쌍용 노조를 다룬 영화가 우리 영화제의 수상작들이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이런 영화제일 수록 새누리당 도지사가 있을 때 해야 한다고 추진한 거다."고 말했다. 또 DMZ 영화제가 용산 참사를 소재로 한 영화 '두 개의 문' 등 여러 다큐멘터리 영화를 지원했지만, 더많은 사회 고발성 다큐멘터리 영화를 지원하거나 챙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 # #
  • 이명박 정권의 문화예술 정책에 대해서도 크게 비판한바 있다. "MB 정부는 문화예술계의 진보적인 성향을 너무나도 배척했다. MB 정권 이전에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던 문화 관련 단체들의 지원이 MB 정권 들어 끊어진 게 많았다. 문화예술계에 몸 담은 사람의 생각이 정권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는 건 옳지 않다. 오히려 수용하고 품어주었어야 했다."라고 비난했다. 그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DMZ 영화제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영화들을 담고 있다. #
  • 조재현은 노동운동가로 유명한 박노해 시인과도 친분이 있으며,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 사회자로 김제동김미화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결국은 불발되기는 하였다). 또 MBC 파업을 지지하기도 했다.
  • 친형은 MBC의 조수현 촬영 감독. 제4공화국 촬영중 사고로 사망했다고 한다. [22] 사고가 나던 날, 조수현 감독이 '이 부분이 좀 아쉬운데 한 번 만 더 찍어봅시다'라며 재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때 웬 차량이 촬영장을 덮쳐서 그만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라고 한다. 문제의 차를 운전했던 사람은 술에 취해 있던 상태였고 드라마 스탭들이 들고 있었던 경광봉을 보고 음주 운전을 단속하는 경찰들이라고 오판해 급히 빠져나갈 곳을 찾다가 사고를 낸 것이라고 밝혀졌다. 훗날 세상을 떠난 형을 기리는 뜻에서 대학로에 '수현재(수현 + 재현)' 씨어터라는 공연장을 지었고, 이를 관리하는 수현재 컴퍼니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수현재 컴퍼니 페이스북 #수현재 컴퍼니 인스타그램 경기도 연천군에 DMZ 평화누리길을 조성하며 당시 DMZ 초대 홍보대사였던 조재현을 기념하기 위해 조재현과 죽은 그의 형 이름을 딴 수현재교를 건설했다. 후에 조재현의 미투 파문이 있은 후 경기도 측은 해당 다리의 이름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
  • 여담으로 창녕 조씨인데, 얄궂게도 창녕 조씨의 주요 인물 중에는 이성계정도전, 조준이 몰아내는 조민수가 존재한다. 조재현이 분한 정도전의 역할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본인은 불교인데 정작 정도전은 불교를 굉장히 싫어했다. 그리고 항렬상 규현조카뻘이라서. 라스 출연 당시 규현이 조카라고 부르며 놀려먹었다.
  • 정도전 갤러리에선 정도전을 챌정이라 부르는 것 처럼, 조재현을 맆조라고 부른다. '맆'은 리플레이(재현)의 줄임말. 정도전 갤러리에선 정도전의 다른 스태프, 출연인물들의 인증처럼 조재현의 인증도 기다렸으나 결국 종영할 때까지 인증을 하지 않았다. 다만 갤러리의 존재는 알고 있으며 자신에 대한 댓글은 다 읽어본다는 걸로 보아 눈팅도 많이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드라마 종영 후 팬미팅에서 눈팅 많이 한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인증글을 남겨달라는 부탁에는 생각해 본다고만 말했다. 개인적으론 제작진이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건 좋지만 너무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만 만들면 그 이상의 것을 만들기 힘들다고 말하며 경계했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정갤 댓글 읽기는 재밌다고. 그리고 드디어 정갤에 인증을 했다. 하루 동안 10,000번의 조회수와 3,000개의 댓글수를 기록할 정도로 엄청난 반응을 이끌었다.
  • 친한 사람이라면 선후배를 가리지않고 격없이 가까이 지내는 듯하다. 선배들에게 장난치는 걸 보면 영락없는 애교덩어리고 후배들[23]한텐 못말리는 형님
  • "아이돌이 출연하면 안 되는 드라마가 있다."라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예능 오디션에서 모두 떨어졌던 딸과 함께 예능 아빠를 부탁해에 출연했고 그 후 딸은 드라마에 캐스팅되었다. 내로남불의 아이콘이 되어 비난이 많다. 그의 딸 조혜정은 독립영화 오디션 권유 및 2015년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24]의 부녀 동반출연 등 조혜정의 커리어를 만들어준 게 아버지인 조재현임은 부정할 수 없다. 지상파 출연은 케이블 등에서 커리어를 쌓은 후 단계를 밟아 진출할 생각이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2016년 11월 MBC드라마 "역도요정 김복주"에 조혜정이 정난희 역으로 캐스팅되며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또한 납득할 만한 커리어도, 뛰어난 연기력도, 그렇다고 눈에 띌 만한 미모도 갖추지 못한 신인 배우가 바로 지상파에서 주조연에 캐스팅 되었다면 금수저 논란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확산되었을 것이다.
  • 이번 미투운동으로 인한 여파가 딸 조혜정에게 미치고 있다. 네티즌들로부터 '자신의 딸만 귀하고 남의 딸은 어떻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느냐'라는 질타를 받고 있다. #

5. 출연 작품

5.1. 영화

개봉 연도 제목 배역 비고
1988년 너를 사랑한다
1989년 매춘 2 오민국
1990년 남자시장
젊은 날의 초상 김인철
1992년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재호
1995년 영원한 제국 이인몽
1996년 카루나 종길
악어 악어, 용패
1997년 야생동물 보호구역 청해
내 안에 우는 바람 청년
1998년 처녀들의 저녁식사 영작
1999년 얼굴 김 순경
2000년 인터뷰 병권
망치 우정출연
2001년 교도소 월드컵 질문
수취인불명 개눈
나쁜남자 한기
작별 예고편 목소리
2003년 청풍명월 규엽
2004년 목포는 항구다 이수철
맹부삼천지교 맹만수
신부 수업 성당공사 인부
2006년 한반도 최민재 박사
로망스 형준
2007년 천년학 동호
2009년 마린 보이 강 사장
집행자 종호
2010년 인플루언스 고종황제
2011년 더 킥
2012년 무게 정씨
뫼비우스 아버지
콘돌은 날아간다 박 신부
2014년 역린 광백
2015년 파리의 한국 남자 상호
2016년 봉이 김선달 성대련

5.2. 드라마

방영 연도 방송사 제목 배역 비고
1989년 KBS 사랑이 꽃피는 나무
1990년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제2기
야망의 세월 막내동생
1992년 삼국기 부여 풍 [25]
1993년 MBC 떠도는 신화 주인공 김태수
여자의 남자 (정보석)의 친구
KBS 기쁨이면서 슬픔인 채로 영욱 드라마 첫 주인공 데뷔작
SBS 사랑과 우정 순구
1994년 MBC 베스트극장 - 완벽한 남자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 희준
슬픈 아비의 노래
베스트극장 - 인간에 대한 예의 운동권 선배
KBS 그대에게 가는 길
SBS 옥이 이모
1995년 KBS 한 울타리 진수 장애인의 날 특집극
사랑한다면서
1996년 SBS 도둑
KBS 찬란한 여명 고종 [26][27]
1997년 MBC
KBS 열애 기석
불 붙은 난간 이신욱 추석특집극
1998년 야망의 전설 마달수
바람처럼 파도처럼 도하
SBS 박장순
MBC 베스트극장 - 전등사 홍목 300회 특집
1999년 SBS 해피투게더 조필두
MBC 하나뿐인 당신 나경환
KBS 학교 2 국어교사 조재현 25회~
사랑하세요?
2000년 SBS 줄리엣의 남자 복규
루키 허장석
KBS 학교 3 국어교사 조재현 ~16회
2001년 SBS 피아노 한억관
2003년 MBC 다모 장성백의 부, 장일순
눈사람 한필승
2005년 봄날의 미소 임대범 가정의 달 특집극
SBS 홍콩 익스프레스 강민수
2007년 MBC 뉴하트 최강국
2011년 계백 의자왕
2012년 JTBC 신드롬 차태진
KBS 선녀가 필요해 고재현 특별출연
2013년 MBC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하명근
2014년 KBS 정도전 정도전
SBS 펀치 이태준
2015년 KBS 어셈블리 김동식 특별출연
2016년 마스터 - 국수의 신 김길도
JTBC 솔로몬의 위증 한경문
2017년 SBS 귓속말 이태준 특별출연
2018년 tvN 크로스 고정훈 중도하차

5.3. 연극

  • 《세발 자전거》... 89'
  • 《청부》... 90', 04'
  •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90'
  • 《우묵배미의 사랑》... 90'
  • 《에쿠우스》... 91', 04'(알런 스트랑 역), 09', 16'(마틴 다이사트 역)
  • 《변신》... 94'
  • 《자전거》... 94'
  • 《좋은 녀석들》... 94'
  • 《물고기 남자》... 99'
  • 《칼멘》... 01'
  • 《경숙이, 경숙 아버지》... 07'
  • 《민들레 바람되어》... 08', 09', 11', 14'
  • 《리타 길들이기》
  • 《그와 그녀의 목요일》... 12', 13', 14'
  • 《블랙버드》... 16'

5.4. MV

발표 연도 가수 곡명
2002년 포지션 마지막 약속
2006년 포맨 & 박정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바이브 그 남자 그 여자 (feat. 장혜진)
임재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6. 수상

연도 시상식 부문 작품
1991년 제27회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에쿠우스
1992년 제13회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1993년 제2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1999년 KBS 연기대상 남자조연상 학교 2
SBS 연기대상 남자조연상 해피투게더
2001년 제2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남우조연상 수취인불명
SBS 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 피아노
10대스타상
2002년 제38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나쁜 남자
2003년 MBC 연기대상 연기자 부문 특별상 눈사람
2008년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 뉴하트
PCG어워드 시상식 올해의 커뮤니케이터상
2011년 연극열전3 어워즈 작품상 에쿠우스[28]
2013년 제17회 판타지아영화제 남우주연상 무게
제1회 시드니영화제 장편부문 남우주연상
그리메상 남자 최우수연기상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MBC 연기대상 남자황금연기상
2014년 제50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정도전
제3회 에이판 스타 어워즈 장편드라마부문 남자최우수연기상
KBS 연기대상 방송3사 드라마PD가 뽑은 연기자상
남자최우수연기상
2015년 27회 한국PD대상 탤런트 부문 정도전, 펀치
제42회 한국방송대상 연기자 부문 펀치
S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 최우수남자연기상

7. 관련 문서




[1] 창녕 조씨 26세손 '鉉'자 항렬이다. 위키백과 등지에서 顯으로 표기되는데 잘못된 것이다. 이루와 같은 항렬이고, 규현태진아의 아들 뻘이다.[2] 프로필상으로는 170cm이지만, 연예계 프로필이 늘상 그렇듯이 160 중후반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듯.[3] 그래도 지금도 취미로 가끔 그림을 그리곤 한다. 2013년에는 전시회도 했었다. 관련 기사.[4] 현재 경성대학교 영화학과 교수.[5] 의외로 많은 연기파 배우들이 과거에는 발연기였다고 말했다. 이순재(이 분 성우 출신이다.) 조차도 자신이 30대가 되기 전까지는 발연기를 했다고 한 적도 있다. 이순재는 심지어, 성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저런 말을 했을 정도...[6] 조재현은 본인 외모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TV쇼에서 외모에 대한 칭찬을 받으면 당연하다는듯이 받아들이며 오히려 한술 더 떠서 스스로 외모를 띄울 정도. 어릴 때는 본인이 세상에서 제일 미소년인 줄 알았다고 한다. (젊었을 때 외모 사진을 보면 그럴 만하다.) 다만 키는 좀 작은 편이다. 프로필상으로는 170cm지만. 연예계 프로필이 늘상 그렇듯이 160 초중반 정도로 보는 것이 맞을 듯.[7] 참고로 이 영화를 찍은 홍기선 감독은 나중에 이태원 살인 사건을 연출한다.[8] 사고 당시 형이 참여하고 있던 작품은 제4공화국(드라마).[9] 형인 조수현 씨는 당시 MBC 입사 10년차로 이 해를 마지막으로 퇴사 후 아버지의 사업을 잇기로 했었다고 한다.[10]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영화에서 상대 역이었던 배우 서원이 이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버려서, 사실상 배우 인생을 접어버렸다는 것.[11] 서원의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그 때 강제적으로 그녀의 나체를 보며 영화를 찍었다는 것이 재조명되어서 이 때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생겼다.[12] 다만 그런다고 딱히 틀어질 사이로는 안 보이는 게 영화 나쁜남자의 코멘터리에서 조재현이 장난치는 걸 보면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친한 듯? 뭐 물론 장난치기 좋아하는 조재현의 성격상 누구한테나 그러는 걸지도 모르지만. (조재현: 저때 감독님이 다칠 뻔해서 스탭들이 상당히 좋아했었죠. 김기덕: 재현이 오늘 기분 좋은 일있었어?)[13]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과거 연극극장이 호황을 누리던 명동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얘기했을 정도로 연극계에 애착이 있다.[14] 참고로 아들 역할인 김재원과의 나이 차는 불과 16살이다. 여담으로 친아버지 역할이던 박상민은 조재현보다 5살 아래.[15] 사실 김흥기의 정도전 연기가 여간 본좌급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찌보면 논란은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16]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그려내기 위해 전형적인 사극어투를 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7] 이에 대해 조재현은 '서로 긴장하고 살자, 있을 때 잘하자라는 의미'라고 인터뷰를 통해 답했다.[18] 사실 오노가 한국에서는 비매너쇼맨십으로 특히 유명하지만 실제 쇼트트랙 선수들 사이에서 은근히 마당발이긴 하다.[19] 경기도 영상위원장 취임식 바로 전날에 김 지사의 얼굴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인터넷에서 찾아 봤을 정도라고 한다.(이야기쇼 두드림 조재현 편 참고)[20] 제1공화국 당시 임화수 등의 조폭 세력이 활개치다 5.16 군사정변 후 척결된 후에는 오버, 언더 상관없이 표현의 자유 문제 등으로 독재 정권의 억압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정치적 스탠스를 밝힌 상당수 관계자들이 대부분 진보 정당 지지자일 정도로 대체적으로 문화예술계는 보수정권에 대한 반감이 심하다. 연극영화계에서 보수 성향이면 정말 특이한 케이스[21] TV나 라디오 방송계에서 보수 성향의 인물이라고 알려진 인물들은 중도 우파 정도에 속한다. 이순재의 경우, 1988년과 1992년에 국회의원에 출마하며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전례가 있으나, 임기가 끝나고는 상대 후보였던 민주당 이상수 후보의 2006년 선거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이명박 박근혜도 지지한 전력이 있었지만, 박근혜 게이트가 터지고 난 이후, 보수정당과는 연을 접은 듯 하다.(그 예가 D학점 줬다고 전화오더라. 난 최순실이 아니다. 같은) 아마 보수정권에 대해 굉장한 실망을 한 듯.[22] 이 내용은 제4공화국 문서에도 있다. 이 사고는 최근 최순실 게이트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극 초반에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보고하면서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언급하고 조명한 화가 방영된 직후, 촬영중 사고로 조 씨가 사망했기 때문.[23] 배우 이서진은 조재현이 기획하는 연극에 이순재, 신구 같은 대선배가 출연한다고 하자 "재현이 형이 선생님들에게 깍듯이 못하고 잘 못 챙길 텐데 걱정이네요."라고 장난을 치기도... 이에 대해 조재현은 "저놈은 어디 외국대학 경영학과 나온 놈인데 경영에 실패해서 연기를 하는 거."라고 말하며 복수(?)했다.[24] 조재현 소유 극장에서 조재현이 주연인 연극에 부녀동반 출연한게 조재현의 영향력 때문이 아니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25] 희한하게도 일반인들에게는 이 사극에 출연한 사실이 알려져 있지 않다.[26] 조선의 실질적인 설계자였던 정도전과 사실상 마지막 왕이었던 고종의 역할을 모두 해 본 셈이다.[27] 덤으로 정도전은 고종때에 흥선대원군에 의해 복위된다.[28]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