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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32년 8월 9일 경기도 경성부 서사헌정(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장충단공원 뒷산 노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 이승만(李承萬)은 이승만 대통령과는 동명이인으로 관계가 없다.2. 상세
1932년 8월 9일,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한강리(현재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 살던 이승만(李承萬, 당시 44세)[1]은 같은 마을에 살던 이수복(李壽福, 당시 35세) 등 3명의 친구들과 함께 경기도 경성부 서사헌정(현재의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2가) 장충단공원에서 놀다가 한강리 방면으로 넘어가던 길에 장충단공원 뒷산 노점으로 향했다.그 뒤 이승만은 술을 마시던 중 친구 중 하나인 이수복과 말다툼이 벌어졌다. 싸움은 점점 격화되어, 이내 이수복이 이승만의 가슴을 마구 발로 차서 넘어뜨려 기절시키기에 이르렀다. 이에 이승만은 자택에서 치료를 받다가 같은 달 19일 오전 11시 30분에 끝내 숨졌으며, 이수복은 당일 도주한 뒤 종적을 감추고 [age(1932-08-0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잡히지 않고 있다.
출처
해당 범인의 나이를 고려하면 범인은 이미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피의자
이수복 李壽福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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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건을 보도한 1932년 8월 21일 동아일보 기사. | |
출생 | <colbgcolor=#fff,#191919>1897년[2] |
사망 | 몰년 미상 |
거주지 |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한강리 613번지 (現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
범죄유형 | 살인 |
이 사건의 가해자.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한강리에 살았으며 1932년 8월 9일에 친구들과 장충단공원에서 만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친구 이승만과 싸움이 붙어 그만 이승만을 살해하고 종적을 감췄다. 1897년생이란 것으로 유추하면 (통상적으로)최대 1980년대까진 생존했었을 것이다.
4. 피해자
이승만 李承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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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건을 보도한 1932년 8월 21일 동아일보 기사 | |
출생 | <colbgcolor=#fff,#191919>1888년[3] |
사망 | 1932년 8월 19일 (향년 44세) |
거주지 |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한강리 733번지 (現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
사인 | 타살 |
이 사건의 피해자.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이승만 대통령과는 동명이인이다.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한강리에 살았으며 1932년 8월 9일날에 친구들과 장충단공원에서 만나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이수복과 말다툼을 벌어 그게 싸움으로 번져 이수복에게 가슴 부위를 폭행 당해 기절했고 그 후 자택에서 치료를 받아가 1932년 8월 19일에 사망한다.
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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