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 ||
<colbgcolor=#bc002d> 발생일 | 2003년 9월 24일 ~ 2004년 7월 15일 | |
발생 위치 | 서울특별시 | |
유형 | 연쇄살인 | |
범인 | 유영철 | |
인명피해 | <colbgcolor=#bc002d><colcolor=#fff> 사망 | 20명[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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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영철이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총 10개월에 걸쳐 서울특별시 일대에서 저지른 연쇄살인 사건.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함께 인지도가 가장 높은 연쇄살인 사건 중 하나이며, 국내에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한 연쇄 살인 사건이기도 하다. 범인 유영철은 사이코패스의 개념을 대한민국에 정착시킨 장본인으로 일컬어질 정도로 사건의 충격과 파장은 엄청났다.
2. 범행 내용
2003년 9월 11일 전주교도소를 출소한 유영철은 13일 후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자대학교 이 모 교수와 부인을 살해했다.[2]이 사건 이후 2004년 7월까지 서울 각지에서 주로 부유층 노인 또는 출장 마사지사 여성 등 총 16건의 범행으로 20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살인 수법도 매우 악질적으로 진화해 피해자를 굉장히 잔혹한 방식으로 살해하였다.
살인 행각에 빠지기 이전에는 각종 절도나 금품 갈취를 했는데 위조한 경찰수첩으로 경찰을 사칭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업종(위에 언급한 출장 마사지라든가)의 사람들로부터 금전을 뜯기도 했다. 살인을 시작한 후 단순 절도로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었는데 주머니에 가지고 있던 위조 경찰수첩이 들통나면, 조사가 철저해져 연쇄살인범이라는 게 들통나 사형당할 거라고 생각해 경찰서 2층에서 뛰어내려 도주를 시도하는 등 별 기행을 했다고.
살인을 본격적으로 저지르기 전에 이러한 각종 절도 전과로 구속된 적이 있었는데 본인은 한 목사와의 인연으로 십자가를 지니고 있는 등 종교에 귀의하려고 했으나 결국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자 선처를 바랐는데 그게 안 되니 '신도 있는 놈의 편'이라고 생각해 반종교적으로 돌변했고 법정에서 소지하고 있던 십자가 목걸이를 부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논리부터가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일반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이해가 되지 않는데 절도죄의 법정형은 6년 이하 징역 아니면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게다가 유영철은 초범도 아니고 어린 시절부터 사고를 친 상습범이며 진심으로 회개하거나 반성한 것도 아니기에 감형의 여지조차 없다. 아무리 대한민국 법이 솜방망이라도 갱생의 여지도 없어 보이는 상습 절도범이 징역 10개월이면 많이 선처받은 셈인데도 뉘우치기는커녕 남 탓만 한다는 것인데, 이게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게 사실 대부분의 범죄자의 사고 방식이 이렇다. 교도소에 들어온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자기가 저지른 죄에 비해 자기가 받은 형량이 가혹하다며 억울해하고 자신을 이렇게 감옥에 들어오게 한 사람들을 되려 원망하는 억하심정을 내비친다는 증언들이 찾아보면 꽤 많다. 애초에 "잘못했으면 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자신에게도 공평하게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자제심이 많고 심리적으로 안정된 사람이었다면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연쇄살인의 전반부인 일련의 부유층 살해사건에서 상당수의 피해자 거주지가 교회 인근에 있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그의 범행 일지. 참고자료
- 2003년 9월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이모 씨(72세)와 부인 이모 씨(67세)를 둔기로 살해. 살인 후 유영철은 지문이나 발자국이 묻었을 가능성이 있는 곳을 치밀하게 닦은 다음 현관문 잠금 장치를 한 뒤 대문으로 빠져나왔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잭나이프를 두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시 담을 넘어 들어간 뒤 잠긴 현관문을 발로 차서 문고리를 부수고 잭나이프를 찾아 나왔다.
- 2003년 10월 9일, 종로구 구기동에서 주차 관리원 고모 씨(61세)의 집에 침입해 고 씨의 아내(60세), 어머니 강모 씨(85세)와 고 씨의 아들(35세, 지체장애)을 둔기로 34회를 강타해 살해했다. 특히나 고 씨의 아들이 2층에서 내려오자, 그의 목에 잭나이프를 들이대고 2층 복도로 끌고 올라와, 해머로 머리를 내리쳐 쓰러뜨린 후 두개골이 부서져 뇌가 빠져 나올 정도로 머리를 수 차례 내리치는 잔인성을 보였다.
- 2003년 10월 16일 강남구 삼성동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유모 씨(69세)를 둔기로 살해. 부부의 아들이 집에 들어왔을 때, 유 씨가 자신의 단독주택 화장실 바닥에서 피를 잔뜩 흘린 채 의식을 잃어 가면서 신음하던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였다.[3] 현장감식 결과 같은 발자국이 안방과 거실, 화장실에서도 발견되었고 구기동 사건 족적과 비교해 보니 일치했다. 이때부터 언론은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기 시작했고 "경찰이 범인의 윤곽조차 잡지 못한 채 엉뚱하게 피해자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수사 대상으로 삼아 괴롭힌다"고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4] 경찰은 피해자가 노인이라는 점, 묵직한 둔기, 잔인한 범행수법 등을 통해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의견을 내놓았으나 신사동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의 머리에 난 상처 깊이가 4~5㎝ 쯤이고 폭이 넓다는 점, 피해자 중 1명인 이모 씨(67세)의 목에는 깊이 2.5㎝의 자상도 있는 것과는 달리 삼성동 사건 피해자의 상처는 길이 3㎝ 안팎의 1자형이고, 다소 가볍고 긴 형태의 둔기에 맞은 것으로 보고, 살인도구가 다르다는 점을 들어 동일범이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 2003년 11월 18일 종로구 혜화동의 2층 단독주택에 침입해 집주인 김모 씨(87세, 남)와 파출부 배모 씨(53세, 여)를 둔기로 살해. 증거 인멸을 위해 금고에 불을 지름. 현장에 태어난 지 3개월 된 증손자가 이불에 둘러싸여 질식 직전까지 갔으나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5] 피해자의 집 주변을 수색하던 경찰은 인근 건물 입구에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해 녹화된 테이프를 제출받아 분석했고 자신의 상의에 피가 튀어 이를 감추기 위해 피해자 집 옷장에 걸려 있던 점퍼를 입은 채 걸어 내려가는 범인의 뒷모습이 찍힌 화면을 찾아낼 수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영상분석실에서 분석한 결과 범인의 키가 168cm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경찰은 CCTV 화면에 찍힌 뒷모습과 168cm의 키, 20~30대 후반의 남자, 그리고 족적 검색을 바탕으로 금강제화 버팔로 캐주얼화를 신고 다니는 사람을 찾는다는 수배 전단을 전국에 배포했다.
- 2004년 4월 14일 서울 중구 황학동의 도깨비시장에서 노점상을 하던 안모 씨(44세, 남)를 안 씨의 베스타 승합차로 유인해 살해. 유영철은 2004년 4월 13일 밤, 중구[6] 황학동 삼영빌딩 1층 백성프라자약국 앞에서 비아그라와 음란 CD를 판매하는 피해자의 동태를 살피다가 영업을 끝내고 남은 물건들을 들고 자신의 베스타 승합차 쪽으로 가던 피해자에게 다가갔다. 위조한 서울지방경찰청장 명의의 경찰관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음비법위반, 약사법위반으로 적발하겠다.”면서 피해자의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워 승합차 조수석에 태웠다. 승합차를 운전해 가던 중 피해자가 유영철의 신분을 의심하는 태도를 보이자 피해자를 살려 두었다가는 그간의 살인 행각과 경찰관 사칭 행각이 드러날 것을 염려하여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결정하였다.
유영철은 수갑을 채워 피해자를 저항하기 어렵게 만든 다음 코팅 장갑을 낀 손으로 잭나이프를 들고 피해자의 얼굴과 머리, 목 등을 마구 찔렀다. 피해자가 죽은 것으로 생각해 피해자를 뒷좌석 밑에 가로방향으로 눕혀 놓고 옷가지로 덮으려고 하였으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피해자가 피고인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저항하자 다시 잭나이프로 피해자의 허벅지 등을 찌르고 가방에서 꺼내든 해머로 피해자의 머리를 수 회 내려쳐 피해자는 두부손상으로 사망하였다.
잭나이프로 피해자를 찌르는 과정에서 실수로 베인 오른쪽 손등 상처의 피가 승합차 안에 떨어진 것을 보고 피를 없애 버리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 승합차에 불을 지르기로 마음먹었고 사체에 옷가지와 신문지를 덮어놓고 승합차를 운전하여 다시 자신의 오피스텔에 도착하여 몸에 묻은 피해자의 혈흔 등을 닦고 옷을 갈아입은 후 승합차를 운전하였다. 다음날 새벽 1시에 인천 중구 북성동 소재 삼호석유 주차장에 도착하여 연쇄폭발을 유발하기 위해 2대씩 주차된 유조차량 사이에 위 승합차를 주차시켜 놓고 뒷좌석에 올라탔다.
수갑에 묶인 피해자가 살해당하기 직전 피고인에게 저항하기 위해 심한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두 손목에 선명하게 난 수갑 자국을 없애 버리는 한편, 피해자의 신원도 확인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잭나이프로 두 손목을 절단하여 이를 비닐봉지에 담았다. 그리고 승합차 안에 있던 신문지와 옷가지를 사체 위에 올려놓고 승합차 안에 있던 라이터로 불을 붙여 그 불길이 피해자의 사체 및 승합차에 옮겨 붙게 하였다. 이어 위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두 손목을 그곳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월미도 횟집상가 앞 방파제 바위틈에 버렸다.
피해자의 시신은 월미도에서 기름탱크에 담겨 불태워졌고, 뒤늦게 유족들이 겨우 몇 점을 수거하여 장례를 치렀다. 그는 평소 노점상 단속 때문에 경찰서를 자주 들락거렸기 때문에 유영철의 경찰 신분증이 가짜라는 걸 단번에 알아보았는데 그 점이 유영철을 자극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피해자는 4형제 중 장남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사건 이후 가정이 풍비박산났다고 한다. 그의 피살 7개월 후에 둘째 남동생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 둘째 남동생은 동거 중인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녀 역시 애인의 자살 이후 얼마 안 가 뒤따라 자살했다고 한다. 8개월 후 막내 남동생도 자살로 생을 마쳤다. 마지막 생존자인 셋째 남동생도 자살을 시도했으나 구사일생하여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으며 겨우 살아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연쇄살인 피해자 유가족이라는 게 알려지자 알던 사람들이 모두 그를 멀리하고 떠나가면서 사회적 고립까지 얻었다고 한다. 피해자의 아내는 현장검증 현장에서 너무나 태연한 유영철의 모습에 울부짖다가 실신하기도 했다. 결국 그녀는 자식들과 함께 아예 잠적해 버렸고 연락이 아예 끊겨 서로 안부는 물론 생사조차 모른다고.
- 2004년 3월부터 7월까지 마포구 신수동 오피스텔에서 1명, 마포구 노고산동의 한 오피스텔[7][8]에서 전화방 도우미와 마사지 도우미 등 여성들을 불러들여 총 11명을 살해하고 시체를 토막냈다. 그는 토막낸 시신을 10개의 검정 비닐로 분리해 싸고 4개의 큰 검정 비닐에 나눠 담은 뒤 택시를 이용해 운반하여 1구는 마포구 대흥동 서강대학교 도서관 뒷산 등산로 나무 밑에, 10구는 서대문구 봉원동 봉원사 주변 한방병원 신축공사장 주변에 암매장하였다.
유영철은 전화로 여성들을 불러 길거리나 여관에서 만난 뒤 컴퓨터 스캐너 장비와 컬러 프린터기를 이용하여 서울지방경찰청장 명의의 위조 경찰관 신분증과 남대문시장에서 구입한 수갑을 보여줘 경찰관을 사칭하여 함께 자신의 오피스텔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간 유영철은 여성들에게 샤워를 하게 한 후 욕실로 들어가서 해머로 머리를 가격하여 기절시키고 나서 거버 사의 나이프로 목을 자른 후 욕실에서 시신을 16~18개로 토막냈다. 특히 유영철은 "자른 머리의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묶어 벽면에 달린 휴지걸이에 매달아 놓아 피를 다 빼냈다"고 진술해 충격을 주었다. 시신을 토막낼 때 소리가 날까 봐 물을 틀어서 물소리가 나게 했으며 반젤리스의 <Conquest of Paradise>라는 노래[9]를 틀어 놓고 사체를 잘랐다.[10] 처음에는 쇠톱을 이용하였고 시간도 많이 걸렸으나 차츰 능숙해져서 칼만 가지고도 토막을 내는 시간이 점점 짧아졌다.[11]
또 혹시라도 DNA 검사로 자신의 신원이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11명의 피해 여성들 중 단 한 명과 성관계를 맺었을 뿐 나머지는 즉시 살해하였으며 그러고도 안심되지 않았는지 관계를 맺은 피해 여성의 손가락 지문을 모두 칼로 벗겨내어 화장실 변기에 버리는 치밀함을 보였다. 토막 낸 시신을 검정비닐로 싸는 과정에서 자신의 지문이 남을까봐 시신을 땅에 묻은 뒤에 비닐봉지를 모두 회수하였다. 유영철은 일반적인 연쇄살인범들이 보이는 피해자의 공포나 경악스러운 감정을 보고 싶어하거나, 피해자가 자신에게 동정과 자비를 갈구하는 행동을 즐기지 않고 순식간에 피해자들을 즉사시켰다.
하지만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사체에 대한 모욕이나 절단 등의 엽기적인 행동을 했는데 시체의 뇌수를 믹서에 갈아 먹는 등의 식인 행위는 물론 간과 자궁, 음부 등을 잘라내는 등의 시체훼손을 저질렀다. 유영철은 피해자를 죽인 순간을 회상하기 위해 자신만이 알고 있는 장소에 사체를 토막내어 암매장하였고, 피해자가 차고 있던 팔찌를 전리품으로 가지기도 했는데 프로파일러들은 이러한 유영철의 행동을 "연쇄살인범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회상기"라고 분석했다. 모든 살인과 살인 간 일정한 냉각기간을 가진 뒤 침체기가 끝나면 살인을 반복하였는데 특히 직업여성 계획 살인에서는 냉각기간의 간격이 매우 빨라지는 것으로 보아 범행 수법이 점차 숙달되어 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6월 2일 전화방 도우미 35세 여성 살해.
- 6월 전화방 도우미 신원불명(20대 후반) 여성 살해.
- 6월 9일 출장 마사지사 26세 여성 살해.
- 6월 18일 전화방 도우미 27세 여성 살해. 사실 유영철은 같은 업소의 다른 여성을 불렀는데 피해자가 대신 유영철을 찾아오는 바람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 6월 25일 출장 마사지사 28세 여성 살해.
- 7월 2일 출장 마사지사 26세 여성 살해. 피해자의 이름이 유영철과 사귀고 동거하다 헤어진 여성과 같다는 이유로 살해하고 나서도 시신을 마구 훼손했다.
- 7월 9일 출장 마사지사 24세 여성 살해.
- 7월 13일 출장 마사지사 27세 여성 살해.
유영철이 직접 그린 토막살인 과정. 유영철은 피해 여성 11명을 죽인 뒤 시체를 16~18조각으로 나누어 유기했는데 덩치가 작으면 16조각, 덩치가 크면 18조각 토막냈다.
2.1. 체포
경찰이 도주한 유영철을 급히 잡기 위해 만든 수배 전단 |
2004년 9월 6일 첫 공판 때 교도관 20명이 달라붙어 호송되는 모습 |
조사 내내 묵비권을 행사했으나, 김용화 수사부장(경무관)[12]이 와서 직접 조사하자 4건의 살인을 자백했다. 현장 검증에서 26명을 살해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내장이 모자라는 시체가 몇 구 있어 추궁했더니 식인도 했다고 자백했다.[13] 하지만 26명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추후에 유영철 본인이 이를 부인하고 정황도 맞지 않아서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수사 담당자가 밝히기도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살해된 희생자는 20명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8월 13일 구속 기소되어 이문동 살인 사건[14]을 제외한 20명에 대한 살인죄의 유죄가 인정되어, 2005년 6월 9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었고 [age(2005-06-09)]년이 지난 현재도 복역 중이다.
여기서 검찰의 실수를 확인할 수 있다. 유영철이야 어차피 이문동 살인사건이 유죄가 되건 말건 똑같은 사형이지만 희생자 유가족들의 처지가 문제인데 만약 여기서 이문동 살인사건을 유죄로 판결하면, 희생자 가족들은 영영 진범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구체적인 증거도 없으면서 상고심까지 끌고 갔고, 결국 확정판결 이후인 2006년에야 연쇄살인범 정남규가 이 사건을 저지른 것을 자백하고 조사 결과 사실로 확인됨으로써 뒤늦게 진범이 밝혀졌다. 표창원의 <한국의 연쇄살인>(2005)에서도 경찰 수사방향을 따라 이문동 살인사건을 유영철에 묶어 다뤘지만, 당시 여기서도 "범죄의 대상과 방식에 명확한 차이가 있다"고 밝히면서 의혹을 나타내며 서술해 놨다. 물론 이 때는 정남규가 아직 잡히지 않았을 때.
유영철에 대한 사형은 [age(2005-06-09)]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집행되지 않아 사형 미결수로 분류되어 있다. 2007년 1월경 법무부에서 유영철에 대한 사형을 추진했다가 인권신장을 최대가치로 내세운 참여정부의 청와대의 반대에 막혀 무산된 바 있다.# 이 때문에 사형제에 관한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사형/존폐 논란 참조.[15]
그가 살해한 희생자들은 대부분 금전에 상관없이 그저 그가 죽이기 쉬운 사람들이었다. 유영철은 경찰 조사 중 윤락녀처럼 보이는 여성을 주로 노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닌 사람도 있었고 오히려 여성의 옷차림이 강간 및 살인에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매우 잘못된 통념을 불러오게 되었다. 유영철이 고른 여자 중에 윤락녀가 있는 합리적인 이유는 자신의 집으로 유인하기 쉬운 데다 섣불리 경찰에 신고를 못할 가능성 때문에 선택했던 것일 뿐, 윤락녀처럼 보이는 여성을 노렸다는 건 한때 종교를 믿으면서 색욕을 죄악시한 관념에 기초한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초기에 저지른 범죄와 후기에 저지른 범죄가 어느 정도 차이점을 보인다. 초기에는 타인의 가택에 불법 침입하여 둔기를 휘둘러 살해하는 방식을 사용한 반면 후기에는 주로 출장 마사지사를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곳에 불러들여 살해 후 시체를 훼손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는 주택가 CCTV에 자신의 뒷모습이 완벽히 잡혀서 신고 있던 신발 종류부터 머리에 쓴 모자까지 완벽히 나열된 채로 수배되자 두려움으로 인해 범행에 소극적으로 변한 것이다. 또 이후 은둔 생활을 하다 돈이 궁해진 데다 이혼 통보를 한 아내에 대한 원한으로 성매매 여성들을 불러 금전을 빼앗은 뒤 여성이 업주에게 스스로 '좋은 사람을 만났다. 그만둔다'며 거짓 전화를 강요하는 식으로 가짜 알리바이까지 만들어 놓고는 손망치로 살해한 것이다.
당시 유영철이 체포된 뒤 경찰에서는 프로파일링의 승리라고 자화자찬을 벌였으나 실제로 유영철을 붙잡은 건 성매매 업소 업주들이었다. # 특정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나간 여인들이 잇달아 돌아오지 않자 몇몇 보도방 업주들이[16] 회담을 했고 전화번호를 요주의로 분류하고 그 결과 유영철을 유인해 붙잡았다. 유영철이 체포됐을 때 마스크를 쓴 것도 보도방 업주들한테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당해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유영철은 꼬리가 밟힐 것을 우려해, 한 번 이용했던 업소 전화번호는 다시 이용하지 않았지만 그 각기 다른 전화번호들이 최종적으론 한 업소로 수렴된다는 걸 몰랐다는 것이다.
그때 경찰은 업주들의 요청에 따라 한 명을 딸려 보냈는데 그것 때문에 자신들(경찰)이 체포했다고 광고하면서 자화자찬하고 관계자들을 승진시켰다가 사실이 밝혀지자 중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보도방 업주들은 반년 후 모조리 다 구속되고 처벌받았다. 이것이 영화 추격자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2.2. 사이코패스 여부
사이코패스 판정 검사인 PCL-R 검사에서 30점[17] 이상의 점수를 받았다.[18] 다만 이 검사는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처럼 무슨 만능 검사가 아니다. 또 사이코패스와 쾌락 살인자는 구별될 것도 일치될 것도 없다. 그저 겹칠 가능성이 낮지 않게 존재하는 서로 다른 개념일 뿐이다. 혼동하지 말자. 주된 동기에 따라 분류하면 증오 범죄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유영철의 경우, 본질적으로는 증오 범죄가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사회에 대한 분노나 증오도 없지는 않았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연쇄살인마 게리 리지웨이[19]처럼) 사명감이나 증오범죄의 표피를 쓴 쾌락살인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는 주장이다.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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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내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2] 이때부터 정두영 등 일반적 강도살인범과 전혀 다른 행태를 보였는데 재물에는 손을 안 대고 사람만 죽였다는 점이다. 즉 살인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이야기.[3] (조선일보, 2003년 10월 17일)[4] 중앙일보, 조선일보 2003년 10월 17일자[5] 이듬 해 8월 아기의 돌잔치를 했을 때 가족들이 아기를 구조한 경찰관을 초대하기도 했다.[6] 판결문에는 동대문구라 써져 있다. 해당 지역이 중구, 종로구, 동대문구, 성동구의 경계선이 근처에 있다 보니 판사가 혼동한 듯.[7] 노고산동 54-96. 사건 당시 그 지역에서는 해당 장소가 악명이 높았는데 신촌역 7, 8번 출구와 서강대역 기준으로 2번 출구 사이다. 상가나 오피스텔 등 작은 건물들이 골목 따라 쭉 섞여 있던 지역(사실상 시장 비스름한 곳)에 있던 곳 중에서도 끝 쪽 구석 깊은 곳에 있었다. 2010년대 들어 근처 대부분 건물들이 재개발되었고 사건이 일어난 건물도 새로 지어졌다.[8] 당시 유영철이 거주하던 오피스텔에 살던 어떤 사람에 의하면 밤에 웬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자주 들렸다고 하며 건물 주인이 '이번 달은 유난히 수도요금이 많이 부과되었다'고 의심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모터 돌아가는 소리는 시신을 토막내는 소리였고 수도요금이 많이 나온 이유는 시신을 토막낼 때 물을 많이 소비했기 때문인데 당시만 해도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한다. 나중에 유영철이 체포되었을 때 TV에 자신이 거주하던 오피스텔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모터 소리와 과다한 수도 요금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9] 제목을 모르는 사람들도 멜로디만 들으면 많이 들어 본 노래일 것이다. 영화 <1492 콜럼버스>의 OST이며 주로 항해하는 장면 등이 나올 때 BGM으로 많이 사용된다. 굉장히 멋있고 웅장한 노래인데 이런 노래를 틀고 사체훼손을 했다는 점에서 유영철이 자신의 범행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스스로를 얼마나 영웅시했는지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10] (조선일보, 2004년 9월 20일)[11] 해당 곡이 클래식풍의 노래다 보니 유영철이 클래식을 틀어놓고 범행했다거나 심지어 클래식에 조예가 깊다는 식으로 와전되기도 하지만 당연히 아니다.[12] 웬만해서는 일선 경찰서장보다 높은 계급이다. 형사 출신 김복준과 프로파일러 출신 김윤희가 방송하는 유튜브 채널에서는 "군으로 치면 원스타"라고 비유하며, "경찰 역사에 전무후무할 일"이라고 묘사했다.[13] 공식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며, 어차피 체포된 김에 악랄한 최악의 살인마로 기억되고 싶어서 허위주장을 했을 수도 있다는 프로파일러들의 분석이 있다.[14] 범인은 정남규였고 2006년 4월 체포 당시 본인이 범인임을 자백하였다.[15] 대한민국은 문민정부 말기인 1997년 12월 30일 23명 사형집행 후 [age(1997-12-30)]년이 흐른 지금까지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어 2007년부터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로 분류되어 있다. 2023년 기준으로 사형 폐지 혹은 사실상 폐지 국가는 총 133개국이며 사형 집행국은 중국, 베트남, 북한,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지 및 미국 일부 주, 일본 정도다. (미국은 50개의 주가 존재하며 각 주마다 전부 다 법이 다르다.) 유럽연합은 사형제 폐지가 가입 조건이며 한국은 EU와의 범죄인 인도조약 체결 과정에서 '인도자에겐 사형 집행을 포기한다'는 서약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물론 유럽에서 넘어온 범죄자만 사형 집행을 않겠다는 이야기지만, 외교 조약은 호혜주의가 원칙이므로 이런 형평성 문제는 적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까지 마약류 유통의 혐의로 자국에 수감된 한국인을 사형 선고 및 집행을 했다. 사실 미국도 연방 주나 도시들마다 사형제가 있는 주와 도시가 있고 없는 주와 도시들이 있다.[16] 업주 중에 경찰 정보원으로 쓰이던 조폭도 있었고 전직 경찰도 있었다. 그 전직 경찰이 현직 경찰에게 첩보를 준 것이다.[17] 40점 만점에 38점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18] 25점부터 사이코패스로 판정된다.[19] 유영철과 주된 피해자(매춘 여성), 표면적 동기(사회 정화 등)가 꽤 유사한 연쇄살인마다. '그린 리버 살인사건'의 범인 역시 사이코패스로 미국 범죄학에선 '가장 보편적인 사이코패스'라 불리며 지금도 중요하게 연구되고 있다. PCL-R 만점이 나오는 게 당연할 정도다. 여담으로 둘 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자신의 국가에서 최대 살인마의 기록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