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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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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결성3. 조직원 목록
3.1. 김기환3.2. 강동은3.3. 김현양3.4. 문상록3.5. 강문섭3.6. 백병옥3.7. 이경숙3.8. 송봉우(송봉은)
4. 범죄 행각
4.1. 첫 번째 범행 ~ 아지트 완공 전4.2. 아지트 완공 ~ 검거 전
5. 체포6. 처벌7. 피해자 이 씨8. 기타
8.1. 여죄의 가능성8.2. 대중문화계의 반응8.3. 여담8.4. 미디어
9. 외부링크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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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尊派

1. 개요

1990년대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연쇄살인조직. 원래 이름은 지존파가 아니라 '마스칸'.[1]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을 검거한 고병천 수사과장이 지어준 이름이다.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훈련을 할 때 이마에 지존(至尊)이라고 쓰인 두건을 두르고 훈련을 했다는 증언을 바탕으로 고반장이 조직원들과 합의 하에 지었다. 게다가 두목인 김기환의 별명 역시 '지존'이었다.

범죄 조직을 뜻하는 XX파라는 이름은 경찰이 관리 편의를 위해 임의로 붙인 것이지 조직 자신이 칭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당시 언론은 이들이 홍콩 영화를 보고 지은 것으로 보도했고 홍콩 영화를 좋아하던 청소년들이 덩달아 욕을 먹었다. 여기에 표창원도 낚여서 자신의 저서인 '한국의 연쇄살인'에 무협영화 같은 대중매체의 안 좋은 영향의 예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후술할 비슷한 시기에 박성배 감독의 영화 <해적>도 지존파 사건으로 인한 공연윤리위원회의 폭력물 검열 강화로 전체의 93컷이 잘려 개봉되었다.

일반적으로 연쇄 살인자는 단독으로 활동하는 사례가 많으며 두 명 이상이 개입된다고 해도 서로 부부나 연인, 혈연인 경우가 많은 것과 비해[2] 약간의 인연만 있던 타인들이 오직 살인을 위해서, 그것도 6명이라는 대규모 집단을 조직한 것은 세계적으로 상당히 특수한 사례[3]에 속한다.[4] 이들이 준 충격은 가히 엄청났으며 천하의 공영방송 앵커들조차 이들의 범죄를 전하면서 말을 더듬으며 차마 전할 수 없다는 표현을 반복할 정도였다. 범죄 내용도 내용이지만 하필 사건이 공개된 시기가 추석 연휴여서 그 충격은 더 컸다. 지금이야 치안이 좋아져서 상대적으로 보도가 더 자주 이루어지기에 충격이 오히려 적지만 사건 당시에는 상대적으로 보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던 시기였다.[5] 세상 어디에서도 듣도보도 못한 유형의 범죄였기에 당시엔 충격이 상당히 컸고, 2010년대 기준으로 봐도 발상 자체가 상당히 엽기적인 범죄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사람들에게 최악의 범죄 및 살인사건을 꼽으라면 종종 거론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범행 동기를 불평등한 사회 구조로 돌렸는데, 개인이 아닌 사회를 대상으로 한 보복성 살인이라는 것에 사회 전반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이들은 행동강령도 있었는데 당시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 돈이 많은 자를 증오한다.
* 10억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 배신자는 죽인다.
*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6]

결국 10억이라는 많은 돈을 모은 자기 자신들을 증오한다. 그리고 여자를 믿다가 검거당했다. 앞의 말은 지존파를 조롱하는 농담이긴 하지만 지존파는 심지어 그 후에도 또 여자를 포섭했었다. 조직원 중 한 명의 여자친구였고 당연히 처벌받았다.

2. 결성

지존파의 결성 계기는 대학입시부정사건에 분노하여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그들을 벌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사실 지존파는 두 번 결성되었다.

1992년 말, 김기환은 고소득자들의 돈을 갈취하고 살해하는 범죄조직을 조직할 계획을 세울 결심을 하고, 탄광 일을 할 때 알게 된 조 모 씨에게 살인을 제외한 범죄 계획을 알려주며 설득에 나섰다. 평소 조 씨의 경제적 여건과 성정을 알고 있던 김기환은 설득에 성공했고, 조 씨의 친구, 도박을 하며 알게 된 사람 세 명을 포섭해 조직을 결성했다. 그러나 그 범죄 계획에 살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조직원들이 이를 꺼려 결국 해체되었다.[7]

1차 조직 결성 실패 후 1993년 초, 갈 곳이 없어진 김기환은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탈퇴한 전 멤버의 소개로 '가희산장'이라는 비밀 도박장에서 도박을 하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김기환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더 못 배우고 부자에 대한 증오심이 훨씬 강한 자들을 포섭하려 했고, 실패 요인을 없애기 위해 대화술 관련 서적을 읽으며 더 철저하고 견고한 조직을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 해 3월, 고향 후배인 강동은과 접촉해 그들에게 범죄 계획의 일부를 조금씩 흘려가며 차분히 설득에 나섰다. 자기 의지로 가담할 수 있게 1개월이라는 유예기간도 줬다. 강동은이 적극적으로 찬성을 외치자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인 문상록, 후배 송봉은도 동의하여 세 사람은 조직에 가입하게 된다.

김기환 외 세 명은 전주로 이동해 함께 생활하며 조직 결성과 범죄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강동은이 교도소 동기였던 백병옥을 떠올렸고 당시 천안에서 막노동을 하던 백병옥을 합류시켰으며 문상록은 같은 곳에서 일했던 강문섭을 강동은에게 소개해 포섭했다. 이주현 씨는 같은 해 6월, 평소 "은행강도가 되고 싶다."던 김현양을 김기환에게 소개해 조직에 합류토록 했다.

이렇게 조직은 그해 7월, 포커판에서 김기환을 중심으로 강동은,김현양, 문상록, 강문섭, 백병옥, 송봉은을 축으로 하여 조직되었다.[8]

이미 한 번의 실패 경험이 있었기에 김기환은 조직의 유지에 굉장히 신경 썼는데, 평소 "배신한 자는 반드시 처단한다.", "잘 때 내 가슴을 열어놓고 잘 테니 나가고 싶다면 내 가슴에 칼을 꽂고 가라. 다만 그러지 못하면 지옥까지 쫓아가 죽일 것이다."라고 하는 등 조직의 기강을 흔드는 자에게 용서란 없으며 조직에 합류한 이상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했다.

후에 김기환의 수감 후 부두목이 된 강동은이 식사 준비와 잡일 등을 시킬 여성 조직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애인이자 영광의 J주점 종업원 이경숙을 합류시켰다.[9] 하지만 이경숙이 가담한 지 이틀 만에 전원 검거되어, 그녀는 살인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다는 이유로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3. 조직원 목록

3.1. 김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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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基煥, 범행 당시 나이 26세(1968년생).

지존파 두목이다. 3세에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초등학교 6년 내내 우등상을 받았고 반장을 해본 경험도 있었으며 반면에 생활기록부 행동발달사항엔 '지도력이 강하고 급우를 잘 통솔하나 간섭이 좀 심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법정에서 최후진술을 할 때 “초등학교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살 돈이 없어서 안 가져 갔더니 선생님이 그러면 친구들 것을 뺏어서라도 가져왔어야지!라고 혼냈다. 그래서 친구들의 준비물을 훔치기 시작했고, 그러면 선생님은 날 혼내지 않았다. 난 선생님이 가르친 대로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라며 자신의 범죄를 남탓으로 돌리는 등 전혀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 뻔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0]

중학교 시절에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고 운동 능력과 글 짓기 실력도 우수했다. 이로 미루어볼 때 다른 조직원들보다 지능적으로도 매우 우수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 덕분에 집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생활기록부 상에 준법 정신이 낮은 수준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중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형마저 병에 걸리자 학교를 자퇴하고 돈을 벌기 위해 부산으로 떠났다. 부산으로 내려간 후 가장 먼저 취직한 곳은 한 신발공장이었다. 월급의 대부분은 어머니께 보냈고 중단할 수 밖에 없었던 학업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틈틈이 검정고시 준비도 했다. 그 후 몇 년 간 대한석탄공사에서 잡부 일을 하거나 공사판 등을 전전하며 나름 열심히 일을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검정고시 준비도 그만두고 얼마 후에 직장도 그만둔 뒤 영광 고향집으로 돌아와 잠시 가족들과 지냈다. 그 와중에 도박에 빠져 도박으로 인한 빚도 지게 되었다. 포커를 잘 해서 ‘지존’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 지존이란 별명은 조직 결성 후 부하 조직원들에 의해 ‘두목’을 대신하는 칭호로 쓰이게 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이 필요했던 김기환은 ‘가진 자들을 징벌한다.’는 명분으로 ‘부자들의 돈을 갈취하여 살해하는 조직 결성’이라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고, 조직 결성을 위해 각종 범죄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처세, 대화술 관련 서적을 탐독했다. 첫 조직 결성은 실패하고 고향 후배 강동은 등을 끌어들여 현재 잘 알려진 멤버들로 지존파를 결성하여 두목이 된다.

조직 결성 후 담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조직원들에게 지리산에서 일주일 간 물 한 병과 칼 한 자루로 버티도록 훈련을 시키고 조직원들과 막노동을 해서 모은 돈으로 어머니가 기거하던 집을 살인 아지트로 개조한다. 평소엔 동네 형처럼 조직원을 대했지만 강압적인 리더십으로 조직원들을 복종케 했으며 조직의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 첫 번째 피해자인 최미자 씨와[11] 송봉은 살해를 주도한다. 실제로 조직원들은 송봉은 살해 당시 두목인 김기환에게 잘 보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잔혹하게 살인 행위를 했다고 한다.

아지트 완공을 얼마 앞두고 실전에 돌입하기 전인 1994년 6월 17일 김현양의 생일날 조직원들과 술을 마신 후, 밤 중에 불현듯 '아는 선배의 집에 보일러 수리를 하러 가겠다'며 자리를 비운 김기환은 선배의 집에서 자고 있던 선배의 중학교 1학년 조카를 강간해 체포된다. 이때 김기환은 범행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는데, 전문가들은 김기환이 직접적인 범행으로부터 손을 떼고 중죄를 면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강간치상죄로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된 김기환은 수감된 후에도 강동은을 부두목으로 임명해 부하 조직원들에게 범행을 지시했다. 수감되어 있는 중에도 그의 말은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법이었다.

후에 지존파 전원이 검거되어 서울구치소로 이전된 뒤 1995년에 사형이 확정된다. 사형선고를 받고 나오는 길에 "야! 전두환, 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는 왜 유죄여? 이건 세상 법이 X같은 것이여!"라는 어록을 남겼는데, 사실 전두환과 노태우 건은 본인 사형 선고 이후의 일이고 지존파에게 내려진 사형이 잘못된 것도 아니다.

3.2. 강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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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東銀, 검거 당시 나이 21세(1973년생).

부두목이다. 고등학교를 중퇴 했고 특수절도, 폭력전과 2범이다. 김기환의 국민학교, 중학교 후배였다. 다른 조직원들과는 달리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넉넉한 가정형편은 아니었고 형제가 많아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학창시절부터 폭력적인 성향이 짙어 급우들을 자주 폭행했고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활기록부 상에는 '매사에 무관심한 성향', '바른 생활이 요구됨'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동창인 문상록과 함께 이웃집의 벼 두 가마니를 훔쳤다가 절도 전과를 갖게 된다. 밴드부에 가입해 음악에 취미를 붙여보려고도 했으나 선배들의 가혹행위가 심해 그만두었다. 그 후 방황하다가 결국 문상록과 가출해 상경한 후 막노동을 시작했다. 전과삭제를 위해 4년 간 열심히 일해 모은 돈 1500만원을 변호사에게 주었다가 돈만 날렸을 뿐 여의치 않자 그 때부터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고,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지 않자 귀향해 도박에 빠졌다가 김기환을 만나 조직에 합류하게 된다. 김기환에게 충성을 보이며 문상록, 백병옥, 강문섭 등을 소개시키는 등 초반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두목인 김기환이 강간치상으로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자 부두목으로 임명되어 수감 중인 김기환을 수 차례 면회해 범행 지시를 받았다. 학창시절부터 폭력적인 성향이 짙었고 조직의 부두목이 되기도 하는 등 겉보기엔 범행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비춰지지만 사실 소심해 거의 김기환으로부터 범행을 지시 받아 나머지 조직원들이 실행하도록 전달하는 역할만 하고 범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첫 피해자였던 최 씨 살해 후엔 죄책감에 시달려 다리 부상을 핑계로 잠시 혼자 지내기도 했고[12] 소 씨 부부 살해 당시에도 지시만 하고 가담하지 않았다.

지존파가 체포되기 며칠 전 잡일과 요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단 명목으로 자신의 여자친구 이경숙이 일하던 주점에 진 빚을 대신 갚아주고 이경숙을 지존파의 일원으로 들인다.[13] 그렇게 이경숙이 조직에 합류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아침에 찬거리를 사러 트럭을 타고 아지트를 나섰다가 미행하고 있던 경찰과 1.5km 추격전을 벌인 후 조직원들 중 제일 먼저 체포되었다.

3.3. 김현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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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現陽, 검거 당시 나이 22세(1972년 6월 17일생).

행동대장. 중학교 2학년을 중퇴 했고 상해전과 1범이다. 김기환과 조직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은 인물이다. 상해 1범이라는 전과도 조직 가담 후에 생긴 전과다.[14]

검거 당시 입대를 앞두고 있던 남동생과 미성년자던 여동생이 있었으며 12세에 중국집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하자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식당 일을 시작했다. 외모가 아름다웠던 어머니가 자식들을 방치하고 식당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낯선 남자들이나 아버지의 친구들을 비롯한 여러 남성과 은밀한 만남을 이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아, 하교 후 귀가하는 것을 꺼릴 정도로 심리적인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생활기록부의 행동발달사항에는 '무기력하며 학업에 관심이 없음', '주의가 산만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지 못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현양의 학창시절 담임 선생님들은 모두 입을 모아 김현양에 대해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학생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학창시절엔 심리적인 방황에도 폭력적인 성향이 보이지 않았고 큰 문제도 없어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친구와 재혼한다. 이 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 증오심은 커지기만 했고 이는 일종의 여성혐오로 변모하게 되었다.[15]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와 다툰 후 가출하여 광주로 올라갔는데 첫날부터 걸인들에게 잘못 걸려 앵벌이를 하게 된다. 껌팔이, 절도 등을 하며 도주할 기회만 엿보다 도주에 성공해 서울로 상경한 뒤, 신문팔이부터 시작해서 지역을 옮겨 다니며 정착하지 못한 채 제화점 직공, 술집 웨이터 등을 전전한다. 그러던 중 전기기술을 배워 취직해 몇 년 간 모은 돈으로 트럭을 구입해 굴비 장사를 시작했으나 실패한다. 장사를 접고 운수회사에 취직했지만 취직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다른 이로부터 김기환을 소개받고 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조직에 합류한 뒤 내재돼있던 강한 폭력성을 드러내며 두목인 김기환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보였고 행동대장 노릇을 했다. 행동대장답게 모든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체포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태연히 웃어 보이며 당당하다 못해 충격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어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오히려 두목인 김기환보다 언론에 훨씬 많이 노출되었는데 그 이유는 마치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니 무서울 것도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었고, 이로 인해 지존파 조직원들 중 얼굴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지존파 조직원 중 유일하게 인육을 먹었다고 발언해 충격을 주었다.[16] 인육을 먹은 이유는 "인간이길 포기하려고."

그러나 끔찍한 범행을 자행하면서도 양수리 부근에서 세 번째 피해자 이 씨와 함께 납치된 이 모 씨를 유일하게 살려주며 탈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만 일부러 탈출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인지, 단순히 이 씨를 너무 믿어서 방심한 것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김현양이 구치소에 수감된 후 면회를 와 '날 일부러 살려준 거냐' 고 묻던 이 씨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 따르면 일부러 기회를 준 것이라는 뉘앙스는 아니었으나 신고한 이 씨를 원망하지 않고 자신들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평소 이 씨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나 동생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고 범죄자 생활에 갈등을 느끼는 듯한 말을 하곤 했다.[17]

3.4. 문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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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相錄, 검거 당시 나이 23세(1971년생).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특수절도 등 전과 3범이다. 고등학교 재학 중 친형과 아버지가 사망한 후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던 강동은과 함께 가출해 막노동판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생활기록부에 "학습에 흥미가 없고 우발적 행위가 우려되며 자기 억제를 못함."이라는 지적이 있다. 평소 충동조절장애로 의심되는 행동을 보였다.

1991년 입대했지만 같은 해 12월에 의가사 제대를 한 후 술집 웨이터 같은 잡일을 하다가 강동은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출소후 조직에 가담해 첫 피해자였던 최 씨 살해를 제외하곤 모든 범행에 참여했다.[18] 조직 내에선 조직의 부두목이었던 강동은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김기환 다음으로 연장자였지만 서열은 강동은, 김현양 아래였기 때문에 범죄 행위 시 그다지 주도적인 역할은 맡지 못했으나 김현양이나 김기환 못지 않은 잔인한 성향의 소유자로, 범행시 살인 행위 자체나 피해자들의 고통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기환에게 절대적 충성을 보였고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 모 씨를 처음부터 끝까지 믿지 못하고 굉장히 못마땅해 했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고 하던 조직행동강령을 어기며 이 씨를 살려주려 한 김현양과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고 주먹 다툼까지 벌였다.

3.5. 강문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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姜文燮, 검거 당시 나이 20세(1974년생),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맨 나중에 합류한 막내 조직원이고 유일하게 전과가 없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고모 밑에서 자랐다. 양쪽 얼굴에 큰 화상 흉터가 있는데, 이 때문인지 학창시절 늘 침울하고 무기력했으며 주의가 산만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장기 결석으로 제적 당한 후,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술집 웨이터 일 등을 하다가 알게 된 문상록의 소개로 강동은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거금을 쥐어주겠다.'던 김기환의 말에 현혹되어 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검거 후 범행 동기가 '자신의 얼굴에 난 화상흉터를 없애기 위한 성형수술 자금 마련' 이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조직 내에선 백병옥과 함께 서열 최하위로 범행에 있어서 주도적인 행위는 하지 않고 주로 뒤처리를 담당했다.

3.6. 백병옥

白炳玉, 검거 당시 나이 20세(1974년생), 특수강도 등 2범.

다른 지존파 조직원과는 달리 부모 양쪽이 온전하게 있었으며 부모로부터 사랑 받지 못한 것도 아니나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가 품팔이를 하여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였다. 지존파에 가입해 범행을 저지른 이유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서."라고 밝혔다.[19]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해 초등학교 재학 중 장기 결석으로 이미 학업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몸이 더럽다.'는 이유로 선생님이 발가벗긴 이후 학교가 아예 싫어졌다고 한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에도 장기 결석으로 제적 당해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절도 전과마저 생겼다.

특수강도로 수감되어 있을 때 교도소 동기였던 강동은과 친분을 맺어 출소 후 강동은과 공사장에서 일한다. 천안에서 막노동을 하던 중, 김기환과 함께 범행 모의를 하던 강동은으로부터 일확천금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조직 가입을 권유 받아 조직의 일원이 된다. 조직 내에서 맡은 역할은 범죄 대상을 물색하는 것이었다. 막내였기 때문에 서열은 최하위였지만 선배들 못지 않은 잔악함을 보였고 두목인 김기환에게 절대복종했다.

3.7. 이경숙

李京淑, 검거 당시 나이 23세(1971년생).

강동은의 애인이자 절도 전과 1범.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와 다방을 운영하던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났고 모 여중 2학년을 중퇴, 가출했다. 1992년까지 대전에서 일하다가 영광으로 내려와 어느 작은 주점에서 접대부 생활을 시작했고 그러던 중 주점을 찾았던 강동은과 인연을 맺어 연인이 되었다. 강동은이 엄청난 범죄에 연루되어 있단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함구했으며, 인질이었던 이 씨가 탈출하자 강동은이 잡일과 요리를 해줄 여성 조직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신이 주점 사장에게 진 빚 1600만원을 대신 갚아주어 풀려난 뒤 여성 조직원으로 합류하게 된다.[20] 그러나 합류한 지 이틀 만에 검거되었고 직접적으로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고 1998년 석방되었다. 검거 당시 강동은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3.8. 송봉우(송봉은)

이름이 송봉은으로 알려진 이유는 생전에 형의 주민등록증을 빌려 도용했기 때문이다. 사망 당시 나이 18세(1975년생), 전라남도 영광군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조직에 합류한다. 1993년 7월 초순 밤, 강동은, 백병옥 등과 함께 범행 모의를 하다가 홀로 걸어가던 최미자양을 발견하고 인근의 다리 밑으로 끌고 가 강간한 뒤 함께 있던 강동은, 백병옥도 최 양을 강간하게 된다. 그 후 최 양의 처분을 두고 강동은 등과 함께 고민하다가 강동은이 김기환에게 상황을 보고 하면서 김기환, 김현양 등의 합류 후 살해지시를 받아 살해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자신의 몹쓸 짓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꿈에 귀신이 나온다며 한동안 괴로워 하다가 1993년 8월, 조직의 자금통장에서 300만원을 빼내 도주하던 중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용서해주겠다며 "단합대회를 하고 개나 잡아먹으러 가자."고 회유하는 조직원들에게 속아 인근 야산으로 유인당해 그 곳에 대기하고 있던 김기환이 태도를 바꾸며 추궁하자 용서를 빌다가 김현양이 벽돌로 머리를 가격해 기절한 뒤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곡괭이 등으로 폭행당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이 훼손된 채 사망, 불에 태워진 뒤 암매장당한다.

4. 범죄 행각

4.1. 첫 번째 범행 ~ 아지트 완공 전

1993년 7월 초순 밤 11시경 충청남도 계룡시[21] 계룡역[22] 부근. 송봉은, 강동은, 백병옥은 한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다가 퇴근 후 홀로 걸어가던 23세 은행원 최미자 씨를 발견한다. 송봉은은 최 씨를 인근 다리 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다. 함께 있던 강동은과 백병옥도 최 씨를 성폭행 했는데, 계획에 없던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 고민하다가 강동은이 숙소에 있던 김기환에게 상황을 보고 한다. 김기환은 피해자에게 얼굴을 보인 이상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살해할 결심을 한다. 김기환은 포터를 몰고 김현양,강문섭과 함께 현장으로 갔고, 최 씨를 차에 싣고 숙소에서 삽을 챙긴 뒤 논산의 한 야산으로 이동했다. 김기환은 현장에 도착해 최 씨를 강간하고 김현양에게도 강간하도록 지시한 뒤, ‘사람 죽이는 시범을 보여준다.’며 최 씨를 목졸라 살해했다. 그 와중에 증거인멸하는 방법까지 가르치고 조직원들이 교대로 구덩이를 파도록 지시해 최 씨를 암매장했다. 그렇게 그들은 ‘살인 연습’을 했고 최미자씨는 첫 피해자가 됐다.

조직원들은 호기롭게 조직에 들어왔지만 막상 살인을 저지르고 나니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최미자 씨 살해의 원인 제공자이자 최연소 조직원이었던 송봉은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악몽으로 괴로워 했다. 이를 견디다 못해 조직을 이탈하기로 결심한 그는 1993년 8월, 조직의 자금을 모아둔 통장에서 현금 300만 원을 인출해 도주한다. 김기환은 송봉은이 도주한 지 두 시간 만에 사태를 파악하고 조직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송봉은을 살해하기로 한다. 김기환은 조직원들과 송봉은 체포 작전을 세운 뒤, 송봉은의 누이로부터 송봉은이 거주하고 있는 집 주소를 얻어낸 후 송봉은에게 용서해주겠다며 조직에 다시 합류할 것을 설득한다. 마음이 약해진 송봉은은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조직으로 복귀한다. 조직원들은 송봉은에게 ‘개를 잡아먹고 단합 대회를 한다.’며 한 야산으로 유인했다. 송봉은이 장소에 도착하자 김기환이 책임 추궁을 하기 시작했고 용서를 빌던 송봉은의 뒷통수를 김현양이 벽돌로 가격해 기절시킨 뒤 나머지 조직원들은 미리 준비한 곡괭이 등으로 송봉은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했다. 다만 첫 범행 때와는 달리 김기환이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아도 두목에게 잘 보이기 위해 조직원들은 알아서, 경쟁적으로 살해 행위를 했고 증거 인멸을 위해 시신을 불에 태운 뒤 암매장까지 했다. 이들은 조직을 이탈하면 어떻게 되는지 목격했기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첫 살해 당시 느꼈던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고 죄책감도 없었다.[23] 심지어 송봉은 살해 후 태연히 개를 잡아먹었고 김기환은 추후 법정에서 송봉은 살해에 대한 진술을 할 때 “하루에 개 두 마리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라고 발언해 장내를 술렁이게 했다.

그 후, 이들은 본격적인 범행에 착수하기 위해 당분간 아지트 건설을 목표로 돈을 모으는 데에만 전념하기로 한다. 이들은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대전 일대에서 막노동을 해 모은 돈으로 김기환의 어머니의 집을 차근차근 살인을 위한 아지트로 개조해나가기 시작했다. 김기환은 가족들과 이웃에게 “어머니께 효도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살 집을 새로 짓는다.”고 말했다. 그들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젊은 청년들이 성실하게 일한다며 흐뭇해 했다. 설마 그들이 등 뒤로 그런 끔찍한 범행을 모의하고 있을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1994년 6월 중순 김현양의 생일날, 김기환은 김현양에게 생일 파티를 열어준다며 조직원들과 모처럼 회식을 한다. 그러던 중 불현듯 아는 선배의 집 보일러 수리를 해준다며 자리를 비웠다가 선배의 집에서 잠자고 있던 선배의 여중생 조카를 강간해 구속된다.

두목의 부재에 강동은이 부두목이 되어 조직을 이끌게 된다. 아지트 완공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중심을 잡아줄 두목이 없자 이들은 지옥 훈련을 받기로 한다. 7월 중 일주일 가량을 지리산에서 칼 한 자루와 생수 한 병으로만 버티기로 한 것이다. 강동은은 뒤쳐지는 조직원이 있으면 “너도 봉은이처럼 잔디 이불 덮고 싶냐?”며 채찍질했다.

4.2. 아지트 완공 ~ 검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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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7월 말, 살인을 위한 그들의 아지트가 완공되었다. 아지트 완공 전까지는 주민들의 접근을 막았다가 아지트가 완공되자 그들은 태연히 이웃 주민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이들의 아지트는 요새처럼 아주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건물 외벽에 분홍색 페인트까지 칠하고 일반 가정집 처럼 해놨지만 지하에는 무려 3천만 원을 들여 피해자들을 납치하고 감금해 둘 감금 시설과 시체를 소각하는 소각장을 만들었다.[24]

아지트 완공과 동시에 조직원들은 김현양의 중학교 후배인 무기 브로커 이주현씨로부터 무기를 구입해 범행 도구들을 완비한다.[25] 또, 범행 대상 물색을 위해 전(前) 현대백화점 신용판매부 직원이었던 김민경 씨로부터 백화점 고액 거래자 명단을 구입한다. 물론 지존파가 살인극에 쓸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넘겨 주지는 않았겠지만 개인 정보 유출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빚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최악의 사례이기도 하다.[26] 준비가 다 되었다고 판단한 강동은은 김기환을 면회해 본격적인 범행에 착수할 것을 허락받는다. 조직원들은 평소 김기환이 말했던 대로 벤츠그랜저 등의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1994년 9월 5일 오전 12시경, 아지트를 떠나 서울로 출발한 뒤, 당일 밤 서울 워커힐 호텔 부근에서 1박을 하고 7일에 범행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간다. 범행 실패 후 바로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낚시터 부근으로 장소를 옮겨 차를 주차한 뒤 도로 밑에서 범행대상이 나타날 때까지 잠복했다. 몇 시간 뒤 도로에 그랜저가 나타나자 강동은이 승용차로 그랜저 차량을 가로막았고 나머지 조직원들이 가스총과 칼 등으로 그 안에 타고 있던 이종원 씨(36세, 남)와 이모 씨(27세, 여)를 위협해 밖으로 끌어낸다. 테이프와 끈으로 두 사람의 손과 발을 결박하고 눈을 가린 채로 포터에 실어 아지트로 납치한다. 아지트에 도착하자마자 두 인질의 인적사항 등을 취조했는데 둘 다 자신들이 원하던 부자들이 아닌 것이 밝혀지게 된다. 이종원 씨는 카페 악사였고 조수석에 타고 있다가 함께 납치된 이모 씨도 이종원씨와 같은 카페에서 근무하는 알바생이었다.[27] 조직원들끼리 둘의 처분을 놓고 토론을 하다가 둘 다 살해하기로 한다.

다음 날 조직원들이 돌아가며 이 모 씨를 성폭행했고 이종원 씨에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한 뒤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워 질식사 시키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여자도 함께 죽이면 수상해 보일 수 있다.”는 논리로 이 모 씨도 함께 죽이려고 했던 다른 조직원들을 설득시킨 김현양이 이 씨를 살려주는 대신 이 씨에게 공범 의식을 심어 줌으로써 이 씨가 다른 조직원들로 부터 신임을 얻을 수 있도록 이종원 씨 살해과정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이 씨는 극한의 공포에 떨며 이종원 씨의 입을 막는 시늉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종원 씨가 숨이 멎은 걸 확인한 조직원들은 커다란 골프백에 이종원 씨를 넣고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교동리의 한 인적이 드문 도로로 이동해 이종원 씨를 그랜저 운전석에 태우고 차량을 계곡으로 밀어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했다. 더 치밀하게 위장하기 위해 도로에 스키드 마크까지 남겼다.[28] 범행을 마친 후 아지트로 복귀한 그들은 이 씨를 또 한 차례 성폭행한다.

1994년 9월 13일, 경기 성남시 남서울공원 묘지 근처에 주차된 그랜저 차량을 발견하고는 성묘를 하던 소윤오(43세, 남), 박미자(35세, 여) 부부에게 “차량 바퀴에 펑크가 난 것 같다.”며 부부가 그 차량의 소유주임을 확인하고 공기총을 발사해 위협한 뒤 이전 범행 때와 유사한 방법으로 부부를 납치해 아지트로 이동한다. 14일 새벽, 피해자들을 취조해 보니 이전 피해자들과는 달리 소 씨는 자수성가한 중소기업 사장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자 ‘몸값을 지불하면 풀어주겠다.’는 말로 피해자들을 회유한다. 조직원들은 소 씨 부부의 몸값으로 1억 원을 요구했고, 소 씨로 하여금 회사 직원에게 ‘교통사고가 크게 났는데 피해자에게 1억 원을 지불해 합의를 보기로 했다.’고 거짓말 해서 돈을 건네받도록 지시한다. 소 씨로부터 1억 원까진 지불 할 수 없지만 8천만 원까진 된다는 확답을 받은 뒤 같은 날 오전 광천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경찰에게 범죄가 발각되었을 경우를 대비해 차량에 다이너마이트도 구비해 놓았는데 김현양이 다이너마이트 조작을 잘못하여 손과 발에 부상을 입고 아지트로 복귀한다. 오후 2시 경, 조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 씨는 회사의 총무 부장으로부터 8천만 원이 든 돈가방을 건네받는다. 이때 남편 소윤오는 도주하거나 구조 신호를 보낼 수도 있었으나 아내 박미자가 인질로 잡혀있었고, 또 당시에는 돈만 지불하면 정말 풀어주리라 믿었기에 돈만 받아온다. 돈가방을 받고 아지트로 복귀한 그들은 그날 밤, 처음 만져보는 큰 돈에 기쁨에 취해 소 씨 부부의 처분을 놓고 토론을 한다. 살려 주자, 죽이자는 의견이 반으로 나뉜 적도 있으나 원칙대로 죽여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져 부부를 살해 하기로 한다.[29]

이들은 부부에게 집으로 돌려 보내 주겠다며 술을 먹여 물리적으로 저항하지 못할 때까지 취하게 한 뒤 이 씨를 확실하게 범죄에 가담시킬 목적으로 총을 발사하여 소 씨를 멸살하도록 지시한다.[30] 김현양이 소 씨를, 강문섭이 박 씨를 맡아 시신을 해체했고 나머지 조직원들은 그 참혹한 광경을 차마 눈 뜨고 못 보던 이 씨를 협박하여 지켜보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김현양은 사체의 일부를 도려내어 먹는 기행을 보인다. 절단한 피해자들의 사체를 소각하는 과정이 오래 걸려 3개 조로 편성까지 했다. 이들은 사체를 소각할 때 나는 냄새를 희석시키기 위해 마당에서 일부러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이웃 주민들에게 구운 고기를 나눠주는 태연함과 치밀함을 보인다.

이들은 소 씨로부터 빼앗은 8천만 원 중 일부를 1500 만원 상당의 기관총 2자루를 청계천에서 구입, 포터 냉동 탑차를 비롯해 갤로퍼, 쏘나타를 다른 사람의 명의로 구입할 계획을 세울 뿐만 아니라 중국 으로가 전지 훈련을 받은 후 최후에 두목 김기환을 체포한 영광 경찰서습격하여 경찰관들을 죽이고 총기탈취하여 MBC를 습격할 계획을 꾸민다.[31]

5. 체포

  • 검거 당일 보도자료: KBS, MBC

양수리 부근에서 세 번째 희생자 이 씨와 드라이브를 하다 함께 납치된 카페 여종업원 이모 씨(당시 27세)의 극적인 탈출로 인해 지존파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씨는 납치되었을 당시 지존파의 아지트에 감금된 후 살려 달라고 애원해도 살려주지 않을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처음 잡혀왔을 때 김현양이 "당신이 이제부터 우리가 하라는 대로 따르면 우리는 당신을 살려줄 것이고 아니면 죽일 것이다."라고 했을 때도, 이미 그녀는 자신들이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기에 어이가 없어서 픽 웃어버렸는데 이런 그녀의 반응에 김현양은 당황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현양이 이 씨에게 연정을 품게 되어 이 씨를 죽이려는 조직원들을 설득시키면서 그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32] 목숨은 부지하게 됐으나 입막음용으로 살인에 가담할 것을 강요받은 이 씨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지인이었던 이씨, 중소기업 사장 부부를 죽이는것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마지막에 억지로 조직원들이 이모씨의 손을 갖다대는 식으로 동참시키려했으나 이것은 범행에 가담한것이 아닌 또다른 피해라고 할 수 있다 [33] 두 차례의 범행 현장에 있음으로 문상록을 제외한 지존파 조직원들에게 얼추 신임을 얻었으나 그녀를 끝까지 믿지 못했던 문상록이 김현양과 심하게 갈등을 빚으며 언제든 지존파에게 희생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이 씨의 탈출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다이너마이트를 잘못 다뤄 손과 발에 부상을 입었던 김현양이 실밥을 풀고 상처 부위에 소독을 받는 날, 이 씨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김현양에게 병원에 동행하게 해 달라고 한다. 김현양은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고 이 씨는 그와 동행하는 데 성공한다.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던 중, 김현양은 현금 50만원이 든 지갑과 휴대폰을 이 씨에게 맡기고 진료실로 들어간다.

아래 링크 된 생존 피해자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김현양은 피해자를 일부러 살려 주려는 듯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처음 같이 병원을 가자는 피해자의 말을 애써 무시하고는 두 번째에 대답했으며, 조직원들이 걔는 왜 데리고 가느냐고 묻자, 자신이 책임진다고 했다. 또한 90년대 초반에 50만원이라는 돈은 병원에 갈 때 갖고 가기엔 큰 돈 이었으며, 휴대폰까지 챙겨갔다. 또한 병원에 도착해서는 이 씨에게 도망치고 싶죠? 탈출하고 싶죠?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도 돼요라고 말했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인질로 붙잡힌 상대를 아무리 믿는다 한들, 거금의 돈이 든 지갑과 휴대폰을 둘 다 맡기고 진료를 받으러 들어가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인질범의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이 씨는 예상보다 빨리 탈출의 기회가 주어지자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은 건 마찬가지인데 이왕 죽을 바에야 달아나서 이 사건을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노력하여 피해자 분들에게 속죄하겠다는 심정으로 병원을 빠져나와 택시를 잡는다. 지존파의 행동 반경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택시 기사에게 해남경찰서로 가 달라고 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하차하고 포도밭 인근의 농가에 숨어든다.[34] 비닐하우스 안 평상 밑에 몇 시간을 숨어있던 이 씨는 집주인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집주인 지인의 차를 얻어 타 대전까지 이동한다. 그 뒤 대전 톨게이트에서 택시를 잡아 서울의 한 모텔에 도착한 뒤 자신이 일하던 카페에 연락을 해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이 씨는 서초서에 카페 주인의 남동생과 동행하여 사건에 대한 얘기를 꺼냈으나 경찰들은 관할이 아니라며 사건 담당을 거부한다. 분노와 공포가 극에 달한 이 씨를 보던 카페 주인의 남동생은 평소 카페를 즐겨찾던 고병천 반장(당시 서초경찰서 강력 반장)에게 연락한다.

강력반장이었던 고병천 반장조차 이 씨의 진술이 충격적이어서 처음엔 믿지 못하였으나[35] 이 씨가 소윤오 부부 실종, 납치 사건에 대해 아는 듯한 말을 하자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이 씨가 지니고 있던 휴대폰이 이 씨가 진술한 지존파의 일원 강동은의 것으로 확인되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된다.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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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작전은 수월하였다. 먼저 강동은이 이른 아침 포터를 타고 마을로 가다가 경찰의 미행을 눈치채고 경찰과 1.5km 추격전 끝에 검거 되었고, 경찰이 '강동은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걸어 김현양과 이경숙, 문상록을 유인해낸다. 경찰이 파 놓은 함정임을 눈치챈 문상록이 도주하다 형사에게 제압 당하고 김현양, 이경숙은 르망을 타고 도주하려다가 20km 추격 끝에 검거된다. 나머지 조직원들은 아지트에 있다가 아지트를 급습한 경찰들에 의해 모두 검거된다. 이 씨의 탈출 후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아지트를 떴으면 검거되지 못했거나 검거되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었을 테지만 이 씨가 탈출했음에도 아지트에 남아있던 이유는, 이 씨의 탈출 성공 후 그들이 영광 파출소 앞에 잠복해 경찰들의 동태를 살폈으나 평소와 같아 이 씨가 신고하지 않은 것이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멀리 서울까지 달아나 신고한 이 씨의 기지가 발휘된 부분이다. 또 이 씨가 범행에 가담했기 때문에 쉽사리 신고하지 못할 거라 믿은 것도 있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고 거창하게 강령까지 내세워 놓곤 결국 이걸 안 지켜서 붙잡힌 꼴이다. 안 그래도 검거 후 체포 경위를 들은 김기환이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고 했는데, 바보 같은 놈들.이라며 질타했다고 한다.

현재도 큰 차이 없지만 당시에는 중범법자는 검거 즉시 신상공개를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으므로 범인 체포 후 얼굴이 그대로 나왔고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돈 없다고 무시하는 것들. 압구정동 야타족들! 모조리 죽이지 못한 게 한이다!"라는 식으로 '사회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또 강령에 '고급 중대형차들'을 범행 대상으로 지정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고급 중, 대형차 판매량이 일시 감소했으며 고급차들의 중고 매물이 갑자기 늘었다. 언론플레이와 광적인 취재 열기가 잘못 퍼진 좋은 예.[37]

이들은 중국에 가서 전지 훈련을 하려 했었고 '야인'이나 '뺑끼통'과 같은 책을 교재로 삼았다고 자랑했다.[38] 더 나아가 압구정 야타족과 백화점 고객 등 돈 많은 이들을 살해하고 심지어는 경기도 일대 러브호텔까지 쓸어버리려고 했다는 미친 소리까지 했다. 그리고 백화점 우수 고객 1200명 명단 리스트가 지존파 손에 들어간 것이 확인되자, 우수 고객들이 백화점 측에 항의하여 백화점 상담 전화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MBC 보도1, MBC 보도2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김현양은 자랑스럽게 인육을 맛봤다고 했고, 왜 식인을 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이길 포기하기 위해서라고 황당무계한 궤변을 지껄이는 등 반성의 기미는 눈 씻고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없었으며, 살인의 이유를 불평등한 사회 모순 때문이라며 사회 탓으로 돌리고 자신들의 가치 전도 현상을 정당화하려 했다. 김현양은 체포되어 끌려갈 때 "2천만 원 이상[39]자동차를 가진 놈들은 다 죽여야 해! 그래야 내 원한이 풀려!" 라고 소리를 쳤다고 주민들이 증언했으며 이들은 현장 검증에선 "잘난 놈들을 죽이려 했다" 고 거듭 말했다.

당시 경찰이 지존파로부터 압수한 무기는 다이너마이트 23개, 뇌관 14개, 망원렌즈가 달린 공기총 1정, 가스총 1정, 등산용 지팡이로 위장한 대검 7개, 대검 4개, 전자 충격기 1개, 전자봉 1개, 무전기 2대, 호출기 5개 등이었다.

6. 처벌

이경숙은 가담 이틀 만에 체포되어 살인 행각과는 관련이 없다는 점이 참작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고, 나머지 지존파 일당 전원은 1994년 10월 31일 서울지방법원에서 강도살인, 사체유기, 인육섭취[40], 사체손괴, 범죄단체 조직 및 가입죄, 특수강간 등이 적용되어 구형대로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후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고 1995년 11월 2일 두목 김기환을 포함해 조직원 6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보통 기존 대통령 임기 중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사형집행 결정도 최소 2년은 기다려 주는 게 관례임을 생각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인데, 원래 사형수에 대한 형 집행은 그가 무고할 가능성도 감안하고 또한 마음을 정리하고 뒤늦게나마 교화될 기회를 주기 위해 정권이 바뀐 뒤에, 즉 수년 뒤에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사건은 온보현[41]이 저지른 강도 살인 행각과 더불어 워낙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준 '예외적인 경우' 이며 무고할 가능성도 전혀 없기 때문에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김영삼 정부 시절 저질러진 살인 사건 중에 사형이 집행된 경우는 이 두 사건밖에 없고, 그 유명한 박한상이나 악질 유괴살인범들조차도 사형 선고는 받았을지언정 집행은 피해갔을 정도니 얼마나 사회적 충격이 컸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제보자였던 여성은 본인도 피해자이며 모두 강요 당해 저지른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제외되었다. 대한민국 검찰청 측에서는 결정적 제보자인 여인이 처했던 상황을 불가항력적이었던 것으로 인정하여 기소조차 하지 않고 지방으로 피신시켜 집과 직업까지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일종의 신고자 및 증인보호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한동안 영광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영광 사람이라는 것을 입 밖에도 내지 못했다고 하며 영광 사람들이 객지에 나가면 살인자와 같은 동네에 산다고 해코지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7. 피해자 이 씨

경찰 제보자이자 지존파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이 씨는 이후로도 언론에 당시 상황을 여러 번 증언해주었다. 이하 내용은 피해자의 개인신상과 관련된 정보나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종류의 서술은 작성하지 않고, 언론에 보도된 피해자의 증언이나 인터뷰만 서술한 것이다.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1994년에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시사저널 당시 기사에 따르면 언론 추적에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2015년 9월 11일 한겨레에서 피해자의 증언록을 연재했다. 피해자의 정신적 외상과 이를 치유해가는 과정, 그리고 사회적 관심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일인칭으로 연재되었으며, 담담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읽을 사람은 마음의 준비를 하자. 강력 범죄 피해자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특별한 사례다. 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2015년 11월에는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21년 만에 방송 인터뷰를 했다. 해당 인터뷰는 2015년 11월 6일 방송되었으며, 인터뷰에서 이 씨는 극심한 PTSD로 21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경우 현재 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후대책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거나 있어도 도움이 안되는 수준의 것만 있어서 이씨 뿐 아니라 세종시 편의점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 김 씨의 사례도 보여주면서 관련 정책들을 비판하였다. 특히 지존파 사건의 피해자 이 씨의 경우 위에 링크된 한겨레 증언록을 연재하면서 달린 악플들을 보면서 많이 괴로웠다고 한다.

8. 기타

8.1. 여죄의 가능성

경찰들은 피해자가 최소 두 명에서 세 명 정도는 더 있을 것이란 이 씨의 진술을 토대로 최미자 씨, 송봉은 살해 후 본격적인 범행에 들어가기 전의 공백기 동안 추가 범행은 없었는지 수사했다.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압수한 증거물 중 지존파가 평소 이동할 때 몰고 다니던 르망 뒷좌석에서 유골가루가 담긴 비닐봉지가 뒤늦게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또 다른 피해자의 것은 아닌지 추가 조사에 들어갔다. 일당은 그 유골이 김기환의 돌아가신 아버지의 것이라고 주장했고 조사 결과 마을 주민인 강 모 씨가 김기환의 부탁으로 김기환의 부친의 묘소에서 김의 아버지와 큰어머니의 유골을 직접 수습해 김기환에게 건네준 것이 확인되었으나 강 씨는 차에서 발견된 유골이 자신이 준 유골인지는 알 수 없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지존파의 아지트가 있던 금계리 마을 일대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였으나 특별한 단서는 얻지 못했다.

또, 1994년 4월 5일 강릉에서 일어난 신원미상의 38세 여성 토막살인 사건과 8월 28일 대관령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위장 타살사건의 범행수법이 유사하다고 보아 경찰이 추가 조사를 한 바가 있다. 이 씨가 납치되었을 당시 김현양이 이 씨에게 자신들이 31세의 여성을 납치해 죽인 적이 있었다고 했지만 수사 결과 밝혀진 것은 없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살인 이후 밝혀진 범인들의 알리바이나 수사에 협조적이었던 그들의 태도, 이 씨나 소윤오 씨 부부와 같이 억류된 피해자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공범이 더 있다고 허풍을 떨었던 김현양의 태도를 종합했을 때, 또 다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으로 결론난 것이다. 그러나 수사가 지존파 일당의 자백과 생존자 이 씨의 말에 의존하여 진행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여죄 여부에 대한 수사도 일주일만에 종결되어 이에 너무 급하게 수사를 종결시킨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

8.2. 대중문화계의 반응

이 사건으로 인해 영화계, 특히 본의 아니게 폭력과 파괴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액션 영화계가 몰매를 맞으면서 초비상이 걸렸다. 지존파 체포 후 9월 28일에 공연윤리위원회가 그동안 포르노 영화에만 집중된 사전검열을 폭력물에도 더 치중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국산 액션영화 제작이 감소하는 파국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박성배 감독 영화 <해적>은 검열 과정에서 전체 장면 중 93컷이나 잘려 개봉되었고, 배용준 데뷔작인 <삘구>도 1차 심의에서 떨어져 상영이 취소된 바 있으며, <테러리스트> 역시 검열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게임도 마찬가지여서, 1999년까지 한국에 정식발매되는 FPS게임은 손에 꼽다시피 하였다. [42]

한편, 범인들이 평소 즐겨읽었다는 공포소설, 공포영화의 제목들이 돌면서, 이러한 지존파들이 즐겨본 매체를 비난하는 뉴스도 있었다. #. [43]

이로 인해 1994년 11월 10일자 동아일보에선 지존파 사건의 여파로 액션영화 출시가 감소하고 코미디나 인간미 넘치는 가족영화가 늘어나 '탈액션' 조짐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런 현상은 당시 공윤의 폭력물 규제 강화로 된서리를 맞은 제작사들이 액션영화의 출시를 미룬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화평론가 이동연은 <상상> 1994년 겨울호에서 당시 비디오가게 사이에 홍콩영화 <지존무상>이 재평가됨을 언급하며 지존파와 같은 흉악한 이들에 대한 동정론과 미화를 언급하며 아래와 같이 반박했다.
94년 추석을 강타한 '지존파'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벌어진 대단한 법석은 유사한 사건이 계속되면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 흉악함에 대한 전율로부터 은근한 동정론, 심리학적 동기 분석......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복습하던 사람들의 대화는 최근 비디오 가게에서 때 아닌 '지존무상'이 재평가되고 있는 사회학적 현상 쪽으로 넘어가다 보면 애초의 심각하던 길을 벗어나 복수와 의리의 세계, 무술과 도박의 내기, 암흑가 영웅들의 신나는 활약 이야기에 다시 함몰되기 일쑤이다.
- 상상 1994년 겨울호. <무협소설의 현 단계> p136.

8.3. 여담

본 항목은 각종 기사와 서적,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그리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고병천 전 강력반 반장의 논문에 기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이 모 씨와 이경숙은 대면한 적은 없으나 통화한 적이 있다. 이 씨가 탈출하기 며칠 전 강동은이 이 씨에게 "여성 조직원을 들이려 하는데 어떠냐"고 물으며 이경숙과 통화하도록 했다. 이경숙은 이 씨에게 "충고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동은씨를 도와주기로 했으면 끝까지 도와달라. 신이 있다면 동은 씨를 도와줄 것이다."라고 부탁했으나 이 씨는 황당해 하며 자신이 지금 납치되어 있는 상태라고 태도를 분명히 했다.
  • 지존파는 자신들이 직접 작사, 작곡한 단가(團歌)도 있었다. 나중에 김기환은 '야망'이란 이름의 책까지 쓸 계획이었다고 한다.(...)
  • 평소 문상록뿐만 아니라 강동은도 부두목으로서 김현양에게 이 씨를 죽이라고 압박했다. 두목인 김기환이 출소했을 경우 부두목으로서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피하기 위함이기도 했고 이 씨가 사라져야만 이경숙을 데려올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강동은은 김현양이 이 씨를 병원에 데리고 갈 당시 김현양에게 이 씨를 '처리하고 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한편 이 씨의 처분을 놓고 김현양과 심하게 대립했던 문상록은 김현양과 주먹다툼을 한 후로 김현양 앞에서 이 씨를 죽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 당시 그랜저가 2.4나 3.0 따질 것 없이 부의 상징인 최고급차인 건 사실이었지만, 피해자 이종원 씨가 중고로 구입했던 승용차는 그랜저 2.4(2400cc)였으며, 평소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역할을 맡았던 백병옥이 3000cc 그랜저로 오인해 범행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소윤오 씨 부부 납치 당시에도 주차되어 있던 소 씨의 그랜저가 "3000cc인 것 같은데 돈 좀 있을 것 같다"고 했던 걸 보면 당시 이들은 그랜저 3.0 이상의 차를 소유한 더 큰 부자들을 주 범행대상으로 삼고 큰 돈을 뜯으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소 씨의 차도 겉만 3000cc로 개조한 차였다. 이러나 저러나 그랜저 같은 고급차를 타면 무조건 부자라고 보는, 즉 차만 좋으면 부자라는 마인드로 범행 대상을 지목한다는 것 자체가 이들이 매우 단순하단 걸 보여준다. 이들에게 무고하게 희생 당한 피해자들만 안타깝다.
  • 또한 범인들이 대놓고 범행 대상을 그랜저 등의 비싼차를 탄 사람이라고 언급하면서 그랜저를 타면 범행 대상이 될수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이미지가 곤두박질치자 현대자동차에서는 당시 그랜저의 리무진모델과 차세대 그랜저로 개발되던 모델에 그랜저의 이름을 유지시키지 않고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44] 각각 다이너스티에쿠스.
  • 이 씨가 탈출한 후 조직원들이 영광경찰서 앞에 잠복할 때 김현양이 아지트에 남아 다이너마이트를 쌓아놓고 책임을 지겠다며 자결하려 했지만 강동은이 이를 만류했다. 최종적으로 이 씨가 영광경찰서에 신고한 정황이 포착되지 않자 이유는 모르겠으나 이들은 검거 전 날 회식을 했다고 한다.[45] 김현양은 검거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날 처음으로 노래방에 가봤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해장용 콩나물국을 끓이려고 강동은이 콩나물을 사러 나섰다가 붙잡혔다.
  • 평소 지존파가 범행에 사용했던 포터는 김현양이 조직 합류 전, 착실히 돈을 모아 마련한 트럭이다.
  • 아지트를 급습했을 당시 방 한 구석에 돈 다발이 그대로 있었는데 김기환이 출소하면 그대로 주려고 필요한 만큼만 쓰고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조직원은 돈을 쫙 깔아놓고 그 위에 드러누워 '한풀이'를 했다.
  • 지존파가 현장 검증을 하던 때 형사들을 끌어안고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 동반자살할 생각도 했으나 그러지 못한 이유가 조사 과정에서 형사들이 자신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이 살면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인간적인 대우였다면서. 재판 과정에서도 검사나 변호사들이 자신들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며 인간적으로 대해줘서 법조계 인사들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고 말하며 감사하다고 했다.
  • 지존파의 증거품 공개 및 압수 당시 맨 앞 줄에 있던 취재기자 중 여성 기자가 한 명 있었는데 그 기자를 붙잡아 인질극을 벌일 생각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 지존파의 아지트에서 현장검증을 할 때 일부 여성 기자들은 혼절하기도 했다. 참혹한 광경에 베테랑 형사들조차 공포감을 느꼈으며 지하 감금시설에서 나는 악취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곤혹스러워 했다.
  • 취재열기가 과열되어 범죄자들에게 미디어가 따라붙으면 대개 범죄자들은 흥분하는데, 지존파도 미디어 앞에선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이며 전혀 뉘우침이 없는 언동으로 세간의 분노를 샀으나 형사들 앞에선 유순해졌다고 한다. 죄질로 보나, 태도로 보나 악질 중의 악질들이라 강하게 나가려고 했던 형사들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였다.
  • 강동은은 재판 내내 이경숙은 잘못이 없다며 감쌌다.
  • 사형선고가 내려진 후 김현양이 이 씨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내고 이 씨가 답장을 하면서 둘은 사형 집행 전까지 편지를 주고 받았다.
  • 지존파 검거 후 지존파 조직원이나 공범을 사칭한 범죄가 몇 건 일어났다. 1994년 10월, 대구에서는 한 약사가 자신의 약국에 납품을 하는 김 모씨 집에 김현양의 이름으로 '지존파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이천만 원을 준비하지 않으면 가족을 몰살하겠다'는 내용의 협박편지를 보내 구속되었다. 이 약사는 약국 이외에도 사업을 벌리다가 돈이 부족해지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또, 1997년 7월, 육군 모 부대 상근예비역 병장과 그의 지인이었던 정육점 종업원이 지존파와 막가파의 선배를 자처해 부유층 부녀자를 납치해 금품을 갈취했다가 긴급체포되기도 했다.
  • 지존파 조직원들의 IQ는 대부분이 90점대였고 유일하게 김기환만이 100 이상이었다. 90~110 정도가 평균 수치이기 때문에 특별히 지능이 낮다고 볼 순 없으나 이들의 지능 수준이 결코 높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토리 키 재기이지만 일각에선 그들 중 지능이 제일 높은 김기환이 상대적으로 지능 수준이 낮은 부하 조직원들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존파의 교도소 동기들이나 교도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김기환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에 대해 '그렇게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르던 녀석들이 일부러 그러나' 싶을 정도로 의외로 어리숙하고 순진해서 놀랐다는 얘기가 많다.
  • 김현양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존경할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탈주행각을 벌이며 권총으로 자살했던 지강헌”이라며[46] “그렇게 죽고싶어 권총을 구입하려 했다.”고 답했다. 그 외에도 수사과정에서 프로살인마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진술하는 등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였다.
  • 지존파 일당이 이 씨에게 “여자 때문에 배신한 조직원을 죽인 적이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송봉은 이외에 살해 당한 조직원이 있다고 밝혀진 바가 없는 것으로 보아 김기환이 현 조직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초창기 멤버 중 한 명이 배신해서 죽인 적이 있다고 허풍을 떨었고, 나머지 조직원들은 이를 그대로 믿은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이전 조직 결성에 실패한 이유도 여자 때문이 아니라 잔혹한 범죄계획에 모두 겁을 먹고 발을 뺀 것이기에 ‘여자 때문에 배신한 자’에 대한 얘기가 거짓말이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아니면 조직원들이 단순히 이 씨를 겁박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송봉은이 사귀던 여자 때문에 조직 자금을 인출해 도주했다는 설도 있지만 진실을 알 길이 없다. 아무튼 그것이 김기환의 선견지명이었는지 김현양은 결국 여자 때문에 조직을 위험에 빠뜨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머지 조직원들은 그를 응징하지 않았다.
  • 강동은은 검거 후 한 인터뷰에서 술집 접대부였던 애인 이경숙을 술집에서 빼내온 후, 범죄로 인해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이경숙과 비슷한 처지의 접대부들을 최대한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전국 각지에서 김현양에게 위로를 건네고 회개를 독려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 중에는 김현양에게 편지와 함께 일기장을 보내 일기를 써서 보내달라고 요구했던 한 여인과 여학생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 두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고 김현양을 이용해 베스트셀러를 노렸던 한 출판사의 직원들이 꾸민 짓이었다. 그들이 보낸 일기장과 편지는 구치소 교무과에서 '교화상 불허'라는 이유로 불허가되어 영치되었다가 사형 집행 후 지존파 일당들의 유품 정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 김현양, 강동은, 백병옥, 강문섭은 개신교, 김기환, 문상록은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김현양은 제일 먼저 종교를 받아들였고 김기환은 종교에 대한 거부 반응이 아주 강해 맨 나중에 종교를 받아들였다.
  • 일명 ‘지존파 전도 특공대’를 조직해 지존파 일당에게 전도했던 한 대형교회가 아지트가 세워졌던 땅을 매입해 아지트를 허물고 교회를 세우려고 했으나[47] 현재까지 공터로 방치되어 있다. 영광군은 몇 년 전 아지트 주변의 땅을 매입해 공원을 조성했다.
  • 지존파 조직원들은 아지트를 '아방궁'이라 칭했으며 철근 등 기본적인 자재들을 제외한 아지트 건축용 자재들 중 모자란 것은 자신들이 일하던 건설현장에서 조금씩 훔쳐왔다. 그러면서도 자재를 사느라 진 빚 천 만원을 갚기도 했다. 물론 그 천 만원 역시 소 사장 부부의 몸값 8천만 원 중 일부였다.
  • 김현양은 검거 직후부터 각종 인터뷰에서 사죄의 의미로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사회의 냉대를 되갚아 줘서 후련하다는 등 여전히 사회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내비치고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여 그 의중을 의심한 대중들은 장기기증의 숭고한 의미를 알고나 떠드는 것이냐며 질타했다. 첫 공판 당시엔 이미 극형을 각오했는지 진지하게 피해자들과 유족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생존자 이 씨의 생일을 기해 사형 선고 전이라도 신장 한 쪽을 산 채로라도 기증하고 싶단 뜻을 밝혔다.[48] 하지만 산 채로 장기기증을 하는 것은 규정에 위반되기 때문에 정식으로 장기기증서에 서명한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해서 사후 안구와 신장 등을 기증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김현양에 이어 다른 조직원들도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고 기증서를 제출했다. 김기환은 끝까지 버티다가 사형을 앞두고 역시 장기기증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의 장기이기 때문에 인수를 거부당한 것인지, 절차상 문제가 발생했던 것인지, 뚜렷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49] 반면 지존파와 같은 날 사형이 집행되었던 사형수들 중 일부는 장기기증이 이루어졌다.[50]
  • 이경숙을 제외한 지존파 일당의 사형이 집행되고 지존파 일당의 유족들이 시체 인수를 거부하자 지존파를 일망타진한 고병천 형사의 배우자가 시체를 인수해 천주교 공동묘지에 묻었다. 실제로도 사형이 집행된 사람의 경우, 유족들이 사형수와의 혈육의 연 자체를 아예 부정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사례가 많다.
  • 2019년 10월 23일 지존파 사건이 영화화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관상의 한재림 감독이 제작을 맡으며, 관상의 각본을 담당했던 김동혁 작가의 감독 데뷔작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시나리오가 완성 단계에 들어갔으며 주요 배역 캐스팅이 진행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대부분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영화화 시도 자체가 무리수라는 의견도 있다. 기사

8.4. 미디어

감우성 주연의 영화 무법자에 나오는 범죄 조직은 지존파를 모티브로 했다. 김철한 감독도 시사회장에서 지존파 사건을 언급하였고 기사, 항목 상위에 링크된 방송 히스토리후에서도 지존파 사건을 다룰때 참고 영상으로 무법자 장면을 쓰기도 했다.

윤태호야후(만화)에서도 지존파를 모티브로 한 범죄집단이 등장한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과 장경철의 친구의 범죄방식과 거주지 등의 설정은 지존파가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었다면 - 이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하철에서 파는 성인지에서 지존파가 잡히지 않고 근교에 놀러온 재벌 회장과 애인을 먹은 다음 서울로 직행하는 대체 역사 소설이 연재된 바 있다.

유현산의 장편 소설 1994년 어느 늦은 밤은 지존파를 모티브로 한 '세종파'라는 조직을 핵심 소재로 하는 소설이다.

영화 데드 캠프 1편 초반에 주인공 중 한 명이 신문에서 봤다면서 chijon family (지존파) 를 언급한다.

영국 드라마 화이트채플에서도 식인으로 추정되는 사건을 조사하는 에피소드에서 참고 사건으로 언급되었다.

2012년 제9회 광주 비엔날레 출품작인 정윤석의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 사건을 통해 자본과 권력, 그리고 사형제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담고 있다.

2018년 귀귀뉴 바이블에서는 사형 당하기 직전에 주인공 제이한테 불려가 폐가에서 25년간 제이가 가져다 준 인육을 먹으며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결국 마지막에 식량이 부족해서 강문삽(강문섭) 한 명을 먹어치우고 모두 제이한테 참수 당한다.

9. 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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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망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를 따서 지었다는 이름. 그러나 야망이라는 뜻의 그리스어는 필로독시아(φιλοδοξία)이며 마스칸이라는 단어는 그리스가 아닌 중동에서 공원이나 호텔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가방끈이 짧았던 이들이 잘못 주워듣고 지은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2] 물론 친구 사이에 살인 조직을 결성한 경우도 있다. 존 더피와 데이비드 멀케이가 대표적.[3]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일본의 어둠 사이트 살인사건, 미국의 찰스 잉 & 레나드 레이크 정도 뿐이다.[4] 당시 CNN에서 취재를 오기도 했다.[5] 보도가 안 나오면 치안이 좋아진 거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좀 다르다. 치안 참고. 2010년대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치안은 최상급이다.[6] 그러나 결국 이걸 어겨 검거된다.[7]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김기환의 보복이 두려워 외지로 피신했다고 한다.[8] 그러나 송봉은은 몇 달 후 배신자로 낙인 찍혀 동료 조직원들에게 살해 당하고 만다.[9] 납치되었다가 도망친 이 모 씨와 혼동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 씨와는 전혀 다른 여성이다.[10] 그러나 반성과는 별개로 정말 이런 일이 있었고, 그 결과 비뚤어졌을 가능성 자체는 매우 높다. 체벌 문서나 교권 문서만 봐도 알 수 있듯, 과거 국민학교, 정확히 말해 학교 전체가 없는 애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유명한 범죄자 신창원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1] 조직원들에게 사람은 이렇게 죽이는 거다. 라고 시범을 보였다고 한다.[12] 강동은의 집은 아지트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13] 웃긴 것은 김기환이 정한 규칙 중 '여자를 만나지 않으며 친구와 술을 멀리한다'는 규칙도 있었다. 강동은은 아예 처음부터 이를 어긴 셈이다.[14] 조직 자금을 벌기 위해 전 조직원이 대전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일하던 시기에 강문섭을 다른 직원이 폭행했다는 이유로 전치 4주에 해당하는 폭행을 가했고 합의하는 과정에서도 피해자 가족들에게 폭행을 가했다.[15] 체포 직후 "어머니요? 내 손으로 직접 못 죽인 게 한입니다."라고 말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발언에 정작 김현양의 어머니는 "내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16] 부부의 부인을 살해하고 피해자의 시신에서 한 쪽 유방을 도려내어 먹었다. 하필 그 부위가 유방인 것은 김현양의 여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이 씨의 1994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현양이 인육을 먹은 경험은 '지존(김기환)이 시켜' 송봉은의 인육을 울면서 먹은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다만 김현양은 체포 후 이것에 대한 진술은 전혀 하지 않았다.[17] 리마 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이다.[18] 당시 합숙소에서 자느라 참여하지 못했다.[19] 마지막 공판에 지존파의 부모 중 유일하게 백병옥의 부모만이 참석했는데 허름한 차림을 하고 있었고 여관에 묵을 돈이 없어 대합실에서 잤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가난을 물려준 자신들을 탓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본인은 효도하기 위해 범죄를 했다지만 도리어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20] 이 1600만원은 지존파가 희생자 부부로부터 뜯어낸 8000만원 중 일부였다.[21] 당시 논산군의 일부였다. 1995년에 논산시로 승격되었고 2003년에는 그 일부가 계룡시로 분리되었다.[22] 당시 두계역.[23] 김현양은 “내가 특별히 예뻐하던 동생이라 죽일 때 마음이 아팠다.”고 했지만 나머지 조직원들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고 진술했다.[24] 집들이 당시 이웃 주민들이 지하실의 존재를 인지하고 구경 시켜 달라고 했지만 지존파 조직원들이 만류했다.[25] 이주현 씨는 지존파 합류를 권유받기도 했다고 한다.[26]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 그렇게 큰 이슈는 되지 못했는데,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크게 부각된 것은 인터넷으로 인한 개인정보가 손쉽고 무분별하게 복제가 가능한 세상이 온 이후다. 이 때는 개인정보 복제라고 해 봤자 종이에 쓴 명단을 복사기로 복사하는 정도였다. 또한 방송과 언론에서도 초상권이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썼던 시절도 아니라서 90년대 초중반까지의 신문이나 TV뉴스, 시사프로그램을 보면 미성년자, 특별한 상황이나 사전 요청이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은 이름이나 주소,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일상적이었던 시절이었다.[27] 이모 씨는 피해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지존파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기존에 이 씨와 이종원 씨가 연인 사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 씨는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인터뷰에서 이종원 씨는 절친한 직장 동료였다고 밝혔다.[28] 지존파 검거 전, 이 사건은 지존파가 의도한 대로 단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사건으로 종결될 뻔 했다. 피해자의 허벅지에 지존파에게 납치될 당시 저항하다 생긴 자상도 있었는데 말이다.[29] 이 씨의 처분도 함께 논의 되었지만 이 씨를 살려주자고 주장한 김현양과 이 씨를 경계하던 문상록이 몸싸움을 했다.[30] 부두목인 강동은이 김현양에게 지시했다. 김현양은 이 씨가 해내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이 씨의 신체를 속박해 강제로 총을 발사하도록 했다. 정작 강동은은 살해 과정에 동참하지 않았다.[31] 계획을 펼쳐보기도 전에 검거되자 김현양은 인터뷰에서 "더 죽이고 싶었는데 지금 못 죽여서 한이 맺힌다. 내가 MBC 한 번 가 보려고 했는데 못 가게 되었다."라고 말했다.[32] 김현양이 이 씨에게 가진 감정이 연정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다.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여성을 향한 혐오로 번졌던 김현양이지만 그만큼 연상여성=어머니에 대한 사랑에 결핍되어 있어 이 모 씨를 특별대우했다. -씨로 부르고 존대말로 자기 개인사도 얘기했다고 생존자의 일지에 적혀있다. 그 덕에 생존자는 탈출기회를 얻었다.[33] 이는 나중에 검찰에서 불기소처분이 내려졌으며, 이 씨는 중요 제보자 및 증인으로 보호받게된다.[34] 그 이유는 택시 기사가 생각 없이 한 농담에 이 씨가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 씨가 “납치됐다가 도망쳤다”고 했더니 택시 기사가 “아니, 우리 영광에 그런 놈들이 어디 있어?”라며 “후배들 내가 다 아는 놈들인데 어떤 놈들이 그랬지? 백수(영광군 백수읍)놈들이 그랬나?”고 했다고 한다.[35] 처음에는 '정신이상자가 말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애초에 이런 사건은 심영구 등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 단독 범행이나,용인 연쇄살인 사건 김경훈 & 허재필에서 보듯이 많아야 두 세 명이 저지르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이 씨로부터 내용을 들었던 카페 주인은 경찰이 아니라 안기부에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36] 2015년에 한겨레를 통해 연재된 '피해자의 증언록'에 따르면 형사가 이 씨의 말을 100% 믿게 된 이유가 김현양이 맡긴 핸드폰의 명의가 강동은의 것이었는데 피해자가 강동은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37] 1990년대의 한국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갓 벗어난 뒤 언론이고 사회고 외부 가치관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연히 미국 등지에서 문제가 되던 과열 취재 경쟁과 시청자들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는 자극적인 언론 보도도 받아들였는데, 그 첫 번째 목표가 바로 지존파가 된 것이다. 게다가 지존파는 그때까지 흔하던 가족 살인범이나 연쇄살인범 혹은 친구 단위의 살인 집단 등이 아니라 별다른 안면이 없던 제3자들의 연합이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38] 그래서 그 책들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이걸 자랑하는 사람이 뺑끼통의 저자 이진수 씨. 이 사람은 나중에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의 이름도 뺑끼통으로 지었고 희대의 불쏘시개. '거짓말 선생님' 이라는 책도 내었다.[39] 2010년대 물가로 약 4,000만 원 정도에 해당한다. 현대 그랜저, 기아 K7, 르노삼성 SM7, 쉐보레 임팔라같은 준대형차BMW 3시리즈, 아우디 A4 등 프리미엄 브랜드의 준중형차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40] 김현양 한정[41] 사실 온보현의 경우에는 화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실상 비슷한 시기 저질러진, 사회에 충격을 준 살인 행위가 한두 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보현만 사형을 당한 것은 지존파와 자신을 비교해 달라는 등 화를 자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온보현과 비슷한 사건 자체에 대한 사형선고는 그 이전이나 이후나 많았고, 현재도 이들 중 상당수가 사형수 신분으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42] 물론 둠의 영향을 받은 '1990년대 둠 클론'들이 카운터 스트라이크 이후에 밀리터리 슈터들에 비하면 폭력성이 강한 경우가 많았다.[43] 일설에 따르면 그 공포소설에는 당시 해적판으로 출간된 유수의 명작 해외 호러소설도 있었다.[44] 하지만 1998년에 그랜저 XG를 출시하면서 이미지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45] 이경숙 합류 기념 환영회로 추측되기도 한다.[46] 정확히는 지강헌은 자살로 숨진 건 아니고 자살기도를 했지만 경찰이 쏜 총에 맞아 과다출혈로 죽었다. 지강헌이 그나마 저들보다 나은점은 탈옥범이긴 했으나 절도죄 초범이였고 도망치면서 살인은 하지 않았으며 은거지 주민들에게 예의바르게 대했다. 지존파처럼 살인조폭이 아니라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자신의 입장에서 겪은 불공정한 법집행에 대한 항의로 저지른 범죄지 '돈있는 놈 잡아 쳐죽이겠다'고 무작정 살해한 지존파보단 그나마 이해할 만했다.[47] 김기환은 사형 집행 당시 집(아지트)을 교회 설립하는데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48] 김현양이 그녀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이 발언은 곧바로 가십거리가 되어 '그녀'가 이 씨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고, 방청했던 기자들에 의해 기사화되었다.출처. PC로 열람 바람[49] 신속하게 사형 집행이 진행되어 절차를 밟지 못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다.[50] 지존파와 같은 날 사형이 집행되었던 박성규, 이두견, 최명복은 안구와 콩팥을, 신민철은 시신을 각각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