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6-11 22:02:37

지존파


1. 개요2. 명칭3. 결성4. 조직원 목록
4.1. 김기환4.2. 강동은4.3. 김현양4.4. 문상록4.5. 강문섭4.6. 백병옥4.7. 이경숙4.8. 송봉우(송봉은)
5. 범죄 행각
5.1. 첫 번째 범행 ~ 아지트 완공 전5.2. 아지트 완공 ~ 검거 전
6. 체포7. 처벌과 지존파의 멸망8. 피해자 이 씨9. 기타
9.1. 여죄의 가능성과 지존파 잔당들의 가능성9.2. 대중문화계의 반응9.3. 여담9.4. 미디어
10. 둘러보기

1. 개요

파일:attachment/20120607_175123_3.jpg
파일:attachment/5_29.jpg
至尊[1]派, Chijon Family

1990년대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연쇄살인조직.

일반적으로 연쇄살인연쇄살인범 혼자서 저지르는 경우가 거의 대다수이고, 단독이 아닌 경우는 서로 부부[2]나 연인[3], 혈연[4], 친구[5] 등 가까운 관계의 2명이거나, 서로 모르는 사이의 타인들이 같이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경우[6]도 많아야 2명을 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3명 이상의 다수가 집단을 결성하여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7]은 그 수가 극히 적고, 심지어 이러한 사건들도 범인의 수가 3~4명 정도라는 것. 그러나 지존파는 구성원의 수가 무려 8명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드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지존파는 세계범죄사적 관점에서도 상당히 특수한 사례였던 만큼 CNN 등 외국 언론에서 취재를 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지존파가 저지른 범죄 수법이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잔혹했고[8], 불평등한 사회 구조와 부자들에 대한 원한과 분노를 담은 발언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으며, 이외에 사회문화적으로도 결코 적지 않은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사건이 발생한 당시는 상대적으로 강력범죄에 대한 보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던 시기이기도 했고[9], 보도된 당시가 추석 연휴였기 때문에 그 충격이 더 컸던 것도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내용의 행동강령도 있었다.
1. 돈이 많은 자를 증오한다.
1. 10억을 모을 때까지 범행을 계속한다.
1. 배신자는 죽인다.[10]
1.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11]
위와 같은 여러 이유 때문에 현재까지도 지존파 사건은 대한민국 최악의 범죄 및 살인 사건 중 하나로 자주 꼽히고 거론되고 있다.

2. 명칭

원래 이름은 지존파가 아니라 마스칸.[12] 지존파라는 이름은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이마에 지존(至尊)이라고 쓰인 두건을 두르고 훈련을 했다는 것과 두목인 김기환의 별명이 ‘지존’이었던 것을 바탕으로 이들을 검거한 고병천 수사과장이 조직원들과 합의하에 지은 것이다.

이렇듯 범죄 조직을 뜻하는 XX파라는 이름은 경찰이 관리 편의를 위해 임의로 붙인 것이지, 조직 자신이 칭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당시 언론은 이들이 홍콩 영화를 보고 지은 것으로 보도했고, 홍콩 영화를 좋아하던 청소년들이 덩달아 욕을 먹었다. 여기에 표창원도 덩달아 자신의 저서인 ‘한국의 연쇄살인[13]’에 무협영화 같은 대중매체의 안 좋은 영향의 예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다만, 이들이 지존이라는 단어를 쓰게 된 경위는 홍콩 영화를 보고서 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파벌의 대장이 지존이었기 때문에 아예 무관하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3. 결성

지존파의 결성 계기는 대학 입시 부정 사건에 분노하여 가진 자들에 대한 증오심으로 그들을 벌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사실 지존파는 두 번 결성되었다.

1992년 말, 김기환은 고소득자들의 돈을 갈취하는 범죄 조직을 결성할 계획을 세우자고 결심했다. 탄광 일을 하면서 알게 된 조 모 씨에게 범죄 계획을 알려 주며, 설득에 나섰다. 평소 조 씨의 경제적 여건과 성정을 알고 있던 김기환은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조 씨의 친구, 도박을 하며 알게 된 사람 세 명을 포섭해 조직을 결성했다. 하지만 그 범죄 계획에 살인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조직원들이 이를 꺼려 결국 해체되었다.[14]

첫 번째 조직 결성 실패 후 1993년 초, 갈 곳이 없어진 김기환은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탈퇴한 전 멤버의 소개로 ‘가희산’이라는 비밀 도박장에서 도박을 하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김기환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이번엔 더 못 배우고 부자에 대한 증오심이 훨씬 강한 자들을 포섭하려 했고, 실패 요인을 없애기 위해 대화술 관련 서적을 읽으며 더 철저하고 견고한 조직을 만들 계획을 세웠다. 그 해 3월, 고향 후배인 강동은과 접촉해 그에게 범죄 계획의 일부를 조금씩 흘려가며 차분히 설득에 나섰고, 자기 의지로 가담할 수 있게 1개월이라는 유예기간도 줬다. 이후 강동은이 적극적으로 찬성을 외치자 강동은의 교도소 동기인 문상록, 후배 송봉우도 동의하여 세 사람은 조직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렇게 네 사람은 전주시로 이동해 함께 생활하며, 조직 결성과 범죄에 대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강동은이 교도소 동기였던 백병옥을 떠올리고는 당시 천안시에서 막노동을 하던 백병옥을 합류시켰으며, 문상록은 같은 곳에서 일했던 강문섭을 강동은에게 소개해 포섭했다. 이주현은 같은 해 6월, 평소 “은행 강도가 되고 싶다”던 김현양을 김기환에게 소개해 조직에 합류하도록 했다.

이렇게 조직은 그해 7월, 포커판에서 김기환을 중심으로 강동은, 김현양, 문상록, 강문섭, 백병옥, 송봉우를 축으로 하여 조직되었다.

이미 한 번의 실패 경험이 있었기에 김기환은 조직의 유지에 굉장히 신경 썼는데, 평소 “배신한 자는 반드시 처단한다.”, “잘 때 내 가슴을 열어 놓고 잘 테니 나가고 싶다면 내 가슴에 칼을 꽂고 가라. 다만 그러지 못하면 지옥까지 쫓아가 죽일 것이다.”라고 하는 등 조직의 기강을 흔드는 자에게 용서란 없으며, 조직에 합류한 이상 벗어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후 부두목 강동은이 피해자 이 씨가 탈출한 이후 식사 준비와 잡일 등을 시킬 여성 조직원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자신의 여자친구인 이경숙[15]을 합류시켰다. 하지만 이경숙이 가담한 지 이틀 만에 지존파 전원이 검거되었으며, 그녀가 살인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되어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4. 조직원 목록

조직원 생년 학력 사망일 특이사항
김기환 1968년 국졸(중학교 중퇴) 1995년 11월 2일 두목
강동은 1972년 중졸(고등학교 중퇴) 1995년 11월 2일 부두목
김현양 1972년 국졸(중학교 중퇴) 1995년 11월 2일
문상록 1971년 중졸(고등학교 중퇴) 1995년 11월 2일
백병옥 1974년 국졸(중학교 중퇴) 1995년 11월 2일
강문섭 1974년 중졸(고등학교 중퇴) 1995년 11월 2일
이경숙 1971년 국졸(중학교 중퇴) 죽지 않고 생존 1998년 석방
송봉우 1975년 중졸(고등학교 중퇴) 1993년 8월 검거되기 전, 조직원들에게 숙청을 당해 살해되었으므로 체포 및 처벌 불가능[16]

4.1. 김기환

파일:김기환.jpg

金基煥, 범행 당시 나이 26세(1968~1995.11.2.).

지존파 두목이다. 전라남도 영광군 출생. 3세에 아버지가 사망한 후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특히 김기환이 법정에서 최후 진술을 할 때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크레파스를 살 돈이 없어서 안 가져 갔더니 선생님이 “그러면 친구들 것을 뺏어서라도 가져왔어야지!”라고 혼냈다. 그래서 친구들의 준비물을 훔치기 시작했고, 그러면 선생님은 날 혼내지 않았다. 난 선생님이 가르친 대로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라며 자신의 범죄를 남 탓으로 돌리는 등 전혀 뉘우치는 기색도 없이 뻔뻔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7] 이렇듯 어릴 때부터 겪은 극심한 가난과 그로 인해 받은 모욕 등이 그의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데,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행동발달사항에는 “지도력이 강하고 급우를 잘 통솔하나 간섭이 좀 심함”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중학교 생활기록부에도 “준법 정신이 낮음”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래도 초등학교 6년 내내 우등상을 받았고 반장을 하기도 했으며, 중학교 시절에도 전교 5등을 할 정도로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고 운동 능력과 글짓기 실력도 뛰어났을 정도로 능력은 좋았다.[18]

하지만 중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형 마저 병에 걸리자 자퇴 후 돈을 벌기 위해 부산광역시로 떠났다. 부산광역시로 내려간 후 가장 먼저 취직한 곳은 한 신발 공장이었다. 월급의 대부분은 어머니에게 보냈고, 중단할 수밖에 없었던 학업에 대한 미련이 남았는지 틈틈이 검정고시 준비도 했다. 그 후 몇 년간 대한석탄공사에서 잡부 일을 하거나 공사판 등을 전전하며 나름 열심히 일을 했지만,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여 검정고시 준비를 그만두고는 얼마 후에 직장도 그만둔 뒤 영광 고향집으로 돌아와 잠시 가족들과 지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도박에 빠져 도박으로 인한 빚까지 지게 되었다.[19] 그렇게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이 필요했던 그는 “가진 자들을 징벌한다”는 명분으로 ‘부자들의 돈을 갈취하여 살해하는 조직 결성’이라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기에 이르게 되었다. 조직 결성을 위해 각종 범죄 관련 서적은 물론이고, 처세 및 대화술 관련 서적을 탐독했을 정도. 첫 조직 결성은 실패하고 고향 후배 강동은 등을 끌어들여 지존파를 결성하여 두목이 되었다.

조직 결성 후 담력을 키운다는 명목으로 조직원들에게 지리산에서 일주일간 물 한 병과 칼 한 자루로 버티도록 하는 훈련을 시켰고, 조직원들과 막노동을 해서 모은 돈으로 어머니가 기거하던 집을 아지트로 개조했다. 평소엔 동네 형처럼 조직원을 대했지만 강압적인 리더십으로 조직원들을 복종하게 했으며, 조직의 결속력을 높이기 위해 첫 번째 피해자인 최미자 씨[20]와 송봉우 살해를 주도했다. 실제로 조직원들은 송봉우 살해 당시, 두목인 김기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송봉우를 경쟁적으로 잔혹하게 살해했다고 했다.

아지트 완공을 얼마 앞두고 실전에 돌입하기 전인 1994년 6월 17일, 김현양의 생일 당일에 조직원들과 술을 마시다가 그날 밤에 불현듯 “아는 선배의 집에 보일러 수리를 하러 가겠다”며 자리를 비운 김기환은 선배의 집에서 자고 있던 선배의 조카(당시 중학교 1학년)를 성폭행하여 체포되었다. 이때 김기환은 범행 사실을 순순히 자백했는데, 전문가들은 김기환이 직접적인 범행으로부터 손을 떼고 중죄를 면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했다. 그렇게 김기환은 강간상해치상죄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이후 강동은을 부두목으로 임명하고는 면회를 통해 부하 조직원들에게 범행을 지시했고, 수감 중에도 그의 말은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법이었다.

후에 지존파 전원이 검거되어 서울구치소로 이전된 후 1995년에 사형이 확정되었다. 사형선고를 받고 나오는 길에 “야! 전두환, 노태우는 무죄인데 나는 왜 유죄여? 이건 세상 법이 X 같은 것이여!”라는 어록을 남겼는데, 노태우는 지존파 사형 선고 하루 전에 구속되었고, 전두환노태우는 나중에 사면되어 나왔을 뿐, 무죄 판결을 받은 것은 아니다.[21] 전두환, 노태우 사형 선고는 지존파 사형 후 일이고, 지존파에게 내려진 사형이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지존파 관련 영상으로 그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데, 그 이유는 지존파가 검거되기 3개월 전부터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기 때문이다.

4.2. 강동은

파일:강 동은.png

姜東銀, 검거 당시 나이 21세(1972.10.27.[22]~1995.11.2.)

부두목이다.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특수절도, 폭행 전과 2범이다. 김기환의 국민학교, 중학교 후배였다. 다른 조직원들과는 달리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한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넉넉한 가정형편은 아니었고 형제가 많아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학창 시절부터 폭력적인 성향이 짙어 급우들을 자주 폭행했고, 학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생활기록부 상에는 “매사에 무관심한 성향”, “바른 생활이 요구됨”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 동창인 문상록과 함께 이웃집의 벼 두 가마니를 훔쳤다가 절도 전과를 갖게 된다. 밴드부에 가입해 음악에 취미를 가지려 했으나, 선배들의 가혹행위가 심해 그만두었다. 그 후 방황하다가 결국 문상록과 가출해 상경한 후 막노동을 시작했다. 전과 삭제를 위해 4년간 열심히 일해 모은 돈 1500만 원을 변호사에게 주었다가 돈만 날렸을 뿐 여의치 않자 그때부터 부유층에 대한 적개심이 생겼고,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지 않자 귀향해 도박에 빠졌다가 김기환을 만나 조직에 합류하게 된다. 김기환에게 충성을 보이며 문상록, 백병옥, 강문섭 등을 소개시키는 등 초반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두목인 김기환이 강간상해치상죄로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자 부두목으로 임명되어 수감 중인 김기환을 수 차례 면회해 범행 지시를 받았다. 학창시절부터 폭력적인 성향이 짙었고 조직의 부두목이 되기도 하는 등 겉보기엔 범행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비춰지지만, 사실 소심해 거의 김기환으로부터 범행을 지시 받아 나머지 조직원들이 실행하도록 전달하는 역할만 하고 범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첫 피해자였던 최 씨 살해 후엔 죄책감에 시달려 다리 부상을 핑계로 잠시 혼자 지내기도 했고[23] 소 씨 부부 살해 당시에도 지시만 하고 가담하지 않았다.

지존파가 체포되기 며칠 전 잡일과 요리를 해 줄 사람이 필요하단 명목으로 자신의 여자친구 이경숙이 일하던 주점에 진 빚을 대신 갚아주고 이경숙을 지존파의 일원으로 들인다.[24] 그렇게 이경숙이 조직에 합류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아침에 찬거리를 사러 트럭을 타고 아지트를 나섰다가 미행하고 있던 경찰과 1.5km 추격전을 벌인 후 조직원들 중 가장 먼저 체포되었다.

4.3. 김현양

파일:김현양.jpg

金現陽, 검거 당시 나이 22세(1972.6.17~1995.11.2).

행동대장. 중학교 2학년을 중퇴했고 상해전과 1범이다. 김기환과 조직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은 인물이다. 상해 1범이라는 전과도 조직 가담 후에 생긴 전과이다.[25]

검거 당시 입대를 앞두고 있던 남동생과 미성년자 여동생이 있었으며, 12세에 중국집을 운영하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사망하자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식당 일을 시작했다. 외모가 아름다웠던 어머니가 자식들을 방치하고 식당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낯선 남자들이나 아버지의 친구들을 비롯한 여러 남성과 은밀한 만남을 이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아 하교 후 귀가하는 것을 꺼릴 정도로 심리적인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생활기록부의 행동발달사항에는 “무기력하며 학업에 관심이 없음”, “주의가 산만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지 못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현양의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들은 모두 입을 모아 김현양에 대해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학생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학창 시절엔 심리적인 방황에도 폭력적인 성향이 보이지 않았고 큰 문제도 없어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친구와 재혼한다. 이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 증오심은 커지기만 했고 이는 일종의 여성혐오로 변모하게 되었다.[26]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와 다툰 후 가출하여 광주로 올라갔는데, 첫 날부터 걸인들에게 잘못 걸려 앵벌이를 하게 된다. 껌팔이, 절도 등을 하며 도주할 기회만 엿보다 도주에 성공해 서울로 상경한 후 신문팔이부터 시작해서 지역을 옮겨 다니며 정착하지 못한 채 제화점 직공, 술집 웨이터 등을 전전한다. 그러던 중 전기 기술을 배워 취직해 몇 년 간 모은 돈으로 트럭을 구입해 굴비 장사를 시작했으나, 실패한다. 장사를 접고 운수회사에 취직했지만, 취직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다른 이로부터 김기환을 소개받고 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조직에 합류한 후 내재되어 있던 강한 폭력성을 드러내며, 두목인 김기환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보였고 행동대장 노릇을 했다. 행동대장답게 모든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체포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태연히 웃어 보이며 당당하다 못해 충격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어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오히려 두목인 김기환보다 언론에 훨씬 많이 노출되었는데, 마치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니 무서울 것도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존파 조직원들 중 얼굴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지존파 조직원 중 유일하게 인육을 먹었다고 발언해 충격을 주었다.[27] 인육을 먹은 이유는 “인간이길 포기하려고.”

그러나 끔찍한 범행을 자행하면서도 양수리 부근에서 세 번째 피해자 이 씨와 함께 납치된 이 모 씨를 유일하게 살려 주며, 탈출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만 일부러 탈출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인지, 단순히 이 씨를 너무 믿어서 방심한 것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 김현양이 구치소에 수감된 후 면회를 와 “날 일부러 살려 준 거냐”고 묻던 이 씨의 질문에 김현양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일부러 기회를 준 것은 아니란 뉘앙스로 대답했고 신고한 이 씨를 원망하지 않고 뒤늦게 자신들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평소 이 씨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나 동생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고 “사랑하는 여자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러면 나머지 애들한테 우리 가족이 개죽음 당할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28]

4.4. 문상록

파일:문상록.jpg

文相錄, 검거 당시 나이 23세(1971~1995.11.2.).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특수절도 등 전과 3범이다. 고등학교 재학 중 친형과 아버지가 사망한 후 고등학교 동창생이었던 강동은과 함께 가출해 막노동판을 전전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생활기록부에 “학습에 흥미가 없고 우발적 행위가 우려되며 자기 억제를 못함”이라는 지적이 있다. 평소 충동조절장애로 의심되는 행동을 보였다.

1991년 입대했지만, 같은 해 12월에 의가사 제대를 한 후 술집 웨이터 같은 잡일을 하다가 강동은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출소후 조직에 가담해 첫 피해자였던 최 씨 살해를 제외하곤 모든 범행에 참여했다.[29] 조직 내에선 조직의 부두목이었던 강동은을 보좌하는 역할이었다. 김기환 다음으로 연장자였지만 서열은 강동은, 김현양 아래였기 때문에 범죄 행위 시 그다지 주도적인 역할은 맡지 못했으나 김현양이나 김기환 못지 않은 잔인한 성향의 소유자로, 범행시 살인 행위 자체나 피해자들의 고통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김기환에게 절대적 충성을 보였고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인 이 모 씨를 처음부터 끝까지 믿지 못하며, 굉장히 못마땅해했다. “여자는 어머니도 믿지 말라”고 하던 조직행동강령을 어기며 이 씨를 살려 주려고 한 김현양과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고 주먹다짐까지 벌였다.

4.5. 강문섭

파일:강문섭.jpg

姜文燮, 검거 당시 나이 20세(1974~1995.11.2.),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맨 나중에 합류한 막내 조직원이고, 유일하게 전과가 없었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고모 밑에서 자랐다. 양쪽 얼굴에 큰 화상 흉터가 있는데, 이 때문인지 학창 시절 늘 침울하고 무기력했으며 주의가 산만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장기 결석으로 제적 당한 후 서울과 전주를 오가며 술집 웨이터 일 등을 하다가 알게 된 문상록의 소개로 강동은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거금을 쥐어주겠다”던 김기환의 말에 현혹되어 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검거 후 범행 동기가 “자신의 얼굴에 있는 화상 흉터를 없애기 위한 성형수술 자금 마련”이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조직 내에선 백병옥과 함께 서열 최하위로 범행에 있어서 주도적인 행위는 하지 않고 주로 뒤처리를 담당했다.

4.6. 백병옥

파일:백병옥.jpg

白炳玉, 검거 당시 나이 20세(1974~1995.11.2.), 중학교 제적(장기 결석), 특수강도 등 2범.

다른 지존파 조직원과는 달리 부모가 둘 모두 있었고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매우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가 품팔이를 하여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였다. 지존파에 가입해 범행을 저지른 이유도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서”라고 밝혔다.

마지막 공판에 지존파의 부모 중 유일하게 백병옥의 부모만이 참석했는데, 허름한 차림을 하고 있었고 여관에 머무를 돈이 없어 대합실에서 잤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가난을 물려 준 자신들을 탓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판사에게 작성한 탄원서는 묻은 눈물로 인해 탄원서 종이가 모두 흐려져 글이 안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그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사람을 죽이고 그런 짓을 할 애가 아닌데 사람을 잘못 만나게 되어 이런 짓을 하였다며 끝까지 판사에게 선처와 용서를 구했으나, 직후 검사의 사형 구형에 백병옥의 어머니는 거의 실신 정도까지 갈 수준이었다고 한다.

본인은 효도하기 위해 범죄를 했다지만, 도리어 부모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어린 시절부터 몸이 약해 초등학교 재학 중 장기 결석으로 이미 학업에 대한 의욕을 잃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몸이 더럽다”는 이유로 선생님에 의해 발가벗겨진 이후 학교가 아예 싫어졌다고 한다. 중학교 진학한 후에도 장기 결석으로 제적 당해 불량 청소년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절도 및 강도 전과마저 생겼다.

특수강도로 수감되어 있을 때 교도소 동기였던 강동은과 친분을 맺어 출소 후 강동은과 공사장에서 일한다. 천안에서 막노동을 하던 중 김기환과 함께 범행 모의를 하던 강동은으로부터 일확천금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며 조직 가입을 권유 받아 조직의 일원이 된다. 조직 내에서 맡은 역할은 범죄 대상을 물색하는 것이었다. 막내였기 때문에 서열은 최하위였지만, 선배들 못지않은 잔악함을 보였고 두목인 김기환에게 절대복종했다.

가장 마지막에 붙잡혔다. 같은 막내이자 동갑인 강문섭과 아지트에 끝까지 남아있다가 멀리서부터 자신들(김기환 소유) 아지트로 무장한 채 추격해 오는 경찰들을 본 후 건물 뒤 야산으로 도주하여 대나무 숲에 숨어있다가 몇 시간도 안 되어 기동대원들한테 잡혔다고 한다. 해당 부분은 같은 막내인 강문섭은 범죄 전과가 없는 것에 비하여, 백병옥은 이미 학창 시절부터 특수강도등의 전과가 2건이 있기 때문인지 본능적으로 짐작 후 도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4.7. 이경숙

李京淑, 검거 당시 나이 23세(1971년생).

강동은의 여자친구이자 절도 전과 1범. 조직원들 중 홍일점이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와 다방을 운영하던 어머니 아래에서 자라났고 모 여중 2학년을 중퇴, 가출했다. 1992년까지 대전에서 일하다가 영광으로 내려와 어느 작은 주점에서 접대부 생활을 시작했고 그러던 중 주점을 찾았던 강동은과 인연을 맺어 연인이 되었다. 강동은이 엄청난 범죄에 연루되어 있단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함구했으며, 인질이었던 이 씨가 탈출하자 강동은이 잡일과 요리를 해 줄 여성 조직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자신이 주점 사장에게 진 빚 1600만 원을 대신 갚아 주어 풀려난 뒤 여성 조직원으로 합류하게 된다.[30] 그러나 합류한 지 이틀 만에 검거되었고 직접적으로 살인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1998년 석방되었다. 검거 당시 강동은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다.

4.8. 송봉우(송봉은)

이름이 송봉은으로 알려진 이유는 생전에 형의 주민등록증을 빌려 도용했기 때문이다. 사망 당시 나이 18세(1975년생), 전라남도 영광군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조직에 합류한다. 1993년 7월 초순 밤, 강동은, 백병옥 등과 함께 범행 모의를 하다가 홀로 걸어가던 최미자 씨를 발견하고 인근의 다리 밑으로 끌고 가 강간한 뒤 함께 있던 강동은, 백병옥도 최 양을 강간하게 된다. 그 후 최 양의 처분을 두고 강동은 등과 함께 고민하다가 강동은이 김기환에게 상황을 보고 하면서 김기환, 김현양 등의 합류 후 살해 지시를 받아 살해 과정에 동참하게 된다. 자신의 몹쓸 짓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꿈에 귀신이 나온다며 한동안 괴로워하다가 1993년 8월, 조직의 자금통장에서 300만 원을 빼내 도주하던 중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붙잡히고 만다. 용서해 주겠다며 “단합대회를 하고 개나 잡아 먹으러 가자”고 회유하는 조직원들에게 속아 인근 야산으로 유인당해 그 곳에 대기하고 있던 김기환이 태도를 바꾸며 추궁하자 용서를 빌다가 김현양이 벽돌로 머리를 가격해 기절한 뒤 나머지 조직원들에게 곡괭이 등으로 폭행당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신이 훼손된 채 사망, 불에 태워진 뒤 암매장 당했다.

5. 범죄 행각

5.1. 첫 번째 범행 ~ 아지트 완공 전

1993년 7월 초순 밤 11시경 충청남도 계룡시[31] 계룡역[32] 부근. 송봉우, 강동은, 백병옥은 한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다가 퇴근 후 홀로 걸어가던 23세 은행원 최미자 씨를 발견한다. 송봉우는 최 씨를 인근 다리 밑으로 끌고 가 성폭행한다. 함께 있던 강동은과 백병옥도 최 씨를 성폭행 했는데, 계획에 없던 범죄를 저지르고 난 후 고민하다가 강동은이 숙소에 있던 김기환에게 상황을 보고한다. 김기환은 얼굴을 보인 이상 살려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멸살할 결심을 한다. 김기환은 포터를 몰고 김현양, 강문섭과 함께 현장으로 갔고 최 씨를 차에 싣고 숙소에서 삽을 챙긴 뒤 논산의 한 야산으로 이동했다. 김기환은 현장에 도착해 최 씨를 강간하고 김현양에게도 강간하도록 지시한 뒤 “사람 죽이는 시범을 보여 준다”며 최 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그 와중에 증거 인멸하는 방법까지 가르치고 조직원들이 교대로 구덩이를 파도록 지시해 최 씨를 암매장했다. 그렇게 그들은 ‘살인 연습’을 했고 최미자 씨는 첫 피해자가 되었다.

조직원들은 호기롭게 조직에 들어왔지만, 막상 살인을 저지르고 나니 흔들리기 시작했다. 특히 최미자 씨 살해의 원인 제공자이자 최연소 조직원이었던 송봉우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악몽으로 괴로워했다. 이를 견디다 못해 조직을 이탈하기로 결심한 그는 1993년 8월, 조직의 자금을 모아둔 통장에서 현금 300만 원을 인출해 도주한다. 김기환은 송봉우가 도주한 지 두 시간 만에 사태를 파악하고 송봉우가 경찰에 밀고할 가능성도 있고 자신의 조직의 기강을 바로 잡기 위해 송봉우를 살해하기로 한다. 김기환은 조직원들과 송봉우 포획 작전을 세운 뒤 송봉우의 누이로부터 송봉우가 거주하고 있는 집 주소를 얻어낸 후 송봉우에게 용서해 주겠다며 조직에 다시 합류할 것을 설득한다. 마음이 약해진 송봉우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조직으로 복귀한다. 조직원들은 송봉우에게 “단합대회를 하고 개나 잡아 먹으러 가자”며 한 야산으로 유인했다. 송봉우가 장소에 도착하자 김기환이 책임 추궁을 하기 시작했고 용서를 빌던 송봉우의 뒤통수를 김현양이 벽돌로 후려쳐 기절시킨 뒤 나머지 조직원들은 미리 준비한 곡괭이 등으로 송봉우를 폭행했다. 다만 첫 범행 때와는 달리 김기환이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아도 두목에게 잘 보이기 위해 조직원들은 알아서 경쟁적으로 살해 행위를 했고 증거 인멸을 위해 시신을 불에 태운 뒤 암매장까지 했다. 이들은 조직을 이탈하면 어떻게 되는지 목격했기에 두려움을 느꼈지만, 첫 살해 당시 느꼈던 살인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고 죄책감도 없었다.[33] 심지어 송봉우 살해 후 태연히 개를 잡아 먹었고, 김기환은 추후 법정에서 송봉우 살해에 대한 진술을 할 때 “하루에 개 두 마리를 잡은 것에 불과하다”고 발언해 장내를 술렁이게 했다.

그 후 이들은 본격적인 범행에 착수하기 위해 당분간 아지트 건설을 목표로 돈을 모으는 데만 전념하기로 한다. 이들은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대전 일대에서 막노동을 해 모은 돈으로 김기환의 어머니의 집을 차근차근 살인을 위한 아지트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김기환은 가족들과 이웃에게 “어머니께 효도하기 위해 어머니를 모시고 살 집을 새로 짓는다”고 말했다. 그들과 함께 일했던 동료들은 젊은 청년들이 성실하게 일한다며 흐뭇해했다. 설마 그들이 등 뒤로 그런 끔찍한 범행을 모의하고 있을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1994년 6월 중순 김현양의 생일 당일, 김기환은 김현양에게 생일 파티를 열어 준다며 조직원들과 모처럼 회식을 한다. 그러던 중 불현듯 아는 선배의 집 보일러를 수리해 준다며 자리를 비웠다가 선배의 집에서 잠자고 있던 선배의 여중생 조카를 강간해 구속된다.

두목의 부재에 강동은이 부두목이 되어 조직을 이끌게 된다. 아지트 완공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중심을 잡아 줄 두목이 없자 이들은 지옥 훈련을 받기로 한다. 7월 중 일주일 가량을 지리산에서 칼 한 자루와 생수 한 병으로만 버티기로 한 것이다. 강동은은 뒤처지는 조직원이 있으면 “너도 봉은이처럼 잔디 이불 덮고 싶냐?”며 채찍질했다.

5.2. 아지트 완공 ~ 검거 전

파일:2018-05-08-13-45-16.jpg

1994년 7월 말, 살인을 위한 그들의 아지트가 완공되었다. 그들은 이곳을 ‘아방궁’이라 칭했다. 아지트 완공 전까지는 주민들의 접근을 막았다가 아지트가 완공되자 그들은 태연히 이웃 주민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이들의 아지트는 요새처럼 아주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의심을 피하기 위해 건물 외벽에 분홍색 페인트까지 칠하고 일반 가정집처럼 해 놨지만, 지하에는 무려 3천만 원을 들여 희생자들을 납치하고 감금해 둘 감금 시설과 시체를 소각하는 소각장을 만들었다.[34]

아지트 완공과 동시에 조직원들은 김현양의 중학교 후배인 무기 브로커 이주현 씨로부터 무기를 구입해 범행 도구들을 완비한다.[35] 또, 범행 대상 물색을 백화점 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지정하기 위해 前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신용 판매부 직원이었던 김민경 씨로부터 백화점 고액 거래자 명단을 구입한다. 물론 지존파가 살인극에 쓸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넘겨 주지는 않았겠지만, 개인정보 유출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최악의 사례이기도 하다.[36] 준비가 다 되었다고 판단한 강동은은 김기환을 면회해 본격적인 범행에 착수할 것을 허락받는다. 조직원들은 평소 김기환이 말했던 대로 벤츠그랜저 등의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1994년 9월 5일 오전 12시 경, 아지트를 떠나 서울로 출발한 뒤 당일 밤 서울 워커힐 호텔 부근에서 1박을 하고 7일에 범행을 시도했으나 실패로 돌아간다. 범행 실패 후 바로 경기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낚시터 부근으로 장소를 옮겨 차를 주차한 뒤 도로 밑에서 범행대상이 나타날 때까지 잠복했다. 몇 시간 뒤 도로에 그랜저가 나타나자 강동은이 승용차로 그랜저 차량을 가로막았고 나머지 조직원들이 가스총과 칼 등으로 그 안에 타고 있던 이종원 씨(36세, 남)와 이 모 씨(27세, 여)를 위협해 밖으로 끌어낸다. 테이프와 끈으로 두 사람의 손과 발을 결박하고 눈을 가린 채로 포터에 실어 아지트로 납치한다. 아지트에 도착하자마자 두 인질의 인적 사항 등을 취조했는데, 타고 있던 그랜저 차량은 700만원을 주고 중고차로 구입을 한 차였고 둘 다 자신들이 원하던 부자들이 아닌 것이 밝혀지게 된다. 이종원 씨는 카페 악사였고 조수석에 타고 있다가 함께 납치된 이 모 씨도 이종원씨와 같은 카페에서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이었다.[37] 조직원들끼리 둘의 처분을 놓고 토론을 하다가 둘 다 살해하기로 한다.

다음 날 조직원들이 돌아가며 이 모 씨를 성폭행했고 이종원 씨에게 술을 잔뜩 먹여 취하게 한 뒤 비닐봉지를 머리에 씌워 질식사 시키고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할 계획을 세운다. “여자도 함께 죽이면 수상해 보일 수 있다”는 논리로 이 모 씨도 함께 살해하려고 했던 다른 조직원들을 설득시킨 김현양이 이 씨를 살려 주는 대신 이 씨에게 공범 의식을 심어 줌으로써 이 씨가 다른 조직원들로 부터 신임을 얻을 수 있도록 이종원 씨 살해 과정에 동참하도록 유도한다. 이 씨는 극한의 공포에 떨며, 이종원 씨의 입을 막는 시늉만 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이종원 씨를 넣은 골프백을 들고 전라북도 장수군 번암면 교동리의 한 인적이 드문 도로로 이동했다. 이때 얼굴에 화상 흉터가 있어 경찰에게 잡혔을 때 눈에 띌 확률이 높은 강문섭과 이모 씨만 아지트에 남아 강문섭이 “저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형들이 시켜서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며 이 모 씨를 성폭행했다. 하지만 이때까지 이종원 씨는 살아 있었고, 이를 확인한 조직원들이 전기충격기로 재차 충격을 줘 살해한다. 그 뒤 이종원 씨를 그랜저 운전석에 태우고 차량을 계곡으로 밀어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위장했다. 더 치밀하게 위장하기 위해 도로에 스키드 마크까지 남겼다.[38] 범행을 마친 후 아지트로 복귀한 그들은 이 씨를 또 한 차례 성폭행한다.

1994년 9월 13일, 경기 성남시 남서울공원 묘지 근처에 주차된 뉴 그랜저[39] 차량을 발견하고는 성묘를 하던 소윤오(43세, 남), 박미자(35세, 여) 부부에게 “차량 바퀴에 펑크가 난 것 같다”며 부부가 그 차량의 소유주임을 확인하고 공기총을 발사해 위협한 후 이전 범행 때와 유사한 방법으로 부부를 납치해 아지트로 이동한다. 14일 새벽, 피해자들을 취조해 보니 이전 피해자들과는 달리 소 씨는 자수성가한 중소기업 사장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되자 “몸값을 지불하면 풀어 주겠다”는 말로 회유한다. 조직원들은 소 씨 부부의 몸값으로 1억 원을 요구했고, 소 씨로 하여금 회사 직원에게 “교통사고가 크게 났는데 피해자에게 1억 원을 지불해 합의를 보기로 했다”고 거짓말 해서 돈을 건네받도록 지시한다. 소 씨로부터 1억 원까진 지불할 수 없지만, 8천만 원까진 된다는 확답을 받은 후 같은 날 오전 광천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경찰에게 범죄가 발각되었을 경우를 대비해 차량에 다이너마이트도 구비해 놓았는데, 김현양이 다이너마이트 조작을 잘못하여 손과 발에 부상을 입고 아지트로 복귀한다. 오후 2시경, 조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소 씨는 회사의 총무 부장으로부터 8천만 원이 든 돈가방을 건네받는다. 이때 남편 소윤오는 도주하거나 구조 신호를 보낼 수도 있었으나, 아내 박미자가 인질로 잡혀 있었고 또 당시에는 돈만 지불하면 정말 풀어주리라 믿었기에 돈만 받아온다. 돈가방을 받고 아지트로 복귀한 그들은 그날 밤, 처음 만져 보는 큰 돈에 기쁨에 취해 소 씨 부부의 처분을 놓고 토론을 한다. 살려 주자, 죽이자는 의견이 반으로 나뉜 적도 있으나 원칙대로 죽여야 한다는 의견으로 모아져 부부를 살해하기로 한다.[40]

이들은 부부에게 집으로 돌려 보내 주겠다며 술을 먹여 물리적으로 저항하지 못할 때까지 취하게 한 뒤 이 씨를 확실하게 범죄에 가담시킬 목적으로 총을 발사하여 소 씨를 멸살하도록 지시한다.[41] 김현양이 소 씨를, 강문섭이 박 씨를 맡아 시신을 해체했고 나머지 조직원들은 이모 씨가 고개를 돌리고 있자 조직원 중 일부가 이 모 씨의 머리를 잡으며, “죽기 싫으면 봐”라는 말과 함께 강제로 이 끔찍한 광경을 보게 했다. 이 과정에서 김현양은 사체의 일부를 도려내어 먹는 기행을 보인다. 이때 김현양이 이 모 씨에게 “사람 고기 처음 보죠? 맛있어요” 라며 인육을 건넸지만, 이 모 씨는 거절했다. 절단한 사체를 소각하는 과정이 오래 걸려 3개 조로 편성까지 했다. 이들은 사체를 소각할 때 나는 냄새를 희석시키기 위해 마당에서 일부러 돼지고기를 구워 먹고, 이웃 주민들에게 구운 고기를 나눠 주는 태연함과 치밀함을 보인다.

이들은 소 씨로부터 빼앗은 8천만 원 중 일부를 1500만 원 상당의 기관총 2자루를 청계천에서 구입, 현대자동차에서 포터 냉동 탑차를 비롯해 갤로퍼, 쏘나타 II등의 차량들을 다른 사람의 명의로 구입할 계획을 세울 뿐만 아니라[42], 중국으로 가 전지 훈련을 받은 후 최후에 두목 김기환을 체포한 영광경찰서를 습격하여 경찰관들을 죽이고 총기를 탈취하여 MBC를 습격할 계획을 꾸민다.[43][44]

6. 체포

  • 검거 당일 보도자료: KBS, MBC

양수리 부근에서 세 번째 희생자인 이종원 씨와 드라이브를 하다 함께 납치된 카페 여종업원 이 씨(당시 27세)의 극적인 탈출 덕분에 지존파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씨는 납치되었을 당시 지존파의 아지트에 감금된 후 살려 달라고 애원해도 살려 주지 않을 것이란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처음 잡혀 왔을 때 김현양이 “당신이 이제부터 우리가 하라는 대로 따르면 우리는 당신을 살려 줄 것이고 아니면 죽일 것이다”라고 했을 때도 이미 그녀는 자신들이 살아서 나갈 수 없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기에 어이가 없어서 픽 웃어버렸는데, 이런 그녀의 반응에 김현양은 당황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현양이 이 씨에게 연정을 품게 되어 이 씨를 죽이려는 조직원들을 설득시키면서 그는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45] 목숨은 부지하게 됐으나, 입막음용으로 살인에 가담할 것을 강요받은 이 씨는 조직원들이 억지로 피해자의 손을 갖다대는 식으로 이종원 씨와 중소기업 사장 부부를 죽이는 것에 동참 당했다.[46] 두 차례의 범행 현장에 있음으로 문상록을 제외한 지존파 조직원들에게 얼추 신임을 얻었으나, 그녀를 끝까지 믿지 못했던 문상록이 김현양과 심하게 갈등을 빚으며 언제든 지존파에게 희생될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이 씨의 탈출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다이너마이트를 잘못 다뤄 손과 발에 부상을 입은 김현양이 실밥을 풀고 상처 부위에 소독을 받기로 한 날, 이 씨는 김현양에게 병원에 동행하게 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김현양은 흔쾌히 그러자고 답했고 그렇게 이 씨는 그와 병원까지 동행하게 됐다.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던 중, 김현양은 현금 50만 원이 든 지갑과 휴대전화를 이 씨에게 맡기고 진료실로 들어갔다.[47]

이 씨는 그렇게 극적으로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자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빠른 걸음으로 병원을 빠져나와서[48] 택시를 잡았다. 지존파의 행동 반경으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택시기사에게 해남경찰서로 가 달라고 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하차하고 포도밭 인근의 농가에 숨어들었다.[49] 비닐하우스 안 평상 밑에 몇 시간을 숨어있던 이 씨는 집주인 부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집주인 지인의 차를 얻어 타 대전까지 이동했으며, 대전 톨게이트에서 택시를 잡아 서울의 한 모텔에 도착한 뒤 자신이 일하던 카페에 연락을 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 씨는 서초경찰서에 카페 주인의 남동생과 동행하여 경찰들에게 사건에 대해 말했으나, 경찰들은 관할이 아니라며 사건 담당을 거부했다. 분노와 공포가 극에 달한 이 씨를 보던 카페 주인의 남동생은 평소 카페를 즐겨찾던 고병천 반장(당시 서초경찰서 강력 반장)에게 연락했다.

강력반장이었던 고병천 반장조차 이 씨의 진술이 매우 충격적이라 처음엔 믿지 못했으나[50], 이종원 씨가 전북 장수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과 소윤오-박미자 부부의 실종, 납치 사건에 대해 이 씨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고 반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는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게 되었다.[51]

파일:external/www.sisainlive.com/1786_3497_2358.jpg

체포 작전은 수월했다. 먼저 강동은이 이른 아침 포터를 타고 마을로 가다가 경찰의 미행을 눈치채고는 경찰과 1.5km 추격전을 벌인 끝에 검거되었고, 형사가 “강동은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전화를 걸어 김현양과 이경숙, 문상록을 유인해 낸다. 경찰이 파 놓은 함정임을 눈치챈 문상록이 도주하다 형사에게 제압 당하고 김현양, 이경숙은 르망을 타고 도주하려다가 20km 추격 끝에 검거된다. 나머지 조직원들은 아지트에 있다가 아지트를 급습한 경찰들에 의해 모두 검거되었다. 표창원이 쓴 저서에 따르면 영광경찰서 형사들과 공포탄을 쏘며 공포감을 조성하면서 진입했다고 한다.[52]

이 씨의 탈출 후 이들이 하루라도 빨리 아지트를 떴으면 검거되지 못했거나 검거되더라도 시간을 벌 수 있었을 테지만 이 씨가 탈출했음에도 아지트에 남아있었던 이유는, 이 씨의 탈출 성공 후 그들이 영광경찰서 앞에 3일 동안 잠복하며 경찰들의 동태를 살폈으나 평소와 같았고 이 씨가 범행에 가담했기 때문에 쉽사리 신고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 씨가 신고하지 않고 그냥 도망간 것이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멀리 서울까지 달아나서 신고한 이 씨의 기지가 발휘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와는 다르게, 당시에는 중범법자는 검거 즉시 신상 공개를 하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으므로 범인 체포 후 얼굴이 그대로 나왔고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돈 없다고 무시하는 것들. 압구정동 야타족들! 모조리 죽이지 못한 게 한이다!”라고 말하며 사회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또 강령에 고급 중대형차들을 범행 대상으로 지정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어 고급 중, 대형차 판매량이 일시 감소했으며 고급차들의 중고 매물이 갑자기 늘었다. 언론플레이와 광적인 취재 열기가 잘못 퍼진 좋은 예.[53]

이들은 중국에 가서 전지 훈련을 하려 했었고, ‘야인’이나 ‘뺑끼통’과 같은 책을 교재로 삼았다고 자랑했다.[54] 더 나아가 압구정 야타족과 백화점 고객 등 돈 많은 이들을 살해하고 심지어는 경기도 일대 러브호텔까지 송두리째 쓸어버리려고 했다는 미친 소리까지 했다. 그리고 백화점 우수 고객 1200명 명단 리스트가 지존파 손에 들어간 것이 확인되자 우수 고객들이 백화점 측에 항의하여 백화점 상담 전화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MBC 보도1, MBC 보도2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김현양은 자랑스럽게 인육을 맛봤다고 했고, 왜 식인을 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인간이길 포기하기 위해서라고 황당무계한 궤변을 지껄이는 등 반성의 기미는 눈 씻고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없었으며, 살인의 이유를 불평등한 사회 모순 때문이라며 사회 탓으로 돌리고 자신들의 가치 전도 현상을 정당화하려 했다. 김현양은 체포되어 끌려갈 때 “2천만 원 이상[55][56]자동차를 가진 놈들은 다 죽여야 해! 그래야 내 원한이 풀려!”라고 소리를 쳤다고 주민들이 증언했으며, 이들은 현장 검증에선 “잘난 놈들을 죽이려 했다”고 거듭 말했다.

당시 경찰이 지존파로부터 압수한 무기는 다이너마이트 23개, 뇌관 14개, 망원렌즈가 달린 공기총 1정, 가스총 1정, 등산용 지팡이로 위장한 대검 7개, 대검 4개, 전자 충격기 1개, 전자봉 1개, 무전기 2대, 호출기 5개 등이었다.

7. 처벌과 지존파의 멸망

이경숙은 가담 이틀 만에 체포, 살인 행각과 관련이 없다는 점이 참작되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지존파 일당 전원은 1994년 10월 31일 서울지방법원에서 강도살인, 사체유기, 사체손괴, 범죄단체 조직 및 가입죄, 특수강간 등이 적용되어 구형대로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후 고등법원, 대법원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고 1995년 11월 2일 두목 김기환을 포함해 조직원 6명에 대한 사형 집행이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보통 기존 대한민국 대통령 임기 중에 벌어진 사건에 대한 사형집행 결정도 최소 2년은 기다려 주는 게 관례임을 생각하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인데, 원래 사형수에 대한 형 집행은 그가 무고할 가능성도 감안하고 또한 마음을 정리하고 뒤늦게나마 교화될 기회를 주기 위해 정권이 바뀐 뒤에 즉, 수년 뒤에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 사건은 온보현[57]이 저지른 강도 살인 행각과 더불어 워낙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준 예외적인 경우이며, 무고할 가능성도 전혀 없기 때문에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김영삼 정부 시절 저질러진 살인 사건 중에 사형이 집행된 경우는 이 두 사건밖에 없고, 그 유명한 박한상이나 악질 유괴살인범들조차도 사형 선고는 받았을지언정 집행은 피해갔을 정도이니 얼마나 사회적 충격이 컸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단, 제보자였던 여성은 본인도 피해자이며 모두 강요 당해 저지른 일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제외되었다. 대한민국 검찰청 측에서는 결정적 제보자인 여인이 처했던 상황을 불가항력적이었던 것으로 인정하여 기소조차 하지 않고 지방으로 피신시켜 집과 직업까지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일종의 신고자 및 증인보호 프로그램으로 볼 수 있다.

한동안 영광의 주민들은 자신들이 영광 사람이라는 것을 입 밖에도 내지 못했다고 하며, 영광 사람들이 객지에 나가면 살인자와 같은 동네에 산다고 해코지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지존파의 아지트는 현재 철거당해 역사속에서 자취를 감췄다.

8. 피해자 이 씨

경찰 제보자이자 지존파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이 씨는 이후로도 언론에 당시 상황을 여러 번 증언해 주었다. 이하 내용은 피해자의 개인신상과 관련된 정보나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종류의 서술은 작성하지 않고, 언론에 보도된 피해자의 증언이나 인터뷰만 서술한 것이다.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1994년에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을 증언했다. # 시사저널 당시 기사에 따르면 언론 추적에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한다. #

2015년 9월 11일 한겨레에서 피해자의 증언록을 연재했다. 피해자의 정신적 외상과 이를 치유해가는 과정, 그리고 사회적 관심을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한다. 일인칭으로 연재되었으며, 담담한 어조에도 불구하고 피가 거꾸로 솟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읽을 사람은 마음의 준비를 하자. 강력 범죄 피해자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특별한 사례이다. 1화 2화 3화 4화 5화 6화

2015년 11월에는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21년 만에 방송 인터뷰를 했다. 해당 인터뷰는 2015년 11월 6일 방송되었으며, 인터뷰에서 이 씨는 극심한 PTSD로 21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경우 현재 범죄 피해자에 대한 사후대책들이 거의 없다시피 하거나 있어도 도움이 안되는 수준의 것만 있어서 이 씨뿐 아니라 세종시 편의점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 김 씨의 사례도 보여주면서 관련 정책들을 비판하였다. 특히 지존파 사건의 피해자 이 씨의 경우 위에 링크된 한겨레 증언록을 연재하면서 달린 악플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2020년 11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최근 근황이 언급되었는데, 한때 가정을 이루었으나 극심한 PTSD에 의한 스트레스로 오래 가지 못했고, 현재는 암투병 중이라고 한다.

9. 기타

9.1. 여죄의 가능성과 지존파 잔당들의 가능성

경찰들은 피해자가 최소 두 명에서 세 명 정도는 더 있을 것이란 이 씨의 진술을 토대로 최미자 씨, 송봉은 살해 후 본격적인 범행에 들어가기 전의 공백기 동안 추가 범행은 없었는지 수사했다.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압수한 증거물 중 지존파가 평소 이동할 때 몰고 다니던 르망 뒷좌석에서 유골가루가 담긴 비닐봉지가 뒤늦게 발견되었는데, 이것이 또 다른 피해자의 것은 아닌지 추가 조사에 들어갔다. 일당은 그 유골이 김기환의 돌아가신 아버지의 것이라고 주장했고 조사 결과 마을 주민인 강 모 씨가 김기환의 부탁으로 김기환의 부친의 묘소에서 김의 아버지와 큰어머니의 유골을 직접 수습해 김기환에게 건네준 것이 확인되었으나, 강 씨는 차에서 발견된 유골이 자신이 준 유골인지는 알 수 없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지존파의 아지트가 있던 금계리 마을 일대 주민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였으나, 특별한 단서는 얻지 못했다.

또, 1994년 4월 5일 강릉에서 일어난 신원미상의 38세 여성 토막살인 사건과 8월 28일 대관령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위장 타살사건의 범행수법이 유사하다고 보아 경찰이 추가 조사를 한 바가 있다. 이 씨가 납치되었을 당시 김현양이 이 씨에게 자신들이 31세의 여성을 납치해 죽인 적이 있었다고 했지만 수사 결과 밝혀진 것은 없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살인 이후 밝혀진 범인들의 알리바이나 수사에 협조적이었던 그들의 태도, 이 씨나 소윤오 씨 부부와 같이 억류된 피해자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 공범이 더 있다고 허풍을 떨었던 김현양의 태도를 종합했을 때, 또 다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으로 결론난 것이다. 하지만 수사가 지존파 일당의 자백과 생존자 이 씨의 말에 의존하여 진행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여죄 여부에 대한 수사도 일주일만에 종결되어 이에 너무 급하게 수사를 종결시킨 것이 아니냐는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다. #

일부 사람들은 지존파의 잔당들이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아니면 외국으로 도주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9.2. 대중문화계의 반응

이 사건과 온보현 부녀자 연쇄 납치 살인 사건이 연달아 터지면서 영화계, 특히 본의 아니게 폭력과 파괴를 동반할 수밖에 없는 액션 영화계가 몰매를 맞으면서 초비상이 걸렸다. 1994년 9월 28일 공연윤리위원회가 그동안 포르노 영화에만 집중된 사전검열을 폭력물에도 더 치중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자 국산 액션영화 제작이 감소하는 파국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박성배 감독 영화 <해적>은 검열 과정에서 전체 장면 중 93컷이나 잘려 개봉되었고, 배용준 데뷔작인 <삘구>도 1차 심의에서 떨어져 상영이 취소된 바 있으며, <테러리스트> 역시 검열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었다.

지상파 드라마는 그냥 초토화됐는데 일체의 폭력이나 성적인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그야말로 전체 연령 관람가 수준의 드라마만 제작되어 방영되었다.[58] 2020년 시점에서 보면 일상물 드라마만 제작된 것.

게임도 마찬가지여서 1999년까지 한국에 정식 발매되는 FPS 게임은 손에 꼽다시피 했다. 1990년대 둠의 영향을 받은 ‘둠 클론’들은 폭력성을 강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동한 웬만한 FPS 게임들은 국내에 정식 발매되는 일이 상당히 드물었다. 공연윤리위원회에서 15세 이상 관람가의 연령 등급을 받은 의 후속작, 둠 2는 심의 거부로 발매에 실패했다. 스타워즈: 다크 포스 FPS 게임도 혈흔 표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소자 관람 불가 등급으로 나왔으며, 듀크 뉴켐 3D는 기존 수정판에 피 색깔까지 흰색으로 고친 호주판을 간신히 수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소자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한편 범인들이 평소 즐겨 읽었다는 공포 소설, 공포 영화의 제목들이 돌면서 이러한 지존파들이 즐겨본 매체를 비난하는 뉴스도 있었다.#[59]

이로 인해 1994년 11월 10일자 동아일보에선 지존파 사건의 여파로 액션영화 출시가 감소하고 코미디나 인간미 넘치는 가족영화가 늘어나 ‘탈액션’ 조짐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이런 현상은 당시 공윤의 폭력물 규제 강화로 된서리를 맞은 제작사들이 액션영화의 출시를 미룬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화평론가 이동연은 <상상> 1994년 겨울호에서 당시 비디오가게 사이에 홍콩영화 <지존무상>이 재평가됨을 언급하며 지존파와 같은 흉악한 이들에 대한 동정론과 미화를 언급하며 아래와 같이 반박했다.
1994년 추석을 강타한 지존파 사건으로 우리 사회에 벌어진 대단한 법석은 유사한 사건이 계속되면서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 흉악함에 대한 전율로부터 은근한 동정론, 심리학적 동기 분석 등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복습하던 사람들의 대화는 최근 비디오 가게에서 때 아닌 ‘지존무상’이 재평가되고 있는 사회학적 현상 쪽으로 넘어가다 보면 애초의 심각하던 길을 벗어나 복수와 의리의 세계, 무술과 도박의 내기, 암흑가 영웅들의 신나는 활약 이야기에 다시 함몰되기 일쑤이다.
- 상상 1994년 겨울호. <무협소설의 현 단계> p136.

9.3. 여담

본 항목은 각종 기사와 서적, 영화 논픽션 다이어리, 그리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고병천 전 강력반 반장의 논문에 기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 이 씨와 이경숙은 대면한 적은 없으나, 통화한 적이 있다. 이 씨가 탈출하기 며칠 전, 강동은이 이 씨에게 “여성 조직원을 들이려 하는데 어떠냐”고 물으며 이경숙과 통화하도록 했다. 이경숙은 이 씨에게 “충고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동은 씨를 도와주기로 했으면 끝까지 도와 달라. 신이 있다면 동은 씨를 도와줄 것이다.”라고 부탁했고, 이 씨는 황당해 하며 자신이 지금 납치되어 있는 상태라고 태도를 분명히 했다.
  • 지존파는 자신들이 직접 작사, 작곡한 단가(團歌)도 있었다. 나중에 김기환은 ‘야망’이란 이름의 책까지 쓸 계획이었다고 한다.
  • 평소 문상록뿐만 아니라 부두목 강동은도 김현양에게 이 씨를 죽이라고 압박했다. 이 씨가 없어야만 이경숙을 데려올 명분이 생기기도 하고, 두목 김기환이 출소하면 부두목으로서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강동은은 김현양이 이 씨를 병원에 데리고 갈 때 김현양에게 이 씨를 “처리하고 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한편 이 씨의 처분을 놓고 김현양과 심하게 대립했던 문상록은 김현양과 주먹다툼을 한 후로 김현양 앞에서는 이 씨를 죽이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 당시 그랜저가 부의 상징인 최고급차인 건 사실이었지만, 피해자 이종원 씨가 탔던 그랜저 승용차는 중고로 구입한 중고차 였으며, 평소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역할을 맡았던 백병옥이 그냥 그랜저라는 이유로 범행 대상으로 지목되었다. 중소기업 사장 부부 납치 당시에도 주차되어 있던 소 씨의 그랜저가 “3000cc인 것 같은데 돈 좀 있을 것 같다”고 했으나, 소 씨의 그랜저 차량도 겉만 3000cc로 개조한 차였고 소 씨가 남긴 편지 내용을 보면 회사는 인수한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아직은 적자 운영중이라는 내용이 있다. 즉 모든 피해자들이 부자는 아니었는데, 이러나 저러나 그랜저 같은 고급차를 타면 무조건 부자라고 보는, 즉 차만 좋으면 부자라는 마인드로 범행 대상을 지목한다는 것 자체가 이들이 매우 단순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60] 이들에게 희생당한 무고한 피해자들만 안타깝다. 실제로 지존파 일행 중 한 명이 “그 사람은 왜 그랜저를 탔냐. 그랜저가 아니라 쏘나타를 탔었어도 죽이지는 않았을 것이다”고 말하기도 했다.
  • 범인들이 대놓고 범행 대상을 그랜저 등의 비싼 차를 탄 사람이라고 언급하면서 그랜저를 타면 범행 대상이 될수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이미지가 곤두박질치자 현대자동차에서는 당시 그랜저의 리무진 모델과 차세대 그랜저로 개발되던 모델에 그랜저의 이름을 유지하지 않고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61] 각각 다이너스티에쿠스.
  • 이 씨가 탈출한 후 조직원들이 영광경찰서 앞에 잠복할 때 김현양이 아지트에 남아 다이너마이트를 쌓아놓고 책임을 지겠다며 자결하려 했지만 강동은이 만류했다. 최종적으로 이 씨가 영광경찰서에 신고한 정황이 포착되지 않자,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은 검거 전날 회식을 했다.[62] 김현양은 검거 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날 처음으로 노래방에 가봤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해장용 콩나물국을 끓이려고 강동은이 콩나물을 사러 나갔다가 붙잡혔다.
  • 평소 지존파가 범행에 사용했던 포터는 김현양이 조직 합류 전, 착실히 돈을 모아 마련한 트럭이다.
  • 경찰이 아지트를 급습했을 당시 방 한쪽 구석에 돈다발이 그대로 있었는데, 김기환이 출소하면 그대로 주려고 필요한 만큼만 쓰고 쓰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조직원은 돈을 쫙 깔아 놓고 그 위에 드러누워 한풀이를 했다.
  • 지존파가 현장 검증을 할 때 형사들을 끌어안고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려 동반자살할 생각도 했으나, 그러지 못한 이유가 조사 과정에서 형사들이 자신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이 살면서 처음으로 받아보는 인간적인 대우였다면서. 또한 재판 과정에서도 검사나 변호사들이 자신들에게 진심 어린 충고를 아끼지 않는 등 인간적으로 대해주어 법조계 인사들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며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 지존파의 증거품 공개 및 압수 당시, 맨 앞줄에 있던 여성 취재기자를 붙잡아 인질극을 벌일 생각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 지존파의 아지트의 지하실에서 현장검증을 할 때, 참혹한 광경과 지독한 악취 때문에 현장에 있던 대부분이 곤혹스러워했고, 일부 여성 기자들은 혼절하기도 했다. 심지어 베테랑 형사들도 현장을 보며 공포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 지존파 검거 직후 지나치게 과열된 취재 열기로 인해, 조사 중에 몰상식한 기자들이 경찰서 유리창을 깨고 들이닥쳐 조사가 번번이 중단되기도 했다. 도저히 조사를 진행할 여건이 되지 않자, 형사들은 지존파 일당들과 유치장 안에서 같이 생활하며 조사를 진행했다.
  • 범죄자들에게 미디어가 따라붙으면 범죄자들은 흥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지존파도 미디어 앞에선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이며 전혀 뉘우침이 없는 언동으로 세간의 분노를 샀다. 그런데 오히려 형사들 앞에서는 유순해졌다고 한다. 죄질로 보나, 태도로 보나 악질 중의 악질들이라 강하게 나가려고 했던 형사들이 오히려 당황했을 정도.
  • 조사 중 식사 시간에 무엇을 먹고 싶냐는 물음에 짜장면이라 대답했는데, 고병천 전 반장이 돈 좀 쓴다며 잡탕밥을 시켜줬다. 7,000원짜리 잡탕밥이 자신들이 먹어 본 음식 중에 제일 비싼 음식이라고 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먹어 본 제일 비싼 음식은 6,000원짜리 뷔페였다고. 이후 고병천 전 반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 뒤로 지존파가 생각나 잡탕밥을 먹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 강동은은 재판 내내 이경숙은 잘못이 없다며 감쌌다.
  • 사형선고가 내려진 후 김현양이 이 씨에게 사죄의 편지를 보내자 이 씨는 답장을 보내 줬으며, 그렇게 두 사람은 사형 집행 전까지 편지를 주고 받았다.
  • 지존파 검거 후 지존파 조직원이나 공범을 사칭한 범죄가 몇 건 일어났다. 1994년 10월, 대구에서는 한 약사가 자신의 약국에 납품을 하는 김 모 씨의 집에 김현양의 이름으로 “지존파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2,000만 원을 준비하지 않으면 가족을 몰살하겠다”는 내용의 협박편지를 보내 구속되었다. 이 약사는 약국 이외에도 사업을 벌리다가 돈이 부족해지자 범행을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또, 1997년 7월, 육군 모 부대 상근예비역 병장과 그의 지인이었던 정육점 종업원이 지존파와 막가파의 선배를 자처해 부유층 부녀자를 납치해 금품을 갈취했다가 긴급체포되기도 했다.
  • 지존파 조직원들의 IQ는 대부분이 90점대였고 유일하게 김기환만이 100 이상이었다. 90~110 정도가 평균 수치이기 때문에 특별히 지능이 낮다고 볼 순 없으나, 이들의 지능 수준이 결코 높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도토리 키 재기이지만, 일각에선 그들 중 지능이 제일 높은 김기환이 상대적으로 지능 수준이 낮은 부하 조직원들을 이용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지존파의 교도소 동기들이나 교도관들이 김기환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에 대해 “그렇게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지르던 녀석들이 일부러 그러나” 싶을 정도로 의외로 어리숙하고 순진해서 놀랐다고 말했다.
  • 김현양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물음에 “탈주행각을 벌이며 권총으로 자살했던 지강헌”이라며[63] “그렇게 죽고 싶어 권총을 구입하려 했다”고 답했다. 그 외에도 수사 과정에서 프로살인마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진술하는 등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였다.
  • 김기환이 여중생 강간치상죄로 광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었을 때 재소자들에게 구타를 당할 때마다 “형님, 나중에 저희 아지트로 한 번 놀러오십시오”라고 하곤 했다고 한다.
  • 지존파 일당이 이 씨에게 “여자 때문에 배신한 조직원을 죽인 적이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송봉우 외에 살해당한 조직원이 있다고 밝혀진 바가 없는 것으로 보아 김기환이 현 조직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 주고 그들을 제압하기 위해 초창기 멤버 중 한 명이 배신해서 죽인 적 있다고 허풍을 떨었고, 나머지 조직원들은 이를 그대로 믿은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이전 조직 결성에 실패한 이유도 여자 때문이 아니라 잔혹한 범죄계획에 모두 겁을 먹고 발을 뺀 것이기에 ‘여자 때문에 배신한 자’에 대한 말이 거짓말이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아니면 조직원들이 단순히 이 씨를 겁박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송봉우가 사귀던 여자 때문에 조직 자금을 인출해 도주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진실을 알 길이 없다. 아무튼 그것이 김기환의 선견지명이었는지 김현양은 결국 여자 때문에 조직을 위험에 빠뜨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머지 조직원들은 그를 응징하지 않았다.
  • 강동은은 검거 후 한 인터뷰에서, 범죄를 저지르며 돈을 많이 벌게 되면 이경숙과 비슷한 처지의 접대부들을 최대한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 전국 각지에서 김현양에게 위로를 건네고 회개를 독려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그 중에는 김현양에게 편지와 함께 일기장을 보내 일기를 써서 보내달라고 요구했던 한 여인과 여학생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이 두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인물이었다. 김현양을 이용해 베스트셀러를 노렸던 한 출판사의 직원들이 꾸민 짓이었던 것. 그들이 보낸 일기장과 편지는 구치소 교무과에서 ‘교화상 불허’라는 이유로 불허가되어 영치되었다가 사형 집행 후 지존파 일당들의 유품 정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 김현양, 강동은, 백병옥, 강문섭은 개신교 신자가 되었고, 김기환, 문상록은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김현양은 가장 먼저 종교를 받아들였고,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던 김기환은 가장 나중에 종교를 받아들였다.
  • 이후 지존파의 아지트는 완전히 철거되어 없어졌다. 한 대형교회[64]에서 아지트 자리의 땅을 사서 교회를 세우려고 한 바 있는데[65], 이 계획이 무산되었는지 현재까지 아지트 터는 빈 땅으로 방치되어 있다. 다만 영광군에서 아지트 주변의 땅을 매입해 공원을 조성했다.
  • 지존파 조직원들은 아지트를 ‘아방궁’이라 칭했으며, 철근 등 기본적인 자재들을 제외한 아지트 건축용 자재들 중 부족한 것은 자신들이 일하던 건설현장에서 조금씩 훔쳐왔다. 그러면서도 자재를 사느라 진 빚 1,000만 원을 갚기도 했다. 물론 그 1,000만 원 역시 소 사장 부부의 몸값 8,000만 원 중 일부였다.
  • 김현양은 검거 직후부터 각종 인터뷰에서 사죄의 의미로 장기기증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사회의 냉대를 되갚아 줘서 후련하다는 등 여전히 사회에 대한 강한 불만을 내비치고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그 의중을 의심한 대중들은 장기기증의 숭고한 의미를 알고나 떠드는 것이냐며 질타했다. 첫 공판 당시엔 이미 극형을 각오했는지 진지하게 피해자들과 유족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생존자 이 씨의 생일을 기해 사형 선고 전에라도 신장 한 쪽을 산 채로라도 기증하고 싶단 뜻을 밝혔다.[66] 하지만 산 채로 장기기증을 하는 것은 규정에 위반되기 때문에 정식으로 장기기증서에 서명한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계속해서 사후에 안구와 신장 등을 기증을 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김현양에 이어 다른 조직원들도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고 기증서를 제출했다. 김기환은 끝까지 거부하다가 사형을 앞두고 역시 장기기증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들이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이기 때문에 인수를 거부당한 것인지, 절차상 문제가 발생했던 것인지, 뚜렷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은 채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67] 한편, 지존파와 같은 날 사형이 집행되었던 사형수들 중 일부는 장기기증이 이루어졌다.[68]
  • 2019년 10월 23일 지존파 사건이 영화화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관상의 한재림 감독이 제작을 맡으며, 관상의 각본을 담당했던 김동혁 작가의 감독 데뷔작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시나리오가 완성 단계에 들어갔으며, 주요 배역 캐스팅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대중들은 우려를 표하고 있으며, 영화화 시도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범죄 사례를 영화화할 때마다 꾸준히 거론되는 문제이지만, 해당 사건은 피해자들이 다수 존재하고 생존자까지 있는 연쇄살인사건이라 상업영화로 다루기에는 소재 자체가 상당히 민감한데 단순 범죄 영화로 그치거나 픽션을 가미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범죄 미화의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부정적인 시각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피해자 이 씨와 다른 피해자들의 유족들, 그리고 지존파 조직원들의 유족들의 동의를 적절히 구했는지도 따져야 한다. 다만 영화화 예정 소식으로부터 2년이 되어가는 2021년 5월 시점까지 추가 정보가 없는 것으로 보아 코로나19 여파로 제작이 연기되었거나, 아예 제작 자체가 무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9.4. 미디어

  • 감우성 주연의 영화 무법자에 나오는 범죄 조직은 지존파를 모티브로 했다. 김철한 감독도 시사회장에서 지존파 사건을 언급하였고 기사, 항목 상위에 링크된 방송 히스토리후에서도 지존파 사건을 다룰때 참고 영상으로 무법자 장면을 쓰기도 했다.
  • 윤태호야후에서도 지존파를 모티브로 한 범죄 집단이 등장한다.
  •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과 장경철의 친구의 범죄방식과 거주지 등의 설정은 지존파가 현재까지 살아남아 있었다면 - 이라는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 지하철에서 파는 성인지에서 지존파가 잡히지 않고 근교에 놀러온 재벌 회장과 애인을 먹은 다음 서울로 직행하는 대체 역사 소설이 연재된 바 있다.
  • 유현산의 장편 소설 1994년 어느 늦은 밤은 지존파를 모티브로 한 ‘세종파’라는 조직을 핵심 소재로 하는 소설이다.
  • 영화 데드 캠프 1편 초반에 주인공 중 한 명이 신문에서 봤다면서 chijon family (지존파) 를 언급한다.
  • 2018년 귀귀뉴 바이블에서는 사형 당하기 직전에 주인공 제이한테 불려가 폐가에서 25년간 제이가 가져다 준 범죄자 인육을 먹으며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등장한다. 결국 마지막에 식량이 부족해서 강문삽(강문섭) 한 명을 먹어 치우고 모두 제이한테 참수 당한다.

* 2020년 10월 22일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해당 내용이 방송되었다. 다만 이 씨는 유 씨라는 가명으로 언급되었으며, 소 씨 부부는 윤 씨 부부로 각색되어 거론되었다. 아마도 피해자들의 이름을 가명처리한 듯.

10. 둘러보기


문서가 있는 대한민국의 살인 사건 목록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wiki style="letter-spacing: -1px"
고려~대한제국
저고여 피살 사건N ? (1225) · 임오화변N (1762) · 민승호 암살 사건N ? (1874) · 을미사변N S F (1895) · 치하포 사건 (1896) · 산청군 압동 살인사건? (1902)
일제 강점기
제암리 학살사건M N A F (1919) · 백백교 사건M (1920~1941) · 이판능 사건M (1921) · 주문학 살인사건 (1921) · 김립 피살 사건N (1922) · 진남포 소아 참살 사건? (1924) · 빈주 사건M (1925) · 고무신 살인사건 (1926) · 전주 소학생 유괴 살인사건S K ? (1926) · 불륜처 변사사건 (1927) · 머슴 살인사건 (1928) · 이관규 사건C S (1929)· 청양 소년 살인사건? (1930) ·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 F S (1931) · 이승만 살인사건? (1932) · 평남 모친 살해 사건 (1932) · 사천 복수극 사건 (1932) · 경성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1933) · 옥관빈 피살사건N (1933) · 신의주 비행장 여성 시체 사건 (1933) · 순안 유부녀 알몸 살인 사건 (1936) · 강원도 유부녀 독살범 사건C (1939)
광복~1960년대
여운형 암살사건 (1947) · 백범 김구 암살사건? (1949) · 열차 내 강간 살인 사건S ?(1953) · 불륜처 타살사건N (1954) · 진보당 사건N (1958) · 장기 훈수 살인 사건 (1960) · 최영오 일병 살인 사건N (1962) · 창신동 치정 살인 사건 (1962) · 고재봉 살인 사건M N (1963) · 수원 지지대고개 살인 사건 (1963) · 춘천호 여인 토막 살인사건 (1965) · 평창동 불륜처 살해 사건 (1965) · 김근하 유괴 살인 사건K ? (1967) · 이천 여교사 알몸 피살 사건? (1968) · 육군 하사 수류탄 투척 사건M N (1968) · 종암동 여관방 유부녀 살인 사건S (1968)
1970년대
· 정인숙 살해사건N ? (1970) · 탤런트 유연우 피살 사건 (1970) · 양구 다방 인질극 사건 (1970) · 공덕동 유부녀 반나체 피살 사건 (1971) ·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N S ? (1972) · 육영수 암살 사건 (1974) · 인천 일가족 살인사건 (1974) · 김대두 사건C S R (1975) ·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C ? (1975) · 월배 가출소녀 강간 살인 사건S (1975) · 이팔국 아내 살인 사건 (1975) · 박흥숙 살인 사건M (1977) · 백화양조 여고생 살인 사건Y (1978) · 금당 골동품상 부부 납치 살해사건K R (1979) · 이양길 토막 살인 사건 (1979) · 10.26 사건N (1979)
1980년대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K (1980~1981) · 주남마을 버스 총격 사건M N (1980) · 우순경 사건M N (1982) · 죽음을 연출한 사진C (1982) · 청산가리 우유 독살 사건I (1983) · 공주 연쇄살인 사건C S (1983~1987) · 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1986) · 김선자 연쇄 독살사건C (1986~1987) ·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C S (1986~1991) · 수원 여고생 강간 살인 사건S (1987) · 전용운 연쇄살인 사건C S R (1987)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N S (1988) · 원혜준 유괴 살인 사건K (1988) · 남양파출소 경관 피살사건 (1988) · 미국인 학원강사 피살사건F (1988) · 부산 백양산 연쇄살인사건? (1988~1991) · 중곡동 세 모자 살인 사건 (1988)M · 심영구 사건C (1989) · 서울 노량진 살인 사건 (1989)
{{{#!folding 1990년대 1990년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S R ? ·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K · 부산 새마을금고 권총 강도 살인 사건R · 지춘길 사건C · 유명 공인회계사 피살사건? · 김희성 유괴 살인 사건K ·이완희 유괴 살인 사건K · 양평 일가족 생매장 사건C
1991년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S · 대구 성서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M K ? ·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K ? · 김부남 사건 · 대구 팔공산 팔공CC 캐디 토막살인 사건? · 김준영 순경 총기난동 사건M · 정선 음주운전 뺑소니 살인 사건 · 이득화 유괴 살인 사건K · 거성관 방화 사건M A ·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 · 김동준 유괴 살인 사건K · 대천 영유아 연쇄유괴살인 사건C K ? (~1994)
1992년 김보은 양 사건 · 주한미군 윤금이씨 살해사건S F · 원주 왕국회관 화재 사건A M
1993년 지존파 사건C S K R (~1994) · 이수일 연쇄살인 사건C R · 장위동 일가족 살인 사건M
1994년 박한상 존속살해 사건M · 부산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K Y · 배병수 살해 사건 · 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 · 월곡동 황금장 여관 모녀 토막 살인사건C · 강태민 유괴 살인 사건K · 청주 처제 살인사건S · 온보현 사건C S R (~1995)
1995년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 · 순천 일가족 폭살 사건 · 이대영 연쇄살인 사건C S (~2001)
1996년 막가파 사건 · 대구 양궁선수 살인사건 ·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F · 잠실파출소 경관 피살사건? · 안두희 폭행치사 사건
1997년 신안 예비신부 살인사건 · 대구 동구 연쇄살인 사건C ·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 사건K · 관덕정 살인사건? · 서귀포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 이한영 암살 사건N ? · 이태원 살인 사건F · 화순 서라아파트 모녀 살인 사건R Y
1998년 송파 7인조 떼강도 사건R Y · 노원 가정주부 살인 사건S R · 울산 살충제 요구르트 사건? ·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 · 대전 갈마동 월평산 여중생 살인사건S ? · 영훈이 남매 사건 · 황영동 사건 · 부천 비디오 가게 살인사건A
1999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R ? ·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 경북 고교생 총기탈취 난사사건Y · 박정자 살인 사건? · 삼척 신혼부부 살인 사건 · 영웅파 사건 · 제주 변호사 피살 사건? · 정두영 사건C R (~2000)
}}} ||
{{{#!folding 2000년대 2000년 서울 종로구 여중생 살인사건Y · 김해선 사건C S · 부산 미용사 살인사건S ? ·안산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C F · 무기수 김신혜 사건? · 이은석 존속살해 사건 · 인천 계양구 놀이터 살인 사건? ·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N R Y · 만봉천 예비간호사 살인 사건? · 청주 미용강사 살인 사건? · 엄여인 보험 살인사건C I (~2005)
2001년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S · 산골 소녀 영자 사건 · 부천 탈영장교 살인사건 · 염순덕 상사 피살사건N ? · 서울 성동구 여아 토막 살인 사건K S · 친동생 도끼 살인사건Y · 영동 여고생 살인 사건? · 부산 배산 여대생 피살사건? · 용인 교수부인 살인 사건 · 부산 온천동 커피숍 여주인 피살사건? · 속초시 콘도살인 암매장사건? · 제7호 태창호 사건 · 대전 세 모녀 인질극 사건 · 홍성열 살인사건 · 울산 단란주점 살인 사건? · 잠실 아파트 일가족 살인사건 ·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R ? · 대구 총포사 살인 사건?
2002년 부산 괘법동 태양다방 종업원 살인사건? · 아산 갱티고개 살인사건 (4월 / 7월?) ·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 · 분당 존속 살해사건A · 용인 연쇄살인 사건C S · 춘천 후평동 택시기사 살인 사건? · 창원 성산구 사림동 단독주택 여중생 살인사건? · 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인 사건? · 제천 독신녀 토막 살인 사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M A · 의성 뺑소니 청부살인 사건I · 거여동 밀실 살인 사건 · 포천 여중생 살인 사건? · 김지연 군 살인 사건F · 인제 광치령 토막 살인 사건? · 울산 우정동 청산가리 살인 사건? · 인천 작전동 이발소 여주인 살인사건? · 둘째딸 독극물 살인 사건C · 인제대교 추락 사망 사건S ? · 영주 택시기사 살인사건R ? · 동작대교 유아 투기 살인사건 · 부산 대교동 여관 살인사건? · 유영철 사건C (~2004) · 전주 싸전다리 도끼 살인사건C (~2004) · 제주 연쇄 강도살인사건C R · 봉천동 주택가 살인사건?
2004년 광주 여대생 테이프 살인 사건? · 이학만 사건 ·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S ? · 서천 카센터 살인사건A ? · 마산 대학교수 살인사건 · 대전교도소 교도관 피살 사건 · 서울 향수업체 살인사건? · 대구 달성공원 독극물 요구르트 사건? · 반포동 빌라 지하방 살인사건 · 석촌동 연쇄살인 사건C S R (1995~) · 평택 영아 청부납치 모친 살해사건K · 대구 노래방 여주인 살인사건 (~2009) · 정남규 사건C A (~2006) · 부평 콘크리트 암매장 사건? (~2008) · 충북 영동 40대 주부 살인사건?
2005년 강릉 노파 쪽지문 살인 사건? · 개성중학교 폭행치사 사건Y · 구의동 고등학생 피살사건Y ? · 서초동 오피스텔 살인사건S · 울산 무거동 야산 토막살인사건? · 김용원 연쇄살인 사건C · 돈암동 살인사건? · 스튜어디스 납치 살해사건K R · 대전 갈마동 빌라 살인사건? · 2005년 천안 연쇄살인 사건C · 전주 택시기사 살인사건A · 대전 문화동 일가족 살인사건A I · 광주 주유소장 살인 사건? · 양구 전당포 노부부 살인사건? · 돌산도 컨테이너실 살인사건? · 신정동 연쇄폭행살인사건C S ? (~2006)
2006년 강화도 모녀 납치 살해 사건C S K R · 용산 아동 성폭력 살해사건S · 동해 학습지 여교사 살인사건? · 대전 송촌동 택시기사 살인사건? · 무안 저수지 살인 사건? · 2006년 천안 연쇄살인 사건C · 대구 송현동 여고생 강간 살인사건S K · 청와대 행정관 아내 살인 사건 · 울산 초등생 방화 살인 사건A ? · 인천 십정동 부부 살해사건? · 제주 소주방 여주인 피살사건? · 영등포 노들길 살인 사건S ? · 부산 해양대학교 맨홀 변사 사건? · 군포 안양 연쇄살인 사건C · 천안 토막 살인 사건?
2007년 대전 백합다방 종업원 살인사건C · 인천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 보성 어부 살인 사건C S ·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 모텔 정화조 살인 사건? · 드들강 임산부 살인사건I · 춘천 남산면 식당 주인 피살 사건? · 안산역 토막시체 유기사건F ·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S K · 안양 환전소 여직원 살인사건R · 양지승 어린이 살인 사건S · 성민이 사건 · 화천 할머니 피살 사건 · 송파 도박빚 살인사건R ? · 울산 무거동 인터넷 카페 살인사건S ·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
2008년 화성시 우정읍 엽총 살인사건 · 대구 초등생 납치 살인 사건K ? · 부산 청테이프 살인 사건? · 센트럴 시티 살인사건? · 인천 유흥업소 종업원 납치 살인사건K · 강남 나이트클럽 사장 피살사건 · 양주 여중생 살인 사건S F · 이호성 살인 사건 · 광주 대인동 살인사건? · 논현동 묻지마 방화 살인사건M · 부여 노파 살인 사건? · 흥해 토막 살인사건? · 수원 신대저수지 토막 살인 사건? · 의정부 여중생 살인사건S ? · 홍제동 묻지마 살인사건 · 인천 병방동 60대 여성 엽기 살해사건? · 2008년 울산 계모 살인 사건
2009년 강호순 사건C S (2004~) · 부천 여고생 집단성폭행 사망 사건S A Y · 초등학생 공기총 살해 사건 · 익산 모친 성폭행 살해 사건S · 17억 보험 친구 집단 살인 사건I · 제주 보육교사 피살사건? · 청주 비닐봉지 살인 사건S ? · 경산 임산부 스토킹 살인사건 · 순창 손목없는 백골 사체 사건? · 정읍 화물차 사무실 살인사건? · 영암 연쇄살인 사건C
}}} ||
{{{#!folding 2010년대 2010년 김길태 사건S · 대구 아내 살인사건? · 남양주 아파트 밀실 살인사건? · 목포 여대생 살인 사건? · 부산 부전동 모텔 여주인 살인사건? · 부산 시신 없는 살인 사건 · 산낙지 보험 사망 사건I ? · 성남 지적장애 소녀 살해 암매장 사건S Y · 진주 연쇄 살인사건C R · 오창 맨홀 변사사건? · 울산 부곡동 살인 사건? · 잠원동 묻지마 살인사건 · 하왕십리동 방화 살인 사건A Y · 함안 방앗간 노파 살인 사건? · 홍은동 여중생 살해 시신 유기 사건Y · 화성 여고생 살인 사건F
2011년 가방모찌 살인 사건 · 경찰 간부 모친 보험 사망 사건I · 구의동 고3 존속살인 사건Y · 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 · 박근혜 5촌 살인사건N ? · 부천 여월동 살인 사건? · 안산 리어카 토막 살인 사건? · 유명 블로거 살인 사건 · 일산 여중생 자매 백골 시신 사건 · 필리핀 관광객 연쇄 표적납치 살인사건C K · 포천 농약 살인 사건C I (~2014) · 청주 아동 암매장 살인 사건 (~2016)
2012년 보성 형제교회 유아 사망 사건 · 서울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Y · 수원 토막 살인 사건S F · 용인 50대 부부 피습 사건 · 강릉 보복살인 사건 · 수원 장안구 흉기난동 살인사건S · 수원 묻지마 살인 사건 · 통영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S · 울산 자매 살인사건 · 제주 여성 피살 사건S · 중곡동 주부 살인 사건S · 칠곡 묻지마 살인사건 · 홍천강 살인사건 · 부천 초등학생 토막 살인 사건 (~2016)
2013년 고려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 살인 사건 · 전주 일가족 살인사건 · 군산 경찰관 내연녀 살인 사건N · 군산 정화조 백골 사건 · 용인 10대 엽기 살인사건S Y · 보은 콩나물밥 독극물 사건? · 인천 과외 제자 살인 사건 · 정치, 사회 갤러리 피살사건 · 인천 모자 살인 사건 · 2013년 인천 중학생 집단폭행 살인사건Y · 구례 편의점 여주인 살인사건R ·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 · 울산 동거녀 살인 사건
2014년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 사건N · 굴삭기 암매장 사건 ·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S Y · 대구 중년부부 살인 사건 · 부산 영아 투기 살인사건 · 포항 단란주점 여주인 살인사건S · 수원 토막 시체 유기 사건F · 트랜스젠더 살인사건 · 군산 성폭행 보복 사건 · 파주 전기톱 토막살인 사건 · 울산 삼산동 묻지마 살인사건 · 안산 남성 변사 사건? · 전북대병원 로비 여중생 살인사건 · 포천 빌라 고무통 살인사건 · 2014년 울산 계모 살인 사건 · 양양 일가족 방화 살인 사건A · 진돗개교 3세 아동 살인 사건 (~2017) · 광주 아내 살인사건 · 김해 호스트바 여손님 살해사건R · 인천 가방 시신 사건S
2015년 청산가리 소주 살인사건 ·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 · 세종시 편의점 총기 난사 사건 · 금호강 살인 사건I · 김포 20대 주부 피살사건 · 수원역 여대생 납치 살인 사건K · 부천 여중생 백골 시신 사건 (~2016) · 시화호 토막 살인 사건F · 아산 트렁크 살인사건K · 수원역 PC방 묻지마 살인사건 · 공릉동 살인사건N · 서초동 세 모녀 일가족 살인사건 · 안산 인질극 사건S · 울진 백골 유기사건? · 충북 제천 여자친구 시멘트 암매장 살인 사건 · 용인 아파트 벽돌 투척 사망 사건 · 울산 모텔 살인사건 · 천안 피해망상 이웃살해 사건 · 무학산 살인사건 ·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 · 화성시 총기 난사 사건 · 대구 주부 살인사건 · 제주 한경면 야산 살인사건S R 제천 청산가리 가족 살인사건 ·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 · 봉천동 성매매 여중생 살인사건 · 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건N · 전주 작업대출 살인사건 · 화성 육절기 살인사건A
2016년 화성 공장 정화조 백골 시신 사건? · 마포 가방 시신 사건 · 홍성군 영아 폭행치사 사건 · 경남 고성 초등학생 암매장 살인 사건 · 평택 아동 암매장 살인 사건 · 광주 남매 존속살인 사건 · 조성호 살인사건 ·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 · 하남시 층간소음 살인사건 · 시흥 딸 살인사건 · 제주 성당 묻지마 살인 사건F · 포천 6세 입양딸 살인 사건 · 증평 할머니 살인사건 ·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 · 김포 아동 폭행 살인사건 · 남양주 니코틴 살인사건I · 완도 아령 살인 사건?
2017년 인천 동춘동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K Y · 신혼여행 니코틴 살인사건I · 한겨레 동료기자 폭행치사 사건N · 양산 아파트 밧줄 절단 살인 사건 · 충주 인터넷 설치기사 살인사건 · 부산 영아 시신 냉장고 유기 사건 · 창원 골프연습장 납치 살인사건K · 왁싱샵 살인 사건S R · 어금니 아빠 살인사건S K ·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 부친 피살사건 · 용인 일가족 살인사건 · 전주 5세 여아 살해 사건 · 속초 영랑동 백골 사건? · 낙동강 어린이 살해사건
2018년 종로 여관 방화 사건M A · 제주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K · 강서구 6세 여아 살인사건 · 떡볶이 배달청년 사망사고 · 군산 유흥주점 방화 사건M A · 강진 여고생 살인사건 · 화곡동 어린이집 영아 사망사건 · 변경석 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 · 옥천 일가족 살해사건 · 공군 상사 아동학대 사건N · 제주도 여교사 금품갈취 및 폭행치사 사건 · 울산 천곡동 살인사건 · 구리시 강변북로 음주 사망 사건 ·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 서울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 부산 사하구 일가족 살인사건 · 봉화군 소천면사무소 총기 난사 사건 · 거제 신오교 살인사건 · 춘천 예비신부 살인사건 ·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Y · 안산 원곡공원 영아 시신 유기 사건? ·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살인 사건 · 김제 목검 폭행 사건
2019년 이희진 부모 살해사건 · 군산 아내 살인 사건S ·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M A · 광주 의붓딸 살인사건 · 정치인 아내 살인사건N · 의정부 일가족 사망 사건 · 부산 남구 여대생 피살사건 · 고유정 전 남편 살해 사건 · 순천 아파트 강간 살인사건S · 오산 야산 백골시신 사건Y · 오산 모텔 살인사건 · 부산 사하구 친누나 살인사건 · 군포 존속살해 사건 · 인천 영아 사망 사건 · 인천 계부 아동학대 사망사건 · 광주 10대 집단 폭행 살인 사건Y · 한강 몸통시신 사건 · 구리 초등학생 동급생 살해 사건Y · 광주 사업가 납치 살인사건
}}} ||
{{{#!folding 2020년대 2020년 광진구 클럽 살인사건 · 종로구 주점 살인사건 · 효창동 묻지마 살인사건 · 진주 일가족 살해사건 · 부산·전주 여성 연쇄살인 사건C S R · 동작구 옷장 살인 사건 · 창원 고깃집 여주인 살해사건 · 천안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 · 용인 토막 살인 사건 · 경인아라뱃길 훼손 시신 사건? · 원주 아파트 일가족 살인사건A · 제주 오일장 살인사건R · 당진 자매 살인사건R · 대구 새마을금고 살인사건 · 양산 60대 여성 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 · 인천 강화군 친누나 살인사건 (~2021)· 김해 응급구조사 살인사건
2021년 용인 조카 학대 사망 사건 ·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 · 노원 세 모녀 살인사건 · 천호동 묻지마 살인사건 · 인천 노래방 손님 살해사건 · 남양주 존속살해 사건 · 분당 택시기사 살인사건
}}} ||
M: 대량살인, C: 연쇄살인, N: 국가행정조직 연루, S: 성범죄 결합 살인, K: 납치 후 살인, A: 방화 결합 살인, R: 강도살인, I: 보험 관련 살인, Y: 청소년 범죄, F: 외국인 범죄, ?: 미제 사건 }}}}}}}}}}}}

[1] 더할 나위 없이 존귀하다는 뜻으로, 임금을 공경하여 이르는 말.[2] 대표적으로 버나도 호몰카 사건, 프레드 웨스트 & 로즈메리 웨스트, 러시아 식인 부부 사건 등이 있다.[3] 대표적으로 무어 살인사건(이언 브래디 & 마이라 힌들리) 등이 있다.[4] 대표적으로 케네스 비안치 & 안젤로 부오노(사촌), 류드밀라 스페십체프 & 알렉산드르 스페십체프(모자), 델피나 곤잘레스 & 마리아 곤잘레스(자매) 등이 있다.[5] 대표적으로 존 더피 & 데이비드 멀케이 등이 있다.[6] 대표적으로 용인 연쇄살인 사건, 서울·익산 2인조 연쇄살인 사건, 찰스 잉 & 레너드 레이크 등이 있다.[7] 대표적으로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매니악, 스노타운 연쇄 살인 사건, 어둠 사이트 살인 사건 등이 있다.[8] 천하의 공영방송 앵커들도 지존파 사건을 보도하면서 말을 더듬으며, 차마 전할 수 없다는 표현을 반복했을 정도였다. 2020년대를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엽기적인 범죄이다.[9] 범죄에 대한 보도가 나오지 않으면 치안이 좋은 것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은 좀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참고로 2020년대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치안은 상당히 강력해졌다.[10] 송봉우가 조직을 배신해서 조직원들한테 체포되어 살해되었다.[11] 이경숙 제외. 후술하겠지만, 김현양이 이 규칙을 어겨 검거된 것이다. 즉, 김현양이 자신을 비롯한 나머지 조직원들 전부를 간접적으로 검거한 것이라고 봐도 무방.[12] 야망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단어를 따서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실 야망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단어는 필로독시아(φιλοδοξία)이며, 마스칸(مسكن)은 집이나 숙소를 뜻하는 아랍어 단어이다. 가방끈이 짧았던 이들이 잘못 주워듣고 지은 이름일 가능성이 높다.[13] 랜덤하우스코리아 2005.06.15.[14] 대부분의 조직원들은 김기환의 보복이 두려워 외지로 피신했다고 한다.[15] 피해자 이 씨와 혼동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 씨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합류 전에는 영광군의 한 주점에서 접대부로 일하고 있었다.[16] 송봉우가 배신해서 살해되었든 배신하지 않아서 그대로 생존했든 간에 결말은 좋지 않다. 생존했더라도 나머지 조직원들과 함께 구속되어 사형을 당했을 게 뻔하기 때문.[17] 다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고, 그 결과 삐뚤어졌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체벌 문서나 교권 문서만 봐도 알 수 있듯, 과거에는 국민학교, 정확히 말하자면 학교 전체가 없는 집 학생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유명한 범죄자 신창원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바 있다.[18] 이렇듯 김기환은 다른 조직원들보다 지능적으로 나았기 때문에 집단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19] 김기환이 지존이라는 별명이 붙게 된 것은 이때 도박을 하며 포커를 잘했기 때문. 이 별명은 조직 결성 후 부하 조직원들에 의해 ‘두목’을 대신하는 칭호로 쓰이게 되었다.[20] 조직원들에게 “사람은 이렇게 죽이는 것이다.”라고 시범했다고 한다.[21] 전두환 일가의 엄청난 재산 등으로 인해 크게 부각되고 있지는 않지만, 두 사람 모두 공식적으로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했다.[22] 1994년 9월 23일자 MBC 뉴스데스크의 ‘지존파, 완전범죄 위해 냉동용 차량과 승용차 구입 계약’이라는 기사의 차량 구매 계약서에 주민등록번호가 나오는데, 1972년 10월 27일생이라고 나온다. 검거 당시 생일이 지나지 않아 만 21세였다.[23] 강동은의 집은 아지트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24] 웃긴 것은 김기환이 정한 규칙 중 “여자를 만나지 않으며, 친구와 술을 멀리 한다”는 규칙도 있었다. 강동은은 아예 처음부터 이를 어긴 셈.[25] 조직 자금을 벌기 위해 전 조직원이 대전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일하던 시기에 강문섭을 다른 직원이 폭행했다는 이유로 전치 4주에 해당하는 폭행을 가했고, 합의하는 과정에서도 피해자 가족들에게 폭행을 가했다.[26] 체포 직후 “어머니요? 내 손으로 직접 못 죽인 게 한입니다.”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발언에 정작 김현양의 어머니는 “내 아들이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27] 부부의 부인을 살해하고 피해자의 시신에서 한 쪽 유방을 도려내어 먹었다. 하필 그 부위가 유방인 것은 김현양의 여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이 씨의 1994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현양이 인육을 먹은 경험은 ‘지존(김기환)이 시켜’ 송봉은의 인육을 울면서 먹은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다만 김현양은 체포 후 이것에 대한 진술은 전혀 하지 않았다.[28] 리마 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이다.[29] 당시 합숙소에서 자느라 참여하지 못했다.[30] 이 1600만 원은 지존파가 희생자 부부로부터 뜯어낸 8000만 원 중 일부였다.[31] 당시 논산군의 일부였다. 1995년에 논산시로 승격되었고 2003년에는 그 일부가 계룡시로 분리되었다.[32] 당시 두계역.[33] 김현양은 “내가 특별히 예뻐하던 동생이라 죽일 때 마음이 아팠다”고 했지만, 나머지 조직원들은 아무 느낌이 없었다고 진술했다.[34] 집들이 당시 이웃 주민들이 지하실의 존재를 인지하고 구경 시켜 달라고 했지만, 지존파 조직원들이 만류했다.[35] 이주현 씨는 지존파 합류를 권유받기도 했다고 한다.[36] 다만 이 문제는 당시 그렇게 큰 이슈는 되지 못했는데,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크게 부각된 것은 인터넷으로 인한 개인정보가 손쉽고 무분별하게 복제가 가능한 세상이 온 이후이다. 이때는 개인정보 복제라고 해 봤자 종이에 쓴 명단을 복사기로 복사하는 정도였다. 또한 방송과 언론에서도 초상권이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서 크게 신경을 썼던 시절도 아니라서 1990년대 초중반까지의 신문이나 TV 뉴스,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 미성년자, 특별한 상황이나 사전 요청이 있는 경우가 아닌 이상은 이름이나 주소, 얼굴을 드러내는 것은 일상적이었던 시절이었다. 물론 당시 명단에 있던 현대백화점 VIP고객들은 상당히 불쾌해 했었다.[37] 이 모 씨는 피해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아 지존파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기존에 이 씨와 이종원 씨가 연인 사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 씨는 한겨레에 연재되었던 인터뷰에서 이종원 씨는 절친한 직장 동료였다고 한다.[38] 지존파 검거 전, 이 사건은 지존파가 의도한 대로 단순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사건으로 종결될 뻔했다. 피해자의 허벅지에 지존파에게 납치될 당시 저항하다 생긴 자상도 있었는데 말이다.[39] MBC 뉴스데스크에 마구잡이로 분해되어 뼈대만 남은 해당 차량의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40] 이 씨의 처분도 함께 논의되었지만, 이 씨를 살려 주자고 주장한 김현양과 이 씨를 경계하던 문상록이 몸싸움을 했다.[41] 부두목인 강동은이 김현양에게 지시했다. 김현양은 이 씨가 해내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이 씨의 신체를 속박해 강제로 총을 발사하도록 했다. 정작 강동은은 살해 과정에 동참하지 않았다.[42] 이 중에서 포터 냉동탑차는 강동은의 명의로 구입했다. 당시 강동은이 현대자동차 대리점에서 작성한 차량 구매 계약서가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공개되기도 했다.[43] 계획을 펼쳐보기도 전에 검거되자 김현양은 인터뷰에서 “더 죽이고 싶었는데, 지금 못 죽여서 한이 맺힌다. 내가 MBC 한 번 가 보려고 했는데, 못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44] 만약 이 계획이 진짜 실현되었다면 만민중앙교회 MBC 습격 사건 이전에 당시 여의도 MBC 사옥에서 그것보다 더 심각한 유혈 사태가 발발할 수도 있었다.[45] 김현양이 이 씨에게 가진 감정이 연정이었다는 것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다. 어머니에 대한 증오가 여성을 향한 혐오로 번졌던 김현양이었지만, 그만큼 연상 여성=어머니에 대한 사랑에 결핍되어 있어 이 씨를 특별대우한 것이다. 이 씨는 김현양이 자신에게 ○○ 씨라고 부르며, 존댓말로 자신의 개인사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46] 이것은 범행에 가담한 것이 아닌 또 다른 피해를 입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씨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며, 중요 제보자 및 증인으로 보호받게 되었다.[47] 이 부분이 김현양이 의도적으로 이 씨에게 탈출할 기회를 준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자만한 것인지 논쟁이 되는 포인트이다. 이때 보인 김현양의 행동이 인질을 잡아둔 보통의 범죄자들이 보이는 행동양상과는 다른 것이 사실이다. 당시 1990년대의 화폐가치를 감안하더라도 50만 원은 현재의 100만 원에 달하는 거금이고, 현재도 50만 원이라는 돈은 외출 시 소지할 여윳돈 치고는 꽤 큰 액수이다. 또한 휴대전화는 당시로서는 보급률도 매우 낮았고 고가였던 귀중품이었다. 거금과 귀중품을 인질에게 맡긴 채 자리를 비우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기에 당시 김현양의 심리에 대해 아직까지도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는데, 이 씨의 회고록에 따르면 이 씨를 동행으로 데리고 가는 김현양에게 조직원들이 의문을 품자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했으며, 병원으로 향하는 중에도 진료 대기 중에도 이 씨에게 수시로 “도망가고 싶으면 도망가라”고 했다고 한다.[48] 이후 이 씨는 인터뷰에서, 병원에서 빠져나왔을 당시에 “거기서 죽(으)나 아니면 탈출하다가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일단 탈출)해 보겠다는 생각(이) 피해자들에 대한 보답일 거라고 생각했어요.”라는 심정이었다고 밝혔다.[49] 당시 택시기사의 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지존파 편' 유튜브 영상에 댓글로 남긴 증언에 따르면, 그 당시엔 시골에 차가 많이 없던 시절이라 동네 사람들이 해당 택시기사의 택시를 많이 이용했고, 그 때문에 지역 토박이가 아님에도 주민들 대부분을 알고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피해자에게 납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동네 사람은 내가 다 아는데 어떤 놈들이 납치를 하지? 백수 놈들 짓인가?" 라는 말을 혼잣말 하듯이 내뱉은 것이다. 동네 주민 중에 범죄자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고, 당시 백수읍에 깡패들이 많았기에 '백수읍에 사는 건달들이 불갑까지 와서 나쁜 짓을 하는구나' 싶었던 것뿐이었다고 하며, 그게 살인까지 얽힌 극악무도한 사건인 줄은 전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영광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런 일을 경험해보기는커녕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피해자 이 씨에게 혼잣말처럼 말한 그 한마디가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생각 없이 한 농담이나 겁을 주려고 한 말은 결코 아니었는데, 그 말이 의도치 않게 피해자에게 큰 공포를 준 듯 하여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그 택시기사 분은 2013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50] 고 반장은 이후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정신이상자가 말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이렇게 생각할 만한 게, 개요 문단에서도 서술했듯 범죄 수법 자체가 매우 엽기적이고 잔혹했던 데다, 6명이라는 다수가 연쇄살인을 저지른다는 것은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 관점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씨로부터 사건에 대해 들은 카페 주인은, 경찰이 아니라 안기부에 신고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고 한다.[51] 2015년에 한겨레를 통해 연재된 ‘피해자의 증언록’에 따르면, 형사가 이 씨의 말을 100% 믿게 된 이유는 김현양이 맡긴 휴대전화의 명의가 강동은의 것이었는데, 이 씨가 강동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52] 다만 경찰의 검거 과정이 성공했기에 망정이지, 인질이었던 이 씨까지 데리고 형사 6명만 출동했던 점에서 당시 경찰의 전문성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보여준다.[53] 1990년대의 한국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를 갓 벗어난 뒤 언론이고 사회고 외부 가치관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당연히 미국 등지에서 문제가 되던 과열 취재 경쟁과 시청자들의 생각은 고려하지 않는 자극적인 언론 보도도 받아들였는데, 그 첫 번째 목표가 바로 지존파가 된 것이다. 게다가 지존파는 그때까지 흔하던 가족 살인범이나 연쇄살인범 혹은 친구 단위의 살인 집단 등이 아니라 별다른 안면이 없던 제3자들의 연합이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54] 그래서 그 책들의 판매량이 급증했다. 이걸 자랑하는 사람이 뺑끼통의 저자 이진수 씨. 이 사람은 나중에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의 이름도 뺑끼통으로 지었고 희대의 불쏘시개. '거짓말 선생님'이라는 책도 내었다.[55] 당시 2천만원으로 현대 뉴 그랜저(단, 익스큐티브 팩이 적용되지 않은 2.0 깡통 모델은 1850만원이었다), 기아 포텐샤, 대우 아카디아 등의 국산 대형 세단이나 중형급 외제차를 구매할 수 있었다. 현대 쏘나타2, 기아 콩코드, 대우 프린스,슈퍼살롱, 브로엄은 풀옵션이어도 2천만원이 채 안되었다.[56] 2010년대 물가로 약 4,000만 원대에 해당한다. 현대 그랜저, 기아 K7같은 준대형차제네시스 G70, BMW 3시리즈, 아우디 A4 등 프리미엄 브랜드의 중형차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57] 사실 온보현의 경우에는 화를 자초한 측면도 있다. 실상 비슷한 시기 저질러진, 사회에 충격을 준 살인 행위가 한두 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보현만 사형을 당한 것은 지존파와 자신을 비교해 달라는 등 화를 자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온보현과 비슷한 사건 자체에 대한 사형선고는 그 이전이나 이후나 많았고, 현재도 이들 중 상당수가 사형수 신분으로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다.[58] 지금 이 시기만 어떻게 넘겨보자는 분위기가 역력한 땜빵용 드라마들이었는데 출연료가 싼 중견배우들만으로 출연진을 꾸려 8부작, 12부작 식으로 짤막하게 방영했다.[59] 일설에 따르면 그 공포 소설에는 당시 해적판으로 출간된 유수의 명작 해외 호러소설도 있었다.[60] 중소기업 사장님들은 설령 회사가 어렵더라도 무리해서 고급차를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 과시욕이 아니라 거래처나 은행에 갈때부터 대우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 21세기에도 그러한 면이 아직 남아있는데 90년대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때는 97년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이라 금융업계에서 정확한 대출심사나 관리가 이뤄지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곤 했는데, 일반 승용차를 끌고 은행을 가서 대출 상담을 받으면 당장 은행원서부터가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만 고급차를 끌고 오면 오 사장님 돈 좀 있으신가 보네?라 생각하고 대출 등에 호의적으로 대하였다. 즉, 차만 좋으면 부자라는 마인드는 지존파만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었고, 소 씨 역시 그 사회적 인식에 맞추어 거래처나 은행 등지에서의 협상을 좀 더 유리하게 하고자 그랜저를 중고로라도 무리해서 샀던 것이다.[61] 하지만 1998년에 그랜저 XG를 출시하면서 이미지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62] 이경숙 합류 기념 환영회로 추측되기도 한다.[63] 정확히는 지강헌은 자살로 숨진 건 아니고 자살기도를 했지만, 경찰이 쏜 총에 맞아 과다출혈로 죽은 것이다. 지강헌은 탈옥범이긴 했으나, 도망치면서 살인은 하지 않았으며 은거지 주민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등 예의 바르게 대했었다.더구나 그는 지존파처럼 살인조폭이 아니라 절도죄 초범이었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자신의 입장에서 겪은 불공정한 법집행에 대한 항의로 저지른 범죄지 “돈 있는 놈 잡아 죽이겠다”고 아무 죄없는 사람들을 무작정 살해한 지존파보단 그나마 이해할 만 했고 비교자체가 모욕이다.[64] 일명 ‘지존파 전도 특공대’를 조직해 사형 집행 전 지존파 일당에게 전도를 했다.[65] 김기환은 사형 집행 당시 집(아지트)을 교회 설립하는 데 기증한다는 유언을 남겼다.[66] 김현양이 그녀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이 발언은 곧바로 가십거리가 되어 그녀가 이 씨라는 것이 밝혀지게 되었고 방청했던 기자들에 의해 기사화되었다.출처. PC로 열람 바람[67] 신속하게 사형 집행이 진행됐기 때문에 절차를 밟지 못해서라는 추측도 있다.[68] 박성규, 이두견, 최명복은 안구와 콩팥을 기증했고, 신민철은 시신을 기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