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19:19:39

김일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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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일곤(金日坤) ([age(1967-04-27)]세)
출생 1967년 4월 27일, 경상북도 경주시
본관 김해 김씨
신체 167cm, 62kg
가족 7남매 중 다섯째
결혼여부 미혼[1]
범죄유형 살인
파일:external/archivenew.vop.co.kr/17113612_0000.jpg
현장의 CCTV에 찍힌 사진

1. 개요2. 과거 행적3. 트렁크 살인사건4. 기행과 망언

1. 개요

대한민국의 범죄자. 경주시 출신으로, 2015년 9월에 발생한 일명 트렁크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온보현, 강호순, 조두순, 김길태, 오원춘 등 국내 흉악범의 계보를 잇는 희대의 범죄자. 무고한 30대 여성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일명 '아산 트렁크 살인사건'의 가해자다.

2. 과거 행적

김일곤은 1967년, 경상북도 경주시판자촌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으며 성격은 내성적이었다. 친형의 증언에 의하면 유년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그의 사진을 불태울 정도로 성격이 괴팍했고, 특히 을 마시면 가족들을 흉기로 위협했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한 후 가족과의 관계를 완전히 끊고 부산을 거쳐 서울로 갔다. 김일곤은 상경 후 주로 오토바이를 타고 중국집 배달 등을 하며 살았다. 몇 차례 사고를 겪으면서 몸에는 상처가 하나둘 늘어갔다. 1992년부터 강도와 폭행, 절도를 수차례 해 왔으며 18년을 감옥에서 보냈을 때, 부모는 물론이고 형제 중 누구도 찾아온 적이 없었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면서 시작되었으며 강도와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감옥에서 나온 그는 잘 곳이 마땅치 않을 때마다 고시원에 가서 자리를 잡았고 강남구성동구 일대에서 주로 지냈다. 그는 거리와 감옥, 고시원을 오가며 십수 년을 보냈지만 그의 내면에선 피해의식이 계속 커져갔다. 아산 트렁크 살인사건 이전에 이미 전과 22범이었으며 2015년 8월 24일에는 경기도 일산동구의 한 대형마트 주자창에서 30대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납치하려 했으나 여성이 강하게 저항하자 내버려둔 채 여성의 투싼 승용차를 타고 도주한 적이 있었다. 사이코패스 테스트(PCL-R)에서 33점이 나와 강호순(27점)보다도 더 심각한 사이코패스임이 판정되었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 같은 생활을 해왔다고 한다. # 집주인이 전기세를 달라고 요구하자 갑자기 폭력을 휘두르고 막말을 하며 자기는 죽는 게 두렵지 않다는 둥 소란을 피웠다고 한다.

3. 트렁크 살인사건

아산 트렁크 살인사건 문서 참고.

4. 기행과 망언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말 같지도 않은 궤변이자 희대의 망언. 그의 불우한 가정환경과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혼자서 살아온 성장환경을 감안한다고 해도[2], 여러 차례 법의 심판을 받은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질러 온 전적을 보면 본인에게도 갱생의 의지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거기다 죄 없는 피해자를 잔혹하게 살해한 것[3]은 전적으로 본인의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김 씨 때문에 피해자가 죽은 것'이라고 하거나 '피해자가 자신을 자극했다'며 끝까지 본인 역시 피해자일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자신은 앞으로 더 살아야 한다는 둥 취재진 앞에서도 횡설수설을 반복하고 "김OO이 그놈 때문에 내가… 김OO, 그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 그놈으로 인해서 내가… 김OO이를 죽이기 위해서 내가…."라며 특정 인물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주머니에선 28명의 이름이 적힌 살생부가 발견되었다. 살생부에 오른 사람들은 형사, 판사, 의사 등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로, 김일곤은 이 살생부에 강한 집착을 나타내며 빼앗기지 않기 위해 경찰을 상대로 난동을 부렸으며, 명단에 적힌 28명이 자신에게 피해를 준 사람들이라며 "이것들 다 죽여버려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는 등 살인의 의사를 강하게 나타냈다고 한다.

김일곤의 언행에서 유추한 사건의 전말은 자신의 복수극을 위해 아무 상관도 없는 무고한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미치광이 살인사건이었다.

이 모든 일은 김일곤이 반복적으로 증오를 나타낸 김 씨라는 인물로부터 시작됐다. 심지어 수배되는 과정에서까지도 살인의 미련을 버리지 못할 정도로 강한 증오심을 보였다. 20대인 김 씨는 5월 경에 김일곤과 몸싸움을 해 입건됐던 인물로, 서울 도림동 인근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식자재 배달을 하던 김일곤이 김 씨의 차량과 접촉사고가 날 뻔한 것이 화근이었다. 김일곤과 김 씨 사이에 주먹이 오갔고, 결국 쌍방폭행으로 입건돼 김일곤이 벌금 50만 원을 냈다는 게 사건의 전말이다. 그러나 김일곤은 잘못도 없는 자신에게 도리어 가해자라는 누명이 씌워졌고, 이 때문에 소송까지 불사했지만 재판이 부정 재판이어서 자신이 벌금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에도 김일곤은 김 씨에 대한 원한을 풀기 위해 지난 5월부터 8월 초까지 김 씨가 일하는 노래방 업소를 7차례나 찾아가 "(쌍방폭행에 대한) 벌금(50만 원)을 당신이 대신 내라"라고 요구했다. 8월 경에는 차량에 타고 있던 김 씨에게 흉기를 보이며 위협할 정도로 극단적인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김 씨는 "자신 있으면 타라"라고 하더니 차에서 내리려 하자 김일곤은 흉기를 휘두르기는커녕 그 자리에서 달아나 버렸다. 참을성이 바닥난 김 씨 역시 그 자리에서 김일곤에게 "이제부터는 전쟁"이라며 아는 동생을 시켜 김일곤의 차량을 추적하게 하면서 감정싸움이 격해졌다.

김일곤은 이후 자신의 차량번호를 김 씨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새로운 차량을 구하려 했다. 트렁크 살인사건 이전의 납치 미수 사건 역시 차를 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추정되는데, 트렁크 살인사건에선 피해자 주 씨에게 처음부터 납치할 의도로 접근한 이유는 납치한 여성을 노래방 도우미로 위장시켜 노래방에서 일하는 김 씨를 유인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납치한 여성더러 김 씨의 노래방에 전화를 걸게 해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고 싶다"는 통화를 하게 하고는, 김 씨가 여성을 만나러 나오면 자신이 기습하려는 계획이었다는 것. 진술 과정에서 "여자가 내 말만 잘 들었으면 괜찮았을 텐데."라는 헛소리까지 늘어놓았다.

결국 김일곤은 당시(본인 주장) 부정 재판에 가담했던 모든 사람을 죽이려 계획을 세우고는, 미끼로 쓰기 위해 죄 없는 여성을 납치한 후 홧김에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발적인 살인이었다면서 시신을 처참하게 훼손하고 불에 태우기까지 했으며, 도리어 피해자가 자신의 심기를 거슬러 명을 자초했다는 적반하장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티끌만큼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다. 현재 김일곤은 자신도 사회적 피해자에 불과하다면서 리스트에 적힌 28명을 이 모든 일의 원인으로 돌리고 있다.

물론 부정 재판이라느니 하는 이야기는 김일곤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 경찰 측에 따르면 오히려 김 씨에게 먼저 폭행을 가한 쪽은 김일곤이었고, 김일곤이 먼저 김 씨의 멱살을 잡자 김 씨가 김일곤을 밀쳤기 때문에 쌍방폭행으로 처벌하게 되었다고 한다. 거기다 김일곤의 살생부에 오른 사람 중엔 해당 사건을 담당한 판사와 담당 형사를 비롯해 아예 별 상관도 없고 김일곤 본인조차도 당사자의 이름을 몰라서 직업만 적어놓은(...) 제3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들이 살생부에 포함된 이유가 그야말로 가관이다.

오토바이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병원에서 자기가 이 병원의 의료사고 피해자인데 왜 보상을 안 해주냐며 지금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고 난동을 피웠을 때 자신을 진료한 의사는 아픈데 입원을 더 시켜주지 않아서, 간호사는 "불친절해서" 1992년 당시 자신의 절도사건 담당 판사는 "징역 5년을 때려서"[4] 등등 명백히 자신의 잘못으로 저지른 죄마저도 남 탓으로 돌리거나,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단순 갈등에서도 살인충동이라는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는 등 오히려 김일곤 본인이야말로 사회에 대한 증오심과 근거 없는 피해망상에 찌든 정신병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단순한 폭행사건으로 시작된 갈등이 계획 살인을 모의할 정도까지 발전하고, 평소 이웃주민들을 상대로도 작은 일에도 막말과 폭행을 휘두른 것을 보면 멘탈 자체가 온전하다고 볼 수 없다.

거기다 백번 양보해서 설사 재판의 결과가 부당했다고 치더라도, 그것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피해자를 죽인 것이 정당화되는가? 더군다나 김일곤은 이 여성을 살인한 뒤 잔인하게 시신을 모욕하며 자신의 분풀이를 하고, 그 후로도 자신은 피해자일 뿐이고 피해자 여성과 김 씨가 똑바로 하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반복적으로 남 탓만을 일삼으며 체포당하는 순간까지도 복수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았다.

한편 김일곤이 원한을 품은 김 씨의 경우, 김일곤이 자신을 찾아올 때마다 기꺼이 대면해줬는데, 김일곤이 굳이 미끼를 써서까지 자신을 유인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고 하며, 김 씨를 향한 복수극을 계획하던 중 피해자가 자신을 질타해서 우발적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는 것은 김일곤의 거짓 진술이라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말했다.

경찰은 강도살인살인예비죄[5], 절도, 차량 방화, 시체 손괴, 납치, 납치미수 7가지의 항목을 적용하여 김일곤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그리고 첫 공판에서도 그는 일말의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살생부 목록에 적혀있는 28인의 명단을 조사해달라고 성화를 냈을 뿐이며 검사가 이들은 사건 관련자가 아니라 조사하지 않았다고 설명하자 무조건 관련 있다고 우기며 그들을 먼저 조사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아무 말도 안 하겠다고 이야기하며 자기야말로 이들에게 고통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재판부가 살생부에 적힌 사람들에게 피해를 받았다면 고소장이나 고발장을 접수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처벌할 목적이 아니므로 고소, 고발을 원하지 않고, 조사하고 그 내용을 공개해달라는 거다'라고 주장했다. 어차피 처벌될 가능성이나 기소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본인도 알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그는 국선변호인의 변호조차도 거절했다. 이유는 국선변호인이 자신을 담임선생처럼 가르치려고 들고 사건과 무관한 일들만 물어봤다는 것. 재판정을 나서는 순간에는 담당 검사가 자신을 비웃었다며 자신의 전과 기록은 전부 다 부풀려진 거니 비웃지 말라고 난동을 부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병적인 피해망상에 찌들어있다고 봐야 할 지도.

두 번째 공판에서는 그야말로 난리라 봐도 될 정도의 궤변으로 재판장에 있던 모든 사람의 분노를 샀다. 재판 방청객 중 기자가 있는 것을 보고 기자단에 대해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내가 재판하는데 기자가 왜 왔어. 기자 내보내. 기사 내용이 하나부터 열까지 엉터리야. 함부로 기사 쓰는 거, 사람 죽이는 행위야!"는 역대급 궤변으로 사람들의 어이를 털어버렸다. 이 개소리만도 못한 말을 들은 피해자의 여동생은 "사람을 죽여놓고 뭘 (기사로 김일곤 자신을) 죽인다는 것이냐"라고 울부짖었다.. 여기에 대한 김일곤의 대답은 “당신, OO일보 기자입니까?”였다고 한다.

거기다 본인의 국선변호사조차도 거부하며 "국선 변호사도 믿을 수 없다"라며 "국선 변호사에게 당해 10년 동안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었다"라고 끝까지 자신의 전과를 부정하고 피해망상 억지를 다 썼다. 비공개 재판과 궐석재판을 요구한 것은 덤. [6] 거기다 "어차피 각본대로 진행되는 것 아니냐"며 재판 자체를 거부. 오죽했으면 이 만행을 보다 못한 판사가 피고 때문에 죄 없는 사람이 죽었다며 호통을 칠 정도였다 하니..

12월 11일 열린 3차 공판에서 역시 재판장 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선사하며 온갖 이상한 발언을 늘어놓았다.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궤변에 국선 변호사조차 한숨을 쉬었고, 유가족들은 그야말로 피마르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해당 공판에 참가한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재판인 지 모르겠다는 회의감이 들게 할 정도였다고 하며 지지부진한 재판과정에 유가족들은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한다.

특히 김일곤이 끝까지 "죽은 피해자를 이용하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유가족인 피해자 여동생의 입장. 유가족 측의 말대로 살인 사건과 아무 상관도 없는 차량 시비 문제를 들먹이며 계속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며 관심과 동정을 받으려 하는 김일곤의 만행은 그야말로 치졸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피해자의 여동생은 “사건 초반, 신문 등에서 김일곤의 유년시절 환경 등이 자주 나왔고 차량 시비 문제까지 듣고 나서 잠깐, 아주 잠깐은 ‘이 인간이 불쌍하다.’ 생각도 들었지만 김일곤이 정말 사람이라면 시신 훼손을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다."라며 치를 떨었다. 또한 피해자의 여동생은 생업까지 포기하고 참관했지만 유족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었다며 재판 과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또, 2차 공판 당시 유가족에게도 발언 기회를 주겠다 했지만 막상 끝날 때까지 발언 기회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김일곤은 아직까지도 영등포에서 일어난 김 씨와의 교통사고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기자들 앞에서 할 말이 있다면서 "'영등포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라고 또다시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그 사건이 있은 뒤로 살인충동이 생겼으며 담당 형사와 김 씨에 대해 "죽여도 그냥 죽이지 않고, 나를 보며 놀리던 혀를 먼저 자르고 죽일 생각을 했다."는 섬뜩한 발언까지 했다. 부장판사가 일단 하고 싶은 말을 해 봐라고 발언 기회를 주자 1시간 30분 동안 그야말로 개소리의 향연을 벌여놓았다. 범행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서는 법이 자신과 같은 억울한 사람들의 편이 아니라며 "나 하나 희생해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랐다."라면서 “내가 사람을 죽인 것은 인정하지만 내 감정까지 건드리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 심지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게 고인을 위하는 길."이라며 내가 아닌 고인을 위해 폭행 사건 담당 경찰관을 내사해달라는 등 레전설적반하장 개소리를 마구 해댔다.

결국엔 2016년 6월 3일 서울동부지법 형사합의 11부는 이 사람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형집행 종료 후 30년간 전자위치추적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이후 2심에서도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아마도 죽을 때까지 사회에 제대로 복귀하기는 힘들 듯 하다.
[1] 교도소에 거의 살다시피 해서 결혼할 틈도 없었다고 한다. 당연하겠지만 저런 인성의 사람은 결혼할 확률이 낮은데 만약 했었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 사실 이 말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범죄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가정환경이 유복한 상황에서는 범죄자가 나오지 않는 것 역시 아닌 시점에서 궤변이 지나지 않다. 오히려 범죄자들이 틈만 나면 가정환경 운운하기 때문에 소득수준이 낮다=우범지역이라는 편견이 나오는 거다.[3] 살해 후 입술, 유두, 음부, 항문, 엉덩이를 훼손했다.[4] 김일곤은 1987년 절도죄로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은 뒤에도 계속해서 서울과 대전, 전주 등에서 절도 행각을 벌여 출소 후 3~5개월 만에 재수감되는 등 6차례 복역했다.[5] 검거되는 그 순간까지도 살생부에 강하게 집착을 보이며 복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고, 특히 안락사 약물을 구하러 간 것도 김 씨를 죽이고 자결하기 위해서라고 본인이 나서서 김 씨에 대한 복수극을 검거되는 그 순간까지도 계획하고 있었다고 자백했으므로 살인예비죄 적용에 충분하다.[6] 물론 이것 역시도 억지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사형·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은 궐석재판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