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06 01:07:11

정남규(범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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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정남규(鄭南奎)
출생 1969년 3월 1일
출생지 전라북도 장수군
사망 2009년 11월 22일 (40세)
사망지 경기도 안양시
신체 168cm, 63kg, B형
가족 9 남매 중 일곱째

1. 개요2. 생애3. 범행 일지4. 검거5. 특징6. 사망7. 기타8. 둘러보기

1. 개요

정남규는 2004년 1월 14일부터 2006년 4월 22일까지 서울 경기지역에서 13명을 살해하고 20명에게 중상을 입힌 범죄자이다. 14명을 살해하고 19명에게 중상을 입힌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봉천동 세 자매 피습 사건에서 세 자매 중에서 두 명은 사망하고 한 명은 사망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건 초기의 언론 보도에서 마지막 한 명은 제외시켜 추가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중상으로 얼마 후 사망하였고, 정남규 기소 시에도 살인 혐의에 포함되어 최종 확인된 피살자가 13명이다.

유영철과 비슷한 시기에 벌어졌던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며 유영철의 소행으로 알려졌던 서울 이문동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다. 그 후 보강 조사에 의하여 범행의 대부분이 밝혀졌다.

흉악성으로는 KCSI 요원 사이에서 역대 최악으로 평가되었다. 또한 전문 프로파일러들조차도 두려워했을 정도로 국내 최악의 연쇄 쾌락살인[1]이며, 잘못된 사회와 폭력이 만들어낸 범죄자다. 어떻게든 중벌을 피하고 싶어 동정론에 호소하고 최대한 사실을 숨기려 들며 증거를 들이대도 일단 아니라고 우기고 보다가 견디지 못하면 그제야 자백하는 일반적인 절대다수 범죄자들과 달리, 시키지도 않은 자백을 알아서 하거나[2]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거리낌 없이 전부 늘어놓는 등 사형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연쇄살인범 중에서도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의 범행을 감추거나 스스로도 까먹기도 했다. 링크.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두 차례 (579회, 632회)에 걸쳐 정남규를 다룬 바 있다.



팟캐스트유튜브 방송 <김복준 김윤희의 사건의뢰>에서 정남규를 실제로 면담했던 프로파일러 김윤희와 형사 출신 김복준 교수가 정남규의 이상심리를 분석했다. 정남규 2부 정남규 3부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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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입학 당시의 정남규.

1969년 3월 1일,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가정의 5남 4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으며, 중학교를 졸업한 후 타지에서 자취하며 상업고등학교를 다니다 2학년 때 가족과 함께 이사하여 전학한 후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그의 학창 시절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물렀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4개월간 음료 공장에 다니기도 하였으나 직장 생활에 적응을 못해 그만두고 떡 방앗간에서 배달일을 하거나 건축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군대에 가 육군 하사로 만기 제대(1992)하였다. 이후 별다른 직업 없이 생활하였으며, 절도 등 범죄 행위로 생계를 유지하여 왔다.

정남규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끊이지 않는 폭행과 자신을 아껴주던 동네 아저씨로부터 성추행과 강간[3], 성희롱을 당한 일로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으며,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동급생이나 선배들에게 집단따돌림과 학교 폭력을 겪었고 후배들에게 무시당하는 일도 빈번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 자취방 옆에 살던 아저씨에게 두 번이나 강간을 당했다고 한다. 군대 복무 시절에도 선임들에게 가혹행위와 심한 구타를 겪었고 한 선임에겐 또다시 강간을 당했다. 후임들에게는 기수열외를 당하는 등 군 전역 후 사회생활을 힘들어하며 사회에 대한 복수심으로 범죄의 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1989년 특수강도죄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1994년 절도죄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 및 벌금 20만 원 등의 선고를 받은 후, 1996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징역 2년 6월, 1999년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죄(절도, 강간 등) 징역 2년, 2002년 절도죄로 징역 10월 등 총 3년 4개월간 교도소에 수용된 경험이 있었다.

30대 시절에는 어머니, 친누나와 3명이서 함께 살았지만 가족 중 직장을 가진 이가 없어 기초생활수급자로 어머니 명의의 낡은 주택에 딸린 방을 세놓고 받는 월세 55만 원이 수입의 전부였다.

요약하자면 가난,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가혹행위를 전부 다 겪은 굉장히 불행한 인생을 살았기에 극소수지만 정남규를 동정하는 시선도 없지는 않다. 물론 아무리 불행한 인생을 살았다고 해도 연쇄살인이 용납되는 건 아니지만...

3. 범행 일지

  • 2004년 1월 14일 부천시 원미구에 살던 윤모 군(13세, 남)[4]과 임모 군(12세, 남)을 성추행 후 살해했다. 시신은 실종 16일 만인 1월 30일, 아이들의 집에서 3km 떨어진 춘덕산 정상 부근에서 옷이 대부분 벗겨진 채로 발견되었다. 이 사건은 미궁에 빠질 뻔했으나[5] 정남규가 체포된 후 그의 자백으로 범행 사실이 드러났다.
  • 2004년 1월 30일, 새벽 3시경 구로구 구로동의 한 빌라에서 원모 씨(44세, 여)를 수차례 찔러 중상을 입혔다.
  • 2004년 2월 6일,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골목길을 지나던 전모 씨(24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 2004년 2월 10일, 새벽 시간대에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서 우유 배달부였던 손모 씨(28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했다.
  • 2004년 2월 13일 오전 6시경 영등포구 신길5동 골목길에서 서모 씨(30세, 여)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중상을 입혔다.
  • 2004년 2월 25일 오전 1시경 다세대 주택에서 홍모 씨(33세, 여)를 흉기로 마구 찔러 중상을 입혔다.
  • 2004년 2월 26일 신림동에서 할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던 여고생을 골목길에서 칼로 10여 차례 찔러 중상을 입혔다.
  • 2004년 4월 8일 신길동 귀가 중이던 피해자 정모 씨(여 25세) 살인미수.
  • 2004년 4월 22일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서 여대생을 집 앞에서 흉기로 무참히 찔러 살해.
  • 2004년 5월 9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귀가 중이던 여대생을 흉기로 10여 차례 찔러 살해.
  • 2005년 4월 18일 서울 금천구 시흥3동 모 빌라에서 잠자고 있던 모자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힘.
  • 2005년 5월 30일, 새벽 시간대에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에서 우유 배달부 김모 씨(41세, 여)를 흉기로 찔러 살해.
  • 2005년 6월 4일, 새벽 2시 55분 즈음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의 한 주택에 침입해 김모 씨(36세, 여)를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혔다.
  • 2005년 10월 9일 장애인 주거 시설에 침입해 그곳에서 자고 있던 홍모 씨(39세, 여) 등 2명을 둔기로 내려쳐 중상을 입힘.
  • 2005년 10월 19일 봉천10동 주택에서 변모 씨(26세, 여)를 둔기로 내려쳐 살해 후 방화 해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 2006년 1월 18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송모 씨(48살, 남)의 집에 침입해 둘째(17세, 여)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친 후 목졸라 살해한 뒤 집에 불을 질러 첫째(21세, 여), 막내(12살, 남), 총 3명을 살해했다.
  • 2006년 3월 27일 봉천 8동 2층 단독 주택에 들어가 잠을 자고 있던 김모 씨(25세, 여) 등 세 자매를 둔기로 마구 내려쳐 2명을 살해하고 1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 2006년 4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주택 절도 후 자고 있던 김모 씨(24세, 남)를 둔기로 내려쳐 상해를 입히고 격투 끝에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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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범죄를 제외하고는(이문동, 수유동, 군포시) 사건 장소의 거의 대부분이 서울 서부지역(구로구, 금천구, 동작구, 봉천동, 광명시, 영등포구) 일대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당시 언론에서도 이 사건을 서울 서남부 지역 연쇄살인 사건으로 부르기도 했다.

살인의 편리성을 위해 CCTV가 없는 등 보안과 치안이 취약한 곳을 주 범행지로 삼았기 때문에 당연히 안전 시설이 상대적으로 빈약한 지역에 거주하던 사회적 약자들이 잔인한 범행의 희생자가 되었다. 정남규 본인도 자신이 약자들만을 공격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한다. 물론 유영철처럼 부유층 등 사회적 강자로 분류되는 이들을 공격 목표로 삼는 범죄도 잔인무도하고 전혀 미화 여지가 없는 것이지만, 정남규의 피해자들은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생활하던 선량한 소시민들이 절대다수였기 때문에 더 안타깝고 분노하게 되는 것. 홀로 어린 딸을 키우던 어머니(우유 배달부 여성) 등이 희생자가 되었다. 보라매 공원 살인 사건 발생 이후 그 지역엔 비 오는 ×요일 밤의 괴담이 생겨났으며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그전부터 연쇄 범죄의 낌새를 눈치채온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자 완전범죄를 꿈꾸던 정남규는 범행 방법과 도구를 바꿨다. 노상과 예기(칼)에서 침입과 둔기로.

4. 검거

정남규의 검거 과정은 매우 극적이었다. 2006년 4월 22일 새벽, 신길동의 어느 다세대 주택에 침입하여 방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만 원짜리 상품권 1장밖에 발견하지 못하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정남규는 방 안에서 자고 있던 20대 청년을 둔기로 살해하려 하였으나 피해자가 극렬히 저항하고 옆 방에서 자고 있던 청년의 아버지까지 합세하여 격투 끝에 붙잡혀 경찰에 인계된다.# 그러나 정남규는 경찰서로 이송하기 직전에 순찰차 뒷자리에서 수갑을 찬 채로 그대로 달아나버렸고 2시간 만에 동네 주민의 신고로 옥상에서 다시 검거된다.

이 사건은 프로파일링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는데 정남규가 처음 검거될 당시에는 단순한 강도상해범으로 보고가 되었다. 즉 잘못했다면 교도소에서 몇 년 복역 후 다시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었다는 것. 하지만 몇 년간 정남규를 쫓고 있던 프로파일러 권일용이 그를 추궁해 자백을 받아내어 끔찍한 연쇄살인의 진상이 드러나게 된다.[6] 또한 야산에서 운동화끈에 손가락이 묶여 성추행을 당했다는 말에서 힌트를 얻어 운동화끈에 손이 묶여 성추행을 당한 뒤 살해당한 부천 소년 살해 사건에 대해 추궁하여 자백을 받아내는등 한마디로 프로파일링의 승리였다.

5. 특징

체포 후 심문 과정에서 범행 후 만족감을 느꼈으며 죄책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 발언을 하여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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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검증 당시 분노한 시민들이 그에게 돌을 던지고 달려들려고 하자 피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다른 범죄자들과는 다르게 시민들을 노려보고 맞서 달려들려 했으며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연행차량 안에 탔을 때는 카메라를 향해 씨익 웃기까지 하며 지켜보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둘 다 살인 자체가 목적이었다고는 하지만 비슷한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좋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기인한 가진 자에 대한 분노나 이혼으로 인한 여성에 대한 혐오감에 의해 철저하게 목적형 범행을 저지른 반면 정남규의 경우 처음부터 철저히 쾌락만을 위한 전형적인 쾌락살인범이라는 점이 전혀 다르다.

유영철은 주로 둔기를 사용하여 범행을 저질렀으며 별다른 성적인 행위를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살해 의지를 드러내기 전 합의하에 한 반면 정남규는 날카로운 흉기를 사용하여 범행을 저질렀으며 성폭행방화를 함께 저질렀는데 이러한 "찌르는" 행위, 성폭행, 방화 등의 행동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하는 성적인 동기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분석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남규도 강간, 성추행을 여러 차례 저질렀었다. 살인(시도)과 성범죄를 함께 저지른 적도 적지 않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 "사람을 더 죽이지 못해 우울하고 답답하다. 빨리 사형을 집행해 달라"는 발언을 하는 등 전형적인 쾌락살인범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는 범행을 자백할 당시 "강남구 등 부유층이 사는 동네엔 CCTV가 너무 많아서 CCTV가 없는 곳에서 했다" 는 말을 하였다. "그는 살인을 더 쉽게 하기 위하여 주로 방범 시설이 잘 갖춰져 있지 않은 서민층 및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을 범행 대상으로 잡았으며" 침입 방법도 문을 따거나 창문 등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문을 열어놓고 있는 집을 대상으로 범행하는 등 철저하게 사회적 약자만을 대상으로 했다. 이는 살인 자체를 쾌락으로 여겨서 좀 더 쉽게 많은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장소를 택하는 행동이다.

게다가 이런 자신만의 쾌락을 위해서 범죄를 준비하는데 있어 상상 이상의 힘을 쏟았다. CCTV에 잡히지 않기 위해 지하철 몇 정거장 정도의 장거리를 도보로 이동하였는데 범행을 염두에 두고 범행 현장에서 쉽게 도주하기 위하여 거의 매일 주거지 인근 운동장에서 10km씩 달리기 연습을 하고, 악력기와 역기 등으로 체력을 다지기도 하였으며, 도주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평소에 흡연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방에 있을 때는 건강 정보 프로그램을 꾸준히 시청하며 자신의 식단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는 등 문자 그대로 살인을 쉽게 하기 위해 훈련 등의 장기적 계획까지 짰다. 거기에 범죄를 준비하기 위해서 체력만 단련한 게 아니라 학습도 매우 열심히 했는데 나중에 수색된 그의 집에서 과학수사 관련 잡지만 수십 권이 발견되고 체포당하기 직전까지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를 한 편도 빼놓지 않고 계속 시청했다.

또한 자신의 범죄를 전하는 기사를 스크랩하며 수사상황을 학습하고 있었다. 나중에 수색된 그의 집에서는 수사진은 물론 권일용 프로파일러의 얼굴을 찍은 월간지 스크랩까지 발견되어 수사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고 한다.

파일:정남규 신발.png
게다가 완전범죄에 최대한 가까운 노력을 했는데 모든 신발에는 밑창을 도려내서 족적이 나오지 않게 했고, 피해자를 신속하고 확실하게 살해하기 위한 흉기를 사용하는가 하면 지문이 쉽게 발견되지 않으면서도 미끄럽지 않은 장갑을 착용했다. 여기에 수법도 주기적으로 바꿨고 더욱이 비슷한 시기 정남규만큼은 아니라도 피살자가 두세 명으로 적되 수법이 비슷한 살인자들이 여럿 잡혔다.[7] 그래서 그 오랜 기간 동안 잡히지 않고 살인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문동 살인 등 일부 사건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었다가 정남규가 알아서 자백하는 바람에[8] 진상이 밝혀지기도 했다.

그가 밝힌 동기 중에 어린 시절 성학대를 당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실제 첫 번째 범행으로 알려져 있는 부천 초등학생 피살 사건에서는 당시 10살과 11살 남자아이 두 명을 납치하여 자신이 당했다고 진술한 방법과 동일한 수법으로 성추행한 뒤 살해하였다고 진술하였다. 하지만 동정심을 받아서 감형을 받기 위하여[9] 자신의 첫 번째 범행에서 모티브를 얻어 꾸며낸 자작극이라고 볼 수도 있으므로 주의가 필요하다.[10] 오히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소아성애자들이나 이와 비슷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 대항할 힘이 없는 어린아이들을 상대로 살인, 성범죄, 잔혹 행위 등의 각종 범행과 같은 맥락에서 저지른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11] 게다가 이후 범행은 거의가 힘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였다.

이러한 증언의 조작이나 편집은 감형의 구조를 알건 모르건 누구라도 한 번쯤 시도하는 방법이며 적게는 정상 참작, 많게는 심신 미약으로 인한 감형 내지는 형의 면제를 받기 위한 수법이다. 일단 책임 능력이 부정된다면 판사로서는 중형을 선고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 때문에 심문 과정에서 이러한 증언의 모순을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된다.

또한 재판 과정에서도 그의 피해자는 저소득층 및 여성으로 전원 사회의 약자들이고 그 목적이 엄연히 쾌락에 의한 연쇄살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를 더 죽이지 못해 억울하다"[12]는 주장을 하는 등 자신의 살해 동기를 조작하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더욱 주장에 신빙성이 떨어진다. 판사들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동기라고 판단해 "반성의 여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는 논조로 판결을 내렸다.

6. 사망

2007년 4월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 끝에 사형이 최종 확정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담배는 끊어도 살인은 못 끊겠다"라는 말을 남겼으며 2009년 11월 21일, 감방에서 목을 매 자살을 기도하여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다음 날 새벽사망하였다. 당연히 그의 죽음에 안타까워 하는 사람은 없었고 빈소에도 그의 누나 외에는 오지 않았다. 당시 40세. 유언은 남기지 않았으나 최근의 사형 여론에 대한 언급을 자주 한 것으로 볼 때 사형 집행에 대한 두려움[13]으로 자살을 결심한 게 아닌가 추정된다고 한다.

하지만 프로파일러들의 말은 다른데, 사형 집행에 대한 두려움보단 살해할 대상이 더는 없기 때문에 자살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소리도 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빨리 사형을 집행시켜달라고 말한 것도 그렇고 실제로 자살하기 전까지 태연히 지낸 것을 볼 때 꽤나 신빙성이 있는 추측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의 사형 여론에 대한 언급 또한 두려움보다는 자신이 사형을 당할 수 있는지를 생각한 것으로 보면 들어맞는다. 그를 프로파일링 하였던 권일용 프로파일러는 한 유튜버의 방송에 출연하여 "정남규는 자살한 것이 아니다. 자기가 자신조차 살해하고 끝난 사람이다. 살인의 끝은 자기 자신이였다."라고 말하였다. 즉, 감옥에 들어와 더이상 살인 할 수 없고 살인의 대상이 사라지자 자신의 살인으로 그 끝을 완성한 셈. 물론 진실은 정남규 본인만이 알 것이다.

7. 기타

수유동 3남매 살인 및 방화사건에서, 경찰은 어처구니없게도 피해자들의 아버지이자 피해자 유가족인 송모 씨를 의심하여 주변을 캐고 다니고 무죄추정의 원칙 따윈 밥 말아먹은 강압수사를 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아무도 없는 방으로 데리고 가 6명의 수사관들이 빙 둘러선 채 같은 질문을 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당신이 범인이라는 40여가지의 증거물을 제출해놨다는 협박을 하고, 내연관계로 인한 살인을 의심했는지 통화기록을 조회한 뒤 여자동창생들에게 여러번 전화해 관계를 물어봐대고 등등... 경찰이 자꾸 이러니 아내마저 그를 의심했고 끝내 부부는 이혼했다. 사건의 충격으로 송모 씨의 어머니마저 3개월만에 사망하는 등 줄초상을 치러야 했다.

경찰은 진범 정남규가 잡힌 뒤에도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고, 더 이상 송모 씨에게 찾아오지 않은 게 다였다. 그는 진범이 잡힌 것도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그는 전신 76%에 3도 화상을 입고 장애인이 되어 생계마저 막막해졌으며(재산피해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했고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범죄피해자구조금이 전혀 지급되지 않았다), 육체와 정신 모두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인터뷰[탐사보도 ‘세상 속으로’]그날, 그놈에게 세 아이 잃은 뒤 내게 남겨진 것은 지옥같은 삶

귀귀뉴 바이블에서 사형수 데스매치에서 강호순을 상대로 눈을 공격해 승리하지만 이미 죽었고 제이가 한 번 더 죽어봐야 한다며 목을 매달아 죽인다.

영화 목격자에서 살인범을 연기한 곽시양은 정남규를 모티브삼아 연기했다고 밝혔다.

범행 수법이 초창기 때(2004.1~2004.5)와 후반부(2005.5~2006.4)에 차이가 있다. 해당 시기 내내 CCTV 설치가 미비하고 저소득층이나 주택가가 많았던 서울 서남부 지역 일대를 범행 장소로 주로 삼은 것은 맞지만, 초창기 때는 말 그대로 골목길에 혼자 있는 여성들을 습격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문을 열어놓고 있는 다세대 주택가 등을 새벽 중에 침입하여 살해하거나 방화를 저지르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정남규가 잡히게 된 것도 무단침입한 주택에서 자고 있는 남성을 살해하려다가 실패해서였다.

Q채널의 재연드라마 '살인자는 말한다' 첫 회의 '죽여야 사는 남자'에서 이 사건을 모티브로 방영되었는데, 여기서는 조동구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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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박형민 부연구위원도 정남규와 면담할 때 가장 섬뜩했다고 한다. 또, 국내 1호 프로파일러로 유명한 권일용 경감 역시 은퇴를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정남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말을 하였다. 권 경감은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과학수사와 관련해 진행했던 인터뷰 기사 속 제 사진을 정남규의 집에서 찾아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수정 교수도 등골에 식은땀이 날 정도로 가장 소름끼친 살인범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2] 대표적인 예가 바로 후술할 이문동 살인사건. 사건이 일어난 지 몇달 후에 유영철이 잡혔을 당시 자기가 했다고 자백했으나 앞뒤가 안 맞고 번복하면서 미제사건으로 남을 뻔 했다가, 2006년 5월 정남규가 자백함으로써 진실이 밝혀졌다.[3] 정남규는 자신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친 사건 중 첫 번째로 이 일을 꼽았다. 당시 미제 사건이었던 부천 남아 두 명 성폭력 살인 사건에도 참여하고 있던 권일용 프로파일러가 해당 사건의 범행 방식과 정남규가 말한 강간 피해 방식의 유사성을 유추해내어 추궁 조사한 끝에 부천 남아 살인 사건이 해결되었다.[4] 윤군의 삼촌은 범인 정남규가 잡히기 전, 조카가 살해당한 아픔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5] 경찰은 살해용의자로 박모 군(14세, 남)을 수사선상에 올리고 조사를 했는데 무리한 수사 아니냐는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부천 초등생 살해 용의 중학생 석방 경찰 무리한 수사 논란.[6] 당시 그를 자백시킨 권일용 프로파일러에 의하면 교도소에서의 이야기를 하자 어떻게 알았냐면서 자신의 모든 범행을 자백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비사교적인 정남규가 교도소 생활이 큰 스트레스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맞아떨어진 것이었다.[7] 이들은 대부분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일부는 사형수로 수감 중이다.[8]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언급된 바에 따르면 수사관들도 정남규가 알아서 자백하니 어이가 없었는지 왜 그러냐고 물었는데 유영철이 자기가 저지른 짓을 허위 자백했기에 진실을 밝히는 것이라고 증언했다고 한다. 결국 경찰은 정남규를 데리고 이문동 살인 사건의 현장에서 다시 현장 검증을 하여 범인임을 확인해야 했으며, 경찰은 엄청나게 까였다. 참고로 유영철 문서에도 적혀있듯 이 이문동 살인 사건 피해 여성의 어머니가 바로 소위 '유영철 경호원 사건'에서 형사에게 발길질을 당한 그 유족이다. 이 때 이 어머니는 '1월에 잡았으면 우리 딸 안 죽었다'고 경찰 수사에 항의하기도 했는데, 진범이 밝혀지고 또 한 번 현장검증이 행해질 때 심정이 어땠을지 타인은 짐작하기도 어렵다…[9] 재판할 때 수많은 피고들은 동정을 받으려 한다고 한다.[10] 하지만 정남규가 처벌 수위가 올라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문동 사건 등 굳이 묻지도 않은 사건까지 알아서 자백하거나 재판정에서 자기는 살인 중독자니 하루라도 빨리 사형시켜야 한다고 대놓고 말한 점 등을 보면 꼭 자작극이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동정 받을 생각이면 이런 짓을 절대로 하지 않기 때문.[11] 부천 초등생 살인 사건의 경우, 실제 보도된 것은 아이들이 살해되어 발견되었다는 정도였다. 그러나 현장을 발견한 형사들은 현장의 잔혹성과 참혹성에 경악했다고 한다. 형사들조차 참혹한 현장에 충격을 먹었으며 당시 사회 불안을 우려해 자세한 언론 보도를 통제했다. 실제 현장을 목격한 수사관이 오프 더 레코드로 밝힌 이야기다.[12] 어이없게도 이 대사 하나 때문에 단기적으로나마 다음이나 네이버 등에는 이 살인마의 팬 카페가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13] 실제로 법무부는 2007년에 유영철 등 세 명의 사형 집행을 추진했다가 청와대의 반대로 단념한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