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012년 4월 30일 월요일 오후 8시 20분경, 이모 군(16세, 남)과 대학생 윤모 씨(18세, 남)가 대학생 김모 씨(20세, 남)를 쇠몽둥이로 폭행하고 칼로 찔러서 살해한 뒤, 시신을 4~5m 떨어진 풀숲에 유기한 사건.이들은 피해자 김 씨를 신촌역 인근의 창천동 바람산어린이공원으로 유인해 범행을 저질렀으며, 당시 이 모군의 여자친구였던 고등학생 홍모 양(15세, 여)은 근처에서 망을 보고 있었다.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 창천동 근린공원 살인 사건이라고도 한다.
2. 사건 이전
피해 남성 김 씨와 여성 박 씨는 2011년 3월 인터넷 게임 사이트에서 만난 사이였다. 두 사람은 2012년 1월 1일 김 씨가 박 씨에게 고백함에 따라 연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박 씨는 자신의 지인인 이 군과 홍 양을 김 씨에게 소개해 주었다.
이즈음 박 씨는 네이버 카페 중 하나인 '사령카페'에 가입한 후 자신이 '악령계에서 인증을 받은 진짜 마녀'이며 치유마법, 영혼 소환 의식 등을 포함한 영적인 능력을 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이 군과 홍 양을 사령카페에 끌어들였으며, 그 외 사령카페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김 씨는 여자친구 박 씨가 '사령카페'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것 때문에 여자친구를 포함한 사령카페의 회원들과 갈등을 겪었다. 김 씨 역시 호기심에 사령카페에 가입하기는 했지만 사령카페 특유의 놀이 문화가 몹시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여 얼마 안 가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반면 박 씨는 김 씨와는 달리 사령카페에 푹 빠져 지냈다.
또한 박 씨는 사령카페 이외에도 디시인사이드 공포이야기 갤러리에서 운지마녀, 알보칠스멜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고### 카카오톡에 GH라는 이름의 대화방까지 만들었다. 이 곳에서 활동하다가 탈퇴한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하루에 300개 이상의 톡이 올라오는 격렬한 곳이며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모임에 몰입한 곳이었다고 한다.
평소 박 씨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에 의문, 반대를 보이면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한 여고생이 사령카페의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고 탈퇴하겠다는 글을 올리자 박 씨는 채팅방에 사람들을 모아서 그 여고생을 저주하기도 했고# 공이갤에서는 사령과 관련하여 어느 갤러와 키배를 벌이다가 그에게 욕설을 한 후 차단하기도 했다. 또한, 모 게임의 같은 길드원이었던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박씨는 자기가 먼저 PvP를 제안했으면서도 본인이 지면 상대방에게 심하게 정색하고 욕설을 퍼부어 댔다고 한다.
박 씨가 사령카페로 인해 변했다고 느낀 김 씨는 박 씨를 설득하여 사령카페에서 탈퇴시키고자 했는데 이 과정에서 두 사람 사이에 심한 마찰이 생겼다. 그런데 박 씨의 지인들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박 씨는 사령카페에 물들어서 이상해진 게 아니라 원래 허세가 심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박 씨 입장에서는 '멀쩡한' 자신이 변했다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남자친구 김 씨야말로 이상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날이 갈수록 두 사람의 사이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 때 박 씨는 주변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김 씨에 대한 뒷담화를 하면서 나쁜 평판을 퍼뜨리고 다녔고 김 씨는 어느덧 박 씨의 인맥 사이에서 박 씨를 괴롭히는 '가해자' 가 되어 있었다. 이 무렵에 이미 연인 관계는 끊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어느 날 김 씨는 사령카페 회원인 이 군과 카톡을 주고받던 중 이 군이 '김 씨는 리더 자격도 없으면서 회장을 맡았다.'며 불만을 드러내자 이 군과 홍 양의 신상과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협박했다.# 이후 이 군과 김 씨의 사이는 무척 나빠졌다. 판결문에서도 김 씨가 욕설을 한 것은 인정되었다. 물론 키배의 특성상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욕설을 하면서 거칠게 싸웠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당연히 욕설을 듣거나 협박 문자를 받았다는 것이 사람을 죽일 정당한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이 군과 김 씨의 싸움 이후 가해자들은 박 씨를 중심으로 카카오톡에서 김 씨를 따돌리고 그들끼리 다른 채팅방을 만들었다. '즉, 김 씨를 '위험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집단따돌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따돌림을 당하게 된 김 씨는 더욱 격렬하게 반응했고 이 군에게 200여 차례 문자를 보내는 등 갈등을 지속했다.
4월 24일, 박 씨는 블로그에 '네(김 씨)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글을 올렸는데[1] 사건 당일 박 씨가 "김 씨를 혼내주고 싶다"는 발언까지 한 것을 고려해 보면 박 씨는 김 씨를 죽이겠다는 발언을 주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했고 이것이 사건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알 수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박 씨가 이런 발언을 계속 한 것에 영향을 받은 이 군은 틱톡)에 '김OO(김 씨의 본명)을 죽여버려야겠다'는 글을 남겼고 29일까지 "죽여 버려야겠다. 이 일을 처리해줄 사람이 있다."는 내용의 글을 수 차례 남겼다. '이 일을 처리해줄 사람'은 윤 모씨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윤 씨는 현실에서는 무능한 인간이었으나 인터넷에서는 해결사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이쪽 일을 많이 해 봤으니 내가 잘 할 수 있다." 라는 말들을 지껄이고 다녔다고 한다.
한편 이즈음 김 씨는 자신의 언행이 과격했던 점을 반성하고 박 씨와 그 주변인들 간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했다. 김 씨는 이전에 욕설을 했던 것 등을 후회하며 "정말 미안하다. 어제 일이 하나도 기억 안 나."라고 블로그에 글을 써서 사과했다.#
즉 만남을 먼저 요청한 쪽은 김 씨였다. 김 씨의 계획은 일단 이 군에게 사과하고 나서 박 씨가 사령카페에서 무사히 탈퇴하도록 이 군 일행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이 행동이 김 씨의 치명적인 실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점까지도 김 씨는 박 씨가 사령카페에 잡혀 있는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 그러나 박 씨는 자기 의사로 사령카페에 가입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령카페의 가장 주요한 인물 중 하나였다.
그렁데 박 씨는 이 시점에 이미 사령카페에서도 떨어져 나와 카톡에서 자기들만의 모임을 가지면서 친목질을 하는 상태였던 것 같다. 이들은 카페에 있을 때보다 폐쇄성이 더욱 강화된 집단이 되었고 박 씨가 그 중심 인물이었던 것이다.
강원도 삼척시에서 대학을 다니던 김 씨는 주말을 맞아 시간을 내서 서울 본가로 상경했으며 신촌에서 박 씨와 함께 이들을 만났다. 김 씨는 선물로 그래픽 카드를 사가지고 갔으며, 김 씨가 살해된 뒤 이 그래픽 카드는 가해자 일당이 절취했다.
3. 범행 과정
피고인들은 피해자가 자신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분노의 표현으로 욕설 문자를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서툴지만 화해의 손길을 뻗었음에도 오히려 이를 이용해 살해한 점, 범행도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 아니라 어떤 흉기를 쓸 것인지 의견을 나누거나 피가 튈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 계획적으로 살인을 준비했다. - 판결문
그러나 화해를 기도했던 김 씨와는 달리 범인 일당은 당시 이미 김 씨를 살해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물론 김 씨는 설마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가 진행되는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범행 전날인 4월 29일 김 씨는 다른 사람과 함께 이 군의 집을 찾아가겠다고 연락했다. 하지만 범인 이 군은 공모하고 있던 윤 씨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김 씨에게 다음날(30일) 오라고 말해서 돌려보냈다. 이 군은 그 동안 윤 씨와 연락하여 범행 준비를 했다.
범행 당일인 4월 30일, 이 군은 윤 씨에게 흉기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으며 윤 씨가 제압하고 이 군이 칼로 찌른다는 범행 계획도 모의했다.
4월 30일 오후 6시, 윤 씨는 흉기로 사용하려고 단검 1자루와 발리송 1자루를 준비하여 약속 장소로 갔다. 나중에 경찰에서 이 군은 이 때 박 씨에게 "오늘 김 씨를 죽이겠다."고 말했다고 진술했으나 박 씨는 "(이 군이 김 씨를) 손봐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상적인 다툼 수준일 것이라고 여겼다."고 하면서 죽이겠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고 부인했다.
오후 7시 무렵, 김 씨는 서울에서 함께 다니던 자신의 친구와 헤어져서 혼자 신촌으로 갔다. 하지만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다른 6명의 친구들과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계속했다.
오후 7시 23분, 김 씨는 범행 모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이 군과 홍 모 양을 만나서 사과하고 박 씨를 사령카페에서 꺼낼 생각으로 선물(그래픽 카드)을 들고 신촌(이 군의 집 근처)으로 가고 있다고 지인에게 메신저로 알렸다.
7시 30분에는 이 군과 홍 양, 박 씨가 이 군의 집에 있다가 피해자 김 씨를 만나러 집을 나섰으며 범행 장소로 가던 중에 윤 씨를 만났다. 이 군은 이때 윤 씨로부터 흉기를 건네받았고 박 씨는 자신의 집으로 간다며 전철역으로 가서 일행과 헤어졌다.
신촌먹자골목에서 만난 이들은 일단 이 군의 집으로 이동했으며 함께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이들은 김 씨를 인근 창천동 바람산어린이공원으로 유인했다.
바람산어린이공원은 신촌역에서 가까운 곳이지만 지리가 으슥하여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김 씨의 마지막 메시지 |
이 때 공원 계단에 설치된 CCTV에 가방을 메고 이 군과 윤 씨의 뒤를 따라 오르는 김 씨의 모습이 촬영되었다. 홍 양은 범행 현장 부근에서 망을 보며 대기했다.
일행이 공원에 도착하자 이 군은 김 씨에게 험한 말을 하며 도발하면서 말싸움을 걸었고 김 씨를 살해할 기회를 노렸다. 김 씨가 노트북을 켜려는 순간 윤 씨는 등 뒤에서 전선으로 김 씨의 목을 졸랐으며, 이 군은 미리 윤 씨에게 받아두었던 칼로 김 씨를 10여 차례 찔렀다. 김 씨가 "미안하다. 살려달라."고 소리치며 반항하자 윤 씨는 김 씨를 넘어뜨리고 칼과 현장에서 발견한 둔기[2]를 번갈아 사용하며 김 씨를 수차례 공격해서 살해했다.
결국 김 씨는 머리, 목, 배를 중심으로 흉기와 둔기로 40회 이상 피습당해 일부 장기가 밖으로 튀어나온 처참한 상태로 죽음을 맞았다. 범인들은 김 씨가 사망한 뒤에도 뒷목에 흉기를 2차례 찔렀다.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 그들은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세상엔 하루에 3만 건의 살인이 일어나며, 3만 1건이라고 달라지는 건 없다." 등의 반인륜 반사회적인 발언을 뱉고 있었다.#
4. 범행 이후 정황
범행 직후 이들은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피해자 김모 씨의 시신을 길 바로 아래 언덕으로 밀어서 시신을 은폐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수풀과 나무가 우거져 있긴 해도 조금 살펴보면 눈에 쉽게 뛸 장소에 불과했고 핏자국이 흥건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주민이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으며 경찰도 손쉽게 시체를 찾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대충 시체를 숨긴 이유가 충격적인데, 그들은 환경미화원이 청소하면서 시체를 치워줄 것이라는 사회 상식에서 벗어난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했다고 한다.#또한 범인들은 김모 씨를 살해한 다음 김모 씨의 노트북과 김모 씨가 자신들에게 줄 선물로 가져왔던 그래픽 카드 등을 절취해서 잠시 공원을 떠났다가 곧 돌아와서 김모 씨의 휴대전화를 수거했으며 노트북, 헤드셋 등이 들어있는 가방도 가져갔다. 이들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려는 생각으로 김모 씨의 휴대전화를 부순 다음 물 속에 담가뒀다. 범행 뒤 이들은 지갑도 함께 꺼내 오지 않은 것을 불안해하며 서로 문자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피 묻은 옷도 가져와서 집에 숨겨 놓고 적당한 날을 골라 불태우려고 계획했지만 사건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히면서 오히려 증거품으로 압수되었다.#
애시당초 공원에 들어가는 시점에서 CCTV 관제센터에서 24시간 모니터링하는 방범용 CCTV에 영상이 다 찍혔기 때문에 모든 증거인멸 시도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3] 게다가 목격자도 속속 발견될 정도로 계획부터 상당히 어설펐고 당연히 어렵지 않게 검거될 수 있었다.
5. 수사 및 검거
2012년 4월 30일 오후 8시 47분, 김 모 씨의 시신이 인근 주민의 신고로 발견되었다. 범인들이 시신을 제대로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건이 발생한 지 30분도 안 되어서 경찰에 신고가 들어왔다.8시 49분에는 카카오톡 대화방에서 피해자 김 모 씨와 연락이 되지 않자 김 모 씨를 걱정하던 친구들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하려 했으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김 모 씨를 걱정한 친구들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고 김 모 씨의 행방을 찾았는데, 당연히 김 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범인 이 모 군에게도김 씨의 행방을 물었다. 이 모 군은 "김 모 씨와 잘 헤어졌는데 왜 계속 물어보냐?"고 대답했고 "김 모 씨가 실종돼 경찰에 신고했고, 마지막으로 본 게 당신이니 뭐하고 헤어졌는지 말해 달라."고 묻자 "집에 안 갔나? 좀 싸우긴 했지만 잘 갔고 신촌이랑 이대 쪽 사이에서 헤어졌다."고 대답하면서 태연하게 부정했다.# 김 모 씨의 친구들은 마침내 경찰에 전화하여 김 모 씨가 살해당했음을 알았다.
사건 당시 김 모 씨가 소지했던 핸드폰, 노트북, 그래픽 카드, 현금 등이 없어져 강도살인이 아닌가 하는 정황도 있었으나 CCTV에 김 모 씨가 이 모 군와 함께 공원으로 올라가는 장면[4]이 찍혀 면식범 사건으로 정황을 파악했다.
당시 범인들은 이 사건에 관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며 수사방향이 자신들이 아는 사실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거나 완전범죄를 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화를 하는 등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나 반성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5월 1일, 범행 직후 "내일 데이튼데 헤롱대면 때찌할거야.", "내일 오빠 옆에서 자게 해줘, 바보, 사랑해, 잘 자구, 내 꿈꿔" 등의 메시지를 나누며 데이트를 약속했던 이 모 군와 홍 모 양은 신촌의 한 찜질방에서 체포되었다. 하지만 홍 모 양은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일시적으로 풀려났다. 이들은 김 모씨를 살해 한 후 바로 다음 날부터 애정행각을 벌이고 데이트를 했다.
박 모 씨의 채팅 기록 |
5월 2일 오전 7시 30분, 윤 모 씨가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자신의 집에서 체포되었다.
5월 29일 정황 부족과 소년법에 의해 영장이 기각되었던 피의자 홍 모 양(15)과 불구속 수사 중이던 박 모 씨(21·여)가 살인방조 혐의가 인정되어 구속됐다.기사
피해자의 아버지 김 모 씨는 가해자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형을 가볍게 하려고 한다면서 A4 용지 7장 분량으로 탄원서를 제출하고 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나서는 등 엄한 처벌을 요구했다. 김 모 씨는 가해자들이 보낸 편지를 개봉하지도 않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6. 재판
- 2012년 10월 8일 검찰은 가해자 윤 모 씨에게 무기징역, 박 모 씨에게 징역 12년, 이 모 군, 홍 모 양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은 우발적인 사건이 아닌 사전에 계획된 범행이며, 사건 이후에도 피고인들이 전혀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에 대한 사죄나 보상도 없었다."고 하여 개심의 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욕설문자를 보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피해자를 숨지게 했으며 숨이 끊어지고 난 뒤에도 뒷목에 흉기를 2차례 내리꽂고 시신을 유기하는 등의 행위는 정상적인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모든 것이 장난인 줄 알았다는 피고인들의 진술은 고인에 대한 모독이며 이들의 만행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피해자의 지인 등 많은 사람들이 탄원서를 보내서 범인들의 엄벌을 요청했다고 한다.#
- 피고측 변호인은 "검찰이 사전 모의했다고 주장하는 살인 계획은 스마트폰 대화방에 문자 몇 건 올린 것이 전부.", "온라인 채팅 특성상 진지한 대화는 별로 없고 대부분 간접표현."이라면서 범행의 계획성을 부인하고 우발적인 살해임을 호소했다.
- 2012년 10월 24일 열린 1심에서 서울서부지법 형사11부 김종호 부장판사는 이 모 군과 윤 모 씨에게 각각 징역 20년, 홍 모 양에게는 단기 7년에 장기 12년, 박 모 씨에게는 징역 7년을 선고했다.1심 판결문(서울서부지방법원 2012.10.24.선고 2012고합192)
- 2013년 1월 25일 항소심 법원은 검사와 피고인들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의 형을 유지하였다.2심 판결문(서울고등법원 2013.1.25.선고 2012노3754 판결)
- 2013년 5월 9일 대법원 3부는 상고심에서 원심을 확정했다.#대법원 판결문(대법원 2013.5.9.선고 2013도1675])
7. 민사소송
2014년 9월 3일, 서울고법 민사33부(부장판사 이경춘)는 피해자의 부모와 조부모, 외조부모 등이 가해자들과 그 부모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가해자 측 항소를 기각하여 1심 재판을 확정지었다. 1심 판결은 가족에 대한 정신위자료 2억 원, 장례비 450만 원, 그리고 피해자가 살아있었을 경우의 일실수입 2억 3900만 원 등 총합 4억 5440만 원을 배상하라는 것이다. 일단 윤 씨와 박 씨는 사건 당시 이미 성인이라 가족들이 대신 낼 의무가 없으므로[5] 출소 후 스스로 내야 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이모 군과 홍모 양은 가족이 부담해야 한다.홍모 양의 가족들이 반발하였으나 재판부는 "감독, 교육의무를 게을리하여 홍모 양이 살인에 공모했으므로 가족이 배상해야 한다."고 인정하였다. 민법은 감독자책임이라고 하여 "미성년자에 대한 감독을 게을리한 부모는 무자력인 자녀와 연대하여 피해자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했다. 신촌 살인범들 거액배상
8. 사건 인물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는 대부분 현실에서 온전한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경찰청 프로파일러의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또 피해자인 김모 씨와 사건 가담자로 지목된 박모 씨는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를 통해 만났다고 알려졌다.8.1. 피해자 김모 씨
"처음에 블로그를 만들었을 때는 그냥 합성 그림 저장용으로만 쓰일 줄 알았지만, 다른 네티즌들을 만난 후로 점점 커져갔다."
"네티즌들과 같이 합작공동 그림도 만들고 선물을 주고 받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추억들을 만들었다. 이렇게 인맥이 넓은데 학과 친구들은 나보고 혼자라고 한다. 그런데 혼자는 아니다. 친구라는 건 꼭 학교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고, 인터넷에서도 친구를 만들 수 있다."
"내일 ○○대로 간다. 원하는 대학에 원하는 과여서 좋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왜 난 그런 부탁 같은 것을 못하지? 어쨌든 지금 와서 후회해도 늦었으니까 나중에라도 같이 사진 한 번만 찍어달라고 해야지."
-본인의 블로그
"네티즌들과 같이 합작공동 그림도 만들고 선물을 주고 받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추억들을 만들었다. 이렇게 인맥이 넓은데 학과 친구들은 나보고 혼자라고 한다. 그런데 혼자는 아니다. 친구라는 건 꼭 학교 안에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니고, 인터넷에서도 친구를 만들 수 있다."
"내일 ○○대로 간다. 원하는 대학에 원하는 과여서 좋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같이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 왜 난 그런 부탁 같은 것을 못하지? 어쨌든 지금 와서 후회해도 늦었으니까 나중에라도 같이 사진 한 번만 찍어달라고 해야지."
-본인의 블로그
통칭 '오카보노'. 합성 갤러리 이용자, 퍼니플래닛의 고정닉, 마비노기 갤러리의 몇몇 고정닉들의 지인으로도 알려져 있었다.
피해자의 고등학교 동창 정모 씨는 트위터에서 "얘가 중·고등학교 때도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열심히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굳세게 살고 대학교를 가서 여러 가지를 만들고 자랑했다."며 "하늘에서만큼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2012년 12월 18일에 네이버 블로그에 자동 생일 축하 메시지가 올라와서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 글에는 수많은 네티즌들이 추모 댓글을 달았다. #
살인 사건으로 사망했다고 최초로 알려진 합성 갤러리 유저이기도 하다. 이후에는 'Dulgi'[6],
8.2. 가해자들
"피해자를 살해한 후 피고인들은 이 사건에 관한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며 수사방향이 자신들이 아는 사실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을 좋아하거나, 완전범죄를 하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대화를 하는 등 피해자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이나 반성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점, 진지한 반성을 하기보다는 변명으로 피해자 유족들의 정신적 피해를 더욱 확대시킨 점 등에 비춰 보면 죄질이 매우 불량해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
- 판결문
- 판결문
8.2.1. 박모 씨
피고인 P는 L의 과외선생님이자 대화방의 리더 역할을 하던 대학생으로서, 정신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서 피해자를 죽이고 싶다는 말을 가장 먼저 꺼내고 그런 말을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다른 피고인들의 살해결의를 강화시킨 점,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진지하게 반성하기 보다는 모든 것이 장난이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죄책이 매우 무겁다. - 판결문
통칭 '노래하는레카', 줄여서 레카.[8] 당시 경기도 소재 A 대학에 경영학과 12학번으로 재학 중이었던 만 20세(재수생) 대학생으로 김모 씨가 사건으로부터 3년 전 마비노기에서 만난 뒤 여자친구로 지내 왔지만 사건 배경 문단에 적힌 사연으로 인해 김모 씨와 사이가 틀어졌다. 다소 공상적인 인물이라 주변 인물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 마녀 드립을 치고 다녔으며 날개를 장비하고 치유마법을 사용한다는 설정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다른 닉네임들을 보면 일베 유저임을 과시하는 성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사건 당일 다른 3명과 함께 김모 씨를 만났지만 바로 자리를 떠났기 때문에 살인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김모 씨의 평소 사이가 어떤지 알고 있었고 그들이 흉기를 준비해 왔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들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말리기는커녕 이 군 등에게 "김모 씨를 혼내주고 싶다."라면서 그들을 부추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살인방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직접적인 청부만 없었을 뿐 사실상 살인교사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경찰도 5월 3일에 그녀를 다시 불러 재조사했으며 혐의가 적용될 부분이 발견되면 살인교사죄를 적용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대화방에서 "진심으로 김모 씨를 죽이면 좋겠다."고 발언하는 등 다른 사람이 김모 씨를 살해함에 있어서 범행의 결의를 강화하게 하여 정신적으로 도움을 주어 살인을 방조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처음에는 징역 12년을 구형받았는데 검찰에서 복원된 스마트폰 그룹채팅 내역에 따르면 살해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으며 피해자의 지갑을 갈취해 금전을 나누자고 제안한 사실이 밝혀져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다.
최후 진술에선 감형을 위한 것인지 "홧김에 한 말 때문에 이런 사건이 일어날 줄 정말 몰랐다.", "내 말들이 얽혀서 여기까지 오게 될 줄 정말 몰랐다.", "그 아이(피해자 김모 씨)와 결혼해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들은 바도 제대로 없다.", "억울하고 괴로운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발언을 하며 적반하장으로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모 씨 측의 변호인은 "이모 군과 윤모 군이 김모 씨를 살해한 것은 범행 현장에서 김모 씨가 반항과 공격을 하자 격분해 저지른 것으로, 이전에 박씨가 '김모 씨를 혼내주자'고 말했던 취지의 카카오톡 메시지만으로 살인의지가 강화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으며 "박모 씨가 살해현장에 있던 이모 군 등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살해현장에는 함께 동행하지 않았다. 살인을 방조하거나 묵인하려는 고의성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또 "박모 씨는 김모 씨가 숨진 다음날이 돼서야 친구 A씨와 통화를 하며 김모 씨의 살해소식을 들었다."고 하면서 A씨를 살인방조 혐의를 입증해 줄 증인으로 불렀다. 하지만 이제와서 자신이 생각한 의도야 어찌되었건 간에 "죽여버리겠다."고 지속적으로 발언한 것은 사실이라 이 변호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재판에 넘겨진 뒤 살인방조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살인방조 혐의로 기소된 것치고는 상당히 처벌이 무거운 편인데 판결문에 따르면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긴 커녕 모든 것이 장난이었다며 변명을 번복했던 점으로 인해 중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2019년 5월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출소했는데 따로 근황이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혼자 조용히 사는 것으로 보인다.
복역 도중 여러 차례 가족들에게 편지를 보냈음에도 확인은 커녕 우편함에 꽂혀 있는 장면이 방송을 탔다. 흉악범의 가족은 대부분 흉악범과의 의절을 선택하는데 박 씨 역시 같은 결말을 맞이한 셈.#
8.2.2. 이모 군
출소까지 D[dday(2032-01-01)] |
제목: 죽음 문답
누구나 겪어야 하는 마지막이자 최초의 관문
나는 3~4번 자살시도를 한 경험이 있다.
-이모 군의 블로그
통칭 '키네마'. 당시 만 16세. 고등학생.누구나 겪어야 하는 마지막이자 최초의 관문
나는 3~4번 자살시도를 한 경험이 있다.
-이모 군의 블로그
박모 씨로부터 과외를 받던 학생이다.# 이전부터 김모 씨와 몇 차례 직접 만났다고 한다. 김모 씨를 살해하려는 뜻을 윤모 씨에게 밝혀 윤모 씨를 범행에 끌어들였다. 블로그에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라는 문항에는 "몇몇"(이 있다)이라고 적으며 살의를 드러내기도 했다.#
범행 다음날 태연히 시험을 보러 학교에 갔으며 피해자의 지인이 카카오톡을 통해 행방을 물었는데도 침착하게 모르쇠로 일관했다.#
징역 15년을 구형받았다. 무기징역을 구형받아 마땅하지만 소년법으로 보호를 받았다.
최후진술에서 피고인석을 이탈하여 유가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했지만 쇼 같은 행동으로 보였는지 유가족들은 이모 군을 향해 "내 아들 살려내라!"고 절규했다.
그런데 살인 등으로 오히려 검찰의 구형보다 많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은 계획 살인이자 집단으로 저질러진 살인이고 주동자가 이모 군이기 때문에 죄질에 매우 나빠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함이 마땅하나 범행 당시에 소년법이 적용되어 선고 형량에 제한이 있다는 이유로 징역 20년을 선고하였으며 안양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앞서 말했듯 소년법이 그나마 형량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구형한 15년에서 5년이 더 추가되었다. 미성년자는 소년법에 의거해 사형과 무기형의 경우 징역 15년, 특처법 가중범의 경우 최대 20년이 최대치라 재판부로서는 특처법 가중범으로 정해서 최대 형량을 때린 것이다.
2032년 출소 예정이다.
8.2.3. 윤모 씨
출소까지 D[dday(2032-01-01)] |
홍모 양의 소개로 코스프레 카페에서 만난 이모 군과 오프라인으로도 몇 차례 만난 적이 있었으며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피해자인 김모 씨와는 딱히 면식도 없고 갈등 관계에도 크게 영향이 없어 잘 알지도 못하던 사이였는데 이모 군으로부터 김모 씨를 살해하자는 제안을 받자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상대로 흉기까지 준비해 오면서 적극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그야말로 비상식적인 범죄자다. 범행 당시 칼 2자루를 준비해 왔으며, 1자루를 이모 군에게 주었다. 전선으로 김모 씨의 목을 졸라 제압하고 이모 군이 칼로 찔러 죽일 수 있도록 도왔다.
현실에서는 무능한 인간이었으나 인터넷에서는 해결사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으며 "이쪽 일을 많이 해 봤으니 내가 잘 할 수 있다." 라고 지껄이고 다녔다고 한다. 카리스마 킬러 컨셉으로 망상을 현실에서도 적용하려 애쓰던 인물로, 체포된 후 며칠 동안 스릴러 영화에서 나올 법한 카리스마 있는 킬러의 분위기를 내려고 노력하는 어이없는 행동을 했다. 일례로 경찰에 검거된 뒤 담당 경찰관이 짜장면을 시켜 먹자고 하자 "면을 잘 안 먹으니 볶음밥을 시켜 달라."며 당당하게 요구했을 정도로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이 대담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살인범이 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사형까지 구형할 수도 있었던 상황임에도 전혀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을 보여서 형사가 몇 번씩이나 "너 지금 살인혐의로 입건된 거야!!"라고 주의를 환기했다고 한다. 며칠이 지난 뒤부터는 깊이 잠들었던 현실감각이 깨어나기라도 했는지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조사 도중에도 자신이 받을 형량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다른 연관자에게 책임을 미루는 등 점점 비굴하고 처량한 태도로 변했다고 한다.
결국 검찰에서는 무기징역을 구형받았다. 그냥 살인도 아니라 다수가 계획하여 집단으로 벌인 계획살인이었으며 다른 범인들이 소년범으로 취급된 것과 달리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벗어난 성인이었기 때문이다. 최후진술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죄했지만 동시에 "박모 씨 때문에 이모 군과 홍모 양, 그리고 나까지 범행에 가담하게 됐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최종적으로 살인 등으로 이모 군과 같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8.2.4. 홍모 양
통칭 '꼬마신부'(또는 '꼬마'). 당시 15세. 이모 군의 여자친구로 알려졌다.범행 현장까지 동행했으나 살인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범행 다음날 학교에서 수업을 받은 다음 이모 군과 찜질방에서 데이트를 하다가 검거되어 피의자 혐의를 받았다. 일시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직접적 연관점이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으로 홍모 양의 구속영장은 기각되었고, 5월 4일 경찰서 유치장에서 석방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현장에서 망을 보고 행인들이 현장 가까이 오는 것을 방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5월 29일 홍모 양 또한 공범으로 구속되었다.
홍모 양의 과거 코스프레 경력 때문에 코스프레에 대한 불신감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받았다. 공개된 사진에 같이 찍힌 옛 코스어 동료까지 억울하게 피해를 봤다. 박모 씨와 마찬가지로 사령카페에 깊이 심취해 있어 "인간들이 사령을 안 좋게 생각하여 사령들이 분노하고 있다" 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홍모 양 측의 변호인은 "사건 당일 범인들이 김모 씨를 혼내는 정도로만 알았고, 살인을 공모한 것은 아니다.", "홍모 양이 살해현장에서 망을 보며 행인들을 다른 곳으로 유도한 것도, 행인들이 사건현장을 발견하고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 "홍모 양은 이모 군과 윤모 군이 숨진 김모 씨를 살해현장 옆 풀숲으로 옮기는 것을 20여 m 떨어진 지점에서 보고 있었고, 이것이 사체를 유기하는 상황인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혐의를 일부 부인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피해자가 살해된 장소로부터 고작 20m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그 끔찍한 소동을 보면서 단순히 '혼내는 정도'로만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변호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홍모 양은 15년형을 구형받았다. 살해 행위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공모에 가담하고 범행 현장을 지켜보며 망을 보는 등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최후진술에서 "피해자와 잘 지낸 기억도 있는데 말리지 못해 피해자와 유가족께 죄송하다.", "우리 부모님께도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 잘 알고 있고 너무 죄송하다."고 발언했으며 사건 당시 기준으로 청소년이었고 직접 살인에 가담하지는 않은 점이 고려되어 앞의 2명(이모 군, 윤모 씨)보다 가벼운 단기 7년, 장기 12년이 선고되었다.
사건 이후 단기형만 마치고 출소했는지, 장기형 복역 중인지 알 수 없다.
단기형만 마쳤다면 2019년 5월 25일에 만기출소했을 것이며 장기형을 복역하였다면 2024년 5월 25일 만기출소했을 것이다.
9. 사건 이후
9.1. 언론
사건 직후 언론 매체들은 치정 관계에 의한 살인이라며 사건 현장에 있던 홍모 양(15)을 김모 씨가 건드려서 남자친구인 이모 군(16)이 질투심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잘못된 보도를 하였다. 해당 기사또한 이들이 온라인상의 음악 카페에서 활동하다가 만났으며 같이 합주하던 록밴드라고 소개하였다. 한마디로 록밴드 내에서 여자를 두고 다투다가 발생한 사건으로 보도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르다.그들은 마비노기의 악기 연주 기능을 이용하는 것을 밴드라고 표현한 것[9]인데 기자들은 이러한 것을 간과한 채 '인터넷에서 만나서 (실제)록밴드를 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10] 이후에는 음악을 하던 사람들이 심령술에 빠져서 저질렀느니, 잔인한 범행 수법이 심령 의식의 일종[11]이라느니 하면서 별의 별 소설을 써댔다. 어떤 이들은 이 개드립을 보고 한국의 유로니무스 살인사건이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평소 비과학적인 것을 싫어하던 김모 씨는 박모 씨를 사령카페에서 탈퇴시키려 했고, 이 때문에 사령카페 회원들과 크나큰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고 언급한 기사도 있지만 실제로 이 항목 밑에 링크되어 있는 피해자가 예전에 쓴 사령카페 리뷰를 보면 오히려 그런 비과학적인 것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가입했으나 카페의 분위기가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바보짓 같다고 느끼기도 했고) 박모 씨에게 탈퇴를 권한 걸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개신교 언론들은 오컬트 카페의 회원들이 일으킨 살인이라는 걸 보고 경찰의 프로파일 결과가 나온 후에도 사건의 책임을 오컬트 카페로 돌렸고 더 나아가 반기련 등을 언급하며 반그리스도교 문화가 지배하는 인터넷을 비난했다. 물론 사령카페 자체가 단순히 오컬트 카페가 아니라 악마숭배적 모습을 보인 탓에 문제가 컸지만 문제는 개신교 언론들이 사령카페 자체뿐만 아니라 인터넷 전반을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 게다가 그것이 알고싶다에 따르면 피해자를 포함한 가해자들의 교류 통로가 되었던 문제의 '단톡방'은 사령카페에서도 한참 전에 떨어져 나온 것 같다. 물론 엄밀히 말해 허위는 아니나 과장을 한 것. 한 마디로 자신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이 사건을 이용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령, 자살, 안티기독…현실 지배한 '인터넷' 이러한 활동을 악령 숭배로 보고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신촌 살인사건, '악령' 숭배 때문에 잔혹 범죄까지
다른 면에서는 기존처럼 문화 매체에 대한 마녀사냥이 아니라 사회병리학적인 분석을 통해 가해자들의 정신상태와 성장환경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좀 더 분석한 기사들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일보 측에서 프로파일러의 가해자 분석 기사를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사령카페는 그들이 서로 만나 교류하게 된 공간에 지나지 않고 이런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는 가정폭력, 부모의 정서적 방임, 집단괴롭힘 같은 잘못된 사회환경에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도 현대에 빈발하는 집단괴롭힘 자살 사건들의 연장선상에서 해석해야 하는 문제로 보인다.
포탈 등지에서 중2병 환자 수용소 역할을 하던 여러 사령카페에게 철퇴가 떨어졌다. 웬만한 대형 카페는 전부 강제 폐쇄당했고, 소규모로 놀던 카페들도 거의 다 폐쇄 권고를 받았을 정도. 또한 이 사건으로 한국에서는 개그 소재나 다름없었던 중2병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심각해졌다. 바르그 비케르네스라는 범죄자가 저지른 유로니무스 살인사건 때문에 노르웨이에서 10대의 일탈과 블랙 메탈에 대한 인식이 심각해진 것과 비슷하다.
9.2. 미디어
- 2012년 5월 19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사건과 사령카페를 자세히 분석한 내용을 방송했다. 여기서는 경찰청 프로파일러의 해석에 의거하여 이 사건을 학교와 사회의 안전망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의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방송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학교나 일상 생활에서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질이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가해자들이 지속적인 학대 경험에 노출되었다는 점, 그리고 현실에서 친밀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들에게 사령카페가 사회적 유대를 이룰 수 있는 탈출구였다고 해석하였다. 현실에서 바람직한 인간 관계를 이루지 못했던 이들에게 사령카페에서 받는 유대감과 동료 사이의 인정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전과 한 번 없었던 가해자들이 잔혹하게 범죄를 저지른 동기도 사령카페에서의 인간 관계가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한 방어 기제였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방송에서는 사령카페는 사회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만나게 되는 매개체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이렇게 방치되는 아이들이 있는 한 사령카페가 아닌 그 어느 집단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이렇게 소외된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소외된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는데 기존의 추측성/마녀사냥성 보도들과 차별되는 논리전개를 보여주었다.
참고로 이 방송팀 작가가 리그베다 위키를 참조했는지 리그베다 위키의 서술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게다가 자료화면으로 스레딕 오컬판 스레로 추정되는 화면이 나왔다.
- 2013년 류승완이 이 사건을 가지고 '유령'이란 이름으로 단편 영화를 제작했다. 옴니버스 영화의 일부로 다른 단편을 모아 '신촌좀비만화'라는 제목으로 제작되었다. 상영 이전에 2014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2014년 5월 15일 개봉했다. 단편 영화지만 3D 영화로 상영한 것이 특징. 영화 성격상 상영관이 많지는 않지만 '유령'의 배경이 된 신촌 주변의 영화관(CGV 신촌아트레온, 메가박스 신촌)에서 상영했다.
9.3. 관련 자료
- 서대문 경찰서 형사과장 일문일답#
- 피해자 지인의 증언을 퍼온 블로그#
- 퍼니플래닛에서의 활동 링크 모음#
- 피해자의 사령카페 리뷰글#
- 김모 씨의 블로그 정황 기사#
- 피해자 측 증인#
- 최후진술 기사#
- 판결문 인용 보도#
- 박모씨의 블로그 #
- 피해자의 블로그 #
- 2021년 합성 갤러리에 피해자의 동생이라는 사람의 글이 올라왔다.#
1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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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이 글에 살인 사건 가해자들이 '확인 완료'라는 댓글을 달았다고 기사 등을 통해 알려졌으나 사실 확인 완료 댓글을 단 것은 피해자 본인과 제3자다.#[2] 쇠파이프보다 약간 크고 길이가 40cm 쯤 되는 것으로 공원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3] 참고로 골목이나 길거리보다 공원같은 곳에 사각지대가 없을 정도로 CCTV가 훨씬 많이 설치되어 있다. 공원에 몰래 쓰레기를 내다버리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용 CCTV도 별도로 있기 마련이다.[4] 3명이 먼저 올라가고 김 모 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뒤따라 올라가고 있었다.[5] 다만 이 경우 대부분은 가족이 대신 부담한다고 한다. 자식이 감옥에서 나온 뒤의 새 출발을 생각해서다. 하지만 이들은 가족들조차도 의절해 결국 본인 스스로가 부담하게 되었다.[6] 다양한 소재로 씨바-ㄹ마타, SGI Mario Bros 2 등을 만든 사람이다.[7] 사망했다는 것이 확실시되지는 않았으며 그저 브베 합성물을 올리는 합성러가 아무 소식도 없이 잠적한 것을 인육치킨이 되었다는 것으로 표현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교통사고라는 사인이 밝혀진 Dulgi와 달리 이쪽은 정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8] 마비노기 닉네임으로 사용되었으며 인터넷에 검색하면 해당 인물이라고 알려진 사진을 볼 수 있다.[9] 실제 피해자의 블로그에 가 보면 마비노기에 대한 내용이 많다. 박모 씨도 마비노기에서 만났다고 한다.[10] 밴드 합주는커녕 윤모 씨와는 일면식도 없던 사이로 밝혀졌다.[11] 반복적으로 찌름으로서 영혼까지 파괴하는 행위라는 이야기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