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2 23:04:18

김용원 연쇄살인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2005년 6월 11일 MBC 뉴스데스크
1,2차 살인사건 현장검증
2005년 6월 14일 MBC 뉴스데스크
3차 살인사건 현장검증
파일:sm_050611_004.jpg
검거된 피의자 김용원

1. 개요2. 출소후 범행전3. 1차 살인4. 2차 살인5. 수사6. 3차 살인7. 검거8. 또다른 살인사건9. 김용원의 생애10. 재판11. 기타12. 둘러보기

1. 개요

“그냥 나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해라. 나를 잊고 다른 사람 만나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만을 전했다고 한다. 차마 약혼녀에게는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말을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중략)

김씨의 가족들은 애초 김씨와의 면회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연을 끊고 지내온 가족들이 김씨를 이미 ‘버린 자식’으로 여겼기 때문(중략)
김용원 검거 뒤 인터뷰관련 기사

1994년 4월, 그리고 2005년 3월부터 6월까지 불과 3개월 간 충청북도 괴산군, 진천군, 청주시 일대에서 남성 1명, 여성 3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김용원(당시 39세)이 저지른 사건이다. 청주판 유영철 사건이라고 불릴 만큼 잔혹한 연쇄살인으로 당시 청주 일대에 큰 충격을 주었다.

범인이 저지른 사건 중에서 94년 것은 증거불충분으로 기소가 되지 못하였고, 2005년에 저지른 살인 3건은 기소되어 현재 대한민국 61번째 사형대기수로서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1]

연쇄살인범 김용원의 사건개요
1994년 4월, 충북 괴산군 괴산읍 서부리의 한 당구장에서 자신에게 반말을 한다는 이유로 시비가 붙은 지씨(당시 27세)를 때려 숨지게 한 뒤 농로에 시신을 유기하여 시신이 발견되자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온 것을 느껴 곧바로 성폭행을 저질러 3년 6개월간 교도소에 복역하는 바람에 이 사건을 안타깝게 기소하지 못하였다.

2005년 3월 중순, 충북 청주시 사창동 김용원의 집에서 동거하고 있던 내연녀 성씨(당시 43세)와 같이 술을 마시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성씨가 자신의 뺨을 때리자 이에 격분,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인근 야산에 시신유기하였다.

동년 6월 3일, 충북 청주시 봉명동에서 김용원의 두번째 내연녀 박씨(당시 48세)가 운영하는 호프집에서 중국에 있는 조선족 약혼녀에게 국제전화로 통화하다 박씨가 너무 오래 통화한다고 핀잔하자 이에 격분한 김용원은 만취상태에서 박씨의 호프집에 있던 휴대용 가스버너로 수차례 머리를 내리쳐 살해하고 수표 10만원을 훔치고 강도에 의한 살인으로 위장하였다.

동년 동월 5일, 충북 진천군 김용원의 친한 후배 최씨(당시 31세)의 시골 집에서 오후 6시30분쯤 김용원은 평소에 안면식이 있는 최씨의 딸 최양(당시13세·초등학교 6년)을 꾀어내 자신의 승용차로 데리고 나가 성폭행하자 최양이 "아빠한테 이르겠다." 라고 하는 말에 격분하여, 최양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에 암매장했다.

김용원은 불우한 가정에서 2남 2녀로 태어나 어릴적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자라왔는데, 특히 그중 9살 많은 형에게 폭력과 학대를 당해왔으며 그의 어린시절의 꿈이 20살 성인이 되면 독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정에서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한 그가 독립한다고 해서 순탄한 삶을 살 리가 없었다.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그는 어린 나이부터 소년원, 교도소를 수시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여 범죄자의 길로 빠져들어 결국 정두영, 유영철, 정남규와 같은 불우한 가정에 자라난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지탄받을 만한 흉악범이 되어버린 흔한 케이스가 되고 말았다.[2]

2. 출소후 범행전

2004년 3월 김용원은 특수절도 혐의로 복역후 출소하였고 2005년부터 중국을 오가며 밀수업을 하다가 중국에서 한 조선족 여성을 사귀게 되었고 이 여성과는 이미 중국에서 예식까지 올렸다. 그해 7월에는 한국에서 정식으로 결혼할 예정이었다.[3]

그러나 결혼을 앞둔 상태에서도 그의 옆에는 항상 내연녀가 있었다.

3. 1차 살인

김용원은 2005년 3월 중순 충북 청주시 사창동에 있는 자신의 원룸에서 동거하고 있던 내연녀 성씨(43)와 같이 술을 마시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느끼고 성씨가 자신의 뺨까지 때리자 이에 격분,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4]

살인 이후 김용원은 성씨의 시체를 두고 4일간 술을 마시며 지내다가 이후 고향 후배 A씨에게 자기가 사람을 죽였다며 시체를 유기해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A씨는 김용원의 부탁을 거절했으며 자수할 것을 권하였다.

결국 김용원은 후배 A씨에게 자신의 범행사실을 비밀로 지켜줄 것을 당부하며 사체를 이불로 싸고 이동하여 충북 청원군[5] 내수읍 뒷산에 암매장하였다.

4. 2차 살인

김용원은 성씨를 살해한 뒤에도 또다른 내연녀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2005년 6월 3일 오전 2시, 조선족 약혼녀와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7월을 한달 앞두고 충북 청주시 봉명동의 한 호프집에서 내연녀 박씨(48)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호프집 또한 내연녀 박씨가 운영하는 호프집이었다.

김용원은 내연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박씨 앞에서 중국에 있는 조선족 약혼녀와 국제통화를 하고 있었다.[6] 보다못한 박씨가 왜이렇게 통화를 오래 하냐고 크게 나무라기 시작하자 김용원은 이 말에 격분하여 만취상태에서 호프 주방에 있는 휴대용 가스버너로 수십 차례 박씨의 머리를 내리쳐 내연녀 박씨를 살해했다.

범행후 김용원은 강도살인으로 위장하기 위해 카운터에 있는 10만 원권 수표 4장을 훔치고 현장에서 빠져나왔다.[7]

5. 수사

2005년 6월 3일 오전 10시경[8] 청주시 흥덕구에 위치한 한 호프집에서 여주인 박씨가 처참한 사체로 발견됐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즉시 초동수사에 들어갔다. 다음은 이 사건을 담당한 차상학 팀장의 설명
찍한 상태로 널브러져 있는 사체가 사건 당시의 참혹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박 여인은 둔탁한 둔기로 가격당한 듯 머리 부분이 심하게 함몰돼 있었는데 어찌나 피를 많이 흘렸던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사체의 상태로 보아 사건은 전날 새벽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처음에는 강도사건일 거라 생각했다. 손님을 가장한 강도 말이다. 하지만 단순 강도사건으로 보기에는 사체의 상태가 너무 끔찍했다. 피해자의 현금이 없어졌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했지만 가게 카운터에 현금이 남아 있던 것으로 보아 돈을 노린 강도의 소행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또 현장 분위기도 일반적인 강도사건과는 사뭇 달랐다. 그동안의 수사경험상 면식범의 소행일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9] 수사팀은 휴대폰 통화기록 등을 통해 먼저 박 여인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수사를 진행했다.”

수사팀은 호프집 여주인 박씨의 주변인물을 조사하여 박씨와 사건이 일어난 시점까지 자주 연락하고 지내온 인물을 찾았는데, 수사팀의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은 김용원(당시 39세)밖에 없었다. 주변에 따르면 김용원은 평소 박씨의 주점에 수시로 드나들며 박씨와 무척 가깝게 지내온 사이였다. 사건 당일뿐 아니라 평소에도 박 여인과 자주 통화를 했던 점으로 미루어보면 단순히 주점 주인과 손님의 관계라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았다. 거기다가 당시 경찰은 김용원이 박씨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행방이 묘연해지자 그가 유력한 용의자라고 판단한다.

이렇게 쉽게 사건이 풀리는 듯하였으나 이 사건 계기로 김용원의 연쇄살인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수사팀은 김용원의 주변인물을 수사하던 도중 1차 살인사건에서 김용원으로부터 시신유기를 도와달라고 권유받은 고향후배 A씨로부터 뜻밖에 제보를 받았다. 박씨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중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성씨 살인사건까지 제보를 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A씨는 김용원이 성씨 살인사건뿐만 아니라 1994년 4월에 발생했던 지씨(당시 27세)를 살인했다는 사실을 술자리에서 자주 들었다는 추가제보까지 했다.
경찰은 김용원이 단순히 우발적인 살인범이 아닌 연쇄살인범이라고 판단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6. 3차 살인

김용원은 경찰을 피해 도피행각을 벌이던 와중에도 또 한 차례 살인을 저질렀다. 2005년 6월 5일 오후 6시 30분경, 김용원은 친한 후배 최씨(당시 31세)의 시골 집에 찾아갔다. 그리곤 최씨의 딸 최양(13·초등학교 6년)을 꾀어내 자신의 승용차로 데리고 나가 성폭행했다.[10][11] 이때도 김용원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 성폭행 후 최양이 자신의 아버지한테 성폭행 사실을 알리겠다고 하자 김용원은 최양을 잔혹하게 목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인적이 드문 진천군 백곡저수지 부근에 암매장하였다.[12] 시체를 묻은 곳은 풀이 우거지고 약간 패여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었으다. 김용원은 최양의 시체를 묻은 뒤 나뭇가지들로 덮어두었다.

김용원은 최양을 살해하고 난 뒤 다시 술을 사들고 후배 최씨의 집에 찾아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최씨와 술을 마셨다. 또한 다음 날 "같이 최양을 찾아보자." 하며 최씨와 함께 인근 마을 일대를 뒤지기도 했다. 수사관계자들은 "김용원이 박씨와 최양을 이틀에 걸쳐 살해한 후 태연히 행동한 것을 보면 과연 그가 정상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인지 의심스럽다." 하고 혀를 내둘렀다.

결국 최모씨가 딸 실종일로부터 5일 후인 2005년 6월 10일 실종신고하였으며[13], 경찰은 김용원을 검거한뒤 그가 최모씨와 어울리며 최모씨 집에 자주 가는 정황을 포착하고 경찰조사에서 김용원을 상대로 이 살인사건을 가지고 강하게 추궁하자 끝내 자신의 범행시간대 알리바이를 제대로 대지 못하고 담당형사에게 자백을 하고 말았다.

7. 검거

당시 수사팀 형사들은 김용원의 주변인물을 파악, 김용원이 청주의 한 재개발 구역의 폐가에서 김용원이 은신했음을 알았다. 청주 어느 한 폐가에서 김용원의 여권, 결혼증명서, 결혼예정인 조선족 여성의 사진, 중국도피에 필요한 물품과 도피중에 끓여 먹었던 라면냄비, 소주병 등을 발견하였다.[14]

경찰은 연쇄살인이란 강력범죄를 저지른 김용원이 도피하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것을 판단하고 만약 그가 생활비가 떨어지게 되면 그의 친인척이나 가족을 찾게 될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의 가족과 친인척들을 탐문수사하여 그가 방문할만한 장소마다 형사들이 잠복근무를 하며 그가 갈만한 곳 여러곳 중 한 곳이라도 오길 기다렸다. 마침내 김용원은 2005년 6월 10일, 3차 살인을 저지른 5일 후 도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외사촌형을 만나러가다 충북 청원군 내수읍에서 잠복중이던 경찰에 의해 검거됐다. 당시 그는 자신의 범행 일체를 부인했으나 경찰의 집요한 추궁에 결국 자신의 범행을 털어놨다.
한 수사관은 “김씨가 계속해서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으나 증거와 정황을 들이대니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범행을 자백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자백 전 주변을 정리하려는 듯 중국에 있는 조선족 약혼녀와의 통화와 가족들과의 면회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씨는 약혼녀와의 통화에서 안부를 전하며 “그냥 나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해라. 나를 잊고 다른 사람 만나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만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김용원의 가족들은 애초 김용원과 면회를 거절했다고 한다.성인이 돼 집을 떠난 후 고향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던 김용원이 살인자가 되어 나타난 것이 달갑지도 않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연을 끊고 지내온 가족들이 김용원을 이미 ‘버린 자식’으로 여겼기 때문. 경찰의 설득으로 어렵게 가족들과 면회한 김씨는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김용원의 연쇄살인이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8. 또다른 살인사건

김용원을 체포한 경찰은 지난 94년 괴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지씨(당시 27세) 사건도 김용원(당시 28세)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으나 김용원은 살인혐의를 완강히 부인하였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94년 4월, 괴산군 괴산읍 서부리의 한 당구장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지씨가 반말을 한다는 이유로 목졸라 살해한 후 농수로에 사체를 버린 혐의가 있었다. 해당 사건에서 용의선상에서 배제되기 위해 특수강간을 저질러 일부러 교도소에 수감되었다.[15]

검거후에도 김용원은 이사건에 대해서는 경찰 ,검사, 판사 앞에서 끝까지 부인했다. 하지만 94년 당시 김용원이 유력한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올랐던 점과 그 사건 직후 바로 다른 범행으로 자신의 살인 범행을 은폐하려 했던 의도가 있었다는 점, 평소에 술자리에서 지씨 살인사건을 본인 입으로 주변인들에게 말하고 다녔던 정황으로 보아 김용원의 범행이 유력했으나 기소에는 실패했으니, 공식적으로 이 사건은 유력한 범인이 존재하지만 미제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당시 청주경찰서에서도 이 사건을 김용원이 저지른 범행임을 확신하고 94년 당시 이 사건을 조사했던 괴산경찰서로부터 자료를 넘겨 받으면서 추가 건으로 기소하려고 노력했으나 2005년 당시 기준으로 11년이나 지난 사건으로 확실한 증거를 모으는데 실패하여 결국 이 사건은 기소하지 못했고, 2005년 3월부터 6월까지 벌어진 부녀자 3명 연쇄살인사건에 대해서만 기소하게 되고 재판부에 최종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94년도 4월에 저지른 범행외에도 그를 검거한 차상학 팀장의 말에 의하면 김용원이 또다른 여죄가 있지 않을까하는 의심이 든다고 한다.[16]
2년 전 ‘살인기계'를 간신히 멈추게 하는 데엔 성공했지만 차 팀장은 이 사건을 해결한 후에도 오랫동안 미련이 남아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성 여인 같은 케이스가 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에요. 김상철[17]과 알고 지내던 여성들 중 행적이 묘연한 여성이 또 있을지 압니까. 특정한 직업이나 거주지가 없는 여성들은 가족들과도 연락을 끊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해요. 변을 당해도 생사조차 확인하기 힘들죠. 김씨 휴대폰에 저장된 여성들, 주변의 여성들을 상대로 일일이 안부를 확인하고 싶었는데 여건상 그걸 못했어요.”
검거 뒤 인터뷰관련 기사

9. 김용원의 생애

충북의 한 농가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용원은 가정불화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가족간의 대화는 없었고 어린 김용원은 폭력에 시달리며 성장했다. 특히 아홉 살 차이 나는 형은 어린 김용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자신이 잘못이라도 하게 되면 가차없이 돌아오는 폭력과 이로 인한 수치심으로 일찌감치부터 김용원은 '빨리 어른이 돼 가정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소원을 품었다.

한 수사관계자는 "가족들에게 정을 느끼지 못한 김용원이 어릴 적 유일한 꿈이 '빨리 스무 살이 돼 집을 떠나는 것'이었다고 하더라." 전했다. 이 같은 가정환경 속에서 김용원 고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문제아로 커갔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집에서 '독립'했다.

그러나 가정을 떠나서도 김용원의 삶은 순탄하지 못했다. 스무 살 시절 처음 만난 그의 첫사랑을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에게 빼앗겼다. 한 수사관계자는 "처음으로 진지하게 사랑했던 여자가 자신을 버리고 자신과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갔을 때 김용원이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말했다. 이때부터 김용원은 여자에게 묘한 증오심을 품었다.

첫사랑과 헤어진 직후 김용원은 20살이 되던 해, 1985년에 강간치상 혐의로 처음 철창 신세를 지면서 범죄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후로도 김용원은 특수강간, 폭력, 특수절도 등의 죄목으로 13년간이나 감옥살이를 해왔다. 그러다 2004년 3월 특수절도 혐의로 받은 3년 형기를 마치고 다시 세상에 나왔다.

막상 출소는 했지만 범죄자에게 마땅한 일거리는 없었다. 김용원은 운수회사에서 잠시 일을 하다 그만두고 2005년부터 중국을 오가며 비아그라, 장뇌삼 등을 밀수하며 지냈다.[18] 중국에서 한 조선족 여성을 사귀면서부터는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씻고 새로운 삶을 꿈꾸기도 했다. 이 조선족 여성과는 이미 중국에서 예식까지 올렸고, 2005년 7월에 한국에서 조선족 약혼녀와 정식으로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 조선족과 약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명의 내연녀가 있었으며 자신의 손으로 피해자 두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했으며, 자신의 후배 딸까지 생명을 빼앗아갔다. 한 수사관은 "불우한 성장으로 인한 애정결핍과 첫사랑에 대한 배신감이 겹쳐 김용원에게는 일반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여성편력과 여성에 대한 증오심이 있었다. 정에 굶주렸던 김용원이 어찌 보면 여성들을 통해 과거를 보상받고 싶어했는지도 모르겠다." 말했다.

또 주변사람들은 김용원이 평소에는 점잖고 온순한 사람이나 술만 먹으면 난폭해진다고 증언했는데, 과연 출소한 지 1년 만에 사소한 이유로 사람 셋을 죽인 자가 정말 단지 술만 안 마시면 조용한 사람일까? 일단 전부 사소한 말다툼으로 아무렇지 않게 살해한 점, 자신이 친한 후배의 초등학생 딸에게 욕정을 느껴 평소에는 성추행, 성폭행을 일삼다가 수배된 와중에도 결국 살인을 한 점, 살인을 한 직후에 태연하게 술까지 마시고 사체와 4일 동안 자신의 원룸에서 지내다가 친한 고향후배에게 시신유기를 도와달라고 요청한 점, 술을 마실때마다 자신의 살인사건을 무용담처럼 주변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닌 점을 보면,[19] 단순히 술 때문에 이렇게 끔찍한 살인범이 되었다고는 그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20]

10. 재판

판결문은 다음과 같다.
피고가 전과 8범에 지난 1989년부터 16년 동안 모두 4차례의 실형을 선고 받아 11년을 교도소에서 보냈으나 전혀 교화되지 않았으며, 출소 이후에도 짧은 기간에 3명의 목숨을[21] 사소한 동기로 살해 한 점 등에 비춰 개선과 교화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해 사형을 선고한다.

2005년 9월, 1심에서 청주지방법원 제3형사부(재판장 한주한 부장판사)는 피고 김용원에게 사형을 선고하였으며, 김용원은 이에 항소하였다.

2005년 12월, 2심에서 대전지방법원은 항소를 기각하고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이에 김용원은 대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다음해 2006년, 3심에서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피의자 김용원에게 사형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고 있기에 계속해서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11. 기타

2008년 tvN에서 방영된 범죄의 재구성(tvN) 8화 청주 내연녀 연쇄살인사건으로 이 사건을 다루었다.[22]

12. 둘러보기

문서가 있는 대한민국의 살인 사건 목록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고려~대한제국 살인사건
저고여 피살 사건? N (1225년) · 임오화변 (1762년) · 민승호 암살 사건? (1874년) · 치하포 사건 (1896년) · 산청군 압동 살인사건? (1902년)
일제 강점기 살인사건
제암리 학살사건? M (1919년) · 백백교 사건M (1920년~1941년) · 이판능 사건M (1921년) · 주문학 살인사건 (1921년) · 김립 피살 사건 (1922년) · 진남포 소아 참살 사건? (1924년) · 빈주 사건M (1925년) · 고무신 살인사건 (1926년) · 전주 소학생 유괴 살인사건W K ? (1926년) · 불륜처 변사사건 (1927년) · 머슴 살인사건 (1928년) · 이관규 사건S (1929년)· 청양 소년 살인사건? (1930년) · 부산 마리아 참살사건? (1931년) · 이승만 살인사건? (1932년) · 평남 모친 살해 사건 (1932년) · 사천 복수극 사건 (1932년) · 경성 죽첨정 단두 유아 사건 (1933년) · 옥관빈 피살사건 (1933년) · 신의주 비행장 여성 시체 사건 (1933년) · 순안 유부녀 알몸 살인 사건 (1936년) · 강원도 유부녀 독살범 사건S (1939년)
광복~1979년 살인사건
여운형 암살사건 (1947년) · 백범 김구 암살사건? (1949년) · 열차내 강간 살인 사건W ?(1953년) · 불륜처 타살사건N (1954년) · 장기 훈수 살인 사건 (1960년) · 최영오 일병 살인 사건N (1962년) · 창신동 치정 살인 사건 (1962년) · 고재봉 살인 사건M N (1963년) · 수원 지지대고개 살인 사건 (1963년) · 춘천호 여인 토막 살인사건 (1965년) · 평창동 불륜처 살해 사건 (1965년) · 김근하 유괴 살인 사건K ? (1967년) · 이천 여교사 알몸 피살 사건? (1968년) · 육군 하사 수류탄 투척 사건M N (1968년) · 종암동 여관방 유부녀 살인 사건W (1968년) · 정인숙 살해사건? (1970년) · 양구 다방 인질극 사건 (1970년) · 공덕동 유부녀 반나체 피살 사건 (1971년) · 춘천 강간살인 조작사건W ? (1972년) · 육영수 암살 사건 (1974년) · 인천 일가족 살인사건 (1974년) · 김대두 사건S (1975년) · 부산 어린이 연쇄살인 사건S ? (1975년) · 이팔국 아내 살인 사건 (1975년) · 백화양조 여고생 살인 사건Y (1978년) · 금당 골동품상 부부 납치 살해사건M K (1979년) · 10.26 사건N (1979년)
1980년대 살인사건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K (1980년) · 주남마을 총격사건M N (1980년) · 우순경 사건N M (1982년) · 죽음을 연출한 사진 (1982년) · 청산가리 우유 독살 사건I (1983년) · 공주 연쇄살인 사건S (1983년~1987년) · 서진 룸살롱 집단 살인 사건 (1986년) · 김선자 연쇄 독살사건S (1986년~1987년) ·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S W ? (1986년~1991년) · 수원 여고생 강간 살인 사건W ? (1987년) ·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1988년) · 원혜준 유괴 살인 사건K (1988년) · 심영구 사건S (1989년) · 서울 노량진 살인 사건 (1989년)
{{{#!folding 1990년대 살인사건 1990년 부산 엄궁동 2인조 살인사건 ·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K · 부산 새마을금고 권총 강도 살인 사건 · 지춘길 사건S · 유명 공인회계사 피살사건 · 이완희 유괴 살인 사건K · 양평 일가족 생매장 사건S
1991년 청주 여공 강간 살인사건W · 대구 성서초등학생 살인 암매장 사건K M ? ·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K ? · 김부남 사건 · 정선 음주운전 뺑소니 살인 사건 · 이득화 유괴 살인 사건 · 거성관 방화 사건M A · 여의도광장 차량질주 사건 · 대천 영유아 연쇄유괴살인 사건S K ? (~1994년)
1992년 김보은 양 사건 · 김순경 살인 누명 사건 · 주한미군 윤금이씨 살해사건W F
1993년 지존파 사건S
1994년 박한상 존속살해 사건 · 부산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 · 배병수 살해 사건 · 뉴월드 호텔 앞 살인사건 · 청주 처제 살인사건W · 온보현 사건W (~1995년)
1995년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
1996년 막가파 사건 · 대구 양궁선수 살인사건 · 페스카마호 선상 살인 사건F · 잠실파출소 경관 피살사건 · 안두희 폭행치사 사건
1997년 대구 동구 연쇄살인 사건S ·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 사건K · 관덕정 살인사건? · 서귀포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 이한영 암살 사건? · 이태원 살인 사건F · 화순 서라아파트 모녀 살인 사건Y
1998년 송파 7인조 떼강도 사건G · 노원 가정주부 살인 사건G · 울산 살충제 요구르트 사건? · 사바이 단란주점 살인사건? · 대전 갈마동 월평산 여중생 살인사건 · 영훈이 남매 사건 · 황영동 사건
1999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 · 박정자 살인 사건? · 삼척 신혼부부 살인 사건 · 영웅파 사건 · 제주 변호사 피살 사건? · 정두영 사건S (~2000년)
}}} ||
{{{#!folding 2000년대 살인사건 2000년 서울 종로구 여중생 살인사건Y · 김해선 사건S W · 부산 미용사 살인사건W ? ·안산 부녀자 연쇄살인 사건S F · 무기수 김신혜 사건? · 이은석 존속살해 사건 · 인천 계양구 놀이터 살인 사건? ·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 만봉천 예비간호사 살인 사건? · 엄여인 보험 살인사건S I (~2005년)
2001년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W · 산골 소녀 영자 사건 · 부천 탈영장교 살인사건 · 염순덕 상사 피살사건N ? · 서울 성동구 여아 토막 살인 사건K W · 친동생 도끼 살인사건Y · 영동 여고생 살인 사건? · 부산 배산 여대생 피살사건? · 용인 교수부인 살인 사건 · 부산 온천동 커피숍 여주인 피살사건? · 속초시 콘도살인 암매장사건? · 제7호 태창호 사건 · 부산 고교생 교실 살해사건Y · 대전 세 모녀 인질극 사건 · 홍성열 살인사건 · 울산 단란주점 살인 사건? · 잠실 아파트 일가족 살인사건 ·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G ? · 대구 총포사 살인 사건?
2002년 부산 괘법동 태양다방 종업원 살인사건? · 아산 갱티고개 살인사건 ·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 · 용인 연쇄살인 사건S · 춘천 후평동 택시기사 살인 사건? · 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인 사건? · 제천 독신녀 토막 살인 사건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M A · 의성 뺑소니 청부살인 사건I · 거여동 밀실 살인 사건 · 포천 여중생 살인 사건? · 김지연 군 살인 사건F · 인제 광치령 토막 살인 사건? · 울산 우정동 청산가리 살인 사건? · 인천 작전동 이발소 여주인 살인사건? · 둘째딸 독극물 살인 사건S · 인제대교 추락 사망 사건W ? · 영주 택시기사 살인사건? · 동작대교 유아 투기 살인사건 · 부산 대교동 여관 살인사건? · 유영철 사건S (~2004년)
2004년 광주 여대생 테이프 살인 사건? · 이학만 사건 · 화성 여대생 살인 사건W ? · 서천 카센터 살인사건A ? · 마산 대학교수 살인사건 · 대구 송현동 여고생 강간 살인사건W K · 서울 향수업체 살인사건? · 대구 달성공원 독극물 요구르트 사건? · 반포동 빌라 지하방 살인사건 · 석촌동 연쇄살인 사건S(1995년~2004년) · 평택 영아 청부납치 모친 살해사건K · 대구 노래방 여주인 살인사건 (~2009년) · 정남규 사건S (~2006년) · 부평 콘크리트 암매장 사건? (~2008년)
2005년 강릉 노파 쪽지문 살인 사건? · 개성중학교 폭행치사 사건Y · 서초동 오피스텔 살인사건W · 울산 무거동 야산 토막살인사건? · 김용원 연쇄살인 사건S · 대한송유관공사 살인 사건W · 돈암동 살인사건? · 스튜어디스 납치 살해사건K G · 대전 갈마동 빌라 살인사건? · 2005년 천안 연쇄살인 사건S · 대전 문화동 일가족 살인사건A I · 광주 주유소장 살인 사건? · 양구 전당포 노부부 살인사건? · 돌산도 컨테이너실 살인사건? · 신정동 연쇄폭행살인사건? (~2006년)
2006년 강화도 모녀 납치 살해 사건S W K G · 용산 아동 성폭력 살해사건W · 동해 학습지 여교사 살인사건? · 대전 송촌동 택시기사 살인사건? · 무안 저수지 살인 사건? · 2006년 천안 연쇄살인 사건S · 울산 초등생 방화 살인 사건A ? · 인천 십정동 부부 살해사건? · 제주 소주방 여주인 피살사건? · 영등포 노들길 살인 사건W ? · 부산 해양대학교 맨홀 변사 사건? · 군포 안양 연쇄살인 사건S · 천안 토막 살인 사건?
2007년 대전 백합다방 종업원 살인사건S · 인천 호프집 여주인 살인사건 · 보성 어부 살인 사건S W · 수원역 노숙 소녀 살인 사건? · 모텔 정화조 살인 사건? · 드들강 임산부 살인사건I · 춘천 남산면 식당 주인 피살 사건? · 안산역 토막시체 유기사건F ·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W K · 안양 환전소 여직원 살인사건G · 양지승 어린이 살인 사건W · 성민이 사건 · 화천 할머니 피살 사건
2008년 대구 초등생 납치 살인 사건K ? · 부산 청테이프 살인 사건? · 센트럴 시티 살인사건? · 양주 여중생 살인 사건W F · 이호성 살인 사건 · 광주 대인동 살인사건? · 부여 노파 살인 사건? · 흥해 토막 살인사건? · 수원 신대저수지 토막 살인 사건? · 의정부 여중생 살인사건W ? · 홍제동 묻지마 살인사건 · 인천 병방동 60대 여성 엽기 살해사건? · 2008년 울산 계모 살인 사건
2009년 강호순 사건S W (2004년~2009년) · 부천 여고생 집단성폭행 사망 사건W A Y · 초등학생 공기총 살해 사건 · 익산 모친 성폭행 살해 사건W · 17억 보험 친구 집단 살인 사건I · 제주 보육교사 피살사건? · 청주 비닐봉지 살인 사건W ? · 경산 임산부 스토킹 살인사건 · 순창 손목없는 백골 사체 사건? · 정읍 화물차 사무실 살인사건? · 영암 연쇄살인 사건S
}}} ||
{{{#!folding 2010년대 살인사건 2010년 김길태 사건W · 목포 여대생 살인 사건? · 부산 시신 없는 살인 사건 · 성남 지적장애 소녀 살해 암매장 사건W Y · 하왕십리동 방화 살인 사건A Y · 산낙지 보험 사망 사건I ? · 함안 방앗간 노파 살인 사건? · 홍은동 여중생 살해 시신 유기 사건Y · 잠원동 묻지마 살인사건 · 화성 여고생 살인 사건F · 부산 부전동 모텔 여주인 살인사건? · 남양주 아파트 밀실 살인사건? · 울산 부곡동 살인 사건?
2011년 가방모찌 살인 사건 · 경찰 간부 모친 보험 사망 사건I · 구의동 고3 존속살인 사건Y · 만삭 의사부인 사망사건 · 박근혜 5촌 살인사건N ? · 부천 여월동 살인 사건? · 안산 리어카 토막 살인 사건? · 유명 블로거 살인 사건 · 일산 여중생 자매 백골 시신 사건 · 필리핀 관광객 연쇄 표적납치 살인사건S K · 포천 농약 살인 사건S I (~2014년)
2012년 보성 형제교회 유아 사망 사건 · 서울 신촌 대학생 살인사건Y · 수원 토막 살인 사건W F · 용인 50대 부부 피습 사건 · 강릉 보복살인 사건 · 수원 장안구 흉기난동 살인사건W · 수원 묻지마 살인 사건 · 울산 자매 살인 사건 · 제주 여성 피살 사건W · 중곡동 주부 살인 사건
2013년 고려대 화공생명공학과 살인 사건 · 군산 경찰관 내연녀 살인 사건N · 군산 정화조 백골 사건 · 용인 10대 엽기 살인사건W Y · 보은 콩나물밥 독극물 사건? · 인천 과외 제자 살인 사건 · 정치, 사회 갤러리 피살사건 · 인천 모자 살인 사건 · 2013년 인천 중학생 집단폭행 살인사건Y · 구례 편의점 여주인 살인사건G · 칠곡 계모 아동학대 사망사건 · 2013년 울산 계모 살인 사건
2014년 서울 강서구 재력가 살인 사건N · 굴삭기 암매장 사건 · 김해 여고생 살인 사건W Y · 대구 중년부부 살인 사건 · 부산 영아 투기 살인사건 · 포항 단란주점 여주인 살인사건W · 수원 토막 시체 유기 사건F · 트랜스젠더 살인사건 · 파주 전기톱 토막살인 사건 · 안산 남성 변사 사건? · 전북대병원 로비 여중생 살인사건 · 포천 빌라 고무통 살인사건 · 캄보디아인 만삭 아내 사망 사건I ? · 2014년 울산 계모 살인 사건 · 양양 일가족 방화 살인 사건A · 진돗개교 3세 아동 살인 사건 (~2017년)
2015년 상주 농약 사이다 사건 · 세종시 편의점 총기 난사 사건 · 금호강 살인 사건I · 김포 20대 주부 피살사건 · 수원역 여대생 납치 살인 사건K · 시화호 토막 살인 사건F · 아산 트렁크 살인사건K · 수원역 PC방 묻지마 살인사건 · 공릉동 살인사건N · 서초동 세모녀 일가족 살인사건 · 안산 인질극 사건W · 울진 백골 유기사건? · 여자친구 시멘트 암매장 살인 사건 · 용인 아파트 벽돌 투척 사망 사건 · 울산 모텔 살인사건 · 천안 피해망상 이웃살해 사건 · 무학산 살인사건 · 크림빵 아빠 뺑소니 사건 · 화성시 총기 난사 사건 · 대구 주부 살인사건 · 제주 한경면 야산 살인사건W G · 내곡동 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사건 · 봉천동 성매매 여중생 살인사건 · 구파발 검문소 총기사건N
2016년 화성 공장 정화조 백골 시신 사건? · 마포 가방 시신 사건 · 부천 여중생 백골 시신 사건 · 부천 초등학생 토막 살인 사건 · 홍성군 영아 폭행치사 사건 · 경남 고성 초등학생 암매장 살인 사건 · 평택 아동 암매장 살인 사건 · 광주 남매 존속살인 사건 · 조성호 살인사건 · 하남시 층간소음 살인사건 · 시흥 딸 살인사건 · 제주 성당 묻지마 살인 사건F · 포천 6세 입양딸 살인 사건 · 증평 할머니 살인사건 ·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 · 김포 아동 폭행 살인사건 · 남편 니코틴 살인사건I · 완도 아령 살인 사건?
2017년 인천 동춘동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K Y · 신혼여행 니코틴 살인사건I · 한겨레 동료기자 폭행치사 사건N · 양산 아파트 밧줄 절단 살인 사건 · 충주 인터넷 설치기사 살인사건 · 부산 영아 시신 냉장고 유기 사건 · 창원 골프연습장 납치 살인사건K · 왁싱샵 살인 사건W G · 어금니 아빠 살인사건W K ·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 부친 피살사건 · 용인 일가족 살인사건 · 전주 5세 여아 살해 사건 · 속초 영랑동 백골 사건?
2018년 종로 여관 방화 사건M A · 제주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K · 강서구 6세 여아 살인사건 · 떡볶이 배달청년 살인사건 · 군산 유흥주점 방화 사건M A · 강진 여고생 살인사건 · 화곡동 어린이집 영아 사망사건 · 변경석 살인 및 사체유기 사건 · 옥천 일가족 살해사건 · 공군 상사 아동학대 사건N · 제주도 여교사 금품갈취 및 폭행치사 사건 · 울산 천곡동 살인사건 · 구리시 강변북로 음주 사망 사건 ·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 서울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 부산 사하구 일가족 살인사건 · 거제 신오교 살인사건 · 춘천 예비신부 살인사건 · 인천 중학생 추락사 사건Y · 안산 원곡공원 영아 시신 유기 사건? ·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의사 살인 사건 · 김제 목검 폭행 사건
2019년 이희진 부모 살해사건 · 군산 아내 살인 사건 ·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살인 사건M A · 광주 의붓딸 살인사건 · 정치인 아내 살인사건N · 의정부 일가족 사망 사건 · 고유정 전 남편 살해 사건 · 순천 아파트 강간 살인사건W · 오산 야산 백골시신 사건Y · 오산 모텔 살인사건 · 군포 존속살해 사건 · 인천 영아 사망 사건 · 광주 10대 집단 폭행 살인 사건Y · 한강 몸통시신 사건
}}} ||
{{{#!folding 2020년대 살인사건 2020년 광진구 클럽 살인사건
}}} ||
M: 대량살인, S: 연쇄살인, N: 국가행정조직 연루, W: 성범죄 결합 살인, K: 납치 후 살인, A: 방화 결합 살인, G: 강도살인, I: 보험 관련 살인, Y: 청소년 범죄, F: 외국인 범죄, ?: 미제 사건 }}}}}}}}}


[1] 이것도 처음 경찰에 신고접수된 2차사건인 청주시 봉명동 호프집 여주인 박씨(48)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청주시 사창동 내연녀 살인사건, 충북 진천군 초등생 강간살해 후 암매장사건이 드러난 것이다.[2] 그나마 이들과 차이점이 있다면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비면식관계인 사람들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 정두영, 유영철, 정남규와 달리 김용원은 자신과 애인관계 혹은 후배의 가족관계인 면식상대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물론 살인은 비인륜적인 강력범죄란 사실은 똑같지만 말이다.[3] 즉 김용원은 결혼을 1달 남기고 연쇄살인마가 된 것이다.[4] 피해자 내연녀 성씨같은 경우 김용원과 동거하기전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으며, 그녀 주변에 김용원 외에는 가족이나 지인 등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실종신고조차도 접수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김용원이 살해를 하고도 바로 검거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김용원이 술자리에서 떠들고 다녀서 이것을 들은 고향후배 A씨가 경찰에 제보하지 않았더라면 이 사건은 김용원 혼자만 아는 영원한 비밀로 묻혔을지도 모른다.[5] 당시에는 소재지가 청원군이었으나 2014년이후 청원군은 청주시 청원구와 흥덕구로 통합된다.[6] 그것도 김용원 본인의 핸드폰이 아닌 박씨의 가게의 전화로 국제전화를 하니 이것이 갈등을 폭발시키는 촉매제가 되어버린 것..[7] 그러나 박씨 살인후 피해자의 혈흔이 묻은 자신의 족적을 호프집에 고스란히 남기고 현장을 떠난 바람에 오히려 결정적인 증거만을 남기고 말았다.[8] 2차 살인사건이 8시간 지난 후였다.[9] 아무리 여성 혼자 운영하는 가게들 대상으로 강도살인을 한다 해도 보통은 범인들이 흉기를 미리 준비해서 가거나, 자신의 완력으로 제압만 하고 금품을 갈취하거나, 범행에 쓸 만한 흉기를 현장에서 찾아서 저지르지 김용원처럼 두개골이 함몰될 만큼 집중적으로 가격하진 않는다. 강도에게는 최종 목적은 금품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저항을 제어할 정도만 폭력을 사용하고 최대한 자신의 증거를 남기지 않고 목적을 달성한뒤 빨리 현장을 빠져나가는 편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강도에 의한 살인사건치고 필요이상의 과다한 공격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주로 면식범에 의한 살해현장에서 피해자의 얼굴 주변을 참혹하게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공격하는 경우가 많아 경찰은 이 사건을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박씨의 주변인물부터 조사한 것이다.[10] 사실 이전에도 김용원은 최씨에게 수 차례 접근해 최양을 수 차례 성추행, 성폭행한 전력이 있었다. 김용원은 최양에게 범행을 저지를 때마다 현금 1만 원을 주면서 비밀을 지켜줄 것을 강요하였다. 당시 최양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관계로 가정에서 가족에게 보살핌을 받기보다는 아동보호시설에 있는 기간이 많았는데 이곳 아동보호시설 교사들이 최양의 온몸 곳곳에 상처가 나있고 소변장애가 있는 등 성폭행의 정황은 발견하였으나 당시 법망의 미비, 남의 가정이라도 발생한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인식 부재(아동의 부모에게 상담의뢰해서 신고를 유도하도록 설득하는게 전부였다.) 등으로 추가 피해를 막진 못했다.관련기사[11] 현재는 아동보호시설이나 학교에서 담당선생님이 아동학대 흔적을 발견을 했는데도 무시하고 신고를 안하면 처벌받는다고 한다.[12] 김용원은 평소에 최양이 자신의 말을 잘 듣는다고 본인 딴에는 생각 해왔던 모양. 그러나 그날따라 최양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말을 듣지 않아 가뜩이나 수배되어 극도로 스트레스에 달한 상태에서 분노가 극에 달아 이성적인 판단은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사실 애초에 자제력이란 것이 없는 인물이었다.) 최양이 아버지에게 자신의 범행사실을 말하게 된다면, 금방 검거가 될게 뻔했고 그렇게 영원히 교도소에서 못나오게 될 상황이 분명했다.(강간, 절도, 강도 등으로 이미 전과 8범에 11년 동안 교도소에 수감된 전과자인데 살인죄까지 추가되면...) 거기다 경찰의 수사로부터 도피하려면 자신과 신뢰가 돈독한 지인의 도움이 절실한데 후배 최씨까지 자신에게 등을 돌려버린다면 결과는 명약관화였다. 결국 김용원은 극도의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어린 최양을 살해하였다.[13] 김용원도 이 날 잠복근무중이던 경찰에 검거된다.[14] 최대한 주변 친척,지인들에게 돈을 빌려서 충분한 도피자금을 모으는데 시간을 벌기위해 폐가를 은신처로 정한 모양이다.[15] 예전만 해도 자신이 저질렀던 강력범죄의 용의선상에서 빠지기 위해서 범죄자들이 자주 쓰던 수법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경찰 행정시스템의 한계 때문에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처럼 수배중인 범인이 다른 죄목으로 검찰에 기소되고 재판에 넘겨져서 교도소에 뻔히 있는데도 범인을 검거 못한 사건들이 많았다.[16] 실제로 경찰조사를 받을때도 "한 번 살인해보니 두번째 부터는 너무 쉬웠다"라고 진술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김용원 상대로 여죄를 계속 추궁했던 것이다.[17] 이 기사에서는 가명을 사용[18] 혹은 중국여성과의 국제결혼을 알선하고 소개료를 받는 일을 했다고 하는데 아는분 계시면 추가바람[19] 김용원은 사회화가 전혀 안 된 자이다. 행여나 지인들과 관계가 틀어지면 자신이 떠들어댄 범행이 알려질 우려가 큰 데도 불구하고 떠들고 다녔다. 김용원은 평소에 아무런 계획이나 대책도 없이 즉흥적이고 단편적으로 살아왔고, 그저 닥쳐오는 대로 혹은 자신이 기분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이미 몸에 습관으로 밴 것이다. 만약 주변인들이 자신의 약점으로 압박하거나 통제하려고 든다면 언제든지 또다시 살인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김용원의 검거가 더 늦었더라면 피해자는 계속 늘어났을 수도 있었다.[20] 애초에 자존감이 낮았던 그는 고행후배, 내연녀 등 자신들의 지인사이에서 자신이 우두머리 위치에서 남을 통제하는 것이 그의 즐거움이자 삶의 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항상 만나면 술자리를 가지고 술에 취해 기분이 좋으면 자신의 살인담을 이야기 하는 등 허세를 부리다가 반대로 타인이 조금이라도 기분나쁜 말을 자신에게 하기라도 하면 바로 격분하여 화를 참지 못하고 폭력과 살인의 형태로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김용원에 희생된 피해자들이 김용원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자신보다 물리적으로 약한 여성,여아인 것으로 보아 자신보다 완력이 약한상대나 한국의 문화정서상 수직관계에서 자신보다 아래에있는 대상들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심기를 건드는 말은 단 한마디도 용납하지 못했던 것이다.[21] 비록 출소 전이긴 하지만 94년 4월 괴산군에서 지씨(당시 27세)살인사건은 김용원이 검거된 시점인 2005년으로부터 11년이나 지난 사건이다보니 당시 경찰은 증거확보가 매우 어려웠으며 안타깝게도 결국 증거불충분으로 기소하지 못하였고 2005년에 벌어진 3명의 살인사건만 기소하여 법원에 인정받았다.김용원이 자백한(비공식 포함) 살인사건은 사실 총 4건인 샘이다.[22] 실제내용과 프로그램에서 재구성한 내용이 일부분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