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1 23:52:49

대한민국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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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화폐 변천사
조선 문 조선 양 대한제국 원 조선 엔 북한 원
조선은행 원 대한민국 환 대한민국 원
<colcolor=#fff> 대한민국 원
Korean Won
<nopad> 파일:₩.jpg
<colbgcolor=#0047a0> ISO 4217
코드
KRW
중앙은행 한국은행
사용국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기호
보조단위
동전 자주 사용됨: ₩100, ₩500
드물게 사용됨: ₩10, ₩50
매우 드물게 사용됨: ₩1, ₩5
지폐 ₩1,000, ₩5,000, ₩10,000, ₩50,000
인쇄처 한국조폐공사

1. 개요
1.1. 단위 입력하기
2. 역사와 권종
2.1. 1기2.2. 2기
2.2.1. 지폐
2.2.1.1. 1차 (영제권)2.2.1.2. 2차2.2.1.3. 3차2.2.1.4. 4차2.2.1.5. 5차 (현행권)
2.2.2. 동전2.2.3. 수표
3. 기념 화폐4. 위상5. 액면 대비 가치6. 기타
6.1. 등재된 인물들에 대한 논란6.2. 특별인출권 편입 가능성?
7. 원화 환전이 가능한 해외 국가들8. 훼손, 오염, 구권 환전9. 금리10. 원화의 외환보유고, 무역거래 및 외환 거래결제 차지하는 비중11. 원화 환전이 가능한 외국 통화 목록
11.1. 지폐11.2. 동전

[clearfix]

1. 개요

한국은행법 제47조의2(화폐단위)
대한민국의 화폐단위는 으로 한다.
② 원은 계산의 단위가 되고 100으로 분할된다.
③ 원은 영문으로 WON으로 표기한다.
④ 전은 영문으로 JEON으로 표기한다.
[본조신설 2012.3.21.]
대한민국 원 (Korean Won)은 대한민국통화이다. 긴급통화조치법에 따라 기존의 을 대체하여 통용되어 오다가, 아예 한국은행법에 명문으로 규정되었다.

ISO 4217 국제표준화 화폐코드는 KRW이고, 약식 기호로는 ₩와 같이 나타낸다. 통념과는 달리 이 원(Won)에 대응하는 공식적인 한자는 없다. 처음 도입 당시에는 을 썼지만 몇 차례의 화폐 개혁을 거치면서 공식 한자 표기를 없앴기 때문이다. 다만 중국에서는 을, 대만에서는 을, 홍콩에서는 [1] '원'의 한자 표기로 사용하고 있으며, 동아시아 다른 나라의 통화와 구별하기 위하여 ''을 앞에 붙여 '韩元' 또는 '韓圓', '韓圜' 등으로 표기한다. 대한민국 원이나 대한민국 환, 일본 엔, 중국 위안 등은 전부 기원이 같은 단위로, 과거 동아시아에서 사용된 화폐가 주로 동그란 동전인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오해를 하는데 실제로는 대항해시대 스페인의 은화가 명에 들어오면서 국제적인 기준화폐로 사용되었는데 이 스페인 은화가 기존의 동아시아의 은화와달리 동그란 모양을 하고있어서 은원이라고 불렀는데 거기서 원이라는 단위가 유래되었다.[2]

보조단위로는 (Jeon)이 있는데, 환율 계산 등에만 사용될 뿐 일반적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1.1. 단위 입력하기

한국어 윈도에서는 \(U+005C, 역슬래시, reverse solidus)를 입력하면 반각 문자 ₩이 나오긴 하지만 다른 언어판 윈도나 다른 운영 체제에서는 그냥 역슬래시(\)로(일본어 윈도에서는 ¥으로) 나오므로 다른 방법으로 입력하는 것이 좋다.[3] ₩(U+20A9)는 Alt + 8361(Num lock을 켜고 숫자 키패드로 입력)를 통해 입력할 수 있다. 전각 문자 ₩(U+FFE6)는 ㄹ + 한자 또는 Alt + 65510(역시 숫자 키패드로)로 입력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한글 IME에서는 Alt + =으로 전각 모드로 전환한 후 \\ 키를 누르면 전각문자 ₩이 나온다.

이런 것조차도 문제가 될 수 있는 환경이 있으므로 공식 서한 등에서는 통화 코드인 KRW를 사용하는 편이다.

2. 역사와 권종

2.1. 1기

앞면 뒷면
파일:광화문 백원.jpg 백원권
(1950. 7. 22.)
경복궁 광화문 당초 문양
파일:한복 천원.jpg 천원권
(1950. 7. 22.)
이승만
1950년 6월 12일 한국은행이 설립되면서 처음 만들어낸 시리즈이다. 당시 환율은 1달러 = 1,800원. 하지만 2주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시작부터가 순탄치 않았다. 전쟁 초반 북한군이 사흘 만에 수도 서울까지 점령하매 예상치 못하게 급히 피난을 가느라 겨우 금괴 1.1톤과 은괴 2.5톤만을 건지고 겨우 철수했고,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 직후 한국은행을 접수하고 나니 나머지 금괴 0.2톤과 은괴 16톤, 그리고 한국은행이 아직 미발행한 지폐 105억 원 어치가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지폐를 발행하던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에서도 직원들이 장비를 다 방치하고 피란을 떠났기에 인민군은 105억원의 미발행권은 물론 앞으로도 무한히 조선은행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4]
파일:미발행 천원.jpg
북한이 불법적으로 인쇄, 유통한 미발행 천원권
이걸 그대로 꿀꺽한 북한은 남한 정부의 경제를 마비시킬 작정으로 미친 듯이 미발행권을 뿌리고 그걸로도 부족해 조선서적인쇄주식회사의 설비를 이용해 미친듯이 조선은행권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전시에 적군에 의해 아군의 화폐가 무참히 발권되는 상황이었으니 정부는 특단의 조치로 화폐 개혁을 단행한다.

공식적 첫 은행권 출범은 1950년 7월 22일 발행된 '이승만 한복 1000원권'과 '광화문 100원권'. 기존의 '조선은행 원'과 같이 사용이 가능한 통화였다. 당시 천원권의 경우에는 지폐의 판 번호 1번부터 500번까지는 일본에서 인쇄했고 판 번호 501번 이후는 한국에서 인쇄했다. 그래서 일본인쇄권과 한국인쇄권은 품질이 다르다. 판 번호 500번까지 일본에서 인쇄된 이유는 기술력 문제가 아니라 전시의 급박한 상황 덕분이다. 물론 기술력도 일본이 한국보다 낫긴 했지만, 중요한 건 상술했듯 적군이 아군 지폐를 무자비하게 조폐한다는 것이었고, 때문에 정부는 기존의 지폐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최단시간 내에 새로운 도안을 만들고 대량인쇄를 해야 했는데, 상술했듯 인쇄설비는 다 서울에 두고 왔고 직원들은 한참 피란 중이라 어디에 있는지조차 확인이 안 되었다.

때문에 6월 29일, 한국은행 구용서 총재는 도쿄지점에 전화를 걸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본 대장성을 통해 새 도안을 가진 100원권 및 1,000원권 지폐를 대량 인쇄, 그것도 보름 내로 해야 한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주었다. 도쿄 지점의 김진형 부총재는 지시를 받자마자 대장성이 아닌 GHQ에 쳐들어가 미군에 상황의 급박함을 읍소했고, 역시 상황의 심각함을 이해하고 있던 GHQ는 대장성에 최대한 빨리 새 도안을 내놓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시는 일본 내에서도 사회주의자를 탄압하는 레드 퍼지가 극에 달하고 이에 맞서는 노동자 파업이 심하던 때라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판단한 듯하다.[5]

이에 대장성 인쇄청장 이지치 다쓰오(伊地知辰夫)는 이럴 때에 연합군에 최대한 협력하는 것이 일본이 살 길이라며 전 노동자들에게 무기한 밤샘 특근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신도안은 단 이틀 만에 튀어나왔고[6] 도안이 확정된 후 지폐 인쇄작업이 시작되었는데 GHQ에서 급파한 미군 병력들이 인쇄소를 쳐들어가 노동자들에게 총을 겨누며 독촉할 지경이었다. 그 바람에 보통 6개월은 걸리는 작업이 열흘 만에 끝났고, 결국 7월 13일에 1차 인쇄분이 미군 수송기편으로 부산 수영비행장을 통해 대한민국에 도착한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부터 1950년 7월 20일까지 피난자금으로 조선은행권의 긴급인출(자연인 1명당 10만 원)을 실행하고, 적이 불법으로 유통시킨 조선은행 미발행 1000원권과 북조선중앙은행권은 무효로 간주한 다음 1950년 9월 15일부터 1950년 9월 22일까지 한국은행권의 긴급교환(자연인 1명당 10만 원)을 실행했다.
앞면 뒷면
파일:남색지 오백원.jpg 오백원권
(1952. 10. 10.)
이승만 파고다공원
파일:신 천원.jpg 신(新) 천원권
(1952. 10. 10.)
1952년 완전히 서울을 되찾았을 때 10월 10일 긴급히 조선은행권을 이승만&파고다 공원 1,000원권/500원권 (국내 생산인 두 번째 시리즈)과 교체해주며 무마하려 했으나 이미 통화시스템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바람에 유명무실했다.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2월 15일 긴급명령으로 화폐개혁을 시행하여 경제혼란을 수습하도록 지시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때 환율은 1달러=6000원. 대한민국 환과의 교환 비율은 100원 = 1환이었다. 한국은행의 경제통계에 따르면 도매물가지수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약 1만 배만큼 폭등했다.

이 시기가 대한민국 역사상 마지막으로 당대 생존인물인 이승만을 화폐도안에 올린 사례다. 시절에는 한창 집권기였으니 당연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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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2기

환에서 원으로의 화폐 개혁을 알리는 대한뉴스 제369호.

대한민국 환을 화폐개혁으로 폐지하고 난 뒤의 1962년부터 발행된 "원" 단위의 모든 화폐는 지금도 쓸 수 있으며[7], 공식적으로 한국은행 및 시중은행에서 현행권과 교환이 가능하다. 물론 역사적인 가치를 생각한다면 실제로 사용하려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외국 시중은행이나 환전소에서 구권[8], 현행 지폐 환전이 가능하지만 동남아에서는 현행권만 환전이 가능하다. "(jeon)"은 안 된다. 다만, 사용시에는 액면가 그대로로만 사용할 수 있지만, 수집가 등에게 팔면 몇십배 내지는 몇천배, 몇만배까지도 받을 수 있어서 사용하는 게 손해라는 것이 문제.

2.2.1. 지폐

2.2.1.1. 1차 (영제권)
1962년 6월 10일,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에 발맞춰 내놓았다. 조선 엔과 달리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9] 조선 엔 및 대한민국 환과 교환하는 비율은 1000엔=10환=1원이 된다. 이 조치 이후로 기존의 환을 전면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으나, 사용량이 폭주하는 소액권 보급에 차질이 생김에 따라(이 당시엔 원화 동전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예외적으로 50환과 10환 동전의 통용을 1975년 3월 21일까지 허용하였다.[10][11] 한국은행에서는 "가"시리즈로 명명하였다. 예를 들면 총석정 50원은 "가 50원권". 참고로 1993년 이전에는 갑을병정(甲乙丙丁)순으로 불렀다. 거기에 개정판이라면 개(改)를 붙여 개갑이라는 식이다.

1차 시기 지폐는 영국과 프랑스의 조폐 회사에서 도안, 제작했다.
앞면 뒷면
파일:십전.jpg 십전권
(1962. 12. 1.)
당초 문양 액면가
파일:오십전.jpg 오십전권
(1962. 12. 1.)
파일:영제 일원.jpg 일원권
(1962. 6. 10.)
한국은행 휘장 액면가
파일:영제 오원.jpg 오원권
(1962. 6. 10.)
파일:영제 십원.jpg (가) 십원권
(1962. 6. 10.)
파일:영제 오십원.jpg (가) 오십원권
(1962. 6. 10.)
총석정[12] 횃불
파일:영제 백원.jpg (가) 백원권
(1962. 6. 10.)
독립문
파일:영제 오백원.jpg (가) 오백원권
(1962. 6. 10.)
숭례문
비공식 별칭은 영제(英製) 시리즈. 영국의 데라루(De La Rue)사에서 인쇄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한글 글꼴이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당히 어색해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디자인부터 인쇄까지 죄다 영국에서 했으니. 물론 감수는 한국은행이 했다. 종류는 1원부터 500원까지 6종이 발행되었는데, 1원 미만 (옛 10환단위 미만)의 소액을 처리하기 위해 10전과 50전짜리 지폐[13]를 추가로 도입하여 모두 8종이 되었다. 굉장히 아담하고 뭔가 성의없어 보이는 저액권과 기본적인 구성을 갖춘 고액권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이 특징. 한국은행권 중에선 가장 비싼 값으로 수집가들에게 거래되는 시리즈이며, 가장 비싼 것은 위에도 걸려있는 총석정 50원[14]이다.

여담이지만 이 당시(1960년대 중반) 물가는 쌀 1,100원/20kg가량, 쇠고기 1근 300원, 라면 1개 10원[15], 서울에 집 한채 혹은 고급차 1대 70만원 가량이었다. 또한 일부 기록에 의하면 대통령 봉급이 78,000원이었다고.
2.2.1.2. 2차
1960년대를 주름잡던 권종들이다. 오백원권이 최고액권이었으며, 아직 10원, 50원, 100원 주화가 등장하기 전이다.

2차 시기의 지폐는 영국의 조폐 회사에서 도안, 제작했다. 세종대왕의 도안을 보면 서구형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앞면 뒷면
파일:나 십원.jpg (나) 십원권[16]
(1962. 9. 21.)
첨성대 거북선
파일:나 오십원.jpg (나) 오십원권
(1969. 5. 21.)
파고다공원[17] 횃불, 무궁화
파일:나 백원.jpg (나) 백원권
(1962. 11. 1.)
독립문 경복궁 경회루
파일:다 백원.jpg (다) 백원권
(1965. 8. 14.)
세종대왕 한국은행 본관
파일:나 오백원.jpg (나) 오백원권
(1966. 8. 16.)
숭례문 거북선
  • 2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나 십원권 → 나 백원권 → 다 백원권 → 나 오백원권 → 나 오십원권 순서이다.
2.2.1.3. 3차
주로 1970년대를 주름잡던 주요 시리즈로 보면 된다. 전반적으로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내놓은 성격이 강하다. 경제규모의 팽창이 점진적으로 가속화되고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물가상승률이 높은 수준을 기록하여 원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오십원, 백원 주화가 발행되며 서서히 지폐를 밀어냈다. 또한 이때 천원, 오천원, 만원권 지폐가 처음 나오면서 고액권 지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앞면 뒷면
파일:₩500 앞.jpg
파일:₩500 뒤.jpg
(다) 오백원권
(1973. 9. 1.)
이순신, 거북선 현충사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23.jpg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24.jpg
(가) 천원권
(1975. 8. 14.)
이황, 무궁화 도산서원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13.jpg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14.jpg
(가) 오천원권
(1972. 7. 10.)
이이, 봉화 한국은행 본관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15.jpg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16.jpg
(나) 오천원권
(1977. 6. 1.)[18]
이이 오죽헌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01.jpg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02.jpg
(가) 만원권
(1973. 6. 12.)
세종대왕, 무궁화 경복궁 근정전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03.jpg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04.jpg
(나) 만원권
(1979. 6. 15.)
세종대왕, 자격루 경복궁 경회루
  • 3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가 오천원권 → 가 만원권 → 다 오백원권 → 가 천원권 → 나 오천원권 → 나 만원권 순서이다.

신토불이의 정신으로 수입산을 버리고 국내산을 쓰자는 운동이 크게 벌어지면서 적극 도입된 결과이며, 근본적인 도입 목적이기도 하다.[19] 1966년 처음 원화 동전(1원, 5원, 10원)을 생산하면서 이전권 저액 지폐의 입지가 크게 좁아졌다. 5천원권은 영국 데라루의 원판을, 1만원권은 일본 조폐국[20]의 원판을 사용하여 찍어냈기 때문에 둘 다 이질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이의 이목구비는 서양인에 가까운 모습이고, 그나마 세종대왕의 존안은 동양적인 외모로 그려졌다.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10000wonsample.jpg
박정희의 친필 서명이 들어간 만원권 시제품
원래 1만원권은 5천원권과 동시에 내놓을 예정이었으나 1년 늦게 등장했다. 그리고 디자인도 당초엔 달라서 앞면에는 석굴암의 본존불상, 뒷면에는 불국사가 들어갈 예정이었다. 참고로 불국사의 경우에는 복원사업 완료 이전이라 지금과 모습이 좀 다르다.

원판이 완성되고 시제품[21]을 찍어내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재가를 받고 친필서명까지[22] 받아낸 다음 공표하였지만, 양대 종교단체 모두의 반발을 감안하지 않은 탓에 무산되었다. 우선 기독교계는 '불교만 편애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면 불교계는 환영했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신성한 불상을 세속의 상징인 돈에 올릴 수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23] 결국 양대 종교단체가 저마다의 이유로 각각 심하게 반발하여 처음부터 다시 만드느라 1년 늦게 나왔다. 하지만 이미 주문한 용지까지 폐기할 자금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냥 인쇄되었다. 덕분에 가 만원권 왼쪽 은화의 석굴암 본존불상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관련 기사.

참고로 1천원권의 경우는 모종의 이유로 늦어져 내놓을 시기를 놓쳐버렸고, 나 오천원/만원이 나올 시기에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다 오백원권은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기호 2자리 + 숫자 8자리 일련번호를 사용한 지폐가 되었다. 이 지폐 이후에 나온 모든 지폐에는 기호 3자리 + 숫자 7자리의 일련번호만 사용하였다.
2.2.1.4. 4차
1983년에 등장한 시리즈로, 현재의 화폐 체계가 완전히 정착된 시기다. 이때부터 정확히 일반인들에게 익숙한 지폐 3+1종과 동전 5+1종[24] 체계가 되었다. 재질도 다른 것으로 바꾸었고[25], 위조방지장치도 크게 강화되었다. 시각장애인 식별표식도 이때부터 달기 시작한 것.
앞면 뒷면
파일:/image/kor/img/mm_img25.gif
파일:/image/kor/img/mm_img26.gif
(나) 천원권
(1983. 6. 11.)
이황, 투호 도산서원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17.jpg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18.jpg
(다) 오천원권
(1983. 6. 11.)
이이, 벼루[26] 오죽헌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19.jpg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20.jpg
(라) 오천원권[27]
(2002. 6. 12.)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05.jpg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06.jpg
(다) 만원권
(1983. 10. 8.)
세종대왕, 자격루[28] 경복궁 경회루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07.jpg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08.jpg
(라) 만원권[29]
(1994. 1. 20.)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09.jpg
파일:/image/kor/contents/money/mm_img10.jpg
(마) 만원권[30]
(2000. 6. 19.)
  • 4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나 천원권, 다 오천원권 → 다 만원권 → 라 만원권 → 마 만원권 → 라 오천원권 순서이다.

구권이긴 하지만 23년 간 쓰인 역사가 있어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도 많고, 간혹 가다 시중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 편의점 아르바이트와 같이 포스기를 사용하며 현금을 많이 만지는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면 심심찮게 볼 수 있다.[31] 운 좋으면 장롱 구석에 잠자고 있는 구권을 찾을 수 있을지도. 다만 엄연히 회수중에 있으므로 한국은행 본점이나 지역본부로 들어가게 되면 그대로 폐기된다. 일부 시민들은 구권이라는 가치와 1990~2000년대의 추억 때문에 은행에 예입, 교환하지 않고 소장하는 경우도 많다.[32]

이들 중 오천원권은 특히 보기가 힘든데, 77246 위조지폐 유통사건으로 오천원권 위폐가 창궐해 한국은행에서 빠르게 회수해서 폐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2.2.1.5. 5차 (현행권)
대한민국의 현행 지폐
권종 천원권 오천원권 만원권 오만원권
도안 <colbgcolor=#008275> 전면 이황, 명륜당, 매화 이이, 오죽헌(몽룡실)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신사임당, 묵포도도, 초충도수병
후면 정선의 계상정거도 신사임당의 초충도 2점 혼천의¹,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체 망원경² 어몽룡의 월매도
이정의 풍죽도
크기 136mm * 68mm 142mm * 68mm 148mm * 68mm 154mm * 68mm
¹혼천시계가 너무 커서 혼천의만 분리해서 그려 놓았다. 실물은 고려대 박물관에 있다.
²보현산 천문대에 있다.
앞면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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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000 뒤.jpg
(다) 천원권
(2007. 1. 22.)
이황, 명륜당, 매화 정선의 계상정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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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오천원권
(2006. 1. 2.)
이이, 오죽헌(몽룡실) 신사임당초충도 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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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만원권
(2007. 1. 22.)
세종대왕, 일월오봉도,
용비어천가
혼천의,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체 망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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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오만원권
(2009. 6. 23.)
신사임당, 묵포도도,
초충도수병
어몽룡의 월매도,
이정의 풍죽도
  • 5차에 속하는 지폐들의 정확한 등장 순서는 마 오천원권 → 다 천원권, 바 만원권 → 가 오만원권 순서이다.

2006년 1월 2일에 위조 비율이 가장 높았던 5천원권이 처음 교체되면서 데뷔하였다.

미국 달러처럼 고풍스러웠던 이전까지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유로화처럼 밝고 시원시원해졌다. 이에 따라 각 권종을 상징하는 동물[33]이 사라졌으며 독일 마르크화나 스위스 프랑화처럼 모더니즘 스타일로 디자인 방향이 전환되었다.[34] 굳이 따져본다면 시기는 스위스 프랑이 좀 더 빠르지만 유통된 적이 없고, 일련번호 배치 등의 레이아웃은 독일 마르크화에 더 가까운 편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 최초로 5만원권이 발행되어 1만원권을 밀어내고 최고액권 자리를 차지하였다.

신권을 막 접했던 시기의 국민들은 지폐의 밝고 선명해진 색상, 줄어든 장식성, 얇은 돋움체 글꼴, 비교적 작은 크기에 당황해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비난 여론도 높았다.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돈이 돈답지 못하며 장난감 같아 촌스럽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현대적인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2007년 1월 22일 1천/1만원권 등장, 2009년 6월 23일 5만원권 등장[35]까지 거친 이후론 이러한 디자인도 어느 정도 수긍하는 분위기이며 크기가 작아져 휴대가 편해진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다만 여전히 글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일부의 반응도 존재한다.

등장 당시엔 (짧지만) 호경기였는데다 20여년만의 디자인 개혁과 맞물려 대중매체에서 고가 수집품에 관한 방송을 틀어줘서 잠시 일반인들 사이에 수집 재테크 바람이 불었다. 뭔가 그럴싸해 보이고 오래되어 보이는 것이 눈에 띄면 지식포털 등에 무작정 감정부터 해달라고 징징거리는건 기본, 심지어 판매한다는 글 올리고 설레발 치는 것은 물론, 빠른 번호가 비싸게 팔린다는 뜬소문이 퍼져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국은행 앞에 전날부터 진치고 기다리는 진풍경까지 벌여졌었다. 지금은 불경기가 이어지면서 확실히 가라앉은 상태. 여튼 일반인들에게 가치로서의 돈이 아닌 "화폐"라는 물건에 관한 관심을 크게 키워준 시리즈다.[36]

5만원권 발행 당시에는 지하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는데, 2018년에는 5만원권의 회수율이 60%를 돌파했다. 2014년의 20%라는 낮은 회수율에 비하면 크게 오른 것이다. 이 문제로 골치를 앓는 화폐가 바로 유로화인데 500유로권 지폐가 한화로 70만원 상당이니 이 문제로 인해 유럽연합에서 마저 500유로권 지폐 사용을 자제하고 있으며 발행은 2019년부터 이미 중단되었다. 정작 유로보다 값어치가 큰 스위스 1000프랑 (130만원)은 현지에서 계속 유통 중이다. 폐지 여부에 대해서도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37] 다른 나라에서도 10만원대 초반까지는 폐지가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위조율이 높은 5천원권1만원권, 5만원권의 지폐에는 앞면에 홀로그램이 추가되었고[38] 보는 각도에 따라 한반도 지도와 태극무늬, 사괘가 나타난다. 또한 일련번호도 해외에서의 위조지폐 발견 시 수사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한글+숫자에서 로마자+숫자 조합으로 변경되었다. 특히 한반도 지도를 보면 울릉도와 함께 독도도 그려져 있는데, 흥미로운 점은 이 홀로그램은 국산이 아니라 일본 회사가 만들었다. 12 국내에는 마땅한 홀로그램 기술이 없어서 외국 업체에 입찰 공고를 냈더니 일본 회사가 가장 싼 값을 불렀다고.

코로나19로 인해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자 고액권인 5만원 보유가 급증해지면서 5만원권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 # 한은 측에서도 5만원권 발주를 3배 늘렸다고 밝혔다. # 하지만 5만원권 부족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 또한, 한국은행은 5만원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

2020년 11월, 100원 주화, 5천원권 지폐, 1만원권 지폐, 5만원권 지폐의 도안이 바뀔 예정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기존 지폐 도안인 표준영정을 그린 화가들의 친일 행적 논란으로 인해 표준영정이 해제되고 신규 표준영정이 제정되며 생긴 조치로, 100원 주화부터 우선적으로 바뀔 예정이라고 한다. 실제 교체에는 4~5년이 걸릴 것으로 예정된다. #[39] 물론 아직 소식이 없는 걸로 보아 2025년이나 그 이후에나 소식이 나올 듯 하다.

2.2.2. 동전

<colbgcolor=#808080,#7f7f7f> 대한민국 주화
액면가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500원
도안 무궁화 거북선 다보탑 벼 이삭 이순신

공식적으로는 여섯 종류이나, 현대에 들어서는 네 종류만 통용된다. 이런 의외성으로 토막퀴즈를 낼 때 자주 이용된다.

2.2.3. 수표

엄밀히 따지면 화폐가 아니라 유가증권이다. 다만 사실상 현금과 마찬가지로 쓰이며, 특히 은행에서 발행하는 자기앞수표는 사실상 화폐 취급된다. 그러나 해외에서의 국내 수표는 종류를 불문하고 환전이 불가능하다.

3. 기념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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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2000원권 기념 지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기념은행권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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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권과 달리 대한민국의 원화는 유통목적의 2단위 지폐가 발행된 적이 없다. 하지만 2018 평창 올림픽의 개최를 기념하여 2000원권 기념 지폐를 발행한 역사가 있다.

4. 위상

기축 통화미국 달러유로, 일본 엔, 파운드 스털링, 캐나다 달러, 스위스 프랑 등의 핵심 금융 국가의 화폐와 비교한다면 지명도가 낮은 편이다. 남북분단 상황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42]로 인해 세계 10위권이라는 거대한 경제규모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원화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된다.

환율 쪽에서도 환전받을 수 있는 나라 수가 적은 편인데 미국 달러의 아성에 도전하는 유로화[43], 국제적으로 신뢰도가 높은 일본 엔화, 금융, 무역 거래량이 많으며 안정적인 자산으로 분류되는 파운드 스털링과 같은 주요 통화 외에도 비슷한 체급의 경제 규모를 갖춘 캐나다 달러, 호주 달러와 비교해서도 그 위상과 거래량이 다소 낮은 편이다.

미국 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통화에 대한 가치는 달러화를 통한 크로스체크, 즉 재정환율(arbitrage rate)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국제금융시장에서 한화는 그 동향을 신경 쓸 필요가 적으며 미국 달러만 보면 가격이 바로 나온다. 이러한 연유로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다루는 외화는 오로지 미국 달러 뿐이었고 그 외 통화는 미국 달러를 중재로 놓고 다뤄왔다. 2014년부터는 달러 없이 원 - 위안화 간 직거래가 시작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는 저평가를 논하지만 대한민국의 원화도 나름의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5년 한국은행이 원론적으로 외환보유고달러에만 집중하지 않고 다양화하겠다고 발표했을 당시에 일시적이지만 국제금융시장에 큰 충격이 가기도 했다. 관련 기사 관련 기사2 소위 BOK 쇼크로 불리는 사건으로, 이성태 당시 한국은행 부총재가 해당 발언을 한 다음날 바로 원론적인 선에서 말한 것이지 즉각적으로 정책으로 옮기겠단 뜻은 아니었다고 해명을 했다. 경제규모가 상당하기에 한국 증시에 악영향이 올 경우 타국 증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인 2005년이었음에도 이 정도의 파급력이 있었다.

아시아에서는 위상이 보기보다 높다. 한국에서 환전수수료가 높은 나라의 화폐는 시중은행에서 해당국 화폐로 직접 환전하기보다는 명동, 서면 등지의 사설 환전소를 찾아가거나, 은행에서 환전수수료가 매우 낮은 미국 달러로 환전하여 현지에서 미국 달러를 현지 화폐로 다시 환전하는 이중환전을 하고 있다[44]. 말하자면 범세계적인 완전한 경화(Hard Currency)는 아니나 역내(域內)에서의 입지는 상당하다는 뜻이다. 일단 미국달러를 큰 수수료 없이 언제든지 바꿀수 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한국 화폐의 위상이 생각보다 높음을 알 수 있다.

필연적으로 북한 내에서는 취급이 되지 못한다. 사실상 휴지 조각인 북한 원에 비하면 대한민국 원은 비교가 불가한 압도적인 가치를 가졌음에도 남한과 교역이 사실상 단절되었고, 정치 및 군사적으로도 적대적인 상황에 기인한다. 다만 탈북민들이 고향의 가족, 친지들에게 보내는 금전(대북송금)은 한국 원화로 진행된다. 물론 국영상점에서는 쓸 수는 없지만 보위부 상납금, 장사 밑전, 장마당 등에서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국제 외환시장에서 2010년 기준으로 1.5%정도의 가치를 차지한다. 액수가 상대적으로 적다 보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원화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많으며, 이것이 정치적 이유를 띄게 되는 경우 비난을 받기도 한다. 동아시아에서는 거의 모든 은행이 대한민국 원화를 취급하지만, 수수료는 다소 비싼 편이다. 또 외국에서 원화를 취급하는 은행이나 환전소는 많지 않고, 대부분 상당한 환전수수료를 감당해야 한다.[45]

통화선물시장이나 외환거래를 제공하는 국내 은행의 경우 G8 통화[46]홍콩 달러를 유럽식으로 표기한다. 선물시장에서는 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 거래만 유럽식 호가로 표기하며 일본 엔이나 다른 통화의 FX 마진을 취급하는 외국계 회사의 경우 일본 엔, 홍콩 달러 등 역내 통화에 대해서는 미국식 호가로 표기하여 거래 편의를 제공한다.(예: 100원/엔= 8.9421엔)

외국계 FX 마진 회사를 빼면 나머지 회사나 은행에서는 유럽식으로 계산되는데, 한 예로 스위스 1 프랑의 미화 환산가가 1.0314이고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1038.45원 일때 스위스 프랑에 대한 원화에 대한 가치 계산은 이렇게 된다. 1.0314(스위스 프랑에 대한 미국 달러 환산가)×1038.45(미국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 = 1071.06(소수점 두번째 자리 올림 적용)이다.

5. 액면 대비 가치

한국 시장에서 십원 미만의 액수는 사실상 소멸된 상태이며, 오십원 미만의 액수도 조세행정이나 회계상 필요에 의해 전산으로만 관리될 뿐이고, 시중에서 현금으로 통용되는 경우는 봉투 값이나 거스름돈 정도에 불과하다. 때문에 한국 시장 상품의 소매가격은 기본적으로 백의 자리 이상부터 시작한다.

2019년 문재인 정부 당시 화폐 개혁에 대한 얘기가 진지하게 논의되어 화두가 된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로 논의에만 그쳤다. 당시 한국은행 총재 이주열 또한 리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한 적도 추진할 계획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2020년 10월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참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과 고액권 신규 발행 계획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2010년대 후반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조사에 반응은 반대가 52.6%, 찬성이 32%로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 이유가 '갑작스러운 화폐단위 변경으로 인한 혼란'이 제일 많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현금 없는 사회에 이미 진입하여 고액이든 소액이든 결제를 할 때에는 현금이 거의 필요 없고, 외국인이 대한민국 국외에서 발행한 비자카드, 마스터카드의 한국 사용도 대부분 문제 없어(설사 DCC가 적용될지라도)[47]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언젠가는 리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니 부담 적을 때 해버리자는 주장이 죽지 않고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 이후 리디노미네이션이 없었던 것이 영향을 끼친다. 대표적인 고액권 지폐인 만원권은 현재 물가의 수 배 내지는 수십 배 낮던 1970년대에도 이미 존재하던 생각보다 유서깊은 권종이다. 이 때의 화폐가치를 살펴보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수 만원 선에서 월급을 받았으며, 짜장면 한 그릇이 100원 하고 세뱃돈은 수백 원 단위로 받았으며 마지막 리디노미네이션이 이루어질 적인 1960년대 초반 신문에는 각종 비리를 다룬 기사에서 뇌물의 단위가 수천 원 내지는 수만 원 정도로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때의 만 원은 현재의 만 원과 액면가가 동일하지만 가치는 경제성장+물가상승으로 매우 폭락해 버렸다. 1970년대에 물가상승으로 골머리를 앓았을때나 1990년대에 여러차례 정치, 경제적인 격변기가 있었을때 화폐개혁을 할 기회는 있었지만 흐지부지되기 일쑤였고, 그 결과, 폭발적인 경제성장기 동안의 리디노미네이션 부재로 액면가 대비 가치가 낮은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디노미네이션 문서의 한국 원화의 디노미네이션 논의 문단을 참고할 것.

한편, 대한민국 원화의 액면가에 1000을 나누면 미국 달러스위스 프랑, 유로와 가치가 매우 비슷해지기 때문에, 2010년대 들어 국내 일부 관광지나 번화가의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메뉴판에 0 세 개를 떼고 대신 k를 붙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예: 아메리카노 3,000원 → 3.0k, 비빔밥 6,500원 → 6.5k) 그리고 대부분은 여기서 k조차 안 붙인다. (예: 아메리카노 3,000원 → 3.0[48]) 또 그 이전부터 쓰인 줄임법으로 큰 액수를 말할 때 '만' 단위를 생략하는 경우가 있다. 10만, 혹은 100만이 넘어가는 큰 금액을 이야기할 때 편의상 '만 원' 부분을 떼어버리는 것. 이런 줄임법은 특히 부동산 거래나 대규모 주식 거래 등에서 흔하며, 아예 이 쪽 바닥에서는 기본 호가 단위를 '만원'으로 정해놓고 5억 6천 700만원을 56,700이라고만 표기하는 식의 관행이 형성되어 있다.

달러, 유로 같은 서구권 메이저 통화 외에 이웃나라인 일본 엔과도 단위가 너무나 비슷하며 공교롭게도 원-엔 환율 계산도 굉장히 쉽다. 원화의 액면가에서 0 하나를 줄이면 엔화와 비슷한 가치가 된다. 이 때문에 한일 양국을 바삐 오가는 제3국인들은 출입국 전후로 식당이나 호텔 등지에서 자릿수를 헷갈려서 난처한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물론 한국인과 일본인 입장에선 굳이 복잡하게 계산할 것이 없어 해외 직구나 여행과 같은 교류에 있어 편리한 점이다.

6. 기타

  • 한국에서도 계산의 편의성 등을 위해 구미권 선진국에서 흔히 사용되는 2 단위 화폐를 도입[49]하자는 논의가 있기도 했지만 그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시아에서만 해도 너무 급하게 도입했다가 실패한 사례가 둘씩이나 있기 때문이다. 2000년 일본에서 2000엔권 지폐가 발행되었을 때 터졌던 문제가 재현될 수 있다. 대만도 2단위 화폐[50]를 애써 만들었으나 시중에 원활하게 유통되지 않고 있다. 동북아시아에서는 그나마 몽골, 북한, 홍콩, 마카오에서 2단위 화폐가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이천원권 지폐는 평창올림픽 기념으로 나온거라 통용되지는 않는다. 한국 역사상 2단위 지폐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에 2단위 화폐가 통용된 적이 있었으며 미국 달러화의 쿼터(25센트)와 비슷한 두돈 오푼(2錢5分) 백동화도 통용된 적 있다.
  • 유통용 기념 화폐[51]를 단 한차례도 만든 적이 없다. 심지어 동북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발행 경험이 없다. 2단위 화폐는 논의라도 했었으나, 통용 기념 화폐는 논의조차 없었다.
  • 한 해 5억 장 정도의 화폐가 손상 등의 이유로 폐기되고 이로 인한 교체비용이 매해 500억 이상 든다.
  • 영어가 공용어가 아닌 나라임에도 발권은행명을 영어로도 표기한 화폐이다. 이는 영어가 공용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국 화폐에 영어를 표기한 국가 중 하나인데, 동북아 국가 중에선 2024년까지는 유일하다.[52]
    예를 들면 한국은 "Bank of Korea"라고 영어로 표기했지만, 일본은 "Nippon Ginko", 중국은 "Zhongguo Renmin Yinhang" 등 모두 현지어의 로마자 표기이다. 같은 방식으로 한국은행을 표기하면 "Hangugeunhaeng"[53]이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영어가 공식적으로 외국어의 지위에 있음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일이라 여길 수 있으나, 사실 구한국 시절부터 뒷면에는 The Bank of Korea를 적어왔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보면 특이한 것은 아니다. 특기할 만한 점은 구한국은행권 뒷면에 영어로 “00엔 상당의 금이나 일본은행권으로 교환을 보증함”이라 적혀 있는데 여기서 일본은행은 “The Bank of Japan”이 아닌 “Nippon Ginko”라 적혀 있다. 같이 적혀 있는 “The Bank of Korea”를 생각하면 꽤나 묘한 부분. 한편 식민지화 이후에는 구한국은행이 조선은행으로 바뀜에 따라 지폐 표기 역시 “The Bank of Chosen”으로 바뀌게 된다. 朝鮮의 일본식 발음인 Chosen을 적었다.
    한편, 2024년 유통을 계획 중인 새 엔화 지폐의 전면을 보면 조그맣게 Bank of Japan을 적어놨다.# 이미 인쇄 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에 도안이 변경될 가능성은 없으며, 이로서 동북아 국가 중에서 영어가 공용어가 아님에도 영어로 은행명을 표기한 국가가 하나 늘게 된다. 다만 뒷면엔 여전히 Nippon Ginko가 적힌다.
  • 4차까지는 뒷면의 영문 표기가 THE BANK OF KOREA였지만 5차부터는 BANK OF KOREA로 바뀌었다. 이로 인해 영문 표기가 틀렸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사실 중앙은행을 지칭할 때 관례적으로 the를 빼는 경우도 많다. Bank of Japan이나 Bank of England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 밖에 인도, 뉴질랜드, 이스라엘도 the를 뺀다. 출처
  • 위조지폐 방지 홀로그램과 띠의 위치, 지폐의 왼쪽에 존재하는 공백의 면적 등이 각 권종개체마다 살짝 다르다. 고액권으로 갈수록 이 현상이 두드러지는데 1천원권은 5장당 2장, 5만원권은 20장당 2장 정도 완벽하게 동일한 지폐가 나온다. 이렇게 발행되는 이유는, 홀로그램 및 은선(隱線)의 위치가 다른 경유는 고의로 그러는 것으로, 무언가를 덧씌우고 삽입한 이상 두께가 달라지기 때문에 다발(100매)이나 관봉(1000매)으로 묶음 포장시 부풀어오르면서 끝이 휘거나 손상되는 것을 방지함과 동시에 쌓아올리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공백의 위치(면적)가 달라지는 것은 단순한 인쇄 및 절단 기술력 부족인 것이 대부분이나, 똑같은 모양으로 복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고의책이기도 하며, 한국은행 현행권의 경우는 후자에 가깝다.
  • 한국 이외에 한국인이 유독 많이 찾는 몇몇 관광지에서 통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중국 장가계가 있다.
  • 대한민국에서 북한 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제 3국을 통해 들여왔다면 불법이 아니다.관련 판례도 있다. 물론 화폐로서 통용되는 것이 아니며 수집품 이외의 가치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 손 소독제로 인해 크기가 변해 위조지폐로 오인할 수도 있다.#
  • 달러 대비 표기되는 숫자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해외에서는 억 단위의 원화를 봤다가 달러로 대비했을때 비교적 적어지는 금액에 역으로 놀라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해외에서 인기가 많았던 오징어 게임의 우승상금이 있다.
  • 올바른 띄어쓰기는 '한글 맞춤법 제43항'에 따라 띄어 쓰기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금액을 적을 때는 변조 등의 사고를 방지하려는 뜻에서 붙여 쓰는 게 관례로 되어있다.한국은행 홈페이지, 국립국어원 한글 맞춤법 제5장 제2절 제44항 참고

6.1. 등재된 인물들에 대한 논란

백원 주화의 이순신과 만원권 지폐의 세종대왕에 대해서는 이견이 아예 없지만,[54] '이황, 이이, 신사임당이 과연 화폐에 등록이 될 만한 사람들인가?'하는 의문을 가진 사람이 절대다수다.

나름대로 해당 분야의 위인이라는 점에는 공감해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라는 위치에는 걸맞지 않다는 정도의 지적이다. 먼저 천원권과 오천원권에 등장하는 이황과 이이에 대해 말하자면 두 인물은 모두 유교 철학자다. 조선이면 몰라도 현대 대한민국에서 유교는 문화양식의 근간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더이상 국가체제의 근간이 되는 이념도 아니고, 과거 경쟁 상대였던 불교기독교가 지금도 상당수 국민들의 주요 사상인 것과 달리 유교는 종교학적[55]으로는 그 세력을 거의 잃어버리다 못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상태로, 역사학을 연구하는 경우가 아닌 한 더 이상 깊게 다뤄지는 학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에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유학자를 한 사람도 아닌 여러 명 넣을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56][57]

이 때문인지 기타 서구권 선진국의 화폐 인물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그리고 100원 주화부터 5만원권 지폐까지의 화폐 모델 면면을 보자면 전원이 조선시대 초중반, 200여년 정도의 역사에 국한되는 인물들 뿐이다.[58] 한국의 장구한 역사가 무색하게 지폐 도안의 인물이 조선 초기라는 근세시대 일부에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우선 고대사[59]나 중세사[60], 조선 후기 인물[61]은 단 한 번도 화폐에 실리지 못했으며[62], 근현대 이후부터 대한민국이 수립되기까지 많은 업적을 이룩한 인물이 적지 않음에도[63] 과거 들어갔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을 제외하면 근현대의 한국인이 화폐에 들어간 적이 없는 점은 많은 지적을 받는 부분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긴 역사를 가진 중국/대만, 일본과, 같은 아시아권인 동남아시아도 대체로 근현대의 인물이 화폐 도안으로 채택되고 있다.

일본 엔이나 미국 달러에는 각각 근대 개화기에 큰 역할을 한 위인들이나 대통령제와 미국 헌법의 기초를 세운 위인들이 주로 들어가 있다.[64] 반면, 민주공화국을 표방하는 한국 화폐에는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한 인물들, 그러니까 독립운동에 헌신했거나,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면서 민주공화국 헌법의 기초를 세웠거나, 광복 후 독재에 저항하면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과 경제발전의 주역인 1세대 기업인들도 없다.[65]

다만 반론도 존재하는데, 위인이나 존경할 만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그 당대에는 내리기 힘든 감이 있고, 정부 수립 이후 아직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았으니 지폐에 올라갈 정도의 상징성 깊은 인물을 현대인물로 선정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시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현재 존경을 받는 이가 미래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현재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 이가 시간이 지나며 재평가되어 위인으로 추대되는 것도 가능하다. 건국 이래 역사가 짧은 한국으로써는 수십년의 시간이 더 지나야만 비로소 근현대 인물의 화폐모델 선정에 대해 이견이 없어질 것이다.[66]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거나, 한강의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빠른 경제성장에 공헌했거나, 문화예술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비정치적인 인물로 눈을 돌려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이 분야의 인물들이 지폐에 등재되는 경우는 매우 많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에서 단순히 그 분야의 업적만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수학, 과학 등 자연과학 분야의 인물이나 문학, 예술계의 인물이 잘 발굴되지 않고 국가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적어서 비정치적인 위인 꼽기가 정말 어렵다. 물론 오랜 역사를 가진 만큼 해당 분야에서 특출났던 위인이 아예 없진 않지만 그렇다고 이 인물이 화폐에 들어갈만하다!라고 바로 자긍심을 가질 만한 인물도 없는게 사실이다.

그리고 '경제성장에 공헌한 인물'의 경우에는 경제성장을 특정한 인물의 공로로 돌리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병철이나 정주영 같은 기업인들도 일단 그들의 행위는 사익을 추구하는 게 우선이었고, 경제성장은 그들이 사익을 위하여 경제활동을 벌인 것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직업에 종사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지 결코 뛰어난 기업가가 자기 혼자 다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공로는 특정한 한 사람에게 돌리기가 곤란하다.[67] 유일한 박사의 경우는 평생 독립운동에 이바지하고 국익을 위해 기업을 운영한 인물이지만 역시 한국 경제 재건의 공로를 전적으로 가졌다고 할 수는 없는 케이스다. 굳이 따지자면 경제성장에 대한 공은 전 국민에게 돌려야 할 것이다. [68]

먼 과거로 시간을 돌려 자연과학이나 예술 문학계, 혹은 경제계에서 세계사적으로 업적을 남긴 사람은 자세히 찾아보면 적지 않게 위인전에 실릴 만하게 있다. 하지만 이들은 대중적 인지도가 적다는 것이 문제이며, 국내에서라도 큰 흔적을 남긴 사람은 그에 대한 당대 기록이 크게 부실하다. 조선시대 이전까지는 상공문화에 대한 경시와 유교 통념상 어떤 위인이든 정치적인 것에서 떨어져 있지 않을 수가 없다. 이름 남긴 사람 치고 정치와 안 엮인 사람이 없기 때문인데, 일례로 장영실은 벼슬에서 쫓겨난 이후로는 행방조차 알 수가 없는 지경이다. 즉, 이름을 남길 정도의 위인들은 뭐가 되었든 정치에 이름을 새기지 않으면 거의 어려웠다.

초상화나 사진 등이 별로 안 남아있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애초에 한국인이 제일 존경하는 세종대왕와 이순신 장군 모두 공식 초상화가 존재하지 않으며 현재 우리가 보는 영정은 다 현대에 와서 상상해서 그린 작품이다.[69] 정약용의 초상화만 해도 논란이 있다. 그렇다면 사진나 초상화가 존재하는 근현대 인물을 화폐 모델로 쓰는 것이 좋을텐데, 앞서 서술했듯 그것도 또 쉽지가 않다.

비교적 최근에 신사임당이 추가되기 전까지는[70] 모두 이(李)씨라는 점도 지적 대상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이씨여야만 화폐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웃긴 도시전설은 인터넷 시대 이전부터 오랫동안 믿어지기도 했다. 우스개로 50원 동전에도 이씨(이삭)가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첫 번째 예외가 된 신사임당조차도 따지고 보면 오천원 이이의 어머니이자 이씨 집안 며느리. 정부 수립 후 초기에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초상이 지폐에 들어가기도 했는데 이승만 역시도 전주 이씨다. 한편으로 현재는 성균관대 이사장, 학생, 학부모 등이 지폐에 실렸다는 드립이 도는 중.

5만원권 발행 결정 이후, '5만원권에는 여성인물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이유만으로 신사임당이 추가되었으나 '신사임당에게 무슨 역사적 업적이 있냐'는 이유로 '차라리 허난설헌 또는 유관순 등이 더 낫다'는 의견이 현재까지도 나오고 있다. 물론 허난설헌은 '허균에 의해 과대평가되었다'는 이야기가 많고, 유관순 또한 3.1운동과 관련되어 '너무 유관순에 대해서만 기억한다'는 소수 의견도 있으며, 독립에 실질적인 중추 역할을 한 것도 아니므로 화폐에 등재되는 건 무리라는 시선도 존재한다. 또 일부에서는 거상 김만덕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다. 돈을 다루는 상인이라는 직업에 종사한 사람이라는 점, 뛰어난 인품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사람이라는 점, 전근대 사회에서 드문 스스로의 힘으로 자수성가한 여성이라는 점 등의 상징성이 화폐의 도안으로 사용되기에 매우 적절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소수 의견이지 실제로 들어가기엔 상징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문제는 신사임당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실제 신사임당과 똑같은 초상화를 썼어야 했으나 5만원권의 신사임당은 실제 신사임당과는 다르게 그려 놓았다. 이는 찬반 논란이 없는 '진짜' 문제라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최초의 여성 변호사이자 사회 운동가 이태영 변호사를 여성 모델로 제시하기도 한다. 5만원권 인물 선정작업이 한창 이루어질 즈음 국회 여성의원을 상대로 한 여성인물 적격성 설문에서 여성의원들의 선호 후보로 신사임당을 이어 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중적으로 지폐 도안에 들어가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독립운동가들의 경우 학계의 입장과 좌우의 정치색에 따라 입장이 갈려 양분되기 때문에 논란이 많아진다. 논란이든 뭐든 국민투표로 정하면 학계나 정치계의 논란을 잠재우긴 하겠지만, 이건 인지도 게임으로 전락할 수 있을 뿐더러 막대한 비용을 들일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비용문제를 들어 도안교체를 반대하는 의견도 있으나, 그저 핑계일 뿐이다. 대한민국 원화의 지폐 도안인물이 1970년대 이후 한번도 바뀌지 않은 것과 달리, 일본 엔영국 파운드 스털링은 무려 세 차례나 갈아엎었다. 그것도 IMF 특별인출권을 구성하는 화폐라 디노미네이션이 거의 불가능한 화폐이다.[71] 2006년부터 시작된 5차 현행권 발행과정에서 ATM과 자판기의 지폐 인식 기기 교체가 있었지만, 지폐 크기와 인식코드가 달라져서 생긴 일이라 단순히 도안인물 변경으로는 막대한 비용을 걱정할 일은 없다. 현금 거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지금은 유통지폐 역시 적어서 2006년보다 훨씬 적은 비용이 들 것이다.

독립운동가들이 들어갈 경우 일본과의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72] 사실 김구가 10만원권 도안에 들어갈뻔했던것을 생각하면 어른의 사정이 개입되어서가 큰듯하다.[73] 사실 다른 국가의 화폐도안 인물을 봐도 독립운동가가 들어가는 사례가 한둘이 아니기도 하다. 과학자들도, 장영실은 표준 영정이 없고, 우장춘은 반은 일본인인데다 아버지가 을미사변과 관련이 있으며, 석주명도 서울 수복 직후 경찰에게 살해된 정황이 명확하지 않아 우익들의 반발을 살 수 있다. 혹시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가 나온다면 그때는 이견이 없겠지만 이도 해당 인물이 사망한 후에나 논할 수 있을 문제다.

아직 발행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2007년에 5만원권의 신사임당과 함께 차기 나올 10만원권은 각종 여론조사에서의 압도적인 지지로 백범 김구로 도안이 확정되었다.#

파일:/image/022/2007/11/06/mb1106-201.jpg
고액권 예상 도안 출처

여담이지만 세종대왕급 구축함 3척에 위의 인물이거나 관련된 이의 이름이 들어간다. 만원의 세종대왕 본인은 더 말할 것도 없고, 5천원의 율곡 이이, 서애 류성룡인데 잘 알려져있다시피 류성룡은 100원 이순신의 절친이자 이순신을 전라좌수사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이이는 심지어 이순신의 먼 친척이며 세종대왕을 제외하면 이순신과 류성룡과 이이 3명이 같은 시기를 산 셈이고 나란히 후손들의 화폐와 해군 군함에 이름이 올라간 것.

1960년대 100환 지폐에는 조폐공사 여직원과 그 아들을 모델로 썼다. 대한민국 환 문서 참조.

평창 동계 올림픽 기념 2,000원권 지폐는 1948년도 올림픽의 한국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 기념 주화(동전) 중 하나가 미국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그레이시 골드의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경기 장면으로 만든 것이라는 논란이 일고있다.[74] 네티즌들의 의견은 사진을 직접 갖다 쓰지 않았을 뿐 트레이싱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6.2. 특별인출권 편입 가능성?

2015년 12월 1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자유롭게 사용가능'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통화들이 SDR 통화바스켓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된 2015년 11월 13일 국제통화기금 자체 보고서에 따르면 새롭게 편입된 중국 위안 외에도 IMF 기준을 충족하는 통화들이 있다. 보고서는 "자유롭게 사용가능한 통화로 결론 내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통화들이 더 있다"고 밝혔는데 블룸버그에서는 한국 원화가 편입 후보 1순위, 그 다음으로는 싱가포르 달러, 캐나다 달러라고 한다. 관련기사

하지만 예측한 2021년이 되었으나 IMF에서는 SDR 통화 비중 수정이나 대한민국 원화를 비롯한 다른 통화 추가와 관련된 소식이 없었다.

7. 원화 환전이 가능한 해외 국가들

2001년 외환거래자유화 덕분에 원화 환전 가능 국가 수가 많아졌다. 2022년 10월 기준 아래 국가들의 사설환전소, 은행에서 환전이 가능하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원화에서 자국 통화로 환전시 수수료는 기본이 8%이고 최대 50%를 뗀다.
  • 아시아: 홍콩[75], 마카오[76], 일본, 대만[77], 중국[78], 몽골[79], 네팔[80], 태국[81], 라오스[82], 베트남[83], 필리핀[84], 인도네시아[85], 말레이시아, 싱가포르[86], 미얀마(?), 인도[87], 브루나이[88], 캄보디아[89]
  • 오세아니아: 호주[90], 뉴질랜드[91], 피지[92]
  • 아메리카: 미국[93][94], 캐나다[95], 브라질, 볼리비아[96], 아르헨티나[97]
  • 유럽: 영국[98], 독일[99], 프랑스, 폴란드[100][101], 러시아[102][103], 네덜란드, 체코, 헝가리[104], 불가리아[105], 카자흐스탄[106], 튀르키예, 크로아티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핀란드, 에스토니아[107],[108], 리투아니아[109],[110], 라트비아
  • 아프리카: 이집트[111], 탄자니아[112]
  • 중동: 이스라엘[113], 카타르,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8. 훼손, 오염, 구권 환전

대한민국 내에서 훼손·오염 또는 마모, 구권 등의 사유로 유통에 적합하지 않은 화폐는 수수료를 받지 않고 유통에 적합한 화폐로 한국은행 본지점에서 직접 가서 환전 신청해야한다.

교환금액을 판정하기가 어렵지 않은 손상화폐, 구권의 경우에는 가까운 은행, 농협, 수협 및 우체국에서도 교환이 가능하다.

만약, 외국에 있고 대한민국 원화 환전 가능한 곳이라면 현지 시중은행에서 환전 가능 여부를 확인하자 사설환전소이라면 환전 거절 당하거나 많은 수수료를 징구할 가능성이 크다.

오염, 훼손, 마모된 지폐 경우의 교환에 대한 한국은행 설명
구권 지폐 교환에 대한 한국은행 설명

9. 금리

기준금리 기준으로 한국은행 총재가 자료와 의견을 참고하여 결정한다. 최저치는 2020년 5월 28일 0.5%이며, 최고치는 1972년 8.3 사채 동결 조치를 계기로 27.5%이다.

10. 원화의 외환보유고, 무역거래 및 외환 거래결제 차지하는 비중

무역결제와 외환거래에서 전세계 사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기준으로 0.01%으로 시작하여 최고치는 2018년 2.7%이다.
연도무역결제와 외환거래에서 전세계 사용량 비중
2009년1.1%
2010년1.5%
2012년1.2%
2013년1.3%
2016년1.6%
2018년2.7%
2019년2%
2020년1.65%
2021년0.85%
2022년1.9%
2023년 %

현재 전세계 사용량은 약 1.9%로 세계 12위 규모이다.# 전세계 외환보유고에서 대한민국 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기준 IMF자료에서는 0.8%이라고 한다. 1980 ~ 2000년대에는 0.01%이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꽤 많이 커졌다고 보면 된다.

11. 원화 환전이 가능한 외국 통화 목록

11.1. 지폐

근거1 근거2 근거3 근거4 근거5[114]

2022년 5월 초반기 기준 국내 사설환전소 및 은행 기준이며 취급하는 곳이 있고, 불가능한 곳이 있으며 외국통화에서 원화에서의 환전만 허용하는 외국통화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나무위키에는 환전가능 목록이 예전에는 없었지만 위키백과에서는 몇년전부터 있었다.

외국인들이 영어 위키백과의 문서를 보고 자국 통화와 한국 시중은행이나 사설환전소 가능한 통화 목록를 보고 보유하고 있는 지폐와 동전을 보고 일부 지폐와 동전은 공항 지점이나 시중은행 오전 업무에서 환전하고[115] 자국 통화와 일부 지폐는 사설환전소에서[116] 환전하는 추세가 늘어난다고 한다.

하나은행 환전 관련 영어 위키백과
  • 지폐만 한정
  • 제한적으로 환전이 가능한 경우엔 # 표시.
  • 외화→원화로만 환전이 가능한 경우엔 ※표시.
  • 굵은 글씨는 주로 많이 환전되는 외국 지폐들

11.2. 동전

블로그 설명동전 환전소 네이버 블로그이다. 맨 아래에 돋보기 옆에 "취급"이라는 단어를 입력 이후 돋보기 버튼을 클릭한다.머니 플렉스 홈페이지, 여기에서 FAQ에서 Q13 내용 참고

2022년 10월 기준 국내 사설환전소 및 은행 기준이며 취급하는 곳이 있고, 불가능한 곳이 있으며 외국통화에서 원화에서의 환전만 허용하는 외국통화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 외국 동전만 한정
  • 굵은 글씨는 주로 많이 환전되는 외국 동전들
  • 제한적으로 환전이 가능한 경우엔 # 표시하며 #이 표시된 외국 동전 구입할 경우엔 해당하는 곳[139]에서 유선 문의가 필수
  • 살 때에는 은행의 현찰 매도율의 70% 적용되며 반대의 경우엔 매수율의 50% 적용
  • 예시: 필리핀 페소를 지폐 은행 측의 고객 환율기준이 매도/매수할때 가격이 24.65/22.7일때 필리핀 페소 동전을 구입할 경우 24.65원의 70%인 17.26에 적용된다. 그 반대의 경우엔 22.7원의 50%인 11.35원
  • 아시아: 일본 엔, 홍콩 달러, 중국 위안(#), 싱가포르 달러(#), 태국 바트(#), 대만 달러(#), 필리핀 페소(#), 베트남 동(#), 마카오 파타카(#)
  • 아메리카: 미국 달러, 캐나다 달러
  • 유럽: 유럽 유로, 스위스 프랑, 영국 파운드
  • 오세아니아: 호주 달러


[1] 대한민국 환의 공식 한자 표기였다. 원으로도 발음한다.[2]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00205000231[3] 이 문제 때문에 프로그래밍에서 큰 혼란을 빚고 있는 중이다.[4] 링크된 글 내용 중 오류들 (예를 들면 목포까지 갔다가 대전으로 돌아갔다든가)이 있고 기고자 개인의 주관도 섞여 있음을 주의.[5] 한국 정부 관계자가 대장성이 아닌 GHQ를 쳐들어간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 측 입장에서는 과거사 문제도 문제거니와 무엇보다도 "수도가 함락되어 언제 망할지도 모르는 나라"의 신권 화폐 도안 작업 및 발행 요청이다. 제대로 된 대가를 지불받을 거라는 보장이 없고 이는 한국은행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한국은행 도쿄지점이 직접 대장성과 협상하는 것보다, 일본을 통치하는 최고 책임기관이며 전쟁 참전을 결정한 맥아더의 GHQ에 협력을 요청하는 것이 훨씬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GHQ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당시는 일본 왕실마저도 연합군에 종속되어 있었으며 법안 다툼 때문에 회기를 넘겨버린 일본 국회의원들에게 GHQ가 어서 법안을 통과시키라는 지시를 하달하자 의원들이 시곗바늘을 뒤로 돌리고선 아직 회기가 안 지났다며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킬 정도였다.[6] 원래는 하루 만에 도안이 나왔는데, 이승만 대통령과 광화문의 모습이 실제와 다르다며 김진형이 사진을 가져와 다시 수정하느라 하루가 더 걸린 것이다.[7] 한국은행의 교환 정책에서 보면 발행 중지 화폐 중에서 50전권, 10전권 및 1원화는 동일한 액면의 화폐를 발행하지 않으므로 10원 단위가 되는 경우에만 교환이 가능하다고 명시되어있다.[8] 구권이라도 환전이 불가능한 시리즈가 있다.[9] 조선 엔은 圓이라는 한자 표기가 있었으나 1962년의 원화부터 폐지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한국의 원화 단위를 표기할 때는 그냥 'ウォン'이라고 쓴다. 한자로 쓰면 '円'이 돼서 엔화와 혼동된다는 이유도 있고. 다만, 한자를 쓸 수밖에 없는 중국어권에선 '韓圓(韩圆)'이라고 쓴다. 홍콩에서는 대한제국 원, 대한민국 환 시절에 쓰던 圜이라는 한자를 살려 쓰고 있다.[10] 주화의 통용에 관한 임시조치법[11] 50환=5원, 10환=1원[12] 구 10환권과 마찬가지로 실물이 북한에 있는 도안이다.[13] 잔존수량이 많아 지금도 구매하기는 어렵지 않다. 무려 관봉 단위로도 팔고 두 장 세트로 비싸야 2천원이면 가능하다. 웬만하면 2000원이면 팔고 있다. 회현지하상가 기준으로.[14] 미사용 기준 60~100만원대. 사용제라도 어지간한 보품~병품이 아닌 이상 10만원 넘게는 쳐준다.[15] 이 때 인스턴트 라면이 처음 나왔다.[16] 뒷면 하단 오른쪽에 발행 년도가 적혀있으면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로 거래된다.[17] 공식적으론 "파고다공원"이나, 흔히 팔각정으로 더 알려져 있다.[18] 1977년 5월 7일 신5000원권 발행공고(한국은행).[19] 반은 농담이지만, 자존심이 어느정도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유출되는 외화도 절약할 겸.[20] 당시 일본 엔 지폐를 발행한 대장성조폐국 에서 사용했는지는 불명.[21] 정식 용어로는 시쇄(試刷)권이라고 한다.[22] 이 실물은 옛 한국은행 본관 화폐금융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23] 그런데, 정작 십원 주화에는 다보탑이 들어간다. 불탑불상처럼 부처의 상징물이기 때문에 불상이 안 되면 탑도 같이 안 돼야 정상인데... 이 쪽은 2020년대까지 멀쩡히 수십년간 쓰이고 있고 불교계도 기독교계도 딱히 크게 반대하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중요도가 낮은 소액권이다보니 만원짜리 지폐에 비해 관심도가 낮아서 그냥 통과된 듯 하다. 정책 결정에 일관성이 없었던 셈이다. 비슷한 사례로 서울 봉은사 인근 교회들이 자기 주소에 봉은사가 들어가는 것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인근 전철역 이름에 봉은사를 집어넣겠다고 하자 들고 일어난 적이 있다.[24] 500원 주화가 비교적 뒤늦은 1982년에 등장한 탓에 지폐와의 공존기간이 있었다.[25] 다만 초창기에는 지폐용지와 잉크의 화학적 상성이 그리 좋지 않아서 젤라틴 계열 성분이 변질되며 나는 냄새가 마치 똥냄새와 비슷해서 똥돈이라는 오명이 붙었다. 하지만 금방 문제를 인지하고 교체해 단순한 해프닝 수준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래서 문제의 해당 지폐들은 희소성으로 인해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26] 그냥 판대기처럼 보이지만, 서예할 때 쓰는 그 벼루다. 도안의 실물은 바로 오죽헌에 전시되어 있는 율곡 선생이 쓰시던 벼루.[27] 2002년 개정판. 위조방지 점선 추가, 기번호(시리얼) 변경. 다 오천원은 "가가 0000000 가" 순이나 라 오천원은 "0000000 가가가" 순이다.[28] 1994년 개정판부터는 이 물시계 밑바닥에 "한국은행"이라 깨알같이 쓰여 있다. 이를 미세문자라고 한다.[29] 1994년 개정판. 위조방지 점선 추가, 앞면 여백부분에 소용돌이 무늬 추가[30] 2000년 개정판. 앞면 여백 소용돌이 무늬 삭제, 앞면 여백 아래 점자를 금색으로 변경[31] 외국인들이 자국 은행이나 환전소에서 구권을 환전해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으며 과거에 구권이 현행권이었을때 외국인이 남겨서 재방한(再訪韓)하여 사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32] 특히 구 천원.[33] 1천원권: 사슴, 5천원권: 공작새, 1만원권: 용.[34] 사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 현행권과 비슷한 스타일의 스위스 프랑 8차나 독일 마르크화는 10년 이상 빠르게 나온 디자인이었고 특히 대한민국 원이 바뀔 당시의 스위스 프랑 8차는 그보다 한층 더 파격적인 스타일이었다. 다만 이건 스위스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가 빠르게 변하는 것이었고 당시 유로 및 비슷한 디자인의 파운드 스털링 등의 변화 시기를 생각하면 한국도 적당한 시기에 늦지 않게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35] 이것으로 화폐 인물군이 조선시대를 벗어나지 못함(1백-충무공이순신, 1천-퇴계이황, 5천-율곡이이, 1만-세종대왕)은 물론, 유명인 모자가 나란히 지폐에 들어가게 되었다. 신사임당세종대왕도 제치고 최고액 화폐에 등장하였다.[36] 한국의 화폐 수집 문화는 그 이전에는 매우 극소수만 할정도로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37] 물론 이전에 이것보다 큰 금액인 10,000 싱가포르 달러, 10,000 브루나이 달러는 이미 폐지된 상태이다.[38] 5천원권은 원형, 1만원권은 정사각형, 5만원권은 띠형[39] 일러도 2024~5년에 될 가능성이 높다.[40] 별정우체국, 군사우체국 포함.[41] 단, 우편환 만큼은 수표와는 달리 반드시 우체국 금융창구를 방문해야 현금으로 교환받을수가 있으니 유의할 것.[42] 한국거래소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투자하고 있어 자칫 한국에 문제가 생길 경우 외국인 투자자들이나 기업들도 손해를 본다. 그 예시로 연평도 포격전 당시 뉴욕증권거래소, 런던증권거래소, 도쿄증권거래소 등 주요국 주식거래소들의 증시가 급락되었다.[43] 유로화는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의 공식 화폐인지라 서유럽은 물론이고 인근 타 유럽 국가들이 망해야만 화폐 가치가 사라지는데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핀란드 등 경제 구조가 탄탄한 국가들이 꽤 포진해있기 때문에 미국 달러 만큼 안정성이 높다.[44] 참고로 사설환전소로 가서 엔, 달러등의 환전, 역환전을 요구하면 그냥 은행에서 수수료 우대받고 환전하라면서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다.[45] 다만 동남아 국가의 일부 사설환전소에서는 원화 수수료를 낮게 매겨서, 그런 환전소의 존재를 아는 한국 여행자들은 원화를 가져가서 환전하기도 한다.[46] 미국 달러, 유로, 일본 엔, 영국 파운드, 스위스 프랑, 스웨덴 크로나, 호주 달러, 뉴질랜드 달러[47] 다만 시외버스 예매만큼은 해외발행 비자, 마스터카드로 결제를 할 수 없다.[48] 다만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네 자리마다 끊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3.0이 3만 원을 의미할 수도 있다. 뒤에 언급한 줄임법과도 관련이 있다. 간혹 3,0처럼 콤마로 표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는 대부분 천 단위라고 보면 된다. 하지만 메뉴판에 이런 식으로 표기하기 시작하자 잘 모르는 단기 관광 외국인들은 메뉴판을 보고 미국 달러를 받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다만 미국 달러의 통용력은 매우 강력해서 생각보다 여기저기서 받아주기도 한다. 단, 이 경우 점포 입장에서는 계산과 환전의 귀찮음을 감안해서 무조건 1 달러를 1,000원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자체적인 수수료가 떼이는 셈.[49] 2단위 화폐 제도는 이승만 정부 시절에는 했었다. 대한민국 원 아래에 '대한민국 전'이 있었는데 박정희 정부 이후부터 계속 원화 가치가 낮아져 '전'이라는 보조단위는 사라졌다.[50] 20달러 동전과 200, 2000달러 지폐를 도입하였다.[51] 흔히 알고있는 기념 화폐와는 달리 시중에서 널리 쓰일 목적으로 만드는 이벤트성 화폐이다. 예를 들어 2018년에 백원 주화와 동일한 재질과 크기의 소전에 세종대왕을 새겨 즉위 600주년 백원짜리 기념주화를 만드는 것이다. 일반 백원 주화와 디자인 빼고 동일한 스펙이라 시중에서 사용해도 상관없다. 기계에 투입해도 똑같이 백원으로 인식할 것이다. 외국에서는 유럽 연합의 2유로나 미국의 25센트(쿼터) 주화로 만든 통용 기념 화폐가 유명하다.[52] 전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는 아니다. 사우디나 카타르의 리얄도 뒷면엔 영어로 적어놨다.[53] Hanguk eunhaeng이 아니다. ‘한국은행’은 『표준 국어 대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되어 있기 때문. 물론 한국은행이 Hanguk Eunhaeng으로 정해버릴 수도 있지만 이렇게 된다면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에 따른 표기에선 빗나가게 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이런 사항은 국립국어원에 자문을 한다.[54] 둘은 항상 그들만의 리그로 한국인이 존경하는 인물 투표에서 압도적으로 1, 2위를 다툰다. 특히 이순신은 100원짜리 동전에 있는 것이 맞냐 더 고액권에 있어야 하지 않냐는 말도 종종 나온다.[55] 근현대사에 대해서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의 연구를 바탕으로 했기에 종교학적이라고 언급했다.[56] 특히 이들이 누구인지 외국인에게 설명하기 어렵다. 한국어로도 명확하게 이들의 업적을 설명할 수 있는 일반인이 거의 없는데, 이들을 외국어로 설명하라니..[57] 단 실제로 이들의 활동은 이황은 재야 유학자, 신사임당은 예술가 정도에 그쳤지만 이이는 현실 정치의 폐단을 직시하고 조정에서 국가적 개혁을 추진하려 애쓴 인물이기는 하다.[58] 대한민국 원에 있는 인물들 5명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인물은 1397년에 태어난 세종대왕이고 마지막에 사망한 인물은 이순신 장군으로 1598년에 전사했다. 심지어 세종대왕을 제외하면 전부 16세기 인물들이다. 편중이 심해도 지나치게 심한 셈.[59] 대표적 위인으로는 단군, 광개토대왕, 혁거세 거서간 등.[60] 대표적 위인으로는 장보고, 왕건 등.[61] 대표적 위인으로는 정약용 등.[62] 일본의 경우 고대사 인물인 쇼토쿠 태자를 화폐 도안으로 오랫동안 사용했다.[63] 일단 대표적 위인들만 나열해도, 김구, 안중근부터, 윤봉길, 유관순, 안창호, 여운형, 김홍일, 유일한 등 최소 5명 넘게 튀어나온다.[64] 미국 달러는 설령 인물들이 편중되어 있어도 한국보다는 문제가 덜한 게 미국의 역사는 근대 이후부터라서 짧기 때문이다. 또 1달러 주화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인 사카자위아가 새겨져있다.[65] 다만 공화국이 된지 오래인 포르투갈과 브라질 화폐에 마리아 2세, 페드루 5세, 페드루 1세의 화폐가 있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건 아니다.[66] 실제로 일본에서는 이토 히로부미가 1963~1984년에 발행된 C시리즈 1,000엔권 지폐에 올라온 적도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이토 히로부미. 즉, 근현대의 인물로 채택한다면 이런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진다.[67] 미국 달러에 미국 경제를 크게 발전시킨 카네기나 록펠러가 들어가지는 않는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68] 여담으로 기념주화 도안 중에는 경제발전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된 도안이 하나 있다. 3.1 운동 100주년 기념주화 중 하나로, 재봉틀을 돌리는 아이와 반도체, 연구원이 동시에 한 동전에 그려져 있는 도안.[69] 애초에 초상화가 남아있는 조선 임금 자체가 많이 없다. 다 불탔기 때문이다.[70] 신사임당마저도 이씨 집안에 시집온 여인이다.[71] 참고로 영국 국왕 겸 영연방 수장이 바뀌면 영국만 아니라 영연방 구성국(캐나다, 호주 등)도 화폐 인물이 같이 바뀐다.[72] 어차피 일본 엔화에 들어간 인물들도 제국주의의 대표주자들인지라 일본이 따지고 들면 내로남불이 된다.[73] 이외에도 김구는 각종 해방 직후 벌어진 각족 백색테러에 너무 깊게 연루되어 있었고, 다른 독립운동가의 암살을 사주한 의혹 때문에 '인간백정'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었다.[74] 한국은행 “평창 기념주화, 특정 선수 표현한 것 아냐” 2017-03-14[75] 근거: 홍콩 어느 사설환전소 환전 후기 블로그[76] 근거: 단창은호유한공사 환율창[77] 근거: 시세[78] 근거: 공상은행 환율[79] 근거: 칸 은행 환율창[80] 근거: 시세[81] 근거: 시세[82] 근거: 퐁사완 은행 환율 시세[83] 근거: 베트남 수출입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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