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폐 단위나 무게 단위
| 한반도의 화폐 변천사 | ||||||||||||
| 조선 문 | ▶ | 조선 양 | ▶ | 대한제국 원 | ▶ | 조선 엔 | ▶ | 북한 원 | ||||
| ▶ | 조선은행 원 | ▶ | 대한민국 환 | ▶ | 대한민국 원 | |||||||
兩
동아시아에서 쓰던 화폐 단위이자 무게 단위.[1][2] 현재도 중화권과 베트남에서 무게단위로 쓰인다. 각 국가별로 조금씩 가치가 다르다. 영어로는 Tael(테일)이라고 하는데, 이는 냥의 마인어 번역인[3] Tahil이 포르투갈어를 거쳐서 와전된 것이다.
1.1.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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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C5AA65,#C5AA65> 상평통보 '1냥' |
우리 민족의 화폐 거래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지만[4], 화폐의 용이성은 신라 때, 이미 확인했기 때문에 고려시대부터 화폐를 자체제작하는 시도를 계속 해왔지만, 화폐 운영역량이 부족하여[5], 고려시대에는 중국 화폐에 밀려서 국산 화폐를 유통하는데, 실패했고, 조선시대에는 상업이 퇴화하여 화폐경제에서 퇴출당하는 바람에[6][7] 상평통보가 보편화될 때까지 국산 화폐 유통을 실패했다.
여하튼 조선에서 화페거래가 정착한 뒤, 조선에 푼 - 전 - 냥 - 관이라는 화폐 단위가 도입되었다. 동전 1개는 1푼(分)[8]인데, 중국과 일본에서는 1개 동전을 1문(文)이라고 불렀기에 조선에서도 1개 동전을 1문으로 부르기도 했다. 1전(錢)은 10푼으로 본래 무게를 재는 단위였으나, 중국의 당나라가 개원통보의 1개 무게를 전으로 정한 뒤부터 화폐단위로 쓰였다가 한반도에 화폐단위로 유입되었다.
영국의 파운드화가 무게 단위인 파운드에서 왔듯이 냥(兩)도 본래는 전(錢)과 같이 무게를 재는 단위였다. 1냥은 10돈으로 약 37.5g이었다. 상당히 낮은 무게를 나타내는 단위였으나, 화폐단위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고액 화폐의 단위로 쓰이기 시작했다. 숙종 시기에 상평통보를 공급하면서 동전하나의 무게를 2돈으로 단위는 푼으로 정한 뒤에, 100푼을 1냥으로 정하고 10냥을 1관(貫)으로 정했었으나, 목민심서에 따르면 1푼은 10전, 10전은 10냥, 10냥은 1푼이라는 계산식이 쓰여있다. 흔히 구화폐단위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10진수 단위의 푼 - 전 - 냥 - 관의 체계는 정조 전에 민간에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1냥의 화폐가치는 당시 쌀 가격으로 1섬(144kg)에 '5냥'이었다. 2025년에 쌀 1kg당 2500원이므로 1냥은 쌀로만 따지면 7만 2000원 정도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질소비료같은 화학비료도 없었고 유일한 주식 작물이었으며[9], 물물교환 경제가 어느정도 유지되던 조선시대까지는 준화폐 취급이었기 때문에[10], 상대적으로 기술 발전과 대량 생산으로 소득 대비 가격대가 줄어든 쌀 등의 식료와 달리 다른 재화와 용역과도 비교한다면 실제 가치는 수십만 원 이상 정도로 봐야 맞다. 조선시대 물가를 보면 이 1냥의 화폐가치가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는데, 17세기 당시에 노비 한 명을 구입하는 가격이 최소 5냥에서 최대 20냥 정도였고[11], 한양 사대문 안의 기와집 한 채가 150냥 정도였으니[12], '냥'이라는 화폐단위는 지주, 거상, 명문가 출신 고위관료들이나 일상적으로 취급할 수 있는 단위였고, 서민들은 전재산을 셀때나 사용할 수 있던 단위였던 것이다. 괜히 거지를 대표하는 어구가 '한 푼 줍쇼'인게 아닌 셈.
서민들은 절대로 구경하기도 힘든 단위인 냥이 일상에 보편화된 시기는 흥선대원군이 집권했을 때다. 조선의 경제가 발전해서 일상 단위가 올라갔던 것이라면 좋겠지만, 경복궁 증건으로 무리하게 토건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당백전을 무리하게 발행하는 바람에 인플레이션이 심각하게 발생하여 가치가 박살나서 냥화 단위가 보편화된 것이었다.[13][14] 그럼에도 냥은 여전히 큰 단위였다. 조선의 노동자 월급이 약 3~5 냥 쯤 되었고, 냥이 폐지된 일제시대 조선 저임금 노동자의 품삯이 연 기준으로 30~40원, 일용직 노동자는 하루 50전 버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즉 냥이란 단위가 현재 친숙하게 느껴지거나 우습게 느껴지는 것은 문학작품에서 다뤄서 그럴 뿐인 것이다.[15]
이렇게 한국에서 화폐 단위인 냥이 친숙한 단위로서 다가오는 와중에 냥을 밀어낼 단위는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한반도가 푼 - 전 - 냥 - 관 4 단위의 화폐체계를 사용하고 있을 때, 청나라와 일본 제국은 유럽과 교역을 하면서 이미 원(圓)을 화폐 체계의 내부 받아들였다.[16] 그런 와중에 일본이 강화도로 처들어와서 조약을 맺었고, 조약 부록에서 일본 화폐를 쓸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원(엔)이 한반도에 상륙한 것이다. 임오군란 이후,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으로 청나라 원(위안)까지 들어왔을 쯤에는 고액권 단위의 대표자리를 원이 자치하고 말았다. 1892년에 결국 한민족의 화폐에도 원(圓)이 화폐 단위에 쓰이기 시작했고, 전근대 화폐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전통적 화폐단위인 냥의 사용이 중단되었다.[17]
그럼에도 조선민족의 화폐단위라는 관념이 남아있던 덕분에 '냥'이라는 단위는 비공식적으로 활용되었다. 현대에도 장난스럽게 원 대신에 '냥'을 써놓기도 한다. 떡볶이, 찻집 등 한국 고유음식들을 파는 곳에서 간간히 볼 수 있고, 노점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앞으로 한국이나 북한에서 화폐개혁으로 단위를 바꾸는 등의 대개혁[18]을 하지 않는 이상 냥이 공식적으로 다시 등장할 일은 없어 보인다.[19]
1.2. 청
1량 또는 1냥은 1/16근으로 통용되었다.2. 고양이 울음 소리 의성어
냥(にゃん)은 일본어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이다. 냐(にゃー)와도 혼용된다. 일본에서 종종 귀엽게 보이려고 말끝에 ~냥 같은 식으로 붙이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서 냥냥 거리면 씹덕체 취급받는다.고양이와 관련된 단어나 숙어, 신조어, 은어에서 괭이 아니면 냥을 단어 어디엔가 붙이는 경우도 있다.(ex. 냥짤, 엄마냥이, 냥발, 냥줍, 뚱냥이, 냥스타그램)]
일본인들이 한국 사극에서 상거래를 하는 장면이 나올때마다 1냥 2냥 할 때
대만에서 냥냥체 일본어를 번역할 땐 어기조사 [ruby(喵, ruby=·ㄇㄧㄠ)](miāo)를 쓴다. 중국어에서 고양이 울음소리를 표현하는 한자다.
참고로, 한국어에서는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애옹[20], 미야옹, 아옹아옹, 야옹야옹, 아웅아웅[21], 매웅[22], 왕왱이[23], 왕왕[24],
3. 오버워치 프로게이머 N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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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박수영(프로게이머)#|]] 부분을 참고하십시오.4. 냥(VOCALOID 오리지널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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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냥(VOCALOID 오리지널 곡)#|]] 부분을 참고하십시오.5. 서이브의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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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냥(Nyang)#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냥(Nyang)#|]] 부분을 참고하십시오.6. 워크래프트 시리즈&하스스톤의 사냥꾼의 약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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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사냥꾼(하스스톤)#|]] 부분을 참고하십시오.첫글자가 같은 직업인 사제가 이미 있기 때문에 두번째 글자에서 따서 사용한다.
7. 둘러보기
[1] 대한제국 주화단위표기로는 량이라고 표기되었다. 두음 법칙은 일제강점기에 규정으로 편입되었기 때문.[2] 비슷한 사례로 파운드 스털링과 마르크 등이 있다.[3] 아마 화교 상인들 간의 거래를 거치면서 생긴 단어인 듯.[4] 철기 시대 유적에서 명도전과 반량전 등의 중국의 화폐가 출토된다. 즉 한민족도 화폐를 직접 만들지는 않았어도 써먹기는 했다는 말이다.[5] 화폐의 신용도를 나라에서 만들어야한다. 화페로 임금을 주고 세금을 걷는 이유도 화폐의 신뢰성 유지차원이었지만 고려와 조선 중기까지 국가조차도 화폐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여 임금을 화폐로 주지 않았다. 조선의 정조가 노역자 임금을 화폐로 주면서 우리나라 정부도 실물임금이 아닌 화폐로 삯을 주기 시작했다. 상평통보의 화폐 신용도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가능한 조치였던 것.[6] 고려도 조선도 내수시장이 받쳐주지 못하던 나라다. 현대에는 달러같은 기축 통화가 있고, 신용화폐가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인구 몇 만의 작은 나라도 국산 화폐가 운용될 수 있으나, 전근대 시대에는 내수가 작은 나라는 금화같은 실가치 화폐가 아닌 이상에 국산 화폐를 공급할 수 없었다. 송나라가 멸망한 뒤 국제무역이 심각하게 퇴보하기 시작했고, 원나라가 국제무역을 개판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명나라가 해금령으로 국제무역을 파탄내버려서 대중교역에 의존하던 한반도 국제무역 또한 파탄났다. 조선이 사농공상의 농업국가로 돌아간 것은 정도전 등의 신진사대부가 멍청해서가 아니라, 다른 길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다.[7] 단 한반도 내수가 안되었던 이유는 인구 때문이 아니다. 고려 중기 인구가 약 800만 명, 조선 초 인구가 700만 명이었는데, 중국이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화폐를 운영했으므로 인구 때문에 시장이 작았던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내수가 안되었던 이유는 화강암으로 이뤄진 산간지대라는 최악의 교통여건으로 시장형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8] '한 푼 줍쇼'의 푼이 여기서 나왔다.[9] 밀이나 옥수수는 단위당 생산량이 매우 낮다. 옥수수는 칼로리만 보면 쌀보다 우수하며, 단위당 생산량도 농법에 따라서는 쌀보다 높을 수 있으며 비견할 정도로 생산량이 높고 생산에 필요한 시간이 100일 정도라 생산 회전율이 높지만 지력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화학비료없이는 주식으로 쓰기는 힘든 작물이다.[10] 세금도 쌀로 받고 환곡 등의 대출도 쌀도 해주고 심지어 쌀로 구매대금을 내기도 했다.[11] 노비는 성별에 따라 나이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노비신분은 세습되었기 때문에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성 노비가 일반적으로 가장 비쌌고, 남성 노비는 노동역량에 따라 가치가 비쌀 수도 있고 쌀 수도 있었다.[12] 사대문 안 기와집은 조선시대 양반들 수입으로도 쉽게 살 수 없는 것이었다. 지방에서 출사한 명가 출신 양반들도 집을 못사고 세를 들어서 살았다. 때문에 쌀이 아닌 집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1냥의 실제가치는 100만 원 정도 한다고 칠 수도 있다.[13] 100푼이 1냥이므로 당백전 1푼은 상평통보 1냥과 같다. 이게 얼마나 충격적인 일이냐면 100만 원 가치의 단위의 돈이 하루하침에 1000원이 된 셈이다. 괜히 수많은 치적을 만들고도 경복궁 증건 하나로 수많은 비판을 받는게 아니다. 감이 안잡히거나 이해가 안되면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으로 북한 민간 경제가 어떻게 터져나갔는지 보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흥선대원군의 당백전은 북한의 화폐개악보다는 나았다.[14] 당백전은 큰 인플래이션을 낳았지만 북한의 화폐가 사실상 관짝으로 들어간 것과는 다르게 조선 경제는 어쨌든 유지되었다. 북한과 다르게 기존 화폐(상평통보)를 무력화시켜서 폐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15] 중국 문화에서도 은자는 고액권이었지만 무협지나 사극 등에서 일상적인 결제단위를 은자로 설정하는 바람에 은자를 우습게 아는 것과 같은 이치다.[16] 유럽의 화폐는 아시아의 화폐와 달리 가운데 구명을 뚫지 않고 동그랬다. 현재 학설 중 가장 유력한 학설은 스페인의 금화의 둥그런 모양을 보고 원이라는 단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17] 이제 쓰이는 돈은 엔화 밖에 없게 되었고, 단위도 엔 하나였기 때문이다.[18] 한국은 보조단위로 전을 쓰고 있으며, 과거 환을 쓴 바가 있다.[19] 단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른 이유로 화폐단위를 바꿀 필요가 있어서 냥이 아니라도 언젠가 단위가 바뀔 수는 있다.[20] 경남 방언[21] 사전에 의하면 고양이나 범 따위의 울음소리라 한다.[22] 제주 방언.[23] 충청, 전라 방언.[24] 경기 방언[25] 여담으로, 고양이가 발을 디디는 것은 우리말로 '괴발디딤'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