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8 18:43:52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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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63><colcolor=#fff> 강화도
江華島 | Ganghwa Island
바다 황해
면적 302.6㎢
행정구역 인천광역시 강화군
인구 63,513명 (2023년 11월 기준)
인구 밀도 210명/㎢
부속 섬 교동도·석모도
1. 개요2. 역사3. 지리
3.1. 간척
4. 생산물5. 강화 사투리6. 경기도 재편입?7. 관광지
[clearfix]

1. 개요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속한 으로, 강화군의 본섬이다. 면적은 302.6㎢에 달하여 대한민국의 섬 중에서 4번째로 넓은 섬이다.[1] 대한민국 실효지배 영역의 황해 중에서는 제일 큰 섬이다.

원래 경기도 소속이었으나 1995년 3월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인천광역시에 편입되었다. 그럼에도 인천광역시 본토보다는 경기도 김포시와 가깝고, 육로를 통해 가려면 무조건 김포시를 거쳐야 한다.

2. 역사

역사적으로 굉장히 유명한데, 일단 지리상으로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개성)과 조선대한민국의 수도인 한성(서울)과 가까우며, 양 지역의 주요 하천인 임진강한강, 예성강의 바다 쪽 출구를 막는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우선 몽골군에 항전하던 고려 무신정권이 수도(강도江都)로 삼았던 역사가 있고, 조선 인조가 즉위하던 시절 병자호란이 발발하여 청나라 군대를 피해 강화도로 도피하려다 실패한 적도 있다. 이때 봉림대군 등이 인질이 되었는데, 인조로서는 마지막 희망이 사라진 것과 같았으며 결국 얼마 못가서 남한산성에서 항복한다.

왜란·호란 이후에는 강화유수부로 지정, 한양의 외곽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 중 하나였다.[2] 조선시대에는 강화도를 '심도(沁都)‘라고 부르기도 하였다.[3]

또한 강화도는 유배지의 상징이었다. 살려두기는 위험하지만 죽이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많은 인물들을 유배를 보낼 때 강화도로 보낸 일이 많았다. 고려희종에 이어 조선연산군, 임해군, 영창대군, 광해군 등이 이 곳에 유배되었으며, 철종은 왕위에 오를 때까지 강화도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광해군은 형인 임해군과 동생인 영창대군을 여기에 유배시켰다가 자신도 인조반정으로 여기에 유배되었으니 인생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근현대에 와서도 병인박해로 인해 프랑스가 침공해와서 벌어진 병인양요,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 인해 미국이 강화도를 침공하는 신미양요가 발생했고, 우리나라가 일본과 맺은 최초의 불평등 근대적 조약인 강화도 조약 등 역사적 사건이 많다. 강화도의 역사를 공부하면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절반을 먹고 들어간다는 농담이 존재할 정도. 6.25 전쟁 이후에는 개성의 실향민들이 이 곳에 거주하면서 개성의 문화를 이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해병대 2사단이 주둔하여 북한과 대치하는 최전방이자 군사적 요충지이다.

덤으로 크고 작은 고인돌이 은근히 도처에 깔려 있다. 얼마나 많은지 고창군, 화순군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상태며 관광지로 지정되어 얼굴이 자주 팔리는 큰 녀석 이외에도, 지나가다가 밭 한가운데나 산길 옆에 고인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는 걸 보면 충격과 공포. 그게 고인돌인지 모르고 보면 그냥 굴러다니는 돌덩이로 보일 정도의 위장이 되어 있다. 관심 있는 이라면 강화 북부와 서부에 몰려있으니 그 쪽을 뒤져보자.

강화도에선 로마경주시, 풍납동처럼 건물을 지으려고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땅 속에 묻혀있던 도자기 등 유물들이 발견돼서 공사가 중단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이게 당연한 것이 이 좁은 강화도에 무신 집권기, 즉 강화도 천도 당시 30여 개의 궁궐을 지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강화도에서 출토된 유물이 국보가 되는 사례도 있고 팔만대장경을 만든 선원사도 부지만 해도 어마어마하다.

3. 지리

파일:attachment/강화도/kanghwa.jpg
강화군에서 제공하는 강화도 관광 지도

앞서 언급했듯 대한민국에서 4번째로 면적이 큰 섬이다. 본래 남해도보다 약간 작았으나 장기간 간척 사업을 진행하여 면적이 조금씩 늘어나다가 300㎢를 넘어, 남해도보다 큰 섬이 되었다.[4]

동쪽으로는 염하(鹽河)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대곶면과 마주하고, 서쪽으로는 황해가 펼쳐져 있고, 남쪽으로는 바다 건너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과 마주하며, 북쪽으로는 휴전선 건너 북한의 개성시, 연안군, 배천군과 마주한다. 섬이라서 4면이 바다지만, 강화와 김포 사이에 강화대교초지대교의 2개의 다리가 있다. 한편 북쪽 건너편은 북한이기 때문에, 강화도 북부에는 긴장이 느껴진다. 실제로 강화도의 관문인 강화대교에서도 멀리 개성시의 산이 보인다.

인천광역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육로로는 인천광역시 본토로 바로 갈 수 없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육로로 가려면 김포시를 경유해야 한다. 후술하듯이 이 때문에 강화도 내에서 경기도 환원 주장이 자주 나오는데, 현재 추진중인 서해남북평화도로의 2단계로서 영종도와 강화도 남부를 연결하는 다리가 개통되면 굳이 김포를 경유하지 않아도 된다.

주변 해역의 물살이 상당히 험한 편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큰 서해안에서도 특히 격차가 심한 곳이고, 여기에 예성강과 조강이 강화도 인근 해역으로 유입되면서 더더욱 물 흐름이 복잡하기 때문. 그런 와중에도 이 곳이 한강 유역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수운 거점이어서 강화도는 그 가치가 매우 컸다.

2023년 1월 9일 오전 1시 28분, 이곳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해역에서 규모 3.7의 지진이 발생했다.

3.1. 간척

파일:attachment/ganghwa-ex0001.jpg
강화도는 원래부터 현재와 같은 모양이 아니었고,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다가 고려시대부터 지속적으로 간척이 이루어져 현재와 같은 모양이 된 것. 석모도도 본디 세 개, 교동도도 두 개의 섬이었고, 강화도의 경우 수십 개의 섬이었던 데다가 서남부지역은 그냥 갯벌일 뿐이었다. 이걸 매립하고 개간하여 지금의 해안선이 만들어진 것. 해안선의 일부는 절벽이고 일부는 평지인 이유가 그것이다.

파일:attachment/ganghwa-ex0002.jpg
마니산이 있는 화도면도 원래는 강화도 본도와 다른 섬이었지만, 1706년(숙종 32년) 간척 사업으로 본도와 연결되었다.[5] 실제로 마니산 근처엔 경지 정리가 되어 있는 상당히 넓고 평탄한 농지가 있는데, 이 일대가 예전엔 바다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길상면 초지리 일대에도 (일반적인 강화도 풍경에 비해)상당히 넓고 평탄한 농경지가 있고, 이 곳도 20세기 중반에는 갯벌이었다는 증언도 있다.

파일:attachment/ganghwa-ex0003.jpg

그래서 간척이 이루어지기 전의 강화도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강화도에 있는 산으로 올라가서 산이 있는 부분만 섬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대강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생각할 경우, 잦은 외침에도 강화도가 요새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할 수 있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일단 해안선이 꼬불꼬불하고, 사방이 갯벌인데다가 섬의 해안선은 온통 산과 절벽뿐이니 적이 상륙하기 까다로운 지형이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세곡선들이 이 근처를 지나다 수시로 침몰하기도 한다.

다만 이런 간척 사업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난 일도 있었는데, 바로 청나라조선을 침공한 병자호란 때이다. 몽골고려를 침입했던 여몽전쟁 시기에는 아직 강화도 간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강화도가 지금보다 훨씬 좁았고 상륙할 지점도 마땅치 않아서 몽골군도 강화도에 상륙할 엄두를 내지 못해서 강화도는 끝내 몽골군에 함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몽전쟁 이후로 강화도의 간척 사업이 계속 이루어져 병자호란 무렵에는 강화도가 대몽항쟁 시절보다 더 넓어졌지만 그로 인해 상륙할 지점도 넓어져서 청나라 군대가 손쉽게 강화도에 상륙하여 강화도로 피신한 조선 왕족과 대신들이 몽땅 포로로 잡히거나 자살하는 비극이 일어났다.

4. 생산물

주민 일부분이 농업 및 수산업에 종사하는 편으로 주로 쌀과 인삼 등을 생산하고 젓갈 등도 생산한다. 그 외에 한우, 재배도 성하여 약쑥이 제법 유명하다. 강화약쑥을 싸주아리쑥, 사자발쑥이라고 불러서 강화도만의 특산종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이 아니다. 싸주아리쑥은 (아마도 황해도에서 유입된 듯한) 황해쑥(Artemisia argyi)이며, 사자발쑥은 싸주아리쑥 중 모양이 남다른 변이체만 선별하여 키운 것이다. [6] 아무튼 결론은 강화약쑥은 황해쑥이며 화문석, 근대떡도 유명한 특산품이다.

갈비와 젓갈, 야채 등을 넣고 끓인 젓국갈비라는 향토음식이 있다. 설에 따르면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을 왔을 때 지역 주민들이 왕에게 대접하기 위해 급하게 백성들이 먹던 젓국에 고급 음식 재료인 갈비를 넣어 끓였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7]

강화군청 홈페이지의 특산물 정보에 따르면 강화인삼, 강화새우젓, 강화섬쌀, 강화순무, 강화사자발약쑥, 강화속노랑고구마 등이 주요 특산물이다.

5. 강화 사투리

지리적으로 황해도와 가깝고 6.25 전쟁황해도 출신 실향민들이 많이 이주, 정착했다 보니 본래 강화 사투리는 전반적으로 황해 방언과 상당히 유사했다.

어미가 전형적인 황해도 방언의 특징인 -시다(평서), -시꺄(의문) 등으로 변하며 일부 자음 발음이 탈락되거나, 중모음의 발음이 세분되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

강화도의 인구가 줄어들고 표준말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등,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줄어든 바람에 고유한 표현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상태이긴 하나 아직 중노년층들에게서 강화 사투리를 쉽게 접할 수 있다. 특히 황해도와 가까운 교동도 지역은 거의 황해 방언과 판박이다.

6. 경기도 재편입?

2015년 5월 들어 지역 내에서 경기도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으며 현재 방향은 독립보다는 김포시 편입을 원하고 있다. 강화도가 다리(강화대교·초지대교)를 통해 김포시와 연결돼 있다는 지리적 여건도 작용했다. 즉 인천 시내에 가려면 무조건 김포를 지나야 한다.

경기도의회는 "강화군 경기도 환원 촉구 결의안"을 발표하는 등 강화도를 경기도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으나, 인천시가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강화군은 상위 광역자치단체를 바꿀 수 없다. 상위 광역자치단체가 바뀌는 행정구역 개편에는 해당 시/도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해남북평화도로 2단계가 성사되면 영종도(영종구 전환 예정)가 육로로 이어지게 되며, 인천경제자유구역으로 추가 지정을 추진하고 있으므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연계, 종속이 강화될 수록 이탈 여론이 수그러들 가능성이 높다.

7. 관광지

단군이 제사를 지냈다던 마니산으로도 유명하다.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이 쌓았다는 참성단이 남아 있고 (물론 현재의 참성단은 고조선 그대로가 아니라 1639년(인조 17)과 1700년(숙종 26)에 중수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에는 자유롭게 방문도 가능했지만, 훼손이 심해 출입을 통제했었으나 현재는 다시 개방중에 있다, 전국체전의 성화는 전통적으로 여기서 출발한다.

길상면 초지리 초지진 근처에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지정, 보호하는 매화마름군락지(멸종위기 2급)가 있는데, 람사르 습지에 처음으로 등록된 논 습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 매화마름논에는 물장군(역시 멸종위기 2급)과 저어새(천연기념물 252-1호)도 서식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몰락한 요주의 인물들이 귀양살이를 한 곳이지만, 현재 자세한 위치들은 알려져 있지 않다. 효종 ~ 숙종 대에 걸쳐 세워진 53개의 돈대들도 올레길 형식으로 관광지가 되고 있다.

[1] 1위: 제주도(1833㎢), 2위: 거제도(379㎢), 3위: 진도(375㎢)[2] 그 외 유수부로 지정된 곳이 개성유수부, 광주유수부, 수원유수부였다.[3] 구한말 조선군 편제 중, 강화도에 설치된 군영을 '심영(沁營)'이라 불렀다. 오늘날에는 심도중학교, 심도지구대 등에 이름이 남아 있다.[4] 남해도 301㎢, 강화도 302㎢.[5] 강화 본도와 접하기 전의 섬 명칭은 고가도(古加島).[6] 종 고정이 제대로 되지 않았으며, 사자발쑥만 키워도 개중에는 싸주아리쑥으로 자라는 개체들이 있다고 한다.[7] 몽골 침공 당시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피난왔을 때 만들어졌다는 음식이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