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소재 4년제 사립 대학교에 대한 내용은 한성대학교 문서
, 컴퓨터 제조 회사에 대한 내용은 한성컴퓨터 문서
참고하십시오. 1. 지명
1.1. 서울특별시의 옛 지명
서울특별시의 행정구역 변천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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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城
현 서울특별시 지역에 있었던 행정구역으로, 백제의 수도였던 위례성과 조선의 수도였던 한성부를 가리킨다. 오늘날의 서울이 어떤 국가의 수도였을 때에는 한성이라고 불리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한산(漢山)이나 한양(漢陽) 등으로 불렸다. 현대 대한민국에서 '한성'이라는 이름을 붙인 기업이나 학교는 대개 이 지명에서 유래한 것이다.
해방 이후 경성의 명칭이 서울로 바뀌었을 때도 오랫동안 한성은 서울의 중국어 표기로 쓰였다. 이 때문에 서울대학교로 가야 할 우편이 한성대학교로 가는 등 명칭혼동으로 인한 케이스가 자주 발생하자, 2005년부터 서울시는 서울과 발음이 유사하고 으뜸되는 곳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 首尔(首爾, 수이, Shǒu’ěr, 서우얼)로 중국어 명칭을 바꾸어 현재는 공식적으로 서우얼을 사용하고 있다.
1.1.1. 백제의 수도
온조왕이 천도한 위례성(慰禮城)의 이칭. 지금의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토성(및 몽촌토성)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1] 개로왕때 고구려에 의해 함락될 때까지 500여 년간 백제의 수도로서 활약했다.1.1.1.1.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의 등장 맵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에서 백제의 수도였던 한성을 모티브로 만든 맵. 이 게임에서는 한성이 위례성과는 다른 지역으로 나온다.자세한 내용은 한성(바람의 나라) 문서 참고하십시오.
1.1.2. 조선의 수도 한성부
자세한 내용은 한성부 문서 참고하십시오.공식 명칭은 한성부(漢城府)이며, 한양도성 내의 사대문안과 성 밖의 성저십리 지역을 정2품 관직인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이 관할하였다. 오늘날 서울특별시의 직접적인 전신이 되는 행정 구역이다.
중국에서는 2000년대까지 서울을 한성(간체자: 汉城)이라고 표기하다가 현재는 서울과 발음이 비슷한 서우얼(정체자: 首爾 / 간체자: 首尔)로 음차하여 표기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서우얼 참고.
1.1.2.1. 한양에 있는 성
한양에 있는 성을 한성이라고 하기도 했다.1.2. 고구려의 3경 중 하나
고구려의 수도권인 패서 지역에 속하는 현재의 황해도 재령군 인근으로 비정된다. 평양성, 국내성과 함께 수도 역할을 분담하기 위해 설치됐다. 여기는 고구려에서 많이 개발된 지역이면서도 고구려가 멸망할 때까지 중국이나 신라의 직접적 공격을 거의 받지 않았기 때문에[2] 사회적, 군사적 기반이 고구려 영토 중에서 비교적 안정돼 있었고, 따라서 초토화된 다른 지방보다는 주로 여기서 고구려부흥운동이 전개되었다. 안승과 검모잠이 이 곳을 근거지로 삼아 부흥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통일신라가 차지했고 패서에서 거주하던 기존의 고구려인들 외에도 각지에서 모여든 고구려 유민들이 모여들어 그 후예인 패서 호족이 이 지방을 기반으로 세력을 키우게 된다.재령군이 과거 ‘한성(漢城)’ 또는 ‘한홀(漢忽)’로 불렸던 점이나 고구려 도시 유적이 나온 곳이라는 점 때문에 가장 유력한 설로 꼽히고 있다. 다만 현재의 서울특별시 부근 북한산성이라는 설도 있다. 고구려가 평양, 혹은 남평양이라고도 부른 바 있다는 점과 신라가 이곳을 한성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라는 듯. 다만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군사대치 관련한 유적이 서울보다 북쪽인 임진강선에서 많이 발견되고, 재령에서 도시 유적지가 나온 이후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원래 서울 지역에 있어서 한성이었다가 나제연합군이 한강 유역을 탈환한 이후 이름만 현재의 재령으로 옮긴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링크
1.3.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의 리
1.4. 중국의 지역
韓城중화인민공화국 산시성(陝西省) 웨이난시의 현급시로, 현지 발음은 한청이다. 위 지역들과는 달리 韓을 쓴다.
2. 기업
- (주)한성: 한성아파트의 건설사이다.
- (주)한성: 한성컴퓨터의 정식 사명이다.
- 한성건설: 위 건설사와는 다른 기업으로, 필하우스라는 브랜드명으로 아파트를 짓고 있다.
- 한성기업(韓星企業)
- 한성자동차
- 한성저축은행
3. 학교
4. 인명
4.1. 실존인물
4.2. 가상인물
[1] 이외에도 경기도 광주시의 남한산성이나 하남시의 이성산성,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등으로 보는 설도 있으나 풍납토성 발굴 후에는 사실상 밀려난 상태. 특히 천안은 문주왕의 남하 중 일시적으로 머물렀을 뿐이란 설이 강하다. 근초고왕 때 한강 이북의 한산성으로 일시 천도했을 때도 그렇게 불리기도 했는데 이렇게 다양한 지역을 부르는 데 사용된 이유가 한성 자체가 대성(大城, 큰 성)을 음차한 표현이기 때문이다.[2] 수, 당의 공격은 요동과 청천강 일대가 위주였고, 신라와의 전선은 임진강 유역에서 형성돼 있다가 고구려 말기에 내분이 일어나 연정토 등이 남부 방어선을 통째로 바치고 항복해 668년 신라군은 별 저항 없이 중간지역을 순조롭게 건너뛰고 평양 근처까지 바로 진격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황해도 지역은 고구려 멸망 시점까지 쭉 안전한 후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