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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방글라데시의 국적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방글라데시는 전 국민의 98%가 벵골족인 사실상 단일민족국가다. 인도가 분할되는 과정에서 다른 지방의 무슬림들이(특히 비하르 주 출신의 비하리인) 소수 이주해 오긴 했지만 벵골 지역이 워낙 벵골인의 인구가 많아서 비율은 얼마 안 됐고,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때 다른 민족의 무슬림들은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방글라데시가 산업경쟁력이 생각보다 있다지만, 그래도 아직은 소득수준이 낮기때문에 중동 산유국들이나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등 동남아 잘사는 국가들이나, 영미권 선진국들로 일하러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중동권 산유국이나 동남아 잘사는 국가들에서는 방글라데시인들하면 가정부나 일용직 노동자라는 이미지가 짙다.
2. 구성 민족
2.1. 벵골족
- 종교 행사에 참여한 재한 방글라데시인 이주노동자들(2014년 사진)
방글라데시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주 민족으로 비옥한 갠지스 강 유역 평원 지대에서 벼농사 소출이 많았던 관계로 오늘날 방글라데시 내 벵골인 인구는 1억 명이 넘는다. 인도 서벵골에 주로 거주하는 벵골인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므로 동족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방글라데시에 해당하는 갠지스강 하류 삼각주 지역은 중세까지는 밀림이었으나, 밀림이 개간되는 과정에서 새로 인도문화권으로 편입되던 부족들이 힌두교 대신 이슬람교로 개종하면서[1] 방글라데시 동부의 벵골인들은 무슬림이 되었다.
방글라데시 내 뱅골인 인구의 10% 가량은 힌두교도이다.
2.1.1. 로힝야족
2017년 9월 들어 일명 '인종 청소 학살'으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미얀마의 로힝야족 또한 뿌리는 미얀마 계통이 아닌 방글라데시와 같은 벵골 계통이다.[2] 로힝야족의 정확한 기원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얀마 전체를 식민지배하던 영국이 미얀마인들이 식민지배에 저항하면서 미얀마 개발이 힘들어지자 인도인들을 대거 이주시켰는데, 마니푸르, 아삼 주의 힌두 브라만은 주로 공무원을, 시크교도는 군인으로, 벵골인 무슬림들은 벼농사 플렌테이션을 개간할 농부로 정착하였다. 종종 인도계 무슬림들이 우월한 입지와 재력을 바탕으로 미얀마 현지 여자를 첩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미얀마 민족주의자들과 승려들이 이를 갈았다고. 오늘날 미얀마의 최대도시로 성장한 양곤시는 영국에 의해 개발될 당시 아예 초창기 인구의 절반 이상이 인도인이었다. 2차 대전 전후로 인도계 미얀마인 중 눈치 빠른 사람들은 재산을 정리한 후 인도로 도피했지만, 벵골인 농민들은 미얀마에 있는 농토를 두고 동파키스탄으로 굳이 돌아가봐야 할 게 없었다. 미얀마 독립 당시 초창기에는 이들의 영향력을 절대 무시할 수 없었고, 꽤 오랫동안 미얀마의 기득권층으로 군림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네 윈이 주도하는 사회주의 정권이 출범하면서, 한큐에 모든 기득권을 잃고 몰락하면서 오늘날처럼 하층민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 연원으로 인해, 미얀마 영토에서 살아가고 있는 로힝야족[3]들은 미얀마인들과는 말도 안 통하고, 오히려 방글라데시와는 말이 통한다. 또한 로힝야족은 거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어서 더욱 방글라데시와 연관성이 깊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정부 측은 "이들은 17세기부터 미얀마 지역에 거주해왔기 때문에 미얀마인이다."라는 이유를 내세워 이들의 방글라데시 유입을 막으려는 편이다.[4] 그리고 방글라데시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는 인구 초 포화 국가인 것도 방글라데시 정부가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5] 무엇보다 로힝야족 스스로도 자신들을 방글라데시 및 인도의 벵골인들과 조상만 같은 별개의 민족으로 여기고 있으며, 로힝야족이 로힝야어를 표기할 때 사용하는 문자 또한 방글라데시 및 인도에서 벵골어 표기에 쓰이는 동부 나가리 문자가 아니라 아랍 문자와 하니피 로힝야 문자이다 보니 로힝야족의 문화는 방글라데시 현지 문화와 비교해서 이질감이 전혀 없다고 보기는 힘들다.2.2. 무하지르
파키스탄 독립 당시 지금의 방글라데시인 동파키스탄으로 이주한 비벵골계·비펀자브계 인도아리아인 무슬림의 후손들이며, 특히 우르두어가 모어인 무슬림 힌두스탄인이 많았다. 이들은 동파키스탄에서 벵골 문화를 탄압당할 당시 기득권을 누렸기 때문에 방글라데시 독립 이후 파키스탄으로 망명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나마 남은 방글라데시 무하지르의 후손들도 방글라데시의 벵골인들에게 압제자의 후손으로 멸시당하는 경우가 많다.2.2.1. 비하르인
비하르 출신의 비하르인은 원래는 주로 벵골어 대신 힌디어나 우르두어를 사용하던 사람들이다. 비하리어가 따로 있기는 한데 비하르어는 힌디어의 방언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벵골 대기근 당시 벵골인들이 굶어죽는 상황에서 쌀을 매점매석해서 엄청난 이익을 챙겼으며[6] 동파키스탄 시절 우르두어를 국어로 삼는 파키스탄의 정책 덕분에 기득권층으로 입지를 다졌고,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상당수가 파키스탄 편에 섰었다.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서파키스탄 출신 군인들이 방글라데시 민간인들을 학살했다고 잘못 알려진 경우도 있는데, 당시 힌두교도 및 대학생 지식인 등을 주도적으로 강간하고 학살했던 집단이 바로 비하르인 민병대였다. 비교하자면 6.25 전쟁 당시 서북청년회와 마찬가지로 이들 역시 전쟁에서 패배하면 돌아갈 곳이 없이 때문에 이성을 잃고 무차별 학살극을 벌였던 것.[7] 그러나 결국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비하르인 상당수가 난민이 되어 파키스탄 국적도 방글라데시 국적도 얻지 못한 채 무국적 상태에 살아가게 되었고[8], 방글라데시 독립으로부터 수십년 후인 2009년에야 대법원 판결에 의해 국적을 부여받았다.#
한국에도 이태원 서울중앙성원 주변에 일부 방글라데시 출신 비하리 난민들이 있는데, 자신들이 과거 기득권 계층이라는 향수에 쩔어서인지 몰라도, 친일파 매국노에 비유되기 걸맞은 언행을 하고 산다. 한 번은 명문가 가문 출신인데 개망나니로 악명높았던 파키스탄인 한 명이 한국에 와서 알코올 의존증이 심해져 바지에 똥을 싼 채로 이태원 이슬람 사원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는데, 비하르인 아줌마 한 명이 주도해서 "명문가 출신이 이렇게 망신을 당하면 안 된다!"고 돈을 모아서 항공권을 사서 고향으로 돌려보내준 일이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다 쳐도 이들이 이렇게 돈을 후하게 쓰는 일은 남아시아 출신 명문가 구성원들을 위해 돈을 쓸 때 뿐이고 자신들과 연고가 없는 파키스탄이나 방글라데시 출신 유학생들한테 나이 어린 사람 만만하다고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떼먹고, 사람이 부모빽 없이 만만해보이면 무슨 머슴 다루듯이 함부로 소리지르며 대한다는 점이다. 한국 사람들한테도 좀 사람이 착하고 순해 보인다 싶으면, 예를 들자면 한국말을 할 줄 아는데도 불구 이삿짐 센터를 불러달라고 소리를 지른 후 부탁하는 주제에 이삿짐 센터에서 20만원 부르니까 한국말로 “깎아달라고 하세요!”라고 우쭐거리며 고함을 치질 않나…[9] 적어도 신분제도가 폐지된 사회에 사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이들의 언행이나 사고방식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직전에는 약 100만여 명 정도가 거주하였으나 파키스탄과 방글라데시 모두 이들을 버렸고, 이웃한 인도로 계속 인구가 유출된 결과 지금은 동부에 거주하는 불교계 소수민족 원주민들인 줌머인들이 비하리인보다 많아졌다.
2.3. 줌머족
나머지 2% 중에 소수의 불교를 믿는 줌머인이 있다. 줌머인이라는 단어가 단일 민족을 지칭하는 건 아니고 치타공 주[10]의 산악지대 근처에 거주하는 상좌부 불교를 믿는 여러 민족들을 지칭한다.
줌이라는 말은 차크말어[11]로 계단식으로 경작한 농지를 일컫는데, 줌머라는 말은 줌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들 가운데는 벵골인과 외양이 흡사한 경우도 있으나 티베트-버마계 황인이 좀 더 많은 편이다.[12] 본래 화전민이던 이들은 개발의 혜택에서 소외되는 것은 물론 애초에 이슬람이 국교나 다름 없는 방글라데시 정부에게 불교도인 이들이 상당한 탄압을 당하고 있다. 국내에도 방글라데시 국적인 난민들 중에서 줌머인이 꽤 있다. 이들에 대한 차별 상황 역시 영국의 식민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미얀마도 이들을 꺼리는 편이다.#1 #2
한국에 체류하는 줌머인들은 주로 김포시에서 모여 산다고 한다.
2.4. 펀자브인과 신드인
무굴 제국, 인도 제국, 동파키스탄 시절에 지금의 파키스탄이나 인도 북동부에서 이주해온 펀자브인의 후손이다. 크게 무슬림과 시크교도로 나누어진다. 무슬림 펀자브인의 경우 무하지르와 마찬가지로 조상 대에 동파키스탄의 벵골 문화를 탄압하는 일에 동참했기 때문에 방글라데시의 벵골인들에게 압제자의 후손으로 멸시당하는 경우가 많다. 시크교도 펀자브인은 조상이 지금의 방글라데시 땅에 주둔하던 인도 제국 시크교도 군인이었던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인도 제국 해체 이후 인도 본토로 이주하기도 했지만 그대로 방글라데시에 남기도 했으며 후자의 경우 아예 종교만 시크교인 채 벵골인에 동화되기도 했다.펀자브인 외에도 신드인들도 1만 5천여명 정도 방글라데시에 거주한다.
2.5. 유대인
유대계 방글라데시인들도 있다.#3. 오해 및 편견
3.1. 방글라데시인은 피부색이 모두 짙다
대중들이 생각하는 방글라데시인 | 다카 무슬린 옷을 입은 벵갈 여인 Francesco Renaldi 1789년 작 [13] |
벵골인 중에 몇몇 상위 카스트 출신[14]과 조상이 파슈툰 계열인 경우 또는 줌머족은 그렇지 않다. 엄연히 벵골인은 언어를 기준으로 한 민족 분류이고, 벵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 파키스탄 사람처럼 생긴 경우, 남인도 타밀족처럼 생긴 경우 혹은 줌머족처럼 동아시아계처럼 생긴 경우가 모두 나타난다.
방글라데시는 인도 아대륙에서 극동이기 때문에 남부의 타밀족처럼 피부색이 짙은 사람들이 엄연히 대다수인 것은 사실이지만 벵골어와 벵골인들의 직계 기원은 기원전 500년경 무렵 갠지스 강 일대에 정착한 인도아리아인이다. 갠지스강 일대의 원주민과 혼혈되지 않은 사람은 피부색이 밝은 편이다.[15]
3.2. 방글라데시는 행복도가 가장 높다
7차 교육과정 전통 윤리 교과서에서 물질이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예시로 출판된 적이 있었다. 심지어 이원복의 저서 '세계사 산책'에도 나왔다.그러나 이는 모두 낭설로 판명되었다. 오히려 90년대 당시 행복도 조사의 기준이 애매해서 생긴 문제로, UN에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오히려 최하위권에 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실 현지 중산층이나 교민에게 물어보면 저런 조사결과에 대해서 어이없어한다고. 그들은 '행복지수가 아니라 체념지수가 높다는 게 맞는 표현이지요' 라고 한다. NEF의 행복지수 조사에 따르면 30에서 40위 정도로 평가받으며 삶의 만족도는 세계 104위라고 한다.
사실 환경이 험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되고 노예 취급까지 당하는데 그렇게나 행복할리가 없다.
4. 한국 내 방글라데시인의 높은 성범죄율
재한 외국인 체류 인원 18위쯤 된다.2021년 20대 방글라데시 유학생들이 강원도에서 13세 가출 여중생을 집단 성폭행하여 미성년자의제강간으로 처벌받은 강원도 외국인 유학생들 여중생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한국 내 방글라데시인의 성범죄율은 상당히 높다. 과거 같은 나라 사람이었던 파키스탄인도 한국에서 성범죄율이 상당히 높다. 범죄율이 한국인에 비해, 강간 및 유사강간 3.2배, 강제추행 2.79배, 방화는 10.1배이다.
성범죄 대부분은 남성이 저지르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에 체류하는 방글라데시인은 대부분 남성인데 성비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범죄율이 높은 것이다"라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얀마와 비교해보면 반박의 설득력은 떨어진다.
2015년, 한국에 체류한 외국인들의 성비는[16] 방글라데시 94:6, 미얀마 97:3 이었다.[17] 2015년 국적별 체류 외국인 성비[18]
한국 내에서 미얀마인은 남자성비가 방글라데시인보다 높았다. 하지만 성범죄율은 방글라데시인보다 낮았고 성범죄율 순위권에조차 들지않았다. 즉, 한국에 체류하는 방글라데시인은 남자 비율이 높아서 성범죄율이 높은 것이 아니다. 실제로 방글라데시인이 국내에서 성범죄를 굉장히 많이 저질렀기 때문에 이들의 성범죄율이 높은 것이다.
아래의 사진은 한국 내에서 강력범죄율이 높은 국적을 순서대로 나타낸 표이다.
자료 출처: 2015년 이민정책연구원에서 발행한 "체류외국인 범죄에 대한 진실과 오해"#
다만 NGO에서 6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방글라데시 국내의 성범죄율 자체는 인도네시아 및 캄보디아보다는 덜 심각한 것으로 나온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3091114443917073&outlink=1&ref=%3A%2F%2F
5. 관련 인물
6. 관련 문서
[1] 외지인이 새로 힌두교로 개종하는 경우는 정복 왕조 출신이 아닌 이상 수드라로 편입된다.[2] 로힝야족의 역사가 그리 긴 편이 아니다. '로힝야'라는 민족명도 20세기 이후에나 생겨난 말로, 개인 모험담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단어를 대충 끌어다 쓴 것에 불과하다. 이들의 기원은 벵골계 민족들의 한 부류인 치타공인과 같은 민족이며, 사촌뻘이 아닌 완전히 동일한 민족이다. 다만 언어적인 측면에서 약간의 방언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문화적으로는 거의 차이가 없다.[3] 이들은 미얀마에서 살지만, 국적상으로 미얀마인은 아니다. 미얀마의 국적 정책 때문인데, 자세한 내용은 로힝야 문서 참고.[4] 앞서도 언급했듯이 로힝야족은 19세기에나 미얀마에 유입되기 시작한 이들이고, 미얀마에 완전히 정착하게 된 건 20세기의 일이다.[5] #[6] 공교육을 통한 인권 개념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그리고 신분제가 확고한 사회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바로 옆동네에서 기근으로 사람이 우수수 죽어나가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돈 좀 벌겠다는데 천한 것들이 좀 죽으면 어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7] 당시 비하르인 상당수가 이슬람 극단주의 정당 자마아티 이슬라미를 지지했던 영향도 컸다.[8] 극소수의 잔류 비하르인들은 벵골인에 동화되었으며, 다른 일부 비하르인들은 옛 종주국이었던 영국으로 망명하기도 했다.[9] 물론 방글라데시인들이나 파키스탄인들이 다 이러는 것은 아니다. 파키스탄인이나 방글라데시인들 역시 해외에서 이따위로 행동하면 자국 망신이 된다는 것 정도는 안다. 문제는 이런 라자카르 민병대 출신 난민들은 친일파 비슷한 입장이라 모국에 대한 애국심 같은 게 없기 때문에(=내 행동이 모국 이미지에 어떤 이미지를 줄까 걱정하지 않기에) 개판으로 사는 것.[10] 옛 버마의 아라칸 왕국(수도인 므락우에서 따온 므락우 왕국으로도 불린다)에 속해있던 지역으로 벵골 술탄국에 정복되었다가 아라칸 왕국, 무굴 제국, 인도 제국 그리고 동파키스탄과 현 방글라데시령이 되었다.[11] 줌머인 중 최대 인구 집단인 차크말족이 사용하는 언어[12] 줌머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며 해당 어족들의 특징인 성조, 고립어 형태를 가지고 있다.[13] 벵갈 다카에서 그림, 예일 대학교 소장품[14] 남아시아인들의 인종 카스트로 달라진다는 소리는 구닥다리 이론이고 실제로는 대부분 지리적인 영향이 훨씬 더 크다. 당장 인도계 영국 총리인 리시 수낙부터가 브라만 최상류층이지만 전형적인 백인 외모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15] 사실 방글라데시를 비롯해 인도, 파키스탄, 네팔 같은 남아시아 국가들의 영화배우나 연예인의 모습을 보면 대개 피부색이 밝다. 그 이유는 이 지역이 전통적으로 피부색이 짙은 사람을 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남아시아의 일반인들과 비교해서 밝다는 거고 유럽인이나 동아시아인과 비교하면 그닥 밝다고 느껴지지는 않으니 나무위키 특유의 과장된 서술로 인해 기존의 편견을 또 다른 편견으로 덮어 씌우지는 않도록 유의하자.[16] 남:녀[17] 표본인원은 충분함[18] 첨부되어 있는 2.zip 다운로드 → "국적_지역 및 연령별 체류외국인 현황" 클릭 후 압축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