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30 04:48:15

벵골어

인도의 주요 공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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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골어
언어 기본 정보
주요사용국 인도 서벵골
방글라데시
원어민 약 3억 명
어족 인도유럽어족
인도이란어파
인도아리아어군
아르다마가디어군
벵골아삼어
벵골어
문자 동부 나가리 문자, 아랍 문자[1]
언어 코드
ISO-639-1 bn
ISO-639-1 ben
ISO-639-1 ben
주요 사용 지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27px-Bengalispeaking_region.png
힌디어 बाङ्ला भाषा
우르두어 بنگلہ
아랍어 لغة بنغالية
터키어 Bengalce
중국어 孟加拉语/孟加拉語
일본어 ベンガル語
베트남어 Tiếng Bengal
러시아어 Бенгальский язык
영어 Bengali Language
포르투갈어 Língua bengali
라틴어 Lingua Bengalica
에스페란토 Bengala lingvo
인도네시아어 Bahasa Bengali

1. 개요2. 역사 및 문학
2.1. 벵골 SF
3. 들어보기
নামুউইকি: জ্ঞানের গাছ যেটা আমরা একসঙ্গে তৈরী করেছি।[2]
나무위키, 여러분이 가꾸어 나가는 지식의 나무.

1. 개요

방글라데시의 공용어로서, 인도서벵골 주와 방글라데시 전 지역 그리고 미얀마로힝야족 거주지에서 쓰이는 언어. 인도유럽어족에 속한다. 사용 지역의 면적으로 보면 한반도와 비슷하지만, 정신나간 인구밀도 덕분에 세계에서 6~8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로 사용인구가 무려 3억 명에 달한다. 하지만 방글라데시가 인구규모에 비해 경제력이 작아 국제적인 위상이 낮은데다가 인도에서는 힌디어영어에 세력이 밀리는지라 다른 세계 10대 언어와 달리 2012년까지 국내에 벵골어학과가 단 하나도 없었던 극히 안습한 수준. 현재도 국내에 벵골어를 따로 가르치는 대학은 하나도 없다. 다만, 한국에서는 특수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벵골어의 문자는 얼핏 보기에는 데바나가리 문자처럼 생겼지만 미묘하게 다른 문자로 동부 나가리 문자를 사용하며 이 문자로 아삼어마니푸르어[3] 등을 표기하기도 한다.

옆 동네에서 쓰이는 힌디어와는 상당히 가까운 언어이지만, 고대부터 다른 언어로 분리되어 변이를 겪었는데 벵골어는 동부에서 널리 쓰이던 마가디 프라크리트가 기원이며, 힌디어는 북중부에서 널리 쓰이던 샤우라세니 프라크리트가 기원이다. 힌디어와 달리 모음에 장단이 없고 문법적 성 구별[4]과 단수, 복수에 따른 동사변화가 없다. 다만 인칭에 따른 동사 변화는 존재한다. 즉 1인칭 단수와 1인칭 복수에 모두 1인칭 어미가 나타나는 식이다. 인도 국가인 자나 가나 마나가 본래 처음에는 벵골어로 쓰였으며, 실제 벵골어 발음은 Jôno gôno mono(저노 거노 모노)이다. 방글라데시 국가인 아마르 쇼냐르 방라(나의 황금빛 벵골)도 물론 벵골어로 쓰였고 벵골어로 불린다. 두 곡 모두 벵골어가 모어였던 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작사, 작곡했다.

인도 북동부의 벵골어와 방글라데시의 벵골어는 서로 통하지만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고 다소의 방언적 차이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로 ছ 문자를 인도 벵골어에선 '처' 로 발음하고 방글라데시에서는 '셔' 로 발음하며 여러 단어, 발음의 차이가 있다.
  • 예: '나는 밥을 먹게 앉을테니 나중에 얘기할게'
  • 인도 - আমি এখন খেতে বসছি, পরে কথা বলব(아미 에콘 케떼 보스치- 뽀레 꺼타 볼보)
  • 방글라데시 - আমি এখন খাইতে বসতেছি, পরে কথা বলমু (아미 에콘 카이떼 보스떼씨- 뽀레 꺼타 볼무)

인도 사람들은 방글라데시 벵골어에 대해 '굉장히 시골에서 쓰이는 구어적 사투리' 라고 생각하고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인도 콜카타에서 쓰이는 벵골어에 대해 '매우 교과서적이고 문어체적인 언어' 라고 생각한다. 방글라데시의 벵골어는 동사, 단어 중간중간에 '이' 발음이 자주 첨가되며 동사의 현재진행형 중간에 '떼' 발음이 추가된다. 그리고 방글라데시 내에서 쓰이는 벵골어는 사투리가 굉장히 많다. 이를 벵골어로 আন্চলিক ভাষা(안쫄릭 바샤)라고 부르며 통상 제숄, 라즈샤히 부근의 언어가 제일 공식적이고 표준어에 가깝다 여겨지고 동쪽으로 갈수록 사투리가 심화되며 치타공의 언어는 도저히 같은 벵골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른 경지에 도달해 버린다.

파키스탄이 1971년만 해도 동파키스탄이던 동벵골에서 벵골어를 공용어로 인정하지 않고 우르두어만 공용어로 사용할 것을 강요한 바 있는데[5], 이에 반발한 방글라데시 지식인들이 1952년 2월 21일 언어 수호 운동을 일으켰다. 이는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으로 발전해 방글라데시가 독립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2월 21일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해 기념하는데, 한국삼일절과 비슷한 날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유네스코에서도 방글라데시의 언어 수호 운동을 기념해서 2월 21일을 ‘국제 모어의 날’로 지정하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사용 인구로만 보면 상당한 규모의 언어지만 사용 지역이 한정되어 있고, 또 지역조차도 국제적으로 크게 인지도나 영향력이 있는 곳이 아닌 데다가, 벵골어를 몰라도 영어로 소통이 어느 정도 가능한 까닭에 그 규모에 비해 한국에서 제2외국어로 배우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특히 한국어 교재만으로는 초급 수준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볼 수 있는데, 2018년 현재 시중 서점에서 "벵골어" 또는 "벵갈어"로 검색 시 나오는 서적은 초급 수준의 학습서 3권(입문서 1권, 문법 1권, 회화 1권)과 사전 2권이 전부다. 거기에다 일부 책들은 품절되었다. 벵골어 문학을 읽거나 어느 정도 수준 이상으로 회화를 하려는 사람은 영어나 벵골어, 힌디어로 나오는 서적을 참고해야 한다. 만약 일본어실력이 뛰어나다면 하쿠스이샤(白水社)에서도 발간된 벵골어 책도 일부 발행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어로도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2. 역사 및 문학

벵골어는 다른 많은 인도아리아어들처럼 11~13세기 무렵 원형이 되는 언어인 마가디 프라크리트와 동부 아파브람샤어[6]에서 분화되어 문어로서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혹자는 벵골어의 분화가 기원후 5~6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확실히 입증하기에는 문헌 기록이 충분치 않은 상태이다. 동부에서 벵골어의 원형이 되는 인도아리아어(벵골 조어)는 팔라 왕조세나 왕조에서 기층 민중의 언어로 쓰였다.

13세기와 14세기를 거치며 델리 술탄 왕조 및 그 후계 국가인 벵골 술탄국의 무슬림 지배층이 벵골 지방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벵골 지방의 무슬림 지배는 (짧은 수르 왕조 시기를 포함해) 무굴 제국 및 그 지방관이 독립한 벵골 나와브 시대까지 이어진다. 즉 500년가량 무슬림 왕조에 의한 지배가 있었으며, 이에 따라 많은 벵골어 사용자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기도 하고[7] 그렇지 않은 이들도 지배층의 언어에 차츰 동화되어, 페르시아어아랍어 어휘가 대거 벵골어로 유입되어 현대 벵골어에서도 쓰이고 있다. 이 시기 주요 벵골어 문학 작품으로는 14-15세기 시인 촌디다스[8]희곡 《스리크리슈나키르탄(শ্রীকৃষ্ণকীর্তন)》이 있다.

플라시 전투북사르 전투를 거쳐 18세기 후반부터 영국 동인도회사가 벵골 나와브의 영지를 보호국화하고 콜카타(캘커타)를 중심으로 사실상 벵골을 동부 인도에서 영국 세력의 거점으로 삼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인도 제국 시기까지 벵골은 유럽 문물을 가장 직접적으로 빨리 받아들이는 인도의 지방이었다. 벵골에서는 이미 19세기 초부터 라자 람모한 로이의 주도 하에 브라모 사마지[9]라는 단체가 설립되어, 이를 중심으로 인도 근대화와 실력양성을 위한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에 따라 벵골어로는 인도 반도의 토착어들 가운데서도 유럽 문학의 동향에 가장 민감한 문학 전통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영국 지배 하의 19세기~20세기 초)의 벵골은 문화적으로 벵골 르네상스의 시기로 일컫는다.

마이켈 모두수돈 도트(Michael Madhusudan Dutt, মাইকেল মধুসূদন দত্ত, 1824-1873)는 유럽화된 벵골인으로서 영어와 벵골어로 동시에 문학 활동을 하며, 영시의 무운시(blank verse)를 비롯하여 서사시소네트를 벵골 시문학에 도입하였다. 그는 특히 《틸로타마의 탄생(1860)》을 비롯한 벵골어 서사시로 유명하며, 벵골 근대 극문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반킴 찬드라[10](Bankim Chandra Chatterjee, বঙ্কিমচন্দ্র চট্টোপাধ্যায়, 1838-1894) 역시 이 시대를 장식한 벵골어 시인, 소설가, 수필가인데, 1865년에 출판된 그의 소설 《두르게슈논디니(দুর্গেশনন্দিনী)》는 벵골 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반킴 찬드라는 또한 유명한 시 "완데 마타람(Vande Mātaram)"의 작가이기도 하다. 이렇게 숙성된 19세기의 지적 자양분을 바탕으로 20세기 초 벵골에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11]를 비롯해 두터운 벵골어 작가군이 형성되었으며, 벵골 문학은 영어와 힌디어를 비롯해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기에 이른다.

이 외에 사티야지트 레이 같은 벵골어를 쓰는 감독들도 많았기에 벵골 영화가 인도 영화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2.1. 벵골 SF

벵골 문학은 벵골 르네상스를 거치며 양적으로 팽창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질적으로도 다양화, 세분화를 겪었다. 19세기 말부터 벵골어 과학소설을 쓰는 작가도 생겨, 유럽의 SF와는 다른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였다. 최초의 주목할 만한 벵골 SF로는 조고다논드 로이(Jagadananda Roy, জগদানন্দ রায, 1869-1933)의 《금성 여행(1892)》이 있었는데, 여기서 작가는 진화론에 기반해 천왕성외계인을 묘사하였다. 벵골 과학자 조고디슈 촌드르 보수(자가디시 찬드라 보스, Sir Jagadish Chandra Bose, জগদীশ চন্দ্র বসু, 1858-1937)도 1896년에 기후 제어에 관한 SF 소설을 썼다.

벵골 무슬림 페미니스트 베곰 로케야(Begum Rokeya, বেগম রোকেয়া, 1880-1932)는 최초의 여성주의 SF 중 하나로 꼽히는 《술타나의 꿈(1905, 영어로 쓰여 영어 잡지에 발표된 뒤 곧 벵골어로 번역됨)》를 썼는데, 이 소설은 전기의 도움으로 자동화된 농업과 비행차 등의 기술이 일상화된 세계에서, 여성 과학자가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기후를 제어하는 기술을 발명하는 등 여성이 정치와 학문 등 대부분의 공적 영역을 통제하고 남성은 배제되는 일종의 전도된 현실을 묘사하였다. 이갈리아의 딸들 등 후대 여성주의 사회소설의 선구자 격으로 문학사가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3. 들어보기


모아나 벵골어 더빙판


[1] 로힝야족 한정.[2] 번역이 잘못되었거나 더 나은 번역이 있다면 이곳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눠 주시기 바랍니다.[3]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비슈누프리야 마니푸르어와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메이테이어로 나눈다. 마니푸르는 원래 중국티베트어족 계열이다.[4] 원래는 성 구별이 있었지만 사라졌다. 아삼어, 오리야어, 호와르어, 칼라샤어와 같으며, 벵골어는 성 구별이 없는 인도아리아어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이다.[5]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지금의 파키스탄 땅인 서파키스탄의 주민들 대다수는 우르두어가 아니라 펀자브어가 모어였으며, 오늘날 파키스탄에서도 우르두어가 국어인 것과 별개로 모어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는 펀자브어다. 우르두어 사용 강요에 순응한 쪽이 오늘날의 파키스탄이 되고 그렇지 않은 쪽이 오늘날의 방글라데시가 된 셈이다.[6] 아파브란샤어, 어퍼브런셔어. 로마자 통용 표기에서 "m"으로 쓰는 자음에 대한 한글 표기는 합의가 되어 있지 않다.[7] 원래 벵골 지역은 중세까지 인도 반도에서 불교 세력의 마지막 보루였던 곳이었는데, 이들 중 일부는 힌두교도가 되었으나 상당수는 이슬람의 평등관에 매력을 느껴 이슬람교로 개종하였다. 참조: 《왜 인도에서 불교는 멸망했는가》[8] Chandidas, চণ্ডীদাস, 다수가 같은 필명을 사용했을 수 있음[9] 엄밀히 말하면 람모한 로이가 설립한 것은 브라모 사마지의 전신에 해당하는 브라모 사바(Brahmo Sabha)이다.[10] 통용 표기를 따름. 벵골 문자에 따른 발음은 봉킴촌드르 초토파데이.[11] রবীন্দ্রনাথ ঠাকুর, 벵골어식 발음은 로빈드로나트 타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