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22:47:46

아라칸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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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
2.1. 건국 이전 아라칸족의 역사 및 창건2.2. 전성기2.3. 쇠퇴기와 멸망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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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세, 근세 미얀마라카인주 아라칸족왕국. 라카인 왕국이라고도 한다. 수도는 므락우.

2. 역사

2.1. 건국 이전 아라칸족의 역사 및 창건

라카인 주 일대에는 토착 아라칸족[1]들이 단야와디, 라웅옛, 와이탈리 등 여러 소왕국을 이루고 살았는데, 9세기부터 중국윈난 지역에서 남하한 버마인[2]이 1406년 11월에 아라칸 지방을 침공하며 혼란에 빠졌다. 중과부적의 상황을 맞은 아라칸 지역의 라웅옛 왕국의 국왕 민 사우 몬은 서쪽의 벵골 술탄국[3]으로 망명하였는데, 벵골술탄 자랄 웃 딘과 친밀해졌고 술탄은 그의 복위를 돕기로 하였다.

1406년에 아라칸을 정복한 버마의 잉와 왕국은 곧 바간의 버고/페구(Pegu) 왕국[4]과 싸우게 되었고, 6년간의 싸움 끝에 탄드웨[5] 등 아라칸 남부는 페구의 손에 들어갔다.

이후 1429년 민 사우 몬은 버고와 잉와 세력을 몰아내고 아라칸 왕국을 창업했다. 1430년 므락우로 수도를 옮겼으며 벵골 술탄국의 문화 역시 받아들여 페르시아식 칭호인 [6] 칭호를 받아들였고 이는 왕조가 꼰바웅 왕조에 정복될 때까지 이어진다.[7] 그리고 하렘(...) 제도 역시 받아들여 벵골인은 물론이거니와 왕국 내 소수민족차크마족, 카미족, 쿠키족, 친족으로부터 여자를 바치게 하여 왕을 위한 하렘을 만들기도 했다.

2.2. 전성기

이후 아라칸 왕국은 벵골 술탄국이 약해지자 포르투갈 해적, 콩키스타도르와 연합해 치타공[8], 콕스 바자르[9], 라무[10][11] , 마웅도[12], 치타공 구릉지대[13], 트리푸라[14], 다카 동반부[15]를 점령하는데 성공한 후 많은 농토와 어장을 확보한 뒤 벵골인들을 포로삼아 노동력으로 이용했다.
이어서 16~17세기 초에는 민 바지 왕과 민 티카[16]이 왕국의 전성기를 이끄는데 특히 경제 수도 치타공과 정치 수도 므락우유럽아랍, 페르시아, 명나라 상인들은 물론 일본에서도 상인들은 물론이고 센고쿠 시대임진왜란, 세키가하라 전투 등 전란에 휩쓸려 모시던 다이묘를 잃은 사무라이로닌들 일부가 일자리를 얻기 위해 벵골인 용병[17]과 더불어 왕의 근위병으로 취직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하는 등 국제도시로 변모한다.

2.3. 쇠퇴기와 멸망

17세기 전성기가 끝나고 치타공 역시 포르투갈인 출신의 용병필리페 데 브리투에게 뺏긴 뒤 서서히 영향력을 잃기 시작하다가 벵골 총독 샤이스타 칸의 항구 봉쇄로 영향력을 완전히 잃어버려 벵골인에게 치타공을 재헌납 하다시피 했고 기득권층의 권력다툼과 더불어 유럽이나 말레이계 해적들이 해안가를 약탈함과 더불어 사이클론지진연달아 일어나는 등 천재지변까지 닥치면서 나라가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결국 1784년에는 꼰바웅 왕조의 제 6대왕 보도파야의 침략으로 마지막 왕 마하 탐마다[18]가 끝내 항복하면서 아라칸족의 수천년 독립 역사는 끝을 맺고 수도인 므락우 역시 점령된 후 주민들 대다수가 학살 능욕당하고 왕족과 귀족들은 짐승처럼 당시 꼰바웅 왕조의 수도인 아마라푸라로 끌려갔으며 재화를 약탈당하고 약탈이 불가능한 사원이나 탑, 궁전은 금박을 벗기고 보석을 빼낸 뒤 파괴한 다음 전소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므락우 유적을 가보면 불타거나 못으로 그은 흔적이 있는데 이때의 영향이다.[19][20]

이후 아라칸족들이 반란을 일으켜서 꼰바웅 왕조가 이를 진압하려 하자 나프 강 너머 영국령 인도 제국으로 도망갔는데 진압군도 따라 넘어가서 계속 전투를 벌였고 이것이 영국을 자극하는 바람에 미얀마 식민지화의 계기가 되는 영국-버마 전쟁의 시발점이 된다.동귀어진?

3. 기타


아라칸 왕국에 대한 라카인족의 그리움을 담은 노래이다.[21]

아라칸족이 높이 평가하는 역사로써 미얀마 국가와 버마족에 대항하여 아라칸 지역주의와 분리주의를 제창하는 아라칸 민족주의의 역사적 연원이기도 하다.

[1] 라카인족으로도 불리며 미얀마에서 버마족, 샨족, 카렌족 다음으로 미얀마 인구서열 4위인 나름 메이저한 소수민족이다.[2] 아바 왕국 등의 연합군.[3] 방글라데시의 조상격 국가로 전근대 벵골인의 유일하다시피한 독립국가였기 때문에 세속주의와 벵골 민족주의를 밀고 있는 현 총리 셰이크 하시나아와미 연맹역시 최근 벵골 술탄국을 띄워주면서 역사 관광 상품화도 계획중이라 한다.[4] 한따와디 왕국이라고도 불린다.[5] 산도웨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얀마의 관광 명소 중 하나인 응아빨리(영어로는 나팔리라고도 한다.)해변[22]이 있는 곳이다.[6] 굳이 이슬람 국가가 아니어도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나라는 이란의 칭호를 쓰는 경향이 있는데 예를 들면 최근 폐지된 네팔 왕국고르카 왕조가 있다. ex) 트리부반 샤, 갸넨드라 샤.[7] 참고로 민 사우 몬 자신의 칭호는 술레이만 샤이다.[8] 지금도 다카에 이어 방글라데시제2의 도시 역할을 하는 명실상부한 국제 주요 무역항 중 하나이며 인구는 1000만명을 웃도는 수준으로 900만 정도의 서울특별시보다 조금 더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9] 세계에서 가장 긴 125km 천연 백사장으로 알려져 있는 방글라데시의 관광 명소 중 하나다.[10] 콕스 바자르 남쪽 끝자락에 있는 중소도시로 로힝야 난민촌이 있으며 난민 수용을 놓고 말이 많은 섬 바샨차르가 이 도시 앞바다에 있다.[11] 도시 자체가 인지도가 없어 항목이 개설되지 않아 링크를 누르면 만화 시끌별 녀석들여주인공이 나온다(...).[12] 현재는 로힝야의 주 거주지이기도 하며 이 때문에 동파키스탄[23][13] 방글라데시의 소수민족인 줌머족의 다수 거주지이다.[14] 현재 인도의 트리푸라 주이며 한때는 독립 트리푸라 왕국이기도 했다.[15] 서반부도 점령만 안 했지 약탈과 노동력 확보를 위한 주민 납치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16] 이 둘은 부자관계로 아버지인 민 바지가 싯따웅 사원을 짓자 아들 민 티카는 이에 질세라 꼬따웅 사원을 더 크고 아름답게 지으려고 하였는데 부처를 위시한 정령들이 감히 아버지를 이겨먹으려 하다니 불경한 자라고 욕하며 벼락을 내려 꼬따웅을 파괴했다는 슬픈(?) 전설이 있다.[17] 이 벵골 용병 후손들을 캄만(Kaman)족이라고 부르며 같은 이슬람 무슬림에 벵골인 혈통인 로힝야와 달리 미얀마 국민으로 인정을 받고 있고 아라칸족과의 통혼 혼혈도 꽤 이루어져 아라칸 사회에 상당히 동화되었는데다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로힝야와는 다르게 세속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 당연히 로힝야와는 사이가 영 좋지 않다. 그와 별개로 불교 극단주의자들의 이슬라모포비아에 시달리는 건 매한가지다.[18] 본명은 타도 아웅(Thado Aung).[19] 물론 이쪽으로 침략하고 전쟁을 치른 영국군이나 일본군에 의해 파괴된 것도 있다.[20] 이때 마하무니 불상도 전리품으로 같이 옮겨졌다.[21] 영상을 보면 아라칸 왕국 뿐만 아니라 그 이전 왕조인 단야와디 왕국, 라웅옛 왕국, 와이탈리 왕국 등도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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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별명이 미얀마의 나폴리이다.[23] 현재의 방글라데시 영토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았으나 1947년 아웅 산의 주도로 맺어진 팡롱협정에 근거하여 미얀마 라카인주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