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02:17:42

김현양

지존파
김기환(리더) 강동은 김현양
문상록 강문섭 백병옥
이경숙 송봉우(송봉은)
파일:김현양.jpg
이름 김현양()
출생 1972년 6월 17일
전라남도 영광군
사망 1995년 11월 2일 (향년 23세)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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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중학교 2학년 중퇴
전과 상해 전과 1범
종교 무종교기독교(개신교)
1. 개요2. 생애
2.1. 유년기2.2. 상경 이후, 지존파 가입
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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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93년부터 1994년까지 활동한 대한민국의 범죄 조직 지존파행동대장.

학력은 중학교 2학년 중퇴이고 상해전과 1범이다.

김기환과 조직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은 인물이다. 상해 1범이라는 전과도 조직 가담 후에 생긴 전과이다.[1]

2. 생애

2.1. 유년기

2남 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2] 아버지는 중국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 중이었는데, 김현양이 12세가 되던 해에 간암이 발병하여 사망했다.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해 가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고, 어릴 적부터 앓던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했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식당 일을 시작했다. 외모가 아름다웠던 어머니가 자식들을 방치하고 식당 일을 하면서 알게 된 낯선 남자들이나 아버지의 친구들을 비롯한 여러 남성과 은밀한 만남을 이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아 하교 이후 귀가하는 것을 꺼릴 정도로 심리적인 방황을 하기 시작했다.

학교생활기록부의 행동발달사항에는 “무기력하며 학업에 관심이 없음”, “주의가 산만하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지 못함”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김현양의 학창 시절 담임 선생님들은 모두 입을 모아 김현양에 대해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학생이었다고 했다. 이처럼 학창 시절에는 심리적인 방황에도 폭력적인 성향이 보이지 않았고 큰 문제도 없어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사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친구와 재혼했고, 이때부터 커진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 증오심은 이후 일종의 여성혐오로 변모하게 되었다.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어머니와 다툰 후 가출하여 광주로 올라갔다. 첫 날부터 걸인들에게 잘못 걸려 앵벌이를 하게 되었고, 이후 을 팔거나 절도 등을 하며 도주할 기회만 엿보다가 도주하여 서울로 상경하는 데 성공했다.

2.2. 상경 이후, 지존파 가입

서울로 상경한 후 신문을 파는 것부터 시작해서 지역을 옮겨 다니며 제과점 종업원, 중국집 배달원, 만두집 종업원, 공사장 잡부, 술집 웨이터 등을 전전했다. 그러던 중 전기 기술을 배워 취직해 몇 년간 모은 돈으로 트럭 한 대를 구입해 굴비 장사를 시작했으나, 망하고 만다.

이후 장사를 접고 운수회사에 취직했지만, 취직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다른 이로부터 김기환을 소개받고 운수회사를 나온 뒤 김기환이 결성한 조직 지존파에 가담했다.

조직에 합류한 후 내재되어 있던 강한 폭력성을 드러내며 두목인 김기환과 조직에 대한 충성심을 보였고, 행동대장 노릇을 했다.

행동대장답게 모든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체포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태연히 웃어 보이며 당당하다 못해 충격적인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어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피해자들을) 살해할 때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동료들에게 폐를 끼쳐 미안하다. 압구정동 야타족 등 돈 있는 사람들을 다 죽이지 못한 것이 억울하고 한이 된다. 다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을 만들지 말아 달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나를 죽여 달라.
어머니를 죽이지 못한 것은 한이다.
진짜 죽여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사람만 죽인 것 같다. 이 집은 사람 잡아다 죽이기 위해 지었다.
우리가 죽인 사람은 5명이 전부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잘난 놈들은 모두 죽이려 했다. 인육을 먹은 것도 사실이다.
두목인 김기환보다도 언론에 훨씬 많이 노출되었는데, 마치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으니 무서울 것도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지존파 조직원들 중 얼굴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끔찍한 범행을 자행하면서도 양수리 부근에서 세 번째 피해자 이XX(남성)와 함께 납치된 이XX(여성)를 유일하게 살려주며 탈출의 기회를 제공했다. 다만 일부러 탈출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인지, 단순히 이XX를 너무 믿어서 방심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김현양이 구치소에 수감된 후 면회를 와 “날 일부러 살려 준 것이냐”고 묻던 이XX의 질문에 김현양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거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일부러 기회를 준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로 대답했지만, 신고한 이XX를 원망하지 않고 뒤늦게 자신들이 저지른 범행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평소 이XX에게 호의적으로 대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나 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사랑하는 여자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러면 나머지 애들한테 우리 가족이 개죽음당할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3]

이후, 본인을 비롯한 지존파 조직원 6명이 사형을 판결받자 최후 진술로 뒤늦게 조금이나마 뉘우치는 듯한 말을 남겼다.
먼저 돌아가신 다섯 분의 죽음에 대해 제 죽음을 사죄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간 대접 해줘서요. 지금은 잘못을 뉘우치는데, 솔직히 그때는 이렇지 않았습니다. 인간도 아닌데 지금은 돌아왔어요.
산 상태에서 다섯 명을 죽였으니, 다섯 명을 살리는 의미에서 장기 기증을 하고 싶습니다. 죽어서는 안구뿐이 안 된다고 하니 저는 산 채로 장기 기증을 하고 싶습니다.[4] 가능하다면 애인[5]의 생일인 음력 11월 13일에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동생들을 사형 아닌 무기라도 해 달라 말씀드리고 싶고... 미안합니다.....

여기에서 언급한 동생들은 강문섭백병옥을 말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두 사람 역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사형을 면하긴 커녕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초고속으로 처형되었다.

체포 후 기독교인 교도관들의 접촉과 노력, 여러 명의 종교위원의 돌봄과 외부 인사들의 편지와 후원 등의 영향으로 지존파 중에서 가장 먼저 종교에 귀의하고 회개하였다고 한다.

믿음의 성장이 빠른 편이었고, 다른 지존파 조직원들에게 전도를 하는 등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했다.

문장식 목사와 상담할 때 "목사님, 내가 이곳에서 예수를 믿고 나니 이제야 인생이 어디서 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를 내가 좀 알 만합니다"라고 자주 말했으며, 그런 내용의 편지도 자주 보냈다고 한다. 진심으로 변화된 모습으로 모범적인 수감생활을 했다. 문장식 목사는 그런 그를 보며 '복음의 능력으로 인간은 누구나 변화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사형이 확정된 지 반 년이 지난 1995년 11월 2일, 서울구치소에서 2번째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오전 8시 15분 사형장에 들어온 그는 다소 놀란 상태에서 불안하고 긴장된 모습이었으나 문장식 목사 등을 본 후로는 안정을 되찾는 것 같았고 얼굴이 환해 보였다고 한다.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담대한 자세로 심문대 밑 마룻바닥에 앉아 인정심문에 응했다. 특별한 유언은 남기지 않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침착하게 전도를 하였다.

문장식 목사가 종교의식을 진행하였는데,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찬송가 188장 '만세 반석 열리니'를 부른 후 성경 누가복음 23장 41~42절[6], 로마서 10장 11~13절[7]을 읽게 하고 문 목사가 '네가 낙원에 있으리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마지막에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피해자의 가족에게 용서를 빕니다. 나는 큰 죄를 짓고 죄인의 몸으로 이곳에 왔지만, 내가 모든 것을 잃었다 할지라도 예수를 믿고 구원 얻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도 예수 믿고 천국에서 만납시다.
이후 찬송가 543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부르고 문 목사가 축도하여 예배를 마친 뒤 종교위원들이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을 부르는 가운데 오전 8시 25분에 형이 집행되어 35분경에 절명했다.[8]

3. 여담

지존파 조직원 중 유일하게 인육을 먹었다고 발언해 충격을 주었다.[9]

인육을 먹은 이유는 “인간이길 포기하려고.”


[1] 조직 자금을 벌기 위해 전 조직원이 대전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장에서 일하던 시기에 강문섭을 다른 직원이 폭행했다는 이유로 전치 4주에 해당하는 폭행을 가했고, 합의하는 과정에서도 피해자 가족들에게 폭행을 가했다.[2] 체포될 당시 남동생은 군 입대를 앞두고 있었고, 여동생 김현숙은 미성년자였다.[3] 리마 증후군에 빠진 인질범과 비슷한 행동 양상을 보인다.[4] 당연하지만 산 채로 장기를 적출하는 것은 불법이다.[5]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XX. 정확히는 내 마음 속의 애인이라고 말했다.[6]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7]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8] 출처: <아! 죽었구나 아! 살았구나>[9]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이XX의 1994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 따르면 김현양이 인육을 먹은 경험은 ‘지존(김기환)이 시켜’ 송봉우의 인육을 울면서 먹은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다만 김현양은 체포 후 이것에 대한 진술은 전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