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8 00:23:02

노르웨이 연쇄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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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어: Terrorangrepene i Norge 2011(Norsk bokmål) / Terroråtska 22. juli 2011(Norsk nynorsk)
 
"한 사람이 저토록 큰 증오를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 했을 때 얼마나 더 큰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 우퇴위아 섬 생존자가 CNN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
"테러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더 많은 개방성과 더 많은 인간애다."
-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 추도식에서
2011년 7월 22일,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극우 백색테러.

1. 사건 개요2. 범인의 신상3. 이후4. 영화화

1. 사건 개요

2011년 7월 22일 오후 3시 30분(현지시간) 수도 오슬로의 정부청사에 폭탄테러가 발생했다. 이 테러로 정부청사 총리실 건물이 크게 파손되었으며 석유부 건물에도 화재가 발생했으며 7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나중에 밝혀졌지만 이 테러에 사용된 폭발물은 미국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때 사용된 것과 동일한 비료와 디젤유의 혼합물이라고 한다.# 범인은 농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위장, 폭발물 제조에 필요한 성분이 들어있는 비료를 대량으로 사들여왔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오슬로 북서쪽 30km에 위치한 노르웨이의 집권여당인 노동당 청년캠프 행사장에서 총기난사 테러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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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청년캠프 행사가 열렸던 부스케르 주의 우퇴위아(Utøya) 섬

이 섬에서는 노동당이 주최하는 청소년 정치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700명이 넘는 10~20대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한국의 정치캠프와는 개념이 좀 다르다. 한국인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정치캠프는 소속 정당이나 정치단체의 지지자들의 모임인 반면 유럽, 특히 북유럽권의 정치캠프는 말 그대로 활발한 사회참여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토론회 성격이 짙다. 물론 해당 정당의 정치성향에 가까운 사람들이 주로 참석하지만 반대자도 자유롭게 참여 가능하며 무엇보다도 정치색과 무관하게 정치캠프에 참관하여 정당정치와 정치토론을 직접 경험하는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학생들도 다수 참여한다.

그런데 이 섬에는 다리가 없어서 오직 만으로 이동이 가능해 사람들의 탈출이 어려웠던 데다 무장을 한 사람이 범인 1명 뿐이었다. 게다가 범인은 경찰복을 입고 있어서 다들 행사진행을 돕는 경찰 정도로 생각하여 의심도 사지 않았다.[1]

그 탓에 범인은 이들을 대상으로 별 저항도 받지 않고 무차별 총격을 하여 완벽히 고립된 장소에서의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졌다. 범인은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퍼붓고 쓰러진 사람들을 향해 확인사살까지 하는 악랄함을 보여주었다.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경찰복으로 위장하여 섬에 도착한 후 청소년들을 가까이 오라고 유인하고는 총기를 난사했다고 한다. "모두 가까이 오라"후 난사... 노르웨이 총격 참상

1차 총격을 피한 청소년들이 건물 안에 숨어있자 범인이 다시 거짓말로 '보트가 구조하러 왔으니 이쪽으로 오라' 고 유도한 후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고 한다. 거기에다가 총알에는 사람이 죽을 수 있는 수준의 니코틴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니코틴이 폐를 통한 흡입이 아니고 피를 통해 직접 인체에 들어가면 치사율이 높아 아주 적은 양으로도 사망한다. 범인은 니코틴 용액을 인터넷을 통해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섬 남쪽에서 헬리콥터 소리를 듣고 구조헬기인줄 알았던 사람들이 나왔지만, 사실은 방송국 헬리콥터로 촬영을 목적으로 나온 것이다. 이때 나온 사람 중 한 명이 허벅지에 총알을 맞아 관통상을 입었지만, 3번의 수술 후 생존했다. 사람목숨보다 취재거리를 우선시한 기레기들 때문에 희생자가 더 나온셈.

약 1시간 30분 후 급히 출동한 델타부대[2]가 교통체증과 헬기를 구하지 못해 배편으로 섬에 상륙하자 범인은 투항, 테러는 종결되었으나 이미 수십여 명이 죽은 뒤였다.

총리관저 근처에서 폭탄이 터지고 노동당 청소년 정치캠프에 총리가 참석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테러범의 원래 타겟이 전 총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추측이 나왔으며 경찰 수사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범인의 목표는 노르웨이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가진 그로 할렘 브룬틀란 전 총리였다고 한다. 그러나 범인이 도착했을 때 브룬틀란은 연설을 끝내고 섬을 떠난 뒤였고 이에 범인은 미래의 노동당원들을 전부 싹을 제거해버리겠다며 총기난사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7월 26일(현지 시간) 노르웨이 경찰사망자 명단 중 일부를 공개했다. 정부청사 폭탄테러로 죽은 사람은 8명이고 우퇴위아 섬 총격사건으로 죽은 사람은 68명이라고 한다.

2. 범인의 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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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Anders Behring Breivik). 1979년 2월 13일 오슬로 출생.

범인 체포 이후 크누트 스토르베르제 법무장관은 범인이 '노르웨이인'이라고 발언하고 노르웨이의 최대 방송매체인 TV2가 "체포된 용의자가 극우 과격주의자들과 연관돼 있다" 고 하면서 이슬람 배후설은 완벽하게 사장되었다. TV2는 용의자의 신원을 노르웨이 동부 극우단체의 회원인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Anders Behring Breivik, 32세)이라고 밝혔다.

브레이빅은 2009년 초부터 범행을 준비했다. 경찰로 사칭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불법적으로 노르웨이 경찰 제복과 가짜 배지를 구했다. 이어 총기를 구하기 위해 2009년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에 체코프라하로 떠났다. 유럽에서 총기 규제가 가장 덜한 곳을 체코로 알고 있었기 때문. 브레이빅은 프라하에서 AK-47 돌격소총글록 권총을 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여건이 된다면 수류탄이나 RPG-7도 구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브레이빅의 예상과 달리 프라하에서는 총기를 구할 수 없었고, 그는 아무 소득 없이 노르웨이로 돌아온다.

이후 브레이빅은 노르웨이에서 합법적으로 총기를 구하기로 마음먹는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전과가 없었고, 7년 전에 이미 사냥 허가증을 취득하여 산탄총과 308구경 볼트액션 소총을 쓰고 있어서 노르웨이 법으로는 총기를 추가로 구하는 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2010년 말 브레이빅은 스텀 루거 사의 Mini-14 소총의 소지 허가를 얻고, Mini-14 Ranch Rifle 모델을 1400유로의 가격으로 구매한다. 또한 추가로 30발 들이 탄창도 구입한다.

이어 브레이빅은 권총 구매를 시도한다. 취미활동으로 위장하기 위해 스포츠 슈팅 클럽에 가입하고, 오슬로 권총 클럽에서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월까지 15회의 교육을 받고 권총 소지 허가를 받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글록 34 권총을 구매한다.

한편 폭탄을 만들기 위해 2011년 5월 4일 화학비료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브레이빅이 구입한 비료는 6톤이었는데, 이 중 3톤은 폭탄으로 쓸 수 없는 종류의 비료였다. 폭탄을 만든다는 사실을 숨기려는 일종의 기만책이었다. 더 나아가 브레이빅은 이미 2009년에 자기 명의의 농장을 만들어 구입한 비료를 농업에 쓸 것처럼 위장했다.

참고로 브레이빅은 범행 전 "2083 - A Europea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2083 - 유럽 독립 선언)이라는 장문의 글을 남겼고 위의 사진도 자신이 쓴 선언문의 맨 뒤에 본인이 첨부한 사진이다. https://info.publicintelligence.net/AndersBehringBreivikManifesto.pdf 구글에 글 제목을 검색하면 PDF로 된 1515쪽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의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브레이빅은 범행 6일 전에 개설한 트위터에 처음이자 마지막 트윗으로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의 힘은 관심만을 가지는 99명의 힘에 맞먹는다"라는 메세지를 남겼다. 이는 존 스튜어트 밀의 "One person with a belief is a social power equal to ninety-nine who have only interests" 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참고로 interests는 이익이 아니라 관심이라고 해석해야 옳다.

또한 브레이빅은 한국과 일본을 보수주의와 민족주의가 강한 이상적인 국가로 보고 유럽 역시 이 모델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치적 견해를 피력했다고 한다. 좌파정당인 노동당을 타겟으로 한 점이나 범인의 소속 단체 등을 보아 현재로선 극우주의자가 저지른 백색테러로 기울어지는 분위기이다. 최근 유럽에서 불고 있는 극우민족주의의 바람이 결국 불을 지르고 만 것이다. 그나마 노르웨이는 극우민족주의의 세력이 약한 편이었는데... 실은 오히려 극우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이 부족하기에 이런 테러전술을 사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의 적군파도 세력이 줄어들자 마지막 발악으로 무력투쟁을 했던 것이며, 옴진리교도 선거를 통한 합법적인 일본 지배권 확보를 꾀했으나 실패하자 무력투쟁으로 노선을 바꿨다.

용의자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라는 오해가 있는데 일단 현지에선 반 이슬람 성향이긴 하나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브레이빅은 그다지 종교에 관심이 없었으며 "종교는 나약한 자들을 위한 목발이다" 같은 반종교적인 발언을 한 걸 보면 극단적인 성향이 종교에서 유래한것은 아니다. 범행 후 브레이빅의 블로그에 올라온 1500페이지 분량의 불쏘시개급 글을 정밀 분석한 학자에 의하면 그가 기독교에 관심있는 것은 중세시절 무슬림에 대한 십자군 정도이고 유럽문명 수호자를 자처하며 외부 이슬람 문명간의 극단적 공격성을 드러냈다.[3] 종교성향은 불가지론자에 가깝다고 하며 기독교는 유럽 백인들을 단결시키는 문화적 도구로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위키피디아 영어판에 따르면 기독교적인 면과 불가지론-무신론적인 면, 토르와 오딘에 대한 신앙 등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것 같이 보인다.

http://blog.aladin.co.kr/718415105/4949573또 범인은 '한국과 일본은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범죄가 없고 잘 발전했다'라고 했다. 사실 그의 일기나 선언문에서도 "한국과 일본은 국경도 잘 막고 이민도 잘 막고 엔지니어들도 잘 배출하는데 유럽은 대학에서 히피만 양성한다."라는 글을 적기도 했다. 상기 링크된 글은 언론사와는 다르게 상당부분 온건하게 브레이빅의 글을 인용한 것이다.

연합뉴스는 용의자 브레이빅이 외교관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보도했다. 부모는 브레이빅이 한살 때 이혼을 했다. AFP 통신은 1999년에 브레이빅이 우파성향의 진보당에 가입했으며 지역 청년 지부에서도 활동을 했다고 보도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서 진보(progressive)는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극우성향의 정당에도 쓰일 수 있는 애매한 단어이다. 한국에서 진보라고 칭하는 성향과 정치세력은 외국에서는 그냥 좌파(left)이거나 좀 더 구체적인 이념을 붙여서 표현한다. 한국에서는 좌파라는 것에 부정적 의미가 아직도 매우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좌파 정당이나 세력에서도 진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해 왔다. 브레이빅은 근 7년동안 그 정당에서 활동했다가 탈당했다. 탈당한 이유는 진보당이 다문화 반대에 미지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브레이빅의 친구에 따르면 브레이빅은 20대 후반쯤에 우파 성향의 극단주의자로 변했다고 한다.

또한 브레이빅이 작성한 장문의 연설문에는 여러 극우주의 단체의 상징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 중에는 영국 내 극우단체들이 사용하는 문양이 있었기 때문에 영국에서는 노르웨이 테러가 영국 극우단체와 연관이 있는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으며 이들이 영국 내에서 테러행위를 저지르는게 아닌가 불안해하는 여론이 생기고 있다. 그런데 영국 정보부 SIS는 이미 2011년 초부터 브레이빅의 동향을 파악하고 주시하던 중이라고 한다. 대단한 영국 정보부...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 英 정보국 감시 대상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데 사귀지 못하여 좌절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위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으며 결국 미국으로 가서 성형수술을 하고 돌아왔다. 사실 많은 사회부적응 성향의 범죄자들은 이성관계에 평균보다 높은 관심을 가진데 비해 항상 실패와 좌절을 겪었음을 토로한다. 상기 글에서 "예쁜 여자아이들부터 죽였다"라는 보도 역시 범인의 그런 성향을 보여준다. 근데 남자 사망자가 더 많다사실 생각해보면 성향 자체로 일반 동성집단에서 소위 고문관 취급을 받을 정도인데(브레이빅의 경우에도 지인들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성의 눈에 더더욱 저들이 매력적으로 보일리가 만무하다. 위험분자로 찍히지나 않으면 다행.

또한 브레이빅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2의 유저라고 한다. 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소수의 테러범이 자국의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다는 점에서 모던 워페어 2No Russian을 떠올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브레이빅이 범행 전에 인터넷에 공개한 성명서 페이지 1418에는 'WOW를 한다고 해서 준비할 시간을 벌어라'고 하고 '모던 워페어 2는 훌륭한 모의 훈련을 할 수 있다. 멀티플레이어로는 거의 실제 작전 훈련을 모의할 수 있을 정도다'라고 써놔서 아주 대차게 욕을 먹었다.

이외에도 극우주의 코드가 맞는 버줌의 팬이라 유로니무스 살인사건 등으로 복역 중이었던 버줌에게 서신을 몇 개 보냈을 정도다.

브레이빅의 아버지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사람을 쏴 죽일바엔 차라리 자살했어야 한다고 비난했다. 노르웨이 테러범 아버지 "아들, 자살했어야" 이 발언이 나온 것은 부자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관련 보도로 아버지는 몇 년 전 아들이 간절히 만나달라고 부탁했으나 매정하게 거절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테러범, 외교관 출신 친아버지에 적개심

브레이빅은 '2083:유럽독립선언'에서 만나고 싶은 6명의 정치인을 이야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총리,[4]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 헤이르트 빌더르스 네덜란드 자유당 당수,[5] 라도반 카라지치보스니아 세르비아계 지도자,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을 만나고 싶다고 기술했다. 해당 내용은 인터넷 선언문(2083:유럽독립선언)에서 1천 407쪽에 등장한다고 한다. # 극우주의자인 범인은 본문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국일본보수주의민족주의가 강한 이상적인 국가라고 평했다.

사건이 브레이빅 단독 범행으로 밝혀지면서 그는 조직범죄가 아닌 단독범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범죄자가 되었다. 이런 부문에서 공식적인 기록을 하지는 않으므로 큰 의미가 없기는 하다. 현재는 2016년 니스 테러의 희생자가 86명으로 이를 능가한다.

3. 이후

2015년 7월, 브레이빅이 오슬로 대학교의 입학 허가를 받아냈다. # 그러나 브레이빅은 규정대로 대학교에 직접 갈 수 없으므로 수업에도 참가할 수 없고, 대학 관계자나 학생 등의 외부인과 접촉도 당연히 금지되며, 인터넷 강좌를 청취하거나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도 철저하게 제한될 예정이라 한다. 그 외에 과제 제출 등 대학교와 접촉해야할 일도 전부 교도관을 통해서 소통하도록 한다. 즉 독학으로 해내라는 소리다. # 교육받을 권리만 인정했을 뿐이지 실제로 브레이빅이 교육 과정을 밟게 되거나 일반 학생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게 되는 부분은 전혀 없다. 그러나 어쨌든 최고 흉악범인 브레이빅이 '교육받을 권리'를 인정받은 것은 사실이고, 상당히 드문 일이라 대학교 측에서도 상당한 토의를 거쳤다고 하며, 자국 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한편 테러 사건 이후 가장 큰 논란이 된 것은 브레이빅이 노르웨이 당국을 인권 침해로 고소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늘어놓은 불만사항을 보면 매우 억지스러운 것이 '빵에 바를 버터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다', '커피의 온도가 너무 차갑다', '보습제를 제공하지 않는다', '수감실에 장식이 되어 있지 않으며 풍경이 아름답지 않다' 등의 사안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독방 수감과 다른 수감자와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에 크게 항의를 하였고 노르웨이에 이보다 형편없는 교도소는 없을 것이라며 단식 투쟁까지 들어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오슬로 법원이 브레이빅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물론 커피가 어쩌느니 편지를 검열한다느니 하는 억지스러운 부분은 빼고 독방 수감과 타인과의 접촉 금지에 관한 부분을 인권 침해로 판단했다는 것인데 인권과 교화를 중시하는 북유럽 법을 생각하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브레이빅은 그 소송 당일날에 출석할 때조차도 카메라와 배심원단을 향해 보란 듯이 나치식 경례를 하고[6] (사진) 스스로 수감 이후 오디니즘을 숭상하는 파시스트라고 자칭할 정도로 위험하고 잔혹한 사상을 가진 인물이라 다른 수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접촉 금지는 타당하다는 것이 교도소 측의 설명이다. 일부 유족의 경우 이는 우리나라의 사법 체계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라며 긍정하는 의견을 보이기도 했으나, 대다수의 다른 유족들은 이 판결에 분노하였고 노르웨이 국민들 역시 법원이 인권이란 이름으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받아줬다며 강하게 반발하는 여론이 쏟아져 나왔다. 노르웨이 정부 측은 즉시 항소에 들어갔으며 다행히 항소심에서는 판결이 뒤집어졌다. 항소심 담당 판사는 브레이빅을 타 수감자와 접촉할 수 없게 하는 것은 적절한 조치이며 인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며 노르웨이 정부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테러 사건이 일어났던 우퇴위아 섬은 현재 추모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4. 영화화

2018년 노르웨이 감독인 에리크 포프가 우퇴위아, 7월 22일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베를린 영화제에서 호평을 듣고 있다.
또한 같은 해 넷플릭스에서 폴 그린그래스가 연출을 맡은 영화 7월 22일이 만들어져 한국에서도 공개되었다.#

[1] 경찰이나 군인, 소방관처럼 제복을 입는 공무원의 경우, 임무 수행시 최소 2인 이상(선임자-후임자가 짝을 지어서 활동)이 짝을 지어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상상황이 아니라면 단독으로 미리 예정된 어떤 임무를 공식적으로 혼자 수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2~3명이 같은 제복을 입고 온 것이 아니라 혼자 단독으로 왔을 경우 경찰이나 군복무 경험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것이다. 실제로 처음에 범인이 경찰 제복 차림으로 혼자 을 건너서 섬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경비원은 테러범의 무장에 대해 의심했고, 최초의 희생자가 되었다. 하지만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미성년자 학생들이었고, 당연히 그런 경험이 없었으며 (아마 공무원들의 행동수칙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이게 화근이 되었다.[2] 노르웨이 경찰의 대테러부대.[3] 사실 이 글은 브레이빅이 모두 작성한 것이 아니고, 인터넷 여기저기서 짜집기한 것이 대부분이다.[4] 푸틴의 대변인은 이에 대해 "미친 놈의 헛소리"라고 일축했다.[5] 네덜란드 자유당은 이슬람 반대, 비유럽계 이민 반대, 외국인 추방을 내걸고 있는 정당이다. 범인 브레이빅은 네덜란드 자유당을 유럽에서 가장 모범적인 정당으로 찬양했다.[6] 참고로 노르웨이도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에 의해 침략당하여 점령당한 적 있는 국가이다. 폴란드처럼 일반인을 대량학살한 지역은 아니지만 여전히 유대인만큼은 탄압하였으며 온갖 간섭을 당했으니 나치에 대한 증오심이 장난 아닌 국가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