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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제도 개편 | → | 제41-50대 아소 다로 | → | 현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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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 출생 | 1940년 9월 20일 ([age(1940-09-20)]세) | ||
| 후쿠오카현 이즈카시 | |||
| 현직 | 제50대 중의원 의원 자유민주당 부총재 일한협력위원회 회장 | ||
| 재임기간 | 제92대 내각총리대신 | ||
| 2008년 9월 25일 ~ 2009년 9월 16일 | |||
| 홈페이지 |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230AE><colcolor=#c3c965> 부모 | <colbgcolor=#ffffff,#1c1d1f>부친 아소 다카키치(1911 ~ 1980) 모친 아소 가즈코(1915 ~ 1996) | |
| 형제자매 | 3남 3녀 중 장남 남동생 3남 아소 유타카[1][2](1946년생) 여동생 3녀 노부코 비[3] | ||
| 배우자 | 아소 치카코[4] | ||
| 자녀 | 장남 아소 마사히로[5] 장녀 아소 아야코[6] | ||
| 친인척 | 외고조부 오쿠보 도시미치(1830 ~ 1878) 고조부 미시마 미치쓰네 증조부 아소 다키치(1857 ~ 1933) 외증조부 마키노 노부아키(1861 ~ 1948) 조부 아소 다로[7](1887 ~ 1919) 외조부 요시다 시게루(1878 ~ 1967) 장인 스즈키 젠코 처남 스즈키 슌이치[8] | ||
| 학력 | 가쿠슈인 초등과 (졸업)[9] 가쿠슈인 중등과 (졸업) 가쿠슈인 고등과 (졸업) 가쿠슈인대학 법학부 (정치학 / 학사) | ||
| 신체 | 175cm, A형 | ||
| 종교 | 가톨릭 (세례명: 프란치스코)[10] | ||
| 정당 | |||
| 파벌 | 지공회 (회장) | ||
| 지역구 | 후쿠오카 8구 | ||
| 의원 선수 | 15 (중) | ||
| 의원 대수 | 35, 36, 38, 39,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 ||
| 약력 | 아소시멘트 대표이사 사장 몬트리올 올림픽 일본대표 (클레이 사격) 중의원 의원 제17대 자유민주당 청년국장 문부정무차관 제53대 경제기획청장관 제11대 일본클레이사격협회 회장 제2대 내각부특명담당대신 (경제재정정책담당) 제44대 자유민주당 정무조사회장 제3-5대 총무대신 제138-139대 외무대신 제40·42대 자유민주당 간사장 제23대 자유민주당 총재 제92대 내각총리대신 제17대-20대 재무대신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스가 내각) 자유민주당 부총재 | ||
1. 개요
일본의 정치인. 제92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했다. 이시바 내각에서 당 최고고문[11]을 맡았다가 다카이치 사나에 체제부터 다시 당 부총재를 맡고 있다.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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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아소 다로/생애#s-|]]번 문단을#!if 문단 == null & 앵커 != null
의 [[아소 다로/생애#|]] 부분을 참고하십시오.3. 발언과 관련한 구설수
간략한 망언 모음일본은 다테마에라고 하여 상대방에게 본인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고, 드러내더라도 최대한 남의 기분을 고려하여 완곡 어법으로 말하는 편이지만 일본 정치인들만은 예외이다. 당장 자민당의 강경 정치인들, 예를 들어 아베 신조, 이시하라 신타로 등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상당한 망언을 쏟아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아소 다로의 경우 단순히 일본을 넘어 정치인이라고 여기기 힘들 정도의 극언을 쏟아부은 적이 많기에 한국은 물론 미국, 심지어 일본 내에서도 지탄받는다. 어느 정도냐면 북한 정도를 제외하면 그의 망언을 능가하는 국가나 정치인은 거의 없다.
아소의 발언들을 살펴보면 정치인의 발언에 대한 잣대가 엄격한 한국은 물론 발언의 자유도가 높은 미국에서조차 욕을 먹고 매장당할 수위의 발언도 일부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나 적절한 다테마에를 중시하는 일본은 절대로 이런 모습을 좋게 보지 않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나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역시 극우 정치인으로써 발언 논란이 따라다니지만, 이들은 전략적으로 극우 발언을 해서 국민의 지지를 얻는다면 아소는 본인의 발언을 주체하지 못해 다테마에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의 지지율을 왕창 깎아먹었고 결국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자민당 선거 대패라는 대참사를 가져오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망언 논란의 대표적 인물로 여겨지는데, 일본에서는 망언 사고가 나면 아예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멸칭인 아호 다로(阿呆太郎/바보 다로)를 직설적으로 언급하기도 한다.#
아소는 본류 출신 정치인이지만 정치적으로 강 발언을 잦게 하기도 하였다. 대동아 전쟁이니, 천황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야 한다느니[12], 창씨개명이 조선인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느니 등. 다만 아소는 가톨릭 신자인지라 총리 시절 8월 15일에는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에 참례했다.[13]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정치적 입지를 고려하여 행해진 것.
또한 혈통 관련 차별 발언까지 하였다. 아소는 선술했듯 혈통만으로 치자면 일본 정치판에서 손에 꼽히는 인물인데[14], 문제는 이에 대한 프라이드 때문인지 혈통 관련하여 남을 헐뜯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대표 사례로 자신의 계파로 분류되는 사람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노나카 히로무에게 "부라쿠민 같은 천한 (집안 출신) 놈을 총리로 세울 수 없다"는 말을 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참고로 부라쿠민 차별 발언은 일본 내에서는 거의 미국에서의 흑인 인종 차별 발언 수준으로 하면 매장되는 발언이다. 이 말을 들은 노나카는 매우 분노하며 다음과 같이 직설적으로 말했다.
総務大臣に予定されておる麻生政調会長。あなたは大勇会の会合で『野中のような部落出身者を日本の総理にはできないわなあ』とおっしゃった。そのことを、私は大勇会の三人のメンバーに確認しました。君のような人間がわが党の政策をやり、これから大臣ポストについていく。こんなことで人権啓発なんかできようはずがないんだ。私は絶対に許さん!
총무대신에 예정된 아소 정조회장[15], 당신은 대용회 모임 자리에서 "노나카 같은 부라쿠민 출신을 일본 총리로 세울 수는 없지"라고 말했다. 나는 이 사실을 대용회 구성원 세 사람에게 이미 확인했다. 너 같은 인간이 우리 당의 정책을 펼치고, 장차 차기 (총리)대신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딴 걸로 인권 계몽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우오즈미 아키라, <노나카 히로무 차별과 권력(野中広務 差別と権力)> 2003년 9월 11일
아소는 이 말에 반박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다테마에를 기조로 삼는 고로 오사카나 후쿠오카를 제외하면 웬만해서는 화가 나도 돌려서 말하지만, 노나카는 너무나 부아가 치밀어서 대놓고 소리를 질렀다. 특히 노나카의 출신지는 교토인데, 다테마에를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일본 전체를 통틀어도 교토만큼 다테마에가 심한 지역은 없다.[16] 즉 노나카가 이 정도로 대놓고 소리를 질렀다는 건 "너 죽든 나 죽든 사생결단을 내자!"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당시 노나카는 산전수전 다 겪은 77세의 노회한 정치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노나카의 반응에 아소는 그런 적이 없다고 변명했지만 안 먹혔는데, 위에 노나카가 아소에게 한 일갈을 좀 읽어보면 이미 다른 의원들로부터 확인까지 끝냈다고 확실하게 언급했다.총무대신에 예정된 아소 정조회장[15], 당신은 대용회 모임 자리에서 "노나카 같은 부라쿠민 출신을 일본 총리로 세울 수는 없지"라고 말했다. 나는 이 사실을 대용회 구성원 세 사람에게 이미 확인했다. 너 같은 인간이 우리 당의 정책을 펼치고, 장차 차기 (총리)대신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딴 걸로 인권 계몽 따위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나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우오즈미 아키라, <노나카 히로무 차별과 권력(野中広務 差別と権力)> 2003년 9월 11일
심지어는 선거철에 유권자들에게 한국어로 "쌍놈들아"에 필적하는 말까지 농담조로 했다가[17] 욕을 대판 쳐먹었던 적까지 있다. 게다가 상술했듯 노나카에게 부라쿠민 운운한 사건으로 인해 '집안빨로 어릴 적부터 잘 먹고 잘 살아서 고생 자체를 모르고 서민들을 천민 보듯 하는 천룡인이다.'라는 비아냥도 가득한데, 이 사건으로 스스로 불을 지핀 셈이다.[18]
3.1. 2000년대
2005년 5월 6일, 총무대신 시절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강연에서 전후 경제 재건이 최우선 과제였는데 "운이 좋게도, 정말 운이 좋게도 6.25 전쟁이 발발했고, 그 덕분에 일본 경제 재건에 가속도가 붙었죠.(Fortunately, fortunately The Korean War start, and that accelerated Japanese economy reconstruction.)"라고 말했다.#2006년에는 "대만의 높은 교육 수준은 일본의 식민 지배 덕분이다"라는 발언을 하였는데, 다만 일본은 자신들의 체제 선전을 위해서라지만 대만 식민지의 원활한 통치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여 현지에서도 여론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
본인 역시 당시 60대를 훌쩍 넘은 노인였음에도 노인 관련 망언이 가장 많다. 2008년 11월에는 노인 의료비를 언급하면서 "마냥 먹고 마시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료비를 내가 왜 지불해야 하느냐. 노력해서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내는 세금을, 노력하지 않아 병든 사람이 축내고 있다"라고 했으며, 아베 내각에 입각해서도 2013년 1월에 "노인이 어서 죽을 수 있게 해야 한다"라는 망언을 했다.#[19]
정확히는 "노인이 적당히 살고 이제 죽고 싶다고 생각해도 '살 수 있기 때문에'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참을 수 없다. 더불어 정부 예산으로 (고액 치료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어서 죽을 수 있게 해야 한다"라는 발언인데, 이후 "공식 발언이 아니라 개인적 경험을 말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정확히는 나이 든 중증 환자들 즉 안락사를 지지하려고 한 발언으로, 자신은 "나이 들어서 아프면 고통스럽게 연명하느니 죽는 게 낫다"는 의도로 말한 발언이지만, 아소 본인의 부족한 어휘 실력이 작렬해 저런 망언이 되어 버렸다. 어떤 의도로 말했건,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기엔 좋지 않은 표현이라 후에 거듭 사죄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회고록에도 당당히 망언 제조기로 이름을 올렸다. 라이스 장관과 제2차 세계 대전 승전 기념식에서 만나 "전쟁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면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전승국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2007년 포츠담에서 열린 G8 외무장관 회의에서 벌어진 촌극이었는데, 아소의 망언과 달리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승산 따위는 전혀 없었고,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피해만 눈덩이처럼 커졌으며, 일본 열도를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만들려는 몰락 작전까지 구상되고 있었다. 원자폭탄 두 방 맞고 패전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할 정도다. 애당초 실상은 차치하더라도 일본의 만행에 수많은 국민을 잃고 와신상담하여 정의구현한 미국의 국무장관 면전에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실례를 넘어서 도가 넘은 발언이다.
또한 "일본을 돈 많은 유대인들도 살고 싶어할 만한 나라로 만들고 싶다"라는 말도 남겼다. 대놓고 나치 독일을 찬양하는 망언을 한 탓에 시몬 비젠탈 센터에서 거세게 항의하였다.
3.2. 2010년대
박근혜 대통령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회담" 자리에서 느닷없이 "미국의 남북 전쟁을 알고 있습니까.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바로 그런 식인데…"라는 장광설을 늘어 놓아서 박근혜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마치 학생을 훈계하는 교사같은 태도였다고. 이는 일본 제국의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듯한 행태이므로 한국 입장에서는 당연히 불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박근혜 역시 3.1절 행사에서 공개적으로 일본 정부를 비판하며 응수했을 정도다.경제 관련 인물도 아닌 아소가 아베 내각에서 재무대신이 되면서, 경제에 대한 무식함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2013년 6월 17일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일본의 천문학적인 국가부채 문제를 질문하자, 아소는 "그러면 돈을 찍어서 갚으면 그만 아니냐"라는 대답을 해서 국민들을 경악시켰다고 한다. 이렇게 마구잡이로 돈 찍어내면 어떤 사태가 발생하는지는 초인플레이션 항목 참조.[20] 아소가 말한 것은 일본에서 불법인데도 천연덕스럽게 저런 말을 해서, 역시나 무개념자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다.[21]
그리고 이번에는 "일본은행들이 금융위기를 피한 건,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일본의 금융이 튼튼해서가 아니라 영어를 못해서 파생상품을 구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희대의 발언을 했다.
2013년 7월 29일. 한 강연회에서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어느 틈엔가 바뀌어 있었다.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변해 버렸다. 그 수법을 배워 보면 어떨까"라고 말했는데#, 이 수법이란 다름 아닌 나치가 한 짓이었다. 그동안의 망언은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농담으로 치부될 정도로 대차게 한 건 저질렀다. 이로 인해 미국의 유대인 권리 단체중 하나인 시몬 비젠탈 센터에서도 아소 망언에 대해 항의 성명을 냈다. 일본에서도 선거 패배로 침체되어 있던 야당에게 좋은 비판거리로 작용해 민주당, 모두의 당, 사회민주당, 일본공산당, 생활당이 연합해서 사퇴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런 사퇴 압력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발언은 철회하겠지만, 사퇴하지 않겠다"며 버텼고 아베 총리가 직접 각의까지 내 가며 프렌드 실드를 쳐 줬다. 관련 기사
그리고 2014년 2월 19일 중의원 예산위에서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해외의 반응을 묻자 아소는 "외무성에서 정식으로 항의가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대한민국과 중국은 자국 주재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했고, 일본 주재 자국대사관에서도 일본 외무성을 방문해 항의했다는 것이다. #
4월 24일 방일 중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향해 망언을 내뱉었다. 내용인 즉, "미국 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TPP 관련 이해관계를 하나로 정리해낼 만한 힘은 없는 것 아니냐" 며 "어찌되건 11월의 미 중간선거 전까지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발언했다.관련 기사 TPP 협상이야 자국의 이익이 걸려 있다 보니 그렇다 쳐도 이건 현재 미국 내에서 풍파를 맞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을 대놓고 조소한 것이다. 이 발언이 공개되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을 비꼰 게 아니라 다른 의미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22]
사실 그 이전인 4월 13일에 아베노믹스는 기대한 것보다 효과가 없다고 한 적도 있었다.
총리 시절 안락사 발언은 생각치도 않고 "노인이 나쁜 것 같은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가 "왜 저출산 현상이 오는지는 생각도 않는다"며 까이자 부랴부랴 "보육시설의 부족으로 인한 저출산이 문제"라며 진압에 나섰다.
2015년 4월 3일 재무대신 기자회견을 하면서 홍콩 봉황위성TV(이하 피닉스TV) 기자가 손을 들고 본인의 소속을 밝히자 "응? 피닉스??"라면서 대폭소. AIIB에 참여하지 않은 데 대해 야당에서 비판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우리는 야당이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공산주의가 아니니까. 공산주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중국과는 다르게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국가다, 일본은. 이런 걸로 보복 당하는 일도 없고, 정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며 묻는 말에 대답은 안 하고 홍콩 언론이라고 신났는지 중국을 비판했다.
주간지 "아에라"(AERA)에 의하면, 열받은 기자가 시나 웨이보에 올렸고, 약 180개국 2.5억명의 중국어 화자 중화권 피닉스TV 시청자들에게 글로벌하게 까이고 있다고 한다.관련 기사 참고로 피닉스TV는 홍콩 방송이고, 신화사 같은 중국 관영미디어와는 다르다고. 그러나 피닉스TV도 FOX 계열이긴 하지만 중국 본토에 허가를 받고 방송되고 있기 때문에 준 관영 미디어 취급을 받고 있다.
조선 시대 "전황(錢荒)"처럼 재화를 쌓아 두기만 하면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적절한 소비는 시장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단어선택이 지나치게 과격했다는 게 문제. 더군다나 이번 정권에서 최대한 노년층의 편의를 봐주기나 했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라는 것도 문제가 됐다. 사실 자민당 쪽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현 아베 내각의 지지율 등락은 엔화 환율 추이가 아니라 최근에 벌어진 연금 사태의 수습 상황에 훨씬 강한 연관성을 보여왔다. 그런데 그런 정권의 재무대신이란 사람이 저런 발언을 했으니 적반하장이란 말 밖에 못 듣는다.
위안부 평화비 건립 보복으로 한일 통화 스와프 협상이 중단되자 "(통화 스와프 협상은) 돈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뢰관계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신뢰관계가 없어지면서 (협상 재개가) 어려워지고 있다. (한일 합의라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빌려준 돈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며 "스와프 따위도 지켜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된다"고 주장했다.#[25]
8월 말에는 아돌프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아무리 동기가 옳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망언을 하여 전세계적인 지탄을 받았다. 그 뒤에 발언을 철회하기는 했으나, 이 망언으로 인해 야당으로부터 비판받았다.
2017년 9월에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으로 북한 무장 난민이 올 경우 대응할 방법 중 하나로 ‘사살’을 언급했다. 한반도 위기론을 부채질 하는데 더해, 난민에 대해 사살까지 언급한 것은 일본에서조차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8년 5월 7일에 아소는 후쿠다 준이치 前 재무성 사무차관[26]의 성희롱 사건에 대해 "성희롱은 죄가 아니다"라는 희대의 망언을 해서 시민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법적으로 따지면 성희롱은 성립 요건이 까다로워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공공연히 비난받을 수 있는 행동인 성희롱을 함부로 죄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 문제.
5월 16일 도쿄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6·12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북한의 외관이 안 좋은 비행기가 싱가포르까지 무사히 비행하길 바라지만, 도중에 (비행기가) 떨어져버리면 얘기가 안 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낡은 비행기를 탔다가 죽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것인데, 북한의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도 외교적으로 상당한 결례가 되는 말이며, 개인끼리도 해서는 안 될 말이다. 그럼에도 "가뜩이나 긴장 국면인 상황에서 쓸데없이 북한의 감정을 건드리는 것은 악의적인 의도가 아니냐"는 시선도 있어 관방부장관이 주의를 주는 등,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관련기사 더욱이, 아베 내각은 북한문제에서 패싱당하지 않고 중국과 더불어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북한 외교 라인과 끈임없이 접촉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발언은 북일관계에 찬물을 끼얹은셈이다.
2018년 9월 5일 "일본이 G7중 유일한 유색인종 국가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었다 관련기사 위 발언은 3가지 면에서 비판을 받았다. 첫째, 미국과 캐나다 같은 서구 국가들은 대부분 다인종 국가인데 백인들만의 국가인 것처럼 표현했다. 둘째, 유색인종은 영어 coloured people의 번역어로 백인의 타 인종 차별을 은근히 드러내는 단어인데 이것을 아시아 국가의 각료가 스스로를 지칭하는 데 쓴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일본은 비록 아시아 국가이지만 실제로는 서구권에 맞먹는 국가로서 한국, 중국 등과는 궤를 달리한다."라는, 은연 중에 다른 아시아 국가를 깔본 의미로 쓴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2018년 11월 8일 아사히 신문에 그가 작년 8월 파벌 모임에서 "(정치인은) 결과가 중요하다"며 "몇백만 명을 죽인 아돌프 히틀러는 아무리 동기가 옳았어도 안 된다"라고 말했던 것 때문에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아소 부총리와의 관계가 파탄이 났고, "2017년 10월 이후 미일 간의 경제대화가 중단된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라는 기사가 올라왔다. # 이 사람의 망언이 미일관계를 꼬이게 한 원인들 중 하나였던 셈.
2019년 1월에 일어난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위협 비행 사건으로 인해 자민당 내부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무비자를 폐기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간혹 나오고 있는데, 의외로 이 관련해서는 나름 침묵하고 있다. 하필 아소 다로의 지역구가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면 제일 큰 타격을 입게 될 후쿠오카이기 때문인데, 실제로 무비자 폐지를 할 경우 후쿠오카 뿐만 아니라 규슈, 시코쿠 등 한국과 근접한 일본 지방 주민들이나 지자체 입장에서는 거품을 물고 쓰러질 일이다.[27][28] 한국과의 거리가 가장 가까운 데다가 여러 가지 관광지들이 많아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아주 많은 편인데,[29] 이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다는건 관광산업을 정부가 스스로 박살내 지역경제를 나락으로 떨어트릴수 있기 때문이다.
2019년 2월 3일 한 강연에서 일본 내 저출산과 고령화 현상에 대해 2014년에도 언급했던 "아이 낳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말했다.# 물론 그 이후인 2월 4일 국회 예산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해당 발언에 대해서 "그러고도 당신이 재무를 담당하는 장관이냐"는 등의 힐난을 퍼부은 일본 야당의원 지적에, 아소는 "해당 발언은 오해를 불러올 여지가 있다"면서 발언을 철회했다.
2019년 3월 12일, "한일 징용공 소송으로 인해 일본 기업 자산을 강제로 매각할 시 이에 대한 보복 조치로써, 한국인의 비자 발급 중단과 한국으로의 송금중단을 가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30] 때문에 이 발언이 나오자마자 일본 경제계와 후쿠오카 현민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31][32]
아소는 17일 아베 총리가 참석한 공식행사에서 과거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에 대해 ‘대동아전쟁’이란 표현을 사용했다고 도쿄의 외교소식통이 18일 전했다. 아소는 자위대 지휘관을 육성하는 현재의 방위대학교 설립에 기여한 이들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전쟁에서 불필요한 피해를 입은 최대의 이유는 육군과 해군간 소통 부족이었다. 그래서 (육·해·공을 통합해 교육하는) 방위대학이 만들어졌다","육·해·공이 함께 밥을 먹는 게 중요한데 오늘 이처럼 함께 건배를 할 수 있어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는 취지의 건배사를 했다.
2019년 12월 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아소는 "만약 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 자산 매각을 강행할 경우 한국과의 무역을 재검토하거나, 금융 제재에 착수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응할 것이다." 라며 한국을 협박하였다.[33] 그리고 그는 이어서 "무슨 방법을 쓰든 간에 일본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작은 한국이 먼저 피폐해질 것이다. 그러니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중요하다."관련기사라며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하였다.
3.3. 2020년대
2020년 1월에도 "2000년 간 하나의 민족, 하나의 왕조"라는 발언을 하다가 비판받고 사과했다.#[34]3월에는 부총리 겸 재무대신 자격으로 참의원 재정금융위원회에 출석하여 "40년마다 올림픽 위기가 찾아온다"는 발언을 하였다. 이 말을 연결하자면 2020 도쿄 올림픽 역시 소위 본인 말대로 '저주받은 올림픽'이란 얘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범 지구적 확산으로 인한 우려에도 불구 올림픽 정상 개최를 강행하려던 아베 총리에게는 팀킬 발언이 되어버렸다.
아소는 1940 삿포로 동계올림픽과 같은 해 도쿄 하계올림픽이 제2차 세계대전으로 취소됐고, 1980 모스크바 올림픽도 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서방국가들이 대거 참가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아소 부총리의 발언은 도쿄올림픽을 오는 7월 예정대로 개최하려는 일본 정부와 대회 조직위원회, 도쿄도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본 내에서 제기되었다. 재미있는 건 아소는 아베 신조 총리와 당시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가 2012년 ~ 2013년 2020 도쿄 올림픽 유치에 혈안이 된 것을 비판하며 도쿄 올림픽 개최에 계속해서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2011년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의 후유증을 복구하는 데 돈을 써야 한다며 올림픽은 후유증 복구와 상관 없지 않느냐 하는 점을 지적하며 아베 정권 초기에 아소는 총리와도 마찰을 빚었던 것이다. 유사하게 2025 오사카 엑스포에 대해서도 아소 다로는 재무대신 임기 내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2020년 4월 10일, 정부의 휴업권고에 응한 사업자에 대해 지원금을 지불하는 것에 대해서 도의 재정력을 언급하면서 "도쿄는 돈이 많지만 다른 현들은 잘 모르겠네요."라고 말하는 바람에 또 한번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았다. 한마디로 중앙정부에서 휴업 권고를 해놓고 보상은 생각한 적 없다는 소리다.
2021년 스가 내각에서 후쿠시마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한국 중국 등 주변국이 반발하자, "마셔도 별일없다", "중국이나 한국이 바다에 방출하는 것보다 낫다"고 발언하며 망언제조능력이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했다.# 당연히 한국과 중국 양측에서 비아냥을 하기도 했다.
2021년 도쿄도의회 선거를 앞두고도 요양 중이었던 고이케 유리코도지사에게 "아픈 건 자업자득''이라는 식으로 망언을 했다가 결국 역풍이 불어 자민-공명이 목표로 했던 과반의석 달성에 실패하는데 그야말로 일익을 담당했다.
2023년 10월 12일에는 "한국 대통령은 퇴임 후 살해 당하거나 체포된다. 이웃 국가로서 어떻게 사귈 수 있겠나."고 발언했다.## 한국의 정권이 교체되면 윤석열 정부의 외교기조나 합의가 뒤집히지 않을지 의심하는 태도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이지만,[35], 별다른 근거도 없이 윤석열 대통령이 체포되거나 살해당할 거라며 넘겨짚는 발언이기 때문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2025년에 윤석열 대통령이 실제로 체포당하는 일이 일어나긴 했지만, 그 사유가 되는 12.3 비상계엄이 터지기 한참 전이었다. 게다가 일본이야말로 아소 본인이 부총리로 입각했던 시절 총리로 모셨던 사람이 퇴임 후 자국민에 의해 피살당했다는 점에서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이 나와도 할 말이 없다. 이에 관해 외교부 당국자는 "국가 간의 관계에 있어서 상대국 정상과 관련한 언급은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본다"라고 에둘러 답변했다.
내각에서 물러나고도 망언은 멈출 생각이 없는지 49회 중원선 선거운동 기간 중인 2021년 10월 25일 홋카이도에서 "지구 온난화로 인해 홋카이도 쌀이 맛있어졌다"는 지역드립성 망언을 하여 지역 비하 및 홋카이도 농업 비하 논란, 지구온난화 문제 희화화 논란에 휩싸였다.# 다만 이후 선거 결과를 놓고 보면, 아소의 망언이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한 모양이다.[36]
2023년 9월에는 일명 3대 안보문서[37]의 개정에 소극적이었던 공명당을 향해 "암적 존재"라고 지칭하였다. # 당시 공명당 대표였던 야마구치 나츠오와 공명당의 기반인 창가학회까지 거론하였으며, 이에 야마구치 대표는 "전후 관계를 모르기 때문에, 평가하기에는 이르다"고 넘겼으나 이 발언은 이후 2025년에 공명당이 자민당과의 연정을 탈퇴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38]
이렇듯 계속 망언들을 쏟아내자, 2023년 11월 25일 요미우리 신문이 한 미디어 연구소에 의뢰해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이후의 총리들의 호감도를 조사한 결과, 9명 중 뒤에서 2번째, 그것도 다수의 일본인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민주당 정권 시절 총리들인 노다 요시히코와 간 나오토 보다 낮은 점수를 받았다. # 참고로 꼴찌는 하토야마 유키오. 절친이자 비슷하게 통일교 게이트와 연루된 아베 신조가 공동 2위를 차지한것과 대조 된다. 끊임없이 망언들을 내뱉은 결과 짧은 총리 시절의 무능했던 면까지 드러난것도 재조명 되어, 여전히 아소를 찬양하는 온라인 상의 넷 우익들이나 오타쿠들을 제외하면 호감도가 바닥을 찍은걸 반증한 결과다.
2024년에도 망언은 계속되어, 1월 28일 후쿠오카의 한 강연에서 가미카와 요코 외무대신을 "가미무라"라고 잘못 지칭하면서 "그리 아름다운 분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돌연 외모에 대해 지적했다. 아소는 이어 " 하지만 (가미카와 대신은)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영어도 제대로 해 외교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만나야 할 사람과 미리 약속을 잡았다.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외무대신은 지금까지 없었다. 새로운 스타가 자라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내 "'이 아줌마 잘하네'라고 생각했다"고 가미카와 대신을 '아줌마'라고 지칭하기도 했다.#이에 가미카와 외무대신은 특별히 문제삼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39]
4. 여담
- 1970년대의 아소 부자.
- 금수저 도련님 이미지에 걸맞게 대학생 시절부터 테일러샵에서 맞춤정장을 자주 맞췄고 스포츠카를 타고 수업을 땡땡이치고 여자랑 놀러갔다고 한다. 지금도 상당히 스타일리시한 패션을 자랑한다.
- 일본에서 몇 안되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 클레이 사격 선수 출신이다. 그것도 22살에 전일본선수권 대회에서 일본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고 나서, 1974년 멕시코 국제사격대회에서 우승했고, 1976 몬트리올 올림픽에도 일본 국가대표로 참가했던 프로 선수였다.[최종 순위는 68명 중에 41위] 현재는 일본 클레이사격협회 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한편 당시 일화로는, 몬트리올 올림픽을 준비하던 사격 대표팀이 후쿠오카현 이즈카시의 아소 가문 대저택에 있는 사격장에서 전지훈련을 했다고 한다. 후쿠오카 아소가문 저택에는 사격장이 무려 두 개나 있다고.
- 젊은 시절의 그는 완전 스나이퍼 이미지로 지금의 막장과는 좀 다르다. 젊은 시절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외모도 나름 번듯한데 가수 설운도와 닮은듯한 외모였다. 키도 젊은 시절 기준이겠지만 175cm로, 1940년생 일본인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큰 키이다. 이를 반영한 탓인지 개그 마작만화인 헛쯔모없는 개혁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저격한 김정일의 스나이퍼를 역저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골프도 좋아한다고 한다. 보통 내로라하는 명문가는 이른 나이에 정략 결혼을 시키는데 긴 해외 유학 생활에 외부에 알려질만큼 취미까지 다양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상당히 늦은 나이에 결혼하게 된게 이해가 가는 케이스.
- 엄청난 규모의 저택을 보유 중이다. 후쿠오카현 이즈카시의 아소 가문 본가는 숲으로 둘러싸인 장원 수준으로, 대지넓이가 66,000㎡에 달하며 건물만 다실과 창고 등을 포함해 29동이다. 위치 역시 변두리가 아니라 신이즈카역으로부터 200~300m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정도로 이즈카 시내 중심에 있다. 참고자료구글 지도 링크
- 한편, 시부야구의 가미야마(神山)[40]에도 대지넓이 2400㎡, 바닥면적 720㎡(약 218평)에 달하는 서양식 3층 저택을 보유하여[41], 땅값만 70억 엔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42] 더 무서운 점은 동생이 바로 옆에 부지 넓이가 비슷한 저택을 소유 중이라는 것. 참고자료
- 2008년 아소의 이웃 정육점 주인은 "아소 총리의 부친(아소 다카키치 아소광업 사장)이 생존했을 땐 최고급 고기를 대량으로 조달하곤 했다."면서 "요리사들이 프랑스 요리를 풀 코스로 만들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
- 아소의 부유한 성장기를 다룬 기사, #
- 가쿠슈인대학 출신으로, 대학 졸업 후 스탠퍼드 대학교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했다. 그런데 영국에서 오래 외교관 생활을 하여 영국 영어를 선호했던 요시다 시게루가 아소의 캘리포니아식 영어 발음을 좋아하지 않아서 석사학위 따기 직전에 요시다의 엄명으로 런던정경대로 보내졌다고. 이후 그의 영어 발음은 코크니 억양으로 바뀌었다. 발음과 별개로 영어 실력 자체는 유학파 출신답게 뛰어난 편이다. 공무상 외국에서 연설을 할 일이 있을 때에도 통역 없이 본인이 영어로 직접 했고 내각총리대신 시절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영어로 회담하기도 했다.
- JTBC가 취재한 이즈카시 아소 가문 저택의 모습. 그 엄청난 저택의 외부 모습을 보여준다. 이즈카시가 아소 가문의 영지나 다름없다는 것 또한 밝히고 있다.
- 다 정리하기도 힘들 정도로 끝없이 이어져 국제급 논란을 일으키는 수준 이하의 발언들과 총리 시절의 실적을 보면 아무리 집안 배경이 짱짱해도 그렇지 어떻게 총리까지 올라가고 총리 퇴임 이후로도 저렇게 승승장구 했는지 의아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민당 내에서 두번째로 큰 파벌인 지공회 영수고 줄곧 장악력을 잃지 않으며 당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온 것을 보면 사람을 모으고 파벌 간을 조율하는 능력은 뛰어난 것 같다.[43]
- 페도라을 즐겨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가끔 방한할때도 페도라를 쓰기도 했다.
4.1. 덕후
아소 부총리가 이 만화를 좋아합니다.만화를 너무 좋아해서[44] 1주일에 10-20권씩은 꼭 읽고 유학시절에도 매일 만화를 주문해 봤다고 한다. 당 대표 선거 때 아키하바라에 가서 "아키하바라의 오타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라며 '오타쿠들의 대표'를 자처하며, 한때 오타쿠 사이에서 인기가 급증하는 일도 있었고, 외무대신 재직 시절, 일본인이 아닌 훌륭한 만화가를 지원하는 '국제만화상'을 만들기도 했다. 로젠메이든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읽는 것이 목격된 적도 있어 그때문에 얻은 별명이 로젠 아소, 로젠각하 등. 또 일본의 전후 비참한 상황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맨발의 겐'을 영역해서 돌린 적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맨발의 겐은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는 만화다.[45] 덧붙여 작가가 히로시마 원폭 체험자이기도 하다. 실로 오덕이 충만한 오덕군자의 칭호가 아깝지 않은 사람.
아소가 총리 물망에 올랐다는 소문이 돌던 2007년, 일본의 만화ㆍ애니 관련주 주가가 수직 상승하는 일이 발생했다. 안녕 절망선생에 의무로 등장하는 로젠메이든을 읽고 있는 아저씨가 이 사람. 또 노기자카 하루카의 비밀에서 잠깐 찬조출연하기도. (정확히는 나나시로 나나미의 변장이었지만) 아, 학원 키노에도 등장해주셨다. "아, 펭귄아가씨♥하트"에는 아예 로젠메이든의 "신쿠" 복장을 입고 나와서 충격과 공포를 선사해 주기도 했다. #
2006년 자민당 총재선 당시 아키하바라에서 연설한 영상. 1분 16초경에 아베 신조가 잠시 카메라에 잡혔다.
자캐인증
총리가 된 후, 니코니코 동화에 "아소 자민당 채널"이라는 것을 만들어 홍보에 힘쓰기도 했다.
사실 아소 부총리가 까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만화만 보는데다 만화나 애니메이션 지원 정책에만 힘을 쓴다는 점도 한몫한다. 만화 잡지는 몇 권씩 보면서 정작 외교나 경제, 정치쪽 물건들은 잘 손을 안 댄다나. 일본 애니메이션계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인터뷰 도중 이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비판적 의견을 내기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반전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으니 아소 다로가 좋게 보일 리가 없다. 관련 뉴스 경제불황 속에서도 건설비가 117억엔으로 계획된 애니메이션 미술관 또한 비판받고 있다.
더불어 일본 만화에 대한 자부심이 다소 지나칠 정도이다. 캡틴 츠바사를 보고 라울 곤살레스와 지네딘 지단이 축구선수의 길을 걸었다고 주장한 것은 2ch을 통하여 잘 알려져있다. 물론 이들을 포함한 여러 유명 선수들이 어린 시절 캡틴 츠바사를 보고 자랐고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축구소년이 유명한 축구만화를 즐겨보는 건 이상할 것 없는 일이며, 무엇보다 축구 인프라가 엄청난 유럽에서 만화를 보고 감명받아서 축구선수가 됐다는 건 완벽한 헛소리이다.
5. 선거 이력
| 연도 | 선거 종류 | 지역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 1979 | 제3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후쿠오카 2구 | | 71,041 (12.9%) | 당선 (4위) | 초선 |
| 1980 | 제3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85,826 (15.5%) | 당선 (2위) | 재선 | ||
| 1983 | 제3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75,412 (13.8%) | 낙선 (6위) | [46] | ||
| 1986 | 제3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34,179 (23.7%) | 당선 (1위) | 3선 | ||
| 1990 | 제3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99,876 (17.8%) | 당선 (2위) | 4선 | ||
| 1993 | 제4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01,080 (19.3%) | 당선 (1위) | 5선[47] | ||
| 1996 | 제41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후쿠오카 8구 | 114,408 (50.49%) | 6선 | ||
| 2000 | 제42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20,178 (49.91%) | 7선 | |||
| 2003 |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32,646 (57.72%) | 8선 | |||
| 2005 | 제44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45,229 (56.89%) | 9선 | |||
| 2009 | 제45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65,327 (62.21%) | 10선 | |||
| 2012 | 제46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46,712 (68.36%) | 11선 | |||
| 2014 | 제47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26,684 (71.32%) | 12선 | |||
| 2017 | 제48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35,334 (72.23%) | 13선 | |||
| 2021 | 제49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04,924 (59.63%) | 14선 | |||
| 2024 | 제50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 | 92,534 (56.97%) | 15선 |
6. 역대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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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color=#fff> 제92대 내각총리대신 시절 | 제17-20대 부총리 겸 재무대신 시절 |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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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0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 제21대 아베 신조 | 제22대 후쿠다 야스오 | 제23대 아소 다로 | 제24대 다니가키 사다카즈 | |
| 제25대 아베 신조 | 제26대 스가 요시히데 | 제27대 기시다 후미오 | 제28대 이시바 시게루 | 제29대 다카이치 사나에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 1·2대 오노 반보쿠 | 3-5대 가와시마 쇼지로 | |||||
| 6·7대 시이나 에쓰사부로 | 8대 후나다 나카 | 9·10대 니시무라 에이이치 | ||||
| 11대 니카이도 스스무 | 12대 가네마루 신 | 13대 오부치 게이조 | 14대 야마사키 타쿠 | 15대 오시마 다다모리 | ||
| 16대 고무라 마사히코 | 17대 아소 다로 | 18대 스가 요시히데 | 19대 아소 다로 | }}}}}}}}}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 초대 기시 노부스케 | 2-3대 미키 다케오 | 4대 가와시마 쇼지로 | 5대 후쿠다 다케오 | ||
| 6대 가와시마 쇼지로 | 7대 마스타니 슈지 | 8대 마에오 시게사부로 | 9-10대 미키 다케오 | ||
| 11대 다나카 가쿠에이 | 12대 후쿠다 다케오 | 13대 다나카 가쿠에이 | 14대 호리 시게루 | 15대 하시모토 도미사부로 | |
| 16대 니카이도 스스무 | 17대 나카소네 야스히로 | 18대 우치다 쓰네오 | 19대 오히라 마사요시 | 20대 사이토 쿠니키치 | |
| 21-22대 사쿠라우치 요시오 | 23-24대 니카이도 스스무 | 25대 다나카 로쿠스케 | |||
| 26대 가네마루 신 | 27대 타케시타 노보루 | 28대 아베 신타로 | 29대 하시모토 류타로 | 30대 오자와 이치로 | |
| 31대 오부치 게이조 | 32대 와타누키 다미스케 | 33대 가지야마 세이로쿠 | 34대 모리 요시로 | 35대 미쓰즈카 히로시 | |
| 36대 가토 고이치 | 37대 모리 요시로 | 38대 노나카 히로무 | 39대 고가 마코토 | 40대 야마사키 타쿠 | |
| 41대 아베 신조 | 42대 타케베 쓰토무 | 43대 나카가와 히데나오 | 44대 아소 다로 | 45대 이부키 분메이 | |
| 46대 아소 다로 | 47대 호소다 히로유키 | 48대 오시마 다다모리 | 49대 이시하라 노부테루 | 50대 이시바 시게루 | |
| 51대 다니가키 사다카즈 | 52-53대 니카이 도시히로 | 54대 아마리 아키라 | 55대 모테기 도시미쓰 | ||
| 56대 모리야마 히로시 | 57대 스즈키 슌이치 | }}}}}}}}}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
| 초대 미즈타 미키오 | 2대 츠카다 주이치로 | 3대 미키 다케오 | 4대 후쿠다 다케오 | ||
| 5대 나카무라 우메키치 | 6대 후나다 나카 | 7대 시이나 에쓰사부로 | 8대 후쿠다 다케오 | 9대 다나카 가쿠에이 | |
| 10대 가야 오키노리 | 11대 미키 다케오 | 12대 스토 히데오 | 13대 아카기 무네노리 | ||
| 14대 미즈타 미키오 | 15대 니시무라 나오미 | 16대 오히라 마사요시 | 17대 네모토 류타로 | 18대 미즈타 미키오 | |
| 19대 코사카 젠타로 | 20대 사쿠라우치 요시오 | 21대 쿠라이시 타다오 | 22대 미즈타 미키오 | 23대 야마나카 사다노리 | |
| 24대 마쓰노 라이조 | 25대 사쿠라우치 요시오 | 26대 고모토 토시오 | 27대 에사키 마스미 | 28대 고모토 토시오 | |
| 29대 아베 신타로 | 30대 다나카 로쿠스케 | 31대 후지오 마사유키 | |||
| 32대 이토 마사요시 | 33대 와타나베 미치오 | 34대 무라타 케이지로 | 35대 미쓰즈카 히로시 | 36대 가토 무쓰키 | |
| 37대 모리 요시로 | 38대 미쓰즈카 히로시 | 39대 하시모토 류타로 | 40대 가토 고이치 | 41대 야마사키 타쿠 | |
| 42대 이케다 유키히코 | 43대 가메이 시즈카 | 44대 아소 다로 | 45대 누카가 후쿠시로 | ||
| 46대 요사노 가오루 | 47대 나카가와 히데나오 | 48대 나카가와 쇼이치 | 49대 이시하라 노부테루 | 50대 다니가키 사다카즈 | |
| 51대 호리 고스케 | 52대 이시바 시게루 | 53대 모테기 도시미쓰 | 54대 아마리 아키라 | ||
| 55대 다카이치 사나에 | 56대 이나다 도모미 | 57대 모테기 도시미쓰 | 58대 기시다 후미오 | 59대 시모무라 하쿠분 | |
| 60대 다카이치 사나에 | 61대 하기우다 고이치 | 62대 도카이 기사부로 | 63대 오노데라 이쓰노리 | 64대 고바야시 다카유키 | }}}}}}}}}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keep-all" | 초대 타나카 히사오 | 2대 하야카와 타카시 | 3대 아마노 키미요시 | 4대 다케시타 노보루 | 5대 우노 소스케 |
| 6대 가이후 도시키 | 7대 나이토 타카사부로 | 8대 가이후 도시키 | 9대 니시오카 다케오 | 10대 하마다 고이치 | |
| 11대 후카야 타카시 | 12대 나카야마 마사아키 | 13대 토츠카 신야 | 14대 아이치 가즈오 | 15대 카노 미치히코 | |
| 16대 츠카하라 슌페이 | 17대 아소 다로 | 18대 후나다 하지메 | 19대 히라누마 다케오 | 20대 키타가와 마사야스 | |
| 21대 누카가 후쿠시로 | 22대 나카가와 쇼이치 | 23대 사이토 토시츠구 | 24대 도카이 기사부로 | 25대 사토 겐이치로 | |
| 26대 마시코 테루히코 | 27대 시오노야 류 | 28대 후루야 게이지 | 29대 나카지마 요지로 | 30대 후루야 게이지 | |
| 31대 아베 신조 | 32대 기시다 후미오 | 33대 오코노기 하치로 | 34대 하마다 야스카즈 | 35대 시모무라 하쿠분 | |
| 36대 미즈노 겐이치 | 37대 야나기모토 다쿠지 | 38대 다나하시 야스후미 | 39대 가네코 야스시 | 40대 타니모토 타츠야 | |
| 41대 하기우다 고이치 | 42대 이노우에 신지 | 43대 후루카와 요시히사 | 44대 고이즈미 신지로 | 45대 마쓰모토 요헤이 | |
| 46대 기하라 미노루 | 47대 마키하라 히데키 | 48대 스즈키 게이스케 | 49대 사사키 하지메 | 50대 고바야시 후미아키 | |
| 51대 마키시마 카렌 | 52대 오구라 마사노부 | 53대 스즈키 노리카즈 | 54대 후지와라 다카시 | 55대 스즈키 다카코 | |
| 56대 나카소네 야스타카 | 57대 히라누마 쇼지로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000,#e5e5e5 | 총무청 장관 (1984년~2001년)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초대 고토다 마사하루 | 2대 에사키 마스미 | 3대 타마키 가즈오 | 임시대리 고토다 마사하루 | 4대 야마시타 토쿠오 | }}} | ||||
| 5대 다카토리 오사무 | 6대 가네마루 사부로 | 7대 이케다 유키히코 | 8대 미즈노 기요시 | 9대 시오자키 준 | ||||||
| 10대 사사키 만 | 11대 이와사키 준조 | 12대 카노 미치히코 | 13·14대 이시다 코시로 | 임시대리 하타 쓰토무 | ||||||
| 13·14대 이시다 코시로 | 15대 야마구치 츠루오 | 16대 에토 다카미 | 임시대리 무라야마 도미이치 | 17대 나카야마 마사아키 | ||||||
| 18대 나카니시 세키스케 | 19대 무토 가분 | 20대 사토 고코 | 21대 오자토 사다토시 | 22대 오타 세이치 | ||||||
| 23·24·25대 츠즈키 쿠니히로 | 26대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 |||||||||
| 총무대신 (2001년~) | ||||||||||
| 1·2대 가타야마 도라노스케 | 3-5대 아소 다로 | |||||||||
| 6대 다케나카 헤이조 | 7대 스가 요시히데 | 8·9대 마스다 히로야 | 10대 하토야마 구니오 | |||||||
| 11대 사토 쓰토무 | 12·13대 하라구치 가즈히로 | 14대 가타야마 요시히로 | 15대 가와바타 다쓰오 | |||||||
| 16대 다루토코 신지 | 17대 신도 요시타카 | 18·19대 다카이치 사나에 | 20·21대 노다 세이코 | |||||||
| 20·21대 노다 세이코 | 22대 이시다 마사토시 | 23대 다카이치 사나에 | 24대 다케다 료타 | 25·26대 가네코 야스시 | ||||||
| 25·26대 가네코 야스시 | 27대 테라다 미노루 | 28·30대 마쓰모토 다케아키 | 29대 스즈키 준지 | 28·30대 마쓰모토 다케아키 | ||||||
| 31·32대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 33대 하야시 요시마사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000,#e5e5e5 | 금융담당대신 (2001년~2003년)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2대 야나기사와 하쿠오 | 3대 다케나카 헤이조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금융담당) (2003년~)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1·2대 다케나카 헤이조 | 3·4대 이토 다쓰야 | 5대 요사노 가오루 | ||||||||
| }}} | ||||||||||
| 6대 야마모토 유지 | 7·8대 와타나베 요시미 | 9대 모테기 도시미쓰 | 10대 나카가와 쇼이치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1대 요사노 가오루 | 12·13대 가메이 시즈카 | 사무대리 센고쿠 요시토 | 14·15대 지미 쇼자부로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4·15대 지미 쇼자부로 | 16대 마쓰시타 다다히로 | 사무대리 아즈미 준 | 17대 나가쓰카 잇코 | |||||||
| 18-21대 아소 다로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8-21대 아소 다로 | 22·23대 스즈키 슌이치 | 24대 가토 가쓰노부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000,#e5e5e5 | 경제안정본부 총무장관 (1946년~1952년) | |||||||||
| 초대 젠 케이노스케 | 2대 이시바시 단잔 | 3대 타카세 소타로 | ||||||||
| 4대 와다 히로오 | 5대 쿠루스 타케오 | 임시대리 아시다 히토시 | ||||||||
| 임시대리 요시다 시게루 | 6대 이즈미야마 산로쿠 | 임시대리 스토 히데오 | ||||||||
| 7대 아오키 타카요시 | 8대 스토 히데오 | |||||||||
| 경제심의청장관 (1952년~1955년) | ||||||||||
| 1대 스토 히데오 | 2대 야마자키 타케시 | 3대 이케다 하야토 | 4대 오가사와라 산쿠로 | 5대 미즈타 미키오 | ||||||
| 6대 오카노 키요히데 | 7대 아이치 기이치 | 8·9대 타카사키 타츠노스케 | ||||||||
| 경제기획청장관 (1955년~2001년) | ||||||||||
| 1·2대 타카사키 타츠노스케 | 임시대리 이시바시 단잔 | 3·4대 우다 고이치 | ||||||||
| 3·4대 우다 고이치 | 5대 고노 이치로 | 6대 미키 다케오 | 임시대리 타카사키 타츠노스케 | 7대 세코 코스케 | ||||||
| 8대 칸노 와타로 | 9·10대 쿠사미즈 히사츠네 | 11대 후지야마 아이이치로 | 임시대리 이케다 하야토 | 12·13대 미야자와 기이치 | ||||||
| 14·15대 다카하시 마모루 | 16대 후지야마 아이이치로 | 임시대리 사토 에이사쿠 | 17·18대 미야자와 기이치 | |||||||
| 19대 칸노 와타로 | 20대 사토 이치로 | 21대 기무라 도시오 | ||||||||
| 임시대리 다나카 가쿠에이 | 22대 아리타 기이치 | 23대 코사카 젠타로 | 24대 우치다 츠네오 | 25대 쿠라나리 타다시 | ||||||
| 26대 후쿠다 다케오 | 27대 노다 우이치 | 28대 쿠라나리 타다시 | 29대 미야자와 기이치 | |||||||
| 30대 코사카 도쿠사부로 | 31대 쇼지 케이지로 | 32대 고모토 토시오 | 33대 시오자키 준 | 34대 고모토 토시오 | ||||||
| 35대 가네코 잇페이 | 36대 히라이즈미 와타루 | 37대 곤도 테츠오 | 38대 나카오 에이치 | |||||||
| 39대 하라다 겐 | ||||||||||
| 40대 아이노 고이치로 | 41대 오치 미치오 | 42대 타카하라 스미코 | 43대 아이자와 히데유키 | 44대 오치 미치오 | ||||||
| 45대 노다 다케시 | 46대 후나다 하지메 | |||||||||
| 임시대리 미야자와 기이치 | 47대 다카토리 오사무 | 48대 쿠보타 마나에 | 임시대리 하타 쓰토무 | |||||||
| 49대 테라사와 요시오 | 50대 고무라 마사히코 | 51대 미야자키 이사무 | 52대 다나카 슈세이 | 53대 아소 다로 | ||||||
| 54대 오미 코지 | ||||||||||
| 55-57대 이케구치 코타로 | ||||||||||
| 58대 누카가 후쿠시로 | ||||||||||
| 경제재정정책 담당대신 (2001년~2003년) | ||||||||||
| 1대 누카가 후쿠시로 | 2대 아소 다로 | 3대 다케나카 헤이조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경제재정정책담당) (2003년~)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4-6대 다케나카 헤이조 | 7대 요사노 가오루 | |||||||||
| }}} | ||||||||||
| 8·9대 오타 히로코 | 10·11대 요사노 가오루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2대 하야시 요시마사 | 13대 간 나오토 | 14대 아라이 사토시 | 15대 가이에다 반리 | 16대 요사노 가오루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7대 후루카와 모토히사 | 18대 마에하라 세이지 | |||||||||
| 19·20대 아마리 아키라 | 21대 이시하라 노부테루 | 22·23대 모테기 도시미쓰 | 24·25대 니시무라 야스토시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24·25대 니시무라 야스토시 | 26·27대 야마기와 다이시로 | 28대 고토 시게유키 | 29대 신도 요시타카 | |||||||
| 30대·31대 아카자와 료세이 | 32대 기우치 미노루 | }}}}}}}}}}}} | ||||||||
| {{{#!wiki style="margin: 0 -10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000,#e5e5e5 | 외무경 (1869년~1879년) · 외무사무총재 (1873년) | |||||||||||
| 초대 사와 노부요시 | 2대 이와쿠라 도모미 | 3대 소에지마 다네오미 | 4대 데라시마 무네노리 | 5대 이노우에 가오루 | ||||||||
| 전전 외무대신 (1885년~1945년)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5대 이노우에 가오루 | 6대 이토 히로부미 | 7대 오쿠마 시게노부 | 8대 아오키 슈조 | 9대 에노모토 다케아키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0대 무쓰 무네미쓰 | 11대 사이온지 긴모치 | 12대 오쿠마 시게노부 | 13대 니시 토쿠지로 | 14대 오쿠마 시게노부 | ||||||||
| 15대 아오키 슈조 | 16대 가토 다카아키 | 17대 소네 아라스케 | 18대 코무라 주타로 | 19대 가토 다카아키 | ||||||||
| 20대 사이온지 긴모치 | 21대 하야시 타다스 | 22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 23대 코무라 주타로 | 24대 우치다 고사이 | ||||||||
| 25대 가쓰라 다로 | 26대 가토 다카아키 | 27대 마키노 노부아키 | 28대 가토 다카아키 | 29대 오쿠마 시게노부 | ||||||||
| 30대 이시이 키쿠지로 | 31대 데라우치 마사타케 | 32대 모토노 이치로 | 33대 고토 신페이 | 34대 우치다 고사이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34대 우치다 고사이 | 35대 야마모토 곤노효에 | 36대 이주인 히코키치 | 37대 마츠이 케이시로 | 38대 시데하라 기주로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39대 다나카 기이치 | 40대 시데하라 기주로 | 41대 이누카이 쓰요시 | 42대 요시자와 겐키치 | 43대 사이토 마코토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44대 우치다 고사이 | 45대 히로타 고키 | 46대 아리타 하치로 | 47대 하야시 센주로 | 48대 사토 나오타케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49대 히로타 고키 | 50대 우가키 가즈시게 | 51대 고노에 후미마로 | 52대 아리타 하치로 | 53대 아베 노부유키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54대 노무라 기치사부로 | 55대 아리타 하치로 | 56대 마츠오카 요스케 | 57대 토요다 테이지로 | 58대 도고 시게노리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59대 도조 히데키 | 60대 타니 마사유키 | 61대 시게미쓰 마모루 | 62대 스즈키 간타로 | 63대 도고 시게노리 | ||||||||
| 전후 외무대신 (1945년~현재)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64대 시게미쓰 마모루 | 65대 요시다 시게루 | 66대 가타야마 데쓰 | 67·68대 아시다 히토시 | 69·70·71대 요시다 시게루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72·73·74대 오카자키 카츠오 | 75·76·77대 시게미쓰 마모루 | 78대 이시바시 단잔 | 79·80대 기시 노부스케 | 81·82대 후지야마 아이이치로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83·84대 고사카 젠타로 | 85·86대 오히라 마사요시 | 87·88대 시이나 에쓰사부로 | 89·90대 미키 다케오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91대 사토 에이사쿠 | 92·93대 아이치 기이치 | 94대 후쿠다 다케오 | 95·96대 오히라 마사요시 | 97대 키무라 토시오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98대 미야자와 기이치 | 99대 고사카 젠타로 | 100대 하토야마 이이치로 | 101·102대 소노다 스나오 | 103대 오키타 사부로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04대 이토 마사요시 | 105대 소노다 스나오 | 106대 사쿠라우치 요시오 | 107·108대 아베 신타로 | 109대 쿠라나리 타다시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10대 우노 소스케 | 111대 미쓰즈카 히로시 | 112대 나카야마 타로 | 113·114대 와타나베 미치오 | 115대 무토 카분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16대 하타 쓰토무 | 117대 가키자와 고지 | 118대 고노 요헤이 | 119·120대 이케다 유키히코 | 121대 오부치 게이조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22대 고무라 마사히코 | 123·124·125대 고노 요헤이 | 126대 다나카 마키코 | 127대 고이즈미 준이치로 | 128·129대 카와구치 요리코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30·131대 마치무라 노부타카 | 132·133대 아소 다로 | 134대 마치무라 노부타카 | 135대 고무라 마사히코 | 136대 나카소네 히로후미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37·138대 오카다 가쓰야 | 139대 마에하라 세이지 | 140대 에다노 유키오 | 141대 마쓰모토 다케아키 | 142대 겐바 고이치로 | ||||||||
| {{{#!wiki style="margin: -16px -11px" | }}} | |||||||||||
| 143·144대 기시다 후미오 | 145·146대 고노 다로 | 147-149·155대 모테기 도시미쓰 | 150대 기시다 후미오 | 151대 하야시 요시마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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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2대 가미카와 요코 | 153·154대 이와야 다케시 | 147-149·155대 모테기 도시미쓰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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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무대신 | 다카이치 사나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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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부과학대신 | 마쓰노 히로카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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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산업대신 | 세코 히로시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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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대신 | 야마모토 고이치 | |
| 방위대신 | 이나다 도모미 → 기시다 후미오 | |
| 부흥대신 | 이마무라 마사히로 → 요시노 마사요시 | |
| 국가공안위원장 | 마쓰모토 준 | |
| 내각관방장관 | 스가 요시히데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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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 및 북방담당* | 쓰루호 요스케 | |
| 쿨재팬전략담당 | ||
| 과학기술정책담당 | ||
| 우주정책담당 | ||
| 지적재산전략담당 | ||
| 마이넘버제도담당 | 다카이치 사나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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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력방재담당 | 야마모토 고이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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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재담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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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재정정책담당 | 이시하라 노부테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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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창생담당 | 야마모토 고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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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올림픽·패럴림픽담당 | 마루카와 다마요 | |
* 내각부설치법상 의무적으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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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각부설치법상 의무적으로 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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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산업대신 | 세코 히로시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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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대신 | 하라다 요시아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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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공안위원장 | 야마모토 준조 | |
| 내각관방장관 | 스가 요시히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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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넘버제도담당 | 이시다 마사토시 | |
| 원자력지원기구담당 | 세코 히로시게 | |
| 원자력방재담당 | 하라다 요시아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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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흥대신 | 히라사와 가쓰에이 | |
| 국가공안위원장 | 오코노기 하치로 → 다니하시 야스후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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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각관방장관 | 가토 가쓰노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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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자력지원기구담당 | 가지야마 히로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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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마 미치츠네 | 오쿠보 도시미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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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네코 야스시 | 가네코 요조 | 가미카와 요코 | 가쓰마타 다카아키 | 가쓰메 야스시 | |
| 가와사키 히데토 | 가지야마 히로시 | 가토 가쓰노부 | 가토 류쇼 | 가토 아유코 | |
| 간다 준이치 | 고가 아쓰시 | 고노 다로 | 고모리 다쿠오 | 고무라 마사히로 | |
| 고바야시 다카유키 | 고바야시 시게키 | 고바야시 후미아키 | 고이즈미 류지 | 고이즈미 신지로 | |
| 고이케 마사아키 | 고쿠바 고노스케 | 고테라 히로오 | 고토 시게유키 | 구니사다 이사토 | |
| 구니미쓰 아야노 | 구도 쇼조 | 구리하라 와타루 | 기시 노부치요 | 기시다 후미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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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가시마 아키히사 | 나가오카 게이코 | 나카노 히데유키 | 나카니시 겐지 | 나카무라 하로유키 | |
| 나카소네 야스타카 | 나카타니 겐 | 나카타니 신이치 | 네모토 다쿠 | 네모토 유키노리 | |
| 노나카 아쓰시 | 노다 세이코 | 누카가 후쿠시로 | 니시노 다이스케 | 니시다 쇼지 | |
| 니시메 고사부로 | 니시무라 야스토시 | 니와 히데키 | 니키 히로부미 | 다나카 가즈노리 | |
| 다나카 료세이 | 다나하시 야스후미 | 다니 고이치 | 다무라 노리히사 | 다바타 히로아키 | |
| 다이라 마사아키 | 다치바나 게이이치로 | 다카기 게이 | 다카이치 사나에 | 다케무라 노부히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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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리시타 치사토 | 모리야마 히로시 | 모테기 도시미쓰 | 무라이 히데키 |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 |
| 무코야마 준 | 무토 요지 | 미노리카와 노부히데 | 미야시타 이치로 | 미야우치 히데키 | |
| 미야자키 마사히사 | 미야지 다쿠마 | 미타니 히데히로 | 사사가와 히로요시 | 사사키 하지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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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즈키 노리카즈 | 스즈키 다카코 | 스즈키 슌이치 | 스즈키 에이케이 | 스즈키 하야토 | |
| 쓰시마 준 | 쓰지 기요토 | 쓰치다 신 | 쓰치야 시나코 | 시마다 도모아키 | |
| 시마지리 아이코 | 시바야마 마사히코 | 시오자키 아키히사 | 신도 요시타카 | 신타니 마사요시 | |
| 아베 도시코 | 아소 다로 | 아이사와 이치로 | 아즈마 구니요시 | 아카마 지로 | |
| 아카자와 료세이 | 안도 다카오 | 야나 가즈오 | 야마구치 슌이치 | 야마구치 쓰요시 | |
| 야마기와 다이시로 | 야마다 겐지 | 야마모토 다이치 | 야마시타 다카시 | 에리 아르피야 | |
| 에토 다쿠 | 에토 아키노리 | 엔도 도시아키 | 오구시 마사키 | 오노 게이타로 | |
| 오노데라 이쓰노리 | 오니시 요헤이 | 오니키 마코토 | 오부치 유코 | 오오카 도시타카 | |
| 오자키 마사나오 | 오조라 고키 | 와카야마 신지 | 요시다 신지 | 우에노 겐이치로 | |
| 우에다 에이슌 | 이가라시 기요시 | 이나다 도모미 | 이노 도시로 | 이노우에 다카히로 | |
| 이노우에 신지 | 이데 요세이 | 이마에다 소이치로 | 이바야시 다쓰노리 | 이시다 마사토시 | |
| 이시바 시게루 | 이시바시 린타로 | 이시하라 히로타카 | 이와야 다케시 | 이와타 가즈치카 | |
| 이토 다쓰야 | 이토 요시타카 | 이토 타다히코 | 쿠사마 쓰요시 | 타노세 타이도 | |
| 타도코로 요시노리 | 타카미 야스히로 | 테라다 미노루 | 하기우다 고이치 | 하나시 야스히로 | |
| 하마다 야스카즈 | 하세가와 준지 | 하야시 요시마사 | 하토야마 지로 | 호리우치 노리코 | |
| 호사카 야스시 | 호소노 고시 | 호시노 쓰요시 | 혼다 다로 | 후나다 하지메 | |
| 후루야 게이지 | 후루카와 나오키 | 후루카와 야스시 | 후루카와 요시히사 | 후지마루 사토시 | |
| 후지이 히사유키 | 후카자와 요이치 | 후쿠다 가오루 | 후쿠다 다쓰오 | 후쿠하라 준지 | |
| 히라구치 히로시 | 히라누마 쇼지로 | 히라사와 가쓰에이 | 히라이 다쿠야 | 히로세 겐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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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31px;" | ※ 소속 정당과 국회 내 소속 회파(会派)는 다를 수 있음 | ||||
| 가네다 가쓰토시 | 가네코 슌페이 | 가네코 야스시 | 가네코 요조 | 가도야마 히로아키 | |
| 가메오카 요시타미 | 가미카와 요코 | 가쓰마타 다카아키 | 가쓰메 야스시 | 가와사키 히데토 | |
| 가지야마 히로시 | 가토 가쓰노부 | 가토 류쇼 | 가토 아유코 | 간다 겐지 | |
| 간다 준이치 | 간케 이치로 | 고가 아쓰시 | 고노 다로 | 고무리 다쿠오 | |
| 고무라 마사히로 | 고바야시 다카유키 | 고바야시 시게키 | 고바야시 후미아키 | 고이즈미 류지 | |
| 고이즈미 신지로 | 고지마 도시후미 | 고쿠바 고노스케 | 고테라 히로오 | 고토 시게유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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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가와 유코 | 나카네 가즈유키 | 나카노 히데유키 | 나카무라 히로유키 | 나카소네 야스타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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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카기 히로히사 | 다카미 야스히로 | 다카이 슌스케 | 다카이치 사나에 | 다카토리 슈이치 | |
| 다케다 료타 | 다케무라 노부히데 | 다케베 아라타 | 도가시 히로유키 | 도이 도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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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쓰시마 미도리 | 마키시마 카렌 | 마키하라 히데키 | 모리 에이스케 | 모리야마 마사히토 | |
| 모리야마 히로시 | 모테기 도시미쓰 | 무네키요 고이치 | 무라이 히데키 | 무라카미 세이이치로 | |
| 무타이 슌스케 | 무토 요지 | 미노리카와 노부히데 | 미쓰바야시 히로미 | 미야시타 이치로 | |
| 미야우치 히데키 | 미야자키 마사히사 | 미야지 다쿠마 | 미타니 히데히로 | 사사가와 히로요시 | |
| 사사키 하지메 | 사이토 겐 | 사이토 히로아키 | 사카모토 데쓰시 | 사카이 마나부 | |
| 사쿠라다 요시타카 | 사토 쓰토무 | 세키 요시히로 | 스가 요시히데 | 스기타 미오 | |
| 스즈키 게이스케 | 스즈키 노리카즈 | 스즈키 다카코 | 스즈키 슌이치 | 스즈키 에이케이 | |
| 스즈키 준지 | 스즈키 하야토 | 시마지리 아이코 | 시모무라 하쿠분 | 시바야마 마사히코 | |
| 시오자키 아키히사 | 신도 요시타카 | 신타니 마사요시 | 쓰치다 신 | 쓰지 기요토 | |
| 쓰시마 준 | 쓰치야 시나코 | 쓰카다 이치로 | 아마리 아키라 | 아베 토시코 | |
| 아소 다로 | 아오야마 슈헤이 | 아와다 가즈치카 | 아이사와 이치로 | 아제모토 쇼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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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소그룹 중심인 (주)아소 회장 겸 아소시멘트 대표이사 회장. 그의 아들(아소 다로의 조카)로는 아소 이와오((주)아소 대표이사 사장)와 아소 다케시(학교법인 아소학원 이사장)이 있다.[2] 게이오기주쿠대학 법학부 법률학과 출신으로, 미타회(三田会)의 現 회장이기도 하다.[3] 미카사노미야 토모히토 친왕비.[4] 스즈키 젠코 전 총리의 딸.[5] 1984년 12월 29일생([age(1984-12-29)]세). 게이오기주쿠 내부진학을 거쳐 게이오기주쿠대학 졸업 후 현재는 (주)아소 이사 겸 아소상사 대표이사 사장. 아버지에 이어 일본청년회의소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그가 출연한 리크루트 페이지.[6] 1988년생([age(1988-12-31)]~[age(1988-01-01)]세). 세이신 여학원 내부진학을 거쳐 도쿄대학 문학부 졸업 후 프랑스인과 결혼. 진위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일웹에 이 남자가 로스차일드 방계가문 일원이라는 소문이 있다. #[7] 이름이 같다.[8] 제3, 4차 아베 내각 국무대신, 기시다 내각 재무대신을 지냈으며 現 10선 중의원 의원. 지역구는 이와테현 제2구.[9] 3학년 때까지는 아소 다로를 위해 아버지가 특별히 만든 초등학교에 다녔으나# 가쿠슈인에 편입. 학교 자체는 다로가 가쿠슈인에 편입한 후에도 1972년까지 운영되었으며 학교법인은 조카 다케시가 경영하는 학교법인으로 현존한다.#[10] 일본에서 기독교 신자의 비율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쳐서 단 1%뿐이기 때문에 일본 기준으로는 특이한 이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역사적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 규슈 지역은 나가사키 데지마에 네덜란드와의 유일한 교역장이 있던 영향으로 서양에 가장 친숙했으며 카쿠레키리시탄이 자생할 정도로 기독교 탄압 이후로도 기독교 잔존 세력이 일본 전 지역 중 가장 크기도 했는데, 이 서양 문물에 친숙한 규슈 세력이 메이지 유신을 주도하고 이후 일본 권력층으로 자리잡았기에 일본 상류층 중에는 오랜 기독교 신자가 많다. 아소는 규슈 세력의 직계 후손이며, 아소의 외조부인 요시다 시게루도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살다 임종의 순간 임종 세례를 받아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자민당 정치인 중 또 다른 가톨릭 신자로는 가미카와 요코가 있고, 현직 내각총리대신 이시바 시게루는 개신교 신자다.[11] 일종의 예우를 위해 처음 만든 자리다.[12] 그런데 문제는 나루히토 천황의 할아버지인 쇼와 덴노(히로히토 천황)부터가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들이 합사된 후로는 한 번도 참배를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전쟁범죄자들이 합사되기 전에는 자주 참배했다고 하나 합사된 후로는 한 번도 참배를 하거나 공물을 바치거나 한 적이 없다. 지금 상황인 아키히토 역시 마찬가지. 게다가 현 천황인 나루히토 역시 성향을 따지면 같을 듯하다. 애초에 황실 입장에서 보면 야스쿠니 신사의 영새부에 이름이 올라가거나 순국칠사묘 같은 곳에 묻힌 작자들은 마쓰이 이와네 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천황의 명예에 손상이 가게 만든 당사자들이다. 쉽게 말해 황실의 입장에서 보면 충신이긴 커녕 역적인 셈. 그리고 일본 역시 정교 분리의 원칙을 갖고 있는 나라인지라 천황 쪽에서도 이것을 명분으로 들고 나온 것이니 천황에게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셈이다.[13] 역사적으로 가톨릭에서는 8월 15일에 성모 마리아의 죽음과 성모몽소승천을 기념해 왔다. 일명 '성모 승천 대축일'. 일본 가톨릭에서는 이날 고해성사를 보는 풍습이 있다.[14] 이렇게 망언이 많아도 정치적으로 살아남은 이유도 혈통 때문 아니냐는 말이 있다. 어지간한 명문가들도 아소의 집안배경은 못 따라갈 정도다.[15] 정책조사회장. 당 정책위원회 의장쯤 되는 자리다.[16] 어느 정도냐면 같은 일본인조차 교토 사람이 하는 말의 속뜻을 알아듣기 어려워할 정도이다. 예를 들어 이웃집에서 밤 늦게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거슬리면 오사카나 후쿠오카 같은 곳은 "밤 시간에는 조금만 조용히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대부분 "어제 밤에 피아노 연습을 하셨나 보네요. 피아노 소리가 들리던데…"라는 식으로 어느 정도 돌려서 말한다면, 교토는 "피아노를 정말 잘 치시네요. 실력이 아주 좋으신데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래서 교토 사람에게 칭찬을 들었다면 곧 욕을 먹은 것이라는 인식이 일본인들 사이에서 많이 통용된다.[17] 일본인들보다 더 표현이 직설적인 경향이 있는 한국인으로 치자면 물리적으로 폭력을 행사한(예컨대 손바닥으로 상대의 가슴팍을 밀친) 수준이다.[18] 한국에서도 정치인들이 민생 행보/서민 행보를 하기 위해 재래시장에 방문하고 포장마차 음식을 시식하는 먹방 퍼포먼스를 하는데, 일반 시민들이 볼 때는 매우 어색하게 먹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실소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서인지 장관이나 국가기관 수장에 임명되어 청문회를 받을 때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 버스나 지하철 요금에 대한 것이다. 과거에는 거의 대부분이 오답을 말해 질타를 받았다. 최근에는 맞춤형 공부를 미리 해오므로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19] 언뜻 보면 노인 혐오같기도 하지만, 본인처럼 부유한 노인들은 해당이 안 되는 말들이기 때문에 서민/저소득층에 대한 혐오발언이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20] 애당초 초인플레이션이라는 개념은 경제학 공부를 아예 안 한 사람조차 대충 설명만 들어봐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개념이다. 그런데 재무대신씩이나 된 사람이 이런 개소리를 하는 것은 경제 문외한의 정도가 아니라 그냥 기본 상식조차 없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게다가 런던 정치경제대학교에서 공부한 사람이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짐바브웨의 사례도 모른다니, 이건 사실상 초현실주의나 다름이 없다. 또한 실제로 별다른 후속조치 없이 양적완화만 대대적으로 시행한 결과 일본의 신용등급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21] 돈을 찍어내서 빚을 갚는다고 해도 이상한게 당연히 지폐를 만드는 데도 어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똑같이 돈이 든다.[22] 하지만 실제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는 올해 2016년까지 TPP문제는 미국 국회인준에서 지지부진한 상태에 놓여있으며,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2명의 대선후보들의 먹잇감이 되어 즉시 무효로 하겠다고 언급되는 등 오바마의 정치력 한계를 보여주고는 있다. 현재 아베 신조 총리가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의에서 TPP 조기발효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현재 TPP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임을 보이는 국가는 일본뿐이다.[23] 일본의 경제력은 대개 50대 중장년층이 대부분을 차지하긴 한다. 문제는 이들의 소비가 극히 적다 보니 전반적으로 돈이 잘 돌지를 않는 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실제로 이들 중장년층은 일본이 극호황기던 6~70년대의 높은 이자율을 주는 금융상품에 가입해 현재까지도 그 높은 이자율의 혜택을 보고 있기 때문에, 소비 대신 저축으로 고이자를 받고 있다. 아소 부총리가 한 말이 맥락상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 표현이 지나치게 저속했다는 것이 문제. 그리고 저 90세 할머니가 했던 발언도, 본인에겐 정말 절박했기 때문이다. 연금액수는 그대로인데 아베노믹스로 인해 물가가 올라간 마당에 소비세도 8%로 인상되었는데 걱정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 정책을 시행한 정권의 부총리나 된다는 사람이 저런 소릴 하니까 어그로를 끌 수밖에 없다.[24] 그런데 최근 일본 정부에서 10년 이상의 휴면 계좌에 대해 계좌 내 금액을 강제로 몰수하여 비영리 민간 단체나 복지담당 국가기관에 기부형식으로 지급하는 법안이 추진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젊은층이나 중장년층에서 10년 이상의 휴면계좌를 보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노년층이 보유하고 있는 계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는 휴면계좌의 경우 해당 계좌의 은행에서 관리하는데 이 계좌를 국가가 관리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이므로 큰 문제는 없지만, 나쁘게 보면 국가가 멋대로 몰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론의 반응은 나쁜 편이다. 실제로 전후인 1946년, 태평양 전쟁 당시 발행한 국채를 갚기 위해 특별조치령을 발동하여 휴면계좌의 돈을 압류한 적이 있다. 참고로 당시 일본의 국가 부채는 204%에 달했다.[25] 일본 내부에선 65년 한일협정 때 일본 외환보유의 40%가 넘는 6억 달러 지급, IMF때는 미국보다 더 많은 2조 원의 긴급 지원대출, 김대중 정부 때 한일 우호기금으로 적지않은 돈을 지금까지 지원해 왔는데 한일관계가 계속 나빠지는 것에 대한 책임을 한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의 한일 위안부 협정 때 10억엔의 우호금을 지원한 것에 대해 우리나라에서는 "100억 원으로 퉁치려 하냐"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일본 여론은 "예전에 돈을 그렇게나 퍼주고도 또 돈을 주냐"며 일본 나름대로 극심한 반발에 시달렸다. 일본이 협정문에 반드시 최종적, 불가역적이란 외교적으로 가장 강력한 구속어구를 원한 것 역시 일본 내 반발을 무마하기 위함과 동시에 "더이상 한국에게 성과 없는 우호적 메시지를 보이지 않겠다"라는 선언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협정 이후 일본은 전례없이 노골적으로 한국을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는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26] 한국의 차관급이 일본에서는 부대신이고, 대신정무관과 사무차관은 차관보에 해당한다.[27] 당장 2019년 일본 상품 불매운동의 여파로 한국인 관광객이 급격히 감소한 것만으로도 규슈 지방도시들이 심대한 타격을 입고있다. 특히 쓰시마섬, 오이타현과 사가현의 상황은 정말로 심각하다. 그런데 여기에 무비자까지 폐기된다면? 한국인이 시간과 비용을 들며 일본을 방문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지고, 규슈가 입을 타격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결국 코로나19 사태로 일시적으로 한국인 무비자가 폐지되면서 현실이 되어버렸다.[28] 공교롭게도 2019년 말 한-ASEAN 특별정상회의가 열렸을 당시, 같은 기간 부산에서 열린 ASEAN 푸드 페스티벌에서 각국이 자국의 관광 홍보 영상을 엄청나게 틀었다. 당연한게, 한국인 입장에서는 일본 관광이 불편해지면 무비자가 되는 동남아 국가들에 놀러가면 그만이고, 각국 입장에서도 일본 불매운동을 하는 한국 관광객들이 자국에 관광을 오게되니 서로 윈윈하는 셈이다.[29] 특히 부산에서 규슈 관광지까지의 거리는 서울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훨씬 가깝다.[30] 근데 일본/비자 항목에도 나와있지만, 이러면 한국 정부도 일본에 똑같이 비자 발급 중단과 송금중단 등의 온갖 보복을 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로 인해 (아소 입장에서) 최악의 경우 일본 국민 절반이상 실업자가 되게 생길 판.[31] 부산에서 빠르면 1시간이면 가기에 한국인들이 제일 많이 여행하러 오는 곳 1•2위를 다툰다.[32] 그러나 비자 발급 중단은 코로나 사태 때문에 이미 사용해 버렸기 때문에 이제 쓸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한국으로의 송금 중단 뿐이다. 문제는 이랬다간 동인계 등 일본의 문화산업 밥줄이나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도 틀어막아버리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초래하게 되어버린다.[33] 아마, 아소 다로는 한국에 투입된 일본 자금을 전량 회수하여 제2의 외환위기 사태를 일으키는 것이 목적일 듯 하다.[34] 2005년 고이즈미 내각에서 총무대신으로 있던 시절에도 같은 발언을 했다가 똑같이 아이누 등 일본 내 소수민족의 비판을 받고 사과한 적이 있었는데 15년만에 똑같은 짓을 했다.[35]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전직 대통령들의 말로를 그들의 자업자득으로 보고 '존경 받는 전직 대통령이 없다'는 자조적인 뉘앙스로 언급하는 편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를 정권교체후의 정치보복이라고 보는 편이기에, 한국 대통령이 퇴임하면 '당연히' 말로가 비참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일본인들이 많다. 물론 하나하나 따져보면 노태우까지는 독재와 연루된 대통령이고,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는 자명한 의혹에 대해 수사를 받은 것 뿐이기에 정치보복으로 볼 여지가 없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자신이 아닌 가족의 비리문제였고, 의혹이 밝혀진 것도 후임이 아닌 본인의 임기중이었다. 또한 윤보선은 반쯤 형식상으로 징역형을 받고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말로가 비참했다고 보기도 애매하다. 문재인은 퇴임이후 다양한 의혹에 연루되긴 하지만 적어도 발언 시기 기준으로는 기소되거나 체포된 적이 없다. 그리고 사실 관계도 틀렸다. 역대 한국 대통령 중 퇴임 후 살해당한 대통령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은 임기 중 시해당했기 때문에 퇴임 후 살해당한 것은 아니다.[36] 홋카이도 소선거구 결과, 자민당 6석, 입헌민주당 5석, 공명당 1석으로 연립여당이 가까스로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37] 국가방위전략, 방위력 정비계획, 국가안전보장전략[38] 실제 공명당의 한 지방의원은 "정치자금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를 '암적 존재'라고 칭한 것도 문제다. 이 발언을 계기로 지지자들은 자민당을 지탱하는데 지쳐버렸다."라고 분개했다. #[39] 그리고 그 망언의 피해자인 가미카와 대신도 자민당의 추천을 받은 시즈오카현지사 선거 후보의 지원 유세 중 '낳지 않는 것이 무슨 여자냐'라는 망언을 하여 비판받았다.[40] 시부야역에서 가깝고, 각국 대사관들이 점재하는 금싸라기 땅이다.[41] 대략적으로 1층당 평균 넓이가 72평이다.[42] 정작 신고 자산은 7억엔밖에 되지 않는데 당연히 현실과 한참 동떨어진 수치다. # 정치인의 재산 신고 룰은 실제와 다르게 누락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부동산은 과세표준액으로 신고한다거나, 주식을 제외한다거나. 이러니 아소그룹 대주주인 아소의 재산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디.[43] 이런 면에서 보면 대통령이 되는데 부친의 후광이 큰 역할을 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역시 조직을 꾸리고 협상하는데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숱한 망언을 남겼으며, 행정수반으로써는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조지 W. 부시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44] 21대 내각총리대신인 가토 토모사부로도 만화를 좋아했던 총리였는데,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된 만화를 스크랩해서 가족들에게 보여주거나 만화를 품평하곤 했다.[45]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극우라고 알려진 아소의 이미지와 달리, 아소는 자민당 내에서 온건파 보수본류에 속하는 지공회의 영수로, 그가 모리 요시로, 고이즈미 내각때부터 항상 붙어 다녔던 인물들이 강경파 세이와 정책연구회의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같은 인물들이였어서 극우라는 이미지가 씌여진 것이다.[48] 사실 같은 온건파에 속하는 굉지회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도 아소가 내세운 인물이다. 원래 아베는 자기를 열렬히 지지해주는 일명 아베빠 다카이치 사나에를 총리로 원했었다고.[46] 지금까지 치른 16번의 선거 중 유일한 낙선.[47]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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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9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제50대 일본 중의원 의원
- 자유민주당(일본) 국회의원
- 자유민주당(일본) 청년국장
- 1940년 출생
- 이즈카시 출신 인물
- 당 대표/일본
- 자유민주당(일본) 총재
- 일본회의/회원
- 기업인 자녀
- 일본의 정치인 자녀
- 일본의 사격 선수
- 기업인 출신 정치인
- 운동선수 출신 정치인
- 가쿠슈인 고등과 출신
- 가쿠슈인대학 출신
- 자유민주당(일본) 간사장
- 1976 몬트리올 올림픽 사격 참가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