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6 14:35:59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러시아 제3-5대 국가두마 부의장
블라디미르 볼포비치 지리노프스키
Владимир Вольфович Жириновский
파일:Zhirinovsky.jpg
<colbgcolor=#f4ca38><colcolor=#000> 본명 블라디미르 볼포비치 에이델시테인
Владимир Вольфович Эйдельштейн
출생 1946년 4월 25일
소련 카자흐 SSR 알마아타
(現 카자흐스탄 알마티)
사망 2022년 4월 6일 (향년 75세)
러시아 모스크바
재임기간 제3-5대 국가두마 부의장
2000년 1월 18일 – 2011년 12월 21일
국적
[[소련|]][[틀:국기|]][[틀:국기|]] (1946–1991)

[[러시아|]][[틀:국기|]][[틀:국기|]] (1991–2022)
학력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법학과 / 졸업)
직업 정치인, 변호사
최종 당적
의원 선수 8
의원 대수 1, 2, 3, 4, 5, 6, 7, 8
지역구 숄코보 자치구[1]
종교 러시아 정교회
배우자 갈리나 레베데바 (1971년 – 1978년 이혼)
자녀 2남 1녀
서명

1. 개요2. 생애
2.1. 사망
3. 논란4. 행적5. 여담6. 지리노프스키의 어록7.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러시아의 대표적인 민족주의, 포퓰리즘[2] 성향의 극우 정치인. 국가두마 의원이었으며 야당 러시아 자유민주당의 대표직과 함께 원내대표직도 겸직했다.

소련 붕괴 직전에 치러진 러시아 SFSR의 첫번째 대통령 선거부터 올레크 말리시킨이 출마한 2004년을 제외하면 대통령 선거마다 빠짐없이 출마했으며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도 공식 출마했다.

2. 생애

1946년 소련 카자흐 SSR 알마아타에서 출생하였다. 본명은 블라디미르 볼포비치 에이델시테인(Владимир Вольфович Эйдельштейн)이다.

아버지 볼프 에이델시테인은 우크라이나 코스토필 출신의 유대인이며 그가 태어난 지 고작 3년 후인 1949년에 이혼했다.[3] 어머니 알렉산드라 지리노프스카야는 모르도비야 공화국 출신의 러시아인이다.[4] 할아버지 이사크 에이델시테인은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목재공장[5]의 부유한 공장장이었다. 그의 부계 친척 4명은 유대인인 탓에 홀로코스트로 인해 사망했다.

아버지 볼프 에이델시테인은 1901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렘베르크(현 우크라이나 르비우)에서 부유한 유대인 이사크 에이델시테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프랑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그곳에서 사업을 하다가 1933년 고향이자 폴란드 제2공화국의 땅이 된 르비우로 돌아왔고 1939년 독소의 폴란드 분할 당시 그와 남동생 아론은 소련 카자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이주되었지만 그의 친척들은 르비우에 남아 있었고 1941년 나치 독일의 르비우 점령 당시 홀로코스트의 피해자가 되었다. 1946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 지리노프스키야는 첫째 아들 블라디미르를 낳았으나 그는 폴란드 바르샤바로 이주해 친척들과 함께 살았고 폴란드 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는 알렉산드라와 그가 만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1949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혼하게 되었다. #

지리노프스키는 1964년에 모스크바로 이주하여 모스크바 국립대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법학 학위를 수여받았고 변호사로 활동했으며 1998년에는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에 등극한 후 이전보다 정치자유도가 높아지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했고 1988년 소련의 재야단체모임인 민주동맹에 참여했지만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았는지 오래가지 않아 탈퇴했고 1989년 최고인민회의 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1990년에 소련 최초의 야당인 소련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여 당수를 맡았으며 1991년 첫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해 예상보다 높은 8%의 득표율을 확보했다. 당시에는 소련 자유민주당이 명목상으로나 사실상으로나 관제야당이었기 때문에 8월 쿠데타를 지지하기도 했고 소련 붕괴에도 반대했다.

2.1. 사망

파일:002e7343343420d0415bdc47612b1185_900x_.jpg
지리노프스키를 조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2022년 4월 6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이미 2022년 2월부터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감염으로 인해 의 70% 이상이 손상되어 인위적 혼수상태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알려졌다.

3. 논란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논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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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비난한 대상은 러시아와 대척점에 있는 미국 정부나 유럽 등 서방 국가들, 고르바초프, 러시아 연방 공산당, 언론 매체,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러시아 내 자유주의 세력, 독신주의자[6], 이민자들이었다.

4. 행적

소련 붕괴 전에는 워낙 보리스 옐친에 대한 지지가 열광적이었다 보니 차기 대권주자로 평가될 정도로 급이 높은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칠 만큼 후퇴했고 개혁이 갈수록 실패했음에 따라 보리스 옐친과 같은 급진개혁파에 대한 비토가 강해지자 그 틈을 타 여러 강경한 우익 민족주의적 발언과 사회 문제를 정확하게 찌른 포퓰리즘 정책 및 올레크 말리시킨 등 당대의 스타급 인물 영입으로 양당에 비판적인 계층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1993년 총선에서 지리노프스키의 자유민주당은 22.8%의 득표율을 확보하며 원내 1당이 되었다.

이후에도 인종차별 문제 및 타국비하, 여성비하 등 각종 논란과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거명될 정도로 잘나갔지만 1995년에 지리노프스키는 당시 니제고로스카야 주지사였던 보리스 넴초프러시아 채널1의 토론프로그램인 1대1(Один на один)에 출연해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7] 언쟁을 벌이다 격분해 넴초프의 얼굴에 오렌지 주스를 뿌리는 일이 일어나 지지율이 급락했다. 자세한 내용은 주스 파이트 문서 참조.

1996년 이탈리아에서 범죄조직과의 핵물질 밀매에 연루되기도 했다. 참고로 이탈리아는 러시아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졌던 몇 안 되는 서방 국가다.

북한이 제2국어로 다시 러시아어를 공식으로 지정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러시아에서 무슬림들이 많이 사는 캅카스 지역의 무슬림들의 출산율을 제한시켜야 한다는 발언을 하여 비난을 받았으며 푸틴 대통령이 자제하라고 했다.#

카틴 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에 우크라이나를 폴란드와 러시아가 동서로 분할하자는 걸 폴란드 외무부에 제안하는[8] 등 막장 발언제조가로서 유명하다.

키릴 문자 중 'ы'가 몽골에서 유래되어 아시아스럽다며 러시아어 알파벳에서 빼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을 한 적도 있었다. #[9]

자신의 보좌관들에게 여기자를 성추행하라고 지시하는 막장 행각을 벌이기도 하였다.


원본 동영상.
(현대 러시아 문학의 침체를 성토하며) 도스토옙스키가 왜 대문호가 되었습니까? 강제노동을 10년 동안 한 덕분입니다. 제가 주장하는 바가 뭐냐? 사람들을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는 겁니다!(Надо сажать!) 한 3, 4, 5년 가둬두면 도스토옙스키, 차이콥스키가 나올 겁니다. 이 나라에는 마야콥스키가 필요합니다! 해학도, 운율도, 2행 연구도 가진 비시넵스키가 있지만 젊은이들은 요구하고 있어요! "마야콥스키는 어디 있나? 니콜라이 루브초프도 없고, 예세닌도 없다! 시인이라고 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 그것이 예술과 문화의 역사를 수감자들과 성소수자들이 창조해 온 이유입니다. 요새는 그런 방식을 쓰지 않으니 위대한 문화인이 배출되지 않는거요! 모스크바의 고급 아파트에 사는 등따습고 배부른 이성애자는 예술을 창조하지 못합니다! 작품에는 동기가 필요해요! 바로 거기서! 또라이는 예술을 창조할 겁니다!
- 4분 55초 부터

지리노프스키의 발언을 듣고 있는 메드베데프 총리와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이 폭소하고 있다. 이게 무슨 내용이냐면 러시아의 예술은 수형자와 성소수자들이 창조했다는 내용이다. 동성애자표트르 차이콥스키와 시베리아에서 수형 생활을 했던 표도르 도스토옙스키를 예로 들면서 "그러니까 내가 내리는 결론은, 사람들을 교도소로 보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교도소에 성소수자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이러니 현대 러시아에 예술가가 없으며, 모스크바에서 등 따숩고 배부른 삶을 누리는 이성애자는 예술을 창조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3~4년만 감옥에서 썩으면 우리에게 또다시 도스토옙스키와 차이콥스키가 나타날 것이라고 나는 단언한다."는 소리를 한 것이다.

이거 말고도 가관이다. 처음 도입부는 요새 외래어가 하도 많이 도입돼서 아름다운 러시아 고유어가 파괴되고 있다는 전형적인 언어 가지고 걸고 넘어지는 문화꼰대질인데[10] 여기서 "튀르키예나 다른 나라들은 국가 수반을 표현하는 고유 단어가 있는데 우린 외래어인 '프레지덴트(президент)'를 그대로 가져와 쓴다.[11] 원래 러시아 전통의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지칭하는 단어[12] 있지 않냐"는 식으로 황당한 드립을 막 치고 있다.

이에 영상 끝부분에서 블라디미르 푸틴은 "물론 외래어 남용이 작은 문제는 아니지만, 지리노프스키 당신이 사용한 단어 '재능'(талант) 또한 셈족어파에서 나온 말 아닌가?"라고 말하면서 애둘러 깠다.

위의 "감옥에 쳐넣어야 한다!" 직전에 현대 러시아 문학의 침체에 대해 성토를 하는데 그 예시로 든다는 것이 고골의 '죽은 혼'의 줄거리를 현대화하면서 이 시대의 치치코프는 죽은 농노를 사모으는게 아니라 파산한 회사의 주식을 사모아 팔아치운 후 빼돌란다고 하고, 그리보예도프의 '지혜의 슬픔'은 여주인공인 소피야가 똑똑한 차츠키 대신 멍청하지만 안정적인 수입을 가진 모찰린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지혜의 슬픔'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하질 않나, 투르게네프의 '무무'는 소설의 주인공을 강아지인 무무나 그 주인인 마당쇠 게라심이 아닌, 조연인 여지주로 바꿔버리는 등 정말 신박한 재해석을 하고 있다.

덤으로 그는 미국이 사기쳐서 빼앗아간 알래스카를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여 미국에서도 어이를 날렸다. 알래스카 항목을 보면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사고 미국 관계자들이 저따위 땅을 비싸게 샀다고 욕먹은 과거는 생각도 못하는 듯 하다. 게다가 미국이 말로 해서 알래스카를 돌려주지 않으면 무력으로 뺏아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당연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어이가 없어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며 그를 비난했다. 이 밖에도 쿠릴 열도를 500억 달러로 일본에 팔아야 한다는 말도 했다.

2018년 대선 출마 후에도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관저에 소형 핵폭탄을 투하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13]

2006년에는 일부다처제 시행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몸무게 80kg 이상인 공직자를 해임해야 한다는 주장, 당원의 성생활을 1년에 4회로 정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한 바 있다.

세르게이 푸르갈 하바롭스크 지방 주지사 체포 당시 정부를 사법살인이 아니라면 2004년 사건 당시와 2011년 갱단 체포 당시에는 무엇을 했냐며 맹렬히 비판했다.

2020년 11월 말에 프랑스 상원아르차흐 공화국에 대하여 독립국 인정 결의안을 통과시키자 지리노프스키는 그럼 트란스니스트리아, 압하지야, 남오세티야, 노보로시야도 인정하라고 프랑스에 부메랑을 내던졌다. 프랑스 외교부도 상원이 헛소리를 했다고 비난하고 반대하며 프랑스 정계에서도 반발이 컸다. 이에 우크라이나조지아몰도바는 프랑스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러시아가 이런 소리를 하게 부채질했다고 반발했다. 항목처럼 소수 야당이 하는 소리에 불과하지만 2000년대 와서 조지아와 우크라이나는 자국 내 미승인국가 문제로 러시아와 전쟁을 치러 굴복했으니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이들 세 나라는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기독교가 다수인 아르메니아가 아닌 이슬람이 대다수인 아제르바이잔을 지지했다.

카자흐스탄이 예전엔 러시아 땅이었기 때문에 카자흐스탄 북쪽이 러시아와 합병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러시아어)

스푸트니크 V 백신을 7~8 차례나 접종하고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돌파감염되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러시아인들은 코로나 19 백신에 대한 불신이 심한 편이었는데 이 소식을 듣자 진짜 독한 인간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결국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합병증으로 2022년 4월 6일 사망했다.

5. 여담

1995년에 조선일보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1994년 한 차례 방북으로 친북 성향으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제1당이었던 자유민주당의 대표로서 김일성과의 회담을 위해 방북한 것이며 북한 이외에도 리비아 등 많은 국가에 국가원수급의 자격으로 방문하고 회담을 가졌다. 직접 반북 인증을 한 만큼 친한파로 꼽혔지만 북한과의 관계가 꽤 긴밀해졌는지 2017년 광명성절과 2020년 4월 오래 등장하지 않은 김정은 사망설이 돌았을 때도 김정은에게 축전을 보냈다.

1996년 대선을 앞두고 1994년 김일성 사망 예언으로 유명해진 역술인 육관도사 손석우를 러시아로 초청하여 점을 쳤는데 당시 손석우는 앞으로 러시아에 강한 지도자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고 한다.

영화 크림슨 타이드에서 러시아 반란군 지도자로 핵전쟁을 시도하는 만악의 근원 '블라디미르 라첸코'의 모델도 지리노프스키다. 영화 기획 초기 단계에서는 아예 지리노프스키의 실명으로 등장할 예정이어서 당시 한국 영화 잡지에도 지리노프스키라고 서술된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목소리가 매우 걸걸하며 말할 때 특유의 손짓이 특징이다. 아래 지리노프스키가 러시아 최대인기 토크쇼 베체르니 우르간트에 출연한 영상을 보면 알 수 있다.



결국 2018년 2월 28일 열린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서도 여지없이 트롤링을 하다가 자신이 보리스 넴초프에게 20여년전 했던 꼴과 똑같은 꼴을 당했다. 크세니야 솝차크를 그녀의 면전에서 '멍청한 여자', '뇌도 없는 얼간이', '여자 장사치'라 비하했다가 격분한 솝차크에게 물세례를 당한 것. 그리고 이 사건의 여파로 푸틴의 득표율이 70%를 넘기는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지리노프스키 자신은 6%대 득표율로 광탈.

그래도 1993년부터 위의 오렌지 주스 투척 사건 이전까지는 이끄는 자유민주당이 총선에서 20%대 지지율까지 가는 등 나름의 리즈 시절도 있었으며, 당시 서방에서는 지리노프스키를 경계하며 동시에 '지금의 지리노프스키 신드롬은 그가 정계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그와 비슷하지만 좀 더 똑똑하고 온건한, 러시아 국적의 지도자로서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다.(Zhirinovsky : The Little Black Book 발췌) 그리고 이는 푸틴의 등장으로 현실이 됐다.

그리고 푸틴이 너무 외교적으로 약하게 군다며 비판하기도 하고, 지리노프스키 자신도 언행 때문에 푸틴한테 자주 불려가서 한 소리 듣는데, 사실 푸틴은 지리노프스키를 한심하게 여길뿐이지 넴초프처럼 아예 죽인다거나 그 정도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견제할 인물로 여기지는 않는다. 아니 할 필요가 없다. 러시아 자유민주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선거공학적으로 보면 러시아 국민들이 공산당이 집권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고 우유부단해보이는 공정 러시아도 화끈하지 않고, 나치즘 같은 자유민주당도 싫으니, 푸틴이 속해 있는 통합 러시아에 표가 오도록 하는데다가, 국가두마에서는 통합 러시아 2중대 노릇을 하고 지리노프스키 자체도 유력 대권주자에서 잡룡이 된지 오래인지라 코미디언 취급이나 안받으면 다행이다.

그런데 2018년을 기점으로 두 정당의 사이가 균열이 올 여지가 생겼다. 주요 선거지에서 통합 러시아의 자치단체장 후보들이 극우 자유민주당 후보들에게 줄줄이 낙선하기 시작한 것. 심지어 소도시에서 그냥저냥 출마한 주부 당원이 통합 러시아 후보를 제끼고 지가 당선되는 코미디가 연출되었다.

2020년에는 하바롭스크 지방청장인 세르게이 푸르갈이 16년 전 살인혐의로 갑자기 체포되면서 푸틴 정권을 강도높게 비난했으며, 2020년 하바롭스크 시위가 일어나자 공산당, 나발니 세력과 연대하고 있다.

복서, 종합격투기 선수들을 자주 홍보 대상으로 이용한다. 소련의 유명 복서 올레크 말리시킨을 대선후보로 추대했으며 마이클 타이슨에게는 고통의 땅 미국을 벗어나 러시아로 이민오라고 권유하고 만남을 요청했지만 타이슨이 거절했다. 제프 몬슨이 러시아 시민권을 얻는 것도 도와줬다.# 이외에도 많은 종합격투기 단체에 대해 후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같은 해, 사망 넉 달 이후 동시대에 자신과 대척점에 있었던 정치인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세상을 떠났다.

6. 지리노프스키의 어록

여기 언급된 어록 대부분의 출처는 여기.

7. 둘러보기

파일:러시아 국기.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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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대 국가두마 선거에서 출마했으나 소선거구제가 없어졌고 7대 총선 당시 소선거구제가 부활했음에도 비례대표로 출마했다.[2] 주로 사회 문제에 대한 극단적인 해결 방식을 제시함으로서 여타 국내외 포퓰리스트들과 달리 30년간 꾸준히 정치 생명을 유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이를 참고할 정도였으며 자유민주당 내에는 지리노프스키가 밀던 부패 방지 포퓰리즘을 조금 변경하고 실현시켜 아예 하바롭스크 지방의 부패를 흔적도 없이 없애 버린 세르게이 푸르갈 하바롭스크 지방지사도 있다.[3] 이후 그는 재혼한 새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이주해 농업경제학자로서 활동했으며 리쿠드의 전신인 헤루트의 당원으로 활동하다가 1983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4] 결혼 전 성은 마카로바(Макарова). 볼프와 결혼하기 전 이혼한 첫번째 남편의 성이 지리노프스키이며 비록 핏줄 하나 섞이지 않았지만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는 스스로 지리노프스키라는 성을 사용했다.[5] 현재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소유한 국영 기업으로 바뀌었으나 아직까지 규모가 가장 큰 목재 공장이다. 지리노프스키는 우크라이나 정부에 공장 반환을 요구했다.[6] 독신, 독신세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극우파, 파시스트들은 독신자들, 특히 자발적 독신주의자들을 출산율을 떨어뜨려 사회와 국가를 무너뜨리는 암적 존재들이라며 증오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그들은 결혼은 했지만 자식을 낳지 않는 딩크족도 마찬가지 이유로 증오한다. 그래서 결혼 제도 및 자식을 두고 있는 기혼자, 특히 다자녀 출산자들을 찬양한다.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도 지리노프스키는 독신자 주택 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워서 비난을 받았다.[7] 참고로 넴초프는 이 사건이 벌어진지 2년 후인 1997년에는 러시아 제1부총리가 되어 옐친 정권의 실세가 되었는데 당시 나이는 겨우 38세(토론 당시 36세)였다. 푸틴이 집권한 후에는 러시아의 주요 반정부 인사였는데 2015년 2월 28일 새벽에 크렘린 앞을 지나가다가 암살당했다.[8] 여담으로 해당 링크 기사에서 지리노프스키는 공정 러시아 당수로 잘못 나와 있다.[9] 참고로 ы라는 문자는 ъ와 і의 이중합자로 약 14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문자다(і는 현대 러시아어 표기에서는 안 쓰지만 예전에는 쓰던 글자로 и와 유사하다.). 몽골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10] 이런 식의 꼰대질의 헛점이 다 그렇지만, 언어의 역사성까지 운운할 필요도 없이, 당장 이런 현대 러시아어에 수많은 서유럽발 외래어 도입을 주도한 역사적 인물은 지리노프스키 같은 러시아 극우들이 강력한 제국을 건설했다고 빨아 재끼는 18세기의 유명한 황제다. 물론 이런 표트르 대제식 러시아의 '유럽화'에 극렬 반대하는 '동방파' 슬라브주의 또한 러시아 문화지성사에서 중요한 전통이긴 했지만.[11] 건국 직후 미국국가원수 겸 행정부의 수장 자리를 신설하면서 그 이름을 'president'라고 했는데 대통령제를 처음으로 도입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었기 때문에 이후 대통령 자리를 신설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는 '대통령'을 가리키는 단어로 영어 단어 'president'를 그대로 도입해 쓰게 되었다. 참고로 지리노프스키가 예시로 들먹인 튀르키예에서는 대통령을 '줌후르바슈카느(Cumhurbaşkanı)'라고 표기한다. 뜻은 '인민의 우두머리'.[12] 정작 표트르 대제는 차르란 단어를 쓰니까 서유럽에서 황제가 아니라 술탄 같이 비유럽 군주 이름 수준으로 여긴다고 라틴어인 임페라토르를 병기했다. '보시티(вождь, 수령)'도 있어서 그걸 말한 건지도 모르지만. 보시티는 실제로 4년 뒤 푸틴이 썼다.#[13] 페트로 포로셴코는 반러 정치인으로 지리노프스키가 매우 싫어하는 인물이다.[14] 1968년프라하의 봄. 1945년 5월 9일나치 독일이 소련에 항복한 날.[15] 통찰있는 발언으로 평가받기도 하나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제 살 깎아먹는 말인 것이, 똑같이 오스만, 몽골, 독일에게 시달림을 당했던 그리스나 헝가리, 불가리아, 루마니아, 폴란드도 중간에 독재 시절이 있긴 했지만 러시아와는 다르게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러시아가 이 나라들을 보호해 주었다는 것도 가관인 것이 러시아 제국이 후에 범슬라브주의와 정교회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발칸이나 동유럽 국가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오스만이나 폴란드의 정교회 우점 지역들을 독립시켰으나 결국엔 자기네 세력으로 복속 또는 영토를 차지하여 이들의 자유를 탄압하거나 다른 제국들과 영토를 갈라먹는 등 소위 말하는 보호와는 사뭇 거리가 먼 행동을 하였다. 폴란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발트 3국 입장에서 러시아는 뭔놈의 '보호자'가 아니라 바로 그 오스만, 독일, 몽골이랑 격을 같이하는 침략자들 중 하나일 뿐인데 유럽에 마치 이렇게 중간에 낀 소국들은 존재하지 않고 자신들과 서방만 존재하는 양 단순화 시키는건 대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흔한 논리이다. 즉, 지리노프스키 지지자들이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발언이라는 것.[16] 러시아의 극우들은 네오나치처럼 친독일일 거라고 착각할 수 있는데, 당연히 모두 그런 것은 아니다. 비록 지리노프스키가 나치 독일과 사상적으로 어느정도 비슷할 수는 있어도 그게 나치 독일 그 자체에 대한 옹호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당연한 거지만 독일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봤던 러시아였던지라 좌우를 막론하고 나치독일을 옹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극우의 핵심적인 사상인 민족주의를 생각한다면 지리노프스키처럼 독일을 혐오하는 게 정상이다. 반대로 서방과의 화해를 모색하고 탈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진보좌파 진영에서 그나마 독일에 우호적일 수도 있을 뿐이다.[17] 위의 동영상.[18] 지리노프스키의 얼마 안 되는 정상적인 발언으로 평가 받는다. 소치는 소련시절부터 러시아 대표 휴양지기에 흔히 할 만한 발언인데 하필 지리노프스키가 해서 더욱 그럴듯해 보이는것.[19] 미국이 개전한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면서 한 발언.[20] 이것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면서 한 발언. 참고로 조지아 침공은 트빌리시 지역은 아니지만 나중에 블라디미르 푸틴이 2008년에 다시 남오세티아 문제에 개입하면서 실현되어 버렸다.[21] 러시아 연방 공산당 당수.[22] 말이 거칠긴 하지만 의미심장한 말이기도 하다. 실제로 보리스는 몸이 안 좋아서 퇴임하기 직전 이상적인 러시아를 바로 세우지 못해 미안하다는 발언을 했고 그 뒤에 별세했기 때문.[23] 첼랴빈스크 운석우 사건 당시 발언. 한술 더 떠서 당시 미국 국무장관 존 커리가 러시아 외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한테 전화를 걸어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도발을 경고하려 했지만 라브로프가 출장 중이었다는 얘기까지 곁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