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3 08:21:35

바그다드


현재 기준으로 바그다드에 여행금지가 발령되었습니다.

바그다드
아랍어: بغداد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aghdad_collage.png
면적 204.2 km2
행정구역 파일:이라크 국기.png이라크 바그다드 주 바그다드
인구 8,765,000명(이라크 내전 이전)
3,980,000명(이라크 내전 이후)
링크 바그다드 홈페이지
여행경보 여행금지(전지역)
히브리어 בגדאד
아랍어 بغداد
영어 Baghdad
러시아어 Багдад
그리스어 Βαγδάτη
힌디어 बग़दाद
중국어 巴格达
일본어 バグダード市
스페인어 Bagdad
프랑스어 Bagdad

1. 개요2. 역사
2.1. 압바스 왕조의 수도2.2. 쇠퇴기
3. 현재4. 창작물에서의 바그다드

1. 개요

이라크의 수도이며 중세 이슬람 제국의 수도 중 하나였다. 당대 명칭은 마디나트 알 살람, 즉 평화의 도시. 하지만 이라크 내전ISIL으로 인해서 원래 인구보다 많이 줄어들었다. 현재 인구는 약 390만명이다.

아드하미야(Adhamiyah), 카흐(Karkh), 카라다(Karrada), 카디미야(Kadhimiya), 만수르(Mansour), 사드르시티(Sadr City)[1], 알라시드(Al Rashid), 루사파(Rusafa), 뉴바그다드(Tisaa Nissan = 4월9일) 등 9개 구가 있다.

2. 역사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중심인 도시지만, 원래 그 역할은 고대 이래로 바빌론크테시폰이 수행해 왔다. 바빌론은 바빌로니아 왕국의 도읍으로 번창했고, 크테시폰은 파르티아 왕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의 도읍으로 번영했다. 651년 사산 왕조가 멸망하면서 크테시폰은 도읍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고, 이슬람 세계로 편입된 페르시아의 수도는 다마스쿠스(현재 시리아의 수도)로 옮겨졌다.

2.1. 압바스 왕조의 수도

"바로 이곳이 내가 도읍을 건설할 곳이로다. 물자들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운하 등을 통해 이곳에 당도할 수 있을 것이다. 군대와 백성들을 부양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 뿐이다."

ㅡ 새 수도를 정하기 위한 탐사 도중 칼리파 알 만수르가 남긴 말. 알 타바리의 기록.
"건설하라. 알라께서 너희를 축복하시리라."
ㅡ 알 만수르, 첫 벽돌을 놓으며

그러다가 750년 아바스 왕조가 흥기하여 우마이야 왕조를 멸망시키고 이슬람 세계를 장악하자 압바스 왕조는 왕가의 지지세력인 페르시아인들에게 가까운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중심지로 삼고 바그다드를 세웠다.

파일:attachment/baghdad.jpg
출처는 BBC 뉴스 일러스트.

압바스 왕조 치하의 바그다드는 명실상부한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로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웠으며, 문화, 예술, 정치, 종교의 중심지로서 번영했다. 당나라 시대까지 번영한 실크로드의 한 축으로서 바그다드는 세계적 규모의 경제교류의 핵이었다. 한때는 인구가 200만 명에 달한다고 칭해질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도시였다. 당시 바그다드와 맞먹는 규모의 도시는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과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뿐일 정도. 당시 시가지는 지금의 시가지보다 10배는 컸다고 한다.

그러나 10세기 이후 지역 왕조들이 분립하면서 바그다드는 점차 정치적인 영향력을 잃고 종교적인 영향력, 혹은 통합 이슬람 세계의 상징이라는 역할로 전락해 갔다. 특히 945년부터 시아파인 부와이흐 왕조가 바그다드를 점령, 칼리프 직위를 좌지우지 했다. 막부?

2.2. 쇠퇴기

1055년에는 셀주크 제국이 바그다드를 정복하였다. 이후 영향력은 강했다 약해졌다를 반복하긴 했으나, 바그다드는 이미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 역할을 상실했다. 비록 12세기 중반 ~ 13세기 전반에 걸쳐 압바스 칼리파가 다시 이라크의 지배권을 회복하시였으나 그 과정에서 셀주크 조와 벌인 공성전으로 시가지가 심하게 파괴되었다.
도시의 건물 대부분이 사라졌고 남은 것은 오직 도시의 허울 좋은 이룸뿐이었다. 도시는 마치 누군가 머물고 지나간 흔적이 지워지는 것 같았으며, 무언가의 자취가 서서히 흐려지는 느낌이었고, 상상력의 덧없는 환영 같았다. 시선을 끄는 아름다움 같은 것은 더 이상 없었으며, 여유롭게 유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이끄는 매력도 이젠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에 남은 것은 맹수같은 야생의 느낌 뿐이다.

ㅡ 아랍 여행가 이븐 주바이르 (1184년)

파일:Mustansiriya_University_CPT-1-1-1.jpg
압바스 칼리파 알 무스탄시르가 세운 대학

특히 1258년, 몽골 제국의 공격으로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칼리프 알 무스타심이 피살된 사건은 바그다드의 몰락에 대한 결정타였다. 이 때 바그다드는 몽골군의 약탈과 학살로 황폐화되었으며 이 후 바그다드는 종교적 상징성마저 상실했다. 당시 지혜의 집, 니자미야, 무스탄스리야 등 유명한 학문의 금자탑이 잿더미로 변한 사실은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 소실 이상으로 인류의 손실이었다. 거기다 칼리프는 이집트 맘루크 왕조의 통제 하에 카이로에서 선출되게 되다가 1517년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오스만 제국에 넘어간다.

이런 상태에서 1401년에는 티무르에게 정복될 때 2만여명의 시민들이 학살되며 한 차례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로써 한때 세계 최대, 최고의 도시이던 바그다드는 지방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그다드는 폐허 싱태이다. 이곳에는 사원도, 신도들도 없고, 기도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시장도 열리지 않는다. 야자수 대부분은 말라 비틀어졌다. 이곳은 이제 도시라고 부를 수 없는 상태이다.

ㅡ 알 마크리시 (1437년)

1534년 오스만 제국이 바그다드와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하면서 본격적인 터키계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이 지역의 패권은 페르시아와 오스만 제국에게 자존심을 건 대결 현장이 되었다.

1916~1918년 아랍인들의 반란과 연합군의 간섭으로 오스만 제국은 이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고, 후세인-맥마흔 협정(1915)의 약속을 무시하고 사이크스-피코 협정(1916)에 따라 영국이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통치권을 장악하면서 1932년까지 영국의 신탁통치 하에 놓였다.

그러다가 1932년에 영국이 물러나면서 바그다드는 이라크 왕국의 수도로 정해졌고, 이후 공화국으로 변한 뒤에도, 사담 후세인 독재정권 시기에도 이라크의 중심이자 수도였다. 때문에 걸프전 때는 공습을 당하기도 했고, 이라크 전쟁때도 미군의 폭격을 심하게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2]

3. 현재

파일:external/looklex.com/baghdad01.jpg

파일:external/i.huffpost.com/o-BAGHDAD-facebook.jpg

파일:external/a2ua.com/baghdad-007.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024px-Haifa_street%2C_as_seen_from_the_medical_city_hospital_across_the_tigres.jpg
21세기의 바그다드.

사담 정권이 몰락하고, 2003년 이후에 미군이 주둔한 뒤로는 이슬람 반군들과 미군 사이의 전투로 도시 곳곳에 폭탄 테러나 총격전이 일어나는 등 혼란기를 겪기도 했다. [3] 또한 바그다드에는 옛날부터 수니파시아파가 도심 곳곳에 섞여 살았는데, 이라크 전쟁 이후로 수니-시아파 간 종파갈등이 극도로 치달으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종파간 테러와 폭력사태가 이어졌고, 도시 곳곳에는 종파간 영역을 나누는 분리장벽이 설치되는 등 도시 분위기가 매우 살벌해졌다. 알라시드 구의 도라(Dora) 지역은 사담 몰락 전에는 15만 명의 기독교도 아시리아인만다야교도들이 살았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 알카에다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날뛰면서 거의 대부분이 다른 지역이나 나라로 이주하였다. 이는 현재진행형.

미군이 철수한 이후로 혼란상이 많이 줄어들었다...싶었지만, ISIL이라는 이라크 역사상 최악의 반란군의 등장으로 다시 난장판이 되었다. 그나마 바그다드가 함락되네 마네 소리가 나올 정도로 ISIL 세력이 바그다드에 근접했던[4] 2014년에 비해 2016년에는 이라크 정부군이 힘을 좀 되찾고, 각지에서 다에시군에 대한 반격이 성공하고 서방세력의 연이은 공습으로 IS의 전체적인 세력이 크게 줄어든 상황이라, ISIL은 2016년 6월 기준으로 바그다드에서도 한참 멀리 쫓겨난 상황이다. 여전히 잔혹한 테러는 일어나긴 하지만, 확실히 상황 자체는 좀 나아진 편. 이후 테러만 줄어든다면 여행금지가 먼저 풀릴 것으로 보인다.

남동쪽 10km 떨어진 곳에 비스마야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한다. 신도시 건설은 우리나라의 한화건설이 주도하고 있다.

2019년 6월 4일에 바그다드의 그린 존(Green Zone)이 이라크 전쟁 16년만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4. 창작물에서의 바그다드


[1] 1959년 압둘 카림 카셈 정권에 의해 지방 이주민들을 수용하려고 건설된 신도시로 시아파 다수 거주지역이다. 처음에는 타우라(Thawra, 혁명)였다가, 1982년 사담시티로 바뀌었고, 2003년 이후 시아파 성직자 알사드르의 이름을 따 바뀌었다.[2] 자신이 10대 후반~20대 이후 나이대라면 한번쯤 어릴 적에 뉴스에서 미군의 폭격으로 불타는 바그다드를 적외선 화면으로 찍어 실시간으로 방영되는 것을 텔레비전 등으로 본 적이 있을 것이다.[3] 그런데 이 한복판에 들어간 민간인이 있다! 로렌스 앤서니라는 남아프리카의 환경운동가로, 순전히 바그다드의 동물을 위하여 들어갔다고. 그가 한 일을 보려면 본인의 서적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를 참조.[4] 한때는 바그다드 외곽에서 불과 1.6km 떨어진 곳까지 IS가 진출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