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11:28:57

술라이마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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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라크 술라이마니야 21.jpg

1. 개요2. 역사3. 갤러리

1. 개요

아랍어 السليمانية
쿠르드어 سلێمانی
영어 Sulaymaniyah / Slemani

이라크 동북부에 위치한 도시. 키르쿠크에서 동쪽으로 80km, 아르빌에서 동남쪽으로 120km 떨어진 분지에 위치한다. 이란과의 국경에서 불과 40km 떨어져 있다. 아르빌과 함께 이라크 쿠르디스탄의 양대 도시로, 양대 정당 조직 중 쿠르디스탄 애국 연합의 본거지이다. 18세기 쿠르드 번국인 바반 후국의 수도로 세워졌고, 문화적으로 번영하였다. 1850년 바반 후국의 멸망 후 1922-24년에는 쿠르디스탄 왕국의 수도였다. 1994 ~ 2005년까지는 쿠르디스탄 애국 연합 정부가 있었다. 20세기 후반부터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이라크 도시들 중 가장 깔끔한 편에 속한다. 인구 역시 1947년의 2만 3천에서 1998년 55만을 거쳐 현재는 90만에 이른다. 시가지 역시 순환도로 너머로 확장되고 있다.

아르빌만큼은 아니지만 술라이마니야 역시 관광 도시로 분류된다. 도심 중심부에는 아자디 공원 및 놀이동산과 각종 박물관이 모여 있다. 1961년에 세워진 슬레마니 박물관은 쿠르디스탄 일대의 고고학 발굴 성과를 전시하며, 어린이 박물관까지 갖출 만큼 관리가 잘되고 있다. 아므나 수라카 (붉은 감옥)는 과거 후세인 정권의 쿠르드인 수용소를 2003년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이다. 그 외에 쿠르드 유산 박물관이 있으며 유적지로는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이 있다. 또한 시내에는 1968년에 설립된 쿠르디스탄 최대의 대학인 술라이마니야 대학교와 술라이마니 폴리텍 대학이 있고, 도시 서쪽에는 이라크 아메리칸 대학과 술라이마니야 국제공항이 자리한다. 노루즈 철이면 자국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해방감을 느끼려는 이란인 관광객들이 대거 방문한다. 해발 880m의 고원에 자리했지만 여름에는 40도가 넘어갈 만큼 덥고 겨울에는 영하권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미국의 투손, 이탈리아의 나폴리 등과 자매 결연을 맺었다.

2. 역사

파일:이라크 쿠르드.jpg파일:술라이마니야 이라크 2.jpg
셰이크 마흐무드 바르잔지 아므나 수라카 박물관

1649년 오스만 제국사파비 왕조의 완충국으로 세워진 바반 후국은 켈라치왈란을 수도로 삼았는데, 이란에 가까운 탓에 전쟁 때마다 페르시아 군의 공격을 받았다. 따라서 1781년 마흐무드 파샤는 보다 이라크 방면인 멜켄디로의 천도를 구상하여 사라이 (관공서)와 군사 기지를 세웠다. 1783년 그가 사망하고 계승한 이브라힘 파샤는 과거 사파비 원정에 나선 술레이만 대제가 멜켄디 인근에 세웠던 진영 터를 재활용하여 바자르 및 하맘 (목욕탕)과 궁전을 세웠고, 이듬해 천도하였다. (1784년 11월 14일) 지명은 후자 (혹은 초대 바반 군주인 술레이만 바바)를 기리는 술레이니야로 결정되었고, 멜켄디는 그에 흡수되었다. 1820년경 도시를 방문한 영국인 레치는 2천여 가구가 거주한다고 기록하였다.

19세기 초엽 술라이마니야에는 카자르 왕조의 탄압을 피해 이란의 쿠르드계 번국인 아르달란 후국에서 쿠르드인들이 다수 망명해왔다. 그중에는 여성 시인 마스투라 아르달란도 있었고, 그녀는 페르시아어로 쿠르드 역사를 저술한 후 1848년 술레이마니야에서 사망하였다. 1850년 바반 후국이 근대화에 나선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후로도 도시는 꾸준히 성장하여 20세기 초엽 1만 인구를 넘었다. 1차 대전 중인 1918년 영국군이 점령하였다. 당시 술라이마니야는 쿠르디스탄의 중심지였지만 1920년 세브르 조약 당시 디야르바크르 일대만이 쿠르드 자치령이 되고 아르빌 ~ 술라이마니야 일대는 영국 위임통치령이 되자 현지 쿠르드인들은 반발하였다. 그 결과 1921년 10월, 셰이크 마흐무드 바르잔지가 쿠르디스탄 왕국을 선포하였다.

술라이마니야는 그 수도였으나 1924년 7월 영국군에 점령되었다. 그후 마흐무드 바르잔지는 게릴라 활동을 지속하였으나 1932년 공군력까지 동원한 영국군에게 사로잡혀 이라크 남부로 유배된다. 이라크 왕국을 거쳐 사담 후세인 정권기에 술라이마니야에는 쿠르드 민족주의자들을 고문하는 수용 시설이 세워졌다. 이러한 폭정에 대한 반발로 1991년 봄, 페쉬메르가를 주축으로 봉기가 일어나 쿠르드 자치정부가 설치되었으나 2005년 아르빌로 이전되었다. 2006년 술라이마니야에는 이라크 아메리칸 대학교가 세워졌다. 2011년 2월에는 시위대가 쿠르디스탄 민주당 본부를 습격하려 하였다.

3. 갤러리

파일:이라크 술라이마니야 4.jpg

파일:술라이마니야 이라크 1.jpg

파일:이라크 술라이마니야 3.jpg

파일:이라크 술라이마니야 1.jpg

파일:술라이마니야 이라크 3.jpg

파일:6qp42qz381u71.jpg
로마 시대 원형극장

파일:이라크 쿠르디.jpg
쿠르드 유산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