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5-14 21:46:17

카르발라

파일:이라크 국기.svg 카르발라주의 도시
카르발라
كربلاء
Karb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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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카르발라주
면적 42.4㎢
인구 711,530명[A]
시간대 UTC+3
파일:1200px-Karbala_City_3.jpg
▲ 이맘 후세인 성지


1. 개요2. 기후3. 역사4. 관광5. 자매도시6. 여담

1. 개요

이라크 중서부에 위치한 도시로, 바그다드에서 남서쪽으로 100km 정도 떨어져있다.

시아 이슬람의 성지로[2], 시아파의 3대 이맘이자, 4대 정통칼리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차남이며, 선지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인 후세인 이븐 알리 일족이 쿠파로 향하다가 우마이야 군대에게 따라잡혀 처절한 저항 끝에 학살당한 곳이다. (서기 680년, 당시 칼리파는 야지드 1세), 후세인 이븐 알리의 무덤인 이맘 후사인 성지와 알 압바스 성지가 이곳에 있다. 이를 카르발라 참극이라 부르며, 이로써 수니파와 시아파는 돌이킬 수 없는 분열로 들어섰다.

2. 기후

기온이 비교적 높아 정오에는 섭씨 45에 달한다. 밤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날도 있다.

3. 역사

카르발라는 기원이 바빌로니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지명 어원에 대해서는 바빌로니아어·아시리아어·페르시아어 기원설 등 여러 견해가 있고, 고대에는 기독교 묘지나 사원 터가 있었다는 주장도 전해진다.

카르발라 참극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카르발라 참극 문서 또는 아슈라 문서를 참고.

부와이흐 왕조, 셀주크 왕조 시기에도 성역은 유지·보수되었으며, 몽골의 이라크 정복 이후에도 도시는 파괴를 크게 겪지 않았고, 일 칸국의 가잔 칸과 올제이투 칸 등이 운하 건설과 성역 지원을 했다. 잘라이르 왕조 시대에는 비교적 안정 속에 후세인 성묘가 재건·확장되어 오늘날 구조의 기초가 마련되었고, 티무르의 침공기에는 전투가 벌어지기도 했다. 16세기 사파비 왕조가 이라크를 점령한 뒤에는 성묘와 종교 건축이 대대적으로 장식·확장되었으며, 이후 오스만 제국 통치하에서도 돔과 모스크, 회랑 등이 재건·보수되면서 카르발라는 시아파 이슬람의 대표적 성지이자 종교·도시 발전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1802년, 바그다드에 흑사병이 퍼지고 총독이 병환 중이던 틈을 타 와하브파의 디리야 토후국 (1차 사우디 국가)이 이곳을 기습 점령하고 후세인 영묘를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후 인도 왕의 지원과 종교지도자들의 주도로 성묘와 시가지가 재건되고 성벽이 보강되었다. 1906년에는 페르시아인 순례자에 대한 세금 부과에 항의하는 시위가 오스만 당국의 발포로 약 70명이 사망하는 학살로 이어졌고, 1920년에는 시아파 성직자 미르자 무함마드 타키 알시라지가 이끈 반영 봉기에 카르발라가 중요한 거점으로 참여했으나 영국군의 재점령과 함께 지도자 체포 요구를 수용하며 종결되었다. 1991년 걸프전 직후의 봉기에서 도시가 점시 반정부 세력에 장악되었으나 진압되었다. 2003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 때도 격전이 벌어졌고 2004년에는 미·폴란드 연합군과 마흐디 군 사이에 시가전이 전개되었다.

4. 관광

  • 알 우카이디르 요새 (حصن الأخيضر) : 이라크 카르발라에서 남쪽으로 약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요새로 8세기 중반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 라자자 호수 (البحيرة الرزازة) : 이라크 카르발라 서쪽으로 수 킬로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공 호수로 이라크의 중요한 조류 서식지 중 하나이다.
  • 알 탈 알 자이나비야 (التل الزینبیة) :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 이맘 후세인의 누이인 자이나브 빈트 알리가 전투 당시 올라가 전황을 지켜보았다고 전해지는 언덕에 위치한 성지로 현재 이곳에는 작은 성소와 전망 공간이 조성되어있다.
  • 알 압바스 성지 (حَرَم أَبا الْفَضْل الْعَبَّاس) : 이맘 후세인의 동생이자 카르발라 전투에서 순교한 압바스 이븐 알리를 기리는 모스크 및 묘역으로 시아파 신자들에게 특히 충성심과 헌신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매년 아슈라와 순례 때 수백만 명의 참배객이 방문한다.
  • 이맘 후세인 성지 (مَقَام الإِمَامُ الْحُسَيْن اِبِنْ عَلي) : 이맘 후세인이 카르발라 전투에서 순교한 장소 위에 세워진 성지로 그의 무덤과 후세인과 같은 순교한 72명의 순교자들의 무덤도 있다.

5. 자매도시

6. 여담

  •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인 ISIS가 카르발라에 테러를 한다는 언급을 하여 전 세계 1억 시아파 신도들이 격노하기도 하였다.
  • 이란에게는 나자프와 함께 시아파 성지인 만큼 영사관을 설치할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다. 그래서 순례를 오는 사람들에게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 문화가 유네스코에 '아르바인 순례자에게 베푸는 서비스와 환대'로 등록되었다
  • 이라크의 축구팀인 카르발라 SC의 연고지이다.

[A] 2018년 1월 1일 기준[2] 이곳을 순례한 사람들은 메카순례자를 "하지"라고 부르는 것처럼 کربلایی (케르발러이, kerbalâyi)라는 호를 붙여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