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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스 왕조 제31대 칼리파 알 묵타피 المقتفي لأمر الله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이름 |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이븐 아흐메드 알 무스타지르 أبو عبد الله محمد بن أحمد المستظهر |
출생 | 1096년 4월 9일 |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 |
사망 | 1160년 3월 12일 (향년 63세) |
아바스 왕조 바그다드 | |
재위 기간 | 아바스 칼리파 |
1136년 8월 17일 ~ 1160년 3월 12일 (24년) | |
전임자 | 알 라시드 |
후임자 | 알 무스탄지드 |
별명 | 알 묵타피 리아므릴라(المقتفي لأمر الله: 하나님의 뜻대로 가는 자) |
부모 | 아버지 : 알 무스타지르 어머니 : 아신 |
종교 | 이슬람 수니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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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바스 왕조 제31대 칼리파.셀주크 제국 술탄 마수드에게 옹립된 후 20년 동안 때를 기다리다 셀주크 내전이 터지자 거병하여 독립을 달성했다. 다소 성급하게 군사 행동에 나섰다가 패배한 전임 칼리파들과 달리 시세를 잘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행동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후 압바스 조는 이라크 중부와 남부를 석권하고 1258년까지 약 한세기 가량 서아시아의 주요 세력 중 하나로 남게 된다.
2. 생애
1096년 4월 9일 아바스 왕조 제28대 칼리파 알 무스타지르와 시리아출신의 여노예 아신의 아들로 출생했다. 1118년 이복형 알 무스타르시드가 알 무스타피의 뒤를 이어 칼리파가 되었다. 알 무스타르시드는 셀주크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꾀해 2차례 전쟁을 벌였으나 끝내 실패하고 마지막에는 아흐마드 산자르의 진영에 들어가 재기를 꾀하다가 1135년 8월 29일에 암살당했다.
이후 알 무스타르시드의 아들 알 라시드가 칼리파로 선임되었다. 알 라시드는 아버지를 죽인 것으로 짐작되는 술탄 마수드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바그다드에서 항전했으나 1136년 바그다드가 끝내 함락될 위기에 몰리자 모술의 통치자 이마드 앗 딘 장기에게 귀순했지만, 마수드의 압력을 받은 장기에게 쫓겨나 각지를 방랑하다가 이스파한에서 아사신에게 암살당했다. 마수드 술탄은 알 라시드를 축출한 뒤 그를 새 칼리파로 옹립했다. 이전의 두 칼리파가 어찌 되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던 그는 셀주크 제국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지 않고 바그다드에서 조용히 지냈다.
1138년 5월 동로마 제국의 침공으로 궁지에 몰린 장기가 바그다드에 파견해 금요 예배 때에 신도들을 동원하여 술탄 마수드에게 원군을 파견하도록 청하는 시위를 조직했다. 이에 셀주크 제국군 2만 명이 그를 구하러 갔지만, 동로마군이 샤이자르 공방전에서 패한 뒤 회군했다. 1144년 12월, 장기는 에데사를 함락해 십자군 세력을 압박했다. 1145년, 장기는 모술의 에미르인 셀주크 왕자 알프 아르슬란의 쿠데타를 제압했다. 이렇듯 장기의 세력과 명성이 갈수록 강성해지자, 그는 장기에게 정식으로 에미르 칭호를 내렸다.[1] 1146년 장기가 암살당한 뒤 장남 사이프 앗 딘 가지가 모술, 차남 누르 앗 딘이 알레포를 계승했다. 두 형제는 1148년 2차 십자군의 다마스쿠스 포위를 격퇴했다. 1149년 사이프 앗 딘이 사망한 뒤 누르 앗 딘이 모술의 에미르를 겸임했다.
한편, 1141년 아흐마드 산자르가 카라 키타이의 야율대석에게 카트완 전투에서 참패했고, 1148년 살구르 왕조가 파르스 지방에서 자립했다. 이리하여 셀주크 제국은 본거지인 이란을 상실할 위기에 몰렸다. 또한 아들이 없던 술탄 마수드는 조카 중 한명이자 다우드의 동생인 말리크샤를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후계자로 삼았다. 1152년 9월 마수드가 사망하자 말리크샤 3세가 술탄이 되었다. 그러나 후제스탄에 있던 마수드의 동생 무함마드 2세가 거병하여 이라크를 거쳐 북상, 형 말리크샤를 폐위하고 1153년 1월 하마단에서 술탄으로 등극했다. 그러자 아제르바이잔의 에미르들이 반발하여 호라산에 있던 마수드의 동생 쉴레이만샤를 옹립하여 내전을 벌였다. 게다가 같은 해에 마흐마드 산자르가 오우즈 인들에게 사로잡히면서, 셀주크 제국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쭉 지켜본 알 묵타피는 아바스 왕조를 중흥시킬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그동안 친위 군대를 양성한 그는 1154년 거병하여 힐라와 와시트 등 이라크 중남부를 공략했다. 1155년, 그는 쉴레이만샤와 협상한 끝에 그가 이라크에 개입하지 않는 조건하에 술탄으로 인정하고 알 말리크 알 무스타지르 칭호를 선사했다. 그러나 1156년 봄, 쉴레이만샤가 하마단으로 남하하다가 그해 초여름에 무함마드 2세에게 참패하고 사로잡혔다. 이와 동시에 이란 서부(지발)에 대한 칼리파 군의 공격 역시 격퇴되었다. 무함마드 2세는 여세를 몰아 그를 응징하기로 작정하고, 1157년 1월 모술의 쿠트브 앗 딘과 함께 바그다드로 진격했다. 그는 바그다드 방어를 위해 힐라와 와시트의 주둔 병력을 불러들였다.
1157년 1월 12일, 무함마드 2세는 3만의 병력으로 바그다드를 포위했다. 술탄 측이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형세를 관망하던 알 묵타피는 티그리스 강 서안의 구시가지(원형도시)를 포기하고 성벽이 짧아 방어에 용이한 동안의 신시가지로 병력을 옮기도록 지시했다. 이후 양안을 이어주는 교각 모두를 파괴하였고 동안의 성벽을 강화하였다. 무함마드 2세는 서안에 진영을 세우고 여러 개의 투석기와 발리스타 등을 배치하였다. 한편 알 묵타피는 칼리파의 적이자 불신자인[2] 술탄에 맞서도록 호소하며 시민들에게 무기를 주어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였다. 또한 재상 아운 앗 딘 이븐 후바이라를 시켜 부상당한 병사들 모두에게 각각 5 디나르를 주도록 지시하였다. 한달 반 가량의 준비와 탐색전 끝에 본격적인 공방전은 1157년 3월부터 일어났다.
3월 4일, 술탄은 모술의 재상 자인 앗 딘과 함께 무자비한 폭격 후에 총공격을 시도했다. 수비대는 시민들의 지원에 힘입어 수비에 매진하고 석유를 이용한 화공을 통해 공격을 격퇴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은 무함마드 2세는 이번에는 끊어졌던 교량들의 복구를 지시했고, 3월 29일에 완공되자 병력을 강 건너로 옮겨 동안의 성벽을 공격했다. 소규모 전투가 벌어진 후 또다시 공성전이 벌어졌는데, 수비군은 화공을 통해 적의 투석기를 파괴했고 성벽의 투석기로 적의 파성추를 파괴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무함마드 2세는 군대를 재정비한 후 섣부른 공격 대신 도시를 봉쇄하고 기다리는 전략으로 선회하였다. 6월 29일, 공격군은 400개의 사다리를 이용해 성벽을 넘으려 시도했으나 수비군의 맹렬한 화살 세례에 큰 사상자를 내고 물러났다.
같은 시기 야곱의 여울 전투에서 십자군을 격파하며 기세를 올리던 누르 앗 딘은 칼리파의 영토를 침공한 동생 쿠트브 앗 딘을 꾸짖었다. 길어지는 전쟁에 염증이 나있던 후자의 재상 자인 앗 딘은 이를 핑계로 전선을 이탈해 모술로 돌아갔다. 이로써 셀주크 제국과 장기 왕조 간의 동맹과 주종관계는 사실상 종식되었다. 한편 술탄이 오랜 기간 수도를 비운 사이에 폐위된 말리크샤 3세가 하마단을 점령했다. 이 소식을 접한 무함마드 2세 역시 7월 13일, 바그다드를 포기하고 북상하여 수도를 수복했다. 쫓겨난 말리크샤는 후제스탄을 점령해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1160년 오우즈 계열 군벌 샤라프 알딘 일데기즈에게 살해당했다. 하지만 이 무렵 병을 얻은 무함마드 2세는 알 묵타피와의 우호를 회복한 것을 마지막으로 1159년 1월 사망했다.
알 묵타피는 모술 측에 의해 옹립된 쉴레이만샤를 술탄으로 책봉하고 티크리트 탈환을 위해 2차례 원정을 감행했지만 실패했다. 1160년 3월 12일에 사망했고, 아들 알 무스탄지드가 뒤이어 칼리파에 올랐다.